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퓨전펑크의 전생자-80화 (80/157)

#80화. 라그나로크 시티 수복전 2

#80화.

3기계화보병사단 편제의 주축.

9레벨 초인 셋이 포함된 핵심 궤멸조는 라그나로크 시티 장벽에서 원자력 발전소까지 일직선으로 돌파했다.

그들은 작전시작 고작 한 시간 만에 라그나로크 시티, 북부 원자력 발전소에 당도했다.

발전소 부지 앞에 선 당명이 인상을 크게 찌푸렸다.

끼기기긱—

끼기기기기기기긱—

“시끄럽군.”

방사선 입자를 파악해 경고하는 계수기가 아까부터 굉장히 시끄럽게 반응하고 있다. 이 주변이 극심한 방사능 오염 지대라는 뜻. 평범한 인간이라면 진즉에 쓰러졌을 텐데도, 편제의 일원들은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

“시작합시다.”

이윽고, 미끼가 될 연방군 보병 한 분대가 허리에 얇은 와이어를 감고는 칠흑같이 어두운 원자력 발전소의 출입구로 진입했다.

뚝···뚝···

그 병사들은 모두 몸에 큰 상처가 나있었으며, 따뜻한 피를 바닥에 뚝뚝 흘리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피의 색감은, 신기하게도 밝은 청색이었다.

그렇게 병사들이 진입한 뒤, 일단의 시간이 지났다.

안에서는 아무런 소식도, 소음도 없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3사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이익—

지이익——

뒤이어 연방군의 정예 병사들이 원전 안으로 들어간 병사들의 허리를 감고 있던 와이어줄을 줄다리기하듯 잡아끌자, 허리 밑으로 하반신만 남은 시체들이 줄줄이 딸려왔다.

당명이 직접 그 시체의 혈액을 손가락으로 찍어 무언가를 확인했고,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건 아니오.”

그러자.

눈에 생기가 없는, 다른 병사들이 다시금 투입되었다.

그들도 똑같이 허리에 와이어 줄을 매달고 들어갔다.

하지만 결과는 이전과 비슷했다.

발전소 안에서, 무언가에 잡아먹혀 하반신만 남은 병사의 사체들이 낚싯줄에 걸린 물고기처럼 줄줄이 딸려왔다. 덕분에 바닥은 피로 흥건했고 급브레이크를 밟은 타이어의 스키드 마크처럼, 푸른색의 혈액이 바닥에 계속 그어졌다.

적어도 한 소대 이상의 연방군 병사, 그러니까 30명이 넘는 미끼들이 발전소에 진입해 목숨을 잃은 시점이었다.

당명은 남청색 빛을 내는 기계벌레들을 소맷단 속으로 회수하더니, 꺼림칙한 얼굴을 하고는 단정지어 말했다.

“녹량백량은 이 안에 없소.”

“확실한 겁니까?”

“병사들의 피에 섞은 독을 보았다면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있었을 거요. 장담할 수 있소.”

“···그렇군요.”

“장군, 이게 어찌 된 일이오? 분명 연방군이 안쪽에 있는 것을 직접 확인했다지 않았소.”

주름진 눈가를 좁힌 당명이 사단장을 노려봤다.

녹량백량이 북부 원자력 발전소 내부에 없다.

그 말인즉슨-

“······후, 후발대의 조와 통신이 끊겼습니다.”

저 뒤쪽에서 들려온 말이었다.

방사선 방호복을 입고있던 한 군인이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특임항공대 소속의 장교였는데, 그의 얼굴은 발전소 입구 바닥의 피보다도 더 새파래져 있었다.

3사단장이 냉랭한 음성으로 물었다.

“몇조인가.”

“그, 그것이.”

장교가, 파래진 입술을 벌벌 떨며 대답했다.

“14, 16, 17, 18, 19, 20조. 총 여섯 개 조와의 통신이 끊겼습니다.”

“······.”

그 장교의 말에 사방이 고요해졌다.

* * *

후발조들과의 통신이 일시에 끊겼다.

그것도 자그마치 6개나 되는 조와의 무선통신이.

“하, 하지만 15조와는 아직 통신이 양호합니다. 그런데······.”

그 장교의 말끝이 흐려진다.

당명은 예상했다는 듯,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를 다그쳤다.

“어서 고해라! 뭐라 하더냐.”

그러자 장교가 몸을 벌벌 떨며 말했다.

“······그게. 그게 말입니다. 한가지 얘기만 반복합니다. 한 가지 얘기만 반복하는데. 그러는 중인데······.”

“무엇이든, 15조의 조장이 하는 말은 아니겠군.”

무표정한 표정으로 뚜벅뚜벅 걸어 장교의 앞까지 다가온 당명이 시커먼 손을 내밀었다. 장교가 몸을 흠칫 떨며 헤드폰처럼 생긴 무선통신기를 내려놓았다. 방사선과 전파방해에도 통신기는 무언가를 연신 토해내고 있었다.

뿌드득.

당가의 원로, 당명이 헤드폰 한쪽을 부서질 듯 잡더니 귀에 가져다댔다.

그러자 앵무새처럼 반복되던 무선통신기의 통신이 당명의 귓전에도 흘러나왔다.

【 ······네놈은 당문의 수치다······당문에 네놈 같은 머저리는 필요 없다······정말 그렇게 생각해서 나를 내쳤나······? 내가 직계보다 뛰어난 오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 아니라······? 헛소리······너희도······이 썩어버린 시체보다도 역겨운 당문의 후인들이 내는 비명, 한 번 들어보지 않을래? 】

【 끄흐으으으으으—— 】

구드드득.

당명의 손에, 무선통신기가 녹아내렸다.

“다른 이들은 모르고 있을 거요.”

이마에 깊은 주름이 가득 잡힌 당명이 이제 어쩔 거냐는 표정으로, 이 편제의 사령관인 3사단장을 노려봤다.

겉으로 뿜어내지 않았으나-

끔찍하리만치 무거운 독기가 담겨있는 안광.

그럼에도 3사단장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즉시 시티를 빠져나가 장벽 밖의 산동악가, 흑색 마창병과 합류해 다시 찾아올 겁니다. 항공대대의 드론들이 최대한 흩어진 조를 불러 모아 규합할 겁니다.”

시작부터 단추를 잘못 채웠으니, 안전하게 퇴각해 세력을 규합한 뒤 돌아오자는 뜻이었다.

“불가.”

그러자 뒷짐을 진 당명이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당가의 정예들이 현재 각 20개 조에 나뉘어 편성되어 있었다. 한명 한명이 당씨 성을 받은 정예들이다. 헌데 그들을 뒤로하고 몸을 보중하자는 말이 아니던가.

“시작부터 일이 틀어졌으니 후발대를 여기에 두고 퇴각하자는, 그것이 사단장께서 일전에 말씀하신 지휘요?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도망이라는 단어를 강조한 당명이 차게 웃으며 3사단장을 흘겼다. 허나 공격적인 당명의 추궁에도 인상을 굳힌 3사단장은 단호하고 냉막하게 말했다.

“지휘관은 접니다. 따라주셔야 합니다.”

“여섯개 조다.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나?”

“너무도 잘 아니까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아직 죽지 않았을 겁니다.”

“어찌 이리도 답답할 수가 있나. 본대를 피해 후발대를 노린 것이 아닌가. 이미 일은 벌어졌네. 부정할텐가?”

“······.”

툭.

군모를 벗어 내려놓은 3사단장이 고개를 저었다.

상대는 일반적인 들짐승이 아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하며 머리를 싸맬 시간에,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사태라 생각하고 다음 행동을 염두에 두어야한다. 혼란을 즉각 수습하고 억지로라도 이성적으로 굴어야한다. 세력의 수장들도 알고있을 사실이다.

“원로님, 놈이 노린 것은 이러한 분열이 아니겠습니까. 15조의 생사는 불분명한 것이 맞으나, 다른 후발조들은 통신만 되지 않을 뿐 멀쩡히 임무를 실행하며 생존해있을 수도 있습니다. 불확실한 정보에 지휘권마저 무시하고 작전을 방해하시겠습니까? 작전이 시작된 지 이제 두어 시간입니다.”

“하다 마다. 못할 것은 뭐냐? 나는 지금껏 그리 살아왔다.”

“······.”

저번과 다르게, 이번에는 당명도 쉬이 물러서지 않았다.

메가콥 사천당가를 지배하는 당문 원로원에서도 입지가 있는 거물. 그는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여본 적이 없는 무인이다.

그것도 이번 수복전에는 당가주로부터 전권까지 위임받아 참가했다. 당명의 손에 가문 정예들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판국. 그것이 당명의 신경을 건드려 더욱 예민하게 만들었다.

“원로님, 감정을 추스르고 흥분을 가라앉히셔야 할 때입니다.”

“녹량백량, 그놈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게 나다. 필시 당가의 직계들을 향한 열등감과 결핍이 있을 터. 면식이 있는 이 노구가 직접 나선다면 놈도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리된다면 그대의 말처럼 가인들을 버리지 않고도 능히 사냥할 수 있을 것이다.”

3사단장과 당명의 힘싸움이 길어졌다.

“원로님, 그럴 힘이 있다면 차라리 흩어진 다른 후발조들을 지금이라도 찾아 집결시키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여기는 라그나로크 시티 안입니다. 놈의 세상이란 말입니다.”

“군은 핵 투발 시점마저 숨기지 않았더냐! 개방조차 수복전에서 제외하고, 당금의 정보는 죄다 연방군에서 독점하고 있지! 눈 딱 감고 말판에 서주었더니 이제 아주 졸개로 보는구나.”

“···군 보안상의 이유로 그리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작전의 세부 계획이란 언제든 변경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것이 군의 방식입니다.”

촤르륵.

당명이 거칠게 허릿대를 풀었다.

“허면 군은 계속 하던대로 보안에 신경 쓰도록 해라. 나는 가인들을 보중해야겠다. 그대의 말을 믿고 따랐다가 그 반푼이에게 호되게 당했으니, 이제부터는 당문이 직접 전면에 나서 결자해지할 것이다. 본노도 네임드 사냥은 지겹도록 겪어보았으니.”

“······사령관으로서 절대로 허락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월권행위입니다.”

3사단장은 차마 하극상이라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월권행위로 순화해 입을 열었다. 지휘 체계상으로는 연방의 장군이 가장 상급자이고 세력의 수장들은 참모급에 불과하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곧, 격노한 당명이 음성에 강대한 공력을 담아 고함쳤다.

“월권? 이런 오만방자한 놈을 보았나—! 허면 그대의 말대로 가문의 주축들이 죽어가는 걸 도망치며 무력하게 지켜보란 말이더냐—!”

“······.”

독인의 노기가 안개처럼 짙게 내리깔렸다.

그간 공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할 말 다 하던 연방의 장군 3사단장마저도, 격노한 독인의 기세 앞에서는 한 수 접을 수밖에 없었다. 사단장의 입이 굳게 다물렸다.

심지를 굳힌 당명이 모두의 앞에서 선언하듯 말했다.

“본노는 당가주의 권한을 모두 위임받았음이야. 죽어도 되는 생체기계 따위를 지휘하는 군문의 뜻과 우리 당문의 뜻은 다르다. 가인을 지키지 못하는 주인은 세상천지에 없다. 또한 본노의 자비는 여기까지이니 감히 토달지 말라.”

입을 닥치란 얘기였다.

“······.”

지휘권이 단숨에 토막나버렸다.

작전 시작 반나절도 되지 않아서.

녹량백량 궤멸작전의 주축이 되어야 할 당가의 수장이 군의 지휘를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작전을 진행할 것임을 시사하자.

화산의 장로 선운자, 루 막슨의 회장, 마탑주등의 수장들이 복잡해진 면면으로 헛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기에, 저 당명의 격노도 아주 이해못할 것은 아니었다. 3사단장의 지휘를 따른다면 후발대의 조로 묶여있는 화산과 루막슨, 마탑의 인원들 역시 장기판의 말처럼 허무하게 죽어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죽어도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는 생체기계들이 아니었다.

고요해진 장내에서, 궤멸조의 인물들이 시선을 교환했다.

* * *

마치 산더미처럼 쌓인 사체.

12조 조장, 천무연이 질린 얼굴로 말했다.

“······이 단지는 이것으로 끝이군.”

“그러게요.”

그런 천무연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온마 아파트에서 튀어나온 시체들을 단신으로 쓸어버린, 사체들의 피로 범벅이 된 레반이 어디선가 금창약을 꺼내어 치덕치덕 발랐다.

그러던 그 시점.

— 우, 우릴 구하러 온 겁니까?

온마 아파트 114동 앞에서 웬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파트의 정문 경비실 안쪽 어딘가에서 들리는 기뻐하는 인간의 목소리.

모두의 귀에 들릴 만큼 또렷한 음성과 함께, 경비실 창문 위로 눈물을 흘리는 두 눈이 보였다.

— 사, 살았다! 살았어!

허나 곧.

틱!

데구르르.

한 연방군 보병이 그 안으로 수류탄을 까 넣었다.

그러자 그것의 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았다.

온마 아파트 단지의, 마지막 시체였다.

잠시 뒤.

12조는 아파트 117동의 한 주택에 모여 휴식을 취하며 간단한 요기를 했다.

조장 천무연은 가부좌를 틀어 운공을 했고 루 막슨의 마법사는 회로를 식혔다. 정찰 기계들을 모두 회수해 배터리 잔량을 확인하고 재정비한다.

끼끼익—

주택 안임에도, 방사능 입자 계수기는 간헐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허나 여기에 일반인은 없기에 아직 이 정도면 버틸만한 수치다.

꿀꺽.

수통의 물을 마시던 당령이 레반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하죠? 힘을 뽐내고 싶은가요?

“······.”

”여기서만 수백 마리는 죽였겠어요.”

레반은 아파트 단지의 중심에서 팔을 베어 혈향을 퍼뜨리고, 검을 뽑아 몰려드는 시체들을 야차처럼 베어냈다.

마치 다른 이에게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이.

그저 실전에서 빨리 구르며 정기신의 균형을 잡아보려는 레반이었으나, 다른 이들의 눈에는 선하고 이타적인 고수이자, 야차처럼 시체를 베어넘기는 훌륭한 조원으로 보였으리라.

금창약을 바른 레반이 대강 피를 닦으며 입을 열었다.

“뭐, 별 거 아닙—”

그때였다.

급히 금창약 주머니를 내던진 레반이 찰나간 당령의 팔목을 붙잡더니, 뒤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주르륵.

주르르르륵.

그들이 휴식을 취하던 아파트의 천장이, 마치 염산에 닿은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줄줄 녹아내리고 있었다.

절절하고 숨이 턱 막히는 독기운과 함께.

그것을 마주한 레반이, 황망하게 입을 열었다.

“······위층에 누가 사는지 아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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