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상선
#151화.
화물운송조합 상선.
상선은 일반적인 기업과 체계가 조금 다르다. 전통적으로 절대적 권위를 가지는 회장이나 사장이라는 직위가 상선에는 따로 없는 것이다.
“지분을 쥐고있는 이사회의 임원들이 결의를 거쳐 조합 운영을 맡고 책임질 사람을 뽑습니다. 일정 기간 조합의 대표를 맡게 되는 겁니다.”
칼스는 지난 몇 년간 상선의 전체적인 운영을 총괄했다. 거대한 지분을 틀어쥔 막후의 주인은 따로 없으니, 현재는 칼스가 상선의 조합장이자 책임자인 셈.
칼스는 연방 집행관인 루베르겐과도 안면이 있을 정도로 발이 넓으니, 운송계는 물론이고 발두르 상계 전체로 따져도 중심축에 끼어있는 인물이다.
연방의 신무기나 알 헤임달의 천연자원, 강력한 마약등도 화물을 다루는 상선의 손을 거쳐 암시장으로 빼돌려진다. 심지어는 당가의 공천립과 결탁해 담 크게 고독까지 반출했을 정도이니, 기간제 직위라도 칼스의 권한은 꽤 막강한 듯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임시 직위에 불과하다. 그가 아니더라도 칼스의 자리를 노리는 쟁쟁한 후보들이 있었다.
“나는 임원 중에서도 최상위권이지만, 조합에 나와 비슷한 지분을 가진 임원이 둘 정도 더 있습니다. 내 신변에 문제가 생긴 걸 알면 곧장 임원들을 소집해 이사회를 열 겁니다.”
지금 당장은 상선의 운영 전반을 담당하는 인물이 칼스고, 다른 임원들이 이사회 형식으로 존재하며 경쟁하는 형태라지만.
마땅한 명분만 있다면 힘을 모아 자신들의 대표를 갈아치우고, 상선의 새로운 우두머리를 옹립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종후표가 물었다.
“돌려보내주면 계속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겠나?”
직접 잡아서 고독까지 잔뜩 먹여놓은 내 입장에서는, 칼스놈이 계속 상선의 전반 운영을 맡아주는 것이 상수였다. 갑자기 괴상한 놈이 나타나 상선을 통째로 휘어잡으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조합이 저런 체계라면, 우두머리가 바뀌는 순간 통제는 물건너갔다고 보아야 하기에 내가 원하는 상황으로 갈 수 없다.
후우—
하지만 칼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정적으로 말했다.
“이미 어떤 방식으로든 의심을 시작했을 겁니다. 처리할 일이 산처럼 쌓여 있는데도, 하루를 내리 비워두고 연락마저 끊어졌으니까요. 나는 원래 이렇게 한가하지 않습니다.”
서류더미에 파묻혀 있던 칼스와의 첫 대면이 떠올랐다.
그때도 과중한 업무량에 찌들어 축 처져있는 놈이었지.
“그들의 행동방식은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압니다. 날 바지사장으로 앉혀 상선을 집어삼킬 생각 같은데, 이제부터는 그들이 큰 걸림돌이 될 겁니다.”
칼스는 통증을 힘겹게 누르며 말을 이었다.
녀석의 입가로 채 삼키지 못한 핏물이 새어나왔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내려가면 권한이 제한적인 임원으로 돌아갈 거고, 한 번 조합장 로테이션이 돌아가면 못해도 10년쯤 뒤에 재차 조합장 자리를 꿰찰 수 있을—”
“아니지. 아니지.”
“?”
갑자기 종후표가 칼스의 얘기를 중간에 썩둑 잘라냈다.
“권한도 없이 빌빌대는 놈을 뭣하러 10년 뒤까지 푸근하게 살려둬? 그냥 이 자리에서 죽여버리고 다른 놈 불러다 앉히는 게 낫지. 그러라고 붙여놓은 목숨같은가?”
“······.”
“다른 방법.”
종후표는 상선을 내 것으로 만들어 주겠다며 장담을 하더니, 실제로도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
건조한 눈을 몇 번 깜빡이던 칼스는, 이내 다른 방법을 늘어놓았다.
“그 임원 둘을 이사회에서 축출하는 게 가장 빠르고 깔끔합니다. 다만 강제적으로 일을 벌인다면 뒤처리가 더욱 복잡해질 겁니다.”
쯧쯧—
종후표는 걱정한 게 기껏해야 그 정도냐는 듯 혀를 끌끌 찼다.
“빠르고 깔끔한 그걸로 해라.”
상선에 9레벨급의 실력자는 없다.
당연한 얘기이나, 9레벨은 그리 흔하지 않다.
너무도 큰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다보니, 평소 보기도 힘든 거물들을 비정상적으로 많이 보았을 뿐.
칼스가 8레벨 초입 수준이니, 어중간한 임원들은 무력으로 칼스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체계를 뒤흔들 정도의 무력충돌이 일어난다면 상선 내부에서도 필시 큰 반발이 생길 터.
“알겠습니다. 하면 전권을 맡겨주시는 것으로 알고, 제 선에서 잘 처리해 보겠습니다.”
허나, 칼스는 가타부타없이 그러겠다고 답했다.
작은 표정 변화조차도 없었다.
그것을 본 종후표가 흡족한 듯 날개를 휘적였다.
“대화가 통하는 부류로구만. 제 손에 선택권이 없다는 것을 잘 파악하고 있는 놈이야. 쓸모가 없어지면 죽는다는 것도 알고 있구만.”
“그야 저놈도 다른 이들을 상대로 그지랄을 해댔으니까. 어떻게 꼬리를 흔들어야 살 수 있을지도 잘 알고 있겠지.”
“아, 그런 것인가? 역시 대화가 잘 통하겠군. 살아야지. 확실히 길게 사는 게 좋지.”
“······.”
큭!
곧, 칼스의 가쁜 숨이 나지막이 내리깔렸다.
놈의 뱃속에 자리잡은 고독충이 자그마치 여덟 마리.
고독은 그 자체로도 독충이며 외과적인 수술 따위로 떼어낼 수도 없다. 자극하면 내장 속을 점점 더 깊숙이 파고들어갈 테니.
죽기 전에 당가의 본문에만 있다는 고독의 해독제를 얻을 방법은 오로지 하나였고, 칼스는 그것을 명확하게 깨닫고 있었다.
“제 발로, 깨끗이 걸어 나갑죠.”
“그래. 말 잘 듣자.”
“앞으로 호칭을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엘리트 회사원을 연상케하는 옷차림에 걸맞게, 펜촉처럼 날카롭고 똑부러지는 사내였다. 그는 새로이 정립된 상하관계를 하루도 안 되어 완벽히 받아들였다.
“호칭은 나중에 정리하고, 빨리 튀어나가라.”
“···예.”
펄럭!
칼스는 겉옷을 둘러 몸에 그득한 상처를 가렸다.
그러고는 기다리던 당가의 공천립과 함께 평이함을 연기하며 귀빈실을 빠져나갔다.
실로 긴 하루가 쏜살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날.
뚝···뚝···
칼스는 전날 단언했던 대로, 상선의 나머지 임원 둘을 순식간에 정리하고 내게 찾아왔다.
실로 신속한 일처리였다.
놈은 붉은피에 반쯤 절은 흰 장갑을 벗더니, 콧잔등까지 내려온 안경테를 추켜 올리며 말했다.
“말씀드렸던 둘은 방금 막, 이사회 활동을 접고 은퇴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그들의 지분을 임시로 대여받았고, 당분간 다른 임원들은 몸을 사릴 겁니다.”
종후표가 그의 수완과 빠른 결단력에 찬사를 보냈다.
“으하하! 너도 어지간히 죽기 싫은가 보구나!”
“······.”
이윽고, 칼스가 안경테를 매만지며 덧붙여 말했다.
“예. 그리고 정치권 쪽 인사들에게 기별을 넣었더니, 이런 식이면 앞으로 상선에 사업권을 몰아줄 일은 없을 거라는 말을 전해왔습니다. 그들은 잘 돌아가던 조합이 변화하는 것을 원치 않을 테니, 금세 손을 뻗어 입맛대로 주무르려 할 겁니다.”
그 말에 종후표는 가소롭다는 듯 비웃었다.
“아니나 다를까 쭉정이들이군. 시류도 읽을 줄 모르는.”
“······쭉정이?”
“어차피 이 발두르에서 정치하는 놈들은 연방 정치계는 고사하고, 수르트나 발할라까지도 못 가는 무능력자 놈들이다. 그나마 젊은 놈들은 꿈이 크고 살 날이 많아 도전이라도 해볼텐데, 보나마나 죽을 날만 받아놓고 똘똘 뭉쳐 마지막 권세를 누려보려는 노인네들 아닌가?”
“······대부분 노인들이 맞습니다.”
칼스는 얼떨떨한 얼굴로 종후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렇겠지. 지금 로키가 무너져 연방 정치계를 비롯한 연방 전체가 아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텐데, 연방군의 신무기까지 빼돌려 팔아먹었다는 놈들과 서둘러 손절은 못할망정 입맛대로 주물러? 늙어서 뇌수가 증발한 게지. 판단들 하고는···쯧쯧.”
“······.”
“발두르의 대단한 유지입네, 끼리끼리 둘러앉아 그 얄팍한 권력이나마 꽉 쥐고있는 놈들. 대단한 거물인 척 아니꼽게 굴지만, 막상 손에 남은 게 그거 하나뿐이라는 걸 일깨워주면 집에서 키우는 개새끼보다도 더 고분고분해질 거다. 일이 더 쉽겠구만. 어서 안내해라.”
곧이어.
속사포처럼 비난들을 토해낸 종후표가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뾰족한 부리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속닥댔다.
- 그런데, 저것도 쓸 수 있겠나? 내 경호원으로 좋겠군.
“저거?”
종후표가 부리로 가리킨 장소.
발두르에서 내내 우리를 뒤따르던 꼭두각시가 보였다.
뷔에탕은 외형이 뛰어난 사내를 즐겨 인형으로 만들었다. 저 인형도 탁한 눈만 아니라면 한 번쯤 눈길이 갈 법한 사내. 척 봐도 잘생긴 자가 기이한 마력을 풀풀 풍기고 있으니, 묘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내가 스토커처럼 따라오던 뷔에탕의 인형을 응시하자, 인형은 내 눈빛을 알아보았다는 듯 스르륵 다가왔다.
【 뭐, 누구 죽일 사람 있어? 】
“······.”
* * *
중심업무지구.
우리는 칼스의 안내를 따라 한 빌딩에 도착했다.
빌딩의 메인 동.
칼스를 따라 지하층 깊숙이 내려가자 안쪽으로 굉장히 큰 회의실이 나왔다. 그 앞으로는 경사가 가파른 계단이 있었다. 회의실을 가려면 긴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구조였는데, 계단의 끝을 시선으로 따라가니 이미 중앙 테이블에 웬 늙은이들이 착석해 있었다.
조명은 죄다 희미하고 어두운 탓에, 얼굴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해 고의적으로 그렇게 설치해놓은 듯 했다. 그래도 안력을 틔우자, 고급스러운 정장을 걸친 늙은 사내들이 명확하게 보였다.
기운으로 보아 무력은 강하지 않았다.
대충 열 명 정도 되었는데 뒷일을 생각치 않는다면 모두 세 합내로 베어낼 수 있는 수준. 허나 살계를 벌여 친절했던 무당의 고수들과 마찰을 일으킬 생각은 없었다.
거대한 회의실의 사방으로 두꺼운 카펫들이 깔려있어서 대부분의 소음을 흡수했다. 높으신 분들이 은밀한 대화를 나누기에는 참 좋은 곳이다.
아무튼, 나는 회의실에 들어오며 마법으로 보호막을 쳐두었다. 일이 틀어지면 내가 개입해 적당히 마무리할 생각으로.
꾸벅.
칼스는 익숙한 듯 그들 앞에 서서 묵례를 했다.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자들도 있었고, 심히 불쾌한 기색으로 칼스를 훑어보는 자들도 있었다.
“······.”
헌데, 칼스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으니 서로 말이 없었다. 어색한 게 저들로서도 처음 겪는 일인 듯했다.
나는 적막이 깨질 때까지, 묵묵히 서 있는 것에 집중했다.
그러다 내 두 다리가 슬슬 저려올 즈음.
푸드덕!
칼스의 어깨 위에 앉아있던 종후표가 테이블 중앙으로 날아가 앉더니, 좌중을 둘러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탁한 눈에 노욕들이 한가득 들어있군.”
그러자 노인들이 저마다 성질을 냈다.
— 칼스, 자네 지금 대체 뭐 하자는 건가?
— 이사회를 상대로 칼을 뽑았다더니, 그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아주 괴상한 장난감을······
털퍽.
하지만 내가 찰나간에 기세를 끌어올리자, 반발하던 자가 가슴을 부여잡으며 주저앉았다. 그자의 눈가가 지진이라도 난 듯 떨리고, 옆에 자리한 정치인들은 기세를 느끼고는 잠시 입을 닫았다.
다음 순간, 종후표의 뾰족한 부리가 움직였다.
“늙기만 했지 당적에 잉크도 안 마른 촌구석 쭉정이들이, 아직 감을 못 잡겠나?”
— ······.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화려한 언변을 뽐내던 때와는 어딘가 달랐다.
따각. 따각.
종후표는 물 만난 고기처럼 테이블 위를 걸어다니며 마음껏 휘저었다.
“제 그릇대로만 해먹으면서 살다가 조용히 세상을 떠날 것이지, 추하게 늙어서까지 필드에 똥을 뿌리는군. 로키가 무너진 시기에 연방 분위기가 어떤 줄 알고. 연방군 무기를 빼돌릴 때에도, 상도덕 없이 중앙에 돈을 댈 때도, 그저 눈을 감아 주었더니······.”
— ······무, 무슨!
그그극—
철제 의자가 뒤쪽으로 드르륵 밀리는 소리.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은근하게 거물의 향기를 풍기던 노인들이 종후표의 말에 당황하며 뒤로 물러났다.
심상찮은 말에, 그들은 이제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연방 정계에서 그걸 모를 줄 알았나? 이 주제도 모르는 것들. 그 두툼한 배를 얼마나 더 채워야 성에 찰런지. 곧 터지겠다.”
회의실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종후표의 어조는 평소와는 달리 시종일관 건조했다. 감정이란 것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냉막한 어조.
역시나 종후표는 연방 정치계까지 올라가 두루 요직을 거친 자였다. 무미건조한 그 말투에서 형용할 수 없는 압박감이 일어나 회의실을 내리눌렀다.
— ······.
가끔 무언(無言)은 보다 많은 것을 시사한다. 종후표가 그 이후로 별다른 말이 없자, 발두르에서 산전수전을 겪었을 노인들의 목젖이 연신 꿀렁거렸다. 대충 일의 파급력을 예측하는 중인 모양이다.
그러다, 어느 정도 원하던 분위기가 형성되었는지.
클클클—
늙은이처럼 웃던 종후표가 고개를 까딱거렸다.
“나가서 기다리고 있거라.”
종후표의 그 말 뒤로 나는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이제 협박이든, 회유든, 사기든 종후표가 알아서 구워삶을 것이다.
마땅한 뒷배도 없이 지상의 아귀도나 다름 없는 연방 정치계에서 꾸역꾸역 살아남아 높은 자리까지 꿰찬 종후표다.
혓바닥 놀리는 수준이 오죽하겠는가? 그런데 그런 정치백단 능구렁이놈 앞에, 종후표의 말대로라면 ‘뇌수가 증발’ 한 너구리들을 던져 놓았으니···
나는 종후표놈의 긴 혓바닥을 믿고 기다렸다.
그렇게.
반나절이라는 지루한 시간이 훌쩍 지나던 시점.
쿠궁···!
어느덧 회의실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법력을 풍기는 종후표가 일기토에서 승리한 장군처럼 유유히 날아왔다.
그리고 종후표의 뒤쪽으로는, 안에서 대체 무슨 말을 들었는지 넋이 나가고 혼이 빠져있는 노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분명 거물 정치인처럼 떡하니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을진대, 입조차 제대로 열어보지 못하고 종후표놈의 페이스에 휘말려 퇴장한 것이다.
곧, 날아온 종후표가 무덤덤하게 칼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오늘부터 조합의 대표다.”
“······예.”
칼스는 반신반의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종후표가 연방 정치인 출신인줄 모르기 때문에, 고작해야 반나절로 풀 수 없는 매듭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저 늙은이들은 이제 상선에서 손을 뗀다. 허나 적당히 체면치레는 해줘야 하니, 주둥이가 떡 벌어질 만큼 두둑하게 챙겨주고 끝내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화물용 캐리어 다섯 기를 뽑아서 불 질러라.”
“?”
“저깟 놈들이 연방까지 기어가서 확인해 볼 깜냥은 없겠으나, 뭐라도 보여줘야 나중에 덜 귀찮다. 아까워 하지말고 내 말대로 해라.”
“예.”
이윽고.
칼스는 종후표의 말을 듣자마자 발두르 스테이션으로 가서, 따로 빼놓은 상선의 화물용 캐리어 다섯 기에 즉시 불을 질렀다.
화르르르르륵—
거대한 화염이 몰아치자 사방으로 희미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사이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동안, 발두르 스테이션 근처에 높이 솟아있는 빌딩에 발을 들였다. 과거 친씨아에게 이끌려 왔던 상선의 빌딩이었다.
그리고는 칼스의 집무실이 있는 상선 빌딩의 상층에 서서, 창밖으로 활활 불타오르는 화물용 캐리어들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이곳에 다시 오니, 그 감회가 새로웠다.
곧.
내 어깨 위에 기세등등히 앉아있던 종후표가, 중후한 음성으로 귓가에 속삭였다.
“이제 나 좀 풀어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