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미련
#64화.
— 사흘 뒤에 다시 찾아오너라.
사흘 뒤까지 검을 하나 더 벼려놓겠다.
다르간트의 말은 새로운 검을 만들어 놓겠다는 게 아니라, 오래되어 시간에 삭은 아힘사를 다시 검처럼 벼려주겠다는 뜻. 그러니까 아힘사 자체의 개조를 원한다는 얘기였다.
개조? 아니다.
앙굴리마라의 제작자로 보이는 다르간트가 직접 나선다면 개조(改造)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고, 차라리 재창조라고 부르는 게 맞겠군.
회한에 젖어든 얼굴의 다르간트를 기억한다. 지고한 경지에 오른 대장장이계의 거인이라도, 아힘사를 바라보던 모습은 그저 주름살이 잔뜩 늘어난 얼굴로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는 드워프에 불과했다.
다르간트가 앙굴리마라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때는 나이 예순 전후의 드워프였겠지만, 지금은 자그마치 160년이란 세월을 살아온 드워프다. 알 헤임달 시티 4대 대장간의 주인마저 존경해 마지않는 위대한 대장장이.
저만한 세월을 지나왔다면 예순이라는 나이도 젊었을 적 미숙한 청춘의 일부분이겠지. 그게 자그마치 한 세기 전이니.
그런데 검을 제작해 주고도 여력이 남았던가.
게다가 가치를 감히 매길 수 없는 이 명검도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아 제작해냈는데, 아힘사를 대체 어떻게 손보려고 하기에 사흘이나 걸린다는 말인가.
아마, 그 시간만큼이나 미련이 크게 남았단 얘기겠지.
드워프 다르간트는 내색하지 않았으나, 미숙했던 젊은 날의 선택이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하기야 자신이 공들여 탄생시킨 피조물들이 본래의 쓰임새와 다르게 전쟁터의 끔찍한 살인기계로 악명을 떨쳤으니, 손을 떠난 병기에 미련을 가지지 않는다라는 대장장이들의 대원칙을 어겨서라도 바로잡고 싶은 거겠지. 세월이 흐를수록 풀지 못한 미련이 더 짙어질 테니.
“너는 어찌하겠느냐. 아힘사.”
“레반, 나의 회중시계를 맡아주시겠습니까?”
“그래.”
고집스러운 얼굴의 다르간트가 자신의 창조물인 앙굴리마라의 이름을 마침내 아힘사라고 불렀을 때, 아힘사는 귀하게 차고 있던 회중시계의 시곗줄을 풀어 내게 넘겨주었다.
자의로 칼드락 대장간에 남기로 결정한 것이다.
본래 7레벨급 병기인 아힘사는 오랜 시간을 뛰어넘어 마주한 제작자의 재창조를 기다렸다. 구사렴의 손에 다시 태어나긴 했지만 슬럼가의 한계로 인해 부족하고 수준 낮은 부품들이 많았다. 다르간트의 정력적인 눈을 보면 그에 관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손볼 듯싶었다.
“그럼, 사흘 뒤에 찾아오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대장간을 빠져나왔다.
도중에 알 헤임달 4대 대장간, 칼드락 스미스의 저력도 맛보았다. 혼신을 담은 명인들의 망치질에 파헤쳐지고 부서진 대장간이 몇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째깍. 째깍.
회중시계의 초침 소리가 품 안에서 들려온다.
나는 그 초침 소리를 들으며, 엘프 마법사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 * *
사흘의 기한이 주어졌다.
알 헤임달 시티에서 못해도 사흘 이상은 보내야 한다는 얘기.
계획이 조금 바뀌었으나, 천금같은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난 다녀올 곳이 있어. 근처에 좋은 숙소를 잡아줄게.”
엘프 마법사는 발할라부터 가져온 마공학 재료를 칼드락 스미스에서 연성하는 것 말고도, 나름대로의 중요한 일들이 더 있어 보였다. 하루 정도 처리하고 올 일이 있다는데, 다 큰 사내가 돼서 여인 뒤를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다닐 수야 없는 노릇.
숙소를 잡아준 그녀가 다른 곳으로 떠나있는 동안, 나도 사흘중 하루를 통째로 빼 네 번째 마나 회로 제작에 착수하기로 했다.
숙소는 남쪽 구역의 가장 번화한 거리에 있었다.
복고풍의 통나무 창문을 활짝 열면 바로 보이는 운치가 좋았다. 조금 더 발전한 근대의 길거리가 보였는데, 기이한 문물과 새로운 문화들이 많아 구경하는 맛이 있었다. 굽 높은 부츠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석탄먼지를 막기 위해 챙 있는 모자들 쓴 사람들이 파이프 짐승 마차를 타고 길거리를 지나다녔다.
뿌우우—
마차의 시커먼 매연과 어디선가 뿜어진 증기가 창문 안으로 들어오는 것만 빼면 정말 완벽했다.
탁.
매연이 들어오는 창문을 닫은 뒤 치렁한 커튼을 내리고, 새장처럼 생긴 가스등불도 껐다. 그러자 방이 적당한 어둠에 잠겼다.
나는 알 헤임달 서민들의 주식이자 명물이라는 석탄에 태운 바게트빵, 그 사이에 싸구려 버터와 배양과일 잼을 한가득 넣어 배를 채운 뒤 반나절을 내리 운공하며 육체를 관조했다.
운공과 관조가 끝나자 확신이 들었다.
“슬슬 충분하겠군.”
육체적인 준비는 4위계에 오르기 충분했고, 기운도 마탑에 있을 때보다 넘쳤다. 무엇보다 이미 한 번 걸어본 길이었다. 곧바로 회로 제작에 착수했다.
결과는 나의 예상대로였다.
매우 수월히 고리를 엮는데 성공하여 이제 마나 회로 네 개, 4위계의 경지를 지닌 마법사가 된 것이다.
‘마법사로는 6레벨, 무인으로는 7레벨인가.’
상당히 괜찮은 성취다.
어느 한쪽으로도 크게 치우치지 않은 성장.
물론 전생의 왕국 마탑 마법사들처럼, 경지에 이른 실력자가 이 사실을 안다면 크게 다그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나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시간을 쪼개 탐욕을 부리냐며 핀잔이나 하겠지.
그러나 몇 번의 생을 겪은 나는 알고 있다.
양쪽 모두를 극한의 효율까지 뽑아 쓸 수 있으니, 어느 한쪽도 놓칠 이유가 없었다. 서로의 기운이 충돌하지 않는 심공도 익혔으며 수백, 수천만 크레딧을 줘도 못 사는 마법과 무공들이 머릿속에 잠들어있는 나만이 가능한 기예였다.
내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시간뿐이다.
다만, 지금까지는 평균 서른의 나이에 요절했지.
지그시 눈을 감았다.
회로 제작으로 진력이 빠져 나른해진 덕에, 상념에 잠겨들기 좋은 때였다.
피와 살이 되는 전생의 기억들과 경험, 훌륭한 재능과 자질까지 지니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단명하는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 생만 해도 반 바이오에서 뛰쳐나온 뒤, 벌써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던가.
항상 미래의 계획을 착실히 세워두어도 막상 스물, 서른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계획이고 뭐고 다른 세계로 쫓겨나 태아부터 시작하는 짓을 몇 번 반복해 보면, 장기적인 목적따위 없이 이리저리 떠밀려 방황하기가 참 쉽다. 내가 그랬다.
지옥같던 아포칼립스때의 악몽과 트라우마로 한 몸 지킬 힘을 추구한 것은 맞으나, 생각해보면 시간이 흐르고 생을 반복할수록 삶에 미련이라는 것이 점점 희미해져간 듯했다.
섬서 화산에 발을 들여 천봉매화를 꺾은 걸 생각하면, 그리고 제국의 세 별이 떨어뜨린 운석과 박치기를 하기 전에 칼을 꺼내어 목을 꿰뚫은 걸 떠올려 보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의 늙은 드워프 다르간트는 영감을 주는 존재였다.
혼을 깎아내는 듯한 단조 작업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의 격이 높아지는 듯한, 다른 이를 전율케하는 무형의 무언가가 그의 망치질에 서려 있었다.
그 기억에, 자연스레 감겼던 눈이 떠졌다.
탁-
새장 모양의 가스등을 다시 켰다.
희미했던 가스등이 점점 환해졌다.
“······.”
나는 품속의 회중시계를 꺼내 지그시 바라봤다.
아힘사가 나에게 잠시 맡겨둔 중고 회중시계.
가는 초침이 째깍소리를 내며 멀쩡하게 돌아갔다.
녹슬고 고장난 중고 회중시계를 즉석에서 고쳐서 팔아먹은 외알 안경의 주인장이 말하길.
[ 태엽을 너무 많이 돌리지 마세요. 태엽과 연결된 부품들이 마모되면 초침도 멈춥니다. 그때는 동력을 잃을 거라는 소리죠. ]
시계의 태엽을 너무 많이 돌리지 말라.
한데, 지금 내 태엽이 몇 번이나 돌아갔던가.
다섯 번의 생을 살았으니 벌써 다섯 번을 돌렸나.
정신이라는 나의 부품은 이미 마모된지 오래였다. 그렇다면 동력은 과연 언제쯤 잃어버리는 것인가.
아힘사를 향해 건넸던 말이, 내게도 통용될 줄이야.
한숨을 내쉬었다.
자그마치 160년을 살아온 드워프마저도 완벽한 존재가 아닌지라 평생 지우지 못할 미련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냥 운명이겠거니 하며 망나니처럼 굴다 뒈져도 상관없는 삶이 아닌. 진정한 사내가 삶을 대하는 자세였다.
잔잔한 호수에 돌덩이를 던져 파문을 일으킨 그의 단조. 다르간트는 금속덩이를 망치로 때린 것이 아니라 내 정신머리를 때려 핀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괜히 혼자 지껄이는 비약이다. 그러나 그 비약이 이상하게 기꺼웠다.
백 년을 넘게 살았더라도, 그 세월조차 뛰어넘은 사내 앞에서는 배울 것이 참으로 많구나.
그렇기에 나도 이제 그 위대한 사내처럼, 삶에 어떠한 미련을 가져볼까 한다.
생각을 마치자, 다르간트가 진력과 혼을 망설임 없이 쏟아부어 벼려낸 칼을 뽑고 싶어졌다.
스릉.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뽑혀 나오는 검.
검병이 손에 저절로 감겨들었으며 만년설처럼 새하얀 검신은 어슴푸레한 조명을 받아 밝게 빛난다. 어두운 세상을 반으로 나누는, 정말 빛으로 이루어진 선이 그어져 있는 듯했다.
이 칼이 얼마나 대단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건지, 대장장이가 아닌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리도 단단하고 야속한, 말 안듣던 금속덩이를 끝끝내 펴낸 다르간트는 알고 있을 것이다.
“헌데 아무리 그래도 광선검(光線劍)은 좀······.”
아니다.
검명 따위에 미련을 갖지 말자.
다르간트가 내려준 그대로, 광선(光線).
그래도 검을 빼니 나름 그럴듯하지 않은가. 그리고 강호의 별호에 항상 자리 잡고있던 광(狂)이 아닌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털컥-
나는 광선을 납검하고 창문을 열었다.
하하하—
검이 제자리를 찾아가자, 자연스럽게 박장대소가 터져나왔다.
이것은 발할라 산맥의 설산 꼭대기에서 억지로 꾸며냈던 박장대소가 아니었다. 가슴 속이 후련해질 만큼 시원한 웃음. 한랭했던 산맥 꼭대기보다 어째서인지 지금이 더 시원했다.
— 저기요. 그 안에서 뭘 하는 겁니까! 방에서 마약 하시는 건 절대 금지입니다!
내가 숙소가 떠나가라 손뼉을 치며 지랄발광을 하자, 급히 뛰어 올라온 숙소 주인장이 시끄럽다며 문을 두들겼다. 나는 주인장이 문을 두들기는 소리보다 더 더 크게 손뼉을 마주치며 한바탕 웃어넘겼다. 그 소리가 명인들의 단조 작업과도 같이 파장을 일으켰다.
하늘이 내린 손재주의 이족 난쟁이. 그 말이 정확히 맞구나.
금속만 두드려 펴는 것이 아니라, 사람 마음마저 두들겨 고쳐먹게 만들다니. 보통 손재주의 범주를 뛰어넘은 하늘의 사술이 틀림없다.
마탑주가 예상하길 연방의 시한이 30년쯤이라고 했나.
이 정도의 성취로 계속 성장세를 이룰 수 있다면 거기서 한 10년만 더 살아도 전생보다 월등히 더 높은, 새로운 초월의 경지를 개척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기에 나는 통크게 목표를 잡았다.
다 망해가는 연방의 시한을 10년쯤 늦추는 것으로.
그런 뒤 기분 좋은 얼굴로 우르드 에센스 병을 꺼내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아니지. 아직 아니야.”
당장 마신다면 정순한 내공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내공으로 갈음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보물이었다. 이걸 흡수한다고 하여 당장 8레벨의 경지를 밟는 것도 아닌데. 후에 막혀있는 깨달음의 벽을 강제로 뚫거나 환골(換骨)을 노려보아야 할 듯했다.
쾅!
그때, 방문이 굉음을 내며 강제로 개방되었다.
고급스러운 가죽 자켓을 입은 숙소 주인장의 시선은, 들어올 때부터 내가 꺼내둔 우르드 에센스 병에 고정되어 있었다. 수상할만큼 빛깔이 영롱한 액체. 오해하기에 딱 적당한 상황이었다.
주인장은 미간을 크게 찌푸리며 새된 고함을 빼액 질렀다.
“이거 봐요! 마약 하시면 안 된다니까! 당장 나가세요!”
* * *
그렇게 나는 에센스를 마약으로 오해한 주인장에 의해 숙소에서 쫓겨났다. 어차피 오늘이 엘프 마법사가 돌아오는 날이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역시나 하루 만에 돌아온 엘프 마법사는, 숙소 앞에서 하룻밤 사이 4위계에 올라선 나를 보더니 뾰족한 귀를 쫑긋거렸다.
곧, 청록빛 괴물에서 내린 그녀의 입이 열렸다.
“마탑주님이 널 좋아하는 이유가 있었네. 진짜 특이하구나.”
일레힌 포이체카의 얘기. 꽤 뜬금없는 말이었다.
“좋아해?”
“기분 탓일 수도 있어. 근데 심공을 배워익힌 이후로 조금 침착해지신 것 같더라. 아무리 당가주의 아들이라도 거긴 마탑이었어. 당연히 오만의 대가를 치렀어야 해. 본래 마탑주님의 성정이면 뇌를 헤집어서 백치로 만들었어도 그러려니 했을 텐데······.”
“그거야, 그날따라 기분이 좋으셨나보군.”
무선대지신공을 익히며 정신 수양이라도 되었는가보지.
아니면 죽을 위기에서 돌아온 뒤 사람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엘프 마법사는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몸을 뒤로 뉘었다. 마차들을 보관해두는 장소에 깔려있던 더러운 짚풀들이 움푹 들어갔다.
“그런데 너는 왜 영토 수복에 참여하고 싶어? 위험한데.”
마법사의 물음에 나는 정석적인 대답을 꺼냈다.
당연히 개소리였다.
“마탑주님께 은혜를 갚으려고.”
“웃기는 소리. 도망갈 거면 지금 도망가. 생각보다 너무 좋은 병장기를 줘서 지금 도망간대도 이상하지 않거든?”
“그런가.”
“응. 대장간에 있는 칼중에 아무거나 내어줘도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다르간트 아저씨가 직접 솜씨를 발휘해서 만들어줄 줄이야.”
나는 엘프 마법사의 혼잣말을 듣다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160세 드워프를 아저씨라 부를 정도라면 몇 살이라는 얘기인가. 아무리 봐도 젊은 여인의 얼굴인데. 엘프가 그 정도로 동안이라는 말인가.
“아무튼 좋은 검 얻은거, 늦었지만 축하해. 그런데······.”
엘프 마법사는 청록빛의 괴물을 살살 쓰다듬으며 말했다. 얼굴에는 웃음기가 서려있었다.
“한 번 써봐야 하지 않겠어? 영토 수복전에서 개시할 수는 없잖아?”
“음.”
그녀의 말에 약간의 동의를 표했다.
이런 명검을 쥐면 휘둘러보고 싶은 것이 이치.
나도 오랜만에 검을 진심으로 휘둘러보고 싶었다.
허나 절정에 이른 무력으로 검을 마구 휘둘러댔다간, 사람 몇 죽어나가기 딱 좋을 것이다. 딱히 죽여버릴 놈도 없고.
“마구잡이로 사람을 썰고 다닐 수는 없지.”
내 말에, 엘프 마법사는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야? 장벽 밖에서 써보면 되는 거잖아.”
장벽 밖이라는 소리에-
청록빛의 상어 괴물이 긴 혀와 꼬리를 낼름거렸다.
엘프 마법사는 즉시 뉘였던 몸을 일으키며 채비했다.
“말 나온 김에 바로 가보자, 여기는 개척가들이 장벽 바깥을 다 헤집어 놔서 다른 시티의 언데드 가득한 장벽 밖이랑은 조금 다르거든.”
좀비.
이번 세계에서는 모래폭풍을 타고 정크타운 17번가의 술집에 쳐들어왔던 그 놈과 연방의 격리시설에서 보았던, 좀비로 변절해가는 마법사를 마주친 것이 끝이다.
그런데 지금 장벽 밖으로 나가자고?
“······.”
직접 그것들을 보러 간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맥이 빠르게 뛰었다. 나는 지그시 광선의 검병을 붙잡고 한 손으로는 회중시계를 들었다. 째깍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두방망이질 치던 마음이 진정되었다.
그 순간, 엘프 마법사의 다음 말이 들려왔다.
“왜 그리 긴장해? 사냥하는 건 우리인데?”
철컥.
만면에 웃음기를 띤 그녀는 어디선가, 팔뚝보다도 두꺼운 펌프액션 산탄총을 꺼내 들었다. 마치 서부 개척 시대의 말타는 총잡이처럼. 청록빛 괴물에 올라탄 그녀의 뾰족한 귀가 기분 좋게 흔들렸다.
이윽고 그녀가 내게 팔을 내밀었다.
“얼른 타, 일레힌 마탑 막내 실력 한번 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