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아포칼립스의 고인물
#129화.
저 멀리.
로키의 동서남북 네 방면.
네 곳의 시티 장벽이 각각 운석이라도 맞은듯 백 미터 가량 무너져있고, 무너진 장벽을 밟고 넘어 끔찍하게 생긴 존재들이 도시를 포위하듯 꾸역꾸역 밀고 들어온다.
시체. 언데드.
인간의 형상이되 인간은 아닌 가지각색의 존재. 바닥을 기는 시체도 있고, 걸어 들어오는 시체도 있었다. 가끔 박쥐처럼 피막날개를 펼쳐 활강하는 시체까지 있다. 남쪽 방향 장벽에서는 이층 버스보다도 큰 거체가 밀고 들어오며 장벽의 드러난 골조를 때렸다.
쿵! 우르릉—
무너져 내리는 장벽의 잔해로 보아, 장벽에 쳐져있던 광역 보호마법이 흩어진지 그닥 오래되지는 않은 듯했다. 못해도 한 두시간 내외일 것이다.
하지만 저걸 다시 쌓아 올리기는 힘들 터. 지금 부서진 장벽 바깥은 피냄새를 맡고 온 괴물들로 이루어진, 까마득한 시체의 바다였다.
로키에서 인간의 향긋한 냄새가 나는지, 시체들은 로키 시티로 먼저 진입하려 마구 아우성쳤다. 시체들로 까맣게 변한 로키 시티 주위의 대지. 머릿수 조차 셀 수 없는 시체의 군집은 파도가 일렁이듯 연신 물결쳤다.
종후표가 조용히 읊조렸다.
“······이거, 로키 심판의 날이구먼.”
외부와 격리된 플라자 최상층 진법 안에서 반나절 하고도 몇 시간 정도를 흘려보냈을 뿐이다. 그 짧은 사이에 네 방면의 장벽이 무너져 로키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그야말로 날벼락이 아닐 수가 없다.
아직 로키의 중심인 신동경까지 시체들의 마수가 뻗치진 않았으나, 로키의 면적이 발할라나 수르트처럼 넓지 않아서 밀고 들어오면 신동경까지도 금방 도달하리라.
수많은 인간이 피를 흘리며 부질없이 죽어간다. 그들은 편하게 죽지도 못했다. 흘러내리는 내장을 붙잡고 죽기 전까지 고통에 몸부림치다 결국, 내장을 파먹던 시체들과 똑같은 꼴이 되어 로키의 거리를 거닐었다.
하필 평범한 인간이 아닌 강자들도 섞여 있는지라, 시체의 파도는 더욱 빠른 속도로 전염되며 사방팔방 퍼져나갔다. 마을에 도는 역병처럼 로키의 길거리로 곳곳으로 퍼져나간 시체들은 혼비백산한 주민들의 살점을 탐했다.
외곽 쪽 구역의 전투와 학살은 이미 상당히 진행되어, 엉망이 된 사체들이 뒤엉켜 쌓여있는 지옥도나 다름없다. 외곽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상태까지 이르렀고 주민들은 도망칠 곳이 없어 신동경으로 향하는 도로에 몸을 던졌다.
차나 바이크를 끌고 도로로 나온 평범한 주민들은 극히 혼잡한 도로 상황을 보고는 차에서 뛰쳐나와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뒤를 시체들이 스멀스멀 쫓아왔다.
도심의 쨍하고 원색적인 불빛은, 도망치는 주민들을 쫓는 시체들을 더욱 그로테스크한 괴물로 보이게 만들어 주었다.
외곽 길거리에 적어도 5m는 넘을 법한 시체들이 즐비하다. 2층짜리 상가 위로 머리통 하나가 더 튀어나와 있는, 인간이 그 앞에 서면 꼭 개미처럼 작아보였다. 불현듯 거체가 긴 팔을 휘둘러 도망치는 주민들을 한 손에 쓸어담았다.
뿌지지직-!
그리고 개미들은 세상의 순리라는 듯 간단히 시체의 손아귀에 잡혀 우그러졌다. 걸레를 짠 물처럼, 피가 흘러나와 로키 외곽의 땅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종후표가 고개를 다른쪽으로 돌렸다.
외곽부 어딘가에서는 꽤 대등한 전투가 진행 중이다.
그나마 외곽을 지배하던 군벌 세력들이 잔존해 시체들의 행진에 저항하고 있는 듯하다. 먼 하늘에서 들리는 커다란 총성과 시시각각 불어오는 폭풍과 강대한 기파들이 그 전투의 처절함을 증명한다.
그러나, 그런 반항에도 로키는 외곽 구역부터 서서히 잡아먹히고 있었다.
압도적인 요기를 목도한 로키의 주민들이 공포에 사로잡혀 도망친다. 바지에 오줌을 지린 자들도 많았다. 일견 한심해 보이나 올바른 선택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차라리 먼저 도망친 자들이, 끝까지 싸우다 감염되어 괴물로 되살아난 이들보다야 현명할 지도.
저것은 악몽이 아니라, 명백하고 선명한 현실.
그렇듯 로키의 외곽은 부산스럽고도 시끄러웠으나, 플라자 최상층에 모여있는 레반과 뷔에탕, 종후표중 저 갑작스러운 사태에 충격받거나 주저앉아 있는 이는 없었다.
“완전 일 났네? 로키 시티의 인구도 꽤 되는데.”
로키 시티에 터진 작금의 사태를 붉은 눈으로 살펴보던 뷔에탕은 무표정해지더니, 즉시 호위 인형 절반을 플라자 빌딩 밖으로 내보냈다. 외곽은 끝났으니 신동경 근방의 사태나마 확인하고 정찰하기 위함이었다.
으아아악—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득한 비명.
“······.”
신동경 근처에 시체들이 진입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날카로운 괴성이 이곳의 하늘까지 연신 울려퍼진다. 거리가 꽤 떨어져 있음에도 말이다. 저게 인간이 내는 소리인가. 아니면 시체가 내는 소리인가. 어찌 되었건 기분이 더러워지는 괴성이었다.
후우우-
와중에 레반은 마탑과 합류하기 위해 함부로 뛰쳐나가기보단 당장 운공으로 기운을 갈무리하는 것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앞으로의 대비가 필요해 내공을 회복하는 데에 만전을 기울였다.
콰과과광!
그 시점, 장벽만 한 거대 손가락의 군집체가 웬 빌딩 하나를 짓눌러 찌부러뜨리는 정신나간 광경을 보며 뷔에탕이 뇌까렸다.
“장벽 부서진 것도 저 손가락 괴물 짓이려나. 저게 몇 레벨짜리 언데드야? 대체.”
종후표가 날개를 퍼덕이며 고개를 돌렸다. 종후표는 자연스레 날아 뷔에탕의 옆에 자리했다.
“물론 저 시체놈의 영향도 있겠지. 하지만 시티 내외부에서 같이 도모해 장벽을 부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시티를 지키는 광역보호마법은 대단하지만, 뭐 강력한 시체 몇이 한 부분만 집중해 공격하면 못 무너뜨릴 것도 없다. 이전의 도시들도 많이들 그런 방식으로 무너졌으니.”
“분명, 대가리 역할을 하는 언데드들이 있을 텐데.”
“보나마나 네임드인 가륵이 그 대가리의 한 축일 거다. 목표하는 바가 있으니 변절자를 만들어 왔을 테니까. 가륵을 연방의 전력이 발견은 했나 모르겠군? 아니,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토벌의 의미가 없나.”
뷔에탕과 종후표는 오래 산 나이만큼 경험이 많았다. 그리고 이 사태는 그들의 인생에서 몇 번이나 겪어본 일이었다.
일곱 도시만 남은 연방 이전에 수십, 수백 개의 거대 도시가 존재했다. 그 도시들을 시체들의 습격에 빼앗기고 지금까지 밀려났던 게 세계 인류와 연방의 뼈아픈 역사. 비록 수십 년 전 얘기지만, 도시로 쳐들어와 인간들을 잡아먹고 초토화 하는게 원래 저 시체들의 본능이자 지상과제.
“헛, 그나저나 로키 스테이션은?”
어느 순간 종후표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건물들의 마천루 너머로 시선을 던져 로키 스테이션의 위치를 찾았다.
온갖 캐리어들이 다 모여있는 시티 스테이션에 변고가 생기면 로키는 그대로 갇혀버린 도시가 되는 것이기에.
로키 시티 밖으로 탈출해야 한다면, 스테이션이 가장 빠르고 안전한 탈출구.
연방이 얼마전에 수복한 라그나로크 시티와 로키와 꽤 가깝긴 하다지만, 육로로 안전히 걸어갈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그 거리를 육탄전으로 뚫을 수 있는 인간은 어지간해선 없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그리고 현재.
로키 시티 스테이션은 비상 상황임을 감지하고 스테이션 외부의 부지와는 완전히 격리되어 있었다. 스테이션으로 향하는 모든 도로가 수직으로 들어 올려져 있고 그 밑으로는 까마득한 낭떠러지. 한달음에 수십 미터를 뛰는 고수가 아니라면 육로로는 스테이션에 진입할 수 없으리라.
마침 스테이션 위로, 누군가 시티를 벗어나기 위해 탑승해 있는 듯한 캐리어 수십 기가 허공에 떠 있었었고.
로키 스테이션의 격리된 땅 밖으로는.
“시체들이 벌써 저기까지 갔나.”
······자기도 들여보내 달라며 울고불다 찢겨죽는 주민들.
스테이션 쪽까지 진출한 시체들은 공중에 뜬 캐리어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일말의 희망을 품고 스테이션으로 도망쳐온 주민들의 살점과 피로 흥건하게 잔치를 벌였다. 억눌려있던 뷔에탕의 색욕이 주체 못하고 터져 나오듯. 인간을 먹잇감으로만 보는 안광들이 여기저기서 번뜩였다.
시체들의 이동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다. 아마 시티 스테이션이 시티 중심부인 신동경보다는 외곽에 더 가깝기 때문으로 보였다.
종후표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레반은 두 눈을 감은채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탈출구인 로키 스테이션의 상황 역시 좋지 못하다. 갈 생각이라면 지금이라도 출발해야 늦지 않을거다.”
“우리가 타고온 슬레모킨의 캐리어는?”
“···!”
레반의 질문에 종후표가 눈을 크게 떴고, 이내 단념한 듯 법력을 담아 고함쳤다.
“젠장, 아직 스테이션 구석에 잘 처박혀 있군.”
“알았다.”
종후표의 대답에 레반은 고요히 눈을 감고 재차 운공에 들어갔다.
그는 잡생각을 지우고 내력을 기경팔맥으로 순환시켰다. 임독양맥을 포함한 대부분의 대맥이 타통되었으며 세혈은 넓어져 막히는 부분이 없었다. 잠깐의 운공으로도 흘러넘칠 듯한 기운이 뻥 뚫린 기맥을 내달린다.
* * *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칙— 치이익—
플라자 빌딩 안을 빨빨 돌아다니던 종후표가 이것저것을 뒤집고 다니다 웬 아날로그 라디오를 찾아와서는 작동시켰다.
이윽고 라디오에서 칙칙대며 흘러나오는 소식을 들어보니, 셋이 언기원보 진법 안에서 투닥대는 사이에 연방 정부가 로키의 군벌 토벌을 공표했고, 그 공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시티 장벽들이 폭파라도 한듯 터져나갔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원인이나 흉수는 파악되지 않았다는 진행자의 말에, 침대에 편한 자세로 누워있던 뷔에탕이 말문을 열었다.
“인류가 라그나로크 시티를 수복했으니, 언데드 놈들은 라그나로크 대신 로키라도 빼앗아 가려 하나?”
“······.”
“아, 병신같은 도시라도 이렇게 내주기는 싫은데.”
촤르륵—
이제 바깥 상황은 볼만큼 보았다고 여긴 종후표가 깨져나간 최상층의 창문을 침대보로 가려버렸다. 괜히 눈에 띄지 않기위해 플라자의 조명까지 끄니 금세 어둠이 찾아왔다.
곧이어.
침대 위의 누군가 옷자락을 풀어 헤치며 농담식으로 말했다.
“분위기는 은근히 좋네. 올라올래?”
“마음이 심란하니까 입 닫아라.”
“······호.”
뷔에탕은 서로 죽이지 못한다는 맹약을 걸자마자, 꽁초 가득한 재떨이처럼 취급당하고 있다. 그런데 그게 또 싫지 않았다.
여태까지는 생글생글 웃으며 비위 맞추기 급급한 놈들뿐이었는데, 뷔에탕은 가끔 이런 처지도 괜찮겠다고 여기며 피식 웃었다.
화악-
“······?”
괜찮다고 인정하자마자 이상하게도 안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더워서 그런가. 뷔에탕은 마법으로 강제로 주변의 온도를 낮추어 버린뒤 말했다.
“사람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는 성욕이 치솟는 거 몰라?”
“들러붙을 생각 말아라. 냄새난다.”
레반은 귀찮다는 듯, 다른 곳에서 다시 가부좌를 틀었다.
그를 보던 뷔에탕은 침대 위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꾸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거니.”
근데 이 정도면 정말로 냄새가 나는 거 아냐?
곧, 뷔에탕은 은근슬쩍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어 바람을 불고는 향을 맡았다. 하지만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끔뻑.
레반은 그런 뷔에탕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뷔에탕은 모를 일이지만, 레반은 전생부터 요녀들과 색마들을 많이도 만나 그들의 생리를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욕구에 몸을 맡겨 미친 이들이고, 레반은 그냥 미친놈. 한 번 미쳐본 자들끼리 이해 못 할 것은 없었다.
욕정은 어차피 채우려 해도 잠시일뿐 다 채울 수 없다. 눈 딱 감고 한 번 자주면 요구하는 횟수가 많아지다가 끝에는 반드시 파국으로 치닫는다. 물론 그런 여인들과 잠자리를 했단것은 아니다.
치익—
그런데 순간, 조금이나마 배경음을 채워주던 라디오가 픽 꺼졌다.
이제 통신기기들마저 불안정한 모양이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도심에 불 꺼진 구역들이 꽤 있었던 걸 보면 모종의 이유로 전력공급이 차단되고 주파수도 불안정한 듯했다.
장벽이 무너진 마당에 그깟 통신좀 안 된다고 징징거릴 사람은 없겠지만.
곧, 뷔에탕은 안면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그녀는 레반을 죽이지는 못했으나, 이 황금빛 플라자 빌딩과 신동경의 명실상부한 지배자였다.
“나한테 말해봐, 로키에 일레힌 마탑주 말고 또 누가 왔지?”
“모른다. 연방에서 수복전처럼 정보가 새어나가는 걸 틀어막겠단 이유로 알려주지 않았다. 올 때도 개인 캐리어를 이용해서 왔지.”
“뭐야, 너도 결국 아무런 정보도 없다는 거잖아?”
“네가 내보낸 인형들이 지금 군벌의 수장들을 규합하고 있는 것 아닌가? 기왕 할 거 다른 이들도 좀 찾아봐라.”
뷔에탕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글쎄, 그런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려나 모르겠네?”
그때, 종후표가 끼어들어 몇 가지 대안을 늘어놓았다.
“자, 이 백리뇌부 종후표가 보기에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전력으로 이 신동경이나마 수성하며 외부의 지원을 기다리든지, 혹은 스테이션으로 가서 도망치든지, 아니면 장벽 밖으로 나가서 라그나로크까지 뛰어가든—”
그 순간.
꽈과과과광—!!!
고막이 터져버릴 듯 강력한 폭음과 함께, 깨진 유리창을 임시로 가려두었던 보가 찢어지며 활짝 열렸다.
최상층에 있던 셋의 고개가 자동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로키 외곽쪽 상공을 부유하고 있는 늙은 마법사가 눈에 들어왔다. 놀랍게도 그는 카스트라 뷔에탕마저 잘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르포포이. 역시 살아 있었네?”
레탕 르포포이. 마법계에서도 이름난 9레벨의 마법사이자, 로키 시티에서 마피아 조직과 신동경을 두고 쟁탈전을 벌이던 강력한 군벌세력의 수장.
뷔에탕은 괜히 그 늙은 남자를 보자 반가움이 앞섰다.
헌데.
“어라?”
그 늙은 마법사의 몸은 이상하게도, 피칠갑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상공에 둥둥 떠있는 그를 따라, 거대한 요기를 가진 무언가가 상공으로 솟구쳤다.
처음 보았을 때는 살색의 기둥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하늘을 다 가려버릴 정도로, 한 개 한 개가 건물처럼 거대한 손가락의 군집체.
이윽고.
— 크하아악!
고함을 지르며 마력을 끌어올린 늙은 마법사의 손에서 묵색빛의 마법들이 연신 뿜어져 나왔다. 각자가 모두 7위계급의 고강한 마법. 대기를 푹푹 파먹고 천지를 울릴 정도로 강력한 마력이 폭사한다.
늙은 마법사는 입에서 피를 왈칵 토하면서도, 징그러운 손가락 군집체와 대등한 전투를 벌이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는 얼마 못 가서 결국 붙잡혔고, 뭔가를 하기도 전에 자폭을 선택해버렸다.
늙은 마법사의 육신과 거대한 손가락 몇 개가 풍선처럼 터져나가 로키의 상공으로 육편과 피를 흩뿌렸다.
툭···투두둑···
잠시 뒤, 플라자 빌딩 꼭대기까지도 마법사와 손가락 괴물의 피가 섞여 비처럼 내렸다. 뷔에탕이 얼굴에 튄 피를 손으로 훑었다.
강력했던 군벌 수장의 실로 허무한 마지막.
그에, 뷔에탕의 눈동자에 창백한 파문이 일었다.
침대에 누워있던 뷔에탕의 몸은 저절로 일어선지 오래. 그녀의 머리칼이 부스스 흩어진다.
“······죽었다고?”
“원래 아포칼립스에서는 이 총만한 게 없었는데 말이지.”
탕!
그때, 뷔에탕의 뒤쪽에서 커다란 총성이 울렸다.
“······?”
뷔에탕이 놀라며 황망히 고개를 돌려보니, 레반이 자기 턱에다 총구를 갖다댄 채로 격발했다. 탕! 강한 충격에 그의 머리가 휙휙 들렸다. 레반은 탄창이 비어버려 딸칵댈 때까지 방아쇠를 당겼다.
틱!
그렇게 탄창을 전부 비웠음에도, 레반의 턱은 멀쩡했다. 당연했다. 8레벨 이상의 경지를 이룬 사내가 권총 따위에 쓰러질 리 없었으니.
곧이어 레반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턱을 쓸었다.
“총을 맞아도 안 죽는군. 이젠 잘 안 죽어······.”
“?”
뷔에탕의 의아한 시선이 닿자, 레반은 총을 허리춤에 주섬주섬 집어넣고서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미친놈 보듯 쳐다보지 말고, 인형 풀어서 로키에서 힘 좀 쓴다는 놈들은 전부 신동경으로 모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