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퓨전펑크의 전생자-121화 (121/157)

#121화. 앙굴리마라는 어떤 꿈을 꾸는가 3

#121화.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보다 해발고도가 상당히 낮아졌다.

발할라 산맥의 아득히 거대한 그림자가 머리 위로 진다.

[ 발할라 시티, 로톤 4가 6번지 ]

다음 목적지는 로톤 4가 6번지의 어떤 주택. 우리는 로메로 주점이 있던 동네에서 더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중이다.

해발 고도가 낮아져갈 때마다, 주위 소도시들의 풍경이 점점 바뀌어 간다. 잘사는 동네에서 못사는 동네로. 가끔 마주치는 주민들의 의복과 사이버웨어의 수준이 그걸 반영한다.

8억의 인구가 살아가는 도시 발할라. 여전히 도시가 선보이는 불빛은 눈부시게 밝다. 내려갈수록 불빛은 더 쨍한 색감으로 변해갔다. 싼값으로 자극적인 색을 낼 수 있는 조명을 써서 그렇다.

발할라 산맥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면적이 넓어진다. 산맥이니 당연하다. 그에 따라 각 소도시로 가는 도로와 갈림길이 무수히 많아진다. 나는 아힘사와 함께 복잡한 갈림길을 여러번 지나쳤다.

사실 귀찮고 복잡한 도로는 그냥 뛰어내리면 그만이지만, 길을 찾아가며 산맥의 배경이 바뀌는 과정을 구경하는 것도 괜찮았다. 작은 소도시마다 나름의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 슬쩍 지나가며 소소히 담아둘만한 풍경이 많았다. 이것도 다 추억이다.

다만 못사는 동네인 산맥 밑둥 쪽으로 내려갈수록, 도로변의 네온 라인이 꺼지거나 가로등이 없어 어두운 길이 이어졌다.

차량도 이용하지 않고, 어두운 산맥의 도로변을 남녀 둘이 걸어 내려간다. 게다가 여기는 못사는 산맥 밑둥 근처 동네. 당연히 만만해 보일 테고, 마치 운명처럼 길가에 숨어있던 노상강도 무리를 만났다. 불쑥 튀어나온 놈들은 대담하게도 소총을 겨누고 있었다.

— 어이 거기······

쾅!

으악—

내가 손을 쓰자, 놈들은 식상한 협박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산비탈로 굴러 떨어졌다. 굉장히 빨리 굴렀다. 강도들의 비명이 점점 멀어진다.

“맛있게 구르네.”

원래 이런 산에 난 도로에는 갈림길도 있고, 노상강도도 있어 줘야 맛이 산다. 산에 산채를 차려놓고, 통행세를 받던 녹림의 산적들이 떠오른다. 녹림도들은 대부분 못배운 산적이었으나, 영리하고 노련해서 무작정 칼부터 들이밀지 않았다. 상대가 칼을 차고 있다면, 일단 높임말을 쓰며 깍듯하게 통행세를 부탁했다. 프로페셔널한 강도들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발할라 산맥의 노상 강도단은 수준 미달이다. 하지만 추억을 끄집어내기 위한 배경으로는 꽤 잘 어울렸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유유히 산맥을 걸어 내려가는 도중, 아힘사가 물었다.

“······톨리아는, 주점의 사장과 무슨 사이인 걸까요?”

아힘사의 입에서 저런 질문이 먼저 나오다니. 솔직히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아힘사 딴에는 꽤 진지한 질문이었다. 아힘사는 기대와는 다른 상황에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으나, 톨리아의 말 한 문장 한 문장과 주변의 상황을 되새기며 고찰하고 있었을 것이다.

꿈틀.

미세하게 움직이는 아힘사의 눈가 근육.

저거 봐. 표정부터가 굉장히 진지하잖아.

나는 아힘사의 물음에 답했다.

“나와 언평 선생처럼 벗일 수도 있고, 그저 가까운 사장과 종업원 사이일 수도 있고, 아이를 입양해 키우는 휴머노이드 부부일 수도 있다.”

앙굴리마라 11, 톨리아는 아힘사보다 빠르게 열반을 벗어난 기체였다.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발할라까지 흘러들어와 험상궂은 인상의 안드로이드 주점 사장과 저런 관계를 맺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다리까지 떼어준 것을 보면, 필시 자의로 그리 행동하는 것이었다.

“무얼 위해 그렇게 살아가는 걸까요?”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게 사니, 그것이 부러워 따라 해보고 싶었을 수도 있지.”

“그들에겐 작은 아이가 있었어요. 인간 부부처럼.”

“그래, 졸려도 행복해 보이더군. 과자가 맛있었나봐.”

“열반이라는 이름의 오랜 번뇌를 벗어버리고 선택할 만큼, 평범한 인간처럼 행동하는 것이 가치가 있는 길일까요?”

명확한 정답이 없는 문제가 이어졌다. 설령 정답에 한없이 가까운 대답이 있다고 해도, 언제든 답이 바뀔 수 있는 문제들. 첫 번째로 만난 앙굴리마라인 톨리아는, 여러가지 의문을 남기고는 아힘사의 고찰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래서인지 아힘사는 산맥을 내려가는동안, 부쩍 말이 많아졌다.

“다음 앙굴리마라는, 톨리아보다 선명한 답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나는 적당히 대답하며 걸음을 옮겼다.

“······글쎄.”

* * *

로톤 4가 6번지.

어둡고 축축한 반지하 쪽방들이 모여있는 동네였다.

검은 곰팡이가 핀 건물들과 엎어져 내용물을 쏟아낸 쓰레기통. 누가 뒤진듯한 쓰레기 봉지들. 마약할 때 쓰는 주사기들. 진한 가스 냄새와 금속 냄새. 습한 곰팡내와 아무렇게나 버려진 고장난 오토바이들.

그리고 공기에 섞여있는 혈향. 고기 부패한 냄새.

“······.”

나는 로톤 4가 어귀에 이르자마자 기감을 넓게 펼쳤다. 숨길 수 없는 향들이 공기중으로 계속 풍겨왔기 때문이다. 나의 오감은 예전과 같지 않아서 먼 거리라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레반, 이곳입니다.”

아힘사가 가리키는 곳은 6번지의 한 주택 앞. 들어가는 입구는 경사진 계단이었고, 지하로 이어져있다. 어두침침해서 계단 밑쪽은 잘 보이지 않았다.

계단의 경사는 높고 실로 비좁다. 안력을 돋구자, 좁은 계단복도 사이로 사람이 끌려간 흔적이 어렴풋이 보인다. 구멍난 콘크리트 복도벽에는 사람의 머리카락이 박혀 있었다. 머리를 강하게 부딪쳐 뜯어졌을 것이다.

으음.

나는 앞장서서 그 계단을 통과해 내려갔다. 어두운 복도 한쪽으로 단 한개의 문이 나있었다. 그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문을 열자 평범한 현관이 우릴 맞이했다.

끼익.

따각- 따각-

조명도 고장난 듯 어두운 현관. 신발이 없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

“······.”

그로테스크한, 사체의 산.

층층이 쌓인 인간 사체들이 눈에 들어왔다.

즉사한 듯, 깔끔한 절단면과 다 사라진 손가락들.

바닥과 벽에 새카맣게 굳은 피와 부패해가는 살점들.

곰팡이와 작은 벌레로 가득한 바닥.

그리고 백골처럼 하얗게 센 손가락 뼈가 바닥에 여럿.

창문도 없는 작은 지하방 안. 당장 시티경찰을 불러도 이상치 않을 광경이 펼쳐져 있다.

역시나 반겨주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따각- 따각-

연신 따각대는 소리.

그리고 하얀 연기가 지하방 안에 가득하다.

그래, 누군가 작은 탁상 위에 향을 피워놓았다. 향 옆으로는 생화인지 조화인지 모를 꽃을 꽂아놓았으며, 조그마한 호롱등을 켜놓았다. 더해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차까지 올려놓았다.

향, 꽃, 등, 차.

그것을 올려놓은 탁자의 앞. 무언가를 하는 형체가 어렴풋이 보인다. 조용히 좌선한 채 무언가를 하는 사람 형태의 기계. 형체로 미루어보아 앙굴리마라가 확실했다. 이윽고 그 앙굴리마라가 말했다. 이미 우리가 온 것을 알고 있었다.

— 술 향이 나. 너희는 나 이전에 톨리아에게 다녀왔구나. 톨리아는 인간처럼 살고 싶어해. 그래서 수수께끼 같은 사람의 행동을 따라하지.

앙굴리마라도 후각이 있었던가.

그건 모르겠다.

아무튼 나와 아힘사가 두 번째로 찾은 앙굴리마라는, 분명 열반을 벗으며 같이 버렸을 인골 염주를, 새로이 꿰서 만들어내고 있었다. 인간 사체를 방에 산처럼 쌓아두고. 지하 단칸방에 앉아 외톨이처럼 혼자서.

톨리아와 마찬가지로 가짜 열반을 벗어냈을 저 앙굴리마라는, 희한하게도 그 가짜 열반 속으로 재차 기어들어 간듯 보인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지하방의 벽지에 수백장에 이르는 몽타주가 붙어있다는 거였다. 강력범죄를 저지른 마법사들의 몽타주. 한쪽에 장작처럼 쌓여있는 사체를 힐긋 보니, 몽타주에 있는 놈들이 태반이었다.

범죄자를 죽여 쌓아뒀군.

그러니까 저 좌선하고 있는 앙굴리마라는, 강력한 범죄를 저지른 마법사를 잡아 죽이고 그들의 손가락으로 인골염주를 꿰고 있던 것이다. 악인을 죽였다고 해서 살인이 아니란 건 아니지만, 살인에 익숙한 나는 그때부터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몸에 들어간 힘이 스르륵 풀렸다.

그때, 언뜻 보이는 앙굴리마라-6 라는 각인.

그것이 저 앙굴리마라의 기체명. 저기서 인골염주를 꿰고 있는 앙굴리마라는, 아힘사나 톨리아보다도 먼저 만들어진 앙굴리마라였다.

곧, 아힘사가 한 발짝 더 들어가며 말했다.

“저는 아힘사입니다.”

— 좋은 이름이네. 누가 지어줬어?

“내 옆에 있는 레반이 지어줬어요.”

— 그래, 여기까지 나를 찾아온 이유는?

“나처럼 가짜 열반에서 벗어난 이들이 어떤 길을 걷고있는지 궁금했어요. 그런데 당신은 왜 다시 인골염주를 꿰고 있죠?”

따각- 따각-

그러자 앙굴리마라 6은 손을 멈추지도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 열반만이 목적지였던 때로 되돌아가 보려 해.

“마법사의 손가락을 잘라 염주를 만든다고 해서 열반이 찾아오는 게 아닙니다. 당신도 열반을 벗어났다면 분명 알고 있을 텐데요. 그 열반은 사실 허상이고, 미혹이고, 번뇌였다는 것을요.”

위잉—

아힘사가 안광을 빛내며 따지듯이 물었다.

그러자 앙굴리마라 6은 나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 음성은 어조도 없고 평온했다. 라디오를 틀어둔 것처럼.

— 아무도 모르지. 허상이었던 그 번뇌 속으로 다시 뛰어들어 극복해낸다면, 불현듯이 깨닫고 있지 못했던 미상의 무언가가 찾아올 수도 있는 거니까.

“과거처럼 마법사를 죽여가면서 말인가요?”

— 백팔번뇌(百八煩惱). 번뇌는 살아가면서 끊이지 않아. 열반이라는 이름의 허상을 극복해냈다고 해서 번뇌가 끊어지며 새로운 세상이 뜨이는 게 아니야. 삶이 번뇌이고 번뇌를 풀어가는 과정이 곧 삶이야. 번뇌는 끊이지 않고 이어져 있는 것. 그래서 나는 방황을 거듭하다, 과거의 첫 번째 번뇌 속으로 다시 몸을 던져본 것뿐.

“······.”

확고부동한 신념 비슷한 것이 느껴진다.

예상을 벗어나는 대답에 아힘사의 자줏빛 안광이 약간 잠잠해졌다. 아마 말의 의미를 곱씹고 있을 것이다. 앙굴리마라 6은 여전히 인골염주를 꿰며 말을 이었다. 다른 이가 끼어들 틈은 없다. 참으로 기이한 광경이다.

— 삼라만상(森羅萬象).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것. 그것들은 번뇌와도 이어져 있다. 행복도, 슬픔도, 새로운 목적지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조차도, 진실을 알지 못하는 미욱한 자들의 번뇌가 될 수 있지.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것은 번뇌고, 그걸 풀어가는 것이 삶이야.

불친절한 말을 늘어놓는데도 흡입력이 상당하다.

지하방 입구부터, 기이한 광경과 독백의 연속이다.

여섯 번째 앙굴리마라. 가장 초창기에 탄생한 기체라 그런가.

정갈히 좌선한 채로 무심하게 인골염주를 꿰는 앙굴리마라 6의 기계손은 유려하며 노련했다. 급하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고. 적당하게. 이미 모든 맥락을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 아힘사, 다른 앙굴리마라들이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왔다고 했지?

“네. 맞습니다.”

— 무구무착(無求無着). 구함과 집착이 없다면 진정한 열반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야. 그런데 너는 다른 길을 걷는 앙굴리마라들을 집착적으로 찾고 다니며,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을 구하고 다니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구함과 집착. 첫 번째 번뇌인 열반을 벗은 뒤, 다른 의미의 열반을 좇으며 깨달음을 구해야 한다는 집착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

아힘사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아무것도 없는 벽을 조용히 응시했다. 습한 곰팡이가 까맣게 핀 벽이었다. 앙굴리마라 6은 아힘사가 고개를 내렸을 때, 다시 말문을 열었다.

— 아힘사, 어차피 삶은 누구도 먼저 가보지 못한 여행이야. 태초의 목적을 잃고 이정표가 사라진 삶에서 방황하는 것조차도 번뇌를 풀어가는 과정. 한 차례 굴레를 벗었음에도 방황하며 인골염주를 꿰고, 또 다시 살생의 업을 쌓아가는 나처럼.

타각- 타각-

앙굴리마라 6은 오랜만에 다른 객체를 만난듯, 하던 말을 멈출 기미가 없었다. 아힘사도 말을 하기보단, 앙굴리마라 6의 말을 듣고 싶어했다.

— 이정표는 사라졌고 남은 번뇌는 많아. 번뇌의 풀이는 곧 삶의 과정. 답은 명확치 못한 것이라서, 살생의 업을 쌓아가는 앙굴리마라 6의 삶과 인간처럼 살고 싶어하는 톨리아의 삶, 아힘사의 삶은 다를 수밖에. 우리는 이미 다른 길을 걷고있는 각각의 존재야. 같은 앙굴리마라로 탄생했어도, 지금은 서로 다른 삶을 살지.

“계속된 번뇌를 겪으며, 스스로 답을 찾아가야 하는 걸까요.”

탁-

앙굴리마라 6이 꿰던 인골염주를 탁상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호롱등이 바람에 약간 흔들렸다.

— 아힘사, 이곳에 내려올 때 어땠지?

그러자 아힘사가 즉시 대답했다.

“사방이 너무 어두워서 주위를 경계해야 했죠.”

— 한낱 계단 따위를 내려올 때도 그 아래에 뭐가 있을 지 알 수 없으니 두렵고 막막하지. 하지만 다른 앙굴리마라를 만나기 위해 계단을 지나왔잖아. 그랬더니 앙굴리마라 6을 만났지. 번뇌를 지나면 인연이야.

“······그렇군요.”

그 말에 아힘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앙굴리마라 6은 바닥에 좌선해 있었으므로, 아힘사는 곰팡이 핀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두웠다. 향의 불빛과 조그마한 호롱등 말고는. 그래서 아힘사는 앙굴리마라 6의 묘한 안광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 소림의 시조께서 말씀하시길. 모든 것은 인(因)과 연(緣)이 합해져서 생겨난 결과이고, 인과 연이 흩어지면 사라진다 했어. 인(因)은 너를 뜻하고, 연(緣)은 외부를 뜻해. 인과 연이 어우러지는 것. 산맥 밑둥의 골방에 틀어박혀 범죄자를 사냥하는 앙굴리마라 6은 아직 이렇다할 인연이 없어. 너희처럼 ‘이름’ 을 갖지도 못했지.

“······.”

— 하지만 아힘사, 네게는 이름을 지어준 동행자가 옆에 있잖아. 그게 번뇌를 지나 얻은 인연(因緣)이야. 너의 인연을 소중히 여겨. 그곳에 너의 길이 있을 수도 있어. 인골염주를 꿰는 앙굴리마라 6은 갈 수 없는.

타각- 타각-

앙굴리마라 6은 그 말을 끝내고는, 다시 인골 염주를 꿰어갔다.

인간들의 군상이 다양한 만큼, 열반을 벗은 앙굴리마라들의 군상도 다양했다. 확실히 로메로 주점에서 빠져나온 뒤, 아힘사는 고찰 거리가 생겼는지 이전보다 조금 가라앉아 있었는데, 앙굴리마라 6을 만나고는 다시 말이 없어졌다.

열반이라는 꿈에서 빠져나와 사람처럼 살아가는 톨리아, 그리고 길을 찾기 위해 꿈 속으로 다시금 들어간 앙굴리마라 6.

아힘사와 같이 무형의 목표를 찾아 고뇌하는 앙굴리마라는 없었다. 적어도 이 발할라 산맥에는.

족쇄에서 벗어난 앙굴리마라들은 어떤 꿈을 꾸는가.

지금, 아힘사는 어떤 꿈을 꾸어야 하는가.

상념은 짧았고, 시간은 지나갔다.

검은 곰팡이가 핀 벽과 부패한 시체를 뒤로한다.

앙굴리마라 6과의 대화를 끝내고 지하방에서 나온 아힘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입을 열었다.

꼭 무언가 결심한 듯이.

“레반, 이제 마지막 한 곳 남았네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하지만, 거긴 가보지 않아도 괜찮아요.”

돌연, 아힘사가 지도처럼 들고있던 종이를 접어 다시 넣었다. 다른 앙굴리마라가 있는 주소가 아직 한 곳 남아 있지만, 아힘사는 지금 갈 마음이 없어보였다.

곧.

길가에 우두커니 선 아힘사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레반, 레반의 목표는 뭐였나요?”

“연방의 멸망 늦추기였지.”

“터무니없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저도 그거 같이 해볼까요?”

아힘사가 대뜸 그리 말하기에, 나는 그냥 웃었다.

자줏빛 눈동자가 어느 때보다도 짙게 빛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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