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퓨전펑크의 전생자-76화 (76/157)

#76화. 로키 시티, 베이스 캠프

#76화.

로키 시티.

연방은 어느 세력의 구역 전체를 양도받았다.

힘으로 빼앗거나 협상한 것이 아니라 ‘선물’을 받았다.

연방 정부의 대대적인 라그나로크 수복전 공표 후, 로키 시티에서 끝없는 구역다툼을 벌이던 군벌 세력들은 이례적으로 합심하여 장벽 근처의 한 세력을 통째로 지워버렸다.

그리고 그들의 땅을, 연방군 앞에 넙죽 갖다 바쳤다.

선물로 드릴 테니 우리끼리는 건드리지 맙시다. 하며.

그리하여 8레벨급 강자가 이끌었다던 로키의 한 세력은 단 하룻밤 사이에 핏자국만 남긴 채 깡그리 지워졌고, 텅 비어버린 건물과 부지만이 남았다.

그 위에 세워진 것이 연방군 주둔지이자 베이스캠프.

— 착륙합니다.

며칠간 베이스캠프의 풍경은 몰라볼 정도로 바뀌었다. 본래는 군벌세력의 근거지로 칙칙한 빛만 뿜어냈을 곳이 이제는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시티의 중심가에서나 보던 네온 라인이 바둑판 모양으로 깔려 도로와 건물의 경계를 정확히 나누었다.

낡은 건물과 상가들은 연방의 공병부대에 의해 강제로 철거되었으며, 그 자리에는 격납고와 탄약고를 비롯한 조립식 가건물들이 차곡차곡 세워졌다.

베이스캠프는 연방군 부대들이 사용하는 기지 구역, 그리고 군이 아닌 자들의 구역으로 나뉘었다. 연방의 공문을 받은 기업등의 세력은 각 편제 별로 주둔지와 숙소를 배정받았으며, 그것 역시 바꿀 수는 없었다.

휘이이이—

수송기에서 내리자 면전으로 불어오는 강풍.

로키 시티의 베이스캠프를 천천히 둘러보던 레반의 눈에 가건물 수백 채가 오차 없이 주욱 늘어서 있는 것이 들어왔다.

보통 4개의 세력이 한 편제를 이룬다.

저 사람 백 명은 지낼 수 있을법한 조립식 가건물. 동서남북 방향에 하나씩 세워진 네 개의 건물은 회(回) 구조로 서로 마주보는 형태를 띠고 있었다. 저 회(回) 구조마다 한 편제가 들어가는 듯했다.

그리고 건물들의 중앙에는 연무장처럼 널찍하니 모래를 깔아둔 땅이 있었다. 마치 현대의 학교처럼.

다 같이 캠프파이어나 하라고 깔아준 것은 아닐 테고, 공놀이나 하라고 깔아둔 것은 더더욱 아닐 터.

그 익숙한 구조를 본 레반이 고개를 저었다.

“어서 치고박고 친해지라고 판을 아예 깔아 뒀군.”

만약 싸울 거라면 저 모래바닥에서 치고받으라는 뜻이다.

전장에 나가야할 아군끼리 실력을 믿지 못하거나 갈등이 생기는 것만큼 좆같은 일이 없으니, 그 전에 미리 몸을 풀어두라는 갸륵한 연방의 배려가 되시겠다.

출신과 도시가 모두 다르고 각자 개성이 강한 세력들이 강제로 한 편제 아래 묶였다. 그것도 죄다 자기 도시에서 어깨에 힘좀 주고 다녔던 놈들뿐. 마법계와 무림계는 역사적인 견원지간인데 전장에서의 상호보완을 위해 섞어 놓았으니···.

수복전이 시작되기 전에 이 주둔지에서는 별달리 할 일도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저 모래 연무장에서 벌어질 일은 뻔했다.

— 마법사가 그리 싸가지가 없다던데, 사실이었구나! 아주 죽여주마.

아니나 다를까, 온지 얼마나 됐다고 모래 연무장을 절찬리에 써먹는 이들이 나왔다. 웬 무인과 마법사가 연무장으로 날듯이 들어오더니, 서둘러 친해지기 위해 서로의 기운을 끌어 올렸다.

— ······더미는 뒤로. 나는 앞으로. 발은 위로.

— 주둥이가 그리 느려서 싸우겠냐?

모래 바닥을 밟고 총탄처럼 쇄도한 무인이 주먹을 내뻗자, 공력이 가득스민 권풍이 일었다. 쾌속한 주먹이 권풍을 갈랐다.

쾅—!

음성 영창을 하던 마법사의 얼굴이 뭉개지며 날아갔다.

모래 연무장 바깥으로 튕겨져 나가는 마법사의 신형을 확인한 무인은, 이두박근에 힘을 주며 부푼 근육을 과시했다.

팔에 퍼런 핏줄이 솟아나자, 무인은 핏줄에 입을 맞추고는 우렁차게 소리치며 광소했다.

— 크하하하! 이 몸 낙승!

마탑의 마법사들과 레반은 교분을 나누는 그들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 와중에 어떤 마법사는 쪽팔리게 무림계 놈들한테 처맞냐며 혀를 쯧쯧 차기도 했다.

“형님, 저쪽 편제는 벌써부터 지랄났네요.”

그 광경을 보던 루돌프, 밴스의 빨간 장미 문신이 사시나무 떨듯 부르르 떨렸다.

“그러게.”

레반이 별 대수롭잖게 답하자.

밴스가 기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 무인들한테 시비라도 걸리면 어떡하죠?”

“너도 좋은 외공을 익혔잖아. 이제 무인이다.”

“형님, 저 마탑 소속으로 왔잖아요.”

“그래도 자신감을 가지렴.”

“존나 쎈 마법사도 얼굴이 저렇게 뭉개졌는데요?”

밴스의 말에 레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얼굴 뭉개지는 거, 네놈이 봤다고?”

“당연한 거 아닙니까.”

거의 7레벨에 가까운 무인의 움직임이었다.

외공의 성취가 빠르다지만, 벌써 그 정도인가?

“피 안 나는 것도 봤냐.”

“예?”

“그 정돈 아니군.”

레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 멀리 튕겨져 날아갔던 마법사가 갑자기 무인의 뒤에서 유령처럼 나타났다.

그 마법사는 입을 놀려 영창을 완성시켰고.

— 너는 아래로.

쾅!

신나서 광소하던 무인이 바닥에 처박혔다.

무인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두 발목이 거꾸로 돌아간 듯 보였는데, 연방군 기지에 의무대가 있으니 서둘러 데려가면 괜찮을 것이다.

마법사는 형편없이 기절한 무인을 대충 연무장에 버려두고 자신의 가건물로 들어갔다.

그 가건물에는 소속 기업명이 적혀있었다.

『 콜라코 컴퍼니 』

콜라코.

마법계 시가총액 상위권에 늘 위치하는 대기업.

취급하는 상품은 콜라 독점과 자체 개발한 탄산음료.

레반은 흡족한 얼굴로 그 마법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콜라를 만드는 놈들도 왔군. 연방에 가장 필요한 존재지.”

“형님, 지금 콜라가 중요한 게 아니고요. 저 어떡합니까 진짜. 여긴 저같은 놈이 오면 안 되는 곳이잖아요.”

밴스가 계속 질척대자, 레반이 귀찮다는 듯 입을 열었다.

“돌프야, 무림계 놈들과 시비가 붙으면 연방군 소속이라고 해라. 관과 무림은 불가침이다.”

희망적인 조언에 밴스의 얼굴이 한층 밝아졌다.

“캬! 세상에 그런 게 있었습니까? 그거 다행이네요.”

“여기선 없을 수도 있다. 나도 잘 몰라.”

“······.”

그러나 금세 다시 어두워졌다.

“······형님이 억지로 데리고 오셨잖습니까. 책임을 지셔야 할 거 아닙니까. 딱봐도 저같은 좆밥은 살아남지도 못할 분위기잖아요!”

“아는척 말고 저 멀리 떨어져서 걸어라. 마탑이랑 관련 없는 것처럼 행동해.”

“아니, 제가 이런 대접 받으려고······.”

“시끄럽습니다.”

그때, 아힘사가 얼굴 피부를 와락 찌푸리며 말했다.

“······.”

동시에 목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에 밴스가 고개를 슬쩍 내리자, 어느새 실처럼 얇은 칼날이 목에 낚싯줄처럼 걸려있었다.

그간, 레반의 행동을 학습한 아힘사였다.

* * *

“네임드 녹량백량은 북부 원자력 발전소 주변과 발전소 내부를 근거지로 삼고 있습니다. 군은 놈이 발전소에서 머무르는 이유가 흘러나오는 오염수나 폐기 방사능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하고 있습니다.”

별 두 개가 달려있는 어깨 견장.

연방의 장군, 제3 기계화보병사단장의 설명이었다.

홀로그램으로 생성된 원자력 발전소의 내부 설계 구조도면이 입체적으로 일어나 허공을 밝힌다. 마치 실제로 그 공간안에 들어온 듯했다.

3사단장은 당가의 가건물 지하 한켠에 마련된 통제실에서 편제의 작전 계획을 브리핑하고 있었다. 사단장과 세력의 수장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렇게 이 작은 공간에 같은 편제를 이루는 마탑과 무림계 메가콥 두곳, 마법계의 수장이 한 자리에 모였다. 무림계 메가콥 두곳은 화경의 경지에 이른 무인들이 장문인과 가주의 권한을 각각 받아 참가했다.

9레벨. 사천당가의 원로. 당명.

9레벨, 화산 그룹의 장로. 선운자.

9레벨, 여섯 번째 봉우리의 마탑주. 일레힌 포이체카.

8레벨, 루 막슨 컴퍼니 회장. 루 막슨.

그리고 연방군 소장인 3사단장까지.

대단한 초인들이 한 자리에 모이자, 자리에만 앉아 있음에도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기백이 보통이 아니었다. 연방 장군쯤 되니 그 거물들의 앞에서도 꿋꿋이 말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녹량백량도 죽여야 하나, 목표는 무사히 원자력 발전소를 탈환하는 것이기에 무작정 포격을 쏟아부어선 안 됩니다. 탈환 후 시티에서 사용하는 전력 대부분을 담당할 곳입니다.”

3사단장은 설계, 구조도면의 한 곳을 짚었다.

“때문에 외부에서 발전소 포격은 불가하고, 이 입구를 통해 내부로 진입해 작전을 진행해야 합니다. 우선 기계화보병들이 앞장서 발전소 안으로 진입하고 진입로의 방해물을 정리할 겁니다. 그런 뒤에-”

그때, 당가의 원로 당명이 말을 가로챘다.

“녹량백량을 바깥으로 끌어내달라는 건가?”

“예. 끄집어내든 유인을 하든, 뭐든 좋습니다.”

“우리 당가라도 9레벨급 시체가 거미줄을 쳐둔 굴에 대가리를 들이밀 수는 없겠는데.”

“원자력 발전소의 입구는 오로지 한 곳입니다. 먼저 진입한 제 부하들이 희생양이 되어 녹량백량을 입구까지 유인할 겁니다. 거미줄은 연방군이 끊어두겠습니다.”

3사단장의 말에 당명이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어차피 그들은 전뇌 칩이 박힌 생체기계들 아니오?”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고 연방의 군인입니다. 명령에 의한 통제를 조금 더 잘 따르는 군인. 애석하게도 이번엔 미끼가 되라는 명령을 받아 그걸 담담히 실행에 옮길 뿐입니다.”

“장군께서는 웃기는 재주가 있군. 정녕 그것들을 인간이라 부를 수 있겠소? 인간의 향을 풍기는 고기 방패겠지. 연방은 고기 방패를 내밀며 생색을 내는데, 당가는 가인들의 목을 걸어야 하나?”

턱.

당명이 상황을 비꼬자 사단장은 연방군의 워터마크가 박힌 문서를 내밀었다. 연방 정부의 협조 공문. 3사단장의 세로로 길게 그어진 얼굴 흉터에서는 절절한 기운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미리 언질을 받으셨잖습니까. 이 편제의 지휘 권한은 제게 있습니다. 이 점 유의해 사령부 지시에 따라 협조해주십시오.”

“······.”

당명은 심히 불편한 기색이었으나, 토를 달지는 않았다.

‘쯧.’

연방군이 명목상 희생양까지 자처해가며 지휘, 통제권한까지 운운한다. 화산의 장로 선운자와 마탑주까지 다 보고있는 판국에 작전의 핵심인 당가가 뒤로 빠져 관망한다고 말하기에는, 차마 자존심 강한 당명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연방군 3사단장은 신중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9레벨급 네임드 녹량백량은 맹독과 산을 무기로 사용하며, 지능이 극도로 높습니다. 허나 여기 자리하신 분들 모두가 네임드 토벌전을 겪은 경험이 있으실 터라 괜한 걱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또한.”

3사단장은 당가의 원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녹량백량이 과거 ‘당문의 일원’ 이었다 해서, 손속에 사정을 두는 일은 없어야 할 겁니다.”

당명이 불쾌한 얼굴로 맞받아쳤다.

“당문? 직계도 아닌 떨거지였다. 문의 규율조차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나간 쓰레기가 어째서 당문의 일원이지?”

“아무튼 부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당가의 원로 당명과 3사단장의 실랑이가 이내 매듭을 지었고, 작전 설명과 회의가 길어졌다.

그러던 어느 시점,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루 막슨의 회장이 입을 열었다.

“허면······.”

루 막슨의 회장은 뛰어난 마공학 기술로 얼굴의 절반을 사이버웨어로 대체한 마법사였다. 그는 오딘 시티 내에서도 꽤 입김이 강한 마법사였으나, 이 편제 안에서는 다른 초인들에 의해 그 빛이 바랬다.

“라그나로크 수복은 언제, 어떤 식으로 시작하는 겁니까.”

그런 루 막슨 회장의 질문에—

“라그나로크 시티 남서쪽 2km 지점, 소형 전술핵을 투발해 남쪽의 장벽을 녹여버리고 주변의 시체들을 태워버릴 겁니다. 그것이 수복전의 신호탄입니다.”

3사단장의 입에서, 폭탄과도 같은 발언이 터져 나왔다.

“······전술핵?”

* * *

한편 그 시각.

레반은 마탑이 배정받은 주둔지를 둘러보고 있었다.

일레힌 포이체카 마탑은 연방군에서 직접 의전용 수송기를 보낸 만큼, 꽤 으리으리한 가건물에 짐을 풀 수 있었다.

물론, 건너편에 보이는 화산과 당가의 가건물도 마찬가지로 웅장했다. 주둔지인데도 무슨 호텔이 따로 없을 만큼 지어주었다.

마탑, 무림계 메가콥 둘, 마법계 순위권 대기업 하나.

하나같이 면면들이 극히 화려하고 워낙 고고하신지라···.

근처를 지나가는 이들은 유독 거대한 가건물 네 채가 우뚝 서있는 편제 구역을 힐긋대며 지나갔다.

몇 시간 전, 수르트 시티의 사천당가는 전용 캐리어를 이용해 가장 먼저 로키에 도착했고 의전기에 올랐던 마탑이 그 다음으로 이곳에 도착했다.

화산 그룹과 루 막슨 컴퍼니도 얼마 지나지 않아 편제 구역에 도착했다.

곧, 네 개의 세력이 주둔지에 모였다.

원래 이 편제의 주둔지는 일레힌 마탑의 마법사들이 도착할 때 까지만 해도 조용했다.

허나, 현재는 각 세력이 전부 도착했고 수장들은 자리를 비웠다.

듣기로 그들은 연방의 장군과 작전 회의를 하느라 당가쪽 가건물 지하에 모여있었다. 그렇게 수장들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피가 뜨겁게 끓는 놈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기 마련이었다.

마침, 중앙에 넓은 모래 연무장이 있지 않은가.

이윽고.

편제의 모든 세력이 모여들자, 이것만 기다려왔다는 듯 조용하던 당가쪽에서 급작스레 그 첫 시작을 끊었다.

“거기 지팡이쟁이들, 나와서 나랑 한판 붙을 사람?”

사나운 기세의 무인이 당당히 걸어 나왔다.

저쪽도 다들 수준 높은 정예들만 뽑아 보냈을 터.

실력에 크게 자신이 있는 만큼 호승심이 일 것이다.

그러나 마탑의 마법사들은 그 도발에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마탑주의 명령 없이 멋대로 먼저 움직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속으로는 저 입을 꿰매버리고 싶어 하는 마법사가 한둘이 아니겠으나, 비대한 자존심과 자긍심을 꾹꾹 눌러 인내하며 제각기 짐을 풀고 휴식을 취했다.

“죄다 쓰레기 같은 놈들뿐이네. 딱 봐도 싸워보라고 판을 깔아뒀구만, 여기서도 쫄아서 저러는 놈들이랑 같이 어떻게 전장에 나가? 저것들이 제일 먼저 콱 뒈질 놈들이군.”

“······.”

휴식을 취하려고 했었다.

* * *

연방의 장군이 자리를 뜬 뒤 세력의 수장 넷이 남았다.

먼저 당가의 원로, 당명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도시 몇 개가 날아간 뒤로 핵은 전부 폐기했다더니.”

과거의 대전쟁과 테러리스트에 의한 핵 테러로 몇 개의 도시가 폐허로 변한 사건, 그리고 핵 프로젝트와 관련된 몇 명의 인물이 변절한 이후, 연방군은 보유한 핵무기를 전량 폐기했다고 발표했다. 핵무기의 제작 개발과 관련해 수많은 제재법안이 상정되었고 실제로 실행되었다.

그런데 연방군이 정말 작정이라도 한 듯, 이번 수복전에서 다시 전술핵을 꺼내든 것이다.

“그때 테러를 계획한 놈들이 모두 죽었다는 보장이 없는데, 연방군은 간도 크군.”

강력한 시체를 상대하기에 좋은 수단.

모두가 그리 생각했다가 어느 정신나간 종교 단체의 해킹 공격과 무력 테러로, 연방군 핵기지가 폭발해 도시 전체가 지워졌다. 폭발 반경에 있던 주민들은 전부 증발했고, 8레벨급의 강자 한 명만이 그 도시의 유일한 생존자로 남았다.

그런 과거사가 있기에 작은 장벽 안에 갇혀 살아가는 인류에게 핵무기란, 그저 강력한 자멸수단이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에 불과했다.

전술핵의 존재를 이제야 인지한 수장들이 침음을 흘리던 그때였다.

넷 중 누군가가 돌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바깥이 조금 소란스럽지 않습니까?”

와장창!

유리창이 깨져나가는 소리를 보면, 소란이 분명했다.

벌컥.

더 경시할 수 없는 소란에 당명이 통제실의 문을 열자,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진 사람의 신형이 입에서 피를 주르륵 흘리며 풀썩 쓰러졌다.

당가의 무복을 입고 있는 젊은 여인이었는데, 맹독이 잔뜩 섞인 피가 부글부글 끓었다.

그것을 본 당명의 얼굴이 즉시 딱딱하게 굳었다.

“이게 무슨······.”

얼굴을 굳힌 당가의 원로 당명의 뒤를 따라, 일레힌 포이체카가 계단 위로 올라오자.

무인과 마법사들이 흉흉한 기세로 모래 연무장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마법사와 무인들 여럿이 흉한 꼴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으며.

현재 모래 연무장 중앙.

검집에서 피를 털어내고 있는 ‘마법사’가 보였다.

그 마법사는 어깨를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는데, 일레힌 포이체카가 생각하기에 자신의 마탑에서 검을 쓰는 마법사는 딱 한 명이었다.

“······저기서 여기까지 사람을 던졌다는 말인가?”

헛숨을 들이킨 당가 원로, 당명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고.

피식 웃어보인 일레힌 포이체카는, 연무장 위로 급히 뛰쳐 올라가는 당가의 무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따라 올라온 화산의 장로, 선운자가 그런 광경을 한심하게 여기며 오늘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한심하기 그지없군. 대체 끓는 혈기조차 주체 못하는 아해들을 누가 전장에 데리고 온 겐지.”

— 나랑 청궁이는 또 형장에게 전부 걸었소! 하하하!

“······.”

허나 저 연무장 어딘가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입을 닫은 선운자의 얼굴도 다른 이들처럼 무표정히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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