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퓨전펑크의 전생자-88화 (88/157)

#88화. 라그나로크 시티 수복전 10

#88화.

반 루벤카.

그녀가 가끔 하는 생각이 있다.

지금의 ‘연방 정부’는 절대 선(善)이 아니다.

그들이 만약 절대 선이라면, 반 바이오 컴퍼니가 그렇게 억울하게 무너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테니까.

거대 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이나 횡포로 피해입는 이들에게는 관심조차 없다. 어떻게 해야 자기들 앞으로 더 큰 떡고물이 떨어질까? 하고 누워서 입만 벌리고 있는 것들.

또, 부풀릴 땐 크게 부풀리고 축소할 것은 크게 축소한다.

연방 정부는 장벽 안의 주민들이 원하는 정보만 들려주면 된다고 생각하거든.

굳이 억지로 진실을 말해서 주민들을 불안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일 수도 있겠지.

그들은 달콤한 말로 주민들의 눈과 귀를 가린다.

사실 그런 건 정치라고도 할 수 없다. 본래 권력이라는 건 한 번 잡고 흔들어보면 다시는 놓을 수 없다고들 하니까. 조금이라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이번 수복전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연방이 발표하길 아군의 피해가 지극히 적었단다.

거짓말.

그녀도 교수들을 통해 들은 정보가 있다.

수복전에 참여한 세력들이 입은 피해는······그야말로 상상초월. 출전한 전력의 전부가 사망해버린 기업도 있다고 들었다.

그저, 아직까지는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뿐이겠지.

연방은 늘 말한다.

우리는 잘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계속 그렇게 지지해주시고 칭송해주세요.

실제로, 자기들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번에도 연방은 이 대규모 유혈 사태를 넘기려 라그나로크의 땅을 참가한 세력들에게 생색내며 갈라주고, 수복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초신성을 몇 명 띄워주고 새로운 영웅을 만들어버리는 것으로 잠깐의 태풍이 지나가길 기다릴 것이다.

지금은 난세(亂世). 백 년 이상 난세였다.

난세에는 언제나 영웅이 필요하다.

삼존 칠좌 십이제가 연방의 대표적인 영웅이자 전설로 남아있지만, 그래도 보통의 대중들은 새로운 영웅의 등장에 더 환장하는 법이거든.

······이라는 생각을 잠깐 하긴 했었는데.

“아니, 왜 레반이 저기서 나오지? 그리고 9레벨 시체 바만차를 잡는데 가장 큰 도움을······저게 무슨 개소리야.”

루벤카의 아름다운 눈이 뒤룩뒤룩 굴러간다.

발할라에서 가장 큰 언론이 쟤를 띄워주고 있어?

그리고 9레벨 시체 바만차를 잡는데 도움이 됐다고?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배가 막 아프고 그런건 아닌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강했을 리가?’

루벤카도 레반과 마탑에서 직접 손을 섞어봤다.

물론 검술이 생각보다 놀랍긴 했지만, 자신조차 베어넘기지 못하는 실력으로는 수복전같은 대규모 작전에서 활약할 수 있을 리 없다.

7레벨의 정예들이 일반 병사처럼 발에 채였을 전장. 그런데 7레벨의 레반이 자그마치 십이제 옆에 나란히 설 정도로 큰 전공을 세웠다라.

그게 말이 돼?

‘설마, 내가 그 놈한테 또 속은 건가.’

루벤카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부여잡았다.

포슬한 백금발의 머리칼이 몇가닥 뜯어져 레나의 침대를 어지럽혔다.

아! 근데 그때 분명 더이상 놀라지 않기로 했지.

흐음-

“엣흠.”

이윽고, 억지로 염세적인 표정을 지은 루벤카가 방어적으로 팔짱을 꼈다. 몸종 레반의 느닷없는 영웅행과 출세를 보고 놀라 흥분한 탓에 여기까지 달려오긴 했지만, 갑자기 정신이 확 들었다.

곧 루벤카는 벙쪄있는 레나를 ‘교육’ 하기 위해 표정을 지우고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역시~이상한 놈이 맞았어. 내가 본 남자중에 가장 의뭉스러운 놈이 바로 그놈이야. 절대 가까이 하지마. 좋을 거 하나 없어. 나는 그 놈이 우리 집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수상한 촉이 빡! 하고 꽂히더라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종에 불과하던 레반, 저놈은 역시나 불가사이하고 괴상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음음. 맞아 맞아.

그러니 사랑스러운 자신만의 레나가 놈의 마수에 푹 빠지는 꼴을 지켜볼 수는 없는 일!

이제 루벤카 그녀에게 남은 가족은 레나 하나뿐이다. 헌데 저 레반놈은 분명 또 레나를 보겠답시고, 여기까지 기어올 테지.

그전까지 놈이 속을 알 수 없는 위험인자라는 사실을 팍팍 주입해둬야한다.

어쩐지 레나를 놈에게 빼앗기는 기분이 들어서 치사하게 나오는 것은 절대로, 결단코 아니었다.

“레나, 이렇게 말해도 아직은 잘 모르겠지? 아무튼 있어 그런게. 어른 말 들어서 나쁠 게 없답니다. 내 말 똑똑히 새겨 들어야 해. 쟤 저거 또 어깨가 산만해져가지고 찾아올 텐데, 저런 남자 잘못 만났다간 신세 망치기 딱—”

“레반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루벤카의 말을 끊는 레나의 의문.

레나는 이불 가장자리를 꼼지락대며 말했다.

“그래도 방송까지 저렇게 나온 거면, 괜찮다는 얘기일 테니까······정말 다행이다.”

“······.”

자신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 하던 레나의 눈이 그렁그렁해진 걸 확인한 루벤카는, 답답함에 분통을 터뜨리는 대신 속으로 혀를 찼다.

···다른 교수 자택으로 몰래 이사라도 가야하나?

***

너, 네가 올라간 침상 위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그대로 죽을 것이다.

너, 네가 올라간 침상 위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그대로 죽을 것이다.

너, 네가 올라간 침상 위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지랄하네.

홰액!

“!”

내가 벌떡 일어나려 하자 끅, 소리가 자동으로 흘러나왔다.

바만차 놈과의 전투 때는 말을 참 잘 듣던 몸이 이제는 말을 안 듣는다.

아.

안 듣는게 아니라 못 듣는 건가.

전신은 몽둥이 찜질을 당한 듯 뻐근했고, 피부 안으로 말려들어오는 오한덕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북해 바다에 뛰어든 것처럼 몸이 벌벌 떨리는데, 나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미래를 담보로 잡아 빚을 너무 많이 빌렸다. 갚지 못할 만큼 무리하게 끌어다 사용했으니, 누워있는 것은 뭐 이상할 일도 아니다.

진짜 이 침상 밑에서 내려가지 못하고 죽는건가.

움찔-

정신을 차렸음에도 두 눈은 서로 착 붙어 떠지질 않는다.

대신, 뻥 뚫린 코로 향이 먼저 맡아졌다.

······기이하고 알싸한 약재(藥材)들의 향기.

다음으로 청각이 돌아왔다. 조용히 귀를 기울여본다.

견우자(牽牛子)의 흑축(黑丑)을 푹 삶아서 어쩌고, 마황(麻黃)을 달였다느니, 육두구의 씨앗을 빻아서 환부에 잔뜩 발라두었다느니···.

근데 그거, 전부 독 들어있는 약재들 아닌가.

독을 약재로 잘 쓰는 놈들이라면.

“······.”

나는 전투가 끝나기 전의 기억, 청각과 후각이 보내오는 정보. 그리고 무의식이 보내온 저 재수없는 소리까지 종합하여 내가 누워있는 이곳이 어디인지 추측하기에 이르렀다.

‘사천당가의 의약당에라도 끌고온 건가.’

당가의 침상이라면 사람 살리는 일보단 죽이는 일이 더 많기야 하겠지.

허나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귀에 익은 목소리가 곧 생각 틈을 비집고 들려왔다.

“레, 레반? 어 숨 쉬는데?”

엘프 마법사, 슬레모킨의 목소리.

빳빳한 몸에 들어가던 힘이 스륵 풀렸다.

후우, 적어도 이곳이 영안실은 아닌 모양이다.

끔뻑.

이내 시각이 돌아오며 두 눈이 뜨였다.

주변을 둘러봤다.

일단, 굉장히 고급스러운 비단 가림막이 사방을 막아 외부로부터 나를 격리하고 있었고 수십 줄은 될법한 링거줄들이 치렁치렁하게 늘어져 내 전신에 꽂혀있다.

내 몸은 겉으로 봐도 성한 곳이 없었다.

아마 기절한 뒤, 이곳으로 옮겨졌을 것이다.

내 옆 침상으로는 팔 한짝이 없는 아힘사와 루돌프가 추욱 늘어져 있었고.

“흠. 흠.”

다음으로는, 슬레모킨이 침대 맡에 앉아 있었다.

평소에는 마공학 병사끼리 싸움을 붙이기 바쁘더니, 지금은 뜨개질을 하고 있었고 그 옆의 작은 협탁에는 모락모락 김이나는 죽이 보인다.

— 이번에는 말씀하신 따뜻한 수건과 대야를······.

그때, 따뜻한 물수건을 들고 안으로 들어온 당가의 의원으로 보이는 이에게 슬레모킨이 자연스럽게 명령했다.

“아, 거기에 놓고 가세요.”

찬 수건도 아니고, 따뜻한 수건은 뭐하러 시켰어?

간호인 코스프레 비슷한 건가.

참 이해할 수 없는 엘프다.

여튼 내가 상체를 힘겹게 일으켜 비단 칸막이를 슥 치워보니, 주변으로 사천당문의 심처에나 있을 법한 의약당을 그대로 옮겨다놓은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당문의 부상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고, 의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약과 주사기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인다.

주르륵! 철썩!

“?”

그렇게 고개를 돌려가며 상황을 파악하던 와중에, 갑자기 따뜻한 수건을 쫘악-짜서 내 이마 위에 올려놓은 슬레모킨이 입을 열었다.

“놀랐지? 당가에서 막내 너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준 거야.”

“······.”

조금 놀랐다.

어떻게 떼를 써서 연방군을 어르고 달랜 건지, 아니면 크레딧을 연방군의 주머니에 꽂아 준건지, 당가는 로키 시티 연방군 주둔지에 병원이나 다름없는 사천당가표 의약당(醫藥堂) 한 채를 떡하니 차려버린 것이다.

크레딧이 얼마나 남아 돌기에.

또 입김이 얼마나 강하기에.

무서운 놈들.

어찌됐든 무사히 깨어난 나는, 뜨개질을 하는 슬레모킨으로부터 내가 기절한 뒤, 며칠간 일어난 얘기들을 전해 들었다.

“수복은 거의 마무리 되어가고 있어. 강력한 놈들은 전부 잡아서 사실상 시티 수복은 시간 문제. 외부 포위를 뚫고 도망쳤던 ‘자굴라’ 도 진공진인이 추살하는데 성공했거든. 다만 우리 편제쪽 피해가 어마어마—”

3기계화보병사단장.

사천당가, 9레벨 독릉(毒陵) 당명.

사천당가, 8레벨 당모.

사천당가, 8레벨 당림.

산동악가, 8레벨 귀창(鬼槍) 악려.

루 막슨, 8레벨 막슨 루벨터.

일레힌 포이체카 마탑, 8레벨 샨탈티아.

······그외 정예 73명 전사, 중상자 다수.

북부 편제에서만 9레벨이 한 명, 8레벨이 다섯이나 죽었고 7레벨은 너무 많이 죽어서 집계 자체가 힘들단다.

목숨만 겨우 유지하고 있는 이들도 많고.

본대에 붙어있던 이들은 대부분 다 죽었다던가.

전체도 아니고, ‘북부 편제 세력’ 에서만 이만한 피해가 나왔다. 그 때문에 로키 시티의 베이스캠프는 수복 성공이 예정되어 있음에도 침울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고.

일단 수복전은 성공으로 끝나겠으나 피해가 극심했다. 북부 편제에 있던 9레벨의 중요 전력들이 죽거나 폐인이 되었을 정도라면, 그 밑은 말할 것도 없었다.

심지어.

가장 생존률이 높은 조가 내가 있던 12조란다.

12조의 조장이던 8레벨 무인, 천무연도 팔을 잃었지.

화산 그룹의 인재인만큼 초고급 사이버웨어나 배양 바이오웨어를 선택해 이식받겠지만, 아무리 동화율을 끌어올린대도 평생을 같이 해온 팔보다야 어색할 것이고.

···잠깐.

그러고 보니, 광선이 보이질 않는다.

슬레모킨이 그런 내 의표를 알아챘는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레반 네 검은 당가에서 보관하고 있어. 제대로 움직일 수 있게되면 내가 손잡고 데려가줄게.”

당가에서 내 검을?

이라는 의문을 가질 새도 없이.

“사천당가의 소가주가 수르트에서 날아왔더라. 너를 보고 싶어 하던데, 일단은 기절했으니까 일정을 뒤로 물려뒀어. 당명 원로가 당가쪽에서도 대단한 사람인가 보던데.”

사천당가의 소가주가 여기까지 왔다고? 점입가경이군.

“아 그리고. 저기 화면 보여?”

깨어난지 얼마나 되었다고, 도통 쉴 새가 없었다.

슬레모킨은 의약당 중앙, 노이즈가 낀 화면을 가리켰다. 거기는 내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방송되고 있었는데 나도 몇 번 봤을만큼 유명한 언론사였다.

“너 엄청나게 유명인 됐어. 연방 정부 차원에서 밀어주려고 작정을 했더라.”

“······.”

* * *

9레벨 바만차 사냥에서 큰 공을 세운, 발할라 시티 최고의 마법사이자 새로 떠오르는 어쩌고···대충 그런 포지션인가.

대체 누가 저딴 개짓거리를 한 거지?

“하아.”

하루 아침에, 대뜸 유명인이 되었다.

날더러 엄청난 괴물의 탄생이란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명성과 명예 따위를 바란 건 아니나, 아무래도 내가 저질러버린 일이 기적에 가깝다보니 알려진 순간 곧바로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몰아받게 되었다.

걱정이 덜컥 든다.

수복전에서 뒈져버린 것보다야 낫겠으나, 아직 높아진 명성에 걸맞는 경지에는 오르지 못했다. 중원무림에서도 실력에 비해 이름값만 높은 놈들은 단명하기에 딱 좋았다.

심지어 발할라 시티의 유명 미디어 말고도 각종 미디어에 내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보도되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진지하게 성형 수술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눈도 좀 키우고 턱도 깎고.

어느 병원 원장이 잘 만지지?

하지만 뼈와 근육을 만지면 그쪽으로 흐르는 신체의 기혈이 틀어질 수 있기 때문에 굉장한 악수가 될 수 있다는 게 큰 문제다.

가면을 하나 구해야 하나.

긴 한숨이 나온다.

정기신의 균형을 맞춰보기 위해 참가한 곳에서, 하필 모든 밑천을 다 끄집어내 싸울 일이 생기는 바람에.

일단은 살아남았으나 더 큰 언덕들이 남아있군.

나는 상념을 지우고는 슬레모킨에게 물었다.

“바만차와의 싸움에서 마지막에 끼어 들었던 여자는 어떻게 됐지?”

내 질문에, 슬레모킨은 잠시 입을 우물대더니 말했다.

“로라 마르티네즈? 진공진인이랑 같이 오딘 시티 연방 본부로 갔어. 이번 사태에 대해서 뭘 따지러 갔다던—”

촤악!

“헤이. 나 돌아 왔는데?”

“······힉.”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던가.

슬레모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뿔테 안경을 쓴 작은 체구의 마법사가 비단 칸막이를 강하게 제치며 들어왔다.

십이제, 마녀. 로라 마르티네즈.

바만차와의 전투에서 마지막에 끼어들었던 거물.

그런데.

그 거물은 들어오자마자 뜬금없이 내 링거줄을 다 끊어버리더니,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야.”

“?”

“너, 우리 편할래 아니면 연방 편할래.”

* * *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너무도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제안.

나는 아픈 몸을 이끌고, 조용히 되물었다.

“······지금, 연방군 작전이 너무 개좆같고 허술했다고 기자 회견을 하라 이겁니까?”

“응. 특히 개좆같다라는 말이 꼭 들어갔음 해.”

연방 정부에서는 나를 이번 수복전의 영웅으로 낙점했다.

7레벨의 몸으로 언데드를 궤멸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어쩌고 저쩌고.

근데 지금 이 여자는, 그걸 내 발로 뻥 차버리라는 말을 하는 중이다.

어떤 손해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로라 마르티네즈는 재밌어서 못 참겠다는 듯, 이빨을 다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연방에서 널 이번 수복전의 영웅으로 밀어주려 해. 내가 네 얘기를 연방에 슬쩍 흘려서 그렇게 만들었고. 그런데 그 영웅이 시원하게 연방 뒤통수를 까버리면 어떻겠어? 어차피 얼굴도 다 팔린 마당에 그림이 좋잖아.”

좋기는 뭐가 좋아.

내가 그리 생각하던 그때, 로라 마르티네즈는 죽이 놓여져있던 협탁을 쾅! 때리며 입을 열었다.

이를 바득바득 가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려온다.

“야, 그 꼰대새끼들 말만 믿고 왔다가 존나게 많이 죽었잖아. 앞으로도 이러지 않으리라는 법 있어? 그러니까 이번 수복전 지휘하고 판 짠 씹새끼들, 기강 한 번 제대로 잡으려고. 진공 늙은이는 물론이고 지금 로키에 있는 세력들끼리 다 협의 된 거야. 니네 마탑주도 마찬가지고.”

“······.”

그렇게 된 건가.

하기야 마탑의 마법사들도 꽤 죽었겠지.

그런데 십이제 둘은 연방 정부에서 직접 수복군에 파견해 꽂아넣은 이들 아니었던가. 그닥 연방 정부와 관련이 깊지는 않아 보이는군.

아무튼 줄이자면, 이번 수복전을 지휘한 연방 사령부와 굵직한 연방의 정치인들을 세력들끼리 똘똘 뭉쳐서 갈아버리겠다는 얘기 같은데.

“연방 정부가 원하는 대로 하면, 너 앞으로 일 년은 얼굴마담이랑 꼭두각시짓 해야해. 분칠하고 화보도 찍고 인터뷰도 하고 아유, 생각보다 힘들다 그거? 꼬추 달고 태어나서 그러고 싶니? 그냥 시원하게 터뜨리고 좀 쉬어.”

그 뒤로도 로라 마르티네즈의 제안이 속사포와같이 이어졌고.

마침내.

그녀의 말을 조용히 경청하던 내가 입을 열었다.

“만약 그 말대로 해주면, 나한테 뭐 해줄 겁니까?”

“흐흐···.”

그러자, 로라 마르티네즈가 안경 너머로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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