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퓨전펑크의 전생자-81화 (81/157)

#81화. 라그나로크 시티 수복전 3

#81화.

— 마나. 무림계에서는 기(氣)라는 명칭으로 부릅니다. 이 마나 입자는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으로, 지금 제 앞에 있는 교탁에도 들어있답니다. 아주아주 극미량이겠지만요.

— 회로를 통해 마나의 입자만을 흡수하고 응집시킨 그것을 우리는 마력이라고 합니다. 수준이 높을수록 불순물을 제외한, 더 순수한 마나 입자만을 흡수할 수 있죠. 마력으로 치환된 마나는 그때부터 사용자의 의지에······

“하암.”

레나가 입을 벌려 하품했다.

지루하기만 한 아카데미 수업 1교시.

발할라 시립 아카데미는 평소보다 휑했다.

연방 정부의 라그나로크 수복전에, 몇몇 아카데미 교수들이 뛰어난 생도들을 잔뜩 차출해 자원했기 때문이었다.

역사적인 연방의 시티 수복전! 타이틀부터가 보통이 아니다. 역사에 기록될 전투에 아주 조그맣게나마 자신의 이름을 남긴다는 그 명예가, 평범한 생도들의 경외심을 자극했다.

시립 아카데미는 공적인 교육기관인 만큼, 군이나 기업들처럼 막중한 임무를 맡지는 않겠지만 생도들은 대부분 부러운 눈빛으로 수복전에 동행하는 생도들을 바라봤다.

어린 나이에 그만한 실력을 갖췄다는 뜻이니까.

— 인공지능 시스템을 통해 이 마나 흡수 기능을 증강시킨 뒤, 디지털 신경과의 교류호환 연구가 성공하자 마공학과 마법 칩 시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 하루가 다르게 독창적인 연구 논문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제 마나 회로만 있다면 칩 하나만 장착해도 수준급의 마법을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이죠. 하지만 그만큼의 큰 부작용도······.

“지루하다···.”

아무튼 그렇기에 지금 아카데미 교수는 자리에 없고, 이 기회에 복습이라도 하라는 듯 몇 번이나 들었던 내용이 화면과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톡. 톡톡.

레나는 개인 입력패드에 뭔가를 끄적였다.

[ 레···반···레···몬···레···레···미···파···. ]

그냥 평범한 낙서였다. 수복전에 참여했다는 레반이 떠올라서 한 낙서.

휴우, 레나는 속으로 작게 심호흡을 했다.

카산드라 교수님의 저택에 들렀다가 금세 마탑으로 돌아간 레반은 연방의 수복전에 참여했다.

한편으로는 대단했다.

어떻게 벌이는 행동마다 전부 기행이라.

반 바이오 본사 탈출부터 차곡차곡 쌓여왔던 해괴한 사건들을, 여전히 레나의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카산드라 교수님이 말씀하신 인격 메모리칩만으로, 사람이 그렇게 바뀌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애초에 레반이 그런 물건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반 바이오 저택에서? 아니면 출퇴근 트램에서?’

말도 안 되는 얘기.

하지만 레나도 레반이 무언가를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다는 것 쯤은 확실히 느끼고 있다.

레반을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괜히 복잡해진 레나는 수업을 대충 한귀로 흘려들으며, 발할라 시티넷에 접속했다.

시티넷에는 희망찬 소식들이 가득했다.

라그나로크의 서쪽 장벽을 전술핵으로 허물고 진군한 수복군, 무당의 진공진인이 강력한 9레벨 네임드 개체를 벌써 추살했다.

수십만 마리가 넘는 라그나로크 시티 근처의 언데드가 잿더미가 되었다. 시티를 넓게 포위하고 사방으로 밀고 들어간 수복군이 1분 단위로 승전보를 알려왔다.

랭킹권의 뉴스는 조회수가 벌써 십억 단위.

대부분의 연방 주민들이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 새로운 기사와 소식들을 주시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덕분에 미디어와 언론사들은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 앞다투어 수복전 진행 상황을 중계했고, 발할라 시티넷은 거의 마비되기 직전이었다.

그런 와중에 승전보가 아닌, 이번 수복전에 관련된 의혹을 꼬집는 기사도 왕왕 있었다.

웬 작은 찌라시 언론사들이 밝힌, 연방 정부의 ‘계획’

사실 라그나로크 수복전 실패는 상정되어 있고, 진짜 목적은 연일 강성해지는 기업들의 힘을 줄이는 것이며, 연방의 수뇌가 정치적인 입지를 단단히 다지려고 한다는 식의 이상한 음모론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진작에 모두 폐기했다는 전술핵을 투발한 것부터가 연방 정부의 건재함을 알리는 그 증거라느니, 그 많은 강자를 전부 언데드로 만들어버리려는 세계 흑막의 계획이라느니······.

아무래도 큼지막한 사건인 만큼, 넷의 음지에 숨어있던 음모론자들이 튀어나와 물어뜯기에 좋은 먹잇감이었다.

하지만 핵심적인 논지가 살짝 부족한 탓에 온갖 욕을 먹는 것과 더불어, 얼마 가지 못하고 곧 지워졌다.

그 자리를 희망찬 얘기들이 빠른 속도로 도배되며 채워갔다.

그러니 레반도 분명 괜찮을 것이다.

레나는 머리를 털며 레반에 대한 걱정을 지우고는, 카산드라 교수가 수복전으로 떠나기 전 자신에게 선물해주었던 사진을 꺼냈다.

“그으······.”

그것은 교수의 저택에서 했던 식사 때, 피가 흥건한 스테이크를 칼로 잘게 다지며 무섭게 웃고있는 레반의 사진이었다.

“······감사하긴 한데, 도대체 왜 이런 사진을 찍으신 거지? 다른 건 없었던 걸까.”

레나는 어쩐지 섬찟해지는 기분에 금방 레반의 사진을 집어넣었다.

* * *

주르르륵···.

“이 아파트는 이웃의 민도(民度)가 상당히 별로군. 이러니까 재건축이 잘 안됐지.”

종잇장처럼 구겨지고 흘러내리는 천장.

이건 층간소음의 허용치를 넘었지 않은가.

“다들 비켜서라!”

줄줄 녹아내리는 천장을 본 조장 천무연이 나섰다.

초절정 고수의 검이 피워내는 짙은 검기, 이십사수매화검법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매화향 디퓨저 따위를 쓰던 청궁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고절한 검이 천장을 단숨에 갈라낸다.

촤악.

그러자 역한 냄새와 함께 끈적한 액체가 콸콸 흘러내리더니, 어두운 의복을 입은 인영이 녹아내린 천장 사이로 뛰어내렸다.

떨떠름히 당령의 팔목을 놓아준 레반이 말했다.

“시체가 위층에 살고 있었나? 귀신 들릴 집이네.”

위층에 살던 주민의 정체는 놀랍게도 시체였다.

그리고 수복전이라는 큰 행사에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저 고급진 비단 무복은 그 시체의 정체가 무엇인지 똑똑히 말해준다.

“심지어 당가야. 내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 ······.

당가의 무인은 시체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퍼런 핏줄이 피부위로 박동했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어째서인지 이지가 없어 보이는 그의 전신에서는 숨막히는 독기가 쉴 새 없이 뿜어지고 있었다.

푸화악!

그를 본 당령이 곧장 피독낭을 꺼내 던졌다. 스멀스멀 퍼지던 고농도의 독기가 잠시 알싸하게 중화되었다. 그러나 피독낭만으로 저 시체가 뿜어내는 독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령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이런, 낭패다.’

저 무인은 다른조의 장을 맡았을 당가의 백각주였다.

8레벨을 달성한 초절정의 무인이자 독공의 달인.

아른대는 독기운이 사방을 빠르게 잠식해간다.

당령이 급히 입을 열었다.

“다들—”

“일단, 독기부터 밀어내겠습니다.”

“미친!?”

그러나 말을 채 꺼내기도 전에, 루 막슨과 마탑의 마법사가 동시에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들 딴에는 강력한 독기운을 막아보려 한 것인데, 당가의 당령이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멈춰!! 절대 안 돼! 지금 기를 흡수했다간······.”

보이는게 저 정도면 독공으로 만들어낸 독기운은 이미 사방에 가득 퍼져있다. 마나든 기운이든 절대 흡수해선 안 된다.

“커헉.”

“······.”

하지만 그때는 이미 한참 늦어버렸다.

저들은 당령같은 무인이 아닌 마법사였다.

무인들은 단전의 내공을 쓰기에 이런 상황에도 상관이 없으나, 마법사들은 대기의 기운을 흡수해서 쓰는 바람에 생긴 일이었다. 기맥을 타고 흐르는 당가의 독공은 작은 틈도 놓치지 않는다.

결국 두 명의 마법사는 마력을 끌어올리자마자 독공에 중독되어 거품을 물었다. 그들도 뒤늦게 이상을 알아차리고 회로의 가동을 멈추었으나 이미 한 번 빨아들인 이상 소용이 없었다.

답답한 얼굴의 당령이 발을 굴렀다.

“아니 이런 병신놈들! 그것도 몰라?”

그런데, 그때였다.

공중에서부터 살포되어 내부를 잠식해나가던 독공의 독기가, 잠시 얼어붙기라도 한듯 뚝 하고 멈추었다.

“!”

놀란 당령이 고개를 돌리자.

팔에 금창약을 덕지덕지 바른 채로, 마력을 끌어올리고있는 레반이 보였다. 터질 듯이 응집된 마력이 그의 손에서 방사되고 있었다. 부채꼴로 방사된 마력이 자욱하게 퍼지는 독기를 밀어낸다.

실로 경탄스러웠다. 그 짧은 사이 독기를 걸러내고 순수한 기운만 흡수해 마법을 발현해낸 것이다.

‘저, 저렇게 간단하게 백각주의 독공을······?’

안색이 돌아온 당령이 입을 잘근거렸다.

굳이 혼자 나서서 수백의 시체를 단신으로 베어버리더니, 이제는 독공의 기운이 장내를 파먹은 상태에서 마법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연무장에 올라서기 꺼려하던 그는 막상 시작된 자신과의 대련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은 검법으로, 자그마치 수십 장을 날려버렸다.

뿐만인가? 일전에 완벽하게 하독된 청화산(淸火酸)과 산공독을 피독주도 없이 괴상한 기예를 통해 육신 밖으로 배출해냈다.

최근 당가 내에서 직계인 당절이 사로잡혔던 일로, 여섯 번째 봉우리 마탑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을 저 사내가 지금 전면으로 뒤집어버린 것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타적이고 본질적으로 선하다. 방금도 굳이 자신을 구해주지 않았는가.

그것이, 당령이 오해한 레반이었다.

“빨리 안 데리고 나가? 같이 뒈질거면 그렇게 하고.”

“나, 나가야지!”

레반의 일갈에 당령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쓰러진 마법사 둘을 들어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잠시 뒤.

마지막까지 독기를 흩어내던 레반의 뒷덜미를 잡아 무너지는 아파트에서 함께 빠져나온 조장 천무연이 씩 웃으며 중얼거렸다.

“윗배분 앞에서도 꼿꼿한 청풍이 놈이 형장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었군. 아까 시체들을 썰어내던 그 무인이 정녕 맞는가?”

구구구궁······.

아파트의 난간을 밟고 밑으로 뛰쳐내린 천무연의 뒤로, 삭아버린 117동이 팬케이크를 쌓은 것처럼 층층이 무너져내렸다.

곧이어, 수백 톤은 될법한 건물의 잔해를 가볍게 걷어낸 시체역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곧, 기수식을 취한 천무연이 당령을 바라봤고.

“용서하게.”

당령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뭘 용서해요? 빨리 쳐죽이죠.”

* * *

기이이이잉—

아힘사의 초진동 블레이드가 떨어져 당문 시체의 목을 썰어낸다. 매화검수가 피워낸 검기에도 잘 상처 입지 않을 만큼 단단한 목이었다.

쿵.

그가 죽자 음습하게 파도치던 독기가 흩어졌다.

삐질 흐르는 땀을 닦은 당령이 고개를 돌렸다.

“후우.”

천무연과 레반, 아힘사의 활약에 힘입어 세력의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다. 조장인 천무연이 강한 것은 당연하지만, 마탑 소속인 레반과 더불어 '아힘사' 의 무력이 상상 이상이었다. 아힘사의 정확한 정체를 모르는 12조원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하지만 옆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보병분대가 몰살당했고 독기를 기맥으로 들이쉰 마법사들의 상태도 아직 그리 좋지 못했다. 아쉽게도 조원끼리 서로 칭찬이나 나눌 시기가 아니었다.

또한, 현재 조장 천무연을 위시한 12조의 조원들은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죽인 당문의 무인이 다른 후발대의 조장이라면···.

푸욱!

확인사살과 뒷수습을 마친 천무연이 말했다.

“다른 조가 당한 듯한데. 어찌 된 영문인지 여기서 파악할 수 있겠습니까?”

조장 천무연의 물음에.

“미안하지만 당장은 힘듭니다. 군용 통수신기가 독기에 녹았습니다. 먹통입니다.”

12조에 홀로 남은 연방군 소속.

땀을 뻘뻘 흘리며 드론을 조작하던 항공대의 부사관이 통신기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드론마저 방금전의 습격으로 다 부서져 한 기밖에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끼기긱—

북부 원자력 발전소 근처는 방사선과 방해전파의 영향으로 군전용 통신기가 아니면 오작동할 우려가 크다. 넷을 이용한 통신 역시, 신경회로가 꼬여 뇌가 박살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자제해야한다.

이윽고.

“다른 후발대 조가 당한듯 하고, 통신도 힘들다.”

매화검수 천무연이 조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래서 잠시 임무를 미뤄두고, 편제의 선발대 열개 조나 본대와 합류해 안전을 도모하려한다. 이견있나?”

당연하게도 이견이 돌아올리 없었다.

적어도 8레벨급의 조장이 시체가 되었다는 말은 주변의 상황이 녹록지 않다. 풀어 말하자면, 감당키 힘든 존재가 근방에 있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온마아파트 단지에서 조용히 빠져나온 12조의 조원들은 대로변을 빠르게 주파하며 북부 원자력 발전소로 향하려 했으나—

그들은 얼마 가지 않아 강대한 요기를 느꼈다.

콰앙—!

확연히 느껴지는 살기짙은 요기와 거대한 총성.

후발대의 다른 조가 어떤 존재와 격렬한 전투를 벌이는 중이 분명했다. 굉장히 급박한 총성과 비명이 근방에서 들려왔다.

가장 먼저, 레반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

허나 조장 천무연은 반대의 의미로 고개를 저었다. 정한대로 선발대나 원자력 발전소로 직행했을 본대와 합류해야 했다. 당가의 각주까지 당했을진대 뒤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레반의 생각은 천무연과 달랐다.

저 거대한 총성의 정체를 알고 있었으니.

‘13조 조장 슬레모킨, 마나 미사일인가.’

그녀가 6위계 마법을 사용할 정도면 꽤 몰려있다는 뜻이다. 레반은 품속에 넣어둔 에센스들과 나뭇대를 만져 마음을 가라앉히며 천무연을 설득했다. 사실 거절당하면 혼자서라도 그녀를 도우러 갈 생각이었다.

“마탑의 8레벨 마법사입니다. 조장급 강자 한 명이라도 더 살려서 가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

평소의 천무연이었다면 가차없이 거절했을 것이다.

허나 지금까지 레반을 보아온 그의 판단은 빨랐다.

저 강직한 눈빛, 어차피 멋대로 움직일 사내였다.

어느쪽을 선택하든 망설일 시간이 없음에야-

“알겠다. 잘 따라붙도록.”

결국 매화검을 뽑은 천무연이 앞장서 전투중인 곳으로 쏘아졌다. 초절정 경지의 고수가 보이는 쾌속한 경공, 조원들이 그 뒤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오로지 레반만이 천무연의 뒤를 바짝 쫓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이 움직이자마자 강대했던 요기가 씻은듯 사라지고, 슬레모킨의 기운이 오히려 천무연과 레반쪽으로 가까워지나 싶더니.

“야!! 빨리 뒤돌아!!”

느닷없이 13조 조장, 슬레모킨이 건물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청록빛 괴물을 탄 채 미친듯 질주하며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헌데, 레반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해야 했다.

“······.”

펌프액션 샷건을 단단히 받치고 있어야 할 슬레모킨의 왼팔이 어깨 밑으로 축 늘어져 있었고, 항상 그녀의 곁을 지키던 청록빛의 괴물도 상태가 이상했다. 이빨이 늘어져 있어야 할 얼굴의 반쪽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스무명 가까이 되어야 할 슬레모킨의 조원도 단 두 명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모두 송장이 되어 괴물의 어깨 위에 엎어진 채였다.

13조는 조장을 포함해 세 명만이 겨우 살아남았다.

또한 슬레모킨의 두 팔에서는 청록빛의 마력이 빛나고 있었다. 마탑주 일레힌 포이체카에게서 부여받은 마력까지 끌어 사용한 듯 보였다.

“망할!”

빠르게 질주하던 슬레모킨은 13조의 곁에 이르자 냅다 욕부터 뱉었다. 그러고는 조금 안심한 얼굴로 농담을 던졌다.

“너희 덕분에 살았다. 결혼도 못하고 죽을 뻔했네?”

“살아는 있나.”

뒤돌아 슬레모킨과 나란히 달리게 된 레반이 엎어져있는 두 조원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슬레모킨이 표정을 지우고는 말했다.

“응, 본대와 최대한 빨리 합류해야 해. 요기를 일정 수준 이하로 조절하는 걸 보면, 본대는 부담스러워 하는게 틀림없어.”

그 뜻모를 소리에.

“잠깐, 지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달리던 조장 천무연이 눈을 굴리며 조심스레 물었고.

철컥- 남은 한 팔로 꽤나 힘겹게 샷건을 장전한 슬레모킨이 답했다.

“녹량백량, 발전소가 아니라 이 근처에 있어. 우리보다 뒤에 있던 조는 전부 손도 못 써보고 당했을 거야. 방금까지도 날 따라오다가 너희들이 나타나니까 잠깐 사라졌어 지금.”

“······.”

“그리고 녹량백량 말고도, 뭔가 더 있는 것 같아. 본대에 알려야해.”

“······!?”

그 말에 천무연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슬레모킨은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마탑의 중요 구성원들에게 허락된 마탑주의 마력. 청록빛의 마력을 사용하며 마탑주에게 긴급하게 지원 요청을 보내는 중이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덕분에 조원들도 못 지켰고······.”

곧이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덧붙인 슬레모킨이 쓰게 웃었다.

“그러니까 너희도 더 빨리 달려. 본대 아닌거 뽀록나면 다 죽는단다 우리.”

그렇게 온마 아파트의 근처에서 합류한 12조와 13조의 생존자들은, 편제의 본대가 있을 북부 원자력 발전소로 급히 쏘아졌다.

* * *

한편 그시각.

“파악된 9레벨 개체가 몇 마리라고?”

“총 넷입니다.”

“8레벨이 둘?”

“예. 그렇습니다.”

“진공진인의 칼에 서쪽에 있는 9레벨 네임드 ‘촌장’ 이 죽었다. 라그나로크 시티에서 파악된 언데드중, 가장 강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개체라며.”

“예.”

연방군이 준 정보에 따르자면 남쪽에도 9레벨 한 마리, 그리고 8레벨 한 마리가 있어야 했다.

추정 9레벨급, 북쪽의 ‘녹량백량’

추정 9레벨급, 서쪽의 ‘촌장’

추정 9레벨급, 남쪽의 ‘바만차’

추정 9레벨급, 위치 미상의 ‘자굴라’

추정 8레벨급, 에센서와 오점악.

“서쪽의 촌장은 죽었다 치고, 그럼 나머지는 전부 어디에 있지?”

“······.”

라그나로크 남부를 이 잡듯이 뒤졌음에도 9레벨급 개체 바만차의 요기를 발견하지 못한, 남부 수복군 편제의 수장.

“아무리 요기를 숨겼다고 해도 이건 남부에 없다고 보는게 맞아. 어찌어찌 장벽 밖으로 도망쳤대도 바깥에서 포위 섬멸을 맡은 편제가 진작 발견했어야 해. 적어도 아직 시티 안쪽에 있다는 소리인데···.”

십이제, 로라 마르티네즈가 입을 열었다.

“흠, 어디서 네임드 새끼들이 연합이라도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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