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어떻게 합니까
#103화.
콰과과광—!!!
정면으로 쏟아지는 남궁천의 제왕검형.
그것을 전력으로 막아낸 루베르겐 집행관이 저 멀리 튕겨져나갔다. 잠깐 생겨난 빈자리를 아힘사와 청풍이 달려들어 힘겹게 메웠다.
【 어설픈 놈들! 목숨이 아깝다면 비켜서라! 】
남궁천의 무시무시한 귀기(鬼氣)가 천지사방을 장악한다. 남궁천은 압도적인 공력으로 앞을 가로막는 일행을 찍어누르며 전각으로 향하는 나를 막아서려 했다. 내 시선이 그쪽으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늙은이가 힘은 팔팔하군.’
제왕검 남궁천.
그는 세가 정예들의 목을 참해버린 이상, 절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제 방해하는 이들을 전부 죽이고 시체의 혈액을 챙겨 장벽 밖으로 도망가든지, 아니면 보기좋게 사냥당해 모든 것을 잃고 추하게 죽든지.
그런데 상황이 이쯤 되면 장벽 밖으로 가는 수 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남궁세가의 본원은 수르트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지라, 시티 장벽과 거리가 가까운 편이다. 물론 변절한 화경의 고수라고 해서 무사히 시티를 빠져나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
쾅!
남궁천도 그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는지, 제왕검형이라는 가주 전승의 절기를 곧장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 기세가 너무도 살기가 짙고 흉흉해, 나는 차마 전각 내부로 들어가지 못했다.
‘내가 빠지면 오래 못 버티겠군.’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집행관은 전각으로 들어가 가륵의 피를 찾으라 했으나, 상대는 전력을 다하는 화경의 고수.
저만한 기세라면 여기있는 이들은 필시 개미처럼 짓눌려 죽는다.
스르릉—
그렇기에 나는 전각에 들어가는 대신 광선을 뽑았다.
일단 희망적인 것은, 남궁천과 붙어먹은 무인들의 수가 많지 않다. 아무래도 변절이라는 최후의 선택지를 앞날 창창한 검수들이 선뜻 택할 리는 없는 탓에.
거기다 남궁산이라는 초절정 경지의 고수가 남궁천의 잔혹한 손속에서 살아남았으며, 그는 정예들을 빠르게 규합하여 대응에 나섰다.
— 등을 지고 서서 방진을 형성해라!
삼검살(三劍殺) 남궁산은 남궁천이 가장 먼저 죽이려고 마음먹었을 정도의 걸출한 고수. 눈치도 빠르고 경지까지 뛰어난 사내라, 지금까지 잘도 살아남아 전투를 지휘하고 있었다.
— 망설이지 말고 베어 죽여라!
서거걱!
야차처럼 날뛰는 삼검살 남궁산을 필두로한, 변절에 동참하지 않은 남궁의 정예들이 배신한 이들을 상대로 검을 휘둘렀다. 패도적인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이 이곳저곳에서 펼쳐지며 강맹한 풍압의 지대를 만들어냈다.
뒤이어.
청풍과 아힘사에 이어 루돌프놈까지 전투에 합세했다.
지금 내가 집행관쪽에 합류해 힘을 보태면, 저 남궁천은 어찌 막아볼 만하다.
그런데, 검을 뽑은 내가 전투에 뛰어들기 직전이었다.
“신경쓰지 말고 그냥 찾으러 가.”
“······.”
나를 말리는 슬레모킨의 목소리.
“저 망할 루베르겐이, 알아서 할 거야.”
그녀는 무언가 확신에 차있었다.
연방 집행관, 유크 루베르겐.
과거 반 바이오의 끝을 고하러 온 집행관이자···
전설적인 9레벨의 연방 집행관 ‘모리 무라타’ 의 기억과 심득을 이어받은 후계. 유크 루베르겐은 여섯 번째 봉우리 마탑의 구성원 중에서도 꽤 베일에 싸여있는 인물이었다.
“저 인간이 늘 크레딧에 집착하는 이유. 이미 엄청 많은 녹봉을 받는데도, 계속 크레딧에 집착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
투캉! 투캉!
내가 쉬이 발을 떼지 못하자, 슬레모킨은 샷건을 무섭게 장전하며 말을 이었다. 두꺼운 구슬이 들어있는 산탄이 샷건 안으로 말려들어갔다.
“루베르겐은 언데드처럼 가만히 있어도 몸에 마나가 쌓이는 체질이야. 죽은 모리 무라타랑 똑같지. 그런데 저 체질을 가진 사람은 몸에 마나가 끝도 없이 쌓여서, 그걸 중화시키지 않으면 마력에 절여져서 죽어. 그래서 저 인간은 매일같이 더럽게 비싼 ‘마나 중화제’ 를 피워야만 해.”
대충 이해가 되었다.
매일 피우던 궐련이 마나 중화제였던가.
절맥(絶脈)이 아니라 그 반대의 경우로군.
“바꿔 말하면, 루베르겐은 항상 마나를 몸속에 꽉꽉 눌러 담고있다는 거야. 폭발 직전의 활화산처럼 인간의 한계까지 마나가 쌓여있고, 중화제로 겨우 폭발만 막고 있는 거지.”
꽈과과광—!
마침 루베르겐의 대검과 남궁천의 검이 부딪쳤다.
대기를 찢어발기는 파공성에 지면 전체가 들썩일 정도.
슬레모킨의 말대로라면, 유크 루베르겐은 모리 무라타와 비슷한 체질을 가진 덕에 그의 인격 메모리칩을 받은 거다.
“루베르겐 저 인간은 몇 년간 제대로 폭발한 적이 없는데. 그동안 얼마나 마나를 억눌러 놓았을지 상상도 안 가. 그러니까 신경쓰지 않고 가도 돼.”
슬레모킨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루베르겐 집행관이 하늘 높이 대검을 들어올리는 광경이 보였다. 어마어마한 마력과 허연 연기가 집행관의 몸에서 줄줄 흘러나왔다.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전각으로 들어가도 되겠다고.
대체 저 멀대같은 육체에 마나를 얼마나 압축해 억눌러 놓았는지, 끔찍하게 농도짙은 마력의 와류가 둑 터진듯 흘러나와 집행관의 주위로 휘몰아친다. 선천지기를 뽑아쓰던 당명 원로를 보는 듯했다.
잠시 뒤, 루베르겐 집행관은 담담히 입을 열었다.
— 지금부터, 강제 집행을 시작하겠다.
【 그 오만한 입을 반드시 찢어주마. 그리고 거기 네놈, 어디 한 번 들어가서 잘 찾아보거라. 】
“······.”
심상찮은 기세를 느끼는 와중에도 남궁천은 나를 돌아보며 히죽 웃었다. 그러나 아까보다는 확실히 여유가 줄어들었다. 이제 전각으로 향하는 나를 막을 수 없다 판단한 듯했다.
그렇게, 마나의 태풍이 몰아치고 있는 전각 근처가 잠시 잠잠해지나 싶더니.
후욱!
순간, 루베르겐의 신형이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이윽고, 대기를 뒤흔드는 제왕검형의 살기와 루베르겐 집행관의 마력이 실린 대검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집행관의 몸에서는 청록빛의 마나와 연기가 대해처럼 흘러나와 사방을 잠식해나가고 있다. 그의 마력은 너무도 농도가 짙은 나머지, 눈으로 볼 수 있는 빛의 영역을 넘어 무(無)색의 영역에 이를 정도.
“별로 마음에는 안 들지만. 도와줘야지.”
꽈광!
곧이어 어딘가 못마땅한 눈치의 슬레모킨도 샷건을 쏘아대며 집행관을 지원했다.
나는 그 전투가 벌어지자, 망설임없이 몸을 돌렸다.
들어와본 전각 내부는 빛 한점이 없어 칠흑처럼 어두웠다. 마치 바깥과 다른 공간인 듯했다.
아니 다른 공간이 맞다.
언 선생의 수술실에 찾아갔을 때 느꼈던 기이함과 결이 비슷하니까.
‘심처에 진법을 쳐뒀군.’
그 진법 안에서 요기가 느껴진다.
본능적으로 호흡을 참아야 할 정도의 막대한 힘.
진법을 뚫고 나올 정도로 진득한 요기는 전각의 심처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요기가 너무도 강력한 탓에 근방까지 흘러나왔던 것. 다만 남궁의 본원이 별도의 전각과 거리가 조금 있었기에 다른 식솔들은 문제를 느끼지 못했을 테지.
사실 남궁의 태상가주가 이 전각에 숨어 진법까지 준비해둔 채, 변절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발상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래도 진법의 수준이 지대하게 높지는 못하다.
나는 세상의 진법에 조예가 있었고, 언 선생이 쳐둔 진법도 꿰뚫어본 사내라 그 진법을 신속하게 흩어내고 들어갈 수 있었다.
진법을 흩어내자.
‘저게 종후표가 말한 귀물함인가.’
전각의 심처, 바닥에 떡하니 박혀있는 작은 기계가 보였다. 사람 머리통보다 조금 큰 크기의 기계.
스아아아—
마치 가습기처럼 생겨먹은 기계에서는 증기와 함께 사이한 요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외부에는 괴이한 문양들이 규칙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내가 그 귀물함의 안쪽을 살펴보자, 모래시계 모양의 투명한 막 사이로 ‘혈액’ 이 담겨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외형이 화려하여 무슨 고귀한 보석이라도 모셔둔 줄 알았다.
아무튼 그냥 유리병에 시체의 혈액을 받아놓은 꼴이 아니라, 아주 작정을 하고 받아 챙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제왕검쯤 되는 인물은 대우가 다른가.’
나는 어이가 없었으나, 귀물함을 파괴해서 저걸 끄집어낼 수는 없었다.
이 귀물함은 아스파로프의 나뭇대처럼 무언가 특별한 술법이 걸려있어, 지금 내 수준으로는 건드렸다간 큰 일이 터질 듯했으니.
남궁천이 웃으며 무심하게 들여보낸 이유가 있었다.
확신이 있었던거다. 전각에 들어가서 아무리 진법을 헤치고 찾아봐야, 자신과 동급의 강자가 아닌 이상 이 귀물함을 어찌할 수 없으리라는 확신.
나는 깔끔하게 포기한 뒤 곧장 몸을 돌렸다.
밖에 있는 종후표의 대가리를 가지러 가기 위해.
‘시체의 피를 받기로 했던 종후표라면 방법을 알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때.
부르르—
“?”
내 안주머니에 고이 모셔두었던, 아스파로프의 나뭇대가 갑자기 미친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 * *
‘이런.’
제왕검, 남궁천은 생각보다도 고전하고 있었다.
남궁세가의 본원에서 칼부림이 나는 건 괜찮다.
일상과 다름없는 일이고, 소란이 나더라도 이 근방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허나 요기만큼은 흘러나가선 안 된다. 근방에 남궁을 제외한 대문파가 없다 해도 남경은 절대고수들이 즐비한 곳. 자칫 방심했다간 일을 그르칠 것이다.
이 별도의 전각은 남궁천의 폐관을 이유로 소음과 기운을 차단하는 진법을 쳐두었기에, 어느 정도는 소란에서 자유로웠으나.
‘일이 너무도 지체되는구나.’
시간이 끌리면 끌릴수록 불편하다.
세가의 중진 고수인 남궁산마저 일격에 죽이지 못했다. 남궁천은 화경의 초입을 넘어선 고수가 맞으나, 확실히 십이제급에는 미치지 못하는 무인이었다.
‘이놈은 어찌 이리 강한 것이야!’
더해서 집행관이 남궁천의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남궁천이 기운을 펼쳐 훑어보았을 때 분명 8레벨 수준으로 보였는데, 마음먹고 전투에 임하자 집행관이 가진 기운은 끝도없이 치솟아 자신의 바로 턱밑까지 따라왔다.
마음이 조급해진 남궁천은, 그를 수행하던 중년인에게 전음을 보냈다.
[ 진아. 이대로는 늦을 듯하니, 계획을 바꿔야겠다. 내가 가진 요력을 해방해 모두를 상대할 터. 너는 그틈에 전각으로 들어간 놈을 죽이고 귀물함을 회수 해와라. 한시바삐 남궁을 벗어나야 한다. ]
집행관 일행을 전각으로 인도한 중년인은 태상가주를 보좌하는 초절정 고수 남궁진으로, 삼검살 남궁산과 동급이거나 조금 더 경지가 높은 고수였다.
게다가 남궁천이 가주만 익힐 수 있는 무공, 제왕검형을 독단으로 사사했기 때문에 남궁진은 완숙함을 넘어 초절정의 끝자락 즈음에 닿은 고수가 되었다.
남궁천은 방금 전각 안으로 뛰어들어간 놈이 한 수 재간은 있어 보였으나, 감히 제왕검형까지 익힌 남궁진을 상대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 허면 다른 놈들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
[ 주제도 모르고 제 욕심만 많은 놈들이다. 짐이 되기 전에 버린다. ]
[ 예! 즉시 죽이고 회수해 오겠습니다. ]
남궁천은 남궁진 단 한 명만 데려갈 생각이었다. 고귀한 피를 나누어주고 그들이 말했던 곳에서 다시 남궁 일가를 이룰 것이다.
‘아쉽구나. 실로 아쉬워.’
그는 지금까지 일궈놓은 지금의 남궁을 이런 식으로 버리고 떠다는게 못내 뼈아팠으나, 이미 피를 받고 세인들의 머리까지 참해버린 이상 뒤를 돌아볼 여유는 없다.
이윽고.
캉!
삼검살 남궁산을 밀어붙이던 남궁진이 검을 회수하고는 급하게 전각으로 뛰어듬과 동시에, 남궁천은 여태껏 심혈을 기울여 눌러두었던 요기를 마음껏 해방했다.
【 이 버러지 같은 놈들!!! 어디 한 번 해보자꾸나!!! 】
그러자 장내에 있던 이들이 요기에 반응해 급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거대한 마력을 꺼내쓰며 그와 호각을 이루던 루베르겐 집행관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 집행관, 지금까지 재미 좋더냐? 】
“······.”
남궁천은 종후표의 말 그대로 늙어 죽기가 두려운 탓에 시체가 되기로 했으나, 막상 그렇게 되어 피를 받고보니 그것이 주는 무한한 힘에 매료되어있는 상태였다. 화경에 오른 뒤로 별다른 깨달음이 없어 초입에만 머물고있던 경지에도 뒤늦게 욕심이 생겼다.
그런데 그 귀한 피를 가져가려고 하다니. 남궁의 무인들을 다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만큼은 절대 내어줄 수 없었다.
헌데, 그때였다.
촉!
남궁천의 목덜미를 웬 촉수가 스치고 지나갔다.
“조용히 늙어 뒈질 것이지, 시체의 몸으로 현경(玄境)의 절대고수라도 되어볼 참이냐 남궁천!”
【 ······. 】
남궁천과 같은 변절자 신세인 종후표였다.
요기를 단번에 해방한 여파로 전투를 벌이던 이들의 발은 땅에 붙었으나, 애초에 시체인 종후표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않은 것이다.
촉!
종후표가 쏘아낸 혀는 도끼의 형태처럼 변하여 남궁천의 목을 다시 스치고 지나갔다. 종후표는 대가리만 달랑 남았지만, 백리뇌부로 불리운 부법의 고수. 이제 혀로 도끼를 만드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정치인 종후표는 혀로 사람을 홀리고, 혀로 사람을 죽인다. 그에게 혀는 필연적인 존재였다.
목덜미가 긁힌 남궁천이 한심하다는 듯 말문을 열었다.
【 멍청한 놈. 나를 도와 이곳을 빠져나가면 되었을 것을. 어찌 어렵게 가느냐. 】
남궁천의 그 일갈에 종후표가 자조적으로 답했다.
“이미 구명선에 탔고, 배에 다시 오르기는 늦었다.”
한배에 탔으면 함께 노를 저어야 한다.
그것이 삼도천을 건너는 배여도 이미 올랐다면 어쩔 수 없다. 정치란 것은 그렇다. 같은 이상을 바라보는 이들이 뇌물을 받아도, 사람을 죽여도, 강제로 여인을 탐해도, 당장은 일치단결하여 같은 방향으로 노를 저어야 한다.
【 구명선 같은 헛소리. 일이 끝나면 저들이 네놈을 가만둘 것 같나?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도 솥단지에 들어가는 법. 】
남궁천의 이간질에도 종후표는 그저 담담했다.
“흥, 아무리 내 눈이 어두워도 전각 구석에 처박혀살던 당신보다 어두울까! 정치권에서 그깟 토사구팽 정도는 하루걸러 일어나는 일. 기합으로 견디면 그만이지! 그 누구도 주인을 비정하다 탓하지 않는다. 그리고—”
종후표는 혀를 낼름대며 덧붙였다.
“네놈처럼 충분히 거대하고 살이 오른 토끼를 잡아먹으면, 배가 불러 사냥개를 삶을 생각조차 나지 않는 법이다. 차마 그것까지는 몰랐구나 이 노괴놈아!”
촉!
기호지세.
호랑이 등에 탄 상태에서 무섭답시고 뛰어내려 봐야, 얼마 못가 뒈지기나 할 터.
종후표는 기초부터가 단단한 사람이었다.
“내게 정치는 생존이다!”
촉!
【 못난 놈. 】
하찮은 종후표의 혓바닥 공격을 무시한 남궁천은 검을 들어올려 기수식을 취했다. 요기를 마음껏 꺼내 놓으니, 단전 밑에서부터 무한한 공력이 끓어오르는 듯했다.
우우우웅—
남궁천의 두터운 검 위로, 요기가 가득 실린 검강이 한참이나 솟아올랐다.
‘진이가 전각에 들어간 지 이제 일 분이구나.’
앞으로 적어도 일 각 정도의 여유가 있다.
남궁천은 방금 전각으로 뛰어 들어간 남궁진이 그 허여멀건한 놈을 단숨에 참살하고, 가륵의 혈액을 회수해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니 그때까지 소모전에 돌입할 참이었다. 혈액을 가져오는 즉시 남궁을 등지고 ‘고귀한 자’ 가 보내준 시체들을 수르트에—
쿵!
남궁진의 잘린 머리가 그의 발치에 쿵, 하고 떨어졌다.
【 ······. 】
하던 상념이 툭하고 끊겨버린 남궁천이 고개를 들자.
“보세요. 전대 가주님.”
그가 기거하던 전각에서, 허여멀건한 사내 하나가 남궁천의 귀물함을 소중히 들고는 천천히 걸어나왔다.
“배울 수준도 안 되는 놈한테 제왕검형을 사사하면 어떻게 합니까. 제대로 쓰지도 못해서 그렇게 죽었잖아요.”
레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