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퓨전펑크의 전생자-56화 (56/157)

#56화. 당절 2

#56화.

콰앙!

부지불식간 강하게 폭발하는 루벤카의 마력.

루벤카를 슬쩍 껴안고 있던 당절이 몸이 주르륵 밀려났다. 격노한 루벤카는 그의 손길이 불결해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옷을 미친듯 털어내고는 자세를 고쳐잡았다. 입가에는 한 줄기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루벤카는 레반과의 전투로 지친 기색을 숨기며 말했다.

“어딜 쳐 만져? 미친 새끼가 죽으려고······.”

당장이라도 이곳을 전부 불태워버릴 것처럼 타오르는 루벤카의 눈동자. 너스레를 떨며 웃어보이는 당절의 모습이 그 눈동자 안으로 비쳐보였다.

“···제가 별다른 공격을 한 것도 아닌데 반응이 격하네요? 꼭 남의 돈 떼어먹고 마탑으로 도망친 사람처럼요~안 그래요 마탑의 마법사 여러분?”

적막해진 마탑 안.

당절에게로 수많은 눈초리가 쏟아졌다.

루벤카의 정체가 무엇이건, 여기는 마탑이다.

마법사들의 신역과도 같은, 발할라 산맥의 봉우리에 위치한 마탑. 대단하고 위세높은 무림계 메가콥 소속의 중역이라곤 해도, 지금은 마탑주나 마탑 구성원의 초대도 받지 않고 들어온 불청객일 뿐이다.

“아~”

고요한 장내에서 마법사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한번 더 홍홍 웃은 당절은, 손가락을 펴 자신을 가리키며 슬픈 얼굴로 자조했다. 그의 한없이 가볍고 중성적인 목소리는 끈적하게 울려퍼지며 마법사들의 귓전에 달라붙었다.

“나, 그래도 너무 환영받지 못하는 거 아냐?”

그 말과 동시에 살기짙은 기세가 그의 전신에서 줄기차게 흘러나왔다. 그 독한 기운에 경지가 낮은 마법사들이 약속이나 한 듯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당절이 살기짙은 기세를 흘리자마자,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마법사 한 명이 중얼대며 마력을 발산했다. 서재에 있는 마탑주를 자극하지 않을 만큼, 은밀하고 신속하게 내리깔린 그 무형의 거력은 당절의 일행을 무겁게 내리눌렀다.

- 큭!

일행 중 몇의 다리가 꺾이며 풀썩 주저앉았다.

후룹.

이윽고 커피를 홀짝이는 소리와 함께, 구경꾼들의 사이로 조용하면서도 지친 음성이 섞여 들려왔다. 저 멀리 있는 카페 앞에 매일 에스프레소를 받아가던 마법사가 피곤한 얼굴로 입을 우물대고 있었다.

— 인지해···여기···마탑이야···마탑···으으···피곤해···빌어먹을 연구···.

늘 그랬듯 오늘도 에스프레소를 한 컵 가득 받아채운 마법사가 말을 마친 뒤 천천히 몸을 돌리자, 당절의 무리를 강맹하게 내리누르던 힘도 서서히 사라졌다.

당절이 짐짓 두려운 표정을 지어내며 말했다.

“······역시 마탑에는 강력한 마법사분들이 많네요. 무서워라···그래도 마탑주님께 큰 도움이 될 만한 소식을 가져왔으니까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줘요!”

쿵!

엉큼하게 의뭉을 떠는 당절의 앞으로, 청록빛 몸체의 괴물이 땅을 울리며 내려섰다. 그 귀 아래까지 죽 찢어진 매끈한 얼굴을 본 당절이 뒤로 흠칫 물러서며 놀랍다는 듯한 얼굴을 했다.

“알 헤임달의 부스러기? 정작 알 헤임달 시티에서도 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죠. 그런데···원래 이렇게나 컸던가아.”

상대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 청록빛 괴물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당절을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던 팔찌 네 개의 마법사가 어이없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아무리 사천당가라지만 이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군.

“당가의 무인이 여긴 뭐하러 들어온 거야? 최초다 최초. 참 기어 들어온 것도 신기하네. 저 뒤에 있는 놈들이 벌인 짓이냐.”

그가 당절의 일행을 바라보자 일행들은 슬쩍 그의 시선을 피했다. 몇 명은 무인이 아닌 발할라의 마법사들로 보였다. 그들이 어째서 당가의 행차에 마탑까지 함께했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때, 괴물의 앞까지 다가간 당절이 포권대신 괴물의 다리를 살포시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저는 사천당가의 당절이라고 합니다. 마탑의 주인이신 일레힌 포이체카님을 만나뵙고 싶어요. 마탑주님께 대신 만남을 청해주실 수 있겠죠? 아이 착하다.”

“아니, 지금은 힘들거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게 아니야.”

단호한 즉답.

“아~상태가 굉장히 안 좋으시다죠. 저번 토벌전에서 무리를 하시는 바람에······.”

그럼에도 당절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내숭을 떨었다.

무인의 입장에서는 복마전과도 같은 마탑에 들어왔다면 조금이라도 주눅 들거나 긴장하기 마련이건만, 당절은 당가주의 직계답게 꼿꼿함을 잃지 않았다.

애초에 마탑주급이 아닌 이상, 자신에게 해를 가할 담력을 가진 마법사는 없을 터였다. 그런데 이 거대한 권역을 지배하며 절대적인 위세를 뽐내야 할 마탑의 주인이 몇 년간 죽네사네하며 빌빌대는 마탑임에야······.

당절은 속으로 저들을 비웃으면서도 싱긋 웃어보였다. 그래도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알 헤임달의 짐승 부스러기를 다루는 저 마법사는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일레힌 포이체카 마탑주의 대리격으로 보였다. 다른 마법사들은 말없이 이 마법사의 입만 바라보고 있으니까.

“제가 여기까지 온 이유를 설명하려면요···굉장히 기니까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내어주시면 안될까요? 바깥이 너무 추워서 몸이 다 얼었답니다···.”

당절의 내숭에 그 마법사는 대답 없이 인상만을 구겼다. 당절은 아쉬운 표정을 지어보이곤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그래요······춥고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그는 곧 비단 무복의 안주머니를 뒤져 웬 서류 여러 개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뒤에 빠져있던 일행에게서도 몇 장의 서류를 받더니, 그 서류들을 반쯤 겹쳐 마법사의 눈앞에 가볍게 내밀었다.

“그럼 보세요. 일단 이건요. 당문의 가주님이시자, 사천당가 코퍼레이션의 회장께서 직접 내리신 교지구요. 다음 서류는, 네. 보시다시피 연방정부에서 받아온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연방법원의 수색 영장······까지는 아니고? 그거랑 비슷한 거예요. 한 번 알아봐도 좋다는. 그리고 이 서류는 사천당가가 반 바이오 컴퍼니로부터 입은 피해 내용을 증빙하는 서류들이랑 잉그리드 반 루벤카씨에게 처참히 살해당한 사천당가 소속 직원들의 사망 확인서, 사체검안서, 부검서, 감정서······.”

하아-

그는 더 말하기도 힘들다는 듯,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이건······아, 이것들은 나중에 마탑주님께 보여드릴 거라 안 보셔도 됩니다. 아무튼 마침 루벤카씨가 여기 있어서 얼마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그럼 레나양도 당연히 여기 있겠죠?”

청록색 괴물 위에 앉은 마법사는 앞뒤없이 오만하게 날뛰는 당절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당장이라도 쫓아내 버리고 싶은 불청객이지만, 그것은 자신이 아니라 마탑의 주인이 판단할 일. 무림계의 인사라는 이유로 무작정 쫓아낼 수는 없다. 그리고 하는 꼴을 보아하니······곧 정말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듯 한데 그 전에 쫓아낼 수야 없지.

사아악—

그가 가진 네 개의 팔찌에서 마력이 줄기줄기 흘러나와 마력의 덩어리를 생성했다.

“오~신기하네요. 원래는 이렇게 되는 거구나.”

곧이어 허공을 날아간 마력의 덩어리는, 당절과 그 일행의 손목에 채워졌다. 한 개의 마나 팔찌가 희미하게 빛났다.

으득-

그 광경을 본 루벤카는 이를 부러져라 악물었으나, 마땅히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곤 속으로 화를 삭히는 것밖에 없었다. 루벤카 자신도 마탑의 입장에서는 조금 더 중요한 손님에 불과하니까. 마탑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것은 마탑주와 팔찌 네 개를 받은 구성원들이었다.

그들에게 팔찌 하나를 부여해준 마법사는 당절의 일행을 슬슬 둘러보다가 깜빡했다는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무슨 심산으로, 뭘 믿고 마탑에 기어 들어왔는지는 몰라도, 용서받기 힘들 거다. 그건 미리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당절은 곧바로 웃으며 받아쳤다. 그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

“그래요? 여기서 좋은 소식이 뭔지 알려드리자면요. 제가 일레힌 포이체카 마탑주님을 살릴 방법을 가지고 왔답니다. 아 이건 막 말하면 안 되는 건데······너무 흥을 냈나요.”

고의적으로 토한, 그 유치한 발언에 웅성거림이 심해졌다.

일레힌 포이체카를 살릴 방법을 가지고 왔다는 당절의 말에 구경하던 몇몇 구경꾼들이 동요하는 가운데, 초록빛 괴물을 타고있는 마법사는 웃는 건지 놀라는 건지 당절로서는 당최 알 수 없는 애매한 반응만을 보였다.

“그래? 그럼 뭐 자신이 있을 만도 했네.”

당절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선물치고는 굉장한 걸 들고왔죠? 그러니까 마탑주님과 제가 잘 해결을 볼 수 있게 마법의 주문으로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어요. 또 여기, 백만방도의 포털 뉴스기사를 스크랩 해온 겁니다. 보세요 한 번.”

시종일관 밝은 기색의 당절은 커다란 종이를 내밀었다. 마법사는 당절이 내민 종이를 받아 읽었다.

우르드 토벌전 이후, 일레힌 포이체카의 건강 이슈. 여섯 번째 봉우리 마탑의 주인이 다시 또 바뀐다? 사천당가 코퍼레이션, 의문의 발할라 시티 행···등등의 포털 토막 기사들이 마법사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별다르게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이게 뭐 어쨌다고?”

마법사가 묻자 당절이 홍홍대며 말했다.

“세상 돌아가는 걸 조금 지켜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넷 통신도 힘든 해발 만 미터 산맥 오지 위에 계셔서 잘 모르시겠지만, 지금 바깥은 천지개벽하고 있어요. 알 헤임달 시티는 자체적인 대(大)개척을 준비 중이고 연방정부는 대대적인 영토 수복을 천명할 준비중이랍니다? 마탑에 틀어박혀서 연구만 하시는 분들이라 잘 모르실까봐 친히 알려드렸어요. 그때가 와도 이렇게 마탑에만 박혀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나 보자구요?”

“······.”

당절의 말은 딱히 대단한 내용이 아닌, 그저 마탑의 마법사들을 향한 유치한 저주에 불과했다. 대충 너희들은 곧 언데드들과의 전쟁터에 끌려나가서 죽고말 거라는 내용의.

무림계 메가콥중 시가총액 3위, 당가주 아들의 행색이 저리도 솜털마냥 가볍다니. 정말 저자가 당가주의 아들이 맞긴 한 건가? 무인들이 쓴다는 인피면구 그런거 아니고?

아무튼 마법사는 그 종이를 괴물의 상어 주둥이에 홱 던져넣고는 몸을 돌렸다.

그러던 그때였다.

일레힌 포이체카의 음성이 마탑을 쩌렁쩌렁 울리며, 끝 벽에 붙어있던 서재가 활짝 열린 것이.

【 들여라. 】

마법사들은 실제로 마탑주가 당절을 곧바로 불러들이자, 하나같이 당황을 머금었다. 그것은 상황을 지켜보던 반 루벤카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짙은 절망이 깃들었다.

부름을 받은 당절은 모두의 앞에서 희게 웃어보이며 마탑주의 서재로 걸음을 옮겼다. 청록빛 괴물의 머리에 타 있는 마법사만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을 뿐이다.

*

열렸던 마탑주 서재의 입구가 서서히 닫힌다.

조심히 서재에 들어온 당절의 눈앞에는, 십수 개의 마력 구체에 의지하며 허공을 부유하고 있는 일레힌 포이체카 마탑주가 보였다. 연신 마력을 빨아들이고 있음에도 기운은 밖으로 흘러 나왔으며, 마탑주의 안색은 당절의 예상대로 좋지 못했다.

“나를 도울 방도가 있다라? 한 번 말해보아라.”

역시나 일레힌 포이체카는 다급한 기색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완연한 청년의 목소리가 서재에 청량히도 울려퍼졌다.

흥미로우면서도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질문하는 일레힌 포이체카의 앞에서, 당절은 낡은 심법서 하나와 두꺼운 칩 하나를 당당히 꺼내보였다. 중성적인 그의 목소리가 자신감을 머금고 울려퍼졌다.

“무림계 기업의 심법들이 알게모르게 이 여섯 번째 마탑으로 흘러 들어가더라구요. 이것은 당문의 외인들이 익히는 것이 아닌, 가인들이 실제로 익히는 심법이랍니다. 마탑주께서는 무림계의 훌륭한 심법이 필요하신 것, 맞지요?”

당절은 그것들을 조심히 바닥에 내려놓고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방금 말한 내용은 확실한 사실일 것이다.

당가의 정보원들이 진즉 조사를 마친 내용이니까.

일레힌 포이체카는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무림계의 고절한 심법이 필요하다.  고로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은 단전을 만들어 회로를 고칠 시간을 벌고 생로를 꾀한다. 그것이 당가의 판단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탑주는 반색하며 입을 열었다.

“당가의 심법이라?”

“그렇답니다. 마탑주님.”

생각했던 그대로의 반응.

일레힌 포이체카 마탑주는 역시나 단전을 만들어 일을 해결할 생각인듯 싶었다. 많이 알려지진 않았어도 역사적으로도 몇 번 있던 일이었다. 그리고 그를 살릴 수 있는 훌륭한 심법이 자신의 손에 있었다.

그것이 기꺼운 당절은 싱긋 웃으며 여유로운 태도로 다음 행동을 이었다.

곧 당절의 품에서 인공지능이 그려낸 몇 개의 몽타주가 빠져나왔다. 사실 몽타주라고 하기도 힘든 것이, 실제 얼굴과 다른 점이 하나도 없었다.

“대신요. 마탑의 손님 중에 당가에서 원하는 사람이 있답니다~반 바이오의 오너 일가 도망자 두 명······아, 그리고 이 사내도 데려가야겠습니다. 꼭 찾고 싶다는 분이 바깥에 계셔서. 일레힌 포이체카 마탑주님의 마탑에 있다고 들었는데, 확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당절이 내민 몽타주는 총 세 장.

잉그리드 반 레나, 잉그리드 반 루벤카.

그리고 마지막 한 장은 레반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일레힌 포이체카가 그 몽타주들을 자신의 앞으로 끌어와 유심히 보더니 팔짱을 끼며 말했다.

“고작 저 셋을 데려가는 대가로 당가의 독문심법을 내어주겠다? 저 셋의 가치가 그리도 대단한가?”

무슨 소리를.

저 셋의 가치보다야 당가의 심법이 더욱 값지지.

당절은 마탑주가 보기보다 욕심이 많은 자라고 생각하며 손을 저었다.

“물론 그건 아닙니다 마탑주님. 아시다시피 당가가 크게 손해보는 입장이니 나중에 조금 더 원하는 게 있을 수도 있지만, 정말로 괜찮은 조건이지요? 아시겠지만 사천당가는 은원이 확실하답니다. 이렇게 감히 마탑까지 걸음할 정도로요.”

하하!

그러자 일레힌 포이체카의 입에서 호탕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러고는 이내.

“감히 걸음했다는 그 말이 맞군.”

“그러니까······네?”

예상외로 마탑주가 단번에 거절의 뜻을 내비치자, 오히려 당절의 몸이 달아올랐다. 목숨을 부지하려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거래라고 생각했다. 그런 마탑주가 거절의 뜻을 비친것은 너무도 의외였다. 마탑주라고 해서 죽음에 초연할 리가 있겠는가?

당절은 의문스러운 기색을 비쳤으나 그래도 곧 희희 웃으며 여유를 잃지 않았다. 마탑주가 애타게 찾던 절세의 심법은 자신의 손에 들려있었다. 다른 무림계 기업들은 절대로 내어줄리가 없는, 그 꿀단지가.

“마탑주님~이건 우리 사천당가의 가인중에서도 수준 높은 직계들만이 익히는 만류원독신공(萬流元毒神功)이랍니다. 비록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무당이나 소림과 적당히 비견될 만 합니다. 골수까지 치미는 극독을 버텨내려면 애당초 그만한······.”

당절이 그리 말할 때였다.

콰과광!

“!”

마탑주에게 마력을 주입하던 구체들이 밝은 빛을 내며 자취를 감추었다. 동시에 서재의 삼면을 이루는 책장이 당절의 육신을 압축시켜 버릴 듯 굉음을 내며 밀려오더니, 당절과 일레힌 포이체카가 일 평보다 좁은 거리에서, 그것도 몇 치 거리만을 두고 대면하게 되었다.

화악!

그에 놀란 당절의 무복이 활짝 열리며 비단옷의 내면을 빼곡히 채운 당가의 극독과 테크 암기들이 드러났다. 새끼 거미처럼 생긴, 무복 안에 붙어있던 기계 벌레들이 불개미처럼 쏟아져나오며 마탑주를 공격하려했으나, 화들짝 놀란 당절이 손을 저으며 그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의아한 얼굴의 당절은 일레힌 포이체카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연녹색 머릿결에 진득한 마력이 깃들며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격노로 붉게 물든 마탑주의 얼굴.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흥미를 보이던 좀 전과의 기색과는 정반대였다.

마탑주의 음성이, 비좁아진 서재에 낮게 깔렸다.

“사천당가의 가풍(家風)은 오만인가?”

당절은 일레힌 포이체카의 기세에 밀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무어라고 말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육신은 당절의 의지를 벗어난지 오래였다. 힘을 써보았으나 손가락 하나 꿈쩍조차 하질 않았다.

“······.”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일레힌 포이체카는 우르드 토벌전에서 마나 회로까지 태워버렸던 대혈전 끝에 초죽음 상태가 되어 강제로 정양에 들었다고 들었다. 그 소식은 마법계 상류층 전반에도 알음알음 퍼져있으니 거짓일 리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일레힌 포이체카가 내보이는 기세는······.

“네놈은 가문의 심공을 제대로 못 익혔나보구나. 독이 골수까지 치밀어 돌아버린 게 아니고서야 감히, 내 마탑에 멋대로 들어온 것도 모자라 그따위로 오만하고 너절하게 굴 리가 없지 않으냐.”

푸욱!

마탑주의 노한 음성과 동시에 주변의 서책들에서 날카로운 책갈피들이 스르륵 빠져 나오더니, 당절의 비단 무복을 뚫어내고도 모자라 손등까지 파고들어 갔다. 그래도 당가의 직계라는 것을 알면 손속에 미련을 두기 마련인데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어야 할 여섯 번째 마탑의 주인은 지금, 당절의 앞에서 절대적인 힘을 내보이고 있었다.

“······.”

당절의 반응은 급변하는 상황을 절반도 따라가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호의적인 기색을 보이던 마탑주가 왜 돌변해 이런다는 말인가? 자신이 훌륭한 당가의 심공을 직접 가져왔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일레힌 마탑주는 죽어가는 몸이 아니던가. 심지어 마탑의 마법사들까지도, 그를 살릴 방도가 있다는 말에 동요하지 않았던가.

헌데 왜?

“당가의 가주가 직접 행차했어도 네놈처럼 오만히 굴지는 못했을 거다. 나의 허락도 없이 마탑에 들어와서, 나를 죽이기라도 할 셈이었는가? 그깟 심공 따위로 무얼 어쩐다?”

마탑주의 뜬금없는 비약에 당절이 기겁하며 펄쩍 뛰었다. 짓눌려 속박당했던 육신이 잠시간 힘을 되찾으며 겨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무슨! 아녜요! 마탑에서 마탑주를 어떻게 도모하겠나요? 제가 잠시 흥에 도취되어 오만했던 것은 인정합니다만, 제가 바보천치도 아니고 그저 정당한 거래를—”

【 그만. 】

당절의 머릿속에 천둥처럼 울리는 음성.

서재의 가장자리까지 아득히 메워버린 생생한 마력에 당절의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마력의 농도가 너무도 짙은 탓에 서재 공간이 구불거려보일 지경. 이것은 절대 죽어가는 몸으로 보일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아까 전 커피를 마시던 마법사의 마력보다도 월등히 격 높은 마력이 당절을 육신을 짓누르고 있었다.

당절보다도 격이 높은, 9레벨 마법사의 거대한 기운이.

‘······그는 멀쩡하다. 어떻게?’

사천당가의 당절은, 죽어가는 일레힌 포이체카의 구세주가 되어야만 했는데. 그것을 기대하고 왔는데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몇 년간 두문불출하던 마탑주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기연이라도 얻은 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넋이 나간 당절이 희희 웃으며 말했다.

“혹시 마탑주님께서는 심법을 이미 구하셨던 걸까요? 너무 어긋났네요. 하지만 그럴 리가 없는걸요.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심법들 따위에 마탑주님의 기운을 받아낼 만큼 제대로 된 것이 있을리가—?”

【 궁금하군. 】

이윽고, 멍하니 앉아 웃고있는 당절의 혼잣말과 상념을 파고들어 끊어낸 일레힌 포이체카의 음산한 음성이, 천둥처럼 우릉거리며 그의 머릿속을 때려울렸다.

【 대단한 사천당가에서, 오만한 직계의 실수를 바로잡는 값으로 나의 마탑에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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