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라그나로크 시티 수복전 1
#79화.
— 시발.
— 새끼.
— 빌어먹을.
— 썅.
로키의 집결지, 베이스 캠프에서부터 시작해 라그나로크 장벽이 어렴풋이 보이는 현재까지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 4선발이다.
“시발! 쉴 시간도 제대로 안 주고. 이게 뭐야?”
“빌어먹을 연방군 새끼들.”
“썅, 나는 화장실에 있다가 끌려 나왔다고.”
“핵폭탄을 진짜 떨어뜨리다니. 이건 미쳤어.”
라그나로크 서쪽 1km 부근 전술핵 투발 성공.
놀랍게도, 슬그머니 했던 예상이 맞아 떨어졌다.
라그나로크 남서쪽 2km 부근에 나흘 뒤 떨구겠다던 연방군의 전술핵폭탄은, 베이스 캠프 가건물들의 불이 꺼진 금일 새벽, 곧바로 다른 지점에 투발되었다.
연방군의 수복 작전은 모든 세력이 로키에 집결한 그날 즉시 시작된 것이다.
전술핵이 투발되어 라그나로크의 서쪽 장벽 일부분이 녹고 무너져 내렸다. 로키의 주둔지에 사이렌이 울렸고, 격납고에 있던 수송기들과 캐리어에 불이 켜졌다.
눈에 보이는 모든 이들이 저마다의 욕설을 뱉으며 연방군 사령부 씹어댔다. 처음부터 거짓말이나 일삼는 개놈들이라며.
아무튼 편제의 작전통제권과 지휘권은 세력과의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 연방군 사령부에서 정해준대로 3사단장 혼자서 틀어쥐고 있었다. 사단장의 통제에 따라 각 임무를 받은 조가 여러개로 나뉘었다.
4개의 세력이 묶여있던 편제는 조 단위로 다시 잘게 나뉘었다.
휘이이이—
와중에 나는 비교적 후발대로 편성받았고, 작전이 시작되자마자 새로 배정받은 조원들과 함께 연방군 수송기 위에 탑승해 있었다.
그리고.
“형님, 이거 빌어먹을 군바리 새끼들이 구라깐 거잖습니까.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한시도 쉬지 않는 촉새같은 주둥이의 소유자도 나와 같은 수송기에 탑승해 있었다.
작전개시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자마자 바깥으로 끌려나와 수송기에 태워진 루돌프놈이, 안전벨트를 자기 거시기보다도 더 꽉 붙잡고 있다.
루돌프놈은 산뜻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여긴 저희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습니다. 형님.”
“어쩌라고.”
“조종사부터 처리한 다음에 수송기 쌔벼가지고 따뜻한 정크타운으로 돌아가시죠. 저 가상현실 VR로 비행기 조종 많이 해봤습니다.”
이제는 군 수송기를 상대로 하이재킹을 하자고?
몇 번 벨트를 끊고 던져버릴까 고민하다가 겨우 참은 참인데, 또다시 나의 인내심을 자극하는군.
찰칵.
나는 안전벨트를 풀며 입을 열었다.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다. 그만하자.”
“······네?”
물론 내 안전벨트가 아니라, 놈의 안전벨트였다.
달마도 9년밖에 버티지 못한 면벽수련을 10년이나 버텨낸 나조차도, 참 신기하게 이 놈이 떠드는 꼴은 더 못 들어주겠다. 저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 틀림없었다.
수송기의 측문을 열자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이제 널 놓아주마. 내려서 정크타운으로 가라.”
“······어.”
“거기서도 오래오래, 씩씩하게 잘 살아가야 한다.”
“잠시만요.”
찰칵.
그러자 귀신같이 금세 눈치를 되찾고 조용해진 루돌프놈은 안전벨트를 조용히 꽂고는, 갑자기 딴 소리를 했다.
“오늘 날이 좋네요? 하늘도 되게 밝고.”
“다 조명탄이잖아 새끼야.”
수송기 바깥은 해가 떴을 때보다 더 밝았다.
사방으로 솟구친 조명탄들이 드넓은 지역을 환히 비추고 있고, 수송기 밑 지상으로는 시티넷 뉴스에서나 봤던 연방군 주력전차들이 대열을 맞추어 진군한다.
구구구궁—
만성적인 연료 부족과 탄약물자 부족으로 평소에는 운영할 엄두도 못낸다는 전차들이, 흙과 살덩이로 이루어진 대지를 궤도로 짓밟고 유린한다.
연방군이 이번 수복전을 빵빵하게 지원해준다는 약속은 사실이었다. 시티넷에서 유명했던 우스갯소리가 있다. 연방 최후의 도시 하나가 남기 전까지는, 연방군 전차부대는 절대 기동하지 않을 거란 말.
그 우스갯소리가 드디어 오늘로써 종지부를 찍는군.
세상은 조명탄의 빛으로 밝은데 발밑으로 꾸물대는 땅은 블랙홀처럼 시커맸다.
나는 저 꾸물대는 땅이 정말 땅인 줄 알았다.
헌데, 저 시커먼 것들이 전부 좀비란다.
같은 조에 편성된 누군가가 말했다.
“못해도 만 마리는 넘겠네. 서쪽으로 몰렸을 텐데도 꽤 많아. 아니면 저 구름을 보고 도망오는건가?”
“······.”
고개를 들자 무언가가 보였다.
투발된 전술핵이 세상에 남기고 떠난—
거대한 버섯구름이 저 먼 천공에 떠있는 것이다.
마치 신계의 거인이 지상을 굽어보는 듯한 모양새.
세상이 망할 불길한 징조나 세계 종말의 날처럼 보였다. 사실 내가 좀비라도 저런 걸 목격하면 반대쪽으로 튀고 싶긴 하겠군.
“라그나로크 시티. 이름 한 번 잘 지었다.”
내가 그렇게 감탄하던 그때.
나란히 비행하던 측편의 수송기들에서 적어도 수백명의 인원이 불쑥 밑으로 뛰어내렸다. 별다른 낙하산도 없이. 블록버스터 영화라도 한 편 찍는 줄 알았다.
안력을 돋궈 자세히 보자, 흉흉한 단창을 들고 있는 일단의 무인들과 드론처럼 생긴 말을 타고 있는 창기사들이었다.
더해서 빛나는 방패와 긴 창을 들고있는, 중무장 병사들도 수송기에서 낙하해 지상방진을 형성했다.
북부 원자력 발전소 탈환과 네임드 궤멸임무를 부여받은 제3 기계화보병사단 편제와 함께, 라그나로크 장벽 북쪽 일대의 시체 섬멸과 진입 지원을 맡은 또다른 편제.
악가창법으로 유명한 산동악가(山東岳家).
발할라 흑색 마창병대.
연방군 8전차여단.
슬슬 고도를 낮추는 수송기들로 관심이 끌리지 않게-
미리 수송기에서 낙하한 산동악가의 무인들과 드론 마창기병들의 창날이, 꾸물대는 좀비들의 몸뚱이를 죽처럼 갈아버리며 모든 주의를 집중시키고 공격을 받아낸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팔랑크스 중장보병처럼.
푸욱! 푸욱!
흑색 마창병대의 지상 밀집대형은 빛나는 방패로 몰려드는 좀비를 밀어내고 꼬챙이같이 긴 창으로 찔러 죽였다. 그들의 앞에 좀비의 사체가 산처럼 쌓여간다.
동시에 전차여단의 포신에서 일시에 뿜어진 레일건 탄자들이 땅과 좀비를 말 그대로 일직선으로 갈아버리며, 라그나로크 시티로 가는 왕의 길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전율적인 광경을 보던 나도 무의식적으로 광선의 검병을 매만졌다.
어쩐지, 슬슬 광선검이 등장해야만 할 것만 같은 스케일이라.
* * *
라그나로크 시티 내에 확인된 네임드 개체는 여섯.
추정 9레벨급, 북쪽의 ‘녹량백량’
추정 9레벨급, 서쪽의 ‘촌장’
추정 9레벨급, 남쪽의 ‘바만차’
추정 9레벨급, 위치 미상의 ‘자굴라’
추정 8레벨급, 에센서.
추정 8레벨급, 오점악.
적어도 9레벨 4마리에 8레벨 2마리.
확인되지 않은 놈들까지 더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연방군과 세력들이 끌고온 9레벨 이상의 강자가 열 명이 넘는다. 9레벨급 좀비마다 비슷한 경지의 초인들이 배수 이상으로 붙을 것이다. 생사결을 펼치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냥과 시티 수복이 목적이니까.
게다가 ‘서쪽 촌장’ 의 영역인 서쪽 장벽 근처는 전술핵을 처맞고 시작했다.
그리고 그쪽으로 태산북두, 무당의 진공진인이 포함된 세 개의 무력편제와 연방군 전력이 몰려갔다. 자그마치 십이제의 수좌가 갔으니, 서쪽을 영역으로 삼은 9레벨은 반드시 뒈질 것이다.
“이상입니다.”
——그것이 군의 상황 브리핑이었다.
어느덧 시티 장벽이 발 밑으로 보인다.
도시를 방어하는 광역마법진은 힘을 잃은지 오래.
발할라 마창병대와 기갑여단 전차부대, 산동악가 무인들의 강력한 지원 아래. 수십 대의 수송기 편대는 성공적으로 북쪽 장벽을 넘어 시티 외곽에 착륙했다.
녹량백량 사살을 맡은 9레벨급 수장 셋과 루 막슨의 회장은 가장 무력이 강력한 본대이자 핵심 타격 궤멸조. 그들은 이미 숨 돌릴 새도 없이 북부 원자력 발전소로 쏘아졌다.
그리고 핵심 타격조를 제외한 다른 조들은, 8레벨과 7레벨로 이루어져 선발대 10개 조, 후발대 10개 조로 나뉘었다. 원자력 발전소 근방의 시체를 섬멸하고 기타 특이사항을 수색한 뒤 본대와 합류할 것이다.
레반이 소속된 곳은 12조로, 비교적 후발대였다.
루 막슨 1, 당가 1, 마탑 2, 화산 2.
화산 그룹의 8레벨 검수가 조장을 맡고, 나머지 7레벨 다섯이 주축이 된다. 거기에 특수작전항공대 소속 부사관 한 명과 9명으로 구성된 보병분대가 붙었다.
마탑주에게 허락받은 레반의 자매품으로 아힘사와 밴스까지 포함하니, 거의 한 조당 20명에 가까운 전력.
“아, 이 놈은 미끼니까 별 신경쓰지 마십시오.”
레반은 척 봐도 쓸모없어 보이는 밴스를 데리고 있기에 약간의 눈총을 받았으나, 일전의 비무로 인해 레반을 알아본 조원들 덕에 별 문제는 없었다. 루돌프는 미끼, 고기방패 역할이라고 친절히 설명하니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장벽 근처에 모인 12조의 구성원들은, 몇 분간 서로의 인상착의를 익혔다.
이윽고.
“화산의 천무연이오.”
초절정 경지의 짧은 머리 매화검수, 12조 조장 천무연(千珷聯)이 특작항공대 소속 부사관과 상의를 거쳐 입을 열었다.
“설명 듣고, 움직이겠소.”
“예, 여기서 더 안쪽으로 7km는 들어가야 원자력 발전소의 부지입니다. 아파트 단지를 끼고 대로변으로 이동하는 루트입니다. 자칫하면 노후화된 건물이 무너지거나 발견하지 못한 언데드가 튀어나올 수도 있으니, 벽면에는 붙지 마십시오. 물론 네임드 개체의 영역인만큼, 7레벨 이상의 언데드는 그리 흔하지 않을 겁니다.”
북부 원자력 발전소와는 꽤 거리가 있었다.
하기야, 시티 장벽과 가까운 곳에 떡하니. 그리도 중요한 시설을 지어놓았을 리가 없었다.
12조에게 주어진 임무는 대로변 루트로 약 7km를 이동하며, 눈에 띄는 시체들을 섬멸하고 핵심 본대와 합류하는 것.
“그럼, 출발합시다.”
* * *
텅! 텅!
전신슈트에 군화와 고글, 소음기 달린 소총까지 풀장착을 한 연방군 보병들은 탄을 아끼지 않으며 분발했다. 총탄이 먹히지 않는 놈은 다른 조원들이 나섰다.
더해서 항공대 부사관이 조작하는 무소음 소형드론들이 공중에서부터 정찰과 감시를 보조하며, 12조는 무탈히 나아가고 있었다.
루 막슨 마법사의 마공학 구체들이 버려진 차량과 온갖 잔해들을 치웠고, 텅텅대는 소음기의 총성이 폐허가 된 도심에 울려펴졌다.
그러다 곧.
“100미터 전방부터 대단지 아파트가 있습니다.”
라그나로크 시티 북부.
대로변을 따라 움직이는 12조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버려진 아파트 대단지였다.
근방에서 가장 많은 대지를 차지하고 있는 곳.
아파트 앞으로, 수많은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 북부 원자력 발전소 추가건설 절대 반대 — 라그나로크 시티 온마(溫魔)아파트 재건축조합 주민 일동. ]
[ 주민정서 반하는 발전소 추가 건설 결사반대! 라그나로크 시장은 각성하라! 이러다 아파트 주민들 다 죽는다. 추가 건설 결의안 채택이 바로 주민 종말의 날. ]
[ 경 - 제 487회 주민총회 개최 - 축 ]
[ 재건축 추진위원장 해임을 위한 주민 총회 개최 ]
[ 촉수엄금, 유치권 행사중 ]
[ 북부 원자력 발전소 추가 건설 환영합니다 — 라그나로크 시티 온마(溫魔)아파트 리모델링 조합 주민 일동. ]
뼈대만 남은 전신주와 아파트 외벽 사이.
찢어지기 직전의 현수막들이 아직도 붙어있다. 얼마나 강하게 붙였는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아힘사와 함께 조용히 주변을 파악하던 레반이 한숨을 쉬었다.
“여기도 아주 크게 지랄이 났었구만.”
“형님, 재건축이 대체 뭔데 저럽니까?”
“관심갖지 마라. 일 난다.”
현재는 주인이 없는, 페인트칠이 벗겨진채 버려진 아파트들이 흉물스럽게 늘어져 있다. 과거에는 라그나로크 시티 북부에서 끗발좀 날리던 아파트였다던데. 이제는 시티 자체가 망해버려 과거의 영광은 찾을 수 없었다.
아파트 단지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북부 원자력 발전소 근방은, 네임드 녹량백량의 영역으로 지능이 없는 약한 좀비들 뿐이었고, 12조가 목숨을 걱정해야할 만큼 강력한 개체는 없을 것이다.
허나 그렇다 해서 경시할 수는 없었다.
바삭.
발밑으로 바스라지는 유리 조각.
아파트 단지에 이르자, 당가의 한 무인이 가진바 능력을 마음껏 뽐냈다. 레반과의 일전 비무에서 하독까지 성공해냈던 당령이라는 여인이었다.
치르르륵···.
개미만한 당가의 사이버 기계벌레들이 지면과 건물 사이로 파고들어가 모든 구멍을 샅샅이 뒤지고 수색한다.
잠시 그러는 사이, 드론을 조작하던 부사관이 입을 열었다.
“언데드가 된 이들은 인간 시절의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인지, 서식지가 도시 안이나 근처로 한정되어 있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때문에 시티 수복에 선뜻 나서기가 힘든 것이지요.”
인간의 길을 버렸거나 잃은 이들이, 우습게도 인간이 쌓아올린 도시에서 살아간다. 더 이상 손길이 닿지않아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에서 말이다.
얘기를 듣던 레반이, 광선의 검집을 툭툭 건드렸다.
“그러면 저 아파트 안쪽에도 더럽게 많겠군.”
몇천 세대가 넘는 대단지 아파트. 저곳에 인간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는 변절자가 얼마나 많을 것인가.
“많아요. 적어도 백 마리 이상.”
대답은 당령에게서 나왔다. 벌써 단지의 정찰을 마친 기계 벌레들이 당령의 소매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어딘가에 잘못 들어갔다가 고장이라도 났는지, 처음에 풀어놓았던 벌레보다 양이 조금 적어졌다.
레반이 당령을 향해 물었다.
“총으로 죽이지 못할 놈도 있습니까?”
“그런 것 같네요. 강한 개체들이 꽤 있어요. 다 죽이려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은데······.”
장벽 밖이라면 몰라도 장벽 안에서는 소음을 최소화해 이동해야 한다고 했다. 소란을 일으켜 녹량백량이나 도시 내의 다른 강력한 좀비들을 자극하지 않게.
저 아파트 단지를 무너뜨리거나 박살낼 순 없을 터.
스르릉—
생각을 마친 레반이 경쾌하게 광선을 뽑았다.
조장 천무연과 당령은 의아한 얼굴이었다.
“갑자기 검은 왜 뽑아요?”
레반은 말없이 아파트 단지로 걸어들어갔다.
“······?”
레반이 연방의 시티 수복전에 참여한 목적.
실전을 통해 틀어진 정기신의 균형을 바로잡는다.
그러니까 금속덩이를 망치로 단조해 검을 만들듯, 이제 레반도 열심히 구를 시간이었다.
광선을 뽑아든 레반은 망설임없이 아파트 단지 중심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거걱.
그리고는 팔뚝을 길게 그어 자신의 피를 내더니, 공중에 뿌리고 마력으로 태웠다. 그러자 신선하고 짙은 혈향이 뭉게뭉게 퍼져나갔다.
이내.
쾅!
닫혀있던 아파트 현관문들이 순식간에 열리며, 인간 시절의 기억을 지우지 못한 주민들이 수십년 만에 부동산 임장을 온 방문자를, 아주 격하게 반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