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군벌 도시, 로키 2
#123화.
마탑주의 말에 따르자면.
마탑은 네임드 ‘가륵’ 토벌에 참여하게 되었다.
하기야 마탑은 발할라 시티와 마법계를 대표하는 세력. 이를테면 토템같은 존재다. 여타 기업 집단보다는 명예를 조금 더 중요시하는지라, 어지간해선 참여할 운명이었겠지.
“한 가지 알려둘 내용이 있다. 발설은 금한다.”
— ?
그런데 세상을 움직이는 자들의 결정은, 언제나 간단하지만은 않은 듯하다.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이것저것 살피고 재는 것이 참으로 많다. 나는 그런 것들이 복잡하고 귀찮아 외면하는 게 일상이었으나, 요즘에 와서는 귀담아듣고 있다.
“목표는 로키에 숨어 변절자를 늘려가던 네임드 ‘가륵’ 과 그 주변 세력. 변절자를 토벌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레힌 포이체카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
“외부에는 로키 군벌세력의 토벌과 와해가 목적이라는 공표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문제가 있는 약소 군벌들은 실제로 토벌될 것이야.”
그러자, 서재에 있는 이들은 이해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 9레벨 이상의 네임드 시체 가륵은, 도시 안에 대담하게 숨어들어 자신의 피를 뿌리고 있는 놈이니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변절자들과의 정보망이 연결되어 있는지 알 수 없다.
정예만 뽑아서 움직여도 시작도 전에 들통날 위험성이 있다는 뜻.
그래서, 겉으로는 ‘로키 시티를 장악한 군벌세력의 토벌’ 이라는 이유를 내걸었단다.
‘종후표가 했던 예측대로 전부 들어맞았군.’
내놓은 자식마냥 팽개쳐놓은 로키 시티라도, 명백히 연방에 소속된 거대도시. 정부가 손 놓고 있었다 해도, 과거 마피아 섬멸전등 전력이 있었기에 저것은 꽤 괜찮은 명목이었다.
군벌들은 안 그래도 말썽을 부리는 놈들이니. 꽤나 그럴싸한 기치 아래 세력들이 움직임을 보여도 수상하지 않을 이유를 만든 것이다.
세력이 움직인다는 사실이, 설령 가륵 놈의 귀에 들어가더라도 큰 문제가 없도록.
“마탑주님.”
그쯤, 조용히 듣고만 있던 내가 입을 열었다.
“본 목적을 연방에도 숨기겠다는 얘기인데, 마탑주님은 그걸 어떻게 전해들으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 말은 설마 나를 의심하는 건가. 아니면···.”
일레힌 포이체카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또 다른 무언가를 너희들에게도 숨기고 있다 생각하나?”
“제가요? 오해입니다. 너무 깊이 생각하셨군요.”
“마탑주에 대한 존경이 없구나.”
짐짓 못마땅한 말투가 이어졌다.
그러나 연녹빛 머리칼이 가벼이 찰랑이는 게, 내 물음의 의도를 마탑주도 곡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탑주쯤 되는 거물이면, 세상 돌아가는 데에는 빠삭할 양반이라.
곧, 마탑주가 물음에 대답했다.
“라그나로크 수복전에서 ‘일레힌 포이체카 마탑 소속 마법사들’ 의 공이 꽤 지대하다 알려졌지. 세상이 마탑의 노고를 알아준 덕분이다.”
실상은 북부 편제쪽에 네임드 시체들이 떼거지로 몰려드는 바람에 선택권도 없이 그렇게 흘러간 거지만, 여차저차 이 마탑의 활약이 컸던 점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라.
“그럼, 이중에서 혹여 변절자가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육신에 나의 마력이 없는 자 손을 들어봐라.”
화악—
청록빛 마력이 서재 여기저기서 빛났다.
확실히, 신뢰할 만한 이들에게만 알렸다는 건가.
“마탑 말고도 어떤 세력이 참여합니까?”
“나도 정확히 모른다. 로키에 가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연방······아니, 슈나우젠 하비에르는 저번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더군.”
남궁세가라는 거대한 세력에서 가주까지 해먹었던 남궁천이 변절자였다. 때문에 연방 정부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오딘의 칠좌 슈나우젠 하비에르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널 생각인가보다.
“아무래도······.”
그때, 팔찌 네 개의 8레벨 마법사가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도 진한 에스프레소 잔을 들고서.
“······로키 시티의 군벌들이 절대 가만히 있지는 않겠군요. 가륵도 문제지만 그것도 문제입니다. 아무리 양동작전이고 기만이라 해도······내막을 모르는 그들은······전력으로 받아칠 거예요. 오히려 라그나로크 시티 수복전보다도 전투의 규모가 커질 수도······.”
서재에 있는 마법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리자, 마탑주가 그 말을 긍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가능성도 있다.”
로키의 군벌들은 연방의 움직임을 포착한 순간, 벌집을 공격당한 벌들처럼 똘똘 뭉쳐서 대항할 거다. 저번 라그나로크 수복전 때처럼 변방 군벌세력 하나를 자신들의 손으로 멸절시킨 다음 ‘그쯤으로 만족하쇼’ 하면서 평화를 원할 수도 있겠지.
로키는 무역도 활발히 일어나는 만큼 돈이 된다. 그러니 군벌들도 지금껏 쌓아온 게 있어서 쉽게 물러서지도 않을 거다.
물론, 대응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냥 로키 시티로 항해하는 캐리어와 물자들을 싸그리 끊어버리면 된다.
이를테면 물이나 기름 같은 생활 필수품목을 끊어버리고, 몇 년쯤 잠자코 기다리면 결국에는 두손 두발 다 들 것이고···
마지막에는 결국, 변절을 선택해 버리겠지.
거기다 로키의 수많은 주민도 고통받다 죽어갈 테니, 벼룩 잡자고 초가삼간 태워먹는 꼴이 될 거다. 캐리어 티켓값이 어마어마해서 울며 겨자먹기로 로키에 계속 사는 주민들이 상당수인데 말이다.
그러니 물자를 끊는 안은 불가. 결국 답은 하나다. 그들의 안방인 로키 시티로 들어가 싸우는 것.
이쪽에서도 희생자가 꽤 나올 수도 있겠다. 군벌 수장들의 출신과 무력등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니. 출신들도 참 다채로워서 명문가 출신의 군벌들도 있는 판국이고, 세력이 약한 소규모 군벌도 최소 8레벨급 이상의 대단한 실력자가 이끄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 하나의 일례가 전 십이제였던 카스트라 뷔에탕. 거대 조직인 마피아를 이끌고, 로키 시티에서 가장 격전지인 중심 ‘신동경’ 을 성공적으로 수성하는 중.
로키의 군벌. 그들은 말이 군벌이지, 어느 관점에서는 구파일방이나 대기업들처럼 하나의 세력으로 보기도 한다. 숨쉬듯 악행을 일삼는 블랙 기업과 갱단 그 어딘가.
···아무렴 카지노와 지하 세계의 제왕인 마피아라도, 세계의 마약을 독점공급하는 당가와 비교해보면 뭐가 다른가 싶기도 하다.
문득, 마탑주가 말을 이었다.
“마탑은 가륵을 잡기 위해 로키의 군벌 세력과 싸우는 시늉 이상을 해야할 것이다. 나머지 더 궁금한 점 있나?”
더 이상의 질문은 없었다. 깔끔해서 좋았다.
“없으면 이만 출발하지.”
* * *
잠시 뒤.
마탑의 인원들은 조용히 발할라 스테이션에 당도했다.
행선지는 로키 시티 스테이션.
구우우웅—
캐리어의 엔진음이 가득 메우고 있는 발할라 시티 스테이션. 저번 라그나로크 시티 수복전처럼 산맥을 가득 메운 환영인파는 없었다.
아직 이번 사안에 대해 공표가 있지 않았기 때문이고, 최대한 조용히 움직이려 개인 캐리어를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슬레모킨의 개인 캐리어 내부.
“가륵같은 괴물을 확실히 잡으려면, 로키의 칠좌가 힘을 보태줘야 하는 건데. 여태까지 가만히 있던 작자가 갑자기 움직인다고 했을 리는 없고······연방의 대가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까지는 모르겠다. 계획을 수립했으면 무언가 확신이 있는 걸 텐데.”
현재는 앵무새 법기에 담긴 종후표가 입을 놀리고 있다. 종후표는 이번 작전이 있을 줄 진즉부터 예상하고 있던 놈이라 들어줄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가륵은 평범한 9레벨의 네임드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고귀한 피를 받은 놈이니까. 연방이 제대로 판단하고 있나 모르겠어.”
그러자 캐리어의 주인, 슬레모킨이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을 했다.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는지 판단할 수 있는 인간과 마주치고, 전투를 벌이는 등의 행동을 해야만 언데드의 레벨을 특정할 수 있어. 모리 무라타는 연방 집행관 중에서도 최상위권의 전투력을 지닌 남자였는데 그를 죽였다는 건······.”
“자굴라······그 자굴라보다 강하려나······모르겠네.”
다크서클이 내려온 마법사도 이어 말했다. 지난 라그나로크 북부 편제 전투에서 죽다 살아난 8레벨의 마법사. 그녀는 평소보다 더 피곤해보였다.
구우우웅—
순간, 그들의 대화를 끊어내며 캐리어가 공중으로 높이 떠올랐다. 시선을 돌리자 내 앞에는 두 눈을 감은 사내, 유크 루베르겐이 보였다.
“······.”
가륵에게 죽은 모리 무라타의 인격 메모리칩을 이어받은 루베르겐 집행관. 그는 연방 정부 직속의 집행관으로 저번 수복전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어째서인지 참여하게 되었다.
그때, 옆에 딱 붙어앉은 슬레모킨의 귀가 쫑긋거렸다. 그녀의 전음이 들려왔다.
[ 가륵을 자기 손으로 죽이고 싶어하는 것 같던데? 연방에 직접 요청한 건가봐. ]
[ 남궁천을 잡을 때 힘을 쓰지 않았나? ]
[ 그거 언제적 얘기야? 반년이나 지났어. ]
[ 그렇군. ]
[ 근데 너, 품이 되게 빵빵하네. 준비 열심히 했나봐? ]
나는 슬레모킨과의 대화 중에 품속에 손을 집어넣어, 언평 선생에게서 받은 법부적들과 나뭇대를 만지작거렸다. 그의 법력에 마음을 가라앉히는 효과라도 있는지 조금 정신이 가라앉았다.
정신이 가라앉으니, 곧 상념이 찾아왔다.
얼마 전, 독자노선을 밟던 알 헤임달 시티의 대개척마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제 흙만 파도 질좋은 석탄과 기름이 분수처럼 솟구친다고 하니, 연방은 연료 걱정 역시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이번에 온갖 분탕질을 치는 가륵이라는 놈까지 잡아 족치고, 말썽쟁이 군벌 세력까지 눌러 놓는다면 앞으로의 연방 행보에는 날개가 달릴 것이다. 연방의 멸망을 늦추는 것이 목표인 내게는 참으로 환영할 일이다.
······단지.
나는 가륵에게 당장은 관심이 없다.
며칠 전, 카산드라 교수의 저택 안.
밤을 새워가며 대화를 내누던 도중 레나가 잠시 화장실에 갔을 때, 옆에 뻘쭘하게 앉아있던 루벤카가 돌연 그런 말을 꺼냈다.
[ 저번에 레나랑 같이 산맥 밑에 있는 딸기 탕후루 맛집을 찾아갔거든? 그때도 지금처럼 레나가 화장실에 들렀지. ]
내가 레나와만 대화하고 자기는 끼워주지도 않자, 입이 근질한지 뭔가를 자랑하고 싶었나보다. 원래는 나를 벌레보듯 보며 꺼내지도 않았을 말이었다. 신세가 많이 발전했다.
[ 그런데 기이한 마력이 느껴지는 사람이 레나를 따라 들어가더라? 더럽고 칙칙하면서도 은근히 좆같은 마력. 사람 자체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아니라, 꼭 누구한테 조종당하는 것 같더라고. ]
[ 그래서 어떻게 했냐. ]
[ 당연히 씨발, 불태워서 재로 만들어버렸지. 기척을 숨기는 수준이 발군이어도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내 눈을 어떻게 피하겠어? ]
[ 알았다. ]
[ 알아? 네가 알기는 뭘 알아? 너가 어딘가에 처박혀 있는 동안, 내가 없었으면 레나가 어떻게 됐을지도— ]
[ 처리하고 온다. ]
[ ······처리해? 뭐를 처리해? ]
루벤카가 말한 그것은, 뷔에탕이 조종하는 인형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교수의 저택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거기서 오랜 시간을 더 머무르고 싶어지기 전에.
그리고 나는 웃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루벤카의 말을 듣고는 앞으로 더 웃지 못할 듯하여 떠나기로 했다. 레나 앞에서 인상을 구기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카스트라 뷔에탕, 이제는 레나의 주위까지 침범했는가.
화산의 본문 비무장에서 허물을 벗고 10레벨이 된 독고웅백의 첫 번째 목표였던 뷔에탕, 그 여자는 인형 수백 기를 죄다 잃고 겨우 도망쳤다고 들었다. 하오문주인 독고웅백은 내게 하오문의 전령을 보냈고, 뷔에탕이 앞으로 몇 년은 제 힘을 내지 못할 거라며 단언했다.
그럼에도 다른 도시로 인형을 보낼 여력이 남았구나.
카스트라 뷔에탕은 아직 신동경의 본거지에서 은거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게다가 마침 연방이 로키의 군벌세력 토벌을 간판으로 내걸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
끈질기게 로키행을 권하던 카스트라 뷔에탕의 얼굴을 마주할 적기. 또는 뷔에탕을 죽이거나 아예 불구로 만들어버릴 적기.
이미 카산드라 교수의 저택에서부터, 결심을 세웠다.
탓!
해서, 나는 슬레모킨의 캐리어가 로키 시티 스테이션 상공에 들어서자마자 종후표가 담긴 앵무새 법기를 들고 캐리어에서 뛰어내렸다. 순식간에 장벽 안쪽으로 떨어진 나는 땅에 발을 딛기가 무섭게 전력으로 경공을 펼쳤다.
쾅!
지면이 폭탄처럼 터져나가며, 매캐한 바람이 눈 앞으로 불어온다.
종후표가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주변의 광경들이 뒤로 밀려났고, 로키의 스테이션을 지키던 누구도 나를 제지할 수 없었다.
이윽고, 악취가 나는 로키 시티의 어느 뒷골목에 이르렀을 때.
자기 의사와는 일절 상관없이 마탑의 본대와 외따로 떨어진 종후표의 앵무새 법기는, 그제야 어안이 벙벙해진 말투로 물었다.
“갑자기 혼자 왜 뛰쳐나온 거지? 단독행동인가?”
“뷔에탕의 얼굴을 보러 가야겠다.”
“탕? 뭔 탕? 왜 얼굴을 보러 간다는 거냐?”
“전前 십이제, 인형사 카스트라 뷔에탕. 죽이지는 못해도 팔 한쪽은 잘라내야겠다.”
“······.”
내가 그리 말하자 잠시간의 정적이 있었다.
조용했던 로키의 어느 뒷골목은 더욱 적막해졌고.
잠시 뒤, 종후표의 앵무새 부리가 급격히 힘 빠진 목소리를 냈다.
“······뷔에탕을 죽여? 착륙하다가 대가리라도 깨진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