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퓨전펑크의 전생자-105화 (105/157)

#105화. 살려만 주면 된다 이건가?

#105화.

꽈과과과광—!!!

거력의 천둥이 연신 휘몰아치는 하늘.

그 강력했던 남궁천이 가차없이 도륙난다.

루베르겐 집행관이 급히 속도를 올려 남궁천의 머리통이나마 남겨보려 했지만, 거력이 깃든 이기어검(以氣馭劍)의 칼날비를 뚫어낼 수는 없었다. 저기에 끼어 들었다간 루베르겐도 집행관도 위험할 것이다.

“······이런.”

그러니 눈앞에서 벌어지는 살육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 밖에.

루베르겐 집행관이 진입을 포기한 뒤, 고작해야 십 초쯤 지났을까.

어느덧, 하늘을 울리던 천둥 소리가 천천히 멎어들고 수십 개의 칼날도 그 움직임을 멈추었다.

곧 희뿌연 뇌전의 잔영이 서서히 걷히자.

먼저, 오래 전부터 남궁세가의 본원(本院)을 대표하는 초고층 전각의 꼭대기가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뜯겨져나간 것이 시야에 들어왔고.

후두두둑—

다음으로는 누군가의 선혈과 잔해가 비처럼 쏟아져내려 전각 고층의 유리창들을 검붉은 피로 물들였다.

저렇게 갈려나갔다면 시체라도 살아날 수 없다.

얼마 전까지 남궁의 하늘이었던 인간.

“······.”

남궁천은 그렇게 죽었다.

잠시 뒤.

제왕검의 별호까지 받은 9레벨의 강자를 마치 아이 손목 비틀듯 도륙해버린 뇌전의 칼날들은, 제 할 일을 끝냈다는 듯 유유히 저 먼 천공 너머로 사라졌다.

대 남궁세가의 본원을 거침없이 작살내놓고도 유유하게 말이다.

— ······.

이제 사위에 고요한 침묵만이 내려앉았다.

왜냐하면 이 자리에 있는 있는 모두는 칠좌의 소맷자락조차 보지 못했기에.

칠좌로 추정되는 이는 어디선가 기운이 담긴 날붙이들을 조종하는 것 만으로 남궁천을 도륙냈다. 만약 뇌전의 칼날들이 마음을 먹었다면, 이곳의 사람들을 전부 쓸어버리는 기행도 가능했으리라.

그것은 강림(降臨)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렸다.

돌연 인간 세상에 내려와 손짓 한번으로 천벌을 내리는 미지의 존재. 누가 감히 천벌에 대적할 의사를 표하겠는가.

절대적인 힘에 경외감마저 고개를 든다.

······이것이 칠좌(七座)의 위엄.

저 공포스럽기까지 한 힘은, 어지간한 일은 다 겪어보았을 남궁의 정예들마저 아연실색하게 만들었으며, 장내에 있는 이들은 자연재해를 맞이한듯 그저 선채로 압도당할 수 밖에 없었다.

이윽고.

— 우웨엑!

— 크헉!

천지를 육중하게 짓누르던 칼날의 기세가 멀리 사라지자, 그제서야 바닥에 납작 엎드려 속을 게워내는 남궁의 무인들.

심지어 8레벨인 청풍이나 슬레모킨도 그 위력에서 자유롭지는 못한지, 한참을 멍하니 서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물론 전생에 화산 노괴나 8위계 대마법사와의 전투로 경이로운 힘을 여러번 견식해본 나는 괜찮았다. 애초부터 눈을 감고 있었다. 칼날을 보자마자 어떤 황당한 일이 펼쳐질지 예상하고 있었으니.

더해서 칠좌의 위치가 대충 어디쯤인지도 알아냈으나, 자칫 그 괴물을 자극이라도 할까 기운을 더 펼치지도 않았다.

“아니, 형장은 저걸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소?”

그때, 옆에 있던 청풍이 나를 괴물보듯 질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동요하는 척하며 뒤늦게 헛구역질을 했다.

“휴우, 나도 속으론 무서워 하는 중이다.”

“형장처럼 담이 큰 사람은 처음보오. 허나 그것조차 커다란 이점이니, 응당 배워야하겠지.”

“······.”

“역시 형장이오! 나는 훌륭한 형장을 두었소. 하하하하!”

청풍의 질린 듯한 눈빛 속으로, 자그마한 열기가 들어차는 것이 보였다. 갑자기 진중해진 청풍의 태도에 나는 그냥 입을 닫았다.

* * *

전대 가주의 변절 사태.

남궁천이 자포자기 하고 전각의 꼭대기를 등반하기 전까지 그의 발악은 적아를 가리지 않았다. 워낙 격렬한 전투에 끼어들 생각조차 못하고 숨어 지켜보던 남궁세가의 사람들이 본 전각에 있었다.

아마 그들이 전했을 것이다.

— 가문의 하늘이었던 남궁천이 변절자가 되어 죽었다···라고.

“······허허.”

남궁선.

본원을 비웠던 남궁가주가 소란통에 돌아왔다.

현 남궁세가 코퍼레이션의 회장이자, 남궁가주인 그는 무너진 전각 꼭대기를 보며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근엄한 수염과 함께 푸들거리는 입주변 근육.

“이 얼마나 커다란 수치인가.”

허허로운 장년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일그러졌다.

“이보게 집행관, 칠좌께서 직접 손을 써야할 정도로 사태가 심각했다는 말인가?”

“저로서도 알 수 없습니다.”

“······.”

루베르겐 집행관도 가륵이라는 네임드에 관심이 지대해, 연결고리인 남궁천을 어떻게든 살려 사로 잡아보려 했으나 칠좌의 개입으로 실패했다.

수르트에 기거하는 칠좌는 연방 집행관의 조사가 필요하든 말든, 그런 사소한 것까지 하나하나 배려해줄 성인이 아니었다.

아마—

조금 큰 짐승이 시끄럽게 짖어대기에 죽였다.

딱 그 정도로 여기지 않을까 싶다.

“······그간 용무가 바쁜탓에 잠시 본원을 신경쓰지 못했다고 해도, 어찌 남궁의 땅에서 이런 괴이한 일이! 또한 생에 대한 집착이 그리도 강한 분이셨다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구나.”

무림계의 명숙이자 남궁의 태상가주가 변절자가 되어 죽었다. 때문에 남궁가주 남궁선은 침음만을 흘렸다. 노쇠하여 뒷방으로 물러난지 오래된 자신의 아비가 설마 이런 일을 꾸미고 있을줄은 가주도 몰랐을 것이다.

어느순간 정신을 붙잡은 남궁가주는 세인들에게 즉시 뒷수습을 명하고, 가주전으로 우리를 불러들였다.

꿀꺽꿀꺽.

그는 목이 타는지 차 한 잔을 단숨에 비우고는 말했다. 당혹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못하던 아까 전과는 딴판이었다.

“그래, 내 곰곰이 생각해보니 남궁의 땅에서 승하(昇遐)하신 것이 차라리 상수다. 만약 변절에 성공하여 도시를 빠져나가거나, 바깥에서 돌아가셨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구나. 죽음이 두려워 변절했다는 한심히 사실이 세간에 알려질바에 여기서 죽는 게 나았다.”

현 남궁가주는 상당히 계산적이고 냉정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아비가 변절자가 되어 죽었는데도, 슬픈 기색보다는 이 일로 남궁가의 명성이 추락할까 하는 걱정이 더 강해보였다.

하긴 그러니까 남궁세가의 주인이 되었겠지.

“칠좌께서 이 사실을 떠들어 댈 리는 없고······남궁의 식솔들이야 입이 무겁고 조용하지. 연방에는 보고가 들어가나?”

“예.”

“그것은 어쩔 도리가 없을 터. 감수하겠다.”

남궁가주가 고개를 돌려 청명을 바라봤다.

“고생한 화산의 소협에게도 내 부탁을 좀 함세. 대 남궁의 체면이 이만저만이 아니게 되었네.”

“예, 가주.”

입을 닫아달라는 남궁선의 부탁에 청풍이 포권했다.

사실 남궁세가와 척을 질 게 아니라면 여기저기 떠벌리지 않는게 현명하다.

남궁세가는 지금 총체적 난국이다.

이번 사태로 가문의 정예 검수들이 부질없이 죽어나간 건 물론이고, 무려 전대 가주까지 변절자가 되어 사망. 남궁천이라는 이름의 썩은 동앗줄을 잡은 이들은 모두 죽거나 단전이 폐해져 뇌옥에 갇혀있다.

삼검살, 남궁산이 분발해 최대한 피해를 막아보려 했지만 워낙 예비 변절자들의 저항이 거세 어쩔 수 없었다던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남궁가주가 집행관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내 이 자리에서 똑똑히 말하건대, 남궁세가는 일체 모르는 일일세. 오로지 죽은 전대 가주가 독단으로 벌인 일이야.”

“참고하겠습니다.”

“시체의 혈액은 확실하게 챙겼나?”

“연방으로 가져가 보고할 생각입니다.”

“······좋네, 이만 가보시게.”

휘익.

남궁가주는 머리가 지끈대는 얼굴로 손을 휘적였다. 귀찮고 복잡하니 어서 가지고 나가버리라는 뜻.

“아 잠깐, 내 염치도 없이 잊을 뻔했군.”

그러다 갑자기 우리를 불러세우는 남궁가주.

내 생각대로, 남궁가주는 계산적이고 냉정했다.

“반드시 본원의 재경각에 들러 거마비(車馬費)를 받아가시게.”

“······알겠습니다.”

“후에 연통하겠네.”

그러나 아주 경우가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남궁세가의 보물단지라는 재경각에 들러, 꽤 많은 양의 크레딧과 남궁이 빚은 영약등 각종 귀물을 굉장히 두둑히 챙겨나올 수 있었다. 뇌물은 절대 아니고 거마비, 즉 교통비가 되겠다.

물론, 상급의 에센스도 한가득 퍼왔다.

그렇게 두손 가득히 재경각을 털고 남궁을 나오는 길에, 루돌프 뱃속에 숨어있던 종후표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스읍, 더 가져와도 될 것 같은데······.”

* * *

남궁세가와 조금 떨어진 근방의 한 객점.

요리가 맛있고 술맛이 좋기로 소문난 곳.

우리는 꽤 큰 탁자에 값비싼 음식들을 진수성찬으로 깔아놓았으나, 청풍이와 나 말고는 아무도 젓가락질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적우적.

“이 집 음식 잘하네.”

“형장도 그리 생각하시오? 동감이오.”

그렇다 해도 청풍이 워낙 대식가인지라, 진수성찬은 착실히 비워지고 있었다. 나도 큰일을 치룬 뒤라 배가 고팠으므로 음식들을 빠르게 집어먹었다.

“그런데 화산도가 고기를 먹어도 되나 싶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라진 규율이오. 화산이 본질적으로는 도가이긴 하나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아서.”

“그런 건 현대적이라 좋구나. 하기야 화산이 도가 중에서도 세속적인 놈들로 유명했지.”

“형장, 헌데 잠시 못본 사이 왜이리 많이 바뀐 거요? 얼굴도 아주 이전과는 다른 사람 같소.”

쩝쩝.

청풍은 육즙이 줄줄 흐르는 고기를 마구잡이로 입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사람이 산산조각나 늘어진 살풍경을 본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고기에 손을 대다니. 칠좌의 무위에 잠시 당황한 듯 보였으나, 실체는 역시 무던하고 자비없는 놈이었다.

무시무시한 천재놈.

“집행관님,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나는 육회를 한움큼 집어먹으며 물었다.

그러자 팔짱을 끼고있던 루베르겐 집행관이 답했다.

“남궁천도 사로잡지 못했고, 네임드 개체 가륵도 찾아내지 못했으나 혈액은 확보했으니 불행 중 다행이다. 이것을 가지고 연방으로 돌아간다. 도시기획부처장의 변절이 사실인지도 확인해야 하겠지.”

이제야 오딘으로 돌아가겠단 얘기.

저 혈액을 어찌 사용할 방법이 있나보다.

그런데 집행관의 말에 이어, 조금 망설이던 슬레모킨이 음성을 전했다. 그녀는 아까부터 못마땅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 ······나 루베르겐을 따라가야할 것 같아. ]

[ 집행관을? 마탑주의 명령인가? ]

[ 아니, 루베르겐 저 빌어먹을 인간이 지금 약화된 상태라. 가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거든. 자칫 했다가 혈액을 도둑이라도 맞으면 대참사 나는거지. ]

[ 수르트 시티에 다른 집행관들도 있잖아. ]

슬레모킨은 입술을 격렬하게 삐죽대며 말했다. 나는 무슨 복화술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 와, 정말 내가 그렇게 똑같이 말해봤거든? 근데 저 인간이 뭐라고 하는 줄 알아? 세상에, 무림계쪽에서 활동하는 집행관들은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알아채지 못해서 신뢰가 안 간대. 진짜 미친놈인가봐. ]

듣자하니, 루베르겐 집행관은 한번 마력을 크게 터뜨리고 나면 전신의 마나가 빠져나가는 탓에 잠시 약해지는 기간이 있다고 했다.

그것이 지금이고···

같은 체질인 모리 무라타가 허무하게 당한 이유중 하나라던가.

아무튼 특이한 체질로 단기간에 거대한 힘을 구가하는 대신, 그만큼의 단점도 있다는 것.

내가 슬레모킨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때, 루돌프가 조심스레 끼어들어 말했다.

“형님. 근데 종후표가 세 명을 밀고한다 했는데, 지금까지 둘 아닌가요?”

종후표의 폐부를 찌르는 말이었다.

허나 루돌프놈 빼고는 다 알고 있었다.

“살려준다는 확신이 들어야 불겠지. 그냥 무작정 불겠냐. 저거 입 꾹 닫고있는 거 봐.”

“······.”

종후표는 사냥이 끝나 솥단지에 들어가는 사냥개 신세가 되지 않기위해, 남궁천이 죽은 뒤로는 입을 조개처럼 닫고 있는 상황이었다.

놈은 심히 졸렬하지만 자기 목숨 챙기는데는 유독 도가 터서, 자신의 목숨줄을 부여잡고 있을 마지막 패를 무작정 까보여줄 리는 없었다.

헌데 그런 종후표에게 안된 점은, 루베르겐 집행관은 종후표가 밀고할 마지막 변절자가 누구든 정말로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모리 무라타의 기억 때문인지 지금 가륵에만 단단히 꽂혀있었다.

“저놈은 그냥 깔끔하게 죽이고 떠나는 게 좋겠군. 백리뇌부 종후표의 변절에 관한 보고는 내가 따로 올리도록 하지.”

“!”

종후표는 눈치가 빠른 정치인이라 저게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금세 알아챘다. 루돌프놈의 어깨 뒤에 숨어있던 종후표가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며 감정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아, 아직 보여주지 못한게 많다!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들을 풀어놓지 못하고 떠나는 게 아쉽다!”

사람의 감정에 호소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정치 논리적으로 돌파할 방법이 도저히 없다는 것.

나는 육회를 씹어먹다가 슬쩍 끼어들었다.

“슬슬 밑천 다 떨어졌나 보구나.”

그러자 펄쩍 뛴 종후표가 아주 발작을 했다.

“무슨 소리인가! 당장 남궁천도 내가 밀고해서 잡았는데, 내가 공을 요구하나 아니면 돈을 요구하나! 나는 그저 살고만 싶을 뿐이라니까······하며 성을 내는 것은 아마추어나 하는 짓.”

하지만 말하는 와중에 잘못된 길이라 생각했는지, 또 태도를 반대로 고쳐먹고는 혀를 비비며 아부를 하기 시작했다.

“이 백리뇌부 종후표가 반드시 더한 쓸모를 증명해보이겠다. 다른 것은 필요 없으니 살려주겠다 확실히 약속만 해준다면, 알고있는 것은 모든지 다 털어놓겠다!”

음.

나는 그런 종후표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봐 종후표.”

“?”

저 녀석은 아는 게 많으나 위험한 시체다.

허나 그렇다고 막 죽여버리기에는 아깝다.

그래서, 계륵이 되기 전에 판단을 내려야했다.

“그러니까 목숨을 ‘살려’ 만 주면 된다 이건가? 평생 고통을 받거나···뭐 그런 것은 상관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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