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화령검절 청풍
#70화.
“그 검, 우리 화산에 넘겨주십시오. 본래 화산의 것이 오해로 인해 그리 흘러간 듯합니다. 다른 명검을 고르신다면 값을 대신 지불하겠습니다.”
나는 화산의 무인을 마주 바라봤다.
그의 시선은 내가 아닌 홍색 검집에 가있었다.
그래도 대문파이자 메가콥의 무인치고는 정중했고 나름 예의있는 제안이었다. 허나 숨길 수 없는 화산파 특유의 날카로움이 무인의 기세에 깃들어 있었다.
보통 기업도 아니고 하필 화산 그룹.
무림에서 나를 죽였던 노괴가 떠오르려한다.
내가 광선의 홍색 검집을 툭툭 치며 물었다.
“지금 이 검을 달라는 겁니까?”
“맞습니다. 칼드락 스미스에서 제작한 그 검 말입니다.”
다짜고짜 칼을 내놓으라는 놈이 아주 당당하다.
만개한 매화처럼 붉어진 저 무인의 눈을 보아하니, 이쪽에서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나간다고 하여 검을 순순히 포기할 생각은 없을 듯했다.
그렇기에 나는 딱 잘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사정은 딱한데, 못 넘겨주겠습니다.”
그러자 화산의 무인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이전보다 조금 더 구구절절하고 장황한 설명을 덧붙여서.
“형장의 칼에 들어간 금속 우리 화산그룹의 물건으로 구두 약조와 함께 칼드락 스미스에 넘긴 것입니다. 좋은 매화검을 만들기 위해서지요. 중간에 일이 꼬여 이렇게 된 것은 유감이나, 그만큼 귀한 것이라 다시 화산의 품으로 돌려주셔야겠습니다. 대신 화산의 부주의함을 인정하고 다른 좋은 명검으로 배상토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무인의 말투 하나만큼은 정중했다.
옛날 같았으면 상상조차 못할 대접이군.
이제 내 위치가 시티에서 어느정도 되는 거지?
정크타운 때였으면 바로 주먹부터 날아왔을 듯 한데.
절정 경지의, 한창 심장이 뜨거울 때의 화산 검수가 저리 정중히 나오다니. 신세가 많이 발전했다.
나는 그런 생각들을 하다, 일단 미뤄두고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길까지 들여놓은 놈이라. 못 돌려줍니다.”
대답은 당연한 거절이다.
광선은 벌써 생사를 함께해온 애병이 되었다.
이걸 넘겨주면, 친우를 팔아넘기는 것과도 같다.
“형장, 다른 명검으로 충분히 배상토록 하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화산의 무인은 답답한 얼굴이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부담스럽게 형장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나 보기보다 어립니다. 그리고 선약이 있어서 이만 가야겠는데, 비켜주시지요.”
“잠깐 멈추시오. 이리 가시면 어쩐단 말입니까?”
내가 발걸음을 돌려 대장간으로 들어가려 하자, 화산의 무인이 끈질기게 들러붙으며 따라왔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연신 설왕설래가 오고갔다.
그러다 결국, 서로 말끝이 짧아지기 시작했다.
“좋게 말로할 때 돌려주면 고맙겠소.”
“귓구녕이 막혔나. 안 주겠다니까.”
“하아, 도무지 못 알아 먹는군.”
대화중에 나와 놈의 간격이 점점 가까워진다.
펄럭-
슬금슬금 다가오던 그가 위협적으로 허리춤의 의복을 제쳤다. 그러자 화산이 자랑하는 매화검이 슬며시 위용을 드러냈다.
나 메가콥 화산에서 나왔으니, 뒤지기 싫으면 내놓으라는 말을 직접 입으로 하기는 자존심이 허락치 않아 에둘러 위협하는 방법. 시비가 붙으면 무림에서도 자주 저랬다.
상대가 보통 화산임을 알면 한 수 접어주니까.
그것은 어떻게 그때와 다른 점이 없군.
여튼, 저렇게 나오면 나도 삐딱해질 수 밖에.
“그리도 억울하면 뒤통수를 친 대장간에 들어가서 따질 것이지. 애먼 내게 이 무슨 추태인지. 뒤통수 처맞은게 자랑인가?”
“······.”
화산의 검수임을 명확히 드러냈음에도 별 개의치 않는 내 모습에, 무인은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급하게 선을 넘지는 않았다.
“대체 어디 소속이기에 그리 뻣뻣하시오?”
족보나 출신같은 것을 들이밀며 한번의 확인 과정을 더 거치는 것이다. 여긴 무인들의 세력이 크지 않은 알 헤임달이니.
“발할라 마탑.”
마탑이라는 대답에 무인이 사납게 반박했다.
“마탑? 어느 누가 보아도 무인의 검인데.”
“호신용.”
“말장난은 그쯤 하는게 어떠신가?”
“그러려고. 헛소리에 어울려주는 것도 힘들군.”
“······나는 분명 예의를 갖추어 부탁했소만. 헛소리라.”
이제, 양쪽의 인내심은 한계에 봉착했다.
사내들간의 치졸한 입씨름은 더 이상 없었다.
무릇 무인은 기백과 눈빛만으로 뜻을 나누는 법.
점점 좁혀지던 놈의 인영은 벌써 일 장 앞까지 드리워졌다. 그러니 이미 저 화산의 절정 검수와 나는, 말대신 검으로 교분을 나누기로 약속한 것과 다름없다.
이쪽으로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는 화산파의 검수의 기백이 날카로워졌다. 놈은 소속도 명확치 않아보이는 내가 대단한 명검을 들고 있으니, 적당히 실력을 내보여 눕히고 가져갈 심산인듯 보였다.
무인은 매화검을 검집째로 끌러 쥐곤 말했다.
“화산에 법도가 있음을 감사해야 할 것이다.”
“너는 네 뒤에 화산이 버티고 있음에 감사해라.”
“······입이 방정이군. 후회하지 마라!”
탓!
검집을 쥔 무인이 바닥을 박찬다.
그의 굵은 손목으로 경력이 밀려 들어간다.
나는 저 초식의 첫 전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목숨을 걸고 싸워보았던 상대가 화산의 노괴니까.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 낙매분분(落梅紛紛).
눈을 어지러이 만들고 허초와 살초가 섞인 환검.
동시에 그윽하고 청아한 매화향이 사방을 잠식했다.
곧, 절정에 이른 화산파 무인이 검집을 강하게 내뻗었다.
이번 생에 본 것중, 가장 제대로 되어 먹은 검법이었다.
그러나.
전생에 매화 노괴와 검을 나누었을 때를 회상하면 아직 부족한 곳이 많은 일검이다. 매화검수라고 불리기에는 조금 처지는군.
나는 몇 보 앞으로 가볍게 이동한 뒤, 그 환검의 중심에 광선을 찔러넣었다.
이윽고 캉, 하는 소리와 함께 검집이 통째로 부러졌다. 환검을 빗겨낸 나의 검이 무인의 목덜미에 놓여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무인이 손을 파르르 떨었다.
부러진 검집을 허탈히 잡고있던 무인이 말했다.
“아니 이게 왜······.”
“극성까지 익혀서 다시 찾아와라.”
상대의 뒷배를 열심히 봐가며 전전긍긍하던 때와는 주변이 많이 변했다.
이곳은 다르간트가 기거하는 칼드락 대장간 앞이며, 일레힌 마탑의 구성원으로 인정까지 받은 마당이다. 갓 시종에서 벗어났을 때보다 조금은 덜 쩔쩔매도 좋았다.
특히 선공까지 취해준다면, 검을 휘두름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런데 이자가 알 헤임달에 왔다는, 화 무슨 검절인가 하는 놈이 맞는가?
그렇다기엔 어딘가 살짝 모자란 듯 싶은데. 절정경지를 지난 무인이긴 했으나 그런 별호까지 붙을 정도는 아니다.
아니면 그간 너무 대단한 거물들만 마주하는 바람에 주제도 모르고 눈이 높아진 걸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목에 칼을 댄 채 손을 뻗었다.
“매화향이 참 좋더군. 어디걸 쓰나?”
“······그것은 건들지 말아주시오.”
“싫다.”
뚜둑-
내가 무인의 허릿께 어딘가에 달린 작은 호리병같은 걸 뜯자, 거기서는 그윽하며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매화향이 흘러나왔다. 엠비언트 라이트로 장식된 호리병은 지금도 매화향을 내뿜고 있다.
무공이 고절해 매화향을 빚어낸 게 아니라, 그윽한 매화향을 내주는 디퓨저를 사용한 것이다.
애시당초 화산에 잘 나지도 않는 매화를 왜 이리도 좋아하는지.
나는 디퓨처를 대강 치우고 놈을 향해 물었다.
“이름.”
“화산그룹의 매화검수 청명이오.”
“매화검수에 이름은 청명이라?”
그렇게, 이름을 되물을 때였다.
주변의 군중들을 누군가 밀치며 다가왔다.
“혼자 화산 망신은 다 시키는구나 아주. 야 인마 청궁!”
갑자기 군중속에서 튀어나온 한 사내가 땅에 떨어진 검집을 잡아 자연스럽게 무인에게 넘겨주었다. 기골이 꽤 장대해 기개가 있는 사내였는데, 하는 말본새가 가벼운지라 그 몸뚱이와는 영 어울리지 않았다.
사내는 무인의 목에 걸려있는 내 검을 손가락으로 슬쩍 치우며 말했다.
“어이쿠, 우리 다혈질 사제가 실수를 했나보네요. 창피하게 뭐하냐 인마? 청명같은 소리. 져놓고선 애먼놈 이름 팔아먹지 말고 일어나라 빨리.”
튀어나온 그 사내는, 넘어진 놈의 엉덩이를 툭툭 차며 기립시켰다. 아무래도 저 무인의 사형인 듯 싶었다.
“······사, 사형 오셨습니까.”
곧, 청명이라 자신을 소개한 무인의 얼굴이 붉어졌다.
세상에 팔아 먹을 게 없어서 사제의 이름을 팔아먹었단다. 만약 이곳이 무림강호였으면 턱주가리를 몇 번 돌려도 시원찮은 짓이었다.
놈을 기립시킨 사내는 곧장 내 앞으로 걸어왔다.
그의 뽀얀 얼굴은 히죽 웃음을 띠고 있었는데, 가벼운 태도와는 어울리지 않게 생긴 것은 또 헌앙하게 생긴 사내였다. 여인 꽤나 울릴 정도로.
사내는 석탄 먼지가 가득 쌓인 어깨를 대강 털더니 포권하며 입을 열었다.
“강호 초출인지라 많이 부족하지만, 수르트 안에서는 화령검절이라는 부끄러운 별호로 불리고 있습니다. 청풍이라 합니다.”
이자가 화령검절(花靈劍絶)이군. 거짓은 아니다.
기운으로 보아, 별호가 부끄러울 정도는 아닌듯 하니.
누구의 피인지 모를 흔적이 화령검절의 의복을 수놓고 있었다. 사람이든 좀비든 몇이나 죽여야 저리 피로 물드는지 모를 일이다.
“청명, 어쩐지 저런 놈에게 붙여주기는 아까운 이름이더군.”
“······.”
전투에서 승리한 내가 그의 사제를 마음껏 비아냥대자, 화령검절은 화도 내지 않고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저딴 놈 이름이 청명이든 청궁이든 거 무슨 상관이겠소! 형장, 저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좋은 술집이 있는데 나랑 같이 가서 술이나 한잔 빱시다.”
덥썩.
백주대낮부터 술이나 하자며 붙임성있게 들러붙는 화령검절.
그래도 저 청명인지 청궁인지보다 강한 것만은 확실했다. 어깨를 슬며시 붙잡은 이자의 악력에 뼈가 아려올 정도였다.
나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며 자리를 옮겼다.
화령검절 청풍과 나는 이내, 적막한 골목길에 이르렀다.
사내가 둘이나 들어가기엔 조금 좁은 골목.
보일러 배관같은 황동 파이프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있고, 배양 과일을 파는 상점 딱 한곳을 빼고는 모든 창문이 철창으로 막혀 있었다. 전형적인 흑도 뒷골목이었고, 술집은 없었다.
나는 광선의 검병에 슬쩍 손을 올려놓았다.
슥슥.
그런데 그가 돌연 품속에서 명품 반지갑을 꺼내더니, 크레딧 현물지폐를 두둑히 꺼내어 과일 상점의 주인장에게 내밀었다. 못해도 2천 크레딧은 되어 보였다.
잽사게 돈을 받아 챙긴 주인이 물었다.
“샷따 내릴까요?”
“하하, 괜찮습니다. 과일들은 다 싱싱한 거죠?”
“그럼요.”
뽀도독.
화령검절은 좌판의 자두를 몇 개 입에 넣고 씹었다.
헌데 그걸 보니, 나도 갑자기 새콤한 것이 당겨 같이 자두를 집어먹었다. 달콤함은 현대에서 먹던 것보단 부족했으나 솔직히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그렇게 화령검절 청풍과 나는 나란히 좌판앞에 서서 맛있게 과일을 씹어먹었다. 그는 메가콥의 무인치고 격의랄 게 없는 사내였다. 속내를 숨기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나도 마침 전생자 치고는 격의가 없는 편이라, 그와 대강 어울릴 수 있었다.
“어우, 달고 새콤하니 맛있네.”
“이 집 과일 잘하네. 맛이 정갈하네.”
“형장, 우리 죽이 꽤 척척 잘 맞는 것 같소.”
우적.
과일을 먹던 청풍이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그런데 그 훌륭한 검은 얼마나 주고 샀소? 검 주무르는 실력은 기가 막혀도, 무인들에게 검을 잘 안 내어주기로 이름난 야장인데 말이오.”
우물대는 그의 입가에는 끈적한 과일즙의 자국이 가득했다.
나는 자두를 입에 가득 집어넣으며 답했다.
“목숨 값으로 샀지.”
아힘사가 되기 전, 목숨을 건 앙굴리마라와의 전투.
큰 위험을 감수하고 구사렴에게 데려가 생명까지 붙여 놓았으니 내 목숨값도 되고, 아힘사의 목숨값도 된다.
“목숨 값이었소? 많이 아쉽구려. 마공학 대장간이 그리도 대단하다하여 명숙들의 눈초리를 무릅쓰고 힘들게 걸음했건만.”
그는 아쉬운 기색을 내비치며 포기하는 듯 보였다.
확실히 아까 그 꼴통보다는 말이 통하나 싶었다. 그런데 그러던 그가 자연스레 화제를 돌려 다른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파란 사과를 베어물며.
“그나저나 발할라 마탑 소속이라 하셨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화령검절이 웃으며 품속을 뒤적였다. 뭔가를 꺼내려는 듯했다.
“참, 연이란 게 이리도 신기하오. 내가 무학관에 있을 때 발할라로 견학을 간 적이 있었소. 거기서 절세가인이라는 말로도 모자란 여인을 만났는데, 몸이 멀어 그 뒤로 만나지 못하였소. 그리고 이제는······사정이 생겨 평생 못 만나게 되었소.”
“안타깝군. 죽었나?”
“······비슷하오.”
이윽고, 화령검절이 품 속에서 꺼낸 사진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 사진이라는 것이.
“자 어떻소. 만나지도 못하는 여인을 평생 그리워하는 것도 낭만있지 않소?”
“!?”
반 루벤카가 아카데미 생도 때 찍어둔 사진이었다.
저거, 반 바이오의 저택에서도 분명히 본 적이 있다.
이 년이 저 품속에서 왜 기어나와.
화령검절 딴에는 친한 척 신변잡기를 늘어놓으며 어떻게든 말을 이어가 보려는 속셈이었던 듯 싶은데, 나는 루벤카의 얼굴을 보자 확 달아나며 더이상 과일을 입에 대고 싶지 않아졌다.
입맛이 급격하게 떨어져버린 것이다.
“형장, 왜 그러시오? 표정이 안 좋소.”
“이 여인을 어디서 만났다고?”
“과거에 무학관의 기재들과 발할라 시립 아카데미 생도들간의 모의 대련······.”
“이제 그만 들어도 되겠군. 자두는 맛있게 잘 먹었다.”
나는 먹던 과일을 급히 내려놓고 몸을 돌렸다.
그러자.
화령검절이 기운을 내뿜어 나를 붙잡았다. 가타부타 없는 본론이 드디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형장, 조만간 연방의 영토 수복 발표가 있을 거요. 그래서 좋은 검이 절실히 필요하오. 적운철(赤隕鐵)이 형장의 손까지 어찌 흘러 들어갔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내어주면 나중에라도 빚은 톡톡히 갚겠소. 한 삼십 년이 지나면 화산이 다 내 꺼요.”
“그것보다 연방이 망하는게 더 빠르겠군.”
“하하하! 농이 지나치시오. 이 청풍이 있는데 세상이 망하긴 왜 망하오? 내 입으로 말하긴 뭣해도 나름 무림에서 촉망받는 놈이라.”
화아악—
그 말을 한 화령검절이 순식간에 검을 뽑아 초식을 펼쳤다.
매화가 흩날리며 춤을 추듯, 화산의 정수가 담겨있는 검무.
아까의 한 치가 부족한 매화검수와는 차원이 다른 검이 펼쳐졌다. 초절정? 아니, 아직까지는 절정에 머무르고 있다. 루벤카와 비슷한 또래에 저 정도의 성취라면 에센스를 물처럼 퍼마셔도 쉽지 않다.
오성과 재능이 비할데 없이 출중함이 틀림없다.
내가 스승 밑에서 이립을 넘어 초절정이었다.
영약도 꽤 처먹은 채로.
헌데 저 놈은 아직 그 나이가 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저 가벼운 깃털같은 화산의 검수가 불세출의 천재이자 무림계에서 기대를 거는 후기지수라는 뜻이 된다.
무림계의 미래가 내 앞에 있었군.
화령검절이 검을 납검하자, 나는 진심을 담아 칭찬을 건넸다.
“대단하군.”
“이제 그 말도 지겹소. 무학관에는 나보다 오성이 더 뛰어난 이도 있었소.”
“그런데 저 사진 속의 여인과도 붙어보았나?”
화령검절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공식적으로는 패했소.”
“그 실력으로 패했다?”
“승리했다 하여 딱히 얻는 것도 없었던 지라.”
그냥 져줬다는 얘기.
화령검절은 베어문 사과를 몇 번 던지고 받다 내려놓더니, 장난기를 쫙 빼고는 내 광선을 쳐다보며 말했다. 말로는 괜찮다고 했으나, 그에게는 이 검의 행방이 심히 간절한 사안인 듯 보였다.
“아무튼 형장, 그냥 주기는 아무래도 싫을 테니 우리 사내답게 비무로 결정하는 것은 어떻겠소? 형장이 받아들이시지 않으면 나는 그냥 과일이나 더 먹다 물러가겠소. 싫다는 사람 붙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
사내답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싫다는 사람 안 붙잡아.
아닌 척하며 무인의 자존심을 슬쩍 긁는 삼박자가 모두 맞아들어간 명문이었다. 크게 놓고보면 나름 정중한 비무 요청이지만, 만약 거절했다간 배짱도 없는 똥자루가 되는 것이다.
강호 초출의 무인치고는 심계가 치밀하다.
여기서 확실하게 단도리치지 않으면, 계속 거머리처럼 붙어 떨어지지 않으리라. 그리고 타고난 성정이 워낙 호탕하고 격의랄 게 없어보이니 저 약속마저 어기진 않을 것이다.
나는 결국, 광선을 건 화령검절과의 비무 요청을 승낙했다.
“좋습니다. 그럽시다.”
“고, 고맙소 형장! 형장은 진정한 사내요!”
그리고 잠시 뒤.
“······.”
흉흉한 검기가 일렁이는 두 개의 명검은 아직 서로의 사이에서 힘대결을 하고 있었으나, 매화검절의 두 허벅지는 골목의 흙바닥에 처박혀있었다.
비무가 시작하자마자, 내가 그의 발을 마력으로 잡아당겨 바닥 속에 처박아버린 것이었다.
이를 지그시 악문 화령검절이 입을 열었다.
“······아니, 정말로 마탑 출신이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