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안녕, 알 헤임달
#60화.
마법사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발할라 시티에 내려가 볼 일이 있다.”
“그렇구나. 어라, 근데 너 그 마력—”
한데 그 순간.
“?”
아힘사가 갑자기 내 앞으로 빠르게 끼어들더니 다가온 마법사를 가로막았다. 반가운 기색으로 가까이 다가오던 그는 아힘사를 보곤 멈칫했다.
녀석이 앙굴리마라 시절의 추억에 젖어 마법사를 썰어버리려 하면 어쩌나, 하고 노심초사하던 차에 아힘사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딱딱했지만, 매력있는 섹스토이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공세를 취하기 직전의 마력이 느껴집니다.”
자줏빛을 내는 아힘사의 눈동자가 한번 번뜩였다.
그러자 다가오던 마법사는 그런 아힘사를 슬며시 흘기더니, 멋쩍은 제스처를 취했다.
“···마탑주께서 본신 마력을 내려준 게 신기해서 확인해보려고 마력을 잠깐 흘린 건데. 공격하려던 건 줄 알았나봐. 반응 진짜 빠르네.”
그야, 마법사를 죽이기 위해 탄생한 병기라 마력에 관해서는 놀랄 정도로 예민할 수 밖에 없겠지.
“아힘사. 괜찮다.”
“그렇습니까.”
나는 아힘사의 오해를 풀어주고는, 친한 척 다가온 마법사에게 병장기를 구하러 발할라 시티의 업무지구로 가려던 참이라 짧게 설명했다.
그런데 내 설명을 다 듣고 나자, 마법사는 느닷없이 어떤 제안을 건네왔다.
“그래? 나 마침 알 헤임달에 가는 길인데. 같이 갈래? 좋은 검을 구할 생각이라면 발할라보단 거기가 훨씬 낫지.”
청록빛 괴물의 머리 위에 앉아있는 저 마법사는, 이전보다도 내게 더 호의적인 기색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함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기이한 기분에 잠깐 자리에 멈추어 서보니.
나도 지금 저 마법사에게 원인을 알 수 없는 연대감이나 결속감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곧, 무언가 생각난 나는 두 팔을 내려다보았다. 두 팔에서는 청록빛의 마력이 어슴푸레하게 빛나고 있었다. 일레힌 포이체카가 서재의 비밀 공간에서 부여해준 마력이었다.
음, 이런 거로군.
마탑주의 마력을 부여받은 다른 이들과 동화되는 기분.
그런데 저 마법사는 이런 결속감을 느끼면서도 루베르겐 집행관과 그리 앙숙처럼 굴었던 건가? 무슨 사정인지는 몰라도 그건 그것 나름대로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적당히 상념을 끝내고, 마법사에게 되물었다.
“알 헤임달 시티?”
“응, 장벽 밖으로 나가기 전에 병사들이 쓸 마공학 병기들을 제작하러 갈 거거든. 뭐 다른 일들도 좀 있고.”
마법사는 등에 바리바리 이고있는 마공학 금속 재료들을 내보이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저자가 타고 있는 청록빛 괴물이 ‘알 헤임달의 짐승 부스러기’ 라고 했던가.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저 마법사는 알 헤임달 시티와 깊은 연관이 있는 모양이었다.
연방의 알 헤임달 시티라···
나는 짧게 생각에 잠겼다.
사실, 저자가 한 제안은 꽤 솔깃한 제안이었다. 무인에게 병기는 곧 자신의 분신과도 같다.
그리고 내가 지금 구하러 가려던 병장기, 특히 칼이나 창같은 냉병기의 제작과 관련해서는 알 헤임달 시티의 이족 난쟁이들이 단연 으뜸이었다. 당장 내 옆에 있는 아힘사도, 과거의 솜씨좋은 이족 난쟁이들과 무림계의 기업들이 협심해 제작한 전쟁병기니까.
운이 따라준다면 엄청난 신병이기(神兵利器)를 얻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빠지기 충분했다.
그러나, 저자의 제안은 거절해야만 했다.
“아무래도 알 헤임달 시티까지 가는건 힘들겠군. 시간이 많지 않아서.”
아쉽게도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여기서 알 헤임달 시티까지 가려면 캐리어를 타도 왕복으로 사흘은 잡아야 한다. 발두르 시티와 발할라 시티간의 거리보다는 가깝다곤 하지만, 쉽게 오고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심지어 이 높은 산맥에서 스테이션까지 내려가는 시간도 꽤 걸릴 터.
내겐 보름 정도밖에 시간이 없는데, 사흘이라는 아까운 시간을 캐리어 위에서 내버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병장기를 구하는 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중 하나일 뿐, 네 번째 마나 회로도 제작해야 했고, 절정에 올라 감각이 달라진 육신에 적응까지 마쳐둬야한다. 우르드의 에센스도 제대로 흡수하려면—
역시 거기까지 가는 건 힘들겠어.
“응?”
그런데 내가 거절 의사를 표하자, 마법사는 곧바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청록빛의 괴물도 찢어진 주둥이를 모로 꺾으며 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탑주님의 마력을 받은걸 보면, 마탑의 일원으로 이번 연방의 수복전에 참가하는 것 같은데. 맞아?”
“맞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재차 물어왔다.
“칼 사는데 크레딧을 얼마나 쓸 생각인데?”
“백만 크레딧 정도.”
“흠, 백만이라···.”
그간 정크타운에서 등평위가 꾸준히 보내왔을 크레딧도 계좌에 잠들어 있을 테니, 백만 크레딧 이상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르드의 에센스를 팔면 대단한 부자가 되겠지만, 그것은 등신만도 못한 짓이고.
내가 혼자 그리 생각하던 때, 마법사는 청록빛의 괴물을 사랑스럽게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얼마나 쓰레기 같은 칼을 사려고 그래?”
“?”
그 말이 귓전을 울렸다.
이윽고 마법사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거의 열변에 가까운 말들을 토해냈다.
“백만 크레딧이 엄청난 거금은 아니지만, 그 돈이면 양산품 검 따위를 사는 것보다 맞춤 제작을 하는게 더 나아. 발할라에 있는 프렌차이즈 총포상이나 사설 경매장에 쓸만한 양산품 칼이 얼마나 있겠어. 게다가 여긴 기사들이 쓰는 롱소드 말고는 제대로 만들어 파는 게 없을걸. 넌 기본적으로 무인이잖아. 여긴 무인들이 쓰는 검 안 팔아.”
마법사와 기사들의 도시라, 무인의 검을 홀대한다.
나오면서 차마 그것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마법사가 뱉는 말에 귀를 더 기울였다.
“물론 발할라 시티에도 좋은 야장들이 많지만, 마공학 무기쪽으로는 차라리 내가 낫고 냉병기 쪽으로는 이족 난쟁이들을 따라갈 기업이 없거든. 네 옆에 있는 걔도 이족 난장이들이 만든 것 같은데. 맞지?”
앙굴리마라인 것까지는 모르더라도 아까의 일로 대강은 눈치채고 있었던 듯 싶다.
혹여 이 마법사의 혈족이나 친지가 앙굴리마라에 의해 죽어버린 건 아닐까 잠깐 근심걱정이 들었으나, 앙굴리마라들이 한참 활동하던 시절은 너무도 과거이기에 곧 마음을 놓았다.
마법사는 사랑스럽게 괴물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는 알 헤임달 시티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우리가 가야 하는 곳은 시티 장벽 밖이야. 한번 생각해봐. 전장에 나가면 네 옆에는 아무도 서지 않으려 할 걸. 싸구려 칼을 꼬나쥐고 있는 놈을 어떻게 믿어? 빚이라도 내서 좋은 무기를 구해야 할 판에······”
말 끝을 흐린 마법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허나 그 뒤로도, 그의 열띤 설득은 계속 이어졌다.
나는 저 오지랖 넓은 마법사가 토해내는 열변을 열심히 주워 섬겼다. 듣기로 알 헤임달에서 애용하는 마공학 대장간이 있다고 들었다. 또한 검 제작하는 실력이 괜찮고 가성비가 좋은 이족 난장이들을 많이 안다던가.
마공학 병사들을 자유자재로 제작해 다루는 것도 그렇고, 애당초 그쪽으로 조예가 깊은듯 보였으니, 그가 보기에 내가 답답할만도 했겠군.
— 그리고 알 헤임달까지도 얼마 안 걸려. 네 생각보다 빠를걸?
무엇보다 개인 캐리어까지 보유하고 있다고 해버리니, 뭐라 반박할 건덕지가 없었다.
“알았다.”
“봐, 네 생각에도 내 말이 맞지?”
결국 나는 그와 알 헤임달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마법사는 꽤 만족스러운 기색으로 타고있던 괴물의 등을 팡팡 두드리고는 후드를 뒤집어쓴 뒤, 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하려는 듯 꽁꽁 싸맸다.
“타. 스테이션으로 가게.”
“이걸 타고 가자는 건가?”
“응. 그냥 꽉 붙잡으면 끝이야. 쉬워.”
드높은 산맥을 내려가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일단 마탑을 빠져나온 뒤, 크륵 거리는 청록빛의 거체. 그러니까 알 헤임달의 짐승 부스러기로 불리던 이 괴물을 꽉 붙잡고선.
쐐애애액—
깎아지른 산맥의 절벽 밑으로 뛰어내리면 되었다.
“워후!”
이래서 그랬군.
치사하게 자기만 따뜻하게 내려가려고 두꺼운 후드를 뒤집어쓴 그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장 귓구멍이 뜯어져 떨어질 것만 같았다.
······미리 말을 좀 해주지 시발.
어찌됐든 전신이 허공에 부웅 뜨는 감각과 함께, 아찔한 빛줄기를 내는 산맥 밑의 도시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간 많은 생을 겪었지만 해발고도 일만 미터가 넘는 산맥 봉우리에서 줄 없이 뛰어내린 적은 지금이 처음이다.
마탑의 신기루가 자리하고 있던 장소가 순식간에 멀어지자, 마법사가 옆에서 희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차로 내려가는 것보다 이게 백 배는 빠를걸!”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군. 전신에 감각이 사라졌지만 빠르기는 하니 참 좋다.”
산맥을 올라올 때는 차량으로도 몇 시간이나 걸렸다. 절벽 안쪽으로 난 도로를 뱅글뱅글돌며, 공무용 차량의 타이어가 너절해질 정도로 달렸어야 했는데 지금은 벌써 절반쯤 떨어져 내렸다.
쿠직- 쿠지직-
한랭한 골짜기 위로 몰아치는 칼바람을 뚫고 절벽 아래로 신형을 던진 이 청록빛의 거체는, 빛살처럼 떨어지다가 어느 순간부터 꼬리를 절벽에 박아 넣으며 강하하는 속도를 조절했다. 고도는 눈에 띄게 낮아졌다.
그렇게 청록빛 괴물에 탑승한 우리는, 고작 한 시간 만에 발할라 시티 스테이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치이익-
빙하처럼 꽝꽝 얼어붙은 내 머리카락과 옷이 스테이션의 열기에 녹아내리는 소리였다. 내 앞에 탔던 아힘사는 거의 얼음 인형이 되어 있었는데, 긴 속눈썹 위로 고드름이 내려와 있을 정도였다.
아무튼 발할라 스테이션부터는 일사천리였다.
— 바로 입장하시면 됩니다.
마법사가 청록빛의 마력을 내보이며 입술을 움직이자, 발할라 스테이션을 지키는 이들은 두말할 것 없이 꾸벅 예의를 갖추며 길을 비켜섰다. 거체의 괴물이 일행 중에 있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당연히 거쳐야할 검문검색 역시도 없었다. 우리는 루베르겐 집행관과 상선의 캐리어를 타고 발할라 선적장에 내렸을 때보다 더욱 쾌속하게 스테이션을 통과할 수 있었다.
이 괴물을 다루는 마법사는 루베르겐과 투닥댈 때부터 느꼈지만, 확실히 보통은 아닌 인간이었다.
그렇게 스테이션을 통과해 안쪽으로 들어가자.
발할라 스테이션 내의 격납고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헬리콥터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매우 고급지고 화려한 소형 캐리어였다.
“어때?”
마법사의 개인 캐리어 외관은 실로 휘황찬란하여, 연방의 중요한 인사들이 공무때 타는 배속 캐리어를 보는듯했다. 게다가 마법사가 캐리어에 손을 갖다대자, 캐리어의 외장갑이 투명해지며 그 윤곽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광학미채(光學迷彩)기술까지 적용된 캐리어라면······상선의 화물 운송용 캐리어들과 비교가 불가능하겠군. 그 공중 항모같이 뚱뚱하던 캐리어에 비해 적어도 서너배는 빠를 것이다.
마법사는 당장이라도 알 헤임달로 가고 싶다는 듯, 우리를 재촉했다. 채 감탄할 시간도 없었다.
“얼른 타, 출발하게.”
나는 아힘사와 함께 마법사의 캐리어에 조심히 올랐다.
혹시나 더럽고 천한 내 발자국이 묻지는 않을까, 마력으로 몸을 살짝 띄우며.
* * *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 왔군.”
엘프, 흡혈귀, 드워프 같은 것들이 주를 이뤄 살아가는 증기와 황동의 도시. 시종 신세 탈출에 성공한다면 그 괴상한 광경을 내 눈으로도 볼 날이 오겠지···하고 반 바이오의 본사에서 흘리듯 말했던 그것이 이리도 빨리 이루어질 줄이야.
마법사의 캐리어는 자그마치 6,000km 가까이 되는 거리를 반나절 만에 주파해버렸다. 광학미채가 적용된 캐리어는 위험 구역도 돌아갈 필요 없다는 듯, 직선으로 항로를 그려냈다.
그리고 지금.
저 멀리 시티의 거대한 장벽 안쪽으로···
압도적인 높이의 시계탑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건 알 헤임달 시티의 스테이션을 상징하는 상징물인 ‘안녕 알 헤임달’ 이다. 귀가 뾰족한 엘프의 형상을 하고 있는 그 거대한 시계탑의 분침이, 철컥하는 굉음을 하늘에 뿌리며 거칠게도 돌아갔다.
연방의 일곱 거대 도시중 하나.
『 알 헤임달 시티 』
다수의 이족과 인간이 뒤섞여 살아가며, 모든 연방 도시 중 유일하게 증기기관과 화석연료의 사용을 기조로 택해 발전해온 증기와 기계장치의 도시.
어두운 하늘을 고래처럼 떠다니는 증기선, 갤리온을 닮은 토목 비공정(飛空艇)들의 증기 뿜는 굉음이 끊이지 않는 곳.
지하에 막대한 양의 자원이 매장되어 있는 땅이자, 연방도시 중 가장 적극적으로 장벽 밖의 자원개발과 영토 개척을 지속적으로 시도하는 개척가들의 도시.
마법사의 초고급 캐리어는 그 알 헤임달의 장벽 상공을 금세 통과해 내려섰다.
나는 땅을 딛고 이 거대한 도시의 정경을 둘러보았다.
발두르, 발할라 시티와는 또 다른 분위기.
우중충한 검은빛과 네온사인 일색이었던 발두르에 비해, 여긴 온통 황동빛과 흙빛이 지배하는 세계였다.
모래인지 흙인지 똥인지 모를 이 더러운 바닥도, 스테이션에 내려서는 비공정의 파이프에서 가득 내뿜어진 더러운 증기조차도, 모두 황동빛에 반사되어 세상이 황동빛으로 물들어 있는 듯 했다.
사람인지 이족인지 구분하기 힘들게 생긴 이들은, 석탄불에 그을린 듯 딱딱해보이는 바게트빵을 뜯으며 스테이션 안을 총총 걸어다녔다. 땅딸보인 자도 있었고, 신장이 십 척은 될 법한 이도 있었으며, 송곳니가 심히 뾰족한 놈도 있었다.
콰과과광—
그러다 어느 순간, 막대한 굉음이 천지를 떨어울렸다.
굉음이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상선의 화물 운송선보다 거대한 굴착 중장비가 칠흑처럼 새카만 증기를 쉴 새 없이 내뿜으며 지나가는 광경이 저 멀리로 보였다. 나는 스테이션에 내려선 채, 이 괴이한 도시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어때, 저런 건 처음보지?”
캐리어에서 천천히 내려 청록빛의 괴물위에 오른 그 마법사가, 굴착 중장비의 육중한 기동을 배경삼아 기지개를 켰다.
스륵-
그러면서 뒤집어쓴 후드가 자연스레 벗겨졌는데, 머리 위로 보통 사람보다 뾰족한 귀가 튀어나왔다.
내 미간이 애매하게 구겨졌다.
“······.”
보통 아닌 인간이 아니고, 아예 인간이 아니었던 거군.
그 마법사—
그러니까 일레힌 마탑의 엘프 마법사는, 아주 환하게 웃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아까 전 알 헤임달의 상공에서 바라본 거대 시계탑 밑의 엘프 동상과, 매우 비슷한 포즈로.
“내 고향, 알 헤임달 시티에 온 걸 환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