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퓨전펑크의 전생자-65화 (65/157)

#65화. 철로를 따라

#65화.

청록빛 괴물은 우리를 태운채 빠르게 질주했다.

높은 대장간들의 슬레이트 지붕과 굴뚝을 타고, 여느 주택들의 석탄가루 쌓인 발코니를 딛었다. 놀란 주민들의 비명소리까지 덤으로 수집했다.

- 으아악! 씨이발 뭐야!

- 괴, 괴물이야!

그 비명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균형이 틀어진 정기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투 일변도인 전장에서 구르는 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 나는 그렇기에 마탑에 얹혀 연방의 영토 수복전에 참가하기로 결정했었다.

대단한 발할라 마탑의 마법사들과 동행할 수 있는 기회이니, 어떻게든 가겠노라 결심해 마탑주에게 청한 것이다. 수준 높은 마법사들이 뒤를 든든히 지키고 있다니, 그것만큼 안전한 게 어디 있겠는가.

헌데 그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 온 듯했다.

— 영토 수복전에서 개시할 수는 없잖아?

엘프 마법사의 말은 그리 틀리지 않았다.

광선도 길들일 겸 장벽 바깥에 다녀오자는 엘프 마법사의 언뜻 충동적인 제안이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으나, 생각해보면 내게도 반드시 필요한 경험이었다.

미리 그 좀비놈들의 면면과 하는 꼴을 한 번쯤은 눈에 담아둔다면 다음에 있을 수복전에서 허둥대지 않을 듯했다. 수많은 목숨이 걸려있는 전장에서 허둥대다 다른 이들에게 방해가 되는 것만큼 한심한 일이 없으니.

그리고 나는 다르간트의 단조를 목도한 이후, 지금까지보다는 조금 더 열심히 굴러야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알 헤임달 시티라는 특수성이 있어 다른 시티 장벽들보다는 상황이 낫다고 하기에, 나는 결국 엘프 마법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니까.

빌어먹을 좀비를 직접 썰어보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내가 동의하자 그녀는 그럴줄 알았다는 듯 씨익 웃었다.

— 좋아. 당연히 같이 갈 줄 알았어.

* * *

한 시간 정도를 쉼없이 이동했을까.

엘프 마법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한 번 봐봐, 이제 잘 보이지?”

남쪽 구역 번화가의 정경이 서서히 멀어져 시야에서 사라진 시점이었다. 그녀는 지금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기가 알 헤임달 시티의 남쪽 장벽이야.”

그 말에 따라 고개를 돌리자, 정말 장벽이 보였다.

하지만 일반적인 시티의 장벽과는 어딘가 많이 다르다.

물샐틈도 없이 일정한 높이와 곡선으로 둘러쳐진 발두르 시티 장벽이나 거대 산맥 위에 천혜의 요새처럼 장벽을 두르고 있는 발할라와는 달리, 알 헤임달 시티의 장벽은 조금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대한 장벽 중간에 무슨 개선문이라도 되는 듯한 구멍이 뻥 뚫려 있다는 점이었다. 그 구멍의 지름이 이십 미터는 될 듯했고, 그 밑으로 철로가 깔려있었다.

“저거, 저래도 되는 건가?”

마치 바다와 바다 사이의 해협처럼.

마음만 먹으면 사람이든 좀비든 마음대로 통과할 수 있을 듯했다. 물론 유사시에는 문을 닫고 빗장을 걸어 장벽과 일체형으로 만들 수 있는 장치가 윗쪽에 달려있긴 했다.

엘프 마법사는 짐짓 자랑스럽게 말했다.

“저게 알 헤임달의 개척 방벽이야. 유수한 개척가들과 중장비들이 저 문으로 편하게 들락날락거려. 덕분에 근처에 작은 도시도 형성되어 있고. 경계가 빡빡한 발할라랑은 다르지?”

다른 시티의 주민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편하게 드나들기 위해 대놓고 장벽을 열어둔다니.

네임드 시체라도 한 마리 출입했다간 피바다가 될 것이라, 정신나간 미친짓으로 보일 수 밖에.

그러나 알 헤임달에서는 나름 흔한 광경이란다.

“땅을 개척할 때 필요한 거대하고 무거운 중장비들을 비공정에 실어 일일이 날라댈 수가 없어서 말이야. 그리고 장벽 바깥 개척지에 소규모 장벽들이 둘러져있는 소도시들이 있어. 매장된 자원들을 캐내는 곳들인데, 강력한 언데드가 나타나면 그쪽에서 먼저 발견해 알리니까.”

소규모 장벽 안에 세워둔 개척 도시라.

“아무리 강철로 장벽을 쳐봐야 거대 도시들처럼 제대로 된 광역 보호 마법진이 없을 텐데.”

내 물음에 엘프 마법사가 어깨를 으쓱였다.

“고절한 흡혈귀들이 임시로 결계를 쳐줘. 그리고 알 헤임달의 연료 소비량을 따라가려면 어차피 누군가는 계속 개척 해야해. 뭐 대부분 기계들이 하는 일이긴 하지만, 보수가 좋아서 지원자들이 넘친다고 하더라.”

“그렇군.”

저런 특이한 상황 때문일까.

원래 시티 장벽 근처라면 연방군의 경계가 삼엄하거나 주민들이 아무도 살지 않아 황량해야 하건만, 이곳 만큼은 달랐다. 장벽 바로 안쪽임에도 꽤 도시의 태가 났다.

콰아아—

더운 온수를 토해내는 석탄 발전기가 보인다.

마치 목욕탕처럼 생긴, 그 공용 수돗가로 보이는 곳에서 긴 머리를 빨래 빨듯 짜내던 여인과 어떤 사내의 가벼운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 아까 들어 보니까 화령검절이 알 헤임달에 와있다더라.

— 화산 그룹의 화령검절(花靈劍絶)? 그 괴물새끼가 여길 왜?

그들은 시커멓게 오염된 장비를 씻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풍기는 기운을 보아하니 6레벨 정도로 보였는데, 바깥에서 얼마나 개고생을 하고 왔는지 얼굴에서 땟국물이 줄줄 흘렀다.

— 무림계 야장들이 마음에 안들어서 직접 매화검이라도 하나 뽑으러 행차하셨나봐.

— 그럴 리가? 이족 난쟁이들이 무인 별로 안 좋아할 텐데.

— 시발, 대체 언제적 얘기야? 세상은 크레딧이 전부야. 칼이든 젖이든 좆이든 크레딧만 있으면 만사형통이거든.

그들을 빠르게 지나치자.

칼드락 스미스가 있는 구역만큼은 아니더라도, 꽤 큰 규모의 소도시가 그 위용을 드러냈다. 증기 기관차가 다니는 철도가 마을의 중심을 관통하여 구멍을 지나 장벽 밖까지 깔려 있었다. 보급품이나 바깥의 물건들을 곧바로 시티 안으로 나르기 위해 길을 뚫어둔듯 했다.

“아이고! 한 번 임장하러오세요~매물이 좋~읍니다.”

“?”

그때, 부동산 중개사무소의 나이든 직원으로 보이는 이가 살갑게 다가와 웬 홍보용지를 내 손에 쥐어주고는 급히 떠났다. 송곳니가 튀어나와 있는 늙은이였다.

그 홍보용지에는 최저가 충격! 판매 임박! 같은 말들이 중구난방으로 적혀있었다. 내용은 대강 이랬다.

[ 안전한 알 헤임달 남쪽 장벽 라인, 철도역세권 근접! 원룸 세입자 구함! 보증금 1만 크레딧에 월세 300크레딧, 최저가 신축 풀옵션, 보증금 월세 조정 가능, 조식 제공, 지하2층 이지만 공기가 통하는 오픈형 창문 있음! 관리비 별도, 원한다면 매매나 반전세 가능. ]

달에 300크레딧. 상당히 싼 편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하지만 엘프 마법사는 그걸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매달 관리비 명목으로 5천 크레딧 정도는 나올걸. 다 초짜 개척자들 등처먹는 사기꾼들이야.”

“역시, 그럴 줄 알았다.”

나는 홍보용지를 박박 찢어 태워버렸다.

그 후로 걸음을 쉴 새 없이 옮기자, 몇 분만에 높은 장벽이 눈 앞까지 가깝게 보였다.

그렇게 걸어간 시티 장벽, 커다란 구멍 옆에는 작은 경비소가 있었고 누군가 그 안에 앉아 폐쇄회로 가득한 화면을 감시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장벽을 지키며 외부인의 출입을 결정하는 자로 보였다.

조끼에 나비 넥타이를 차고 작은 경비소에 앉아 정련되고 날카로운 기세를 풍기는 사내였다. 경비소의 직원 따위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절정에 오른 나보다도 강한 기운을 풍기고 있는 자였다. 그는 얇은 안경을 슬쩍 추켜올리며 물었다.

“무얄라바, 롬진, 파샤치. 남쪽 장벽 밖의 세 곳중 어느 개척지로 가십니까?”

그의 뜻모를 물음에 엘프 마법사가 답했다.

“롬진.”

“이유는요?”

경비소의 사내가 곧장 롬진이라는 곳에 가는 이유를 묻자, 엘프 마법사가 샷건의 뚱뚱한 총구를 흔들어보였다. 사내는 헐거운 넥타이를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밖에서도 무운을 빕니다.”

탁!

작은 경비소 창문이 차갑게 드르륵- 닫혔다.

그 사내는 다시 감시하던 화면에 신경을 집중했다.

“······.”

그것이 끝이었다.

스테이션의 수속보다도 빠르게 장벽을 통과한 것이다.

시티 장벽 안이 인간들의 생활 권역이었다면, 이 장벽을 지나서는 좀비들의 권역. 대략 200억 마리의 좀비 앞에 던져진 한 두명의 인간이 되어버리는 것인데도 너무 자유롭지 않은가.

그 마음을 안다는 듯 엘프 마법사가 말했다.

“여긴 분위기가 원래 이래. 나중가면 적응 돼.”

빠져나온 장벽 밖의 풍경은 도시보다 어두웠다.

그나마 도시라는 광원이 장벽 밖까지 빛을 내보이긴 하지만 그뿐. 해가 비치지 않는 바깥은 어두울 수 밖에 없다. 좀비놈들은 늘 이런 어둠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어둠에 익숙할 놈들에게는 인간을 사냥하기 더할 나위없는 광경. 아무리 경지에 이른 고수에다 근방의 기운들을 잘 잡아낸다고 해도 시각과 청각이 일부분 제한된 상태에서는 위축되기 마련이다.

그래도 철로 옆을 따라 희미한 가스등으로 표시된 길이 나있었다. 일정 거리마다 가스등과 석탄등이 켜져있어 구분조차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금세 안력을 돋구어 근방을 둘러봤다.

엘프 마법사의 말대로, 3km정도 떨어진 곳들에 강철의 장벽과 그것보다 더 조그마한 규모의 철벽들이 세워져 있었다.

혹시 알 헤임달 시티까지 돌아가지 못할 때를 상정하여 작은 대피소를 만든 것으로 보였다. 저게 강력한 좀비의 앞에서도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나는 펌프액션 샷건을 들고 사방을 주시하는 엘프 마법사를 흘겼다. 그녀는 아직도 웃음을 띄고 있었다.

뷔에탕의 마력 살덩이를 찢어먹던 짐승과 커다란 펌프액션 샷건을 당당히 들고있는 엘프 마법사. 꽤 좋은 조합이다. 마공학에 조예가 깊은 마법사니 일반적인 재래식 샷건도 아닐테지.

그런데 그때였다.

“문 좀 열어주세요. 저 돌아 왔어요.”

똑.똑.똑.

웬 여인이 철로를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희미한 가스등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으나 치렁한 머리칼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다.

“저기요. 문 좀 열어주세—”

콰아앙!

그 순간, 엘프 마법사는 망설임없이 샷건을 격발해 걸어오던 그 여인의 몸통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곧이어 썩은 피냄새가 훅 밀려오며 무너져 내리는 여인의 얼굴이 드러났는데, 거기에 시뻘건 이빨들이 곳곳에 박혀 있었다.

“······아?”

데구르르 굴러 떨어진 여인의 얼굴. 이빨이 박혀있는 그 얼굴은 마치 아이처럼 울먹이고 있었는데, 눈에서는 말간 눈물이 흘렀다.

“저, 저 아직 감염 안됐어요. 진짜예요!”

그 광경을 보던 엘프 마법사가 총구로 머리를 긁었다.

“얼마나 왔다고 벌써 저런 게 보여? 재수가 없으려나.”

거대한 불쾌감이 뇌리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밀려왔다.

곧, 그 얼굴의 머리통에서 머리카락이 스산히 일어나더니, 뻗친 머리카락을 다리처럼 이용해 걸어다녔다.

— 저저아직감염안됐어요진짜예요저저아직감염안됐어요진짜예요저저아직감염안됐어요진짜예요저저아직감염안됐.

얼굴은 거꾸로 뒤집혀 자신은 아직 감염되지 않았다고 소리쳤다. 거품을 문 여인의 입에서 진득한 침이 흘러내리며 머리카락을 적셨다. 광견병에 걸린 개처럼 머리를 휘저으며 소리를 질렀다.

엘프가 내쪽으로 눈짓하자.

나는 욕지기를 참으며 지면을 박찼다.

서걱!

광선이 뽑혀나오자, 여인의 얼굴은 반쪽이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윽고.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농후한 혈향이 코를 찔렀다.

2회차 때의 좆같은 기억이 한꺼번에 구토처럼 몰려올 기미를 보이자, 나는 괜히 하하하 크게 웃으며 검에 묻은 피를 털었다.

곧이어, 청록빛 상어 괴물이 달려들더니 그 괴이의 잔해를 깔끔하게 잡아먹었다. 철로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

좀비도 먹나? 무슨 게임 크리쳐도 아니고.

나는 씁쓸한 얼굴로 광선을 납검한 뒤, 철로를 따라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잠시 뒤.

뿌우우우—

철컹대는 증기 기관차 소리가 우리들의 뒤에서 들려왔다. 강풍과 함께, 덮어놓은 천막 바깥으로 빠져나온 군용 폭탄과 다이너마이트가 보였다. 그것들을 가득 싣고 어디론가 달려가는 증기 기관차는, 어둠보다도 검은 증기를 잔뜩 뿜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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