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메가콥이 될 준비
#153화.
[ 메가콥 될 준비만 하면 되겠군. ]
[ 다만, 이쪽 공무원들은 죄다 놈팽이라 법인 허가 나오려면 몇 달은 걸릴 거다. 그때까지 구해온 돈줄 잘 잡고 있어. 칩 제작에 쭉쭉 빨아 먹히는 크레딧을 보면 억소리가 절로 날 테니까. ]
딜런이 그 말을 남기고 사라진 뒤 사흘이 지났다.
그런데 오늘.
“······레반, 허가 났어.”
레나가 새벽녘에 수련하던 나를 찾아와 말했다. 레나는 자다가 소식을 받고 잠에서 깬 건지, 졸린 얼굴로 연신 눈을 비볐다.
마나회로를 다스리던 내가 되물었다.
“무슨 허가?”
“반 컴퍼니 말이야. 법인 설립 허가 떨어졌대.”
“그럴 리가. 신청한지 이제 며칠 안 됐을 텐데.”
“아무래도 레반의 유명세 덕분인 것 같아. 담당부서 공무원이 보고를 올렸겠지. 보통 적합 심사에만 못해도 몇 달은 보내야 하는데······.”
놀랍게도 정식법인 설립 허가가 순식간에 떨어졌다.
보통 몇 달은 걸려야 할 절차가 그것도 단 사흘 만에.
오늘이 바로 ‘반 컴퍼니’ 창립 1일 차가 되는 날인 것이다.
의외였다.
웨스트 정크타운 같은 곳에서 흑도문파나 갱단을 운영하는 것과 연방이 공인한 정식 법인을 설립하는 것은 다르다.
분명 굉장히 까다로운 절차들이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며칠 걸리지도 않아서 벼락처럼 설립 허가가 떨어졌다.
[ 레반······님이시죠? 이번에 로키 시티에서 활약하신······예, 일단 알겠습니다. 알겠고요. 발급서들 몽땅 챙겨주시고, 제가 빠른 시일 내로······. ]
사흘 전, 대면한 담당 공무원이 워낙에 설렁설렁 일을 하기에 필시 오래 걸릴 것이라 여겼다.
공무원은 언제나 안정적인 걸 선호하는 법.
라그나로크는 도시 기반과 플랫폼을 이제야 깔아가는 단계. 그러니 이처럼 불확실한 동네로 파견을 떠나오고 싶어하는 공무원은 없었을 거다.
때문에 이 라그나로크 시티로 끌려온 공무원들은, 대부분 어디 한군데 하자가 있는 자들이었다.
모종의 이유로 윗선에 찍혔다든가, 뇌물이나 상납을 받아먹다 선을 넘었다든가······파면보다는 파견이 나으니 어쩔 수 없이 라그나로크 시티로 밀려온 자들.
일거리는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도시인데, 하자있는 놈들이나 한탕 치려는 놈들만 왔으니, 연방 정부에서 쪼아댄다고 해도 업무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리가 없다.
그렇기에 다섯 번째 회로를 갈고 닦으며 마법 수련을 시작한 참이다. 그런데 이리 빠르게 처리해 주다니.
레나가 능력이 좋다지만, 필시 윗선인 연방정부쪽의 강력한 개입이 있었으리라. 그놈의 지겨운 ‘영웅’ 타이틀에서 아직도 우려낼 소스가 더 남았나보다.
아무튼.
라그나로크에 본사를 둔 신생기업 반 컴퍼니. 만약 증권시장에 상장하게 된다면, 현재의 기업 현황은 대강 이렇게 보이겠지.
[ 기업명 ]
반 컴퍼니
[ CEO ] : 레반
[ 본사 위치 ] : 라그나로크 시티
[ 대표 업종 ] : ???
[ 시가 총액 ] : ???
[ 총액 순위 ] : ???
[ 연 매출액 ] : ???
[ 총 직원수 ] : 30명(추정)
그렇게 생각하니, 참으로 보잘것없군.
이윽고.
나는 소식을 전한 레나와 함께 바깥으로 나왔다.
캉—! 캉—!
나오자마자 사방으로 울려대는 공사판의 쨍한 소음.
“레반, 이거 해!”
레나는 길거리 노점으로 달려가 털 달린 귀마개를 샀다. 히히덕거리던 레나는 내게도 귀마개 하나를 건네주었다.
우리는 이내 중심가로 걸음을 옮겼고, 경쟁하며 드높이 솟구치고 있는 빌딩들 사이에 덩그러니 방치되어있는 부지에 이르렀다.
이곳은 반 컴퍼니의 본사가 건설될 내 소유의 땅.
레나의 천진난만했던 표정이 진중해졌다. 레나는 전문가의 눈으로 주변을 꼼꼼히 둘러보며 말했다.
“직접 보니까 확실히 좋아. 예상외로 더 좋은 입지인 것 같아. 역시 연방정부야. 시티의 중심인 건 물론이고 필지도 반듯하고 넓어. 시청과도 가깝고 삼면이 대로에 정면으로는 탁 트인 공원이랑 인공개천이 들어올 예정······.”
라그나로크의 땅값은 지금도 천정부지로 널뛰고 있다.
어느 날에는, 당장 이 땅을 팔아치우면 발두르 중심업무지구의 초대형 빌딩과도 맞바꿀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그리할 생각은 없다.
발두르 시티에 딱히 좋았던 기억이 없기에.
‘칩 제작에 더해서 저런 초대형 빌딩까지 올리자면, 이제부터 크레딧 들어갈 곳 천지겠군.’
부지 근처를 둘러보니 새삼 실감이 났다.
훌륭한 돈줄인 상선에서 앞으로 뜯어먹을 크레딧과 딜런의 자금을 더해도, 그 천문학적인 크레딧을 단기간에 메꿀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그리 생각하던 때였다.
왜애애앵—
털털대는 바이크를 타고 헬멧을 쓴 놈이 웬 명함을 길거리에 던지며 지나갔다. 사실 던진다는 것은 좋게 말해준 것이고, 거의 폭탄투하를 하고 지나갔다.
발두르 중심업무지구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풍경.
“응?”
수많은 명함은 팔랑이며 레나의 발치에 떨어졌다. 집어 들어보면 십중팔구는 사채꾼들의 사무실, 혹은 예쁜 인간 아가씨를 구하거나 보유하고 있다는 홍보 전단과 명함이었다.
시티 전체가 공사판이라 하루 벌어 하루 쓰는 건설 노동자들이 온 도시에 깔려 있으니 술집과 도박장, 매춘부, 돈장사꾼들은 기본적으로 따라오기 마련.
불법과 편법을 제집 문지방처럼 넘나드는 영세금융업자들과 유흥업자들이 몰려들 것은 당연했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저 먼 도시에서 빠르게 달려온 자들은, 부재중인 공권력의 틈을 비집고 법까지도 서둘러 어겨버린다.
이런 놈들도 성공과 일신의 영달을 위해 라그나로크까지 몰려왔겠지. 사는 게 참 쉽지 않은 듯하여, 나는 주웠던 명함을 바닥에 내던졌다.
그런데.
“······.”
다시금 둘러보면 주변에 공사장이 굉장히 많다.
콘크리트와 드럼통처럼 상징적인 기물들도 많으니, 흑도 무법자들이 활동하기에 아주 적합한 환경 아니겠는가.
방금처럼 대놓고 전단지를 뿌리는 바이크하나 잡지 못할 만큼, 라그나로크에는 공권력이 아직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로키 시티가 시체들의 손아귀에 떨어지는 바람에 연방군이 서둘러 몰려들긴 했지만 그뿐.
장벽 보수 작업과 건축 공사등 소음과 분진을 일으키는 일이 많아 장벽 밖 시체들의 이목을 끌고있다. 그렇기에 연방군은 장벽 밖 경계하기에도 급급한 듯했다. 귀를 기울이면 소음에 섞인 군의 포격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온다.
나는 문득, 바닥에 던졌던 명함을 다시 집어 올렸다.
【 당 일 대 출 / 기한 넉넉한 이자 50%(日) 】
* * *
사채꾼 로블락스.
“돈 필요한 놈들이 넘쳐나는군. 돈보다 문이 먼저 닳겠어.”
그는 누구보다 먼저 라그나로크에 자리를 잡은 사채꾼이다.
원래 로키 시티에서 소소하게 돈놀이를 하던 그는, 라그나로크가 수복되어 스테이션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모든 자산을 긁어모아 이곳으로 왔다.
모험을 해볼 가치가 있었다.
오랜기간 방치되었던 작은 사무실 하나를 임대했다.
10평쯤 되는 3층 사무실 안은 곰팡이와 녹으로 아주 엉망이었다. 대충 쓰레기와 파편들을 치우고 바닥재와 벽지만 덧발랐다. 이깟 사무실이야 나중에 돈을 불려 멀쩡한 곳으로 옮기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로블락스의 선택은 완벽히 들어맞았다.
이제는 이 10평 남짓한 사무실에 크레딧을 빌리기 위해 들락날락 거리는 인간이 하루에 수십 명이다. 한심한 도박쟁이부터 옆 건물에 사는 매춘부, 중소규모 건설사 사장까지 두루 있었다.
로블락스는 비록 지하세계에서 돈놀이나 하는 사채꾼이지만, 갈고닦은 경험이 상당해 업계에서는 꽤 통찰력이 있는 편이다.
전 세계에서, 전 세계라고 말해봐야 연방 7개 도시 정도지만, 라그나로크 시티로 연방의 주민들이 이주해올 것을 꿰뚫어 보고 먼저 움직였다.
이 도시에서 돈이 부족하면 어디서 빌리겠나. 지사 건물도 제대로 없는 은행? 증권사? 애당초 그런 금융가에서 얼마든 대출받을 능력이 되는 자들은 사채꾼의 타깃이 아니다.
주제도 모르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놈들이나, 급전조차 빌릴 지인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놈들이야말로 사채꾼의 주요 고객층이다.
“다른 시티들은 넷 사채 시장이 활성화 되어있거든. 그런데 여기는 이제야 복구가 되고있는 도시야. 시티 넷도 따로 없어. 뭐 돈 빌리려면······직접 와야 한다는 얘기지.”
— 로블락스! 이봐 내가 지금 진짜로 급한데, 잠시 얘기좀 나눌 수 있겠나?
바로 이렇게 말이다.
로블락스가 사람 좋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근처에서 전당포 하시는 제롬 사장님 아닙니까?”
— 급하게 크레딧이 조금 필요하게 됐어. 5만 아니, 그냥 여유롭게 7만으로 하자고.
“일일 이자 20%. 감당되시겠습니까?”
일일 이자 20퍼센트.
일주일이면 원금의 두 배를 넘어가고, 한 달이면 원금의 다섯 배 이상이 이자로 붙는다.
정해진 금리따위는 당연히 준수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자로 불어난 원금에 이자를 다시 붙이지는 않으니, 로블락스는 사채꾼치고 매우 양심적인 편이었다.
게다가 몇 달 전부터, 돈을 심하게 굴리던 놈들이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있다. 귀가 밝고 조심성이 많은 로블락스는 이자율을 깔끔하게 동결해버린지 오래였다.
딸칵. 딸칵.
“급해 보이시는데. 되도록 사채는 조심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는 마공학 리볼버에 탄알을 채워넣으며 말했다. 제롬 사장은 아마 쓸만한 물건이 창구로 들어왔는데 내어줄 자본금이 부족한 모양이다. 총을 보았는데도 욕심으로 눈이 시뻘게져 있다. 하지 말라면 더 하는게 사람 심리다.
전당포 사장 제롬은, 역시나 욕심을 떨치지 못하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 그깟 7만 크레딧 정도면 아무런 문제도 안 돼! 완전히 괜찮아. 나 몰라? 이자는 물건만 받으면 한방에 갚아줄 테니까 걱정 말라고.
“일단 5만 크레딧만 가져가쇼.”
— 크윽.
결국 전당포 사장은 이자 1만 크레딧을 제외한 4만 크레딧을 들고 전당포로 돌아갔다. 발걸음이 바빠보였다. 아마 이 사무실을 다시 찾을 때는 바쁘게 걸어오지 못하겠지.
드르륵.
로블락스는 사무실에서 가장 값비싼 비품인 가죽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는 재미있다는 듯 팔을 뻗어 머리를 받쳤다.
“전당포 한다는 놈이 5만 크레딧도 없어서 사채를 끌어다 써? 보나마나 밑천 다 털렸군.”
“가서 회수해 올까요?”
다 찢어진 가죽쇼파에 앉아 전자담배만 뻑뻑 피우던 대머리 사내가 흉흉한 기색으로 물었다. 당장이라도 달려나갈 듯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로블락스는 괜찮다는 듯 휘휘 고개를 저었다.
“됐다. 묵혀뒀다가 전당포 닦을때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구경이나 해보자.”
“예.”
전당포 사장마저 내줄 현금이 부족해 사채를 꿔갈 정도로, 밑바닥 시장에 돈이 활발하게 돌고있다.
이런 대 활황기에 먼저 자리를 잡았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쿵- 쿵- 쿵-
“또 오는군. 돈 필요한 놈이.”
로블락스는 층계를 오르는 다음 고객의 발소리가 들리자 리볼버에서 탄알을 다시 빼고, 천천히 밀어넣는 작업을 반복했다.
— 크레딧 좀 꾸러 왔다.
“?”
그런데, 이번 고객은 다른 놈들과 어딘가 달랐다.
돈을 빌리러 온 주제에 당당한 놈들은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다짜고짜 자리에 궁둥이부터 붙이는 고객은 거의 없다.
— 최대 얼마까지 빌려줄 수 있냐?
놈은 아주 더럽게 못생긴 양아치였다.
로블락스의 사무실은 도박꾼은 받아도, 저런 앞뒤없는 양아치는 고객으로 받지 않는다. 보나마나 어디 연고도 없을 놈이라, 펑펑 써버리고 목숨을 끊으면 아주 귀찮아진다.
끄덕.
로블락스는 저 뒤쪽을 향해 가볍게 눈짓했다.
그의 수하중에 유독 송곳을 잘 쓰는 놈이 있었다. 웬만한 무인도 송곳 하나로만 찔러 죽일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
이번에도 비스듬히 세운 송곳날이, 멋모르는 양아치의 목덜미와 겨드랑이를 노렸다.
푹! 푹!
송곳이 놈의 목덜미를 정확히 쑤시고 들어갔다.
헌데.
놈은 송곳에 깊이 찔렸는데도, 일말의 미동조차 없이 평온했다. 마치 이런 공격따위는 간지럽지도 않다는 듯이.
— 돈 꾸러 왔다니까 새꺄.
“······.”
로블락스는 경험도 많고 통찰력이 굉장히 좋은 사채꾼이었다. 그렇기에 고심은 잠깐이었다.
타앙—!
로블락스는 눈앞의 양아치 고객이 아니라, 송곳을 쑤셔넣은 수하를 즉시 쏴죽였다.
머리가 깨지며 사방으로 붉은 피가 퍽 튀었다. 그러자 거만하게 앉아있던 양아치놈의 눈이 신경질적으로 휘더니, 칠흑같이 검어졌다.
로블락스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총을 내려놓고 물었다.
“죄송합니다. 저놈이 새로 들어온 놈이라.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을까요?”
— 야.
“예.”
— 아니, 너희도 내가 좆밥같아 보이냐? 씨벌 왜 이바닥 새끼들은 날 못 찔러서 안달인지 모르겠네. 내가 뭐 아무한테나 처맞고 다니는 놈으로 보여?
“······.”
솔직한 말로 좆밥 양아치같이 생긴 놈이 맞았다.
그러나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사채꾼으로 온갖 밑바닥을 전전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로블락스였으나, 저 양아치의 깊은 곳에서는 여태껏 만나보았던 자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기백이 느껴졌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대단한 실력자다.
저런 괴물 앞에서는 몸을 바짝 숙여야 한다.
“실례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말씀 해주십시오.”
로블락스가 그리 정중하게 말하자, 양아치는 익숙한 명함을 꺼내 들이밀었다.
— 이 명함, 네 사무실에서 뿌린 거냐?
“······맞습니다. 문제가 있습니까?”
툭!
그의 뇌가 쌩쌩하게 돌아가지 않는 사이, 양아치는 테이블에 1천 크레딧짜리 현물 지폐를 휙 던졌다.
로블락스가 해명을 요구하듯 눈앞의 양아치를 바라보자.
— 이거 담보로 좀 빌리자. 네가 가진 크레딧 전부.
“······.”
1천 크레딧을 담보로 잡고, 최소 수백만 크레딧을 뜯어가겠다고? 아무리 상도덕 없고 강자존인 사채판이라지만, 이것은 해도 너무 했다고 생각한 그는 한껏 머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만, 이런 업계에서 크레딧을 회수하라는 말씀은 그냥 나가 죽으라는······.”
— 한 두 달 내내 이지랄만 했더니 정말 화가 나.
“······.”
— 아힘사는 가만히 있고 형님은 틀어박혀서 수련만 하시는데, 왜 나만 좆빠지게 일을 해야 하지? 새끼들이 나만보면 만만한지 칼로 존나 찔러. 이거 이상하지 않냐? 나 이거 왜 하고있지? 응?
지닌 힘과 위압감에 비해 너무도 등신같은 말투였다.
거기다 더해서, 이상한 자격지심같은 것도 있어 보인다.
저렇게나 강력한 실력자가 어찌 저리 비틀려 있다는 말인가.
대가리에 칩을 잘못 박기라도 한 건가?
‘역시 말은 안 통할 것 같—’
그순간.
콰작!
— 왜 나만 이런 일 해야돼. 나도 너희같이 우중충한 새끼들 말고, 기왕이면 섹스토이 매장에 삥 뜯으러 가고 싶었다고! 그 두 새끼처럼 접대도 받고!!! 으아아악! 으으아악!!!
“······.”
콰작. 콰직.
괴성을 지르던 양아치는 갑자기 피가 줄줄 흐르는 시신의 다리를 잡아 씹어먹었다. 방금 전 목덜미에 송곳을 찔러넣었다가 머리에 구멍이 뚫려 죽은 놈이었다.
식인종도 아니고 시신을 저렇게 씹어 먹을 수가 있는 것인가?
······도저히 상식선에서 판단이 불가능한 사이코.
로블락스가 살면서 본 이들 중에서도 과히 압도적이었다.
살아남고 싶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무릎 꿇을 수밖에.
“하, 하루 내로 융통할 수 있는 자금을 끌어모아 보겠습니다. 아니. 반나절 내로 전부 쪼아서 회수해보겠습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반 컴퍼니 법인 설립 시점으로부터, 석 달가량이 지났다.
나는 석 달간의 수련을 통해 마나회로를 한 개 더 엮어 6위계, 결국 8레벨의 마법사의 경지에 올랐다. 8레벨의 극점 이상을 달성한 무공과 마법이 이제야 약간이나마 비슷한 궤도에 오른 것이다.
또한, 지난 몇 달간 딜런의 보좌 둘과 루돌프놈을 굴려 파릇파릇하게 피어나던 지하 사채시장을 일통했다.
그 셋은 그물로 바닥을 훑듯이 무분별하게 들어선 사무실을 깨끗하게 털어버렸고, 덕분에 내 주머니로도 쏠쏠한 자금이 들어왔다.
그럼에도 자금은 아직 부족하기만 했다.
하지만, 해결법은 생각보다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 그런데 카산드라 교수님은 왜 석 달이 넘도록 발할라 시티로 안돌아 가십니까? 아카데미 방학이 이렇게나 깁니까? ]
내게 현자 아스파로프의 지팡이를 쥐어주고, 레나와 루벤카의 후견인을 자처하며 저택을 빌려주었던 론 카산드라 교수였다.
[ 아, 레반은 못 들었나요? 나는 아카데미 교수직을 내려놓고 여기서 일하기로 했어요. 옆에서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답니다. ]
[ 그렇습니까? 헌데 그 아이가 누굽니까? ]
[ ···후훗. ]
카산드라 교수는 저명한 마법 교수이자 굉장한 재력가다. 그러나 카산드라는 이제 명예를 얻기보다는 자신의 ‘취미 생활’ 에 품을 더 들일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취미 생활의 정체를, 어젯밤 레나를 통해 들었다.
수련하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음하는 것이라던가.
[ 그런데 듣자 하니, 크레딧을 구하고 있다면서요? 라그나로크 시티 지하시장이 그렇게나 시끄럽던데? ]
카산드라 교수는 묻지도 않았는데 천천히 다가오며 눈을 빛냈다. 광적인 집착과 끈적한 관심이 깃들어있는 눈빛이었으며—
실로, 부호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재력가의 눈빛이었다.
[ 크레딧, 얼마나 더 필요해요? ]
[ 좀, 많이 필요합니다. ]
나는 그렇게, 카산드라 교수의 지원까지 더해 메모리칩 초기 계약에 필요한 자본을 석 달만에 모두 구할 수 있었고······
딸칵!
지금 내 앞에서.
제 몸뚱이만한 서류 가방을 들고온 웬 노인네가 입을 열었다.
— 저희 ‘글로톤 콥’ 과 계약을 선택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무공? 마법? 고유한 기술? 어떤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까? 말씀만 하시면 무슨 메모리칩이든 곧장 제작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