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닭장이잖아
#134화.
소곤대는 목소리.
- 형님, 뒈질 것 같은데 혹시 토해도 됩니까?
- 참아라. 그게 다 가오와 직결되는 거다. 당당하게 나가서 맞아놓고 참다 참다 토하는 것만큼 쪽팔린 게 없다.
- 무슨 힘이······아무래도 명치를 너무 세게 맞은 것 같아요. 진짜 죽이려고 때린 것 같은데.
- 9레벨이 죽일 마음으로 때렸으면 이미 죽었지.
- ······아니, 9레벨이었어요? 그걸 왜 이제 알려주시죠?
- 나도 너 두들기는 거 보고 눈치챘다.
- 그전부터 알고 계셨던 것 같은데······.
- 조용히 해라.
루돌프놈이 아프다며 소곤대는 지금.
황금빛 플라자 빌딩 최상층에는 여덟 명의 인영이 어둑한 원탁(圓卓)앞에 둥글게 앉아 있었다.
뷔에탕과 일레힌 포이체카 마탑주도 당연히 저 원탁에 자리해 있었고, 나를 비롯한 수십 명은 뒤로 한 발 물러나 원탁의 결정을 지켜보는 상황이었다.
과거 카스트라 뷔에탕과 마탑에서 한바탕 일을 벌였던 마탑주이니만큼, 이것이 딱히 반길 법한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외부의 적이 이미 로키 시티 내부까지 쳐들어와 똬리를 틀어버린 이상, 이 안에서 과거의 일로 반목하는 것은 실로 멍청한 짓.
일단 힘을 합쳐 살아남아야 후에 지지부진한 결착을 맺든 말든 할 것 아닌가.
그러니 특별한 일이 없다면, 이 원탁대담은 본인의 세력을 지휘할 결정권을 가졌거나 강력한 무력을 보유한 저 9레벨 초인들을 중심으로 돌아갈 듯했다.
9레벨급의 강자 여덟 명.
로키 신동경의 패자.
마피아 조직의 보스.
전 십이제 출신. 카스트라 뷔에탕.
— 나 모르는 아이 있나?
많은 수하를 거느린 대군벌의 수장.
루돌프 녀석을 두들겨 벽에 처박아 버린.
수많은 흉터 사이로 욕심이 그득한 장년.
— 딜런 주키치다.
여인치고는 꽤 큰 키에 깊고 또렷한 눈매.
긴 머리칼을 치렁하게 늘어뜨린 무뚝뚝한 중년.
메가콥 종남(終南) 코퍼레이션 소속.
— 나 종남의 천려일이오.
전신에 진짜 도사같은 현기가 철철 흘러넘치는 청년.
십이제의 수좌인 진공진인과 같은 배분의 고수.
메가콥 무당(武當) 코퍼레이션 소속.
— 원시천존을 모시는 진천일세.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얼굴이 붉은 노인.
찌르기에 특화된, 가느다란 형태의 검을 찬 고수.
무림계 대기업, 구파일방 점창 소속.
— 육장도요.
청록빛의 마력을 가진 9레벨의 마법사.
발할라 산맥, 여섯 번째 봉우리의 주인.
마탑주.
— 일레힌 가의 포이체카입니다.
과묵한 인상에 학구파적인 외모의 소유자.
발할라 산맥, 다섯 번째 봉우리의 주인.
마탑주.
— 무뇨즈 투르쿤.
마지막으로, 무림계도 아니면서 냉병기를 들고 다니는 사내.
단전 대신 회로를 이용해 검을 다루는 마법계의 기사.
검주(劍主).
— 로저 슈베른입니다.
군벌 둘, 무림계 셋, 마법계 셋.
이윽고, 생존을 위한 그들의 토의가 시작되었다.
* * *
일가를 이룬 9레벨의 대단한 초인들이라도, 일단은 사람인지라 각자가 지닌 특유의 성정이 있다.
우선 점창의 육장도는 초장부터 고요한 침묵으로 일관했으며 검주 로저 슈베른은 그저 묵묵한 눈빛으로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둘은 중립에 가까워 보였다.
다섯 번째 마탑주인 무뇨즈 투르쿤도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일단 9레벨이 여덟이나 있는 만큼, 의견을 미뤄두고 지켜보는 이들도 필요했다.
심유한 현기를 지닌 무당의 진천진인과 종남의 여검수 천려일. 그들은 말수가 없는 것은 아닌데, 어딘가 결이 비슷하게 맞는 고수들인데다 그들 사이에는 묘한 유대감이 있었다. 아무래도 같은 무림계의 명숙이니 안면을 터두었을 것이다.
종남 코퍼레이션의 천려일이 입을 열었다.
“신동경을 수성하면서 연방 정부의 지원을 기다려보는 건 어떠한가. 시티를 먼저 탈출한 이들이 사안의 심각성을 백방으로 알리고 있을 터.”
그러자, 거만한 태도로 원탁에 발을 올려놓은 딜런은 쓰게 웃더니 부정적인 소리를 잔뜩 늘어놓았다.
“큭, 뻔한 소리 하긴. 이제 시티 스테이션은 완벽히 시체 놈들의 점령지다. 로키에 남아있는 거라곤 신동경 구역 한 곳. 장벽을 지키던 광역보호막까지 무너진 판에 지원? 와줄 리가. 그리고 아까 하늘을 둥둥 떠다니던 그 손가락같은 괴물이 더 있으면 어차피 캐리어는 진입도 못하고 다 박살난다. 그냥 좆된거라고.”
그 말에 뷔에탕의 인형도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차라리 로키의 칠좌를 찾는 게 더 빠를걸.”
“칠좌. 그래!”
딜런이 못마땅한 얼굴로 걸걸하게 소리를 질렀다.
“시티마다 한 명의 칠좌가 지키는 게 연방이 내건 룰 아니었던가? 대체 로키 시티에 있는 칠좌인 능광객(凌光客)은 어디에 있는 건지 도통 모르겠군. 변절이라도 했나?”
무당의 진천진인이 입을 열었다.
“그분께서도 무언가 방도를 찾고 있지 않겠소.”
“능광객과 같은 무림계라 그런지 이해심이 넓네.”
“무림계라는 틀에 가두기에는 고절한 경지를 이룬 고인이라, 그리 편협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소만.”
“무당의 진자배 검수도 능광객을 불러낼 능력이 없나?”
“없소.”
“당신 대신 진공진인이 왔으면 좋았을걸. 아쉽군.”
“······.”
못마땅한 시선으로 딜런을 응시하는 진천진인.
몸에서 풀풀 흘러나오던 현기가 심상찮게 일렁였다.
그때, 누군가 과열되는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이 말했다.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이 네임드 가륵인가?”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 로키의 칠좌를 탓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좋은 선택이었다.
가륵의 이름이 나오자, 카스트라 뷔에탕이 마탑주를 보며 물었다.
“일레힌 꼬맹아, 아까 그 두 연놈 봤지?”
손가락 군집을 죽인 뒤에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뷔에탕의 인형이 난입해 막아선 두 개체를 말함이었다. 마탑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인 언데드들과는 지닌 격이 달랐다.”
“남성체쪽이 가륵이야. 일전에 혈액을 받을 때 한 번 봤거든. 여성체는 나도 모르는데 딜런은 혹시 알고 있을지도?”
“나는 피같은 거 안 받았다. 더럽게 찝찝해서 말이지. 그나저나······.”
그 말을 끝낸 딜런의 눈매가 매섭게 빛나더니, 무림계와 마법계 인사들을 향했다. 그의 흉터 가득한 낯이 일그러지더니 짜증이 난다는듯 또 원탁을 내리쳤다.
쾅!
“연방이 가륵 그 피 뿌리는 놈도 잡고 군벌까지 덤으로 토벌할 생각이었다면, 라그나로크 때처럼 십이제급도 딸려보냈을 거 아뇨. 정말 당신들이 다야? 가륵 그 개자식이 몇 레벨인지도 정확히 모르는데?”
반대편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딜런은 반응이 없자 공쳤다는 듯 코를 팽 풀고는 인상을 구겼다.
그는 곧이어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왜 말들이 없어? 양쪽 패 다 까고 협치해야 계획을 세우든지 할 거 아냐.”
딜런이 신경질적으로 연기를 내뿜자.
점창의 육장도가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것이 어째서 궁금한가. 마땅한 이유가 있을 것을.”
촤르륵—
곧 육장도는 원탁을 짚고 일어나 유리창의 커튼을 걷더니, 저 멀리서 곧추서있는 눈깔 괴물을 조용히 응시했다. 심유하면서도 쉽게 접근키 힘든, 엄숙하기까지 한 육장도의 기백.
점창의 무인들은 극한의 쾌검을 추구한다. 그러니 경지에 이른 점창의 무인이 앞에 있다면, 눈을 감는 것은 금물이다. 전신 구석구석에 구멍이 뚫려 피를 쏟기 싫다면.
“······.”
곧, 육장도는 저벅저벅 돌아와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단지 몇 걸음 움직이는 것만으로 공기를 무겁게 만드는 무인. 이 자리의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노고수였다.
육장도의 착석과 동시에, 원탁의 눈동자들이 딜런에게 해명을 요구하듯 몰려들었다.
“설마 저 한 마디에, 날 변절했다 의심이라도 할 건가?”
“그런 것은 아니니 이해하시게. 이 늙은이가 과했네.”
“···쯧, 노망났나.”
시종일관 꽤 거침없는 태도를 견지하던 딜런은, 찜찜한 얼굴이 되어 혀를 끌끌 찼다.
갑자기 짙은 긴장감이 장내의 공기에 서려든 듯했다.
그리고 그때쯤, 일레힌 포이체카와 다섯 번째 마탑주의 시선이 교차했다.
“신동경을 지켜도 지원을 기대하지 못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탈출하는 게 맞겠습니다.”
“마침 로키와 지척인 거리에 얼마전 수복해둔 라그나로크 시티가 있지 않나.”
라그나로크 시티.
연방이 군벌 세력과의 마찰까지 각오하고 로키를 베이스캠프로 낙점했을 만큼 두 도시간의 거리가 가깝다.
만약 어딘가로 가야만 한다면 최선의 선택일 터.
하지만 딜런은 이번에도 흉터 가득한 얼굴을 격하게 가로저으며 반박했다.
“그야 캐리어를 타니까 지척이지. 육로를 가로질러 가려면 제일 짧은 루트로 가도 100km를 훌쩍 넘어간다. 일단 장벽 바깥까지 뚫는 것부터가 문제야. 우리는 이 좆망할 신동경에 꼼짝없이 갇힌 거라고.”
“풋, 제 발로 여기까지 걸어와 놓고 징징대기는.”
“그건 뷔에탕 당신이 스테이션을 쳐 틀어막아서—”
“아까 입조심하자고 한 말 혹시 못 들은거 아니지?”
“······.”
뷔에탕의 핀잔에 딜런의 눈썹을 심히 꿈틀거렸다. 하지만 별 대꾸는 하지 못했다.
같은 9레벨급이라도 그 경지와 능력은 천차만별.
뷔에탕은 9레벨 중에서도 굉장히 상위권에 위치해 십이제의 지위까지 올랐던 마법사. 아무리 딜런이 큰 군벌세력의 수장이고 9레벨이라 해도 힘의 차이는 확연한 것이다.
전 십이제라는 거물 앞에서는 유독 분노조절을 잘 해버리는 딜런. 나는 저자가 의외로 다루기 쉬운 상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맥을 툭툭끊던 딜런이 뷔에탕의 기세에 말려 굳게 입을 닫자, 그 뒤의 대화들은 직전보다 수월하게 흘러갔다.
평범한 이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똑똑하고 경험이 많은 자들이니, 순식간에 대책의 가닥이 잡혔다.
— 장벽의 사방면이 무너졌으니, 시체들은 끝없이 유입될 것이다. 삼존이라도 나타나 도와주지 않는 이상 라그나로크 시티로 탈출하는 게 현재로선 상수겠군.
— 동감입니다.
— 그렇다면 그리 실행하는 것으로······.
“저 밑바닥에 있는 로키 주민들은 어쩔 겁니까?”
그것은 문득, 원탁의 결정에 끼어든 나의 물음이었다.
카스트라 뷔에탕이 누구든 기탄없이 의견을 내라 했으므로, 원탁에 앉아있지 않은 이도 참여 못 할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여기있는 전원이 꽤나 높은 경지에 오른 강자들이니.
— ······.
덕분에 원탁에 둘러앉아 있는 9레벨들은 물론이거니와, 나와 함께 물러나있던 마탑의 인원들을 포함한 수많은 시선이 동시에 몰려들었다. 수백 개의 눈동자가 나를 샅샅이 훑으며 주목한다.
신동경으로 구름같이 모여든 저 주민들을 어찌할 것인가.
그것은 원탁의 참여자들도 끝끝내 직접적인 언급을 회피하던 안건이었다. 헌데 내가 나서 그 문제를 수면위로 끌어올린 것이다.
“라그나로크 방향으로 길을 뚫어 탈출할 거라면, 주민들과 함께 가로질러 행군해야 할 겁니다. 너무 많아서 몇 명인지 다 셀 수는 없겠군요. 철저한 계획을 꾸려봐야겠습니다.”
그렇게.
원탁의 참여자들이 무언가를 고심하는 듯 입을 굳게 다문 통에 참으로 무거운 정적이 일었으나, 이번에도 역시 딜런이 먼저 나서 입을 열었다.
“좋네, 주민들을 미끼로 쓰면 되겠어.”
“최대한 살려보자는 뜻으로 말한 겁니다.”
“우리가 왜 그래야 하지? 연민인가? 약자에 대한 동정?”
신동경의 길거리에 가득찬 주민들을 내려다본 딜런이 이번에는 꽤 진중한 태도로, 굉장히 단호하게 경고했다.
“못 데려가니까 주둥이 닫아. 그리고 네놈, 누군지는 관심없는데 혼자 잘났답시고 같잖은 위선 떨지 마라. 다 같이 죽어서 시체꼴 되고 싶은게 아니면.”
“눈알 대신 불알을 뽑아 넣어둔 것이 맞군.”
“!?”
흐흐—
나는 딜런을 보며 터져나오는 실소를 도무지 참지 못했다.
아무리 무법지대인 로키에서 살아가던 군벌이라지만, 그래도 9레벨의 경지에 올라있다는 놈이······
“무슨 다섯 살짜리 계집애인 줄 알았다. 아까는 제 감정도 못 이겨서 탁자 부수고 아주 사내다운 척 염병을 다 떨더니, 주민들도 데려가자는 의견이 나오자마자 갑자기 이성적이고 냉철한 면모를 갖춘 척을 하는군. 아무리 봐도 계산적으로 행동할 얼굴은 아닌데.”
“······이 애송이 새끼가!”
대놓고 면박당한 딜런은 자신의 기운을 일으키려다 무의식적으로 뷔에탕의 눈치를 살폈다.
치익-
결국 포기하고 원탁에 담배를 비벼 끈 그는, 한숨을 내쉬며 같잖은 표정으로 나를 주시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무당의 진천진인이 불쾌한 낯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소협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외다.”
“그렇습니까?”
나는 한 발 더 옮기며 원탁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대답하려던 나 대신.
카스트라 뷔에탕이 진천진인을 비웃으며 핀잔을 주었다.
“무당벌레, 당신이나 끼어들지 마. 쟤가 누군지 알기나 해?”
“······허.”
“그리고 아무나 기탄없이 참여하라는 말 못 들었어? 난 재미있으니까 계속하게 내버려둬.”
곧, 입꼬리가 올라간 인형의 눈동자가 이쪽을 향했다. 마치 어떻냐며 인정 받고 싶어하는 것 처럼. 괜히 피부 위로 벌레가 기어가는 느낌이 들었으나, 사내라서 참아낼 수 있었다.
“······.”
나는 여덟이 모인 원탁 앞까지 다가갔다.
나라는 사내는 직전에 찾아왔던 번뇌를 미련없이 잘라두고 각오를 다졌으므로 상당히 감성적이며 쾌속했다. 말하려는 것은 내가 경험했던 일이기도 했다.
“버려지면 무슨 기분일지 생각은 해 보셨습니까.”
그야 진지하게 염두에 두었을 리가 없다.
훌륭한 재능과 좋은 사문을 타고나 여기까지 올라온 자들 아니던가? 구름 위를 노니는 자들의 눈에 땅을 기어다니는 개미까지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다.
— ······.
“어느 한쪽에서는 시체 사냥꾼이 시체로 변해버린 동료들을 잊지 못하여 장벽 밖으로 나가 목숨을 태우고, 마약이나 팔아먹던 악덕 메가콥의 원로마저 목숨을 내걸고 동귀어진해 창창한 후배들을 구해냈으며, 출가한 수도자가 십수 년 만에 수도계로 돌아와 변절의 길을 걷는 부모를 죽이고 새로운 하늘을 열어보려 고군분투 중인 세상인데······.”
— ······.
“이쪽에서는, 참.”
쾅!!!
그 순간, 거대한 장력에 두꺼운 원탁이 두 개로 쪼개졌다.
두꺼운 손바닥을 위협적으로 털어대는 딜런이었다.
그는 부러질듯 이를 부득 갈더니 고함쳤다.
“헛소리 늘어놓지 마라! 현실도 모르고 이상만 좇는 애새끼.”
“가륵의 피도 찝찝하다며 받지 않고 아직까지 사람으로 남은 놈이, 저 셀 수도 없는 사람들을 전부 내쳐버리고 떠나 살아남으면 앞으로의 인생은 찝찝하지 않고 즐거울 것만 같나?”
“······.”
“어차피 닭장이잖아.”
딜런의 달아오른 안면을 보자.
나는 이유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을 또 참지 못했다.
“로키에서 도망쳐봐야 똑같은 닭장인데. 즐거우면 뭐 얼마나 즐겁게 살겠다고.”
* * *
수장들의 원탁이 진행되는 황금빛 플라자 최상층.
그보다 위.
백색의 긴 장포를 두른 채, 플라자 빌딩 옥상에 서있던 자가 일순간 휘영청한 안광을 빛냈다.
그자의 전신에서 아득한 무형의 기세가 폭사하며 뻗어나가더니, 저 멀리에 등대처럼 솟아있던 눈알 시체의 허리를 그대로 잘라버렸다.
꽈과과광—!!!!
주먹만 한 눈알들이 잘 익은 열매처럼 쏟아져 내렸다.
이윽고, 백색의 장포를 두른 자는 무너지고 타오르는 로키의 장벽을, 로키 시티의 가장 위에서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렇게 보니, 정말로 닭장같군.”
투둑-
그때, 장포의 발치로 떨어지는 진득한 핏물.
사색에 잠겨 무언가를 관조하는 그의 손에는 척추뼈가 통째로 뽑혀나온 머리 두 개가 잡혀있었는데-
그것은, 언뜻 보면 인간으로 오해할 정도로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남성과 여성의 시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