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알 헤임달의 늙은 대장장이 (무료 마지막)
#61화.
쿠구구궁—
저 멀리, 거대한 굴착 중장비는 도로의 양 면을 점거하다시피 하며 궤도를 굴렸다. 내가 지상을 다 밟고 지나가겠노라, 새까만 연기를 무한히 피워 올리는 그 괴물은 둔중한 철갑으로 지면을 끝없이 밀어냈다.
와중에 나는, 눈앞의 뾰족한 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엘프?”
“응.”
힘 빠지는 마법사의 답변에도 왜 엘프인걸 진작 말하지 않았지? 같은 의미 없는 말은 뱉지 않았다. 엘프면 어떻고 인간이면 어떤가. 이 엘프는 마탑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마탑주 일레힌 포이체카의 신임을 받는 마법사이자 나와 같이 전장에 내던져질 동료일 뿐이다.
“그랬군. 그런데 여인이었나.”
“응, 그게 왜?”
마탑의 구성원끼리는 마나 팔찌의 운무 효과로 정확한 외형을 알 수 없었으니. 무언가 중성적인 느낌을 보인다 싶었는데, 여인이었군.
이 엘프 마법사는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하지만 보통 엘프들은 같은 나이대의 인간보다 월등히 젊어 보인다. 그래서 나이를 얼마나 먹었는지 외형만으로는 알 수 없다. 마법사로 이룬 경지가 굉장히 높으니 최소한 오십 년 이상은 살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제 그만 출발하시, 아니. 할까.”
“?”
나는 순간 말을 높이려다가 말았다.
조금 일찍 죽었다 뿐이지, 전생까지 합쳐 백 년을 훌쩍 넘게 산 사내가 바로 나다. 중년으로 추정되는 이 엘프라도 나보다는 한 수 아래다.
“그래, 타.”
나는 다시 청록빛 괴물의 등판 위에 올랐다.
알 헤임달 스테이션 근처의 길바닥은 여기저기 더러운 오물이 떨어져 있어 대부분의 주민은 굽이 꽤 높은 부츠를 신고 다녔다. 더군다나 이 근처는 상공을 메운 비공정들의 분진과 매연이 특히 심한지라 다들 얼굴이 꼬질꼬질했다. 빨리 이 더러운 구역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를 등에 태운 청록빛 괴물은, 마공학 대장간을 향해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
알 헤임달은 크게 다섯 구역으로 나뉜다.
동서남북과 중앙 구역.
각각의 구역이 발두르 시티보다 면적이 크다. 그중 엘프 마법사가 아는 마공학 대장간이 있다는 곳은 시티의 남쪽으로, 이족 난쟁이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다.
나는 쾌속하게 달리는 괴물 위에서 도시의 풍경을 구경했다.
중세와 근대의 지구에서 증기선 같은 소품들만 붙여놓은 듯한, 어찌보면 지구의 산업혁명 시절과도 비슷한 도시의 분위기가 겪어본 적도 없는 가상의 향수를 자극했다.
그때, 웬 거대한 그림자가 머리 위로 졌다.
위를 올려다보자 칙칙하고 어두운 하늘에서 빨간빛을 내며 떠다니는 비공정이 증기를 힘차게 뿜어내고 있었다.
비공정들의 그림자는 쉴 새 없이 나타나 안 그래도 어두운 하늘을 또 가렸다. 허공을 유유히 비행하는 저 고래들은 석탄을 잔뜩 처먹고서 이를 닦지도 않는지 연신 새까만 가루를 벚꽃처럼 흩날려댔다. 가끔 엄청난 양의 먼지가 덩어리진 채 지상으로 떨어졌다.
쿵···
나는 다시 고개를 내렸다.
길거리에는 자동차 외에도, 소음이 심한 마차들이 많았다.
아니, 마(馬)차라고 하기는 힘들었다. 뒤에 달린 수레는 말이 아닌 웬 파이프와 고철로 이루어진 기계짐승들이 끌고 있었으니까.
그들은 달리다가 가끔 숯덩이를 꺼내어 먹었는데, 이내 트림을 하듯 까만 매연을 훅 뿜어낸 뒤로는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석탄일 것이다.
알 헤임달에서 나는 석탄과 가스의 품질은 매우 훌륭한데다, 땅을 파면 흙 대신 석탄이 나올 만큼 흔한 동네.
가스와 기름 역시 마찬가지라 이 알 헤임달의 선조들은 양질의 천연자원을 마음껏 퍼다 썼고, 그 덕분에 이렇게 독자적으로 발전했다고 들었다.
다른 시티의 선진 기술? 여기선 별로 알아주지 않는다. 어차피 집 앞 마당을 파면 나오는게 석탄이라 그걸 쓰는게 값싸면서도 효율은 더 좋다. 연료 사용으로 생기는 매연을 지적할 환경단체도 여긴 없다.
전기도 발전소에서 석탄을 태워 만든다. 축복받은 천연자원으로 돌아가는 도시인 셈인데, 요즘은 그래도 몇백 년이나 펑펑 써댄 탓에 예전보다는 생산량이 많이 줄어들었다던가.
면적은 연방 도시 중 가장 큰 편에 속한다. 산맥 위에 세워진 발할라 시티보다도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것은 장벽 바깥의 외부 구역들까지 시티의 영역으로 치기에 그렇다.
알 헤임달은 다른 도시들보다 개척에 적극적이다 보니, 수많은 개척가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고, 장벽 밖으로도 이미 상당히 넓은 땅을 수복해두었다. 거기다가 새로 높은 장벽을 세워 알 헤임달의 위성도시를 만든다던가 하는 소문이 무성했다. 지금도 대대적인 영토 개척을 준비 중일 것이다.
철컥철컥—
우리가 달리던 중간, 철도와 기관차가 시선에 들어왔다.
간이역으로 보이는 철도 위에 커다랗고 긴 증기 기관차가 정차해 있었는데, 그 옆으로 달려온 꼬질한 사람들이 기관차의 창에 붙어 승객들에게 무언가를 판매하고 있었다. 물이나 음식, 기념품 등으로 보였는데 정작 사는 승객들은 많이 없었다.
거기서 조금 더 달리자 꽤 규모있는 도시와 시장이 나왔다. 엘프 마법사는 청록빛 괴물을 수고했다는 듯 쓰다듬으며 멈추게 했다.
“여기서 잠깐 쉬었다가 다시 출발하자. 얘 먹을 것도 챙겨줘야 하거든.”
“알았다.”
엘프 마법사가 괴물을 이끌고 잠시 사라졌다.
우리는 뜻하지 않게 알 헤임달의 시장을 구경하게 되었다.
온갖 물건들을 깔아놓고 파는 고전적인 좌판들과 상점이 혼합되어 있었는데, 소규모 골동품과 그림들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유독 많았다. 나는 혹시 법부적같은 건 없나 살펴보았지만 당연하게도 헛수고였다.
“?”
그런데 어느 상점 지나가던 때, 아힘사가 한곳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중고 회중시계를 고쳐 파는 시계 상점이었다.
철컥.
나와 아힘사가 상점 앞에 이르자, 나이가 지긋한 외알 안경의 주인장은 구경하란 듯 하던 작업을 멈추곤 어디선가 녹슬고 멈춘 회중시계를 꺼내어 앞판을 열었다.
안쪽은 하도 녹슬어서 얼마나 오래됐는지 알 수 없었으나, 그는 먼지를 털고 고장난 파츠들을 능숙히 갈아 끼운뒤 외부의 때까지 벗겨내곤 멋들어진 밑가죽을 씌웠다.
주인장은 마지막으로 회중시계의 더러운 렌즈를 후후 불어 닦고 광까지 낸 뒤, 금속태엽을 힘차게 감았다.
째깍. 째깍.
열쇠줄이 달린 회중시계는 순식간에 멀끔해져 초침 소릴 냈다. 먼지때와 녹에 숨겨져 있던 외관의 화려한 황동 장식도 다시 드러나 오묘한 빛을 냈다.
비록 내부의 부품은 이전보다 좋지 않은 양산품으로 갈아 끼웠지만, 본래의 고풍스러웠던 모습을 조금이나마 되찾았다. 처음부터 그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던 아힘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 회중시계는 마치 나와 같지 않습니까?”
아힘사는 갑자기 이럴 때가 가끔 있다.
나는 조용히 아힘사의 그 말을 들어주었다.
자색빛의 눈동자는 감길 생각을 하질 않았다.
“나처럼 언젠가 시간이 멈추었지만, 녹이 슬고 문제가 생긴 부품을 갈아 끼운 뒤 태엽을 돌려주면 초침은 다시 멀쩡하게 돌아갑니다. 태엽과 연결된 스프링이 끊어져 동력을 잃지 않는 한, 회중시계의 초침은 언제든 다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진정한 열반이라는 동력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태엽을 돌려주는 사람만 있다면 아힘사도 계속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그 말에 외알 단안경 돋보기로 고친 시계를 살펴보던 주인장이 시선을 돌렸다. 그는 회중시계를 말없이 집어 건넸다.
아힘사는 회중시계를 받아 금속태엽을 한번 길게 돌린 뒤, 경쾌히 째깍대는 초침 소리를 들으며 오도커니 서 있었다.
마탑에 있는 동안도 아힘사의 인공지능은 꾸준히 학습을 반복했을 텐데, 그 몇 달간의 시간이 어떤 방향으로 아힘사를 이끌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내가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살래?”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자.”
현역 때는 꽤 걸출했던 회중시계였던지, 생각보다 꽤 값을 크게 치뤄야 했으나 마음 쓰지 않고 지출했다. 아힘사는 구입한 그것을 받아 태엽을 몇 번 끼적거리더니, 시곗줄을 옷에 묶고 소중히 품속에 넣었다.
그 순간, 주인장이 지나가는 소리로 말했다. 손님인 우리에게 건넨 첫 마디였다.
“태엽을 너무 많이 돌리지 마세요. 태엽과 연결된 부품들이 마모되면 초침도 멈춥니다. 그때는 동력을 잃을 거라는 소리죠.”
아힘사는 잠시 멈춰서 그 말을 곱씹다가, 고개를 순순히 끄덕이곤 발걸음을 돌렸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청록빛 괴물을 탄 엘프 마법사가 돌아왔다.
괴물의 입가에는 검붉은 액체가 잔뜩 묻어있었다. 아무튼 우리는 다시 괴물위에 올라 남쪽으로 향했다. 한 시간 이상을 기관차보다 빠르게 달리자 마공학 대장간이 있다는 남쪽의 소도시에 이를 수 있었다.
길거리에는 꽤나 태가 나는 건물과 공방들이 많았다. 엘프 마법사는, 이 소도시가 남쪽에서 가장 번영한 구역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그 소도시를 돌아다니다 사단법인 태도철장(太刀鐵匠)이라는 건물의 현판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저 문구를 어디서 봤나 했더니, 친씨아의 총포점에서 구매했던 합금압축도의 제조사인 것이 문득 떠올랐다. 장인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든다던가? 산 넘고 좀비 건너왔을 그 압축도를 7만 크레딧에 구매해 적당히 써먹었었지. 그 칼로 썰어넘긴 몸뚱이만 몇 개 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태도철장에 관해 자세히 묻자, 엘프 마법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기는 잘 못 만드는 곳이야. 다른 시티에서는 몰라도 알 헤임달에서는 질 낮은 양산품 만드는 걸로 유명하거든.”
“그렇군.”
나는 꽤 쓸만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알 헤임달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모양이다.
우리는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소도시의 대로를 따라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 엘프 마법사가 말했던 마공학 대장간에 드디어 이를 수 있었다.
그런데, 마공학 대장간이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나는 그 대장간의 수상하게도 웅장한 입구 외벽과 하늘 높이 솟아있는 대문의 크기를 바라보다 물었다.
“여기가 가성비가 좋다는 마공학 대장간이 맞나?”
“응, 나한테는 가성비가 좋던데?”
황당했다.
가성비가 좋기는 무슨.
알 헤임달 시티의 4대 대장간인 ‘칼드락 스미스’ 가 가성비가 좋은 곳이라는 얘기는 오늘 처음 들었다. 여긴 심지어 기업형 대장간 칼드락 스미스의 악명 높은 본점 아닌가?
이 대장간과 대장간의 주인은 더럽게 까탈스럽기로 세간에 유명했다. 검 제작하는 실력이 괜찮고 가성비가 좋은 이족 난쟁이들을 많이 안다더니, 아예 4대 대장간의 본점으로 데려올 줄은 몰랐군.
그만큼 보유한 명검과 보검들은 많겠으나, 내가 가진 크레딧으로는 어림도 없을 터.
“분명 백만 크레딧밖에 없다고 말했잖아.”
“아~그거면 충분하니까 걱정하지 마. 진짜 잘 알고 있는 마공학 대장장이가 안에 있거든.”
“······.”
허나 엘프 마법사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자기 귀를 쭉쭉 잡아당기며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녀를 따라 칼드락 스미스 대장간 안으로 들어가자, 카운터나 로비 따위는 없었고, 그저 커다란 수십 개의 화로들과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초거대 용광로가 떡하니 한 눈에 들어왔다. 말 그대로 대장간. 그 자체였다.
콰과과광—
그리고 대장간의 가장 안쪽 공간에서는 웬 천둥치는 소리가 터져 나오며 장내를 울렸는데, 나는 그 무겁고 진한 마력을 흩어내려 숨을 천천히 쉬었다. 어떠한 경지에 오른 존재가 이 대장간의 안쪽에 있었다.
대장간의 안쪽은 용암보다 뜨거운 열기가 메우고 있었다. 우리가 천천히 걸어 들어가자, 많은 이족 난쟁이들이 각자의 화로 앞에서 연장을 날카롭게 벼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와중에 엘프 마법사는 등에 이고 있던 재료들을 자연스럽게 내려놓았다.
“나 왔어요~”
— 오셨습니까!
— 오셨습니까요!
그러자 얼굴이 붉고 우락부락한 이족 난쟁이, 그러니까 서열이 조금 낮아 보이는 ‘드워프’들이 후다닥 달려와 재료들을 신중히 감정했다. 역시 꽤 품질이 좋은 금속인지 다들 흡족해하는 눈치였다.
“이제 가자. 더 안으로 들어가서 인사드리고 와야 해.”
재료를 내려놓은 엘프 마법사는 천둥소리가 터져나오는 쪽으로 나를 이끌었다. 엘프 마법사를 뒤따라가면서도, 안쪽에서 연신 들려오는 천둥소리에 전율이 일었다.
칼드락 스미스 대장간의 가장 안쪽 공간.
그곳에 이르자, 시야에 어떤 작달막한 드워프가 보였다. 집채만큼 거대한 쇠망치를 든, 작달막한 드워프.
곧, 그 작달막한 드워프가 들고 있던 쇠망치가 공기를 찢어내며 벼락과도 같이 떨어졌다. 천둥 터지는 소리와 동시에 뭉근했던 모루 위의 금속이 미세하게 우그러져 형태를 잡았다.
나는 앞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적당히 막아내며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드워프의 주변으로는 광풍이 불어치며 용광로의 열기와 어우러졌다. 그 작달막한 드워프가 휘두르는 망치에는 강맹하고 단단한 기(氣)가 터질듯 담겨있었다. 기운의 조각들은 망치가 내려쳐질 때마다 조금씩 깎여나가며 모루 위 금속에 스며들고 있었다.
달인의 경지에 이른 대장장이의 단조(鍛造)작업.
용광로의 열기마저 그가 만들어낸 광풍에 밀려났다. 사방으로 공기를 밀어내며 세를 뻗친 광풍은, 다시 대장장의 주위로 밀려들어 가다가 또 다시 터져나온 광풍에 밀려나기를 반복했다.
종국에는 밀려들어오는 열기와 밀려나는 열기가 하나의 와류를 만들어내며 그의 주변에 있는 쇠붙이들이 광풍의 와류에 떠밀려 허공을 날아다녔다.
콰과광!!
망치와 금속의 마찰로 시뻘겋고 흉흉한 불티가 일어날 때마다 장내가 대낮처럼 환해졌다. 터져나온 불티는 그 드워프의 몸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듯 흩날렸다. 그러나 그 대장장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망치를 내려쳤다.
하나 얼마나 단단한 금속인지, 저리 거대한 망치에 강맹한 기운을 담아 내려쳤는데도 처음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 작달막한 드워프의 망치질은 이내 멎어들었다.
“······.”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은 드워프는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엘프 마법사를 슬쩍 보더니, 모루 옆에 딸린 작은 화로에 털썩 앉았다. 그는 곧이어 커피로 보이는 가루를 입에 양껏 퍼넣은 뒤, 끓는 물 주전자를 집어 입 안에 들이부었다.
촤아악—
드워프의 입 안에서 커피가루와 끓는 물이 만나며 부글부글 조화를 이루었다. 그 이색적인 모습을 목도한 나는 속으로 그를 좋게 평가했다.
‘사내로군.’
그때, 끓는 커피를 꿀꺽 넘겨버린 그 드워프가 엘프 마법사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입을 열었다. 걸걸한 음성이 열기처럼 내리깔렸다.
“네가 인간 사내를 다 데려오고. 집행관 일 한다는 멀대 이후로 처음이구나.”
그러자 엘프 마법사가 퉁명스레 대꾸했다.
“그 인간 얘기는 꺼내지도 말아요.”
“쯧, 그놈 딸이라고 오냐오냐했더니 말버릇이 아주.”
말대꾸에 드워프의 주름진 얼굴이 구겨졌다.
엘프 마법사는, 그 상황을 빙글빙글 웃어 넘겼다.
“그나저나 다르간트 아저씨, 잘 지내셨어요? 제 아버지는 잘 지내고 계신답니다.”
“네 소식 들었다. 마탑에 들어갔다지.”
“그건 한참 오래전 얘기인걸요.”
“오래되긴, 백 육십먹은 늙은이 앞에서 오래되었다고 말하려면 백 년쯤 된 골동품은 가져와야 할 게다.”
드워프가 그리 대답을 마친 순간이었다.
그의 열기 가득하고 단단한 눈동자가 잠깐 아힘사에게로 향하나 싶더니, 그 신형이 자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절정 경지에 오른 내가 낌새를 눈치채기 힘들만큼 빠른 속도였다.
“······.”
분명 모루옆 화로에 앉아있던 그는, 찰나의 순간마저 쪼개어 아힘사와 내 앞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해 있었다. 키가 작은 그 드워프는 아힘사를 올려다보며 느닷없는 말을 꺼냈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조금 오래된 게지. 헌데-”
곧, 드워프는 솥뚜껑보다도 두꺼운 손을 내밀더니 아힘사를 도자기라도 만지듯 조심히 어루어 만졌다. 일견 섹스토이를 희롱이라도 하는 듯 보였으나, 그의 구겨지는 이마 주름이 희롱이 아님을 증명했다.
이윽고.
아힘사를 어루어 만지던 드워프의 전신에 맺혔던 땀방울들이 단숨에 끓어올라 증발하더니, 용광로보다 더한 열기가 전신을 뚫고나와 화마처럼 타올랐다. 그의 이마 주름은 너무나 구겨진 탓에 더 구길 방도가 없어보였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아저씨?”
엘프 마법사가 의아한 얼굴로 묻자, 대장장이 드워프는 굉장히 언짢은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그의 입에서 우렁찬 호통이 튀어나와 대장간을 쩌렁쩌렁 울렸다.
“···앙굴리마라. 내 손으로 직접 제작한 것인데 어떤 빌어먹을 놈이 덧만졌길래 행색이 이따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