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파루무치
#143화.
천공까지 우뚝 솟아있는 거인.
어떤 생명체도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크기.
부패한 피부와 근육 다발, 뼈와 힘줄, 관절이 제멋대로 뒤섞여 있고, 밧줄처럼 길게 늘어진 촉수줄기가 여기저기 잘려 휘날린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가 신화 속 거인의 몸을 해체해 마음대로 재조립 해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인간의 형상을 본뜬 태산.
인류의 도시를 방어하는 장벽보다도 월등히 높아 세계 어디에서든 보일 듯한 거체는, 고개를 숙여 구멍난 진법 안에 연신 무언가를 쏟아냈다. 입에서 새어나온 검붉은 폭포가 무형의 막을 타고 땅으로 흘러내린다.
그 거대한 존재는 포효하며 다시금 움직였다.
구우우우웅—
거인의 느릿한 주먹질 한 번에 세상이 진동한다. 지축에 금이가며 쩍쩍 갈라지고 틀어졌다.
심지어는, 대기가 주변부로 밀려났다가 다시금 빨려 들어가기를 반복하며 거인 주변의 공간이 휘어져 보이기까지 했다.
멀리 떨어져서 보았을 때는 느릿하기 그지없는 주먹질이었으나, 만약 저 거인의 산만한 손바닥이 곧장 머리 위에서 떨어진다면 어떠한 느낌일지 청풍의 눈에 훤했다. 상식을 초월하는 규모에 압도되어 육신이 돌처럼 굳어버릴 터.
그때, 거인이 돌연 발을 높이 들어 올렸다.
“설마······.”
그 육중한 발바닥에, 미증유의 힘이 실린다.
콰르르릉——
아니나 다를까, 거인의 발이 지상으로 곧장 떨어졌다. 천둥치는 파공성과 함께 지면이 두부처럼 뭉개지고, 피를 머금은 흙먼지와 분진이 원형의 충격파를 타고 화산 폭발하듯 뿌려졌다.
말 그대로 초토화 되어버린 일대.
곧, 거인은 땅을 밟았던 발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하필 발치 근처로 몰려들었다가 공격에 휘말린 시체 수백여 마리가, 거대한 발바닥에 개미처럼 눌려 있다가 처참하게 떨어졌다. 압착되어 전신의 피가 빠져나간 시체들의 살가죽이 찢어지고 분리되어 우수수 쏟아진다.
하지만 다행히도, 구멍 뚫린 진법은 이제 그 위치에 없었다.
【 ······. 】
부수려던 진법이 사라지자 격노한듯, 잘 보이지도 않는 저 상공에서 핏줄이 선 거대 눈동자가 나타났다. 지상을 우습게 오시하며 내려다보는, 그 아득하고 거대한 눈동자를 목도하자 소름이 등줄기를 내달렸다.
쿠웅. 쿠웅. 쿠웅.
거인은 세상을 받치는 기둥과도 같던 다리를 떼어 성큼성큼 딛었다. 사라진 법력의 흐름을 찾기 위해 온 사방을 짓밟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쯤에서.
청풍의 입이 열렸다.
“소문으로만 듣던 파루무치······실로 압도적이구나.”
인간이라는 존재가, 한없이 작고 미약해진다.
저릿저릿한 요기에 정과 혈이 차갑게 식는 듯한···
파공성에 귓전이 먹먹하고 손이 부르르 떨릴 정도의 힘.
무인이라면 응당 느껴야 할 호승지심(好勝之心)조차 그 불합리한 육체로 억눌러 무력함만을 깨우치게 만드는 이형의 존재.
허나 그 천재지변 앞에서도, 지금의 청풍은 오연했다.
“제 목 내놓을 각오를 한 이들이 저리 많은데, 모양 빠지게 꽁무니를 뺄 수는 없는 노릇이지.”
하하하!
불현듯 호방하게 대소한 청풍은 캐리어의 갑판으로 나와 섰다. 모양새가 참 아쉽게도 청풍을 곧바로 따라나오는 이들이 없었다. 두려움 없기로 둘째가면 서러울 천하의 매화검수들도 저 ‘파루무치’ 의 파멸적인 위력을 목도한 뒤, 다리가 굳어버린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의지가 꺾여버릴 화산이 아니었다. 검수들은 몸을 어기적대면서도 본능적인 거부감과 공포심을 이겨내고 갑판으로 나와 청풍의 뒤에 도열했다. 그들은 호흡을 깊게 내쉬며 흔들리는 심신을 가다듬었다.
그러던 순간.
“!”
분노해 두리번대는 거인의 측면으로, 어떤 기운이 엿가락처럼 주욱 늘어나는 것이 청풍의 예민한 기감에 잡혔다. 그들을 숨기고 보호하던 진법이 더는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도주로를 내는 것이다.
불안정하게 늘어나던 심후한 법력의 흐름은 거인의 발치와는 조금 떨어진, 어느 한 장소에서 멈추었고.
스르릉—
퇴로를 특정한 청풍은 매화검을 뽑았다.
그러고는 문득, 화사하게 웃으며 뇌까렸다.
“형장이 좋은 가지를 내준 덕에, 이렇게 많은 이들 앞에서 피어보오.”
— ······.
이미.
공중을 부유하는 다른 캐리어들에서 느껴지는 다수의 시선과 강력한 기세들이 청풍의 기감에 닿아있었다.
청풍은 그들의 시선 앞에서도 거침없이 천명했고.
“화산이 먼저 내려가겠소.”
그 시선들을 뒤로한 채 갑판 밑으로 신형을 던졌다. 세상의 배경이 빙글 돈다. 매화가 자수된 화산의 무복이 바람의 저항을 받아 펼쳐진 돛처럼 만개했다.
후아아아악—
바람을 가르고 떨어진 청풍은 삽시간에 지면에 내려섰다. 근처에 움직이는 모든 것들에서 형용할 수 없는 악취가 풍겨왔다. 사람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자 땅을 메운 시체들의 머리가 동시에 돌아갔다.
— 그르륵.
그러나 시체들이 풍기는 악취는 곧 자취를 감추어야 했다. 청풍의 매화검이 명랑하게 흐드러지니, 은은한 향취가 악취를 간단히 누르고 일대를 자욱하게 물들였다.
매화난만(梅花爛漫).
후두둑-
독한 술에 취해 쓰러지는 취객처럼. 청풍을 먹잇감으로 보고 달려든 시체들이 일거에 무릎을 꿇고는 뒤로 쓰러졌다. 목 위에 붙어있어야 할 머리가 죄다 난도질당해 땅에 떨어진 채로.
다음 순간.
화르르륵!
청풍의 전신으로 짙은 자색의 기류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태양의 표면과도 같이 뜨거운 열기가 용천혈에서 시작되어 그의 정수리, 백회혈에 모여 서서히 전신으로 녹아내리다가, 종래에는 코와 입으로 빨려 들어간다. 매화건으로 둘러묶은 청풍의 머리칼은 금세 봉두난발이 되어 흐트러졌다.
어둡기만 한 땅에 피어난 자색 기운.
화산의 장문인이나 화경의 경지를 이룩한 고수들에게만 익힐 자격이 주어진다는 자하신공(紫霞神功)의 기운이, 고작해야 약관을 갓 지난 청풍의 기혈에서 솟구친 것이다.
독고웅백이 사사한 심득은 이미 아득한 천재였던 청풍의 세계를 다시 한 단계 위로 올려놓았다.
무림계에서 누구도 비할 바 없던 후기지수는 오늘.
후기지수라는 태를 벗고 진정한 무림에 발을 들였다.
쾅!
깊게 패인 땅. 청풍의 신형이 안개처럼 사라졌다.
— 저 아이가 벌써······
— 뒤쳐지지 말아라!
희끗한 머리칼이 난 매화검수들이 이미 한참을 앞서간 청풍의 뒤를 따랐다.
청풍의 전신에서 용솟음치며 일어나는 짙은 자색의 기류를 따라, 까마득히 막혀있던 시체들의 군집이 갈려나가며 혈로가 생겨나고 있었다.
자색의 기류가 휘몰아치며 전방으로 뻗어나가자, 뒤늦게 핏물이 흩날리며 진득한 혈화를 만들어낸다.
살의가 담긴 자색의 기류는,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밀집한 시체들을 양쪽으로 갈라내며 쾌속하게 진격했다.
서거걱!
독보적인 위력과 속도.
매화검수들과의 거리가 꽤 멀었으나, 청풍은 개의치 않고 길을 만들어갔다. 검끝에서 자색의 격류가 번뜩이면, 경로에 있던 시체들의 목에서 반드시 피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청풍의 검이 한 시체의 목을 꿰뚫은 시점이었다.
위이이이잉—!
하늘에서 말벌떼가 들고일어나는 듯한 굉음이 크게 울려퍼졌다. 시체를 마구 썰어내며 전진하던 청풍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의 머리 위에 나타난 것은 편대 비행을 뽐내는 수많은 소형 드론이었다.
곧이어 몇 드론들의 불빛이 깜빡이더니, 작디작은 구슬이 초고속으로 사출되었다.
툭!
“?”
길을 뚫던 청풍과 매화검수들이 구슬을 잡아 펼쳐보았다. 그것의 정체는 바로 당가의 피독단이었다. 의미를 알아챈 청풍은 즉시 피독단을 입에 넣고는 혀를 내둘렀다.
“당가의 은원은 세상 무엇보다도 확실하다더니.”
청풍에 이어 매화검수들이 그 피독단을 받아 삼키자마자, 전장의 한복판에 있던 그들의 위로 드론 편대가 드넓게 퍼져 지나가며.
취이이이익—
······끔찍한 극독의 강우를 가감없이 지상에 쏟아냈다.
시체들이 뛰는 속도보다 빠르게 퍼져나가는 극독의 안개.
당가에서 운용하는 공격 드론의 편대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극독과 강산에 머리가 녹아내린 시체가 저들끼리 끔찍하게 뒤엉켰다. 지옥 위에 또 다른 형식의 지옥이 생겨났다.
더해서, 하늘을 날던 비행형 시체들 역시도 비슷한 꼴이 되었다.
푸부북···!
드론의 전면에서 극독이 발린 세침과 암기들이 쏘아지더니, 비행하는 시체들의 눈알과 피막을 꿰뚫고 들어갔다. 독은 순식간에 퍼져나가 시체의 움직임을 무력화시키고 결국에는 머리와 목을 녹여 숨통을 끊어 놓았다.
그 덕에, 앞서 길을 뚫던 청풍의 양 측면에 넓은 공간이 생겼다. 청풍은 기세를 더욱 격하게 몰아치며 속도를 높였다. 금속보다 단단한 피륙을 자랑하는 시체도, 어디선가 구한 검을 들고 있는 시체도, 청풍의 매화검 앞에서는 얇은 종이처럼 잘려나갔다.
그러나, 죽음이 두렵지 않은 시체들은 끝없이 빈 공간을 채우며 꾸역꾸역 화산의 앞을 막아섰다. 검으로 오십 마리를 베면 백 마리가 새로이 나타난다. 때문에 청풍의 독보적인 무위로도 전진이 더뎠다.
[ 도와드리죠. ]
청풍의 귓전으로 들려온 전음.
당가의 무인들도 캐리어에서 지상으로 뛰어내렸다. 그렇게 당가의 선두를 맡은 당령이 정확히 지면을 밟았을 때.
스아아아악—!
한순간, 세상의 막대한 기운이 어느 한 지점으로 빨려들어가 응집되었다. 사천당가의 캐리어와 드론들이 밀집해있던 바로 위쪽이었다.
“?”
대열에서 가장 뒤처져 있던 매화검수와 지상에 내린 당가의 무인들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을 시점에는, 이미 어떠한 대규모의 마법진이 허공을 선명히 채우고 있었다.
최신식 광학미채를 탑재한 초호화 캐리어가 준비하던 마법진과 함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저명한 교수이자 발할라의 대부호.
론 카산드라의 캐리어.
— ······.
곧, 기하학적인 마나 문양들이 마법진 사이로 줄기차게 뻗어나가 하나의 복잡한 식을 완성했다.
대규모 마법진에 마력을 흘려 넣던 마법사들.
그러니까 론 카산드라 교수를 필두로 한, 발할라 시립 아카데미의 교수들은 일제히 자신의 마력을 폭사해 마법진의 발현 조건을 갖추었다.
이윽고, 그 대규모 마법진이 여러 개로 분열했다.
분열한 마법진은 전장 곳곳으로 흩어졌다.
달이 여러 개 떠오른 듯 서서히 밝아지는 전장. 그 마법진들은 사물을 비추는 거울처럼 서로의 진을 비추며 잘게 진동하더니······
갑작스레 희멀건 빛을 쏟아내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였다.
콰아아아아아—
흩어진 마법진에서 일거에 터져나온 희멀건 빛이 시체로 가득한 대지를 살라먹었다. 청풍의 눈과 귀가 잠시 멀어버릴 정도로 장대한 빛무리.
과거 대전쟁 시절, 무인들을 벌벌 떨게 만들었던 광역마법의 정수.
“······마화경(魔華鏡).”
고강한 경지의 마법사들이 몇 시간이나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대량학살용 마법진은, 광대한 지역에 희멀건한 빛의 폭격을 떨구고 나서야 부스스 사라졌다.
한바탕 휘몰아치던 마력의 후폭풍이 지나가자, 대지를 까마득히 메운 시체들의 수가 확실히 줄어들었다.
또한.
— 아오, 썅! 씨발! 뒈져! 들러붙지 마!
콰과광!
갑자기 어디선가 걸걸한 욕설이 들리더니, 노을과도 같이 밝은 홍염이 일어나 시체들의 잔당을 불태워버리기도 했다.
“······?”
그에 청풍은 귓전까지 들려온 그 목소리와 익숙한 마력에 잠시 흠칫했다. 그러나 시체를 도륙하는 매화검은 멈출 기색이 없었다.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앞을 막아서는 시체를 모두 베어버리자 어느덧, 청풍은 탈출로로 낙점해 놓았던 진법의 앞까지 도착했다.
매화검수들과 당가의 무인들이 속속 도착했고, 잠시 분별없이 몰려드는 시체들을 베어내며 기다리고 있자니.
챙강!
무형의 불길이 일듯 어지럽게 일렁이던 공간에서,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중년의 사내가 다급히 빠져나와 고함을 질렀다. 대단히 강한 마법사였다. 그는 주변에 있는 화산과 당가의 무인들에겐 신경조차 쓰지 않을만큼 상황이 급박해보였다.
“이런 병신같은! 피에 닿으면 감염이다! 빨리 튀어나와!”
고함지르는 마법사의 전신에서 푸른 마력의 불길이 토해졌다.
그에 화답하듯 흉터 가득한 마법사의 뒤로, 수백 명에 이르는 사람들과 일단의 마법사들이 따라나왔고.
진법이 다 깨져버릴 쯤 되어 마지막으로 레반이 빠져나왔다.
화색을 띤 청풍이 진법에서 빠져나온 레반을 반겼고.
“오래도 기다렸는데, 이제야 나오셨소 형자—”
쑤욱!
“······.”
부지불식간, 거대한 기둥이 레반의 머리 위로 내리꽂히더니 청풍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잠깐 봤던 레반 대신, 잘린 촉수와 연골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기둥’ 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파루무치의 거대한 발이 진법에서 빠져나온 레반을 즉시 벌레처럼 짓밟고도 모자라서 깊은 땅속까지 끌고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콰지직!
용이 승천하듯 오색 광채를 뿜는 실선이 소용돌이치며, 근육과 살점이 박동하는 발을 뒤늦게 갈라냈다.
그 쩍쩍 갈라진 피륙의 상처 사이로, 검붉은 혈액을 흠뻑 뒤집어쓴 레반이 실실 웃으며 빠져나왔다.
“그래, 청풍이냐.”
“놀랐소 형장! 해후나 나눌 때가 아니오!”
가쁜 숨을 내쉰 청풍은 이제야 대답한 레반과 함께 이동했다. 먼저 진법을 빠져나온 마법사들과 뒤따라온 당가의 무인들이 주민들을 이끌고 돌아갈 길을 내고 있었다. 저곳까지 합류해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콰아아아아아아—
헌데, 갑자기 하늘이 심히 어두컴컴해지고 몸이 극히 무거워 지기에 청풍은 무의식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기에는 어두운 하늘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애석하게도 하늘이 아니었다.
하늘에 뼈와 살점, 관절이 붙어있을 리 없고.
촉수가 뻗어나와 다리를 붙잡을 리도 없으니.
“······.”
하늘이 아닌, 파루무치의 거대한 손바닥이 벌써 그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로 압도적인 요기. 닿기도 전에 무릎 관절부터 틀어지는 것만 같은 지대한 풍압. 바닥에서 뻗어져 나와 발을 묶는 질긴 촉수. 첩첩산중이다.
‘이런.’
자하신공을 전신에 짙게 두른 청풍마저도 그 막대한 압박감과 상황에 찰나간 멈추어버렸다.
그러나.
팟!
창졸간 그들과 거대한 손바닥의 사이로, 흰 얼굴에 황제같이 길고 화려한 관을 쓴 사내가 홀연히 나타나 긴 의복을 휘날렸다.
번쩍이는 보석들로 장식한 의복에 뒷짐을 지고 허깨비처럼 나타난 사내의 기백이, 못내 익숙하며 참으로 친숙했다.
화려한 의복에 창백하게 흰 얼굴을 한 사내.
독고웅백.
까딱-
“큭, 형장!”
외형을 드러낸 독고웅백이 가볍게 고개를 까딱이자, 청풍의 뒷덜미를 집어든 레반이 순간적으로 쏘아졌다. 그들은 어느새 손바닥의 범위 바깥에 있었다.
속도를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진 레반과 청풍의 옆에서 부적을 쥔 언평이 기다렸다는 듯, 하얀 구름을 밟고 내려와 흥건한 피와 달라붙은 요기를 그들의 몸에서 벗겨냈다.
뒤이어.
풍압이 역류해 올올이 들고 일어나는 지대에 홀로 남은 독고웅백이, 지상으로 떨어지는 파루무치의 거대한 손바닥을 정면으로 맞이했다.
허공을 답보한 독고웅백의 맨주먹에 무형(無形)의 기운이 맺혔고,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투기와 섬찟한 기백이 일대에 내리깔렸다.
이내.
10레벨의 무인이 전력을 담아 내지르는 궁극의 일권(一拳)과 네임드 파루무치의 손바닥이 서로의 공간을 짓누르며 충돌했다.
————!!!
허공이 터져 찢겨나가는 듯한 굉음이 지나가고.
손바닥이 통째로 터져나간 파루무치의 거체가 균형을 잃고 기우뚱 거리더니, 통나무 넘어가듯 뒤로 넘어갔다.
쿠구구구구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