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퓨전펑크의 전생자-71화 (71/157)

#71화. 본래의 의도대로

#71화.

쾅! 쾅! 쾅!

흉흉한 광선의 검날이 머리통을 쪼갤듯 떨어진다.

화산 그룹과 무림계의 미래이자 걸출한 후기지수. 화령검절이라는 별호까지 받은 사내는 지금, 흙바닥이라는 모루에 단단히 박혀 속절없이 단조당하고 있었다.

나는 기수식을 취할 때부터 보란듯이 검기를 피워 올리고, 검이 맞부딪칠 때를 노려 마력을 끌어올렸다. 불세출의 천재고 나발이고 미래라도 보지 않는 이상에야 대처가 힘들 수밖에.

화령검절은 비무의 시작부터 흙바닥에 다리가 묶인 채, 화산이 자랑하는 보신경인 암향표(暗香飄)조차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

“······.”

카앙! 카앙!

그래도 별호가 이유없이 붙은 것은 아닌지, 이를 악문 화령검절은 실로 귀신같은 검법으로 벌써 열다섯 합째를 버텨내고 있었다. 검이 굉장히 신속해 검막이라도 펼치는 듯 보였다.

‘잘 버티는데?’

막상 검을 내려치고 있는 내가 놀랄 정도였다.

골목 위로 먼지바람이 휘몰아칠 정도로 강하게 공격하는데, 움직임도 없이 제자리에서 달랑 검 한자루만으로 저리 막아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본도 탄탄했고, 대단한 수준의 실력이었다.

“형장, 이제 그만하시오. 내가 졌소.”

하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땅바닥에 못박힌 화령검절이 패배를 인정하며 비무는 끝이 났다. 제아무리 7레벨에서도 끝자락 경지에 가까운 무인이라도 발이 묶여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니 일방적으로 패하고 만 것이다.

자존심이 꽤 상할 텐데도, 화령검절은 쥐고있던 매화검을 즉시 내려놓으며 말했다.

“검이 문제가 아니었군. 형장의 검이 내 수중에 들려있었다 해도, 이 비무는 나의 패배였을 거요. 그러니 더 이상 염치없이 욕심내지 않겠소.”

이로써 광선은 완벽히 나의 것이 되었다.

사실 이 싸움이 생사결이었다면 화령검절도 팔 한짝 내어줄 각오로 어찌 헤쳐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이것은 목숨을 건 생사결이 아니라 비무.

그것도 화령검절이 간곡히 요청하고, 내가 대인배의 풍모를 보이며 조건없이 받아들인 덕에 성사된 비무다.

그럴진대 어떻게든 이겨먹겠답시고 전력으로 검기를 뽑아 죽일듯 덤벼들 수야 없었을 것이다. 추하게 발악하지 않고 적당히 패배를 인정하는 게 옳게된 도리였다.

- 세상에.

마침, 과일상점의 주인장도 턱이 빠져라 구경하고 있으니.

나는 광선을 납검하며 말했다.

“수르트 시티의 무학관이 비무의 기본 소양은 잘 가르쳐둔 모양이군.”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것만큼 추한 행동이 없소. 그런데 형장, 나 좀 꺼내주시겠소?”

“그러지.”

후두둑.

내가 마력으로 끌어 올려주자, 그는 대충 의복을 털었다.

처음에는 무릎 위까지 박혀 있었는데, 열 합 넘게 검을 틀어막느라 점점 못마냥 땅을 파고 들어간 탓에 사타구니까지 석탄재와 흙이 묻어있었다. 게다가 머리는 산발로 풀어 헤쳐져 어깨까지 내려와 있었고, 손바닥은 아귀가 찢어져 그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형장같은 사람은 내 생전 처음 봤소.”

흙바닥에서 빠져나온 화령검절은 질린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그의 매화검이 검집으로 스르륵 딸려 들어갔다.

“아까 입도 뻥긋하지 않고 마법을 사용하던데, 필시 그쪽으로도 보통이 아닌 성취를 이루었을 테지. 발할라 시립 아카데미의 수준높은 생도들도 마법을 그리 간단히 구사하진 못했거든. 형장은 대체 그걸 다 어디서 익힌 거요?”

“말했잖아. 발할라 마탑 출신이라고.”

“······.”

황당해하는 화령검절의 표정이 보인다.

“형장, 그야 역용술로 정체를 감춘 마당에 당연히 아무렇게나 둘러댄 건 줄 알았지 누가 그걸 철썩같이 믿겠소? 그리고 어떤 마탑이기에 무공도 가르치오?”

역용술로 잠시 외형을 비튼 것도 알고 있었나.

아무래도 급히 사용한 탓에, 온전히 흔적을 감추지는 못했나보다. 그래도 역용술에 관해서는 그다지 신경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다음부터는 사람 말을 귀 기울여 들어라.”

“화산의 검수임을 알고도 동요하는 기색이 일절 없기에 비슷한 무가의 제자인 줄로만 알았소. 내 사제와 검을 나눌 때도 화산의 이십사수매화검법을 간단히 파훼하지 않았소? 당연히 무인이었어야지!”

하하하—

아쉽다는 듯, 그리 말한 화령검절이 호탕하게 웃었다.

“무학관도 넓은 세상인 줄 알았거늘, 나는 아직 우물 안 개구리였구려.”

화령검절은 내가 대답하지 않는데도, 씁쓸한 얼굴로 연신 혼잣말을 해댔다.

“화산에 돌아가면 당분간 주위를 살펴며 걸어야겠군. 적운철을 고스란히 내주었으니, 윗 배분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요. 화산의 야장들이 뭐가 부족해서 마공학 대장간까지 기어가냐며 그리도 타박했는데. 쯧!”

어찌 되었건, 결과에 깔끔하게 승복한 화령검절은 과일 몇 개를 더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는 또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비무의 승패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헌데 마법은 그렇다 치고, 방금은 무슨 검법이오? 정파의 검은 아니었소.”

“······.”

나는 몸을 돌려 조용히 걸음을 재촉했다.

“여하튼 대단하시오. 내 살다 살다 경지에 이른 마검수를 실제로 볼 줄이야. 수르트 시티넷에 천하무림(天下武林)이라는 가상현실 비무 대회가 있는데 거기서나 보았지······.”

아삭.

화령검절은 먹던 사과를 베어물며 마치 일행이라도 되는 양, 입을 놀리며 졸졸 따라왔다. 발놀림이 굉장히 표표한 것을 보아하니, 아까 다 못보인 암항표를 지금에서야 보여줄 생각인가 보다.

“형장, 연배가 어떻게 되시오? 아무리 역용술로 골근을 만진다 한들 내 눈썰미가 얼마나 좋은데 검을 나눈 상대의 연배까지 몰라보겠소. 손등도 깨끗하고 허여멀건 한 것이 필시 고생 한 번 안해본 공자일 거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서 더 자신 있게 비무에 나섰소. 나와 비슷한 연배에서는 평생토록 적수가 없었으니.”

“알았다. 이제 그만 떠들고 갈 길 가자.”

화령검절이 너스레를 떨며 손을 저었다.

“나도 마침 그쪽으로 가는 길이라.”

“그러니.”

“그렇소. 내 자랑을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아무래도 이 얘기부터 하지 않을 수가 없겠소. 내가 무학관에서 수학하던 시절······.”

그놈의 형장은 언제까지 이어지는가.

이놈, 아까부터 느낀거지만 상당히 말이 많다.

화산과 같은 무림계 대문파에서 재능이 출중한 놈들은, 어릴 적부터 주변의 질투와 시샘을 받으며 자라기에 말을 아끼고 몸가짐을 바로하는 법을 먼저 터득한다. 굳이 설쳐서 위아래로 밉보일 필요가 없으니까.

그런데 이놈은 보통 천재가 아니라 그런가 말이 많다.

하기야, 어느 분야든 독보적인 천재는 굳이 주변인의 한심한 시샘 따위를 신경쓸 필요가 없긴 하지.

그렇다고 무력을 써서 떼어 놓을 수도 없었다.

7레벨 끝자락의 검수에게, 한 번 썼던 방법이 다시 통하지는 않을 터라.

* * *

“청풍 사형!”

내가 화령검절과 대장간 앞에 이르자, 그 앞에 망부석마냥 서있던 청궁이 다가왔다.

나는 따라온 화령검절에게 빼앗았던 매화향 디퓨저를 돌려주었다.

“네 사제의 물건은 돌려주마. 다음에는 이런 거 말고 실력으로 피워보라고 해.”

“그리하겠소.”

“···음?”

청궁놈의 시선은 곧바로 내 검집으로 향했다.

홍색의 검집은 내 허리춤에 아주 잘 매달려 있었다.

그런 관계로, 놈의 구겨지는 표정이 아주 볼만했다.

“······설마 사형도 패하셨습니까?”

화령검절이 질 것이라 상상조차 않았던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저만한 실력을 갖춘 사내가 어디가서 패배를 맛보겠는가? 심지어 루벤카마저도 일전에 한 번 이겨먹었다는데.

빠악-

화령검절은 청궁의 정강이를 까며 신경질을 냈다.

“뭐라? 설마 사형도 패하셨습니까? 인마! 남들 다 보는 길바닥에서 남 때려주겠다고 까불다가 검집도 날려먹고 애먼놈 이름까지 팔아 처먹은 네놈과 내가 같아?”

“······.”

“넌 알 헤임달 역까지 올 것 없다. 화산까지 걸어서 와.”

“······.”

청궁에게 그리 일갈한 뒤 다시 웃으며 고개를 돌린 화령검절은, 갑자기 또 뜬금없는 소리를 해왔다. 그런데 그 말에 마침내 칼드락 스미스에 들어가나 싶던 내 발걸음이 또다시 멈추었다.

“형장. 그렇다면 형장도 이번 영토 수복전에 발할라 시티 소속으로 나서시오?”

“발할라 시티 소속?”

화령검절은 이번 연방의 영토 수복에 대해 무언가 아는 바가 있는 듯했다.

무림계 메가콥인 화산 그룹쯤 되면 연방이 무엇을 공표할지도 대강 알 방도가 있나보군.

“비무에서 보기 좋게 패했으니 알려드리겠소. 그냥 가볍게 흘려들으시오. 개요는 연방군과 무림, 마법계가 힘을 합쳐 잃어버린 도시를 되찾자는 걸 거요. 마지막에 빼앗긴 연방의 거대 도시를. 연방 정치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문 어른이 그리 말하는 것을 내 똑똑히 들었소.”

“······.”

마지막에 빼앗긴, 잃어버린 거대 도시.

현재 연방은 크게 일곱 개의 거대도시로 이루어져 있다.

오딘, 수르트, 발할라, 발두르, 알 헤임달, 로키, 프레이야.

그런데 연방이 수복할 만한 거대 도시라면······비교적 최근에 무너진 도시일 것이다. 아직 기반시설이 전부 다 망가지지는 않았을 테니, 만약 수복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인류의 터전을 크게 넓힐 수 있겠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길 수 있다. 게다가 전투에서 활약할수록 공적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라 강한 세력들의 참여도도 높을 터. 서로 으르렁대는 마법와 무인도 크레딧과 부동산, 명예 앞에서는 평등할 테니까.

그것이 정치 백단 구렁이들이 모여있는 ‘연방 정치계’ 에서 흘러나온 소식이라는 게 약간 걸리지만 말이다.

헌데 화령검절의 저 말이 맞다면···.

“하하하! 형장, 어쩌면 우리 금방 다시 볼 수도 있겠소! 자 이제 사내끼리 검도 나눴겠다 같이 술도 한잔 나누러 갑시—”

스르릉.

나는 웃으며 또 자연스레 들러붙는 화령검절을 보다가 검을 뽑았다. 놈은 흠칫 놀라 물러섰는데, 검집에서 뽑혀나온 광선을 빙글 돌려 놈에게 건넸다.

“?”

“잡아봐. 아쉬울 텐데 한 번 잡아보긴 해야지.”

“형장, 갑자기 무슨 소리요? 과일먹다 체하셨소?”

내가 의아한 기색의 화령검절을 향해 말했다.

“네가 특히 마음에 든다. 기운이라도 한 번 불어 넣어봐. 운이 좋다면 검이 너를 선택할지도 모르는 노릇이지.”

“······형장의 뜻이 정 그렇다면 내 한번 잡아보기만 하겠소.”

곧.

감탄하며 기운을 슬쩍 불어넣던 화령검절은, 이내 꺽! 하는 비명을 지르며 광선을 내던졌다. 다르간트의 말대로, 주입한 기운이 역류한 것이다. 역시 나만의 에고소드, 광선이로군.

내가 공중에 뜬 광선을 잡아 납검하자, 저릿한 손을 털던 화령검절이 푸하하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비무에서 이긴다고 하여 가져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군! 차라리 미련도 사라지고 이게 더 낫소!”

호탕한 녀석이었다.

같은 메가콥의 무인인 당절이라는 미친놈과는 또 다른 느낌이군.

저놈이 화산에서도 특히 유별난 걸 수도 있겠지.

나는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것을 물었다.

“그런데 아까 사진으로 보여준 반 루벤카라는 여인, 혹시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나?”

“······.”

그러자.

밝았던 화령검절의 표정이 짐짓 어두워졌다.

“내 많이 연모했으니, 여즉 그리워하고 있지 않겠소. 그런데 형장은 어째 이름까지 아시는구려. 마법계에서 한때 유명했던 여인이라더니 정말인가 보오?”

“······.”

장차 화산 그룹을 이끌어갈, 젊고 출중한 기재.

액면가만 보아도 좋다며 들러붙는 여인들이 아주 줄을 설 텐데, 보는 눈은 더럽게 없군. 하필 악독한 반 루벤카년에게 푹 빠져있다니. 불쌍하기가 그지없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뜯어말리고 싶군.

“그래서 루벤카를 뭐 어쩔테지? 참고로 파혼 경력도 있다.”

“발할라에 적을 두었다면 형장도 알고 있겠지요. 그 여인은 당가와 좋지 못한 일로 도주하는 중이라 들었소. 내가 관여하여 될 일이 아니지. 하지만 사내가 되어 마음에 둔 여인하나 지키지 못함에야 어디다 써먹겠소? 내 장차 화산의 장문인이 될 사내인데 이번 수복전에서 공을 세워 당가와 담판을······.”

개소리를 하는 화령검절 청풍.

그는 당가를 그리 좋게 보지 않는듯하다. 뭐 사천당가는 같은 무림계에서도 원래 호의적은 취급을 받는 이들은 아니니까.

[ 삼십 년만 지나면 화산이 다 내꺼요. ]

생각해보면 참 웃긴 놈이다.

근데, 그거 이미 일레힌 포이체카가 다 했어.

아직 루벤카가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건 모르는군.

나는 오랜만에 무인다운 무인을 본 듯해 기분이 좋아졌다. 여인 보는 눈이 없는 탓에 모의대련에서 보았을 루벤카를 그리워하는 것만 제외하면, 성정도 호쾌하고 그다지 나무랄 곳이 없는 사내였다.

“청풍, 다음에 보면 술이나 같이 하자.”

“!”

내 말에, 당가와 담판을 짓겠다던 화령검절이 급히 반색하며 답했다.

“하하하! 나야 좋습니다 형장. 기회가 닿는다면 다시 만날 테지요. 그때는 적운철값 대신 형장이 술 사시오.”

“그러마.”

“이만 말 많은 불청객은 사라져 드리겠소. 청궁, 빨리 인사 올려라.”

표정이 썩은 청궁이 포권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형장.”

“그래라. 매화향 디퓨저는 앞으로 적당히 쓰고.”

“······예.”

화령검절 청풍과 청궁은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전생에 만났던 화산의 노괴처럼 세월에 깎이고 패인 느낌은 없었으나, 잘 다듬는다면 정말 다음 세대의 무림 제일인이 될지도 모를 일이지.

* * *

나는 그렇게 화령검절을 겨우 떼어놓고 칼드락 스미스 대장간에 들어왔다.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칼드락은 나를 보더니,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

“귀찮은 것들을 잘 떼어놓고 왔구나. 노야의 검을 하사받았으니, 그 정도는 해줘야지. 안으로 들어가 봐라.”

용광로와 화마의 열기로 가득한 대장간의 안쪽.

드워프 다르간트는 사흘 전과 달라진 것 없이 그대로였다.

“때를 정확히 맞추어 도착했구나.”

다르간트는 한풀 지친 기색으로 망치를 던지더니 화로 앞에 주저앉았다. 그는 데워둔 주전자를 들어 끓는물을 얼굴에 콸콸 부어대며 물었다.

촤아아악—

“이번에 언데드를 잡는데 쓸 예정이라지?”

“예, 들으셨습니까.”

드워프 다르간트는 노곤한 얼굴로 말했다.

“좋다! 이제야 본래의 의도대로 쓰이게 되었구나. 이 다르간트의 나약한 미련과 여한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떨쳐낸 게야.”

나는 다르간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눈을 감고있는 아힘사의 모습이 보였다.

구사렴이 갈아 끼웠던 파츠들와 중고 부품들은 죄다 대장간의 땅바닥에 팽개쳐져 있었다. 다르간트가 전부 갈아 끼워 아예 새 파츠로 교체한 듯했다.

아힘사의 외형은 그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멀쩡한 외관을 다 뜯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군.

텁!

그때, 다르간트가 두꺼운 손으로 벽면에 걸려있던 검을 잡아 허공에 던졌다. 한눈에 보아도 값비싼 명검이 확실했다.

이윽고.

자색빛의 동공을 번뜩 치켜뜬 아힘사의 팔에서 튀어나온 블레이드가, 칼드락이 만들었을 대단한 명검을 수수깡마냥 잘라낸 뒤 아예 철가루로 갈아내버렸다. 기이잉—하는 기계음이 섬찟하게 울려 퍼지며, 못해도 천만 크레딧 이상을 호가할 명검이 철가루로 변해 흩날렸다.

하하하하—!

그에 다르간트는 통쾌하게 웃고는, 곧 눈을 감았다.

죽어버린 것은 아니고, 사흘간 잠들지 못하다가 이제야 작업을 마치고 편히 잠든 것이다.

“······.”

나는 곧, 아힘사에게 다가가 회중시계를 건넸다.

아힘사는 그 회중시계를 소중히 받아들어, 시곗줄을 채우고는 환하게 웃어보였다.

“고맙습니다. 레반.”

이제 발할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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