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퓨전펑크의 전생자-84화 (84/157)

#84화. 라그나로크 시티 수복전 6

#84화.

연방 사령부는 북부 발전소 탈환과 녹량백량 궤멸에 9레벨 셋과 8레벨 끝자락 마법사 한 명. 그리고 제3 기계화보병사단을 배정했다.

하지만 라그나로크 시티의 네임드 개체들이 연합해 편제의 후발대를 끊어버렸다. 허리가 끊어지자 작전은 당연하단 듯 틀어졌고 이미 많은 이들이 죽었다.

3사단장과의 의견이 갈린 뒤, 홀로 사라졌던 당가의 원로는 원자력 발전소 근방에서 생의 마지막 결전(決戰)에 돌입했다.

와중에 가장 큰 전력을 지닌 본대와 선발대는, 절대적인 요기를 지닌 자굴라와 맞닥뜨리는 바람에 꼼짝없이 도심에 묶여있으며.

와작!

······편제 사령관인 연방군 3사단장은 방금 막 죽었다.

위치 미상으로 알려진 네임드 ‘자굴라’ 는 본대의 수장들이 겪어본 어떠한 시체보다도 강했다.

선운자의 말대로 자굴라는 9레벨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준의 끔찍한 요기를 뿜어내고 있다.

“10레벨, 대륙급을 붙여도 그리 부족하지 않다.”

당가의 원로를 지원하러 가는 것은 차치하고, 목표했던 대로 탈환과 궤멸은커녕 그들도 당장의 목숨이 위태로웠다.

감염된 시체들을 제 몸처럼 다루는 강력한 네임드.

현재 선운자와 루 막슨의 회장이 전력을 다해 자굴라의 이동과 공격을 억제하고 있으나, 저 자굴라가 마음을 먹는다면 그들을 뿌리치는 것은 시간문제다.

“후발대의 대부분이 감염되었군요.”

저 밑.

콰작-

루 막슨의 말과 함께 한 마법사의 사지가 찢어진다.

마법사이되 이제는 마법사가 아니게 되어버린 존재. 통신이 끊어졌던 후발대 14조부터 20조의 인원은 대부분 이지를 잃은 언데드로 다시 태어나 본대의 행사를 막아서고 있었다.

“······.”

아마도 자굴라 고유의 능력일 것이다.

자굴라에게 통제당하는 조장급 강자가 무려 넷. 7레벨의 후발대 조원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덕분에 선발대와 본대의 전력들이 파리 목숨처럼 죽어나간다.

곧.

“마탑주가 직접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일이 조금이나마 더 수월했을 것인데. 안타까운 일이구나.”

전황을 파악한 선운자가 말문을 열었다.

마탑주, 일레힌 포이체카는 지금 여기에 없다.

“그래도 원망할 수는 없는 노릇.”

하지만 피곤한 얼굴의 마법사와 더불어 조장급인 마탑의 마법사가, 거의 9레벨에 근접한 신위를 내보이며 시체들을 격퇴하고 있다. 선발대와 본대가 자굴라를 상대할 수 있는 큰 이유였다.

스아아아—

저들의 육신을 갑옷처럼 감싸고 있는 진한 청록빛.

두 마탑의 조장급은 ‘청록빛의 마력’ 이 섞인 고위계 광역 마법들을 시체들의 머리위로 연신 쏟아낸다.

마탑주, 일레힌 포이체카가 마탑의 강력한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마력을 아낌없이 나눠준 것이다. 그러니 본대와 선발대의 전력도 만만치는 않다.

“허나, 저것이 탑주가 잡았던 우르드 놈보다 강할 터.”

곧이어 선운자의 검과 육신에서 한 떨기 매화와도 같은 자빛 광채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화산의 자하신공(紫霞神功)이 전장을 밝힌다.

망망대해 위, 자색의 등대.

전장을 화려한 자색으로 물들이는 자하신공.

빌딩의 꼭대기에서 가볍게 발을 구른 선운자가 웅혼한 위엄을 줄줄 풍기며 떨어져 내렸고.

“그래도 내 어찌, 잘 버텨보겠네.”

뒤이어 자색의 기운을 뿜어내는 잔상이, 수만의 시체들이 아우성치는 전장을 뒤덮으며 유린해갔다.

* * *

라그나로크 남부.

연방군의 보병들과 난다긴다하는 세력의 무인, 마법사들이 언데드를 아이스크림처럼 쓸어버리고 있건만.

한 명만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집중을 유지했다.

장장 십키로미터를 넘어 드넓게 퍼뜨린 마력이 라그나로크를 샅샅이 훑고 있었다.

잠시 뒤.

······라그나로크 남부 수복군 수장, 로라 마르티네즈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와 비슷한 시각, 통신을 맡은 항공대의 한 장교도 목소리를 높였다.

— 찾았습니다! 통신 불가능 지역!

“시티 북부 쪽.”

— 엇. 그걸 어떻게—

대체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듯, 장교의 눈이 개구리처럼 커졌다. 그 반응에 로라 마르티네즈의 눈살이 찌푸려지자, 장교는 이내 실수했음을 깨닫고는 급히 말했다.

— 워, 원자력 발전소 탈환과 9레벨급 네임드 개체 녹량백량 궤멸을 맡은 편제와 통신이 현재 불가합니다. 시티 전체적으로도 이상하게 노이즈가 많이 껴있기는 해도······.

“됐어.”

장교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끊어버린 인물.

십이제, 로라 마르티네즈의 회로가 활짝 개방된다.

그러자 대기를 이루는 자연의 마나가 회로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회로가 블랙홀이라도 되는 양, 마나 입자를 빨아먹는 속도가 범상치 않았다.

“꺄하하!”

마치 공간이 왜곡되어 보일 정도로 거대한 마력의 대류가 그녀를 중심으로 몰아쳤다.

이윽고.

“진공, 그 도사보다 내가 무조건 빨리 간다!”

쐐애애액!

대기를 찢으며 용오름처럼 솟아오르는 인간포탄.

남부의 언데드를 궤멸하는 편제에서 홀로 솟구친 로라 마르티네즈가 공간을 접으며 쾌속하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콰직!

레반의 검은 바만차의 살가죽을 찔렀으며, 전신에 빼곡하게 채워놓았던 마법 수식은 바만차의 지척에 작용하며 팔다리 관절을 기이하게 꺾어놓았다.

【 ······. 】

반경 10미터를 단숨에 파먹은 마력의 폭발.

레반이 전신에 까맣게 저장해둔 수식은, 그가 빨아들인 마력을 응축하고 또 응축했다. 그리고 응축된 마력은 8레벨 에센스의 정순한 기운을 도화선삼아 폭발했다. 일전에 근방 수십미터를 불살라버렸던 루벤카의 홍염처럼.

하지만, 마나 입자를 화염으로 변환한 것이 아니라—

근방의 마나를 임의로 소멸시켜버리는 수식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에 깃들어있는 기(氣),

그 기운 자체가 레반에게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다만 감히 마나를 소멸시킨 대가는 참혹했다. 레반은 그 대가로, 마지막에 제작했던 네 번째 마나 회로를 잃었다. 그래도 최후의 상황에서 터져나갈 것을 상정한 수식이었으니 큰 후회는 없었다.

푸욱!

자폭같은 공격을 끝낸 레반이 쉬지않고 움직였다.

레반은 걸레짝이 된 몸으로 바만차의 복부에 박힌 광선을 회수하고서는, 이대로 쓰러지기 아깝다는 듯 보법을 밟았다.

탓!

일회용으로 쓰이기에 절대적으로 과분한 8레벨의 에센스가 그것을 가능케했다.

그는 이미 반쯤은 죽은 몸으로, 8레벨 무인중에서도 경지의 극에 이른 이들에게만 허락된다는 검강 줄기를 뽑아내 충격에 허우적대는 바만차를 찔러갔다.

오형검법 절강류. 광인이 갈고닦아 난전에서도 제 존재감을 발하는, 그 낭창한 검류는 혼이 나간 레반의 무의식을 따라 흘렀다.

그렇게 레반은, 광선에 주입된 빛이 바랠 때까지 한참을 더 휘둘렀고.

털썩.

그런 레반이 쓰러져 무의식마저 놓아버린 지금.

【 그아아아— 】

벌레에게 심히 물려 격노한 바만차가 폭주했다.

······동화 같은 용사의 성공담을 바랄 수 없는 전장이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의기를 불태워 괴물의 팔다리를 검강줄기로 잘라내려던 용사는 결국 후폭풍을 더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불현듯, 바만차의 형태가 흐릿해지나 싶더니.

서걱—

“······망할.”

슬레모킨 근처에 있던 조원의 목이 떨어진다.

갑자기 나타나 당명 원로의 옆구리를 파낼 때처럼, 요기에 몸이 굳어있던 조원들은 자신이 죽는지도 모르고 목숨을 잃었다.

서걱— 서걱—

레반의 손에 다리 네 개중 하나를 잃고 한쪽의 팔뚝을 잃었음에도, 거대한 유령마의 낫은 익은 벼 대신 인간의 목숨을 수확하고 있었다.

“피해······좀 피하라고!”

부질없는 슬레모킨의 외침.

감히 눈으로 좇을 수도 없는 낫의 파동이 조원들의 육체를 혼백과 함께 갈라냈다.

발전소 앞으로 빨간 유혈이 낭자한다.

“크윽!”

이제는 7레벨 조원 중에서도 경지가 높던 12조의 당령과 아힘사만이 살아남았다. 그들은 바만차의 경이로운 위력에 겨우 대항하고 있었다.

쾅!

샷건을 쏜 슬레모킨이 한발 물러났다. 천무연의 매화검법이 장전간의 빈틈을 메꾸고, 그 사이 청록빛의 괴물은 비틀대며 빠르게 낫의 범위를 벗어난다.

‘막내는 어떻게 저런 놈을 상대로······.’

압도적인 위용을 보이는 바만차.

슬레모킨과 천무연은 사방으로 피의 강이 흐르는 중에도, 죽은 조원들이 감염되지 않고 바로 죽어 다행이라며 안도했다.

그리고 그따위 안도감을 느낀 자신을 다시금 채찍질하며, 부지런히 기운을 끌어올려 바만차를 공격했다.

콰과과과광—

이 괴물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녹량백량을 찢어발기고 있는 당명 원로도 필시 죽는다.

죽기를 각오하고 생명력을 끌어다쓴 당명 원로가 설사 십이제에 필적하는 신위를 뽐낸다고 하여도, 바만차가 합류하면 패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면서 슬레모킨은 청록빛의 마력을 연신 피워올렸다. 그러나 아직도 마땅한 답장은 돌아오지 않는다.

‘망할. 망할!’

그녀가 처음으로 일레힌 마탑주를 원망하는 날이다.

일레힌 포이체카, 여섯 번째 봉우리 마탑의 주인. 그 막강한 우르드 토벌전에서 활약했던 마법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

슬레모킨의 눈이 휙휙 돌아가며 주변을 살폈다.

일단, 쓰레기처럼 형편없이 구겨진 남자가 발전소의 입구 쪽에 던져져 있었다. 분노한 바만차가 낫을 휘둘러 레반의 가슴팍을 찢어버리고 저리 내던진 것이다.

잠시 선전하나 싶던 레반은 시간이 흐르자 짐짝처럼 저렇게 던져졌다.

···7레벨과 9레벨. 도저히 좁힐 수 없는 차이.

푸슉!

쩍쩍 갈라진 레반의 가슴팍에서 피가 울컥인다. 어떠한 상처도 금세 회복해버리는 그의 재생력마저도 이번엔 갈피를 잡지 못하는지, 레반의 육체는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혀, 형님! 아니 씨발 일어나요 좀!”

짜악!

그저 미끼 용도로 데리고 왔다는 못난 남자.

밴스가 울며불며 기절한 레반의 뺨을 강하게 후려친다. 머리가 홱 하니 돌아갈 정도로 마구 후려치는데도, 레반은 죽은 사람처럼 미동도 없었다.

덜컥-

마치 사후경직이 찾아온 사체처럼 간헐적으로 경기를 일으킬 뿐.

거기에다.

저 강대한 바만차 하나로는 모자랐는지.

“!”

원자력 발전소 입구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졋다.

알 헤임달에서 보았던 ‘남쪽의 어머니’ 를 연상케 하는 8레벨급 개체의 기운이 느껴졌다. 놈은 전투가 길어지자 발전소 안쪽에서 철퍽이며 기어나오려 했다.

아마 저 안에서 녹량백량으로 위장하고 있던, 연방군에서 파악했다는 8레벨의 네임드중 한 놈일 것이다.

절망감.

악재들이 기다렸다는 듯 슬레모킨을 덮쳐온다.

서걱-

초절정의 매화검수, 천무연의 어깻죽지가 잘려나간 것도 하필 그때였다.

힘겹게 바만차의 낫 공격을 방어하던 천무연의 오른팔이 끝내 버티지 못한 것이다.

쿵!

매화를 수놓은 의복이 하릴없이 땅을 구르다가, 바만차의 징그러운 다리 밑에 짓밟혀 쩍쩍 뭉개졌다.

힘겹게 매달려있던 매화꽃이 결국 떨어졌다.

실은, 아힘사의 시기적절한 지원이 없었다면 진즉에 떨어졌을 팔이었다.

“······.”

검을 쓰는 무인의 팔이 잘렸다.

후에 회복한다 하여도 이 전장에서는 끝이다.

천무연도 그 사실을 느꼈는지, 수치와 자괴감으로 얼굴을 물들였다.

슬레모킨은 쓰러져있는 레반과 암향표를 밟으며 바만차의 낫을 피하는 천무연을 번갈아 바라보다 고개를 멀리 돌렸다.

붉은 가루가 뒤덮은 독의 늪지대.

고오오오—

당명 원로는 아직도 전투를 끝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제 바만차를 상대할 전력으로 남은 이는 한쪽 팔이 바스러진 슬레모킨 자신과······내내 담담한 태도로 전황을 읽고 행동하는 저 ‘아힘사’ 뿐.

지원은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다. 바만차와 녹량백량의 요기만큼 강대한 기운이 멀리서부터 일어나 피부를 찌르고 있다. 본대와 선발대도 막강한 언데드와 전투중일 것이다.

“······망할. 진짜 망할이네.”

죽일 수 있을까. 저 9레벨의 바만차를···?

레반의 일격이후 바만차의 경계심이 심해졌다.

바만차는 이제 그들의 접근에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간다면 요기가 실린 낫을 휘두를 뿐.

아무도 예상치 못한 레반의 대활약으로 ‘어쩌면 해볼만 하겠다’ 라는 그녀의 생각이 바만차의 안광처럼 흑백으로 물들어갔다.

감히 9레벨을 앞에 두고, 오만한 생각이었다.

일전에 무형의 공격을 막아내느라 으스러진 슬레모킨의 팔. 정상치도 못한 상태로 그녀는 지금껏 싸워왔다. 그러나 이제는 종막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우리 막내도 저 정도 해줬는데······”

슬레모킨의 고개가 마지막으로 돌아갔다.

라그나로크의 전력을 담당하는 원자력 발전소를 향해.

승기를 잡는다 해도, 어차피 죽을 당명 원로.

팔이 잘린 채 경공으로 낫을 피하는 매화검수.

이미 일찍이 죽어 고혼이 되어버린 조원들.

그리고······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레반.

슬레모킨이 생각하는 일의 가능성은 희박했다.

철컥!

하지만 그녀는 탄창을 뒤적여 가장 안쪽에 있던 원통형의 탄을 거칠게 꺼냈다. 이족 난쟁이 마공학의 정수가 담긴 특제 탄환. 그녀는 커다란 샷건의 탄을 손바닥으로 쥐었다.

그러고는 고함을 질러 박차를 가했다.

“가자!”

그렇게 슬레모킨은 마공학 특제탄을 쥔 채로, 발전소의 입구쪽를 향해 질주했다. 동시에 팔이 여섯 개나 달린 8레벨의 언데드가 발전소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게다가.

전력으로 내달리는 청록빛의 괴물 뒤로, 칠흑같은 낫을 든 유령마가 천무연에서 슬레모킨으로 표적을 바꿔 쫓아온다. 화끈하게 등판을 달구는 바만차의 요기에 슬레모킨이 청록빛 괴물을 재촉했다.

“······더 빨리. 더 빨리!”

뾰족했던 슬레모킨의 귀가, 축 늘어졌다.

7레벨의 레반이 처절하게 자폭해가며 길을 보여주었다.

그러니 ‘아쉽게 실패했어’ 라는 답을 돌려줄 수는 없다.

마탑의 막내가 희망을 보여주었으니, 중진인 슬레모킨도 무언가를 해야했다. 이를테면 북부 원자력 발전소를 폭발시켜서라도······바만차와 저 8레벨 언데드를 막아설 생각이었다.

— 안 됩니다!

뒤에서 팔이 잘린 천무연과 당령이 뭐라 소리를 질렀다.

안되긴 개뿔.

질주하는 슬레모킨의 머릿속에서 온갖 상념이 제멋대로 설켰다. 빨리 결혼하라며 평생을 귀찮게 굴던 아버지 생각이 이제서야 절실한 것이 정말 우스웠다.

“진짜······.”

주륵.

서른에서 마흔쯤 되는 꼬마처럼 눈물이 흘러내렸다.

모두가 죽고 발전소 탈환과 언데드 궤멸은 실패할지라도, 라그나로크 시티는 반드시 수복에 성공할 것이다. 아버지의 귀에 이 소식이 들어간다면······당신은 결단코 알 헤임달을 벗어나 한달음에 이곳까지 오실 테니까.

이제, 8레벨의 언데드가 틀어막고 있는 발전소의 입구가 코앞으로 보였다.

입안으로 텁텁하고 찝찔한 금속맛이 느껴졌다. 슬레모킨은 특제탄을 꽉 쥐고 마력을 쏟아부을 준비를 마쳤다.

꾸욱.

여기서 조금만 마력을 더 붓는다면 특제탄은 터진다. 6위계 마법 그 이상의 충격이 근방에 몰아칠 것이다. 애초에 펌프액션 샷건은 마력 증폭용이 아니라, 마공학 탄환의 위력을 정제하는 용도.

샷건이라는 매개체도 없이 곧바로 마력을 쏟아붓는다면, 온 사방으로 터져나가겠지.

“이제 가. 내가 미안해.”

쐐액!

슬레모킨의 물기 가득한 목소리에 청록빛 괴물이 총탄처럼 쏘아지며 팔이 여섯 개 달린 언데드와 맞붙었다. 상어같은 이빨이 놈의 살점을 뜯어먹으며 신경을 분산시켰고.

슬레모킨은 이미 과하게 운용되어 타들어갈 것만 같은 마나회로를 억지로 짜냈다. 샷건의 마공학탄을 쥔 손에 강한 힘이 들어갔다.

우드득.

“······북부 편제의 작전은 완전한 실패—”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우우우웅···.

갑자기 팔에서 환하게 빛나는 청록빛의 마력.

“!?”

슬레모킨의 전신에 힘이 약간 들어갔다. 마탑주의 청록빛 마력이 드디어, 모두 포기한 지금에 와서야 답신을 해온 것이다.

일레힌 포이체카 마탑주는 자신의 청록빛 마력을 원격으로 다른 이에게 부여할 수 있다.

마탑주의 마력과 회로가 허락하는 한도 내까지.

그를 마탑주의 지위에 앉힌 고유 마법이었다.

“······그런데.”

힘을 부여받은 구성원들이 더 많은 마력을 가져갈수록 마탑주에게 부담이 되는 일이긴 하다만······.

“······나한테는 이게 다인가?”

터무니없이 적은 마력 양이었다.

아무튼 슬레모킨은 발전소를 무너뜨리려던 계획을 다시 변경해야했다. 그녀는 즉시 8레벨 언데드의 시선을 끌고있는 청록빛 괴물을 불러들였다.

동시에 슬레모킨이 다급히 발전소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마력을 전해 받았다면 분명 레반도······.

‘어, 없다?’

쓰러져있던 레반이 어느새 사라져있었다.

* * *

정기신(精氣神).

‘정’과 ‘기’는 부족할진대 ‘신’은 드높다.

정은 몸이요 신은 마음과 의식이니.

신(神)의 지고한 뜻과 의식을 따라가지 못하던 레반의 육체를, 어디선가 흘러들어온 청록빛 마력의 물줄기가 보조해 일으켜 세웠다.

“후우.”

기를 제외한, 레반의 정신(精神)이 합일했다.

【 ······. 】

그렇게.

온몸에서 피를 줄줄 흘리던 레반은 광선을 꼬나쥐고서, 슬레모킨을 좇던 바만차의 앞을 또다시 막아섰다.

그리고 지금.

마치 태양처럼 환하게 빛나는 청록빛 마력이-

레반의 전신을 강기의 갑옷처럼 두르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