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진주언가 4
#116화.
— ······.
장내가 소름끼치도록 고요해졌다.
언 선생 숙부의 머리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었고, 떨어진 몸뚱이에서는 무언가 흘러나온다. 사람의 피겠지. 대나무 끝에 고고히 서있던 결단경 수도자는 그렇게 죽었다. 사람 머리가 저리도 쉽게 터질 수 있던 거였나. 어째서 터진 것인가.
그래, 진법 안에서는 원래 진법가가 왕이다.
진법가의 머릿속 심상을 현실에 구현해낼 수도 있으니, 누군가를 저리 죽일 수도 있다. 아무래도 언 선생은 언가의 진법에 특이한 방법으로 손을 뻗어 숙부를 죽인 듯했다.
공손히 꿇어앉은 언 선생은 환히 웃으면서도 계속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오락가락. 원래도 저랬던 사람이라 나는 금세 적응했다.
그때였다.
동생이 죽었는데도, 그의 부친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고대부터 이어져온 대라금몽진을 비틀어 혈족을 죽이고, 괴공법에 손을 대가며 부모를 죽이는 것이 바로 네가 내린 결론이더냐. 허면 너는 끔찍하고 어두운 마(魔)다. 왜 자신있게 들어왔는지 알겠다.”
부친이 그리 말하자, 짐작할 수 없이 피어오르던 언 선생의 악의가 잠시 수그러들었다.
“예! 이 언가는 그리하여 어두운 흑돌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어떻게 두시든 단판으로 끝날 것입니다. 이제 착수하십시오! 괴물로 변하셔도 좋고 사람으로 남아도 좋습니다!”
“······.”
그가 늘 곁에두던 바둑 얘기로군.
바둑은 보통 백(白)돌을 잡은 쪽이 불리하다.
흑(黑)돌이 첫수를 두어 선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언 선생의 대국을 떠올려보면 그가 흑돌을 잡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곳과 비교하면 참으로 비좁은 플라자의 골방에서.
풍령개와는 물론이고 늙은 개방도들과 바둑을 둘 때도 그는 늘 백돌을 선택했다. 패해도 백돌 이겨도 백돌. 반나절 전 경계선의 객잔에서도 그는 후공인 백돌을 잡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흑돌과도 같이 선공을 취했다. 주저하지도 않고 가문의 숙부를 죽였다.
그는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선공을 취한 것이다.
그것은 언 선생이 원영경의 수도자인 부모를 상대로 불리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부분일 수도 있으나, 어떻게 보면 뜻이 맞지않아 출가했던 언 선생이 큰 결심을 하고 돌아와 던진 질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백을 고집하다 흑이 되었으니.
취이이익—
“?”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팔이 두꺼운 개방도들이 하나같이 옷자락을 걷어붙이고는 건틀릿을 예열하는 소리였다. 숯더미 속에 던져진 듯 덥혀진 열기가 훅 불어왔다.
다들 기세는 좋으나 절정은 못 되는군.
왕초삼놈의 건틀릿도 증기를 뿜어내며 꿈틀댔다. 나는 그 거지들과 한 발짝 떨어져서 흐름을 파악했다.
저쪽에 법부적 붙은 생강시가 삼십 기는 되었다. 법력을 보아 가문의 문지기였던 혈시보다는 약할 것이었으나, 크게 뒤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는 진주언가가 다스리는 공간 아닌가.
지금, 상대의 목숨을 취할 전투 준비가 끝났다.
— ······.
헌데도 이곳에서 가장 요주의 인물인 언 선생의 부친과 모친은 생각을 하는듯 가만히 있었다.
그 묘하게 정적인 상태에서, 누군가가 빽빽대며 소리를 질렀다.
— 저런 괴물딱지 같은 놈!
— 정말로 돌아가셨다는 말인가?
— 결단경의 수도자를 벌레처럼 죽이다니.
— 마귀나 다름없는 저자를 당장 죽입시다!
여기저기서 모여든 언가의 수도자들이었다.
숙부의 머리가 펑 하고 터진 후, 지금까지는 조용했는데 언 선생을 잘 모르는 듯한 수도자들이 극도로 동요했다. 그들은 연기경이나 축기경 수준의 평범한 수도자들로 보였는데, 당장 언 선생을 죽여야한다며 욕을 뱉었다.
그러나, 다른 언가의 수도자들은 아니었다.
— 실로 흉악한 법력이야. 대성을 이뤘구나.
— 제 부모를 죽이려 정말로 정신을 버리고 왔다니.
— 미친채로 영화를 누리는 게 무슨 소용인가? 공허하다. 차라리 변절이 더 낫지 않겠는가.
앞선 수도자들보다는 나이도 있고 법력도 심후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침착했다. 언 선생의 이 행동이 변절과 관련되어 있는 것을 알고있는 듯했다. 수도자들은 속세를 등지고 가문에만 처박혀 살만큼 수행에 몰입해있는 자들이었고, 그들은 모두 같은 가문의 사람들이라 모르는 게 더 이상하리라.
수염이 신선처럼 늘어진 한 수도자가 말했다.
— 원영경에 오르지 않는다면, 육신이 부하를 감당하지 못하고 터져버릴 것이다. 하지만 원영경에 오르더라도 정신이 오염되어 미쳐버릴 터. 정말 단단히 마음을 먹었구나.
천재라던 언 선생의 말은 모두 진짜였나보군.
나도 마공이라 부를만한 것을 몇 개 알고있다.
고강해보이는 수도자도 언 선생의 성취를 저리 평할 정도라면, 평범한 범인이 익히기에는 어림도 없을 만큼 대단한 마공일 것이다.
끝없이 단단하고 깊은 정신력이 있어야 시도나마 가능한 것. 그러니 언선생은 자신이 말한 대로 천재가 맞을 것이다.
그는 공법의 무서움을 알고도, 언가를 도모하고 수도자들을 세상에 끌어내기 위해 끝끝내 그걸 극성까지 익혔으니.
하지만 미쳐갈 것이다.
천천히 미쳐가다 마침내는 아예 돌아버릴 것이다. 지금까지 오락가락하며 버티고는 있지만 어느 시점이 지나면 순식간에 침전되어 가라앉는다. 나도 저 정도의 악의를 보일줄은 차마 상상치 못했으니, 아주 빠르게 가라앉을 것이다.
상황이 아주 어수선한 도중에, 나는 울고 웃는 언 선생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언 선생.”
“하하! 첫 번째로, 나의 비정한 도리에 숙부가 죽었구나. 내게 법부적의 묘리를 알려준 분이었지. 아직도 잘 쓰고 있노라.”
숙부를 죽인 뒤로 더욱 정신이 나갔는지, 언 선생은 확실히 부리또를 먹을 때보다도 정신이 약간 더 나가 보였다. 그런데 심후하면서도 사악한 법력을 일으키던 그가 갑자기 울면서 내게 물었다.
“헷갈리냐? 헷갈리겠지.”
“뭐가 헷갈리냐는 말입니까.”
“나의 육신이 토하는 기운이 사악하고, 울보처럼 울다 웃다 횡설수설하여 너의 검끝이 갈피를 잡기 힘드냐는 말이다. 피 섞인 숙부를 이리 흉하고 처참하게 죽였는데 너는 무섭지 않으냐. 저들보다 사실 내가 더 괴물일까봐. 너의 머리도 저렇게 터질까봐.”
변절을 선동하는 부모를 죽이러 왔는데, 다른 가솔들마저 그를 괴물이라 욕하니, 언 선생은 확연히 창백해졌다. 의지할 곳이 없는 고아 같았다. 실체가 무엇이든 나의 눈에는 그렇게 보았다.
그리고 언 선생의 부친과 모친이 입을 딱 닫고, 백돌을 두지 않는 이유도 알았다.
앞선 수도자들의 비난이 그의 부모가 둔 백돌이었다. 언 선생은 분명 호기롭게 나서 혈겁을 펼치겠노라 했으나, 정신이 온전치 않아 자칫하면 그대로 무너져 내릴 듯했다.
“부모는 자식의 하늘이라 했습니까.”
그래서, 나는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창백해진 언 선생이 즉시 긍정했다.
“우리 진주언가는 그랬다. 분명 그랬다.”
“언 선생. 나는 이번 생에 부모없이 태어나 천애고아로 자랐으니, 부모를 새로 모시기 전까지 내게 하늘이란 없습니다. 오늘 언 선생도 부모라는 하늘을 내다버릴 참이니, 이제 하늘없는 고아끼리 어디 잘 꾸려나가봅시다. 뭐 사는 게 힘들면 사람이 미칠 수도 있지요.”
“······푸하하핫!”
“크하하하!”
아무 얘기나 뱉었는데, 언 선생이 호방하게 웃길래 나도 산적처럼 웃었다. 다들 우리를 미친놈들 보듯 보았다. 미친놈들이 맞았다. 아무튼 나는 언 선생이 혈겁을 펼치는 데 도움이 되어주어야 하므로 녹림이 운영하는 산채의 산적 두목처럼 박력있게 웃었다. 그랬더니 몸에 활기가 도는 것 같았다.
“오늘 하늘을 버리고 벗을 얻었구나.”
그 말 뒤로, 울고 웃던 언선생이 움직였다. 그는 이제 다음 돌을 놓을 준비를 했다. 아까보다 훨씬 쩌렁쩌렁한 음성이 진주언가를 때려울렸다. 천지가 들고일어나 노호성을 지르는 듯했다.
【 나의 부모, 숙부, 그들은 인의 도가 아닌 그릇된 도를 걸으려 했다. 사람이 아닌 괴물이 되고자 하는 그들을, 어찌 언가의 수도자라고 할 수 있겠나! 너희중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살다 끝내 사람으로 죽을 자! 나 언가를 막지 말아라!!! 】
어미아비도 그들 나름의 이유랄 것이 있겠으나, 어차피 언 선생의 도리에는 부합하지 않을 것이었다. 결국에는 파국이었다.
꽈과과광!
언 선생의 악의가 심대히 부풀더니 푸르렀던 하늘이 간단하게 무너져내렸다. 그것은 진짜 하늘이 아닌 거짓 하늘이었다. 언 선생은 진주언가의 수도자들이 진법으로 연성해낸 거짓 하늘을 무너뜨렸다.
곧.
넘실대는 악의가 언 선생의 혀를 타고 온사방을 장악했다. 많이 놀랐다.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도 언 선생이 이룩한 법력과 경지는 심후했다. 방금의 노호성을 마지막으로, 그는 고심하던 원영경에 올랐을지도 모른다.
“임자, 죽입시다.”
“그럽시다. 어서 죽입시다.”
하늘이 무너지는 걸 본 언 선생의 부모는 급해졌다.
애초부터 원영경의 수도자였던 그들의 생각보다도 언 선생의 법술이 극히 강했던지, 그들은 황급히 수결을 맺고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구름을 타고 빠르게 허공을 가르는 그들은 정말로 대단한 수도자같았다.
“비좁은 수도계에서 내놓은 고급의 법기들이 금방 팔려나간다더니, 그것도 네 짓이었더냐! 저 한심한 거지들과 꾸민 짓이야!”
콰과과광—!
그의 모친이 고함치자, 생강시들의 전신 부적에서도 법력이 일어났다. 놈들은 이내 거지들에게 달려들었고, 배부른 거지들은 건틀릿에서 발경을 뿜어내며 생강시들을 막아섰다. 이 작은 언가의 세상이 피로 물들어갔다.
“합!”
언 선생의 부친과 모친은 합공으로 전투를 이루었다.
그들이 품속에서 각자 법기를 꺼내어 법력을 밀어넣자, 언 선생이 뿜어내던 무형의 법력과 맞부딪쳐 세상이 뒤집어졌다. 밖에 나와있던 수도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들의 법력 대결에 휘말리지 않으려 몸을 뒤로 물렸다.
그들의 법력 싸움은 잠시 동수를 이루는 듯 하다가, 원영경 수도자 둘의 합공에 언 선생의 악의가 밀려났다.
콰직!
“!”
그에, 꿇어 앉아있던 언 선생의 목이 비틀렸다.
【 —. 】
그런데 목이 비틀리는 순간.
언 선생이 울컥하고 핏덩이를 토하나 싶더니, 입을 미친 사람처럼 웅얼거렸다. 세상에 존재하는 언어가 아니었다. 법력이 약한 수도자들이 피를 흘리며 귀를 틀어막았다. 사특한 악의와 법력은 몇 배나 더 강하게 솟구쳤다.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악의가 더욱 더 끔찍하게 부풀었다.
잠깐 어? 하는 사이, 언 선생의 악의는 이미 통제할 수 있는 규격을 벗어나 있었다.
다음 순간.
쾅!
“임자!”
그가 먹던 부리또처럼, 어디선가 홀연히 생겨난 작은 궤짝이 그의 부친을 잡아 가두었다. 구름을 타고 허공을 날던 그의 부친이 궤짝 안에 갇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언 선생의 하늘이 떨어지고 있다.
동시에 무수한 법부적이 언 선생의 원통에서 빠져나왔다.
스아아악—
떨어진 궤짝에 법부적들이 날아와 붙었다. 얼마나 많았는지 궤짝의 외형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상계 법부적보다도 강대한 법력을 지닌 법부적들이 휙휙 날아다녔다.
이윽고, 그 법부적들은 칼처럼 빳빳히 서더니 궤짝을 푹푹 뚫고 들어갔다. 궤짝 속에서 부친의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언 선생의 모친은 이마를 찡끄리더니, 연신 웅얼웅얼대며 무언가를 신속히 읊었다. 원영경의 수도자답게 느껴지는 법력이 굉장했다.
우드드득.
“마(魔)를 받아들여 원영경에 올랐구나!”
모친의 법력에 의해 진주언가에 있던 대나무 숲이 송두리째 뽑혀서 공중으로 올라간다. 그것은 고공에서 절반으로 나뉘어 잘리더니, 날카로운 죽창처럼 변해 언 선생의 전신을 겨누고 떨어졌다.
이제는 내가 움직일 차례였다.
스르릉—
풍령개와 거지들은 생강시를 상대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광선을 뽑아들고 더없이 집중한 언 선생의 앞에 섰다. 그는 칠공에서 피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괴언을 읊는것을 멈추지 않았다.
“음.”
그래도 나는 미쳐가는 언 선생을 믿어야했다.
언 선생의 부모는 잉꼬다. 부친이 가두어져 당하니, 그를 보호하려 모친이 힘을 썼다. 뽑혀나온 대죽들은 강대한 법력을 담고 쏘아졌다. 이곳은 진법 안의 세상이다. 바깥의 현실과는 다르다. 명심하고 전력을 다한다.
서거걱!
한 번의 출수. 전력을 담은 오색 검강이 번뜩인다.
내가 날카로운 대나무들을 단숨에 잘라나가자, 그의 모친은 그제야 크게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동으로 만든 불상처럼 단단하던 모친의 표정이 굳어간다. 언 선생은 실로 강해서, 단단히 지켜준다면 알아서 부모와의 연을 끊을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내가 백이 넘는 대나무와 강대한 법부적 수십 장을 베어넘긴 시점에, 댕! 하는 종소리가 청아하게 울렸다.
그 후, 언가 내에서 벌어진 일은 아주 기괴했다.
거지들과 열심히 싸우던 생강시 다섯 기가 공중으로 질질 끌려가더니, 우드득대며 구 형태로 뭉쳤다. 한번 더 종소리가 들리자, 생강시들이 더 작게 뭉쳐졌다. 더해서 연신 종소리가 울렸고, 다섯 기의 생강시는 끝내 주먹만한 크기의 공으로 뭉쳐졌다.
쾅!
그리고 그 생강시로 만든 법기는, 무거운 암석처럼 떨어져 언 선생의 부친이 들어있던 궤짝을 뭉갰다. 그 안에서 선혈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결단경의 수도자뿐만 아니라, 원영경의 수도자도 쉬이 벌레처럼 죽었다. 나는 그쯤 되니 이리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이건 언 선생이 준비를 ‘너무도 공들여 한 것’ 이라고.
【 ···— —— —— —— 】
부친이 짓눌려 죽어도, 언 선생의 입 밖으로 내뱉어지는 괴언은 이어졌다. 질린 얼굴의 모친은 더 이상 안되겠던지, 침을 꿀떡 삼키며 퇴로를 찾았다. 그러나 진주언가의 출입구는 하나였고, 고대의 진법을 전부 부수지 않는 한은 나갈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괴언을 뱉는 언 선생을 지킬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찢어지는 소리가 세상을 울린다.
언가를 지키던 고대의 진법이 깨지는 것이었다.
산산이 조각나며 흩어지는 언가의 대라금몽진 밑에서.
힘겨워하는 기색의 언 선생 모친이 입을 열었다.
“변절한다면 정신을 유지하며 생을 늘리고 수행을 닦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너를 봐라. 우리를 막겠답시고 제정신을 공허에 던져버린 거다. 마귀의 공법이야. 그게 무슨 수도자이고 사람의 도리라는 말이냐? 네가 선택한 길 역시도 틀렸다. 배움이 빨라 촉망받던 네 꼴을 보아라.”
【 ······. 】
원영경의 수도자라던 그의 모친은 가진 법력을 죄다 소진하고, 어느새 꿇어앉은 언 선생 앞까지 끌려와 있었다. 두루마기 원통을 끌어안고 괴언을 외던 언 선생은 진즉 칠공에서 피를 뿜어냈고, 한참이나 울어댄 탓에 이미 앞섶이 다 젖어있었다.
“너는 사람으로 살다 사람으로 죽을줄 아느냐!”
언 선생의 모친은 그를 향해 다그치고 소리질렀다.
“수도자는 수행만 쌓는 존재가 아니다. 본질은 남을 밟고서 하늘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누구보다 강해져 선계에 이르는 것이다. 영생과 영화를 누리는 것인데 왜 그걸 모르느냐! 너는 세상이라도 구하고 싶으냐?”
그러자.
언 선생은, 닫혀있던 입술을 떼어 괴언이 아닌 말로 답을했다.
“······당신께서도 알다시피, 그건 내가 고리타분한 사람이라 그렇습니다. 나는 남이 닦아놓은 길을 고집하는 수도자라 그렇습니다. 진주언가의 선조가 닦아놓은 대로,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수행을 쌓고, 사람으로 죽을 것입니다. 만약 천운이 닿으면 경지에 올라 중경계에도 갈 수 있겠지요. 어머니. 보십시오. 제가 부순 저것은 가짜 하늘입니다. 진짜 하늘은 언가 바깥에 있습니다. 하늘이 흑요석처럼 어둡단 말입니다. 바깥은 피 냄새가 끊이질 않습니다.”
그 말을 하면서도.
내 눈엔, 언 선생의 정신이 점점 가라앉는 게 보였다.
그의 어미는 그런 건 관심이 없다는 듯, 처절하게 소리질렀다.
“원영경이 왜 원영경인 줄 아느냐. 영육이 따로 갈라지는 경지이기에 그리 불린다. 혼을 빼서 옮길 수 있음에 그러하다. 그러니 나의 혼을 생강시에라도 옮겨다오. 그만 나를 살려다오.”
“······.”
영생에 대한 미련과 절절한 부탁이 들끓었다.
그러나 언 선생은 이제 모친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모친이 악의에 질려 도망치기 위해 무너뜨린 진법의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언가의 대라금몽진은 무너지고 진짜 하늘이 보였다. 오늘은 밝은 달이 떴다.
“당신은 언제 그렇게 비겁해 지셨소.”
다음 순간, 언 선생은 마치 이미 죽은 사람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언 선생은 이제 부모가 없는 고아가 되었으니까.
펑!
부친에 이어, 모친마저 죽었다.
커다란 대마가 죽고 언가의 바둑판이 뒤집혔다.
으아아악—
이어서 스산한 괴성이 들렸다.
그것은 언 선생의 괴성이었다. 언 선생은 이제 미쳤다.
웃다가, 오열하다, 피를 토하다가, 사방으로 법력을 난사하는 꼴이 좋게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무너졌던 하늘이 다시 생겨났다가 또 사라지고, 없던 대나무가 생겨나 활활 불타고, 생강시의 팔다리들이 마구 날아다녔다.
엎어버린 바둑판에서 바둑알이 날아다니듯.
“정신 차려라 언가야! 좋은 법기는 다 쓴거냐!”
퍼억!
그러자 기다리던 풍령개가 타구봉을 들고 뛰어와 언 선생의 머리통을 후려치니, 언 선생은 잠시 번뜩 정신이 들었는지 금세 또 멀쩡해져 입을 열었다. 그는 심히 창백했다.
“풍령개. 진법이 깨졌으니 도망가라. 어서.”
“······.”
쾅!
그러고는 또 미쳐서, 악의 가득한 법력을 쏘아낸다.
상황이 참 황망했다.
언 선생은 도망가라는 말을 남긴 뒤, 완전히 제정신을 잃고 법기에 사악한 법력을 담아 마구 난사했다. 이미 언가를 지키던 팔방의 진법은 다 깨져나갔다. 나는 언 선생의 법력 난사를 피해가며 대화를 나눠보려했다.
“언 선생. 확실히 미쳤습니까?”
사실 내게는 익숙한 장면이었다.
나는 절강 출신의 광인이 사람을 마구 베어내 토막 치는 걸 가끔 본 놈이었다. 그래서 나는 광인이 싫었고, 사람이 싫었고, 똑같이 미친 나도 싫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을 때도 있었다. 광마라고 불리는 사내라 할지라도 정신이 돌아올 때도 많았다.
“······.”
미쳐서 힘을 마구 써대는 언 선생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그의 부모로부터 목숨을 한 번 구해주었으나, 언선생은 나를 두 번이나 구했으니 내게는 한 번이 남았다.
“너도 나가자! 어서!”
내가 깊은 생각에 빠지려는 도중에 풍령개가 타구봉을 들고 달려들기에 검집으로 후려쳐서 밀어냈다.
쾅!
나는 곧, 언가 본문에서 혈겁을 일으킨 희대의 악인이자 패륜아인 언 선생의 앞에 섰다. 이러니까 괜히 독고웅백과의 비무가 생각났다. 그도 쓰러진 나를 이렇게 내려보았겠지. 나는 그의 목숨을 한 번 살려줬으므로 미쳐가는 언 선생에게 당당하게 물었다.
“언 선생. 근데 이름이 뭐요?”
* * *
까맣다.
세상이 칠흑처럼 까맣다.
진주언가의 수도자, 언 선생.
그는 자그마치 오십 년간 수행하여 자신만의 도를 구했다. 언젠가, 점점 변해가는 언가에서 출가한 뒤 이름을 버리고 남들에게는 자신을 언 선생이라 부르라 하였다. 다만 그는 언가의 출신인 것을 숨기지 않으려 언(言)이라는 성만큼은 남겨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언가는 미쳤다. 자신도 그걸 알았다. 정신을 제물로 바치고 원영경에 올라 부모를 죽인 뒤 완전히 미쳐가고 있었고, 앞으로도 더 미칠 것이었다. 똑똑한 자신이라면 그래도 조금은 괜찮으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부모의 얼굴을 보니 묘한 감정이 불길처럼 치고 일어나 부여잡고 있던 정신이 혼탁해진 탓이다.
웅얼웅얼.
지금 달싹이는 내 입술을 보라. 지금도 끝없이 중얼거리며 괴언을 내뱉고 있었다. 공법을 익히려 정신을 허무에 바쳤으니. 수도자들은 영생과 영화를 목표로 두고 수행을 하는데, 앞으로는 자신이 아닐 것이라 수도자의 길은 끝이었다.
전신은 필시 기이하게 꺾였을 것이고, 정신은 저 지독한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있다. 이제 마지막을 쥐어 짜내어 육신을 통제하는 것도 한계였다.
언 선생은 자타공인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수도자였다. 그렇기에 몇 초나마 육신으로 돌아가보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대단한 경지인 원영경에 올라도, 이미 공법에 먹혀 혼탁해진 제정신을 차리는 것은 무리였다.
그런데.
침침한 물속에 잠겨드는 듯한 정신을 비집고, 느닷없는 한 사내의 질문이 불쑥 들어왔다.
— 근데 이름이 뭐요?
어떻게 뚫고 들어왔는가?
언 선생은 곧바로 대답했다.
“나는 언평이다. 언평.”
오랜만에 다른 이에게 진명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덕분이었을까.
깜깜하게 가라앉던 세상이 잠시간 열렸고.
사악한 법력을 담아 종을 치고있던 언평이 눈을 떴다.
“······.”
그는 사내였다.
여인처럼 허리 밑으로 내려오는 긴 머리칼은 바람에 휘날렸다. 온 세상이 붉었다. 악의 섞인 법력이 붉게 만들었다. 부모의 피가 그리 만들었다.
진주언가를 지켜오던 진법마저 다 무너져 내린 세상 속에서, 눈앞에 있는 사내는 백탁처럼 새하얀 검을 뽑아들고 있었다.
언가의 가짜 하늘이 무너지고 진짜 하늘이 보였는데, 날이 좋은 새벽처럼 큰 달이 떴다. 달 밑으로는 거뭇한 세상이 보였고, 이름을 묻던 사내는 악한 법력을 풍기는 자신을 그저 내려다보고 서있었다.
돌연, 그 사내가 슬쩍 웃으며 말했다.
“언평 선생, 정신이 나갈까 무섭소? 솔직히 나도 무섭소.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소. 진법 안에서는 무적이군. 하하하!”
“······.”
자신도 미쳤지만 사내도 이상한 광인이었다.
그러나 더할 나위 없이 멋들어진 미소였다.
그 사내가 다시 말했다.
“나는 알고있소. 죽어보니 중경계는 없더라고. 죽으면 다음 생이 시작될 수도, 그냥 혼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지. 여기서 나의 스승께 배운대로 언평 선생의 강냉이를 다 털어버려 정신을 차리게 해볼 수도 있으나, 우리는 강냉이 대신 미련을 털어버리는 걸로 갑시다. 숙부도 죽이고 부모도 죽였으니, 이제 다 털어버리고 삽시다.”
그는 여유로워 이전과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말투도 바뀌었다. 한없이 가볍기만 하던 어조가 무게를 잡는 무인들처럼 변했다.
언평은 끔찍한 괴언을 연신 뱉는 입술을 막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장면만 보일 뿐, 정신은 아득했다.
화르륵—
칼을 쥔 사내는 언평의 원치 않는 공격에 활활 불타면서도 걸어왔다. 이내, 하늘은 달이 보일 정도로 맑은데 푸른 비가 내렸다. 기운으로 뭉쳐진 기의 덩이들이 가랑비처럼 내려 자신의 악의를 흩어내려한다.
수도자, 언평의 앞까지 다가온 사내는 컸다.
언평은 그 사내를 천천히 올려다보았다.
사내는 이번에 꽤 길게 입을 열었다.
“언 선생과 비슷한 사람이 있었소. 세상에 몇 없는 사람이었지. 언 선생은 멀쩡했던 시절의 부모를 그리워하며 엉엉 울었고, 그자는 구하지 못한 동료를 그리워해 무아지경에 살다 죽었으니, 결이 맞았으면 좋겠소. 그때는 그 한심한 사내를 막지 못하고 떠나보냈으나, 이제는 막을 힘이 생겨 언 선생은 한 번 살려보겠소. 수도자로 살든, 시체 사냥꾼으로 살든, 계속 살아보시오. 먼저 간 한심한 사내가 장벽 밖에서 외로이 죽어가며 느낀 게 있겠지. 오늘은 신기하게도 달이 예쁘니, 이곳마저 좆같은 동네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소. 언 선생이 힘을 내서 그렇게 해주시오. 같이 사람으로 살다 사람으로 죽읍시다.”
이윽고.
으직-
그 사내는 법력에 활활 불타면서도, 언평의 관자놀이에 차가운 무언가를 밀어넣으며 웃었다.
“나는 언평이라는 사람을 믿고 있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