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퓨전펑크의 전생자-152화 (152/157)

#152화. 금의환향

#152화. 

“자유! 일신의 독립!” 

종후표는 이번 일을 대가로 자유를 원했다. 

나는 당연하게도 들은 체조차 해주지 않았다. 

허나 종후표는 기다렸다는 듯, 합의점이라도 찾아보자며 부리를 열었다. 

“그렇다면 좋다. 많이도 바라지 않을 테니 사흘에 한 번 정도는 내 육신을 쓰게 해다오! 내내 갇혀만 있으니 내가 살아는 있는 건지, 아니면 죽어있는 건지 도통 실감이 안 난다.” 

“싫다.” 

“이만큼 노력해 주었는데 단칼에 거절하니 매우 섭섭하군. 사흘마다 한 번조차 허락하지 않는다면 내 크게 양보하여······.” 

사흘마다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달에 한 번, 분기에 한 번. 계속 그렇게 질척대며 협상을 시도하던 종후표는 결국, 반년에 한 번 진주언가 바깥으로 외출시켜 주겠다는 약조를 내게서 얻어냈다. 

“반 년에 한번···충분하다. 그만하면 충분해!” 

종후표는 그 작은 성과가 굉장히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늙은 너구리 같은 정치계 인사들을 고작 혓바닥 하나로 다 치워버린 놈이, 한낱 외출 따위에 저렇게나 좋아할 수가 있나 싶었다. 

하기야, 육신을 봉해두었는데 즐거울 리야 없겠지. 

“큭, 으하하!” 

헌데,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나 좋아할 정도인가? 

나는 그간 내가 너무했나 싶어 잠시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저 능력 있는 놈이 고작해야 외출 따위에 저렇게 좋아하며 의욕을 다지는데, 더 못해줄 게 무엇인가. 

좋다. 

반년쯤 뒤에 언평 선생에게 부탁하자. 

가능한 한, 크고 넓은 ‘진법’ 을 세워달라고. 

그 드넓은 진법 안에서 안전하게, 또 마음껏 뛰어놀게 하면 되겠군. 

그것도······외출은 외출이니까. 

— 으하하하하! 

종후표의 웃음소리가 오늘따라 유독 크게 울려퍼졌다. 

* * * 

세상에 은원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은혜. 

누군가 내게 하해와 같은 은혜를 베풀어 준다면, 어지간한 사마외도나 쳐죽일 금수가 아닌 이상 언젠가는 갚을 생각이 난다. 만약 갚지 못하더라도 마음 한켠에 죽기 전까지 품고 살아간다. 

원한. 

누군가 나를 해치려 들거나 어떤 놈 때문에 큰 손해를 보면, 그보다 더한 짓으로 갚아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 어떤 방식으로든 마음 한켠에 응어리져 있다가 결국에는 복수를 부르는 씨앗이 된다. 

세상에 오래 살고 싶다면 저 둘 중 원한을 주목해야 한다. 

은혜는 베풀지 않거나 갚지 않더라도 살아가는데 큰 지장은 없으나, 원한은 다르다. 

한 번 원한을 만들어 버리면 그것이 당장 돌아오지 않아도, 언젠가는 내 목에 칼을 겨누지 않을까 약간의 근심걱정을 하며 살아야 하니. 

물론 이렇게 강자존이나 다름없는 세상이라면, 대개 그 원한은 끝까지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코끼리가 개미를 좀 짓밟아 죽인다고 해서 별일이 생기지는 않는 것처럼. 

하지만, 타인의 가슴에 원한을 심으려 할 때는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 

예외의 경우는 언제나 있으니 말이다. 

이를테면, 미세한 원한이라도 반드시 가슴 한켠에 품어두는 사내가 감히 쳐다도 볼 수 없을 만큼의 성취를 이루어 고향으로 금의환향하는 경우가 있다. 

나처럼. 

“공천립 이사님.” 

“예.” 

“상사이신 당녹운 지부장께 꼬치꼬치 캐물어 가며 여쭈었더니, 고독의 해독제는 정말로 당가 본문에만 있다더군요. 그것도 직계가 아니면 건드리기 쉽지 않다고.” 

“······예. 맞습니다.” 

“표정이 안 좋네요. 설마 내가 안 물어볼 줄 알았어요?”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혹시나 대가리를 굴려 거짓을 고했다면 굉장히 볼만했을 겁니다.” 

“······.” 

중원무림 사파놈들의 생리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혈기 왕성하던 시절 객잔에서 뺨 좀 올려붙였던 점소이나, 수도 없이 겁탈한 아녀자 중 하나가 대뜸 압도적인 고수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면? 

심지어, 붙어있는 별호가 악살검귀나 만독수라 같은 것이면. 

거기에 그치지 않고 기억력까지 굉장히 좋은 편이라면··· 

아마 목숨을 붙여만 주어도 크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시한부 목숨이 되어도, 앞에서는 고개를 조아려야만 한다. 

나중에 객잔에서 술이나 마시면서 -허허, 그때 내가 하필 누구와 붙었는데 열심히 싸우다가 결국 이 팔과 눈을 잃고 말았지. 진정 대단한 승부였다고! 

저 정도로 포장해서 끝날 수 있으면 딱 좋은 정도. 

사실, 어지간해선 그냥 재수가 없었다 생각하고 넘기는 게 정신건강과 신상에 두루 좋다. 

나는 씁쓸하게 웃는 공천립을 격려해주었다. 

“그래도 공 이사님. 분명 고심을 할 만도 했는데, 선택을 참 잘하셨습니다. 당씨도 아닌데 이사의 자리까지 오른 것이, 확실히 딱지치기로 딴 건 아닌가 봅니다.” 

“······.” 

“공 이사님. 대답은 하셔야죠. 당가처럼 싹 쳐죽이지 않고 인권을 존중해드리고 있는데, 혹시 제 아량이 헤퍼보이세요?” 

“!!!” 

내가 조심스레 묻자 공천립이 손을 벌벌 떨며 기겁했다. 

아마, 이렇게 세심한 윗사람은 당가 내에 없었으리라. 

공천립은 안면이 새파랗게 질려서는 즉각 대답했다. 

“딱지치기로 따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실력 하나로 여기까지 올라왔습니다.” 

“그 실력, 앞으로 나를 위해 잘 좀 써주세요.” 

“실망하시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공천립. 

나는 놈의 심장에 마나 문신을 새겨 넣었다. 

『 느림의 미학 』 

문신을 매개로 한 저주 마법. 

이번에는 과거 왕초삼에게 새겨넣었을 때보다 더욱 많은 마력을 투입했다. 아무래도 당가 밑에서 일하는 놈이니, 다른 고수들이 알아챌 수 없게 심혈을 기울이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그리고 나는 공천립의 심장에 문신을 새기던 도중, 다섯 번째 마나회로가 다음 단계에 오를 준비를 마쳤다는 걸 느꼈다. 

하여간 그것은 뒤로 미뤄둔 채, 다음으로 칼스의 보고를 들었다. 

“오늘 이사회에서 제 지위를 인정하는 안이 부결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번에 은퇴시킨 두 임원에게 ‘임시’ 로 양도받은 지분과 제 지분을 더해 약 40퍼센트를 확보했고, 소문을 듣고 제 쪽으로 몸이 기우는 임원들이 있으니 대표 지위를 확정 짓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현재, 상선 내에서 칼스가 연방 의원’들’ 의 간접적인 후원과 지원을 받는다는 얘기가 정설로 퍼지고 있다고 한다. 

종후표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몰라도, 놈은 알고있는 정보가 워낙에 방대하다. 제 손에 있는것만 꼭 붙들고 세상에는 별 관심도 없는 변방 정치인 정도는 쉽게 구워삶는 것이다. 

안경을 콧잔등에 걸쳐놓은 칼스가 말했다. 

“조만간 이사회가 열리면 임원 몇 명을 더 ‘설득’ 해 은퇴시킬 생각입니다. 과반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게 되면, 이사회의 의결 따위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질 겁니다.” 

짧게 줄이면 박살내서 꿀꺽 해버리겠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해라. 언제나 암살 조심하고.” 

“이 좁은 발두르 시티에 8레벨을 암살할 만큼 강력한 히트맨은 없습니다.” 

“일 잘 풀렸다고 주접떨지 말고. 고독 더 먹을래?” 

“······죄송합니다.” 

칼스의 가장 큰 경쟁자이자 많은 지분을 쥔 상선의 임원 둘은 힘을 잃었다. 복잡하게 얽힌 정치적 리스크까지 완전히 사라졌으니, 이제 칼스는 계속 상선의 대표로 앉아있을 것이다. 

말인즉. 

나는 화물운송조합 상선의 실질적인 주인이 된 것이다. 

시티 화물 운송의 30퍼센트를 담당하는, 그간 쌓아온 항로망 데이터들과 운송용 대형 캐리어 100여 척을 운용하는 명실상부한 발두르의 대형 세력. 

놈들이 지금까지 쌓아온 자산 역시도 내 손에 들어온다. 

앞으로 크레딧 들어갈 곳이 많아질 참이었는데, 발두르 시티에서 크레딧을 갈퀴로 쓸어 담는 세력을 얻었다.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종후표놈을 진작에 죽이지 않길 잘했군. 

놈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나는 칼스는 물론이고 놈과 연관된 놈들을 집단 참수해버리고 라그나로크 시티로 돌아갈 수도 있었는데, 이토록 고무적인 성과를 얻었다. 

나는 상당히 흡족해져선 입을 열었다. 

“그러면 한 잔씩들 합시다. 좋은 날이니까.” 

“예.” 

“예.” 

이곳은 발두르 중심 유흥가의 고급 술집. 

오늘은 종후표가 혓바닥 하나로 정치 노괴들을 잡아먹은지 나흘째가 되는 날이다. 

나는 지난 나흘 동안 칼스와 공천립을 부리거나 직접 나서서 상선과 관련 되어있는 여러 일들을 마무리했다. 

죽일 놈 죽이고, 돈 먹일 놈 먹이고, 병신 만들 놈 병신 만들고. 

그리고 오늘에서야 그 귀찮은 작업이 끝난 것이다. 

척! 척! 

칼스놈과 공천립, 나는 술잔을 앞에 두었다. 처음에는 서로 원한으로 엮인 이들이지만, 앞으로는 나를 위해 열심히 크레딧을 벌어다 줄 놈들이다. 

복숭아밭에서 낭만있게 하는 도원결의까지는 아니어도, 묵은 원한은 훌훌 털어버리자는 의미에서 술 한잔씩은 할 수 있었다. 

쪼르륵. 

이윽고 나는 그들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고, 칼스와 공천립은 동시에 머리를 돌려 술을 받아마셨다. 

독한 술인데도 그들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나는 이제 내 잔에도 술을 따랐다. 술의 표면은 매끄럽고 투명하여 도심의 불빛을 아름답게 비추었다. 

파도처럼 출렁이는 술을 잠시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술잔을 엎어 그대로 바닥에 뿌려버렸다. 

촤아악! 

“······?” 

“생각해보니, 나는 당가의 무인과 술을 마시지 않는다.” 

당가의 인사와 술잔을 두고 대작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호랑이의 아가리에 팔을 처넣는 격. 

술에 독 타듯 독에 술 타듯 살아가는 놈들이다. 

또한 나는 원한을 쉽게 잊지 않는다. 고작 술 한잔에 훌훌 털어버리기에, 과거 입었던 마음의 상처가 너무도 크지 않았겠는가. 

“······그, 그렇습니까.” 

“응.” 

공천립은 개똥씹은 듯 푸들푸들 떨리는 안면을 억누르며 힘겹게 웃어보였다. 

웃지 않으면 사내의 원한을 산 죄로 여기서 죽을 테니까. 

쨍그랑! 

나는 술잔마저 대충 집어던져 깨버리곤 그 둘을 뒤로했다. 술잔과 함께 인간적인 존중마저도 간단히 내던져버렸다. 

사내 셋의 술집 결의는 파기다. 

“이만 간다. 가끔 찾아올 테니 잘하자.” 

“예.” 

“예.” 

공천립과 칼스놈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벌떡 일어나서는, 머리가 땅에 닿을 때까지 허리를 숙였다. 

그렇게. 

금의환향한 사내의 고향행이 마무리되었다. 

* * * 

클로에. 

그녀는 자기 키보다도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었다. 

“미안해요. 주변 정리가 조금 오래 걸렸죠? 며칠내로 끝날 줄 알았는데 이것저것 하다 보니까······.” 

“괜찮습니다. 나도 마침 바빴습니다.” 

“흐흐,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내가 상선의 일을 마무리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 클로에도 발두르 시티를 떠날 준비를 마쳤다. 

클로에의 표정은 어딘가 후련해 보였다. 

그때, 등 뒤에서 여량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협, 문주님께서 보내셨습니다.” 

뒤를 돌아보자 깨끗한 무복으로 갈아입은 삼호문도들이 도열해 있었다. 

아, 이놈들도 있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차하면 이놈들을 잊어버리고 갈 뻔했다. 

“박치기 공룡도 왔구나.” 

“······.” 

삼호문주 등평위는 말한대로 여량천과 응곽, 은소를 비롯한 삼호문도 열 명을 내게 딸려보냈다. 쓸만한 무공을 익혀 몸이 튼튼한 놈들이라, 수족으로 부리며 각종 잡일을 시켜 먹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물론, 정크타운 출신이라 얼굴은 조금 꼬질하다. 

— 드, 들어가시면 됩니다. 

이제 검역 따위는 없는 발두르 시티 스테이션. 

나는 상선의 주인이 된 기념으로 상선의 화물용 캐리어를 탈까 하다가, 크기만 크지 워낙에 느려터진 관계로 포기하고 가져온 캐리어에 올랐다. 캐리어는 발두르 시티에 미련이 없다는 듯, 삽시간에 이륙해 하늘을 갈랐다. 

그렇게, 그들을 데리고 라그나로크 시티로 돌아왔다. 

나는 라그나로크에 도착하자마자 머물던 호텔을 찾았고. 

“레반······!” 

그런 나의 눈에, 이쪽으로 뛰어오는 레나가 보였다. 

레나는 발할라를 뒤로하고 라그나로크 행을 택한 것이다. 

뒤이어 도끼눈을 뜬 루벤카년이 달리는 레나의 손을 꽈악 붙들다, 결국에는 미끄러져 놓치고 씩씩대는 장면 역시도 눈에 들어왔다. 

더해서, 왜인지 다시 라그나로크로 돌아온 카산드라 교수가 후후 웃으며 이쪽을 바라보는 것도. 

거기에 클로에와 삼호문 놈들까지 있으니, 마치 과거의 정크타운을 라그나로크 시티로 옮겨놓은 듯했다. 

이후로 나는 눈가가 그렁그렁해진 레나와 꽤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레나는 조금 진정이 된 후 울고불었던 사실이 창피했는지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밤이 깊어오자 호텔 창밖을 응시했다. 

시선이 닿은 곳에는, 골목 어귀에서 담배를 태우던 딜런이 웃으며 손짓하고 있었다. 

곧, 호텔을 조용히 빠져나와 딜런을 찾았다. 연신 줄담배를 태우던 딜런은, 천천히 높아져만가는 라그나로크 시티 중심가의 풍경을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대충 정리는 끝났나?” 

“끝났다.” 

“···큭큭, 네가 원하는 칩 제작해 주겠다는 기업을 찾았다. 그쪽도 요즘 자금줄이 궁한지 나름 긍정적이야.” 

“그거 좋은 소식이군.” 

“그런데 꼰대 새끼들 압박 들어오는 건 그렇다 쳐도, 일단 크레딧부터 장난 아니게 빨아먹을 것 같던데. 정말 괜찮겠냐?” 

“괜찮다. 마침 돈줄을 구해오는 길이라.” 

팅! 

내가 대수롭잖게 대답하자 딜런은 묵묵히 머리를 끄덕이더니, 태우던 담배꽁초를 저 멀리 던져버렸다. 

“메가콥 될 준비만 하면 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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