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퓨전펑크의 전생자-122화 (122/157)

#122화. 군벌 도시, 로키

#122화.

앙굴리마라중 6번째로 탄생했고 가짜 열반을 벗은뒤 오랜 고찰을 했으나, 지금은 작은 지하방에서 살업을 쌓으며 다시 번뇌 속으로 들어간 앙굴리마라 6.

앙굴리마라 6보다 뒤늦게 탄생했고 가짜 열반 역시 뒤늦게 벗었으나, 나와의 연이 닿아 동행하며 깨달음을 구하는 아힘사.

누가 더 옳은 길을 걷고 있다 단언할 수 있겠는가.

오늘 발할라 산맥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나와 아힘사는 함께 걸었고, 복잡한 갈림길을 되짚어가며 다시 발할라 산맥을 오르기 시작했다.

* * *

“저, 정말이야? 레반이 여기에 왔다 갔어?”

한편, 카산드라 교수의 저택은 시끌벅적했다. 저택 내에 당황한 목소리가 연신 울려퍼졌다. 목소리의 정체는 언니인 루벤카와 외출에 나섰다가 이제야 돌아온 레나였다.

“네, 레나님.”

소식을 전한 메리도 흠칫 놀랄 만큼 큰 목소리였다. 까만 흑발처럼 어두운 레나의 동공은, 몰라볼 정도로 커진 상태였다.

자신이 없는 사이, 레반이 저택에 들렀기 때문이었다.

“······왜 미리 연락을 안 했지?”

와르르!

충격이라도 받았는지 레나는 잔뜩 사온 길거리 음식들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라그나로크 시티 수복전이 끝나고, 전 연방의 주민이 보는 앞에서 깽판을 벌인 뒤 홀연히 사라진 레반. 얼마나 상황이 급박했는지, 그때는 따로 연락이랄 것도 없었다.

하지만 원래부터가 종잡을 수 없는 레반이다. 그러니 이번에도 어떻게든 금방 돌아오겠지? 생각하며 아카데미에서는 수면, 저택에서는 주식에 매진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연락도 없이 왔다 가면 어떡해······.”

레반은 한 달이 지나고, 반년이 지나도 도통 나타나지 않았다.

연방 전체를 뜨겁게 달군 이슈도 꺼진지 오래. 그 파급력 대단했던 욕설 사건도 시간이 흘러 잠잠해졌는데, 레반은 소식이 없었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마탑에 찾아갈 수도 없어서, 요즘 레반이 어디서 뭘 하고 있나 걱정이 깊어지던 시점이었는데—

“서, 설마 다시 안 돌아오는 건 아니겠지?”

레반이 또 사라져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이 덜컥 들었다.

바이오 기업의 업무까지 맡아 할 정도의 그녀라지만, 사실 성년이 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 게다가 어릴 적부터 십 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왔고, 최근 몇 년은 함께 생사를 넘나들었다.

레반의 빈자리는 하루아침에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레나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으득-

그리고, 그런 레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

방금 전까지 사랑스러운 동생과의 외출을 끝내고 온 덕에, 기분이 매우 좋았던 루벤카였다.

척봐도 레나가 안절부절못하자, 루벤카는 자신의 고운 눈썹을 벅벅 긁었다. 괜히 눈가가 간지러웠다. 이러다 피가 날 때까지 긁어버릴 수도.

‘그 새끼는 어디 있다가 이제야 기어나왔대?’

반 루벤카는 이 상황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최근 주식에만 빠져있던 레나가 조금 우울해하는 듯 싶어서, 나름 바쁜 시간을 쪼개서 쇼핑까지 하고 온 참이다. 이제 조금 안정됐나 싶었는데······

고작해야 레반 그 자식 때문에 저렇게 반응하다니. 대체 왜 레반 그 새끼 소식에만 안달복달하는 거야?

솔직히 말해서, 레반이라는 이름 하나에 저렇게 반응할 일인가? 그리고 저렇게 헤어진 연인처럼 그리워하면 곤란하다. 자신이 과거 레반에게 했던 짓이 있으니까.

레나가 알면 실망할 수도 있는 레반과의 ‘뜨거운 비밀’ 이 꽤 남아있었다. 언제 한 번은 눈을 똑바로 뜨고 까불길래 뜨거운 염화로 살짝······.

‘하 씨, 그냥 확 묻어 버릴 수도 없고.’

마음 같아서는 아주 멀리 떨어뜨려놓고 싶다.

하지만, 라그나로크 시티 수복전에서 젊은 영웅으로 취급받았던 자식이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연방 전체가 짜고 반 자매를 속일리는 당연히 없으니, 전공이 부풀려졌대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겠고······.

‘이건 커도 너무 컸어.’

비정상적인 성장속도.

사실 알려진 전공의 반의 반만 사실이라 해도, 레반놈은 이미 평범한 7레벨이라고 볼 수 없다. 자취를 감추고 활동하지 않는데도, 지금까지 발할라 넷에서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걸 보면.

도저히 평범한 사람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사랑이라도 받는지 천부적인 재능을 몰아받은 인간들이 존재한다. 비슷한 천재를 일전에 남경 무학관에서 보았다.

그런 놈들은······그냥 빨리 지나가게 길을 터주는게 맞지.

일단 루벤카의 이성은 그렇게 결론을 냈다만, 감성은 아니었다. 하필 왜 레반 그 자식이어야 해? 인정 못 하겠다. 이건 엄청나게 긴 꿈일 거야. 좋아. 계속 부정하자.

“레나님.”

루벤카가 핏대를 세우며 이를 갈아대는 와중에 메리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눈치가 빠르게 행동했다. 레나가 당황하며 어쩔 줄을 몰라하자 어르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연 것이다.

“레나님이 저택에 돌아오시면, 연락을 달라고 전하셨습니다.”

“!”

“돌아오실 겁니다.”

빙긋-

메리는 그렇게 말을 전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하셨습니다. 웃긴 말이다. 시종의 숙소에서 같이 지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하셨습니다’ 라고 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주인인 루벤카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이유도 동일하지 않을까. 메리는 미소를 짓는 동안, 짧은 연산과정을 통해 그런 결론을 도출해냈다.

이윽고, 이를 갈던 루벤카가 나직한 목소리로 뇌까렸다.

“······안 돌아와도 괜찮은데.”

“왜, 맞을까봐?”

갑작스레 귓가에 맴도는 누군가의 목소리.

“흑!?”

루벤카가 흠칫 놀라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들어왔는지 젊은 남자가 보였다. 혼잣말을 하던 루벤카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주 잠시간의 엉거주춤. 꽤 봐줄만한 얼굴에 긴 머리칼이 특징이었다. 몸도 저만하면 괜찮······.

‘아냐.’

그러나 루벤카는 곧 정신을 차렸다.

여기는 시립 아카데미, 론 카산드라 교수의 저택. 이런 식으로 들어올 수 있는 남자는 한 명뿐일 것이다.

루벤카는 겉으로 티를 내지 않으며, 알고 있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눈살을 찌푸리며 평소처럼 말했다.

“뭐야? 더럽게.”

[ 화들짝 놀랐으면서 알고 있었던 척 자연스럽게 눈만 찌푸리는게, 역시나 성격이 더럽고 심계가 흉해 보이는군. 악독한 년. ]

“······.”

놀랍게도, 전혀 통하지 않았다.

[ 머리는 노랗게 염색해가지고. 팔에 마나문신 그려놓은 거 봐라. 건드리기만 해도 터지는 공격 계열이로군. 네 몸이 무슨 폭탄이냐? ]

“······.”

비아냥에 최적화된 레반의 전음이 들려온다.

꾸깃!

루벤카는 아닌척 신경질적으로 옷을 내려, 팔뚝에 있던 마나문신을 가렸다. 어이가 없었다. 집중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지만, 약간의 기척도 느끼지 못했기에.

루벤카는 7레벨의 마법사. 그것도 이제는 완숙함의 능선을 넘어 단계의 마지막 경지를 바라보는 마법사다. 그런데 이렇게 가까이 올 때까지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마음만 먹으면 죽였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

그때보다도 더 성장했다고?

수복전 이후에 시간이 꽤 길긴 했어도 1년은 지나지 않았는데, 더 성장했다고? 심지어 얼굴이랑 골격은 왜 저렇게 바뀌었지? 전신 성형이라도 하고 온 건가?

부득!

아무튼 루벤카는 이를 갈며 분을 삼켰다. 눈에 힘도 줬다. 실상 이를 갈며 분을 삼킬 이유는 딱히 없지만. 뭔가 지금까지 해온 행동상, 왜인지 이번에도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레반!”

곧, 레반을 본 레나가 종종대며 달려왔다. 레반을 뒤따라 온 아힘사가 레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응?”

아힘사의 인사에 레나는 잠시 의아한 기색으로 있다가, 마주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 * *

크으—

목구멍이 얼어버릴 듯한 느낌.

얼음에 담긴 콜라는 언제나 시원하다. 연방이 망하면 이것도 없겠군. 다시 한번 굳게 의지를 다진다.

나는 아힘사와 함께 카산드라 교수의 저택으로 레나를 찾아왔다. 레나의 얼굴을 보자마자 어쩐지 기분이 편안해졌다. 아쉽게도 꼴보기 싫은 루벤카가 옆에 붙어 있었으나, 나 대신 레나를 보좌하는 시종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저택의 홀에 앉아, 레나와 하루종일 대화를 나눴다. 콜라도 마시고. 지나간 얘기도 하고. 알 헤임달과 수르트에서 겪었던 것들을 모두 세세히 말할 정도의 여유는 없어도, 충분히 즐거웠다.

레나는 뭐라도 자랑하고 싶었는지, 주식 계좌를 꺼내 보여주었다. 저번보다도 금액이 훨씬 늘어있었다. 그래서 나도 연방으로부터 하사받은 라그나로크의 땅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굉장히 좋은 목에 있는 필지라, 레나도 눈을 빛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집을 짓기에는 땅이 너무 크고, 그렇다고 그냥 놀리기에는 아깝고, 팔아서 크레딧으로 줄까?”

“아냐, 이미 내 재산도 감당하기에 벅차.”

“그래? 둘 다 싫으면 나 줘.”

대화 중간중간 루벤카가 끼어들었다. 레나에게 집착하는 년이니 저럴만도 하지.

물론 철저하게 무시하고 레나와만 대화를 나누었다. 밤이 늦으면 자고, 아침이면 일어나고, 식사가 차려져 있으면 먹고, 또 레나와 대화를 나누고.

아니나 다를까 말초적인 백수생활은 즐거웠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나는 카산드라 교수의 저택에서 사흘이라는 긴 시간을 보냈다. 레나와 함께 보낸 시간이라 전혀 아깝지는 않았다.

다만, 그 시점에 나는 슬슬 떠나야 할 때라고 느꼈다. 루벤카년은 오묘한 표정을 지었고, 레나는 아쉬운 기색으로 극구 말렸으나 나는 일어났다.

지금 일어나지 않는다면, 계속 이 저택에 남고 싶어질 듯해서.

“금방 돌아올게.”

그렇게 나는 카산드라 교수의 저택을 떠났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밝은 별무리가 보이는, 마탑주의 서재.

허공을 둥실둥실 떠다니는 청록빛 마력. 오래묵은 책 냄새와 서재를 성벽처럼 둘러싼 책장. 장식품처럼 책상 위를 꾸미는 앵무새 법기. 고강한 마력을 가진, 서로 다른 개성의 마탑 소속 마법사들.

그들을 둘러보던 일레힌 포이체카가 말했다.

“멀지 않은 과거, 가륵은 도시 안에 숨어있다가 9레벨 집행관 모리 무라타를 참살했다. 그저 우연이라고 볼 수 없다. 최근 변절자들에게 피를 뿌리고 다니는 네임드 시체는 그 가륵이 맞는 듯하다. 남궁세가에서 가져온 언데드의 혈액이, 과거 모리 무라타와의 전투때 남았던 가륵의 혈액과 동일한 것으로 확인되었으니.”

가륵.

최근 다시금 이름이 오르내리는 네임드다. 수복전 이후 로라 마르티네즈라는 걸출한 마법사와 진공진인이라는 걸출한 거물들을 필두로, 변절자 색출 작업이 이루어졌다.

변절을 준비하던 이들은 줄줄이 잡혀 처벌을 받았다. 어떤 방식으로 변절자들의 자백과 밀고를 받았는지는, 당신들의 상상에 맡기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이라며 공개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변절자를 찾는 여러 과정 사이에서 마침내······

“네임드, 가륵의 위치가 특정되었다.”

— !

“일레힌 포이체카 마탑은, 로키 시티로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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