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퓨전펑크의 전생자-83화 (83/157)

#83화. 라그나로크 시티 수복전 5

#83화.

화경(化境)을 이룩한 9레벨의 무인.

사실 절정에만 올라도 대단히 높은 경지다. 지닌 잠재력과 모든 재능을 한계까지 끌어내 무공을 익혀도, 절정에 오르지 못하는 무인들이 세상에는 수두룩 빽빽하다.

허나 화경.

초월(超越)로의 첫 걸음.

그것은 인류라는 종에 정해진 한계, 지극히 단단한 알껍질을 깨부수고 뛰쳐나와 또다른 세계에 발을 내딛은 초인들.

세상의 이치를 달리 깨닫고 일신을 재정립하며, 더 이상 법칙 따위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지경.

같은 공간에 있다 해도 한 차원 다른 존재다.

“······.”

어지간한 조장급 강자도 선 자리에서 양단되어 죽어나갔을 기습을, 9레벨의 당명은 내상을 입는 정도로 방어해냈으니.

푸확-

독혈이 울컥대며 당명의 입가를 적신다.

그의 펄럭이는 무복 옆구리를 뚫고나온 예기.

곡선으로 날카롭게 휘어진 낫이, 당명의 육체를 토양삼아 자라났다. 그 덕분에 방금 전까지 당명의 우악스런 손속과 극성의 독공에 꼼짝도 못하던 녹량백량이 비웃음을 흘리며 일어났다.

【 잡았구나! 흐하하! 】

만족스러운 괴물의 웃음.

“놈!”

당명이 찰나간 몸을 뒤집으며 그 낫을 휘어잡으려 했으나, 거대한 낫은 끝내 연기처럼 스르륵 빠져나갔다.

곧, 당명의 후방에서 요기를 흘리던 괴물이 그 끔찍한 외양을 드러냈다.

침침한 안광을 가진 3m의 거체.

썩어 흘러내리는 길쭉한 얼굴에 살가죽들은 뼈에 겨우 붙어있었으며, 지렁이같은 혈관이 튀어나온 다리 네 개가 지면을 딛고 있고, 뼈다귀같은 두 팔로는 대형 낫을 들고 있었다.

흡사, 거대한 낫을 든 뼈다귀 유령마.

그 흉한 괴물이 순식간에 나타나 당명을 공격하기 전까지, 아무도 저 괴물을 발견하지도 저지하지도 못했다.

이질적인 형체가 가리키는 답은 하나뿐이었다.

또 하나의 9레벨.

“남부에 있어야 할 네임드가 왜 여기에······.”

라그나로크 시티의 9레벨급 네임드 개체. 남부를 영역으로 삼은 ‘바만차’ 의 생김새와 확실히 일치했다.

슬레모킨의 가설이 현실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네임드, 가진바 힘이 너무도 강하거나 끔찍하여 이름까지 붙여진 9레벨급 두 개체가 붙어다니는 것을 실제로 목격할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도 복권1등 용지를 들고 길을 걷다가 벼락을 다섯 번 연속으로 맞을 확률보다도 낮을 것이다.

“······망할.”

미증유의 강함을 지닌 네임드가 두 개체.

토벌해야할 적이 순식간에 두 마리로 늘었다.

그에 비해 이쪽의 전력은 본대의 주축인 당명을 제외하면 조장급 둘과 몇 명의 조원들 뿐.

실로 보잘것 없다.

당명이라면 저들을 상대로 버틸지 몰라도 여기있는 다른 이들은 순식간에 쓸려나갈 것이다. 9레벨의 무인조차 손쓸 새 없이 당해버린 저 괴물의 움직임을 목도했지 않은가.

꽈악-

“······이건, 큰일이다.”

검집을 강하게 부여잡은 천무연도 침음을 뱉었다.

짧게 깎은 그의 머리칼처럼, 전신의 털이 바짝 선다.

그래도 아예 얼이 빠져버린 조원들 보다는 두 조장의 상황이 약간은 나았으나, 그 둘도 이내 입이 붙어 말을 잃었다.

저 규격 외 괴물들의 기세에 눌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 맞으리라. 녹량백량의 존재만 해도 좌중을 압도하는 위력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곱절이 되었다.

어찌 해볼 수 없는 전력차이.

이제는 허탈한 무력감이 장내에 몰아치려했다.

헌데 그 순간.

작은 웃음이 공간을 잠식하려는 무력감을 잠시 흩어냈다.

“허허.”

당명의 주름진 얼굴이 싱겁게 웃고 있었다. 그는 옆구리가 뚫린 채 독혈을 한 움큼씩이나 토해내고도 아직 꽤 정정했다.

“반푼이가 달아나지 않는 이유가 있었구나.”

【 뭐? 】

녹량백량이 그 얘기에 과하게 발칵 반응하자, 당명은 곧장 말을 이었다.

“문에서 한심하게 도망치고, 인간의 탈까지 벗기 위해 장벽 밖으로 달아난 놈. 이번에는 용케도 달아나지 않나 싶었는데, 저따위 역한 괴물과 패를 이룬 것이냐? 시체가 되었어도 본성은 어디 가지 않는구나. 본노가 몹시도 두려운 게지. 대체 어찌하여 하고 많은 가문중에 당가의 피를 받아 태어난 게냐? 모자란 반푼이놈.”

【 ······. 】

터벅. 터벅. 터벅.

당가의 도망자, 도저히 씻을 수 없는 수치.

폐부를 찌르는 당명의 입담에 녹량백량이 뭐에 홀린듯 요기를 줄줄 흘리며 걸음을 옮겼다.

스윽-

그러나 당명의 뒤를 잡으며 나타난 바만차는, 이빨을 덜덜 떠는 녹량백량의 목에 거대한 낫을 갖다대며 그를 막아섰다. 마치 사소한 도발에 요기를 밖으로 내보이지 말라는 듯이.

쫘아아악-

【 비켜라. 】

그러자 녹량백량의 흰 면면이 세로로 찢어지며 이빨을 드러냈고, 바만차의 침침한 안광에서는 서슬퍼런 광망이 일어났다.

의견이 충돌한 듯, 느닷없는 혼란이 벌어졌다.

당장이라도 터질듯한 귀기가 절절하게 끓는다.

그렇게, 그들이 요력을 끌어올리던 그때였다.

“다들 뭘 그렇게 멍청하게 보고만 서있나.”

“···?”

저 뒤쪽에서, 얼굴이 푸르딩딩해진 레반이 그 혼란한 기회를 틈타 입을 열었다.

귀가 쫑긋해진 슬레모킨의 고개가 돌아갔다.

지금은 한낱 7레벨의 조원이 끼어들 분위기는 아니었으나.

벅벅-

얼굴을 쓸어올리며 마른 세수를 한 레반은, 그딴 건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하던 말을 이었다.

“어우. 저 영감님 돌아가시는 거 그냥 내버려 두면, 그 다음은 누구겠어.”

“······.”

“우리야. 생각을 좀 하자.”

인류의 종에 정해진 한계. 단단한 알껍질.

이 자리에는 그 알껍질을 부순 이가 당명을 제외하고도 한명 더 있었다. 진작부터 알껍질 밖으로 대가리를 내밀어 ‘다른 세상’ 을 엿보고 있는 사내가.

다만 그 알껍질 밖으로 ‘대가리’ 만 내밀어 놓은지라 상단전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알껍질 속에 갇혀있는 특이한 존재.

레반.

그는 재미없는 책을 읽듯 담담하게 입을 놀렸다.

“저 영감님 목이 왜 아직도 붙어있을까. 뭐···저 새끼들이 합체변신 기다려주면서 여유 부리는 것 같아보여? 여기서 요기 더 뿜으면 다른 수복군한테 걸릴까봐 쫄아서 저 지랄들을 하는 거잖아.”

쿨럭.

레반은 녹량백량의 존재를 눈치채고 공격까지 성공시켰으나, 가까이 다가가는 바람인지 독에 중독당했다. 그래도 감염까지는 되지 않아 다행이다···레반은 그리 낙천적으로 생각하며 각혈한 당명을 향해 물었다.

“원로님, 혹시 효과좋은 피독단 가지고 계십니까? 제가 중독당해가지고, 몸이 영 말을 안듣네요.”

높낮이가 없고 평온하기만 한 어조.

그것은 조장과 조원들의 살갗까지 와닿은 허탈함과 무력감을 당명의 웃음처럼 슬그머니 밀어냈다.

이윽고.

“······.”

드디어 당명의 안광이 레반에게 꽂혀들었다.

당명의 옆구리는 확실히 낫에 뚫렸으나, 아직 허공을 장악한 그의 기계벌레들은 격발을 기다리는 샷건처럼 고요한 위압감을 뽐내고 있었다.

필시 내상을 입어 독혈을 토해냈음에도···.

극한의 집중력으로 당가의 비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무섭도록 막강한 집념이었다.

“그래.”

호신기도 아니고, 자그마치 호신강기(護身罡氣)를 독공과 함께 뿜어내고 있던 당명이 흡족하게 입을 열었다.

“그나마 똘똘한 놈이 하나 끼어있구나.”

녹량백량을 찢어발긴 뒤 그대로 잡아먹어버리지 않을까 싶은, 살수나 인간 백정이 보일법한 정광이 당명의 눈동자에서 이글거린다.

훅.

곧, 당명의 입에서 포도알갱이만한 크기의 피독단이 독침처럼 쏘아졌다.

“고맙습니다.”

그 알갱이 피독단은 정확히 레반의 손에 안착했다. 붉은 보석과도 같이 빛나는 그것은 만가지 독을 즉시 해독할 수 있다는, 사천당가의 피독환단이었다.

꿀꺽.

생긴것이 워낙 꺼림칙해 망설일만도 하건만, 레반은 받은 피독환단을 즉시 복용했다. 그러자 푸르딩딩했던 그의 안색이 금세 돌아오며 제 상태를 되찾았다.

역시 해독과 의술하면 또 당가 아니겠는가.

해독뿐만 아니라 약간의 영험한 기운이 들어있어 기운을 북돋아준다. 독인지경에 오른 무인에게 피독단 따위는 필요 없겠으나 경험 많은 원로급이라면 이런 전장에 반드시 들고나왔으리라 생각했다.

피독환단을 복용하고 상태가 급격히 나아진 레반이 다시 물었다.

“원로님, 저희가 뭘 도와드리면 됩니까.”

“본노의 묏자리가 이리 너저분해서야 되겠느냐.”

쐐액!

돌연, 거력을 지닌 편(鞭)이 공간을 찢으며 떨어졌다.

보통의 무인들이 애용하는 검 대신, 당가의 편을 이용해 편강(鞭罡)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흉한 채찍으로 변한 허릿대를 틀어쥔 당명은 그제서야 물음에 답했다.

“네가 여기서 살아남는다면, 본노가 녹아내린 자리에 칼을 꽂아라. 수습은 후에 문에서 해갈 것이다.”

스아아아악—

그 말이 끝나자마자, 살짝 닿기만 해도 살가죽이 녹아버릴듯한 극독의 기운이 당명의 주위로 장막처럼 휘몰아친다.

묏자리.

당명은 마땅히 죽음을 각오했다는 뜻.

품속을 뒤적이던 레반은 덤덤하게 되물었다.

“유언은 그것으로 충분하시겠습니까?”

“충분하고 말고.”

“받으십시오.”

“?”

슈악!

레반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던졌다.

극독의 장막을 뚫고 들어간 하나의 물건.

레반이 그간 애지중지 아끼던 9레벨, 우르드의 에센스였다.

“좋은 에센스입니다.”

“······허!”

그 물건을 받아 확인한 당명이 허허 웃고는, 레반이 피독단을 삼키는 것보다 빠르게 삼켜버렸다.

그러자, 당명의 전신에서 스멀스멀 뿜어져 사방을 집어삼키는 독연이 비공정의 증기보다 더욱 격하게 뿜어져나왔다.

현재.

당명의 시선은 오직 녹량백량을 향해 있었다.

이윽고, 해가 지기 전 마지막 빛을 태우듯.

고오오오오—

인간의 본질이자 혼. 진원.

죽기를 각오한 당명이 본신의 선천지기를 뽑아 불태우기 시작했다.

이 라그나로크 시티를 무덤으로 삼기로하고 본신의 선천지기까지 뽑아 태워버린 당명은, 굳어있는 녹량백량의 목줄기를 두 눈으로 직시했다.

화경의 무인이 삶을 버리고 정순한 기를 육신 밖으로 뽑아내니, 그 양이 어마어마하여 십이제의 수좌 진공진인이 이루었다던 공령지체(空靈之體)와도 다름이 없었다.

사방으로 토해진 거대한 공력이 파도처럼 일며 하늘까지 솟구쳤다.

절대적인 기세가 당명의 육신에서 흘러나오더니, 공력을 담은 그의 음성이 천공까지 웅웅 울렸다.

— 녹아. 결자해지다.

【 느, 늙은이가 끝까지 나를······! 】

만천화우를 준비하는 기계벌레들이 아직도 허공에 뜬 채 기운을 빨아먹는 것을 본 녹량백량이 치를 떨며,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흰 얼굴은 더욱 허여멀건하게 변해갔다.

콰과과곽!

그러나 대응했을 때는 늦었다. 당명의 몸은 이미 공력의 바다위로 넘실넘실 떠오르고 있었다. 허공을 장악하고 있던 기계벌레들이 저절로 움직이며 당명의 신형을 부드러이 휘감았다.

【 개같은 당명이놈······죽여버리겠어. 】

당명의 기운에 대항해 비슷하게 살기짙은 독기를 피워올리는 녹량백량. 당명이 생환을 포기한 이상 그들이 요기를 숨기려던 생각도, 이제는 불가했다.

녹량백량이 요기를 맞수로 끄집어냄과 동시에.

콰아아아앙—!!!

사천당가의 절기.

만천화우(滿天花雨)를 이루는 칼날들이 당명의 살의를 머금고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쐐액! 쐐애액!

수천개의 암기들 사이에 무형기를 머금은 추혼비접(追魂飛蝶)과 독질려(毒疾藜)가 군데군데 도사리고 있다. 심장을 꿰뚫고 사지를 잘라낼 암기들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진다.

게다가.

당가의 직계에게도 잘 내주지 않는, 해독이 불가능한 귀왕령(鬼王令)의 붉은 가루들이 녹량백량과 당명을 순식간에 뒤덮으며 일대에 강맹히 흩뿌려졌다.

그 탓에 원자력 발전소 앞, 극독의 늪지대가 생겨났고

【 ! 】

낫을 든 바만차마저도 그 지역에서 급히 물러나며 쉬이 접근하지 못했다. 그곳은 온전히 독인지경을 이룬 자들만의 영역이었다.

한편.

탓!

거침없이 선천지기를 뽑아쓰는 당명의 만천화우가 터져나옴을 확인한 레반은 광선을 뽑아들고 질주했다.

그 반대편으로 도주하는 것이 아닌, 둘의 전투를 비집고 들어갈 타이밍을 놓친 네임드, 9레벨의 바만차를 향해.

‘미친, 저거 뭔 생각이야?’

‘무슨 생각으로···.’

슬레모킨과 천무연. 조장 둘이 동시에 경악을 머금었다.

7레벨 조원급인 레반이 이런 전장을 뒤집는 것은 불가능하다. 계란으로 바위를 쳐도 이 상황보다는 월등히 낫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전투가 펼쳐질 것인데. 도주해서 시간을 끌어야 하는데—

탓!

하지만 그들은 생각을 미처 다 끝내기도 전에 레반을 따라 얼떨결에 움직였다. 설산 위의 빙하처럼 굳어있던 몸이 잠시나마 자유를 되찾았다.

‘!’

고작해야 7레벨이 당당히 칼을 뽑아 격전지 속으로 뛰어들자, 무의식까지 잠식해오던 네임드의 압박감이 쓸려 내려간 것이다. 특히나 슬레모킨은, 이미 샷건의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마쳤다.

콰과광!

슬레모킨이 굳어있던 고개를 저었다.

일반적으로, 규격 외의 괴물들을 앞에두고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이건 말도 안 돼.’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건가?

아니, 적어도 레반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입가에 빛나는 유리병을 물고 있었으니까.

와작!

유리병이 깨지며 절반을 남겨두었던 8레벨 에센스가 레반의 입으로 흘러들어간다. 오색광채를 뿜는 검기가 더욱 강렬히 타오른다.

자신을 향해 살기를 풍기는 초월자들과 몇 번이나 생사결을 벌였던 사내. 이 자리의 어느 누구보다 불합리한 상황에서 싸워왔던 사내.

【 ······. 】

요기를 줄기줄기 흘리며 당명과 녹량백량의 싸움에 난입할 기회를 엿보던 바만차의 흉광이 결국 레반에게 닿았다.

바만차는 바닥에 못을 박은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쓰레기를 바라보는 듯한 안광으로 레반을 마주했다. 한낱 벌레를 그리 경계하지 않는, 레반에게는 어딘가 익숙한 시선이었다.

화산의 노괴인가 혹은 제국의 별인가.

여튼 레반에게는 매우 기꺼운 일이었다. 자신을 향해 돌진해오는 한낱 벌레를 짓누르려는 저 움직임에는, 어떠한 의념도 담겨있지 않았으니.

쐐애애애액!

거대한 낫이 레반을 가차없이 가르려는 찰나, 바만차가 자세를 비틀었다. 그 옆으로 슬레모킨의 마나 미사일과 천무연의 분분한 검기가 바만차를 스쳐 지나갔다.

칠흑같은 시체의 안광 밑에서.

지극히 찰나의 순간.

“······.”

바만차를 직면해 오연히 선 레반이 3m의 거체를 올려다보았다.

철컥-

그리고 광선의 검병을 비틀었다.

오형검. 변형 초식.

절강흑도 출신의 무인이 평생의 심마를 녹여 의기로 갈고 닦았으며 언젠가 그의 못난 제자가 사사한 검. 십대고수였던 광인의 성명절기(成名絶技).

홀몸의 광인이 필생을 갈고닦아 자신과 동류였던 이에게 사사한 검. 독문검법에 자신의 의념을 담아 풀어낸 검.

오형검법. 절강류(浙江流).

검광이 비추고, 찰나간의 시간이 흘렀다.

장내의 모두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마나 미사일이 탄생시킨 자욱한 폭연을 뚫고, 빛살처럼 내뻗은 레반의 검이 오색빛의 궤적을 그린 뒤였다.

그리고 궤적을 그려낸 광선은, 검기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에센스로 육신의 한계를 잠시간 뛰어넘어, 검기성강을 피워올린 레반의 검이, 기어코 바만차의 살가죽을 꿰뚫은 것이다.

푸욱!

【 ······. 】

그렇게.

바만차를 오연히 올려다보던 레반의 시선이 점점 아래로 내려간다.

검으로 복부를 꿰뚫었으나, 동시에 거대한 바만차의 낫에 가슴팍이 뚫려버린 채로 하늘 높이 들어올려진 레반이 나지막이 말을 뱉었다.

전신의 마력을 한계까지 끌어 올리며.

“하, 이 새끼. 진짜 못생겼네.”

【 ······! 】

화르르륵—

레반의 전신을 타고 흐르는 마나의 흐름. 체내의 운하로 운반된 마력들이 일거에 들고 일어난다. 의복이 마력에 타오르며, 깜지처럼 새카맣게 새겨둔 문신이 드러났다. 연방의 수복전를 준비하며 레반이 직접 새겨넣은 수식. 제국의 세 별과의 마지막 전투에서 직접 배워온 꼼수.

바만차가 움직이기도 전에.

레반의 입이 피분수를 뿜으며 열렸다.

“터져라.”

* * *

화산의 장로.

선운자가 무언가를 느끼고는, 긴 탄식을 내뱉었다.

“······허어, 어찌 이런.”

“큰일이군요.”

루 막슨 회장과 선운자의 안색이 푹 꺼졌다.

연방군의 핵투발은 더 이상 없다. 그럼에도 라그나로크의 북부 전체가 진동할 정도로 거대한 파장이 시시각각 몰려온다.

저 멀리서 절규와도 같은, 막대한 요기와 구름처럼 일어난 독기운이 연신 파장에 섞여 북부를 진동시킨다.

“역시, 라그나로크의 네임드 개체들이 전부 북부로 모여들었군요. 아마도 저쪽에는 바만차가······.”

적어도 둘 이상의 네임드와 당가의 수장이 전투를 벌이고 있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중 뻗어오는 요기의 수준을 모를 이가 없었다. 모두 토벌전에서 강력한 네임드 개체와의 전투를 경험해본 이들이니.

남부의 ‘바만차’ 는 십이제의 로라 마르티네즈가 이끄는 남부 수복군이 배정받았을 정도로 강한 개체. 아무리 당명이라고 해도, 녹량백량과 바만차 두 개체를 한꺼번에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좋지 않군······.”

그렇게 뇌까린 선운자가 인상을 구겼다.

지금 그들의 앞에도 한 마리의 네임드가 있었기에.

라그나로크 시티 전체를 제 영역으로 삼은 추정 9레벨의 개체 자굴라. 시궁쥐의 모습을 한 수만의 언데드들이 땅에 깔려있었는데, 이미 3사단은 병력 대부분을 잃었다.

루 막슨의 회장이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즉각적인 퇴각 명령이 꽤 조급하다 생각했는데······상황을 보아하니 죽은 장군은 무언가 알고 있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더해서.

“헌데 대체······저 괴이가 정녕 9레벨이 맞는가? 연방에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듯 싶군.”

'추정' 9레벨 네임드, 자굴라.

콰직! 콰직!

— 으아아악!!

거대한 쥐의 이빨에 뜯어먹히는 연방군 3사단장을 보며, 모골이 송연해진 수장들이 침음을 내뱉었다.

빌딩의 꼭대기에서 전장의 현황을 내려다본 선운자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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