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퓨전펑크의 전생자-63화 (63/157)

#63화. 두 개의 검을 벼리다

#63화.

오색의 광채를 허공에 펼쳐내는 용광로의 쇳물.

금빛을 내던 그것은 지금, 훌륭한 명검들을 잡아먹은 뒤 다르간트의 기운까지 녹여낸 쇳물의 결정체가 되어 연신 오색빛을 뿌려내고 있었다.

— 기를 흘려라. 네 검을 만들어 줄 터이니.

기를 흘리라는 말은 내 기운을 주입하라는 말일 터.

그런데 기똥찬 명검조차 녹여버리는 저 쇳물을 나의 여린 팔이 버틸 수 있을까 모르겠다. 설마 6세대 나노로봇도 수복하지 못할 정도로 녹아내리지는 않을까.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 넣었다가 평생 사이버웨어 팔을 달고 살아야 하는거 아닌지 모르겠군.

“와아아······.”

하지만 귀를 쫑긋대는 엘프 마법사의 표정을 보면 병신이 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다르간트의 돌발적인 행동에 놀라기는 했어도 흡족해 하는 표정이다.

“호오······.”

그리고 칼드락 스미스 대장간의 주인, 칼드락도 그저 흥미롭게 상황을 바라볼 뿐 말리려 하는 기색이 아니었기에 나는 눈치껏 용광로를 향해 걸어갔다.

철퍽. 철퍽.

용광로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돌바닥은 녹아내려 진흙마냥 질척해져 있었고, 더운 숨을 들이쉰 폐는 사막처럼 바짝 말라 타들어 갈 듯했다.

나는 백 육십 먹은 드워프를 믿어보기로 했다. 마음을 굳게 먹고 고심없이 팔을 뻗었다.

아무 소리도 없이, 내 손가락부터 손목, 팔목까지 용광로의 불길 속으로 사라졌다.

끓어오르는 용광로 속에 팔을 집어넣자 루벤카의 홍염에 불타오르는 듯한 격통이 찾아왔으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시각에서 오는 가짜 환통임을 알게 되었다.

극렬히 몰아치는 용광로의 화마 속에서도 나의 팔은 비교적 멀쩡했다. 허나 그렇다고 하여 오래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렸다.

‘······아주 괜찮지는 못하군.’

치이이익······.

벌써 피부의 아래까지 불타고 있었으니까.

이거, 꾸물대면 아무것도 못 건진 채로 요양만 해야한다.

— 한번, 네 전심전력을 다해보거라.

다르간트의 말에 정신을 다잡았다.

“예.”

화아아악—!

대답과 동시에, 드넓은 대장간 내부의 뜨거운 열기가 나의 마나회로로 충만히 빨려들어왔다. 단전에서 잠자고 있던 절정의 내공도 둑을 무너뜨린 물줄기처럼 터져나와 기맥을 치달렸다.

기왕 하기로 한 것, 그의 말대로 전심전력을 쏟아붓고 퍼져버릴 생각이었다.

‘공력이 먼저다.’

검에 기운을 주입해 검기를 피어나게 하듯, 다르간트의 웅혼한 진력과 나의 기운이 용광로 안으로 콸콸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혼백과 육신을 싸그리 갈아 넣어겠다는 일념으로 공력을 주입했다. 무선대지신공의 공능으로 쌓은 정순한 내공들이 용광로의 화마에 스며들었다.

그에 발광하며 불길을 토해내는 용광로.

묵직했던 내 단전이 금세 텅텅 비어버리자, 이번에는 여유가 있던 마나 회로를 혹사할 차례였다. 세상의 마나를 충만히 머금고 있던 마나회로가 단박에 심장을 조여왔다.

짧은 시간.

가마 속에 맨몸으로 뛰어든 듯, 전신의 땀구멍이 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나 회로는 최대한 마나를 쥐어 짜내며 과열을 버텨냈으나 세 개밖에 없는지라 결국에는 이른 한계를 맞이했다. 회로와 단전을 번갈아가며 텅텅 비워내니 심신이 혼미해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 드워프의 위대함을 선명히 체감했다. 그는 아직까지도 웅혼한 진력을 줄기줄기 뽑아가며 용광로에 밀어넣는 중이었다.

‘바보 천치마냥 망설였구나.’

삼존(三尊)이 무력의 꼭대기에 앉아있다면···.

이 늙은 드워프는 대장장이의 길에서 그만한 위업을 달성한 전설일 것이다. 실로 경이로운, 경천동지할 정도의 진력이 불길에 숨을 불어 넣어가며 용광로를 태양처럼 달구고 있었다.

마공학 대장간의 체계를 잘 모르는 나라도, 저 신묘하게 변한 쇳물이 범상치 않은 일을 해낼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는 즉시 뒤로 물러나 운공했다. 여유가 된다면 조금이라도 더 기운을 쏟아붓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다르간트는 충분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 이미 훌륭하도다.

드워프 특유의 빳빳한 눈썹이 거세게 휘날렸다.

고집스럽기만 하던 그 입매가 호선을 그렸다.

적어도 부족한 것은 아니겠군.

잠시 뒤.

오색광채를 뿌리는 다르간트의 전신과 금빛과 청록빛, 푸른빛이 도는 용광로가 완벽하게 일체된 듯 보였다.

‘저 마력까지 빨려 들어갔나?’

그런데 와중에 꽤 선명한 청록빛이 눈에 띄었다. 나도 모르게 일레힌 포이체카 마탑주가 부여해준 마력까지 빼다 넣어버린 모양이다. 아니면 저 마력이 용광로 안으로 알아서 흘러 들어갔던지.

풍덩!

그때, 다르간트는 아까 모루 위에서 단조하던 의문의 금속 덩이를 끌어오더니 망설임없이 용광로 안으로 던져넣었다.

저 위대한 거인이 힘을 담아 내려친 거대 망치질에도 형태가 크게 바뀌지 않을 만큼 괴이한 금속. 일반적인 드워프라면 단조를 시도할 생각조차 불가능케 할 정도의 강성한 물질이 용광로의 쇳물에 닿자, 폭발하는 환한 광채에 눈에 멀어버릴 듯했다.

놀랍게도 거인의 망치질도 버텨낸 그 금속이, 저 신묘한 용광로 안에서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하릴없이 녹아내려 쇳물에 섞여들었다.

이후로도 내내 진력을 뽑아내 용광로에 퍼붓던 다르간트는 어느 순간, 달아오른 용광로를 번쩍 들어 올렸다.

곧, 나무 토막같았던 그의 손바닥이 시뻘건 화마에 휩싸였다. 대장간의 주인 칼드락은 그것을 보더니 저 뒤에다 대고 쩌렁쩌렁 소리쳤다. 크게 흥분해 붉어진 얼굴이 보였다.

“당장 천문을 열어라—!!”

칼드락의 고함이 끝나기 무섭게 대장간의 천장이 증기를 내뿜으며 가동하더니, 양쪽으로 활짝 열리기 시작했다. 어두운 하늘에 날아다니는 비공정이 보이려다가 순식간에 운무 속으로 사라졌다.

“!”

대장간 내부에 갇혀 가마처럼 절절 끓어오르던 용광로의 열기는, 바깥의 대기와 만나자 급격히 식으며 어마어마한 양의 운무를 만들어 냈다. 굉음을 내며 찬 하늘 위로 빨려 올라간 증기의 바다가 허연 구름을 만들어낼 지경이었다.

용광로와 대장간에서 연신 솟구치는 운무는 고절한 도인의 우화등선을 보는 듯했다. 대장간의 웅장한 대문보다도 높게 솟은 그것들은 하늘 위로 끝없이 불어났다.

다르간트는 운무가 조금 줄어들자 용광로를 거꾸로 뒤집었다.

거기서는 진득한 쇳물이 흘러내렸는데, 금속의 불순물로 보였다. 그는 불순물들을 걸러낸 뒤 다시 용광로를 뒤집더니 우락부락한 맨손으로 순도높은 쇳물의 정수를 훑어 꺼냈다.

훑어낸 쇳물의 정수, 사람 머리통만한 금속의 덩어리가 그 자태를 드러내며 사방팔방 빛줄기를 뿌렸다.

헌데.

콰앙!

금속의 덩어리는 담금질의 단계도 거치지 않았다.

손이 숯처럼 갈라진 다르간트는 용광로에서 훑어낸 그 덩어리를 판판한 모루 위에 던져버린 뒤, 곧장 집채만한 망치를 집어 들었다.

다르간트는 망치를 내려쳤다. 아니, 내려쳤을 것이다. 인간의 눈으로는 제대로 잡아낼 수 없는 속도였다.

콰과과광—

막대한 기파에 대장간 전체가 들썩이며, 오색의 불티가 천지사방으로 눈발처럼 날렸다. 하지만 덩어리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집채만한 망치가 다시 강하게 떨어진다.

이번에도 불티가 크게 튀며 빛나는 덩어리가 살짝 뭉개졌다. 그러나 그뿐이었고 저 덩어리는 신화 속의 금속이라도 되는 양 정정했다. 애꿎은 모루가 충격에 달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콰과과광—

또다시, 망치가 강하게 떨어졌다. 6레벨이든 7레벨이든 저 사이에 끼었다간 살아남지 못할 듯했는데, 야속한 금속의 덩어리는 대장간 내부가 기파에 휘말려 박살나는 와중에도 꿋꿋하게 버텨내고 있었다.

망치와 금속 덩어리의 승부.

금속 덩어리가 식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이대로라면 주어진 시간내로 저 금속을 다 펴내지 못할 성싶었다. 하지만 나는 실패하더라도 그리 아쉽지 않을 것이다. 오랜 역사를 걸어온 사내가 자신의 웅혼함을 태워내고 있었다. 전율적인 저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의 격이 높아지는 기분이었다.

지금, 다르간트는 혼과 기운을 벼려내고 있었다.

실패할지라도 그는 진정한 대장장이였다.

내가 그리 생각하던 시점이었다.

“내—!!! 망치 가져와라—!!!”

대장간의 주인, 칼드락의 포효가 들려온 때가.

그가 한 마리의 사나운 범처럼 포효하자, 바깥에서 열기를 힘겹게 뚫고 들어온 드워프들이 황동빛의 거대한 망치를 내려놓고 사라졌다. 바닥이 눌릴 정도로 육중한 망치가 칼드락의 손아귀에 잡혔다.

알 헤임달 4대 대장간의 주인, 명인 칼드락.

팔뚝을 걷어붙인 그가 모루의 반대편에 서서 망치를 들었다. 다르간트의 눈은 그러거나 말거나 오직 금속의 덩어리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이윽고 일정한 장단으로 떨어지는 다르간트의 망치질 사이 사이에, 태산같은 기운이 담긴 황동빛 망치가 벼락처럼 떨어져 금속 덩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천둥치는 굉음이 쉬지 않고 알 헤임달의 하늘을 떨어울렸다.

‘!’

칼드락이 힘을 보태자 변화는 생각보다 금세 일어났다.

경지에 오른 두 명의 대장장이가 번갈아가며 망치를 내려치니, 제아무리 대단한 금속 덩이도 더 이상은 구겨지지 않고 버틸 재간이 없었나 보다.

처음에 사람 머리통만한 크기로 뭉쳐져 모루 위를 달구던 금속은, 단조질에 점차 얇아지며 이제는 사람 손바닥보다도 얇게 펴져 있었다.

그럼에도 신묘한 빛깔만큼은 잃지 않았다.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고위도 지방의 하늘을 채운 극광(極光)과도 유사했다.

내가 감탄을 머금는 와중에도, 천둥이 연신 울렸다.

나중에는 모루를 받치고 있던 지면 전체가 폭삭 가라앉았고, 대장간의 모든 화로가 그들이 만들어낸 광풍에 휩쓸려 활활 타올랐다.

그러나 명인들의 묵묵한 망치질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금속 덩어리가 점점 검의 형상을 닮아갔다.

* * *

치이익······.

대장간의 바닥이 패여 증기를 내뿜는다.

누가 보면 운석이라도 떨어진줄 알 것이다.

아마 보수작업에 크레딧이 꽤 들어갈 테지.

“······.”

그리고 무너진 바닥을 밟고 서있는 내 손에는, 하나의 묵직한 검집이 들려 있었다. 용광로와 화마의 색을 상징하듯 밝은 홍색의 검집.

검병을 틀어쥘 때의 그 느낌이 실로 훌륭했다.

나는 그대로 검을 뽑았다.

스르릉—

이제는 나의 애병이 될 검이 뽑혀 나온다.

만년설처럼 새하얀 검신의 깔끔한 직도. 내가 공력을 조금 주입하자, 예리한 검신이 눈부실 정도로 빛나더니 어두운 녹빛과 푸른빛을 함께 띠었다. 또한 물아일체(物我一體)라 하여, 검이 마치 나의 팔처럼 느껴졌다.

무인에게 검이란, 평생을 함께할 벗.

검병만 쥐어보아도 알 수 있었다.

더 바랄 것이 없는 수준으로 어느 한 군데 부족함이 없었다. 명인들의 혼이 녹아들어갔으니, 감히 신병이라 칭해도 될 법한 대단한 명검이다.

전신을 찌르르 울리는 희열이 찾아왔다.

헌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내 경지라면 약간의 공력으로도 기의 아지랑이를 피워낼 수 있을 것인데, 지금의 검은 그저 빛무리와 청아한 검명만 내보일 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연히 흘러나가야 할 기운을 검이 잡아 가둔 것인가.’

확인해보기 위해 내공을 더 불어넣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공을 더 불어넣을수록 검은 숫제 광선처럼 변해갔다. 어두운 대장간을 환히 밝히는 일직선의 광원은, 청록색과 푸르스름한 색을 섞어놓은듯 했다. 전설속의 성검이 실존했다면 이랬을까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 검의 바깥으로 자연히 빠져나가야 할 기운을 검 안에 가둬놓는 이적. 내가 중원무림을 종횡무진하며 닿았던 초절정의 경지. 그 초절정의 경지에서도 극의에 이른 무인들에게 허락된 검기성강(劍氣成罡)처럼.

물론, 진짜 검강보다는 한참 모자라겠으나 상관없었다. 검기로 빠져나가는 내공을 조금이나마 아낄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이미 신병이었다.

중원무림에서 이름을 날렸던 대장장이들도 이런 이적을 보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금속에 기운이나 진기를 담아내 벼리는 것까지는 어찌저찌 가능한 일이나, 흘러나가는 기운을 가두어 위력을 높이는 검이라니. 듣도 보도 못했다.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내가 한참이나 검을 쥐고 있자.

“좋으냐.”

부서진 화롯가에 앉아있던 다르간트가 만족스레 끌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의 옆에는 상의가 불타버린 칼드락이 쓰러진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명심해라. 네가 직접 불어넣은 기운이 아니라면, 기운을 다시 토해낼 게다. 그러니 어디다 팔아치우지도 못할 게야. 이 다르간트의 진력이 들어갔으니, 칼드락 대장간에는 팔 수 있겠구나.”

괜한 흰소리다.

어떤 무인이 이런 보물을 팔아 넘기겠는가.

나는 다르간트의 앞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어르신. 검의 이름을 내려주시지요.”

“광선검(光線劍)으로 하거라.”

“검명은 그냥 나중에 제가 따로 짓겠습니다.”

“네놈 마음가는 대로 해라. 대장장이는 이미 내어준 병기에 미련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

다르간트는 대수롭잖게 말했다.

그런 뒤,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내가 뭐 썰어볼 것 없나 주변을 기웃거리던 차에, 말없이 조용히 뭔가를 생각하던 다르간트가 고개를 돌렸다. 회한이 가득한 얼굴에 잡힌 깊고 어두운 주름이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다르간트의 심해처럼 깊은 눈동자는 아힘사를 정확히 직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허나 미숙했던 시절에 미련이 남는 것은, 나라도 도저히 떨쳐낼 자신이 없구나. 사흘 뒤에 다시 찾아오너라. 내 그때까지 검을 하나 더 벼려놓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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