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퓨전펑크의 전생자-146화 (146/157)

#146화. 딜런

#146화. 

“그 많은 할 일, 다 마치면 알 헤임달로 와라.” 

쿵! 

아이작은 호텔방 문을 부술듯 사납게 닫았다. 

“······.” 

끼이익- 

이곳은 최근 지어올린 신축 호텔이라고 들었는데, 그가 얼마나 우악스럽게 문을 여닫았는지 벌써 삐걱대는 소음이 난다. 

호텔 매니저를 불러야겠군. 

발할라 산맥 꼭대기처럼 싸늘하게 식어버린 방안의 공기. 

침대맡에 앉아 귀 끝을 매만지던 슬레모킨은 멈칫거리더니, 앓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으, 저거 자동문인데. 무조건 고장났겠다······.” 

“혼인 얘기는 저번에 대충 마무리된 거 아니었나?” 

“아무 걱정하지 마. 어차피 별다른 일 없을 거야.” 

“거의 싸대기를 후려칠 분위기던데.” 

“······아, 아냐. 만나자마자 우리보러 고생했다고 했잖아. 원래 가끔씩 저럴 때가 있어.” 

“그런가.” 

그리 대답한 순간, 갑자기 시체들의 행진을 한 줌 핏물로 갈아버리던 아이작의 신위가 떠올랐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거대한 마력을 응축해 투사체로 쏘아내던 그 광경이. 

음. 

강제로 호텔 방에 욱여넣은 행동력을 보면, 유야무야 넘어가려다간 무슨 일이 생겨도 단단히 생길 것 같은데. 

“아무튼,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할게. 그리고 오늘 일로 알겠지? 내가 괜히 집에서 뛰쳐나온 게 아니라는 거. 객관적으로 봐도 좀 이해하기 힘든 엘프라니까.” 

슬레모킨은 도저히 못말리겠다는 듯한 얼굴로 머리를 몇 번 젓더니 표정을 바꾸었다. 그녀는 이 싸늘한 분위기를 피하고 싶은듯 어색하게 웃었다. 

어떤 이유로 아이작의 태도가 저리 극단적으로 변했는지 잘 모르겠다. 장벽 밖에서 멀쩡히 살아있는 딸을 보고 감성이 풍부해지기라도 한 것인가. 

뭐 이유야 어찌 되었든, 아이작은 제 속을 쉽게 내비치지 않는 엘프이기에 물어봐도 소용은 없을 것이다. 하기야 철혈을 표방하는 군주는 원래 제 진의를 감추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야 하니, 어쩌면 저게 가장 훌륭한 태도일지도 모르겠군. 

그래도 아이작은 어딘가 닫혀있으며 인간을 잘 못 믿고, 변덕이 심한 엘프일지언정, 절대로 정이 없는 자는 아니다. 슬레모킨이 정말로 위험할 것 같자 구하러 온 것은 물론이고, 과거 루돌프놈을 짐승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아이작의 도움이 컸으니. 

거기다 그토록 강력한 아이작이 능광객과 동행해 지평선을 넘어왔다는 것은 ‘무언가’ 를 같이 막아섰다는 뜻도 된다. 그도 목숨을 걸고 사선을 여러번 넘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뭔데?” 

상념을 이어가던 때, 슬레모킨이 가까이 다가와 넌지시 물었다. 

호기심 가득한 얼굴. 

슬레모킨은 어젯밤부터 뜨개질에만 몰두해 있었는데, 이제 뭔가를 더 만들기는 지겨워진 모양이다. 

“일단은 라그나로크에서 쉬어야지.” 

“여기서 쉴 거라고? 뭐야······그게 꼭 해야 할 일이었어?” 

은근히 실망한 기색을 보이는 슬레모킨 앞에서. 

나는 다시금 상념에 빠져,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이번 로키시티 탈출행으로 느낀 것이 꽤나 많았으니, 이리저리로 가지를 뻗치는 생각들을 정리하고 다듬기에 시간이 좀 걸렸다. 

얼마 뒤, 적당히 정리를 마친 나는 말문을 열었다. 

“로키 시티가 무너졌으니 새로운 시체가 수백, 수천만 마리씩 생겨났을 거다.” 

“그거야 그렇지만, 혼자서 너무 자책하지는 마.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우리는 정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 

“수천만 마리의 적이 하루 아침에 늘어난 거지. 그래서 장벽 밖을 배회하는 그 수많은 시체를 나 혼자, 아니면 고작 몇 명이서 성불시키려면 평생을 써도 불가능하겠다는 판단이 섰다.” 

“아···아, 죽여버리겠다는 얘기였구나? 난 또.” 

어딘가 안쓰럽다는 얼굴로 위로해주려던 슬레모킨은 조금 머쓱했는지, 뾰족한 귀를 축 늘어뜨렸다. 

“그래서, 여기서 쉬고난 다음에는 뭘 할건데?” 

슬레모킨의 질문에 나는 창문 커튼을 걷었다. 

우리가 있는 신축 호텔은 라그나로크 중심지에서 살짝 떨어진 외곽. 창을 열면 시티의 중심지가 될 곳이 보인다. 

그리고 현재 가지각색의 대형 빌딩들의 건설현장으로 가득한 라그나로크의 중심 지구에, 유일하게 펜스만 쳐진 채 덩그러니 놓여있는 노른자 땅이 보였다. 

내가 말했다. 

“수련,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기업인 흉내나 내보려고.” 

“?” 

“마침 라그나로크 시티 중심에 받아둔 필지가 있다. 계속 묵혀두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입지가 좋은 땅이지.” 

“수복전 공적으로 연방에서 내준 땅 말하는 거야?” 

“그래, 슬슬 그 위에 뭐라도 하나 세워야겠다.” 

“왜? 갑자기 건물주 행세라도 하고 싶어졌어?”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뇌까렸다. 

“반 바이오 컴퍼니에서 바이오를 빼고, 간단하게 반 컴퍼니······이름은 나쁘지 않군.” 

— 형님! 

벌컥! 

그때, 방 안으로 들어온 루돌프놈이 신난 얼굴로 호들갑을 떨었다. 

“형님, 시티 뉴스 보셨어요?” 

“방에 처박혀 있느라 못 봤다. 뉴스에서 뭐라더냐.” 

“한번 보실래요? 지금 형님을 거의 하늘 끝까지 띄워줘가지고, 당장 사이비 종교를 차려도 되겠던데요. 추종자도 생기고 막 그렇습니다. 로키 시티의 구원자 어쩌고······이 기회에 땀냄새 나는 남자놈들 말고 아리따운 분들로만 쏙쏙 골라 받아서 주지육림을 꾸리시죠. 형님만 괜찮다면 제가 면접관을 맡겠습니다.” 

나는 돌프 저놈이 하도 호들갑을 떨어대니, 그게 뭐든 보기가 싫어졌다. 

더해서 급격하게 몰려오는 피로감. 

저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겠군. 

“그냥 안 보련다. 너나 많이 봐라.” 

“아니 왜요! 형님! 형님!” 

* * * 

나는 호텔 로비까지 귀찮게 들러붙는 루돌프놈을 대강 때려눕혀 놓고는, 라그나로크 시티의 중심가로 나왔다. 

천천히 걸으며 시티의 정경을 둘러본다. 

여기저기, 노란 안전모를 쓴 건설 노동자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다. 힘 좋아보이는 휴머노이드가 절반 이상이었다. 

— 거기 똑바로 잡고 올리라고! 뒤질래! 현장식당에서 충전 안 했냐? 

— 이 기둥은 철근을 덜 넣어도 안 무너질 것 같은데? 요즘 자재값도 비싼데 너무 쓸데없이 튼튼하게 짓는 거 아닌가? 

— 설계할 때 진작 절반 해처먹었다. 더 빼면 무너져. 

— 그래? 몇 개는 슬쩍 빼도 괜찮아 보이는데. 

— 멍청아, 중심가 건물은 잘못 지었다간 좆돼. 

— 왜? 

— 중심지는 돈 많은 놈들이 산단 말이다. 해먹어도 어디 외곽 같은데서 몰래 해처먹어야지. 외곽지대는 철근 빼고 순살로 지어 올려도 항의할 놈들이 없거든. 

— 오오! 

볼거리가 있는 광경들이 연속해서 이어졌다. 

폐허의 형태로 다 쓰러지기 직전이었던 라그나로크 시티를 수복했다며 축제를 벌이던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빌딩들이 바쁘게 올라가고 있다. 기술이 좋아서 그런지, 꽤 진척이 빠른 듯하다. 

‘그래도 거대 도시의 태가 나려면 조금 멀었나.’ 

라그나로크 시티 수복은 비교적 최근의 일. 

그렇기에 아직 시티의 부자들이 모이는 중심가라고는 해도, 폐허 위에 있던 이전의 건물들을 철거하거나 리모델링해 각종 빌딩들을 한창 지어 올리는 중이다. 간단히 말해 라그나로크 전체가 대규모 공사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구구구궁! 

길거리에는 각종 중장비와 휴머노이드들이 오래되어 쩍쩍 쪼개진 도로를 걷어내고, 새로운 길을 깔아나가고 있다. 버려진 하수로를 정비하고, 발전소와 이어진 전선을 새로 매설하는등 인프라 작업이 한창이다. 

라그나로크. 

신화 속에서 세계의 종말을 뜻하는 무시무시한 단어이자, 이전의 세상이 무너지고 새로운 세상이 생겨나는 기점. 

공교롭게도 로키 시티가 멸망한 뒤에, 라그나로크가 더 활발하게 살아나고 있는듯 하다. 물론 뭐라도 끼워 맞추고픈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걸 수도 있다. 

하여튼, 라그나로크 시티는 로키의 생존자들을 포함해 앞으로도 많은 인구가 추가로 유입될 테고, 땅덩이도 발두르 시티보다 크니 뻗어나갈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말인즉, 각 기업과 세력들이 눈을 시뻘겋게 뜨고 출혈 경쟁을 벌이느라 성장 가능성이 낮은 다른 도시들보다 기회가 많은 땅이 될 것이다. 

이제서야 중심지구의 첫 빌딩들이 건설되고 있는 만큼 이곳저곳에서 여러 군상이 모여들 거고, 라그나로크만의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갈테지. 

“종교를 세워도 될 정도라면, 기업 정도야······.” 

몇 년 전이라면 엄두조차 못냈을 일이나, 루돌프놈이 말한 대로 지금처럼 내 주가가 하늘 끝까지 솟았을 때, 혹은 연방에서 띄워준답시고 열심히 밀어줄 때 뭐라도 시작하는 게 나을 것이다. 

일레힌 포이체카 마탑 내에 기업이나 세력을 운영하지 못한다는 제약도 따로 없다. 기업과 마탑 양쪽에 소속되어 있는 마법사들은 이미 많고, 당장 유크 루베르겐 집행관만 보아도 연방정부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이전부터 생각해 두었던 계획을 현실로 옮기기 좋은 시기다. 

라그나로크 시티라면 내 행보를 방해하는 세력도 적을 것이다. 수복전에 직접 참여했다는 타이틀도 있는데다, 아직 시티의 산업 전반이 완성되지 못해서 무림계가 꽉 잡고있는 수르트나 마법계의 발할라. 또는 다른 도시들보다 운신이 자유로울 터. 

또, 그간 연을 쌓아온 이들의 뜨거운 의리도 확인했다. 장벽 바깥까지 나를 살리기 위해 걸음할 정도라면, 어지간한 일에는 곧 죽어도 내 손을 들어줄 이들이 생겼다는 얘기. 

다시금 결심이 섰다. 그렇기에 결정을 내렸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다. 나는 아직 라그나로크를 떠나지 않은 언평 선생을 찾아갔다. 

우우웅— 

그는 현재 길가에 작은 진법을 하나 치고, 그 안에서 법기를 만드는 중이었다. 그간 종후표를 담아두었던 앵무새 법기가 이번에 망가져 새로 제작하고 있는 것이다. 

“언평 선생.” 

“다른 이들은 잘 배웅해 주었냐.” 

“어렵게 걸음해준 이들이니 당연히 시간을 써야지요. 배웅해 보낸 뒤에 곧바로 선생을 찾아오려 했는데, 어젯밤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늦었습니다.” 

언평 선생은 법기제련에 집중하며 말했다. 

“커다란 활을 쓰는 이족이 그리 했겠군. 네게 가진 관심이 지대해 보였다.” 

“그걸 선생께서 어떻게 아셨습니까.” 

“광활한 장벽 밖에서, 너를 구하러 온 이들을 어떻게 전부 한 곳으로 모았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야, 선생이 힘을 쓰셨겠지요.” 

“알면 됐다. 어제오늘 법력을 많이 쓴 탓에 몸이 힘드니, 더 말 시키지 마라.” 

“알았습니다.” 

나는 언평 선생이 새 법기를 다 만들 때까지 기다렸다. 그래도 작업의 막바지 단계였는지, 언평 선생은 저번의 앵무새 법기를 똑같이 만들어 내게 건넸다. 

“놈을 이어두었다. 말은 며칠 내로 시작할 거다.” 

“다행이군요. 그런데 요즘 진주언가는 어떻습니까.” 

“바쁘다. 수도계 놈들이 원체 말을 안 들어먹어서.” 

“어서 발할라 산맥 첫 번째 봉우리 위로 가셔야지요.” 

“얼굴에 금칠하려 들지 말고 할 말 있으면 해라.” 

“그럴까요?” 

나는 소중한 벗 언평 선생에게, 라그나로크 시티를 거점으로 기업을 세워보겠다는 얘기를 가감없이 털어놓고 도움을 부탁했다. 

이를테면 기업의 빌딩 안에 언가의 진법을 세운다든지 하는 얘기나, 무력을 쓸 일이 생기면 수도자들을 이끌고 패싸움에 동참해줄 생각이 있는지 등등. 

아무튼 그 뒤로, 농담 식으로 던진 황당무계한 이야기들까지 유심히 들어주던 언평 선생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알아서 해라. 언가는 널 지지해 줄 테니.” 

“고맙습니다.” 

“다만, 네 벗으로서 하고 싶은 부탁이 하나 있다. 기왕에 기업이라는 걸 세울 거라면—” 

“클로에를 찾아 라그나로크 시티로 데리고 올 생각입니다. 기억하기로 꽤 유능한 비서였으니, 여기서도 한 자리 차지할 능력이 있을 겁니다.” 

“음.” 

륭의 사무보조이자, 마지막을 지켰던 클로에. 

언평 선생은 겉으로 티는 잘 내지 않았으나, 륭의 기억이 스며들었을 테니 필시 클로에를 신경쓰고 있으리라 여겼다. 

그렇기에 나는 언평 선생의 부탁을 가로채 즉답했고, 언평 선생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뜻은 잘 알았다. 나는 그동안 이곳을 떠나지 않고 있겠다.” 

그렇게 나는 언평 선생과 대화를 잘 마친 뒤, 앵무새 법기까지 받아 호텔로 돌아왔다. 

그런데. 

“얼굴 보기 참 힘들군. 존나게 유명해져서 그런가.” 

대뜸, 딜런이 호텔 로비로 찾아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로키 시티 탈출 이후로 다시는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나는 솥뚜껑 같은 손으로 악수를 건네는 딜런을 지그시 응시하며 물었다. 

“살아 돌아오면 절대로 안본다고 단언하지 않았나?” 

“그 말은 지금 취소한다. 악수하기 싫냐? 그럼 바로 비즈니스 얘기로 들어가자고.” 

딜런은 꽤나 결연했던 그때의 다짐을 간단히 취소해버렸다. 역시 로키에서 깽판을 놓던 대군벌다운 결정이다. 

곧이어.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딜런은 말을 이었다. 

“같이 회사 하나 만들어보자. 이 라그나로크에다가.” 

“······.” 

“오, 바로 거절하지 않는군. 솔깃하지?” 

어디서 내가 하던 생각이 새어나가기라도 했나. 

아무튼 저 사내가 왜 저러는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세력이 해체되고 쌓아온 배경마저 날아간 참에, 날 구하러 온 이들을 보고 생각을 고쳐먹은 거로군. 로키에서 군벌짓 하던 놈을 받아줄 세력은 몇 없으니.” 

“네가 봐도 그렇게 보이냐? 정답이다. 큭큭큭. 그리고 뭐든지 시작할 때 배경이 든든한 게 좋지.” 

마침 본격적으로 기업을 세워볼 마음을 먹긴 했는데··· 

하필 딜런 이 사내라. 

물론, 9레벨의 마법사는 쉽게 볼 수 있는 실력자가 아니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강대한 억제력을 갖는 훌륭한 전력. 

솔직한 말로 곧장 욕심이 났다. 

소속 없는 9레벨 마법사를 어디가서 구하겠는가? 만약 아군으로 둔다면 천군만마와 다름없다. 

게다가 내가 이전부터 세워둔 계획을 실행하려면, 딜런처럼 힘이 있는 이들이 필요하다. 기존의 세력들과 다툼이 꽤 많이 생길 예정이라. 

허나 딜런은 껄끄러운 점이 많았다. 로키 시티를 멋대로 휘젓던 군벌 출신이니, 그간 쌓아놓은 악행과 업이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그는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처음부터 적대적인 시선들을 매달고 할까봐 꺼려지나? 너무 걱정마라. 그래도 이번에 로키 주민들을 구해온 전적이 있어서, 연방에서도 면죄부를 좀 줄 거다. 언론 분위기가 뜨겁거든. 그리고 솔직한 말로 씨발, 정부 새끼들이 날 쳐죽이길 할 거야 뭘 할거야. 9레벨 마법사 안 필요해?” 

딜런이 웃으며 늘어놓는 말을, 나는 못이기는 척 들었다. 

“군벌이든 기업이든 전부 첫 알박기를 잘하느냐 못하느냐에서 판가름 나는 거야. 무림계 구파일방 새끼들도 결국 시초에 알박기를 잘해둬서 지금까지 큰 거잖아. 그쪽 노하우는 내가 좀 있거든.” 

“라그나로크 시티를 잡아먹자는 말로 들리는데.” 

“정확히 들었다. 잡아먹다 뿐이냐? 아니지. 아주 쪽쪽 빨아먹을 수 있다. 시체사냥 사업이든 뭐든, 우리 무력이면 꿀릴 게 뭐냐.” 

쾅! 

실실 웃던 딜런은, 돌연 두꺼운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치며 말했다. 

“라그나로크 시티는 때 안탄 청정지역이야. 이제야 부랴부랴 빌딩들을 지어올리는 중이지. 이 호텔도 봐라. 완전 신축이잖아. 먹을 게 천지에 깔려있다는 말이지.” 

“뷔에탕 그 여자는 아직까지 별 말 없던가?” 

“뭐?” 

“뷔에탕도 라그나로크 시티에 있을 텐데, 그냥 가만히 있겠다던가? 그럴 위인이 아닌데.” 

“후우.” 

그에, 딜런이 한숨을 내쉬더니 목소리를 줄여 속삭였다. 마나 알갱이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 씨발. 안 그래도 말하려고 했는데. 네가 허락하면 자기는 당연히 한자리 하는 거라고 지랄을 하던데, 혹시 둘이 전에 무슨 일 있었냐? ] 

[ 아니. ] 

[ 젠장! 이 좆같은 얘기는 나중에 따로 하고, 아무튼 같이 해볼 생각 있나? ] 

딜런의 그 말 뒤로 대화가 잠시 끊겼다. 

나는 고민의 시간을 길게 가졌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의 제안에 조용히 고심하던 나는, 초조히 기다리는 딜런을 바라보다 마침내 입을 열었다. 

“메모리칩 취급하는 기업이나 공장에 쓸만한 인맥 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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