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아포칼립스의 고인물 2
#130화.
나의 2회차.
좀비가 득시글하게 창궐한 아포칼립스 세계.
인간성을 진작에 버린 금수들만이 잘 먹고 잘 살아남던 아귀도.
꿋꿋이 인간성을 지키며 살아가던 이들은 멍청한 병신 취급이나 당하고, 언젠가 뒤통수에 벽돌이 꽂혀 다음날 누군가의 뱃속에 들어갈지도 모르던 세계.
주린 배를 쥐고 지나가던 꼬마를 보고는, 아이가 저대로 가다간 어차피 쓰러져 죽을 테니 차라리 우리 손으로 편히 보내주자. 그리고는 따뜻한 모닥불 위에 뉘여서······어쩌고저쩌고.
별 좆같은 놈들이 횡행하던, 대의명분(大義名分)에서 대의는 어디가고 얄팍한 명분만이 남아있던 세상.
물론, 그것조차 없이 사는 자들도 한트럭이었다. 외려 꼬마 쪽이 약탈자인 경우도 왕왕 있었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세계에도, 소수의 초능력자가 있었다.
힘으로 강철을 구부리거나 물체를 뇌파로 움직이는 염동력을 쓸 수 있던 자들.
영화 속의 히어로들만큼 대단한 능력은 아니었다지만, 좀비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초능력자들은 평범한 이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구원자였다.
그런데 아포칼립스 초반에는 신비한 힘을 얻어 의욕적으로 굴던 초능력자들도, 시간이 갈수록 특권의식 비슷한 것에 절어 평범한 이들을 등한시했다.
사실 이유를 알고는 있었다. 좀비가 너무나도 빠르게 강해지는 나머지,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에는 참 퍽퍽한 세상. 이타심있는 영웅의 헌신적인 희생을 무작정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무엇보다 일면식도 없는 인간들이 갑자기 의지하고 들러붙어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줘야 하면 좋아할 놈이 몇이나 있겠는가. 그 입이 다 몇 개야. 혼자 먹고 살기도 바쁜데.
나는 그 와중에 혹시, 주먹질 한 번으로 산을 뒤집어 버리는 초능력자가 등장해 좀비들을 무찌르고 세상을 구원해 주지는 않을까. 한 1년 정도는 그리 상상했었던 것 같다. 고작 2회차를 시작해 매 순간 어안이 벙벙했던,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었을 때니까.
물론 당연하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좀비들이 강해질수록 희망은 사라져만 갔다.
치사한 초능력자 놈들.
나중가니까 자기들만 살아보겠다고 아주···.
그때 총으로 쏴 갈겨서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그랬을진대 오늘 문득, 나도 그런 마음을 품었다.
일면식도 없고, 별다른 힘도 없는 시티의 주민들.
사실 내버려두고 떠나도 그만인 일이다. 종후표가 로키 스테이션을 확인했을 때, 나는 슬레모킨의 캐리어가 있느냐 물었다. 어떻게 보면 마탑의 인원들과 함께 시티에서 벗어날 생각을 한 것이다.
미련없이 뒤돌아 한시라도 빨리 시티 바깥으로 벗어나는 게 살아남을 가능성을 높이는 길일 테니 말이다.
2회차의 초능력자, 그들도 이런 마음을 품었겠지.
아무런 능력없는 밥버러지 민간인들을 내려다보며 분명 나와 비슷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 세계의 초능력자들은 대부분은 중원무림 기준으로 일류 검객도 못 되는 놈들이었는데······
지금의 나는, 그들보다도 높은 경지를 이루었다.
모두가 떠난다면 덩그러니 남겨질 주민들은 어떤 기분인가. 무력감. 좌절감. 절망감. 그리고 체념이 뒤엉켜 세상이 미워지지 않겠는가. 나의 과거가 그러지 않았는가. 그래서 총을 들고 화염병을 들지 않았던가.
어쩌면 좀비는 죽어서도 그 원한을 잊지 못해 다른 사람들을 물어뜯는 것이 아닐까. 왜인지 씻겨나가지 않은 원망이 불현듯이 찾아왔다.
그러고 보면 전생 2회차의 나는 왜 죽었는가. 분명 죽어버렸으니 다음 생으로 넘어간 것일 텐데, 왜 갑자기 초능력자들이 다시금 원망스러운지.
또 좀비가 되어버렸을 사람들의 마음이 어째서 절절하게 와닿는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어쩌면 나는 마트에서 죽어버린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여러 생각들을 해보니 도망갈 수가 없었다. 세상의 인간들이 대부분 뒈져버리고, 달랑 남은 연방의 문패만 지키는 게 무슨 소용인가.
전생까지 해왔는데 그때와 발전없이 똑같은 놈이 되어버려서는, 초능력자들을 원망했던 게 우스워질 테니.
탕!
그래서 방금 권총을 턱에 대고 쏘아봤다.
총탄을 맞아도 죽지는 않지만 충격으로 머리가 휙휙 들리긴했다. 게다가 턱을 맞으니 기분도 좋지 않더라.
그런데 고작 그뿐이었다.
나는 남겨지고 버려진 자들의 원망스러운 총탄을 맞아봐야 기분만 나쁘지 절대 죽지는 않을 거다.
해서 나는, 도망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이제는 총탄에 맞아도 기분만 나쁘지 죽진 않을 능력자가 되었기에, 스스로 몇 가지의 질문을 던져보았다.
나는 지금 정의감을 불태우고 싶은가.
바보같은 이타심을 가지고 있는가.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그렇게 하겠는가.
구원자라는 허울뿐인 단어에 매달리는가.
기분파인가.
아무래도 그것은 쉬이 답할 수가 없다.
만약, 언평 선생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늘이 어둡구나! 하늘이 이리도 어두운데 너희들은 무얼 하는가!
하지만 나는 쉬이 답할 수가 없어서, 오늘도 사내가 되기로 했다.
입버릇처럼. 그야 나는 사내니까.
지금이라도 대의명분을 세우고 싶은 사내라서.
사내. 그 얼마나 간단하며 요점이 잡힌 단어인가.
더 이상의 의미없는 번뇌는 깨끗이 자르기로 했다.
딸칵-
방아쇠를 당기니 이미 탄창이 비어서 딸칵대는 소리가 들렸다.
* * *
종후표가 날개를 퍼덕거리며 말했다.
로키의 상황만큼이나, 그다지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스테이션 위에 떠있던 캐리어가 모두 사라졌다. 꽤 비싸 보이는 기체들이었는데 다들 미련도 없이 떠나갔다.”
“그냥 다른 도시로 지원을 요청하러 가는거라 생각해라. 한결 마음이 편할 거다.”
“그거 낙관적이라 좋군. 그런데 지금도 로키 스테이션으로 향하는 무리가 꽤 보인다. 저들은 저대로 로키 시티를 빠져나갈 생각이겠지. 막거나 설득하지 못하면 더 늘어날 거다.”
로키 시티를 포기하고 벗어나는 자들이 생겨났다.
여기도 책임감 따위가 딱히 필요치 않은 세상이다.
힘있는 강자들이 계속 이탈 대열에 끼어들면 오늘 밤, 혹은 내일 밤 로키 시티는 함락당한다.
그런데, 그때였다.
“설득은 무슨.”
뷔에탕이 칙칙한 눈을 게슴츠레 뜨며 이죽거렸다.
“이제 아무도 로키에서 못 빠져나가.”
“?”
“이미······내 아이들로 스테이션 근방을 막아버렸거든.”
“······.”
“신동경으로 다 끌어모으는 거. 완전 찬성이란다?”
저 멀리, 로키 스테이션으로 향하는 도망자들을 힐긋 바라본 뷔에탕이 그리 말했고, 잠깐의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시티를 한 번 빼앗기면 막대한 희생을 치루어 탈환해도 후폭풍이 큰 법.
카스트라 뷔에탕이 ‘로키는 병신같은 도시지만 버리기는 싫다’ 했을 때부터, 혹은 그 전부터. 그녀는 애초부터 신동경에서 빠져나갈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나와 한 맹약과는 별개로, 평생을 일궈온 근거지인 신동경을 버리기 쉽지 않을 테지.
“흠, 좋다.”
종후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넌지시 반문을 던졌다.
“헌데, 이 신동경으로 전부 모으더라도 그 후에 과연 로키를 빠져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군? 전력을 한곳에 모으는 선택이 역효과로 돌아올 수도 있다. 방금 늙은 마법사가 괴물같은 손가락에 붙잡혀 자폭하는 거 보긴 했나? 굉장히 강력해 보이는 늙은이였다. 아마 생각하는 것보다도 시체들의 전력이—”
“아니, 레탕 르포포이는 대단한 마법사가 맞지만 나한테 비벼보려면 한참 멀었어.”
구우우웅—
카스트라 뷔에탕의 몸에서 형언할 수 없는 압력이 일어나 주위를 눌렀다. 항거할 엄두도 내지 못할 기이함에, 공중을 날던 앵무새 법기가 부르르 떨리며 풀썩 떨어졌다.
한껏 눌려버린 종후표의 법력.
녀석은 불길함을 느꼈는지 곧장 입을 딱 닫았다. 참 눈치 하나는 빠른 놈이 아닐 수 없다.
곧, 뷔에탕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뭐, 그래도 9레벨이 저렇게 발악하다 죽어버렸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더 죽어나가기 전에 전력을 모아 대응하는 게 맞고.”
뷔에탕의 말에 내가 옷을 주섬대며 답했다. 계속 발가벗고 있기는 뭐해서.
“생각보다 적극적이군. 로키가 아니면 받아주는 곳이 없어서 그런가.”
“풋.”
“그러면 무력을 쓰든 저주를 걸든. 신동경으로 다 불러와라.”
뽀드득-
나는 빌딩의 깨진 유리창을 밟고 허리를 폈다.
인형을 부리는 카스트라 뷔에탕의 본신이 플라자 빌딩에 있다고 해서, 나까지 이곳에서 죽치고 있을 생각은 없다.
“······상황이 저 따위인데 어딜 나가려고?”
“찾아야 하는 이들이 있다. 내게도 인형 하나 붙여라.”
운공을 마친 덕분인지 단전이 묵직했다. 이윽고 나는 지체없이 황금빛 플라자 빌딩 아래로 몸을 던졌다.
후우우우—
빌딩 아래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현재 신동경의 유흥가를 거닐던 이들은 갑작스러운 비상사태에 갈피를 못잡고 길거리에서 허둥대고 있었다. 상가중 유독 북적이는 곳이 있었는데, 총기를 파는 합법 총포상으로 보였다.
다만, 총을 사봐야 달라지는 건 없겠지.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다는 것과 일이 심상찮게 꼬였을 때, 손쉽게 목숨을 끊을 수 있다는 것 정도.
— 어!
그렇게 내가 낙하하던 중에, 지근거리의 아파트 창문에서 어떤 꼬마와 눈을 마주쳤다. 녀석이 기특하게도 손을 흔들어 주었는데, 뒤에서 나타난 부모가 눈을 가리더니 금세 데리고 들어가 버렸다.
내가 투신이라도 하는줄 알았나보다.
여튼 나는, 첫 목적지를 마탑주의 마력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잡았다.
그런데.
아까 상공에 떠있던 거대한 손가락 몇 개가 터져나가면서 혈액이 지면으로 튄 게 문제인지, 플라자 빌딩에서 5분쯤 건물 지붕들을 밟고 쏘아지자 벌써 사방팔방이 시체들의 요기로 가득했다.
그래도 근방에 전투원이 없는 것은 아니라, 나름대로의 전선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그 전선조차도 빠르게 밀려나는 형국. 아직 마탑주의 마력이 느껴지는 곳까지는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
어느 근방의 길거리.
전력공급 차단으로 조명들이 대부분 꺼진 어두운 세상에서, 수십의 장정들이 시체에 대항해 분투를 벌이고 있었다. 기세는 흉흉한데 하나로 정돈되지 않은 게 군벌 세력으로 보였다.
그들이 고함치는 소리가 시끄럽게 귀청을 울렸다.
— 새끼야! 밀리지 말라고! 튀면 어차피 다 죽어!
— 저 큰 놈을 먼저 죽여야 해. 큰 거 온다.
— 최소 6레벨이야. 씨발, 개소리하지말고 가서 대장 불러오라니까!
장벽의 사방면이 모두 무너졌다. 종후표가 말한대로 잔여 군벌세력들과 가륵을 치러온 연방의 세력들은 정신없이 뒤엉켜 싸우고 있을 터. 신동경과 상당히 가까운 소도시의 전황도 이런데, 마탑의 인원들이 더 멀리 떨어져 있다면······
그어어어—
그 순간, 빌딩 옆으로 거대한 놈이 나타나 발을 들어 올렸다.
5m가 넘는 신장에 두꺼운 몸통, 허수아비처럼 얇은 팔다리를 가지고 있는 기이한 놈이었다. 요사스런 기운으로 보아 7레벨급은 되었고, 저자들 중 대항할 만한 기운을 가진 자는 없었다.
— 으아아악!
시체의 발치에 사람이 짓밟혀 터져버리기 전.
탓!
나는 어둠 속에서 전진하는 거체를 보며 광선을 뽑아 일단 출수했다. 찰나간 공간을 갈라버린 광선은 거체의 목을 그어버리며 뒤로 나타났다.
서걱—
기다란 거체가 순식간에 목이 잘려 쓰러졌다. 놈은 그럼에도 죽지 않고 버둥댔다. 광선을 거칠게 뽑아 목을 찌르고 대가리를 밟자, 놈의 머리가 펑 터지며 뜨거운 혈액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 누, 누구?
좋다. 적어도 200억 마리중 이제 한 마리 잡았군.
나는 대답할 여유 없이, 곧바로 회로를 가열해 마력을 끌어올렸다. 곧이어 어두운 허공에 응집된 마력의 구름이, 옅은 조명을 반사하여 번개라도 친 것처럼 세상이 점멸했다.
번쩍이며 주변을 메운 시체들의 형태가 드러났다. 골목마다 들어차 있는 것이, 못해도 수백 마리는 넘을 듯했다.
쾅!
쾅. 쾅. 쾅. 쾅. 쾅.
그렇게, 시야를 가득 메운 시체놈들을 보며 마나의 비를 쏟아낸다. 나는 어벙히 서있는 군벌의 끄나풀 놈을 뒤로하고 땅을 박찼다. 쏘아진 나는 또 한 마리의 시체를 베었다. 목이 뱀처럼 긴 놈이었는데, 잘린 머리 안에서 또 머리가 나와 이빨을 딱딱거렸다.
푹.
놈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박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래도 죽지 않기에 망치로 후려치듯 권총에 강기를 담아 후려치자, 그제야 놈의 머리가 박살난다.
헌데, 내가 놈의 몸뚱이를 떨쳐버리고 마탑주의 마력이 느껴지는 쪽으로 쏘아지려던 그때였다.
화악—
“?”
주변의 건물 위로 지는 거대하고 육중한 그림자.
급히 기운을 눌러 숨기고 위를 올려다보니, 비행선 만한 크기의 손가락 군집체가 저 먼 상공을 가르며 어딘가로 유유히 향하고 있었다.
거대하다 못해, 살점이 뜯겨 나갈듯한 요기.
두 다리가 본능적으로 굳어버렸다.
* * *
꽈과광!
“젠장! 우리도 도망쳐야 하는 거 아냐? 길 아는 사람?”
슬레모킨의 샷건이 청록빛의 마화를 뿜었다. 일격에 수십의 시체가 분해되며 길이 뚫렸는데, 그 공간이 다시 메워지는데 일 분도 걸리지 않았다.
몇 시간 전, 로키의 장벽이 단번에 무너지고 시체의 행진이 시작되었다. 로키에서 연방의 공표와 작전에 따라 움직이려던 일레힌 포이체카 마탑의 전력은 재수 없게도, 장벽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한 소도시에 고립되어 버렸다.
극히 피곤한 얼굴의 한 마법사가 보호막을 펼치며 입을 열었다. 언제 구했는지 손에는 로키 시티의 지도가 들려있었다.
“죽여도 죽여도, 언데드는 계속 생겨날 겁니다. 무너진 장벽 사이로 언데드들은 점점 더 몰려오고 있는데, 주민들의 감염 속도 역시 가팔라서 죽이는 건 의미가 없을 겁니다. 퇴로를 찾아보곤 있는데······.”
시체의 무서움은 강력한 힘도 있지만, 실상 이런 전투에서 가장 까다로운 건 감염성이다.
보통 강력한 시체일수록 감염성이 높다. 평범한 인간은 말 그대로, 스치기만 해도 감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때문에 수많은 로키의 외곽 주민들은 실시간으로 언데드화가 되고 있었고, 저레벨의 감염자들 역시도 본능을 주체 못하고 이지를 잃어버리니, 아군은 사라지고 적군은 점점 늘어만 갔다.
마탑과 지근거리에서 전투를 벌이던 어떤 세력은 10분전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다. 그들은 아마 전멸한 듯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피가 강을 이루었다.
마탑의 인원들이 강력한 개체들에 발이 잠깐 묶인 동안, 밀물처럼 밀고 들어온 시체들이 순식간에 근방 전체를 에워싸는 바람에 옴짝달싹조차 못 했다. 도주로조차 찾을 수 없기에 주변에서 가장 큰 빌딩을 근거지삼아 수성하는 지경.
그나마 마탑이니 지금까지 버틴 것이다.
“마탑주님!“
마탑의 일원들은, 주변으로 몰려드는 시체들을 밀어내며 마탑주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마탑주는 그들의 말을 들어줄 상황이 아니었다. 그의 찌푸린 눈은 조금 전부터 근방의 하늘에 못 박힌듯 고정되어 있었다.
“······.”
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지긋한 시선이 박혀있던 곳에서······
실로 거대한 손가락의 군집체가, 도시의 어둠을 뚫고 그 위용을 드러냈다.
방금 전 로키 상공에서 고강한 마법사를 자폭하게 만든 손가락의 군집이, 이제는 고립된 마탑의 전력을 향해 유유히 날아오고 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