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아빠가 사실 악역 가문 후계자였다 (1/77)


1화. 아빠가 사실 악역 가문 후계자였다
2022.12.02.


나는 꽃이 잔뜩 핀 집의 흙담 위에 앉아서 아빠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포슬포슬한 밀 빵처럼 하얗고 통통한 두 뺨, 이불처럼 부드러운 양 갈래머리, 동글 납작한 두 다리까지 골고루 햇빛을 받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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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고기 사 온 댔어! 고기!’

휴지 심만큼 짧고 둥그런 팔다리를 연신 흔들면서, 나는 신나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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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소고기 파티!’

담장 위에 앉아 빼꼼 머리만 내밀고 아빠를 기다리는 건 누구에게나 지루한 일이다. 게다가, 내가 암만 환생을 해서 인생 2회차라고 하지만, 환생하면서 신에게 패널티를 받은 탓에 신체적으로는 다른 어린이들보다 훨씬 미숙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하던가.

나에게는 반대였다. 환생한 기억을 갖게 된 대신, 남들보다 더 어리고 미숙한 신체를 타고 태어나고 만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미숙한 신체는 성숙한 정신에도 종종 악영향을 미쳤다. 아주 가끔 어린아이 같은 신체적 나이에 정신까지 동화되고는 했다는 뜻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동그란 손을 움켜쥐며 볼을 부풀리려다 멈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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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이것도 너무 아기 같은 행동이야!’

스스로를 검열하려 노력했지만, 오늘따라 이상하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날이 좋아 뺨에 바람까지 불다 보니, 잠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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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아기가 된 기분이야. 졸리니까 얼른 아빠 왔으면 좋겠다.’

게다가 오늘 같은 날은 아기가 졸음을 견디기에는 너무 어렵기도 하고…….

햇살은 나른하고, 공기는 차갑고, 두 뺨은 발그레하게 달아오르는 그런 날, 나는 담장 위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몇 시간을 그렇게 졸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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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야.”

나는 감았던 눈을 급하게 깜빡이다가 앞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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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동그란 눈을 크게 뜬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창이나 칼을 든 기사들이 우리 집을, 조그마한 흙담을, 그리고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갑옷을 보던 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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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어른 안 계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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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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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여기 사는 아저씨 말이야. 안 계셔?”

여기 사는 아저씨란, 아무래도 우리 아빠를 말하는 것 같은데.

나는 본능적으로 이 사태가 위험함을 직감하고 거짓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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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저씨 일하러 가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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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그 아저씨라는 분이……. 푸른 눈에 흑발이시니? 나이는 서른 정도……. 되시고?”

기사가 친근한 양 말을 붙여 왔다.

그의 눈은 희번덕거리고 있었다. 우리 아빠의 돈을 떼어먹을 때 사기꾼들이 자주 보이는 눈빛이어서 거부감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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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저 사람들, 우리 아빠 찾는 거 같은데. 수상하네?’

우리 아빠로 말할 것 같으면 마을에서 최고로 순수하고 착한…….

호구다.

워낙 마음이 여려서 마을 사람들한테도 기부금이란 명목으로 돈을 내어주고, 여기저기 품삯도 안 받고 일해 주러 다니는 데다, 맨날 허허실실 웃었다.

워낙 물러 내 속까지 터진 만두 찐빵처럼 만드는 아빠를 떠올리니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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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아빠가, 무서운 기사까지 달려올 정도로 큰일에 휩쓸렸나? 남이 저지른 잘못으로 누명을 썼다거나?’

아빠는 똑똑하지만, 워낙 착해서 매번 손해를 보고는 했다. 종종 남의 보증까지 서 줄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리 마당에서 난 토실토실한 알감자 하나를 내밀면서 귀여움으로 그들을 홀려 낸 다음, 보증을 취소시키고는 했었다. 난 이 근방에서 귀엽기로는 소문이 자자한 아이라, 취소해 주실 수 없느냐고 눈을 빛내면 다들 부들부들 라면에 들어간 달걀처럼 풀어져서 내 머리를 쓰다듬고 사라지곤 했었더랬다.

문제는 이 기사들한테도 내 애교가 먹히느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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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들한테도 내 애교가 통하려나?’

나는 한숨을 내쉬느라 쪼그라든 크림빵처럼 쏙 들어간 두 볼을 다시 커다랗게 부풀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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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 그런 사람 여기 없어여.”

그리고 비장의 반짝반짝 눈 굴리기 스킬을 써서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내 시선을 받은 기사의 입매가 한껏 굳어졌다. 실패인가 싶어 눈을 삐뚜름하게 뜨는데, 기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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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런데 너 참 귀엽다.”

역시 내 귀여움은 온 사방 천지에 다 통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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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속으로 흑막다운 미소를 지으며 뻔뻔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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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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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 혹시 손 한 번만 잡…….”

바보처럼 입을 벌리고 손을 느리게 내미는 기사 아저씨를 보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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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대.”

기사가 급하게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여러 번 젓더니, 이내 제 곁에 선 다른 남자를 툭툭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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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린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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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여기 계시다는 보고를 듣고 왔는데, 큰일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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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지금은 철수해야 하나? 내일 다시 올까?”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 척 공연히 발장구를 치면서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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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다행히 우리 아빠는 용의 선상에서 제외인가.’

웅성웅성 떠드는 기사들은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지!

나는 입술을 삐죽이며 눈에 반짝반짝 총기를 담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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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아빠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캐물어 보고, 큰일이면 야반도주를 하자고 해야지, 안 되겠어.’

삼십육계 줄행랑이 하나의 법칙이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위험한 놈들이 생긴다면, 야반도주가 답인 법!

그런데 내가 입술을 앙다물고 나와 아빠의 미래를 생각하던 바로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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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엔!”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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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우리 바보 아빠 목소리 아니야? 왜 이렇게 빨리 왔지? 저 기사들 얼른 보내야 하는데!’

나는 눈을 부릅뜨고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팽, 돌렸다. 내 고개가 돌아가는 것을 본 기사들이 덩달아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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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엔! 고기 사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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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읍. 쉿!”

나는 급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저리 가라고 훠이훠이, 손을 흔드는 건 덤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내 긴급 구조 사인도 무시한 채 눈매를 가늘게 뜨고 있었다. 그러더니 척척, 빠르게 달려왔다.

문제는 아빠가 발걸음 하나는 소드마스터만큼이나 빠르다는 거였다.

아빠는 순하디순하지만 신체 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워낙 농사일에 열심인 탓에, 불끈불끈한 대흉근을 지녔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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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다가오는 거, 기사들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여!’

기사들을 도발하는 것은 좋지 않은데, 큰일이었다.

지난번에 내가 위협적인 몬스터 닭에 물려 갈 뻔했을 때 아빠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내가 위험에 처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빠의 순진무구한 눈동자에 결연한 빛이 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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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엄청 빨라!’

기사들이 밀집한 위험한 순간, 까만 봉지에 고기를 잔뜩 담고 열심히 달려오고 있는 아빠.

나를 지켜 주려는 것처럼 잽싸게 달려오는, 세상에서 제일 착한 하나뿐인 내 편, 우리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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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누구지?”

아빠가 눈매를 가늘게 뜨고서는 엄격 근엄 진지하게 물었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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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왔어, 바보 아빠!’

저 기사들은 아주아주 무서운 놈들일 수도 있었다. 내 귀여움으로 대충 물리치려고 했는데, 이렇게 빨리 오면 내가 아빠를 구해 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눈앞 기사들을 발로 뻥 차 주려고 했던, 바로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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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미르모드 공자, 마티어스 미르모드 님을 뵙습니다. 이제 유희는 마치고 돌아오시라는 전언입니다.”

기사들을 차 버리려던 내 발은 중간에서 멈추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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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뭐라고요? 미르모드요?’

미르모드 가문.

이 제국의 암적인 존재로, 온갖 사기, 불법, 악행에 연루된 가문이었다.

온갖 범죄를 토대로 성장해 온 곳으로, 그곳의 일원 하나하나가 죄다 마법이나 검술에 특화되어 있으며, 아무렇지 않게 살인을 포함한 범죄를 저지른다고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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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들 눈이 침침해서 착각한 게 틀림없어. 호랑이보다 무서운 미르모드라니.’

나는 통통한 양 주먹을 불끈 쥐고 고개를 가로저으려 했다. 아니라고. 우리 아빠는 ‘미르모드’의 ‘미’자랑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그러니까 여기서 나가라고.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아빠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근엄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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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를 마치고 돌아오라고?”

그 순간, 나의 새하얀 뺨에 발간 홍조가 어렸다.

저렇게 냉철하게 반문하니까 꼭 아빠가 진짜 미르모드 공자 같이 느껴졌다. 나는 당황한 채로 눈을 깜빡거렸다.

***

……놀랍게도 우리 아빠가 ‘그’ 미르모드 가문의 공자가 맞는 모양이다.

기사들이 다녀간 후부터 나와 아빠의 소담한 시골 흙집은 버석한 흙이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나와 아빠는 이상하고 위험한 미르모드 공작 성에 끌려와 버렸다.

이 공작 성은 매우 음산하고 스산해 보였다.

내 조그만 머리는 아빠가 사실 순박한 시골 농사꾼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도 버거웠다.

그러니까 정리를 해 보자면 말이야.

사실 우리 아빠는 미르모드 가문의 첫 번째 공자였다고 했다. 말할 수 없는 이유로 인해 공작령에서 추방당했지만, 드디어 추방령이 풀렸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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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착한 우리 아빠가 미르모드 가문 사람이라고? 미르모드 가문이면 소설 속 흑막 가문이잖아. 이건 진짜 말도 안 돼.’

이곳은 내가 반쯤 읽은 소설, <멜로디아의 생애> 안이었다. 황태자와 성녀 멜로디아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소설이지만, 주인공이 황태자인 만큼 정치적 암투 이야기도 자주 등장하고는 했다.

그 소설 속에서 강한 존재감을 가진 악역은 단연 황태자의 정적인 ‘미르모드 가문’이었다. 사기, 악행, 폭력, 도박 등 온갖 위험한 수는 다 쓰는 곳. 모든 사람이 꺼리고 경외하는 전형적인 악당 가문…….

게다가 미르모드 가문에서는 끊임없이 죽고 죽이는 내전이 벌어지곤 했다. 후계자가 되기 위해, 공작이 되기 위해, 위험하지만 강력한 마도구와 성물 등을 차지하기 위해서 그들은 서로를 죽였다.

매일 매일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곳. 그리고 그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곳.

결국, 황태자에 의해 몰살을 맞이하고 마는 악역 가문.

문제는 이거다.

소설 속에 우리 아빠의 이름인 ‘마티어스’는 등장하지도 않았다는 거.

그 말인즉슨, 우리 아빠는 등장도 못 하고 끔살당한 엑스트라라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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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우리 아빠처럼 착한 사람이면 악역 가문이랑 상성이 안 맞지. 그런데 왜 불려온 거지……?’

이렇게 안 어울리니 아빠가 알아서 시골로 낙향했을 수도 있었다. 우리 아빠는 후계자가 될 성미가 아니니까 말이다. 후계 전쟁을 할 수 있을 만큼 독한 사람도 아니고, 상대방이 후계자가 되고 싶다고 하면 선뜻 물러나며 응원까지 해 줄 위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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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후환을 없애려고 아빠를 끌고 온 건가?’

아빠와 내가 함께 있던 소담한 흙담집은 벌써 허물어졌다.

우리 부녀는 이제 갈 곳이 없는 상태로 이리저리 떠도는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 상황 속에서 만약 악당들이 우리 아빠를 괴롭히려 든다면…….

머릿속에 비상 경고등이 켜졌다.

원작에서처럼, 우리 같이 순진한 사람들은 넋 놓고 있다가 악당들의 밥이 될 게 뻔하지 않나.

나는 새하얀 두 뺨이 창백하게 질릴 정도로 고민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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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우리 아빠, 살아 나갈 수는 있는 걸까?’

온갖 고민이 내 머릿속에 파고들어 밥도 잘 먹지 못하고 잠도 잘 자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그런 내 상태를 기민하게 눈치챈 건 바로 아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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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 무슨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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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나는 한 번 더 큰 한숨을 내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악역 가문 사람들이 회의장으로 쓰는 장소 같았는데, 상당히 음침하고 무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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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여기저기에 해골도 나뒹구는 것 같은데. 내 착각이겠지. 분명 착각일 거야.’

해골 무늬가 그려진 무서운 의자에 아무렇지 않게 앉은 아빠는 나를 무릎에 앉히고 품에 끌어안아 내 어깨를 토닥여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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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우리 딸. 많이 피곤했지? 얼른 얘기만 나누고 코 자러 가자.”

아빠가 헤실헤실 바보처럼 웃는 소리를 내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지금 생존이 문젠데. 이 위험한 가문에 입성해 놓고도 아빠는 해맑게 허허실실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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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말도 안 돼!’

갑자기 바보 아빠와 둘이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다니, 분하고 비통했다. 오늘은 가재 잡고 내일은 돼지고기 해 먹을 생각에 들떠 있기만 하려 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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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지.’

나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나를 무릎 위에 앉힌 아빠의 팔을 콩콩 손으로 때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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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자나,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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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아빠가 포근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내 양 갈래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양 갈래머리도 오늘 아침에 아빠가 예쁘게 땋아 준 건데, 이 가문에 들어오느라 살짝 풀어져서 마음이 상했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아빠의 판판한 상체에 자그마한 몸을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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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지 마. 내가 지켜 주께, 아빠!”

이곳은 독이 가득 퍼진 것만 같은 음험한 지대였다. 악역들이 언제 출몰해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다.

포동포동, 천하장사 소시지처럼 살이 오른 양팔이 사시나무 떨리듯 달달 떨리기 시작했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허공을 쨍하게 노려보았다.

저 휘장을 걷고, 곧 악역 가문 사람이 등장하겠지?

그럼 내가 아빠를 지켜 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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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섭고 위험한 괴물 악당들, 저리 비켜라! 우리 아빠는 내가 지킨다!’

한참 파이팅을 다지던 그때, 아빠가 나를 안은 손에 힘을 움켜쥐며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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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안 지켜 줘도 돼, 시엔.”

목소리에 자잘한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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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지켜 줄 거야. 우리 딸.”

나를 감싼, 두툼한 근육이 가득한 팔과 어디서 왔는지 모를 생채기가 가득한 손이 꽤 다부졌지만 그것도 아빠의 물렁한 성격을 생각하면 별로 세 보이지 않았다. 내 말랑 통통한 팔이 더 믿음직스러울 것 같은데?

나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우리 바보 아빠와 나의 앞날이 정말이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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