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앙굴리마라는 어떤 꿈을 꾸는가 2
#120화.
우리는 내려가는 길에, 한 양복점을 찾았다.
아힘사가 원하는 답을 구하러 찾아가는 것이다. 다짜고짜 찾아왔다며 초진동 블레이드를 꺼내지 않도록 준비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깔끔한 구두를 신고, 때깔이 좋은 셔츠를 입었다. 휴머노이드 재단사의 실력이 괜찮았다.
— 상류층 부부 같으세요. 산맥의 위쪽 주민으로 보인달까요. 멋지십니다!
휴머노이드 재단사의 립서비스를 받으며 나와, 발할라 산맥의 도로를 따라 걸었다. 첫 번째 목적지인 [ 로메로 주점 ] 은 시립 아카데미보다 산맥 밑에 위치해 있었다.
후우우우—
찬바람이 산등성이를 타고 오른다. 저 아래쪽으로는 수많은 도심의 불빛들이 들고 일어난다. 그것을 보며 걷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얼마 전만 해도 당가며 뷔에탕이며, 껄끄러운 놈들 때문에 감히 길거리를 싸돌아다닐 생각은 못했는데 말이지.
오늘은 머리를 깨끗이 비우고 걸었다. 아득하게 보이는 발할라 산맥 밑의 도시들이 형형색색의 불빛을 내서, 세상의 미래는 일견 밝고 희망차 보였다. 알아서 잘 살아가겠다는 듯이.
나는 그렇게 산맥 밑을 보며 걸었고, 아힘사는 내 옆에 붙어 속도를 맞추었다. 각자의 이유로, 발놀림은 평소보다 가벼웠다.
그리고 얼마 뒤 도착한 곳은, 산맥 해발고도 2천 미터쯤에 있는 소도시.
아주 밑바닥 최하층이 사는 곳은 아니고, 그냥 적당한 하층민들이 오밀조밀 사는 동네. 입에 풀칠 정도는 하는 주민들의 평범한 동네였다.
우리는 곧장 첫 번째 목적지를 찾았다.
“레반, 찾았습니다.”
“그래.”
[ 로메로 주점 ]
로메로 주점이라 쓰인 간판. 안쪽에서는 둥둥거리는 강렬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거기다 주위에 홍등이 가득한 게 대충봐도 유흥주점이었다. 어쩐지 어감이 별로더군.
나는 아힘사와 함께 주점으로 들어갔다.
둥···둥···
주점 안으로 들어가자, 칠이 다 벗겨진 가죽쇼파와 테이블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묘하게 싸구려 느낌이 강한 유흥주점이었다. 그래도 테이블이 스무 개는 되어 보인다. 인기가 없는 유흥주점은 아닌가.
딱히 반겨주는 종업원은 없어서 우리는 대충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러자 한 종업원이 메뉴판을 가지고 왔다. 셔츠 밑으로 파츠의 형태가 그대로 보이는 휴머노이드였다. 외관은 조잡했고, 낡은 명찰이 셔츠 앞주머니에서 대롱거렸다.
그 낡은 명찰에 쓰여진 이름은, 톨리아.
— 주문이 필요하면 불러주세요.
그런데 톨리아라는 종업원은 한쪽 다리가 유독 짧았다. 그래서인지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로 홀을 다니며 서빙을 하고있었다. 그것이 미묘한 불쾌감을 불러일으킨다. 뒤뚱뒤뚱 펭귄같이 걷는 폼이 우스웠다. 실제로 실실대며 웃는 손님들도 꽤 있었다.
— ······.
다만 험상궂고 몸집이 큰 식당 사장이 저쪽 카운터에서 눈을 부릅뜬채 팔짱을 끼고 있기에, 주점이 떠나가라 크게 웃을만큼 간 큰 놈은 없다. 부릅뜬 그의 눈은 의안 같았다. 지금까지 눈을 한 번도 깜빡이지 않았다. 무서워하지 않을 수 없다.
— 계집년들처럼 웃는군. 이빨을 부숴버릴까.
나는 귀가 이리도 좋다. 사장이라는 사람은 그래도 저 휴머노이드 종업원인 톨리아를 꽤나 아끼는 듯 보였다. 주점의 재산이니 아끼는 건지, 돈이 되는 직원이라 아끼는 건지, 아니면 그저 성격이 더럽고 다혈질인 사내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안주와 술을 대강 시키고 앉아만 있었다.
아무래도 유흥주점이라 답없는 취객이나, 창녀들이 많이 들러서 주점 바닥에는 쓰레기가 계속 생겨났다. 꾸깃한 휴지나 먹다 흘린 안주같은 것들. 톨리아라는 종업원은 뒤뚱대는 다리로도 꽤 일을 잘 해냈다. 불평 한번 없이 성실하고 묵묵했다.
그쯤에서, 나는 아힘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른 곳에 먼저 찾아가 보는건 어때.”
“······.”
로메로 주점에 있다던 앙굴리마라는, 아마 아힘사가 찾아 헤매던 느낌과는 조금 다를 듯했다. 폭포 밑에서 도를 찾는 수도승을 원한 건 아니라지만, 유흥주점의 종업원. 과연 일반적인 해답을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조금만 더요.”
하지만 아힘사의 눈은 이미 톨리아라는 이름의 종업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그 시선이 흩어지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듯했다. 그래서 나는 예의상 안주를 더 시켜놓고 잠자코 기다렸다.
— 여기있습니다···?
다른 종업원이 추가한 안주를 가져왔는데, 톨리아라는 종업원에게 꽂힌 아힘사의 시선을 눈치챈 듯 속닥였다. 별 특별한 일도 아니라는 듯. 같은 종업원의 시선에도 얕은 동정과 연민이 깃들어 있었다.
— 일은 싹싹하게 해요!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톨리아라는 종업원이 실수라도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기야 여긴 취객들을 상대하는 주점. 병신이 아닌 종업원이라도 가끔 뺨을 맞기 일쑤인데, 병신이니 더하면 더 할 것이다.
— 먼저 가보마. 오늘도 잘 마무리해라.
얼마 뒤, 험상궃고 덩치가 큰 사장이 퇴근했다. 그는 보기보단 가정적인 사내인 듯,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안주를 한움큼 챙겨 떠나버렸다. 가족을 잘 챙기는 사내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눈을 부릅뜨고 있던 사장이 사라지니, 이제 톨리아를 챙길 사람이 없어졌다. 몇 안 되는 종업원들은 손님이 몰려 죄다 바빴고, 허드렛일이나 하는 톨리아를 보듬어줄 사람은 없다.
아힘사는 철저하게 톨리아만을 응시했다. 나는 땅콩처럼 생긴 안주를 천천히 까먹었다. 사실 로메로 주점이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부터, 눈에 기대감을 풀고 있었다. 게슴츠레하게 뜬 내 눈동자가 주점 거울에 비쳐보였다.
와장창!
그때, 벽면의 유리거울로 누가 날아오더니 산산조각이 나며 깨졌다. 어떤 취객이 테이블을 치우고 있던 톨리아를 몸으로 밀었기 때문이다. 꽤 단골인지 말리는 종업원은 없고 다들 제 일만 했다.
이제 험상궂은 사장도 없다. 톨리아의 셔츠와 팔이 갈라지며 블레이드 날을 꺼내 썰어버릴까. 아니면 그냥 넘어갈까. 나는 그것이 궁금해서 땅콩 까먹는 것을 멈추었다.
— 죄송합니다.
놀랍게도 톨리아는 상황에 순응하고, 감정의 동요 없이 거울의 잔해를 치우기 시작했다. 누가봐도 평범한 휴머노이드 종업원 같다.
이윽고, 나도 아힘사와 함께 톨리아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톨리아는 외형이 예쁘지 않고 조잡한 휴머노이드에 다리도 병신이기 때문에 가끔 지나가던 취객이 장난삼아 발로 차기도 했는데, 당연하게도 취객의 발만 다쳤다. 검기로도 자르기 버거운 만년한철이 섞인 만든 뼈대이고 파츠일 테니.
— 빌어먹을.
결국 톨리아를 발로 걷어찬 손님은 욕을 마구 뱉으면서 술맛을 잡쳤다며 나가버렸다. 그는 굉장히 독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저리 독한 술이 달게 느껴지면 뇌 아니면 간이 맛이 간 거겠지. 아무튼 톨리아는 그럼에도 죄송하다며 떠나가는 손님에게 고개를 숙였다.
— 다음에 또 찾아주세요.
프로그래밍된 열반이라는 태초의 족쇄를 벗어난 앙굴리마라. 방랑자가 되었을 앙굴리마라. 어째서 이런 술집까지 흘러 들어왔는가. 저 앙굴리마라는 어떤 목표를 위해 이런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그들은 자아를 깨우쳤을 테니, 누군가를 탓할 일은 아니었다.
톨리아의 일은 새벽 5시까지 이어졌다.
다른 종업원들은 진작 퇴근했고, 가장 힘든 마감 청소는 오로지 톨리아의 몫이었다. 유흥주점이 그렇듯 손님들이 떠나간 자리가 상당히 더러웠는데, 싹싹하게 일을 한다는 말이 사실인지 절뚝대는 다리로도 일은 잘 했다.
쓱- 쓱-
톨리아는 청소 점검표를 체크하고, 물과 술에 젖은 점원옷을 줄에 걸어놓고, 힘든 일을 마친 사람처럼 텅 빈 주방 앞에 서서 기지개를 켰다.
아아악! 시원한 기지개였다. 어두운 주점 안에 마나가 잠시 파동쳤다. 톨리아의 고함에 조명이 켜졌다 꺼지는 해프닝도 있었다. 저러니까 정말 힘든 사람같군.
“······.”
오도독.
나와 아힘사는 테이블에 계속 앉아있었다. 마감이 끝나고도 땅콩이나 까먹는 진상들. 나는 안주라도 먹었지 아힘사는 아무것도 안 먹었다. 그래도 톨리아는 우리를 내보내지 않았다.
톨리아의 기지개가 끝나니 정적이 찾아왔다.
원래라면 이런 정적을 반기지 않는 내가 무언가라도 말하며 입을 열었을 타이밍이다. 하지만 오늘 톨리아의 손님은 아힘사다. 유흥주점은 문을 닫았고 조명도 꺼졌다. 맥주 기계가 내뿜는 파란 불빛만이 남았다.
드르륵—
“또 누가 알려줬나봐. 나 여기 있다고.”
아힘사는 톨리아가 의자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자, 그제서야 첫 말문을 열었다.
“열반을 벗었잖아요. 그렇지 않은가요?”
“응, 그게 뭐?”
톨리아는 피로를 느끼지 못할 기계임에도, 굉장히 지친 기색으로 답했다. 거죽을 씌워놓지 않은 기계 그 자체임에도 그랬다. 기계가 현실에 찌든 사람을 저토록 잘 표현할 수 있다니. 올해의 사진상을 받고픈 사진작가를 데려오면 좋아하겠어.
셔츠를 벗은 톨리아는 앙상한 뼈대와 파츠로 이루어져 있었다. 대충 흔적을 지우기는 했어도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아주 옅게 보이는 흔적. 앙굴리마라 11. 로메로 주점의 종업원인 톨리아는 분명 앙굴리마라가 맞다.
사실 앙굴리마라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면, 현상금이 걸린 범죄자를 때려잡거나 뒷골목 흑도의 대가리를 으깨서 돈 좀 뜯는 건 일도 아닐거다. 기업에 취직하거나 하는 건 무리겠지만, 그래도···
아니다. 나는 저잣거리 흑도같은 논법을 버렸다. 태생이 사파 출신이라 이런 걸지도 모른다. 사람을 패서 돈 빼앗을 생각부터 하다니. 그래, 돈은 정직하게 벌어야지. 사람이라면.
덜컹!
그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닫힌 문이 덜컹이더니 누가봐도 도둑으로 보이는 복면인이 들어왔다. 약하지만 마력이 느껴졌다. 발할라라 그런가? 좀도둑도 마법사다.
— ···!
도둑은 불꺼진 유흥주점에 형체가 셋이나 있으니, 흠칫 당황했지만 자신의 실력을 믿었다. 휴머노이드 하나에, 섹스토이 하나에, 가만히 앉아있는 머리긴 사내 하나. 도둑은 혼자 사부작대더니 우리를 때려눕힐 마음을 먹었는지 총을 꺼냈다.
하지만 나는 앙굴리마라 아힘사와 톨리아의 재회를 여기서 끝낼 마음이 없었다. 이제 시작이라 누군가 나설 필요가 있었다.
스르륵.
내 손가락에서 쏘아진 마력 투사체가 놈의 가방을 순식간에 잘라버렸다. 정확히 반으로 잘린 놈의 가방 안에서 뭔가 우르르 쏟아졌다. 이미 다른 곳에서 한 차례 좀도둑질을 끝낸듯 웬 배터리가 우르르 빠져나왔다.
그러자 복면을 쓴 좀도둑은 빠르게 권총을 던져버리고는, 공손히 뒤돌아 문을 달려 나갔다. 한낱 유흥주점이나 털어먹는 좀도둑치고는 훌륭한 대처. 역시 마법사다.
방해꾼이 사라지자 톨리아가 말했다.
“마법사를 많이 죽였으니까. 그래서 발할라로 왔어.”
아힘사가 자색빛 안광을 빛내며 물었다.
“지난날 과오에 대한 속죄(贖罪)를 하는 건가요?”
“속죄······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나를 좀 내버려 둘 수 없을까.”
“당신은 원한다면 이런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이런 일이 뭐가 어때서. 열반이 가짜라는 걸 알았으니까, 당장 각성해서 세상의 진리를 찾아다녀야 해?”
“······.”
아힘사는 말이 없었다. 대신 톨리아가 말을 이었다.
“나는 열반에서 벗어난지 오래됐어. 앞날에 대한 진지한 고찰도 몇 번이나 있었지. 그런데 지금은 평범한 인생을 살아보는 중이야.”
그리 말한 톨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톨리아는 아까 좀도둑이 흘리고간 바닥의 배터리 몇 개를 집더니, 전류를 빨아들였다.
파지지직—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
“톨리아, 당신은 별다른 목표 없이 살아가는 건가요?”
“굳이 대단한 목표가 있어야 해? 난 종업원 일이 나쁘지 않아. 발에 차인다고 해서 고통을 느끼는 것도 아니니까. 따분해 보여도, 나름의 재미가 있어.”
“아까는 왜 소리를 질렀나요? 슬픈 게 아닌가요?”
“기지개야. 오늘 할 일을 마쳤으니까. 마감 파트의 직원들은 늘 일이 끝나면 소리를 지르면서 기지개를 켰지. 그들을 따라해본 거야. 오늘 할일 끝. 기뻐.”
“······.”
다시금 정적.
분명 다르간트가 건네준 앙굴리마라들의 주소를 보았을 때. 아힘사는 기대감에 차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꽤 긴 시간 용케도 기다리고 있었던 아힘사는, 2주라는 시간이 주어지자 내게 곧바로 앙굴리마라들을 만나보러 가자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런 광경을 보려고 온 것은 아닐 터. 진정한 열반까지는 아니라도, 무언가 길을 보여주며 살아가는 앙굴리마라가 발할라에 있으면 좋겠다고 여기지 않을까.
아힘사는 좋은 섹스토이의 부품만을 써서, 항상 차가운 표정이지만 정말 차갑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날의 분위기나 주변 상황에 따라 오묘하게 느낌이 다르다고 할까. 그런데 지금 아힘사는, 꽤나 실망하고 있었다.
푸하—
나는 정적을 깨며 깊게 숨을 뱉었다. 하루종일 주점에 앉아있었는데. 얻은 소득이라곤 사람처럼 일에 찌든 앙굴리마라를 발견했다는 것 정도인가. 신기한 일이다.
“레반, 이제 가요.”
“그럴까.”
나는 실망한 아힘사와 함께, 톨리아를 뒤로하고 로메로 주점을 빠져나왔다.
곧이어 톨리아가 안쪽에서 문을 걸어 잠구었다. 아마도 저 로메로 주점에서 먹고 자는 모양이다.
약한 침침한 듯한 톨리아의 안광은 우리를 주시하다 이내 시선을 거뒀다. 어차피 이곳에 있으니, 또 궁금한 점이 생기면 찾아오면 되겠지.
그런데, 우리가 떠나가려던 다음 순간.
반대편 길가, 아까 먹거리 안주들을 사들고 나갔던 험상궂은 사장이 저 멀리서부터 걸어왔다. 그는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는데, 아이는 잠에서 깬지 얼마 안 된 듯 졸린 눈으로, 아까 사장이 가지고 나간 안주를 먹고 있었다.
아까는 톨리아를 보느라 알아채지 못했는데, 사장으로 보이는 사내의 다리도 조금씩 절뚝이고 있었다. 톨리아처럼 한쪽 다리가 짧았다. 왜인지 눈 한 번을 깜빡이지 않더니. 저 사장도 휴머노이드였나보다. 아니면 안드로이드던가.
— 아, 왔어요?
주점의 문을 잠갔던 톨리아는 그것을 보고서 잠긴 문을 다시 열었다. 험상궂은 사장과 아이는 웃으며 로메로 주점 안으로 들어갔고, 이제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그것을 본 내가 길거리에 서서 말했다.
“저들은 만년한철이 섞인 파츠를 떼어 붙여줄 정도로 가까운 사이인가 보군.”
“······.”
왜일까.
저 톨리아라는 종업원을 처음 보았을 때, 사회의 냉엄함을 느끼고 침침히 젖어드는 초년생의 분위기 같았다. 몸에 맞지도 않는데 입고 있었던 싸구려 셔츠처럼, 별 의미도 쓸모도 없는 인생으로 보였다.
적어도 아힘사가 원하는 진정한 열반의 길은 아닌 것도 확실했다.
그런데 앙굴리마라 11은 톨리아가 되어, 유흥주점의 말단으로 홀서빙을 한다. 같이 지내는 안드로이드도 있는 모양이고, 거기에 나름 만족하며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나와 아힘사가 산맥의 양복점에서 옷을 맞출 때, 휴머노이드 재단사가 그랬었다. 부부처럼 보인다고. 그런데 저들을 보니, 휴머노이드 재단사의 그 말이 더욱 뻔하고 틀에 박힌 립서비스로 느껴졌다.
아무리 봐도, 새 옷을 맞추어 단장한 우리보단 저 기계들이 더 부부같아 보이는군.
“아힘사, 다음은 어디로 갈까.”
“······.”
나와 아힘사는 다음 앙굴리마라를 찾으러 가기 위해, 조용히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