소설리스트

4화. 일단 시녀들부터 꼬시자 (2) (4/77)


4화. 일단 시녀들부터 꼬시자 (2)
2022.12.13.


두 시녀는 시엔의 목욕물을 받기 위해 목욕탕 안으로 들어섰다.

뚜둑, 뚝.

한 명이 목의 관절을 꺾기 시작하자 다른 하나 역시 허리와 어깨 관절을 풀기 시작했다.


“후, 스트레칭을 하면서 목욕물 받자.”

“괜찮은 생각이지.”

드러난 팔 근육은 마치 말의 그것을 닮아 있었다.

시엔은 아직 모르는 일이었지만, 북쪽 첨탑의 두 시녀는 첨탑의 케르베로스라 불렸다.

그들은 시녀들을 억압하는 저택 내부의 불의에 저항하느라 한직-마티어스의 북쪽 첨탑-으로 쫓겨난 처지였지만 힘 하나만큼은 몹시 셌다.

콸콸-.

마침내 시엔이 들어갈 따스한 목욕물이 받아지는 도중이었다.

꽤 프로페셔널하게 모든 일을 해 나가던 차, 한 시녀가 말을 이었다.


“이봐, 내 근육 좀 커진 거 같지 않아?”

“아, 내 입에서 침 흐른다.”

“눈물 콧물 침, 다 조심해. 근 손실 와.”

모시는 주인이 나타났다지만,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근육뿐이었다. 약하디약해서 톡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은 주인은 그들에게 큰 관심사가 될 수 없었다. 그보다는 힘세고 강해지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였다.


“흠, 리프트 오백 번 정도는 해 줘야, 시녀다. 라고 할 수 있는 거지.”

“『헬스 뷰티』라는 잡지 봤나? 이번에 송진 가루 스페셜 나왔던데.”

“호오, 그래?”

시녀들은 동시에 땅이 꺼지는 한숨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쪼르륵, 목욕물이 다 받아짐과 동시에 시녀 하나가 열없이 속삭였다.


“프로테인이나 좀 구하고 싶다.”

근육이 빵빵해진다는 마법의 가루, 프로테인.

그것만 있으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첨탑의 시녀들 주제에 프로테인을 얻는 일은 대단히 요원하겠지만 말이다.

그들은 동시에 다시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근육 얘기는 그만하고 아기 주인님을 모시러 갈 시간이었다.

***

시녀들은 목욕 준비를 금세 해 왔다.

나는 이미 그들을 공략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기에 토끼 같은 조그만 이빨을 내민 채로 힛, 웃고 있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이.”

무뚝뚝한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속으로 씩 웃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송진 가루는 마법의 근육 보조제, 프로테인을 대체할 수 있다고 소문난 제재였다.


‘게다가 목욕탕에서 하는 얘기 들었거든, 프로테인 원한다구!’

그들은 프로테인을 원한다.

프로테인은 사실상 부작용 없는 스테로이드 수준이었다. 근육을 만드는 데에는 사기적인 약물이라는 소리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프로테인은 상당히 값비쌌고, 원료가 되는 열매도 구하기 힘들었다. 급여가 부족한 북쪽 첨탑의 시녀들은 프로테인 가루를 접해 보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나도 프로테인은 없지만 대신 야자나무 열매가 있지.’

프로테인 가루의 원료인 야자나무 열매.

야자 열매를 빻아서 먹어도 프로테인과 흡사한 효능을 냈다. 그러니 지금쯤 야자나무 열매의 가격도 천정부지로 올라 있는 상태겠지만-.


‘아빠가 나 먹으라고 많이 심어 줬거든!’

다행히 아빠는 야자나무의 가격이 오르기 전에 집 앞뜰에 야자나무를 심었었다. 병약하고 골골대는 나 때문에, 온갖 건강 보조 식품들을 다 사 오다가 야자나무 효능을 알고 농사꾼의 재능을 발휘한 것이었다.

나는 눈을 여기저기 굴리며 환히 웃었다.


‘근육 사랑 시녀들을 어떻게 꼬실지 걱정했는데, 답이 있었어!’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근육에는 근육으로!

시녀들을 꼬시는 데에는 프로테인이 제격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바로 환복을 도와 드리겠습니다.”

“……잠깐!”

양팔을 벌린 나는 내 옷을 갈아입혀 주려는 시녀를 올려다보았다.

꼬마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내 눈빛을 받은 시녀가 움찔했다.


“네?”

“근육, 멋있다?”

“……아아, 감사합니다.”

뿌듯한 듯 웃음이 1초간 입가에 걸렸다 사라졌다.


“그론데, 나 있던 마을에 근육 만드는 거 이써따?”

“그런가요? 운동하면 근육이 생기지요. 운동 도구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직은 여상하고 건조한 말투였다.

옷걸이를 가져오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팔을 양옆으로 내리고 가볍게 말했다.


“아니이. 약 가튼 건데. 가루!”

“가루……요?”

“웅. 야자나무 열매 가루인데, 들어 봐써?”

나는 빙긋 웃으면서 시녀를 바라보았다.

시녀 둘이 서로 눈을 마주 보더니, 눈동자를 급하게 깜빡였다.

한 시녀가 옷걸이를 잡은 손이 살짝 움직이기 시작했다.


‘혹시, 넘어왔나?’

조그마한 심장이 두근거렸다.

***

시엔의 아빠이자 공작가의 첫 번째 적자인 마티어스가 후계 교육에 대한 언질을 들은 후 북쪽 첨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첨탑은 멀리서 볼 때는 흡사 가시 면류관 같은 형태를 띠었다.

저 탑 안에 시엔이 있을 거라 생각하니 무심한 얼굴에 푸른 달 같은 미소가 어렸다.


‘시엔이 살기에는 상태가 나빠. 일을 빠르게 처리하고 옮기는 게 낫겠지.’

첨탑의 문을 지나 시엔이 머무르고 있을 커다란 방에 들어선 그는 이상한 광경을 봤다.


‘잠깐, 이게 무슨 일이지?’

시녀들과 시엔이 있는 첨탑의 커다란 방 안에 들어서려던 마티어스는 멈칫했다.


 


‘저 시녀들이 시엔에게 뭘 하는 거지.’

방 안. 시녀들은 시엔의 호빵 같은 손을 부적처럼 잡고 있었다.

그들은 들뜬 표정이었다. 의아한 일이라 생각하며 마티어스가 주먹을 쥐었다 폈다.


‘자객은 아니다. 벌써 자객이 잠입했을 확률은 없어. 죄다 관조하고 있을 테니까.’

그는 기척을 숨기고 어둠 속으로 조용히 몸을 숨겼다.

시녀 둘과 시엔은 마티어스의 등장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신나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제일 신난 건 시엔이었다. 빼꼼 열린 문틈 사이로 시엔이 근엄하게 소리쳤다.


“자, 따라 하도록!”

“어떤, 뭘 따라 할까요?”

순박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듣던 마티어스는 눈을 지그시 내리깔았다.

북쪽 첨탑의 시녀들은 대부분 기사 출신이었다.

그들은 힘쓰는 일에만 골몰하는 처지였다. 제법 순수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들의 순수한 눈빛은…… 마티어스가 아주 잘 알고 있는 눈이었다.


‘그래, 시엔에게 홀린 눈빛이군.’

그렇지만 시녀들이 벌써 시엔에게 구워삶아졌을 줄은 몰랐다.

그가 모르는 비밀이 있는 건가?

마티어스는 숨을 죽이고 시녀 둘과 시엔의 모습을 조용히 엿보았다. 시엔이 가슴을 펴며 선창했다.


“시엔님은 고기하시다!”

“고, 고기요?”

시녀가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시엔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고기, 아니, 고, 귀!”

그 옆의 다른 시녀가 박수를 한 번 치더니 소리쳤다.


“시엔님은 고귀하시다!”

다른 시녀도 눈을 끔벅이며 소리쳤다.


“시엔 님은 고귀하시다!”

시엔은 꼬마 악마처럼 해맑게 웃으며 꽃받침을 했다. 시엔의 양옆에 나란히 앉아 있던 시녀들이 헤벌쭉 웃는 게 보였다.


‘벌써 시녀들까지 죄다 시엔 편이군. 눈이 달려 있으니 귀여운 건 아는 모양이지.’

마티어스가 그들을 보며 언제쯤 방 안으로 들어갈지를 계산했을 때였다.


“조아. 그럼 내가 야자나무 열매 어디 열려 인는지 알려 주께.”

야자나무 열매? 의아한 말을 들은 그는 발걸음을 멈칫했다. 그 열매는 마티어스가 시엔의 건강을 위해 매일 먹이던 것이다. 그리고-.


“영리하네, 시엔.”

사건의 자초지종을 전부 깨달은 그는 방 안으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시엔의 동글동글한 두 눈이 반짝이는 걸 보고 멈칫하기 전까지는, 그는 바로 방 안에 들어설 생각이었다.


“정말이신가요?”

“감사합니다, 시엔 님!”

“웅. 대신 나랑 놀아 조야 해.”

“그, 그럼요!”

시녀들은 홀린 듯이 시엔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같이 놀 친구부터 구한 것일까.

시엔은 이 저택에 평범하고 귀여운 방식으로 적응해 나가는 듯했다.

역시 제 딸은 못 견디게 사랑스러웠다. 마티어스는 낮게 웃으며 결국 방 안으로 들어섰다.


“시엔.”

그가 성큼 다가가 시엔의 둥그런 이마를 쓰다듬었다.

그 누구도 쓰다듬을 수 없는 시엔의 동글동글한 이마.

시엔을 고귀하다 찬양하는 시녀 중 누구도 시엔을 만질 수 없다.

마음속으로 일말의 뿌듯함을 느낀 그는 시엔에게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시엔. 시녀 언니들이랑 친해졌네?”

“우웅.”

그는 힘주어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아빠랑 같이 잘까?”

“으응! 매일매일 같이 잘래애.”

마티어스는 흡족하게 웃었다.

품에 폭, 안기는 조그마한 몸에서 다섯 살 아기의 포근한 살 냄새가 났다.

그가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할, 영원히 지킬 사랑스러운 딸이었다.

그리고 그런 부녀의 모습을 근육 시녀들은 턱이 빠지라 바라보고 있었다.

마티어스 공자에게 저런 모습이 존재하다니!

그들은 죽어서 지옥에 온 게 분명했다.

마티어스는 시녀들을 향해 싸늘한 시선을 던졌다.

자신의 정체에 대해 함구하라는 의미였다.

***

한편 아빠의 품에 안긴 나는 키득키득 웃었다.


‘되게 순진한 시녀들이잖아!’

시녀 공략은 대성공을 거뒀다.

운이 좋았다.

나와 아빠가 있던 조그마한 마을은 단백질 가루, 프로테인의 원료가 되는 야자나무 열매가 가득한 곳이었다.

우리 집 마당에도 야자나무 열매가 가득했으니 말 다한 셈이다.


‘야자나무 열매가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해 주고 나니까 다들 눈이 반짝반짝해졌었지.’

조금씩 주기로 했더니 덥석 내 손을 잡고 몸을 꼭 껴안았다.

모름지기 인간관계에서는 밀고 당기기가 중요한 법이었다.


‘도대체 이 악역 가문 사람들이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소공자들은 어떤 애들일지 더 생각해야 하는데 아빠 품 안에 있으니까 졸려.’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태어난 대가로 신에게 받은 패널티가 까무룩 흐려지는 정신 틈에 떠올랐다.


‘특별한 과거의 기억을 가진 인간은 세계에 위협이 되는 존재라서, 패널티를 받은 건 어쩔 수 없지.’

나는 다른 아기보다 조그마한 체구와 발육이 덜 된 몸, 깜빡깜빡 진짜 아기가 되는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별수 없는 일이다.

나는 조그마한 골든 햄스터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작게 중얼거렸다.


“아빠, 야자나무 열매 이써?”

“응. 필요하구나.”

“우웅.”

“시엔 자면 바로 가져다줄게.”

아빠가 순수하게 말했다.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빠를 향해 속삭였다.


“응! 주머니에 넣어 조. 그럼 시에니 자께, 아빠아.”

나는 하품을 작게 하고 아빠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달콤한 냄새가 났다. 아빠가 항상 풍기는 냄새였다.

순박한 시골 농부 같은 착한 아빠.

매일매일 내 귀에 자장가를 속삭여 주는 멋진 아빠.

이렇게 착하고 순수한 사람이 무려 악마 같은 미르모드의 공자라니. 아빠가 미르모드에 있는 동안 무척 힘들었겠지, 싶어서 눈시울이 붉어질 뻔했다.


“응. 잘 자.”

“아빠 내일은 모해?”

“그냥-.”

소곤소곤하는 아빠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듣던 나는 눈을 꼭 감았다.


“좋은 꿈 꿔, 시엔.”

그날 밤, 나는 정말로 좋은 꿈을 꿨다.

내 꿈에는 몇 달 전 아빠의 생일날이 나왔다.

자그마한 들꽃을 꺾어다 아빠에게 내밀었을 때 아빠는 환히 웃으며 그 꽃을 품고 다녔다.


‘우리 시엔이 선물로 준 꽃이니까 소중하게 간직하려고.’

아빠는 들꽃이 버석버석하게 시들 때까지, 생일이 한참 지나서까지도 그 꽃을 품고 다녔다. 마을 사람들에게 우리 딸이 준 거라고 소소하게 자랑도 했던 기억이 난다.

환생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사랑스럽고 따뜻한 가정이었다.

꿈결 속에서도 나는 생각했다.

내게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하나뿐인 가족인 아빠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

다음 날. 아빠가 가져다준 야자나무 열매의 효과는 대단했다.


“야자나무 열매 가루를 먹었더니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이불 빨래를 다섯 시간 했는데도 몸이 거뜬하네요.”

“저는 아침에 철봉 운동을 백 번 정도 하고 왔습니다. 이제야 슬슬 힘의 기운이 느껴지는군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물고기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저 언니들, 괴물 아니야?’

무서워, 절대 얕보이지 말아야지. 같은 생각이 뇌리에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나는 입을 열어 빠르게 중얼거렸다.

이제는 정보를 주워야 할 때다.


“있지, 나랑 교육 가치 받는 애들은 어때? 좀, 차캐?”

나쁘면 착하게 갱생시켜 줘야겠거든. 나는 속으로 음흉하게 웃으며 시녀 언니들을 바라보았다.

떠보는 듯한 내 질문에 이미 주머니에 뇌물-야자나무 열매-을 하나씩 받아 넣은 시녀들이 멈칫했다.


“차……착하냐고요?”

“웅!”

마치 들어서는 안 되는 질문이라도 들은 사람들처럼.


“왜 말 안 해조?”

나는 그들을 급히 독촉했다.

이미 야자나무 열매의 포로가 된 시녀들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이내 제법 진솔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으음…… 누구라고 할까요……. 가면을 쓰고 계시고 말수도 적으신 분이라, 친구가 되시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으실 것 같아요.”

시녀 언니들은 이름을 말하는 것을 꺼리는 눈치였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원작 <멜로디아의 생애> 속에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공자 얘기도 있었나?’

“왜? 내가 말 걸면 대지!”

“다가가기 쉽지 않은 분이셔서…….”

“왜?”

“……으음.”

“그게…….”

시녀 둘이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한 걸 본 나는 눈을 깜빡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나랑 같이 교육을 받는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

오늘부터는 저택에 들어가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살짝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색동 꼬까옷을 입고 바깥으로 나왔다.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꿀빵을 닮은 양손엔 시녀 언니들의 손을 꼭 잡고 나서는 길!


“혈족의 교육 사항은 전부 공작부인께서 보고 받으시니 잘하셔야 합니다!”

“잘하실 겁니다, 시엔 님은!”

시녀 언니들은 이상한 방향으로 나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역시 야자나무 열매! 나는 뿌듯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차를 타는 대신 아침 공기를 마시며 열심히 걸었더니 드디어 저택 근방의 정원이 눈에 보였다.


“이 정원만 지나면 바로 교육받으실 방 안에 도착하실 수 있어요.”

“아아, 그래? 정원이 예쁜데!”

“산책하실래요? 마침 시간도 좀 남았거든요.”

“웅! 정원 가자!”

날씨도 좋은데 바로 교육받으러 들어갈 필요는 없겠지.

햇볕도 따뜻하고 바람도 적당히 차가운 날.

눈앞에는 푸른 잎사귀가 살랑거리는 기분 좋은 낮.

시녀 둘의 손을 나란히 잡고 저택의 정원에 들어선 나는 조금 이상한 상황을 목격했다.

‘정원에 왜 이렇게 어린이들이 많지? 나보다 대여섯 살 많아 보이는 열 살 정도의 어린이들인데.’

하나같이 멋진 옷을 빼입고 있는 귀공자, 귀공자녀들이었다. 얼추 다섯 명 정도.

공작 저의 시녀나 시종들은 먼발치에서 그들을 눈여겨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의아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근육 시녀들은 제 팔을 연신 흐뭇하게 바라보며 나를 돌보느라 의문점을 풀어줄 새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내가 선수를 쳐서 말했다.


“저 애들은 모야?”

“아, 가문 가신들의 영애, 영식들이신가 봅니다. 종종 저택으로 견학을 오시거든요.”

“아아.”

나는 원래 분내 나고 귀여운 아기들을 참 좋아했다. 우리 시골에서는 그런 아기들을 볼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저런 애들이랑 괜히 엮이면 아빠한테 나쁜 일이 될 수도 있어.’

이 미르모드 가문의 귀공자녀들이라면 악독하기 짝이 없을 게 분명하니까.

그래서 나는 궁금증을 참고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한 뼘 한 뼘 열심히 걷는 나를 근육 시녀 언니들이 뿌듯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예쁘게 차려입은 옷을 손에 쥐고 행복하게 풀밭을 거닐기 시작했다.

조금씩 천천히 풀 위를 걷는 길.

나는 어느덧 내 귓가를 맴도는 이상한 소문을 듣고 덜컥 멈춰 섰다.


“쟤가 그 유명한 -라던데, 들었어?”

“유리엘에 비하면 못생겼네.”

“그 유명한 악녀의 핏줄이니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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