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대책회의
#133화.
우리는 신동경을 향해 날듯 쏘아지고 있었다.
슬쩍 뒤쪽을 돌아보자, 두 괴물의 앞을 막아섰던 뷔에탕의 인형들이 아주 가루가 되어 갈려나가고 있는 게 어렴풋이 보였다. 꽤 강한 마력을 보유한 인형들이었는데······.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우리 일행의 선두는 루베르겐 집행관이었다. 그는 앞을 꾸득꾸득 가로막는 시체들을 거검으로 갈라 뭉개버리며 길을 만들어냈다.
로키 시티는 이미 절반 이상 무너져 내렸다.
조명이 부서지고 꺼졌거나 불길에 휩싸여 무너지는 건물과 상가들,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입가에 사람 피를 덕지덕지 묻힌 채 기고 뛰고 나는 시체들뿐.
“······.”
지금까지 로키 전역에서 몇 명이나 죽었을까.
수십만 명? 아니면 수백만 명? 헤아릴 수 없겠지.
사람 목숨이란 것이 참으로 허무하게 스러지고 있다.
콰지직!
— 게헥.
순간, 땅 밑에서 기어 올라오려던 놈을 진각으로 밟아 죽였다. 사람보다는 작으나 팔이 길고 어깨근육이 발달되어 있으며 손에는 날카로운 갈퀴가 나있는 시체였다. 일명 두더지라고 불리는 종류.
무덤덤한 살육이 이어지는 와중에 내가 입을 열었다.
“돌프야, 시체가 창궐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두 번째가 뭔지 알고 있냐? 달리기 다음으로 중요한 거.”
옆에서 달리던 루돌프놈이 못생긴 얼굴을 찡그리며 성을 냈다.
“······도망칠 때 쓸 미끼요?”
“이제는 단번에 맞추는구나. 감이 좋아.”
“절 계속 시체놈들 있는쪽으로 은근슬쩍 밀고 있지 않습니까. 좀 적당히 하시라고요.”
시체놈들은 평범한 인간이 아닌 루돌프 녀석에게 그리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딱 봐도 맛이 없어 뵈는 탓이다. 그래도 시선 끌기에는 괜찮을듯 했다.
“돌프야, 넌 물려도 감염 걱정이 없잖아. 저런 허접한 놈들이 물어봐야 얼마나 아프게 물겠니.”
“왜 제 마음이 다치는 건 걱정을 안 해주시죠? 그리고 미끼가 필요하면 백리뇌절인가 하는 저 새끼를 쓰면 되잖습니까.”
“저놈은 법기일 뿐이라 미끼로 써도 의미가 없다.”
“와 새끼, 꿀을 드럼통으로 빠네. 늦게 합류한 놈이 제일 빠져가지고. 정크타운이었으면 뒈졌다 진짜로.”
그러자 종후표가 비웃듯 말했다.
“백리뇌부다. 모자란 놈.”
“모자란 놈? 목매달았는데 안 죽는다고 엉엉 울고불고 지랄염병하다가 두들겨 맞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누구더러 모자란—”
“돌프야, 저기 뭐 온다. 조심하렴.”
“?”
터업!
“아악!”
갑자기 길가 건물에서 고무줄처럼 뻗어나온 손에 잡혀 질질 끌려간 루돌프가, 구슬픈 비명을 지르며 집단린치를 당했다.
그아아악—
피냄새를 맡은 피라냐처럼 순식간에 몰려든 시체들이 루돌프의 위로 층층이 쌓이며, 사정없이 박아넣는 이빨과 더러운 손톱들.
그런데 이빨을 박아넣고 질겅이던 시체들은 시간이 지나자 하나 둘 떨어지더니, 금세 흥미를 잃어버린 듯 등을 돌렸다.
“······.”
이윽고, 잡혀갔던 녀석은 굉장히 볼만한 칠흑빛의 짐승으로 변해서는 돌아왔다. 방정맞은 입도 꽤 조용해졌다.
나는 콧김을 쒹쒹대는 루돌프를 군마처럼 타고 달렸다.
우지지직—!
전장을 내달리는 기병이 되어, 양옆으로 덤벼드는 시체들을 썰어버린다. 슬레모킨이 다루는 짐승과 나란히 내달렸는데도 루돌프 녀석은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로 신속했다.
‘점점 탈것의 모양새를 갖춰가는군.’
아무튼, 나와 루돌프놈이 가라앉은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어쩔 도리 없이 침울했다.
자그마치 8레벨의 마탑 소속 마법사가 시신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었기에. 라그나로크 시티 수복전에도 참여해 살아남았던 마법사가 오늘일로 죽은 것이다.
“후우······.”
누군가의 착잡한 한숨이 크게만 들렸다.
그러나 마탑의 마법사들은 침울한 와중에도 평정을 유지했다. 그리도 강대한 개체와 혈투를 벌이고도 한 명만이 죽었다. 사실 이 정도 피해라면 사정이 굉장히 좋은 편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신동경과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런데, 신동경에 가까워지자 웅성거림과 소란이 점차 커졌다.
마치 개미 떼처럼 새카맣게 보이는 인간들의 머리통.
온통 날벼락을 맞은 로키의 주민들로 꽉꽉 들어차 있는 길거리였다. 신동경으로 대피하려는 피난민들로 인해 근방의 길거리들은 죄다 난장판에 아수라장으로 변한 것이다.
도롯가는 버려진 차량들로 인해 틀어막힌 지 오래였고, 밀려 넘어진뒤 군중의 발에 밟혀 죽은 희생자들이 셀 수도 없었다.
타앙!
— 아아악!
하늘까지 울리는 총성과 날카로운 비명의 조화.
신동경으로의 피난길에 오른 주민들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백만 명은 넘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 공권력이 제대로 작동하는 도시가 아니라 통제가 일절 없으니 오롯한 혼란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게다가, 애매하게 힘이 있는 놈들이 무리를 이뤄 먼저 신동경에 들어가겠다며 군중을 밀치고 밟고 주접을 떨고있지 않은가. 하기야 저것보다 더 능력있는 놈들은 진작에 신동경으로 들어갔겠지.
수위 높은 폭력과 새치기, 무질서가 성행하는 현장.
— 비켜! 비키라고 이 새끼들아!
— 뒤지고 싶어?
— 괴, 괴물이다!
설상가상으로 어딘가에서 시체를 보았다는 비명까지 들려오자 밀집된 군중은 이쪽저쪽으로 우르르 쏠리며 고래를 피하는 정어리 떼마냥 움직였다.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는데도,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상황.
“······.”
저 모든걸 통제할 수는 없겠으나, 살아남은 주민들이라도 멀쩡히 신동경에 집어 넣으려면 누군가 질서를 잡아줄 필요성이 있다.
금방 판단을 끝낸 나는 마탑의 대열에서 잠시 벗어나 몸을 띄우고는 그리로 향했다.
쾅!
우선 새치기를 일삼으며 주접을 떠는 놈들 몇을 쥐어패서 던져버리자 주변이 약간은 조용해졌다. 하지만 몰려든 주민들이 많아도 너무 많은지라 고작 이 정도로는 질서를 바로 세우기에 부족했다.
결국, 특별히 적당한 놈을 선정해서 공중으로 띄웠다.
— 이거 갑자기 뭐·····
이런 난리통에도 아이를 겁탈하던 정신병자였다. 놈은 버둥거리며 서서히 떠올라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펑!
나의 손가락 끝에서 곧게 뻗어나간 지풍은, 공중에서 버둥대던 놈의 대가리를 할로윈 호박폭죽처럼 터뜨리기에 충분했다.
— ······.
그러자 갑자기 한겨울이 찾아오기라도 한 듯, 적어도 근방 수백 미터가 조용해졌다. 병목현상이 일어나 꽉 막혀있던 도로들도 찬물을 끼얹은 듯 천천히 싸늘해졌다.
— 씨, 씨발! 뭐야!
나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방금 전에 길을 막지 말라며 총을 난사한 놈을 집어 마력으로 들어 올렸다. 놈은 숨겨둔 재간이 있는 놈인지 급히 경공을 펼치며 벗어나려했다.
다만, 아무 소용없는 발버둥이다.
쐐애애액—
공력을 주입한 광선을 곧장 집어던졌다. 오색빛 잔상을 남기며 직선으로 쏘아진 칼끝이 놈의 대가리를 반으로 가르고 지나갔다.
이윽고 쏘아진 검을 마법으로 회수해 손에 쥐자, 이제는 싸늘하다 못해 기이할 정도로 고요한 정적이 찾아왔다.
하기야 난데없이 나타난 놈이 몇 명을 허공에 띄워 대가리를 박살내 버리니, 그 충격이 어마어마할 것이었다. 흥분한 주민들을 진정시키는데 일 분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것은 이른바 ‘튜토리얼 요정’ 작전이었다.
나는 광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낙천적으로 입을 열었다.
“반가워요. 나는 레반, 여러분을 도와주러 왔습니다.”
마법으로 음성을 증폭시키자 어지간한 사이렌 소리보다도 내 밝은 목소리가 크고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졌다.
“제가 이제부터 발언을 하려는데, 불만 있으신 분? 이리 앞으로 나오세요.”
— ······.
“없죠? 아직 시체가 여기까지 도달하진 못했으니, 새치기 말고 차례를 지킵시다. 무엇보다 방금 두 놈처럼 뒈질 짓 하지 마세요. 내가 계속 지켜보고 있으며······아까 히죽대면서 사람 몇 칼로 쑤시고 도망친 놈. 거기 숨어 있는다고 해서 내가 모를 것 같았나?”
펑!
그 말을 끝으로 눈여겨 보아두었던 한 미친놈의 머리통까지 터뜨린 뒤, 4층짜리 상가 건물을 장력으로 무너뜨려 외곽으로 통하는 도롯가를 막아버렸다.
나는 미련없이 몸을 돌려 마탑에 합류했고.
얼마 뒤에는 신동경의 경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새 바리케이트를 쳐뒀군.”
손가락 군집을 때려잡는 동안, 신동경의 경계에는 어느새 커다란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었다. 차량이나 가재도구같은 온갖 물건까지 다 끌어모아 경계부근에 조잡한 바리케이트를 쳐둔 것이다.
그리고 조잡한 바리케이트 위에서 사방을 경계하는 것들이 보였다. 하나같이 뷔에탕의 기이한 마력이 느껴지는 인형들.
검은 수트를 차려입고 있는, 적어도 세 자릿수 이상의 인형들이 기이한 안광을 빛내며 바리케이트에 접근하는 주민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어지간하군. 인형이 아직도 저렇게 많이 남아있나?’
내가 그 인형들을 지나쳐 신동경의 경계를 통과하자, 온 사방에서 신동경으로 진입해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신동경도 바깥 만큼은 아니지만 혼란스러웠다. 다행히도 카지노나 호텔, 각종 숙소와 객점등이 유난히도 많은 거대 유흥도시라 피난온 주민들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은 되었다.
다음 순간.
“흐음.”
종후표가 신동경의 풍경을 쭉 둘러보더니 말했다.
“당장은 여분의 전력과 연료가 있거나 발전기를 돌려 현상을 유지하는 듯하지만, 신동경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면 전력 공급이 오래가진 못하겠군. 도시가 어둠에 잠기는 순간 전부 끝장이다. 식량도 마찬가지. 일주일만 지나도 도시는 텅텅 비어버릴 거다.”
현실적인 말이었다. 전기와 물, 식량. 기본적인 것들을 바랄 수 없는 사태였다. 끊기면 그대로 끝장이다.
“도시의 수용과 생산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살아남아 신동경까지 오는 로키의 주민들이 몇 명이나 될까. 어림잡아도 수백만에서 천만은 족히 될 테지. 상상이 가나? 감당할 수 없을 거야.”
종후표의 그 부정적인 말과 함께, 마탑 소속의 마법사들은 황금빛 플라자 빌딩 앞에 섰다. 거기에도 뷔에탕의 강력한 인형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8레벨급의 인형 하나가 우리를 보자 가로막은 입구를 열어주었다.
— 이쪽입니다.
우리는 무뚝뚝하게 길을 안내하는 인형의 인도를 따라 플라자의 최상층으로 올라갔고.
플라자 최상층에 이르자, 별세계가 펼쳐졌다.
‘그새 이 비좁은 곳에 다 모여있었군.’
그곳에는 하나같이 굉장한 기운의 소유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카스트라 뷔에탕이 인형을 이용해 신동경으로 불러모았을 강자들. 어지간한 이들은 최상층에서 풍겨오는 기백만으로도 까무러칠 만큼 기운의 밀도가 짙다.
확실한 9레벨급 이상의 강자만 따져도 여덟은 될 듯했다. 한 도시의 초강자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놓으면 이런 느낌일까?
나의 피부로 와닿는, 소름 돋을 정도로 살벌한 시선들.
지금, 저들의 기세는 하나같이 흉흉했다.
“······.”
헌데 저들이 느끼는 우리 쪽도 비슷할 것이다. 옷가지에 마른 피를 덕지덕지 묻히고 들어온 마법사들. 연방 집행관에 슬레모킨, 일레힌 마탑주까지 눈을 번뜩이고 있으니.
쿵-
곧, 뷔에탕이 고아하게 손짓하자 문이 닫혔다.
물론 뷔에탕의 본신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었고, 또 예쁘장하게 생긴 인형에 옷을 입혀 앉혀 놓았지만 말이다.
그때, 침묵을 깨고 어떤 키가 큰 여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머리가 치렁치렁하게 내려와있는 무표정의 여인. 칼을 차고있는 점과 느껴지는 기세로 보아 무림계의 거물이 분명했다.
“인형사. 이제 필요한 인원은 다 모인 건가?”
말투와 기세가 아주 곱지는 않았다.
다들 예민해져 있음은 물론이고, 이들을 불러 모은 카스트라 뷔에탕은 연방 내부에서 공적이나 다름없는 위치이니.
그리고 연방이 표면적으로는 군벌 토벌을 이유로 세력들을 모아둔 만큼, 뷔에탕에게도 지분이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런 사소한 걸 따질 시점은 아니었다.
“아마도, 지금까지 안온 놈은 죽은 거라고 봐도 돼.”
곧, 뷔에탕의 아름다운 인형이 얇은 천옷을 나풀대며 붉은 입술을 열었다. 확실히 뷔에탕은 본신을 감추었을 때 주는 긴장감이 더 컸다.
“레탕 르포포이, 그 영감도 죽었어. 하여튼 기왕 이렇게 모았으니 토론을 하든 싸움을 하든 한시바삐 대책을 찾아냈으면 해. 그리고 시작하기 전에 저기 한번씩들 보고.”
촤륵- 깨진 유리창을 가려둔 커튼이 열리자.
장내에 있던 강자들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황금빛 플라자 빌딩 바깥쪽. 눈이 좋은 자들은 명확히 볼 수 있었다. 주먹만 한 눈깔 수천 개가 달린 괴생명체가 마치 등대처럼 길쭉히 선 채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
“눈깔 괴물 보이지? 아무래도 염탐하는 것 같은데, 직접 가서 죽이고 올 거 아니면 서로 큰 소리는 내지 말았으면 좋겠네.”
부디 입과 몸가짐을 조심하라는 일종의 경고였다.
그런데.
쾅!
여기 모인 이들의 소개도, 토의를 시작하기도 전에 누군가 탁자를 부서질듯 때리며 불편한 심기를 마음껏 표출했다.
얼굴에 칼자국과 흉터가 많으며 손이 솥뚜껑같이 두꺼운 장년의 남자였다.
“연방놈들이 갑자기 군벌을 토벌하네 뭐네 생 쇼질을 해서 상황이 이렇게 된 것 같은데, 뷔에탕 당신의 생각은 어떻지?”
장내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딜런.”
소리친 남자가 누구인가 하니, 로키의 일부분을 지배하며 신동경을 두고도 전투를 벌였던 군벌의 수장인 딜런이라는 남자였다.
말인즉 저 남자도 로키의 주요 군벌이라는 뜻.
게다가 손가락에 찢겨죽은 늙은 마법사와 수준이 비슷한 강자. 기백이 보통이 아니었다.
“우리가 왜 신동경에 쥐새끼처럼 모여있어야 하냐는 말이다.”
척 봐도 짐승처럼 사나운 사내다. 헌데 저리 공격적으로 분위기를 조져놓는데도 선뜻 나서서 말리기는 껄끄러운지, 딱히 제지에 나서는 사람이 없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내가 나서기로 했다.
대책을 세울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통 저런 자들은 기세 싸움에서 한번 밀리면, 끝까지 지랄을 떨어대는 부류였다. 쥐고 흔드는 걸 즐기는 귀찮은 부류. 심지어 9레벨급의 사나운 군벌 수장.
나는 전음을 이용해 루돌프놈을 부추겼다.
[ 돌프야, 저 등신새끼 입 좀 닥치게 해봐. ]
“······?”
[ 빨리. ]
고개를 돌리며 누가봐도 제가요? 라는 얼굴로 당황하는 루돌프놈. 나는 위협적으로 눈을 치켜뜬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
잠시 뒤, 정적이 이는 장내에서 루돌프놈이 내 가이드라인에 따라 입을 열었다.
“야, 야.”
“?”
그 양아치같은 부름에 딜런의 고개가 모로 돌아갔다. 루돌프놈에게서 정크타운의 진득한 향수가 느껴졌다.
“되도록이면 입을 닥치고 있어라. 지금 너만 좆같은 게 아니니까 분위기 개처럼 초지지말고. 혹시 네 눈구멍에 박힌건 눈깔이 아니라 불알이냐?”
“······.”
아마 기가 찰 것이다.
저딴 놈의 입에서 원색적인 욕설이 나올줄은 몰랐다는 듯, 할 말마저 턱 하고 막힌듯한 표정.
그러나 딜런은 곧장 삐딱하게 일어섰고.
콰과광—!
솥뚜껑같은 그의 손에서 창졸간 거대한 장력이 터져나와 루돌프의 명치를 후려쳤다. 북터지는 소리와 함께 포탄처럼 날아간 루돌프놈이 플라자 벽을 뚫고나가 복도에 처박혔다. 9레벨이 꽤 힘을 실어 뻗어낸 장력.
당연히 죽거나 기절했으리라 생각한 딜런이 무심히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부스스—
반신이 칠흑처럼 변한 루돌프 녀석은 무너진 벽에서 일어나더니 부스스한 먼지를 털며 내쪽으로 힘겹게 발을 옮겼다. 그리고 녀석은 보란듯이 찢어진 입을 슥 닦고는 말했다.
“존나 물주먹이네 씹새끼.”
피식-
“거, 재미있는 놈이군.”
남자는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는 다른 이들을 둘러보고는, 다시 제 자리에 앉아 거만하게 발을 테이블에 걸쳤다.
위력도 과시할 겸 두들겼는데 한참 약해보이는 놈도 제대로 못 거꾸러뜨렸다. 분명 비대한 자존심에 약간의 스크래치가 났을 것이나, 일단 관대한 척하며 넘기는 것이다.
아마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는데 억지로 참고 있으리라.
그렇게 간단한 드잡이질과 적당한 기세싸움이 끝나자, 뷔에탕의 인형은 이제 되었다는 듯 말문을 열어 장내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제 기탄없이 의견을 모아볼까? 어떻게 하면······.”
인형의 긴 속눈썹이 느린 속도로 깜빡였다.
“우리가 이 망해가는 로키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