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발할라 산맥의 마탑 2
#49화.
성처럼 생긴 건축물 앞에 선 루베르겐 집행관이 또 한번 마력을 불어넣었다.
쿠우웅!
그러자 마력에 반응한 성문이 천천히 열리며 안쪽의 광경이 드러났다.
사아아—
동시에 성 안쪽에서 천천히 날아온 마나의 덩어리가 내 손목에 들러 붙었다. 이내 그 마나의 덩어리는 꾸물꾸물 움직이며 팔찌의 형상을 만들었다.
루베르겐 집행관의 손목에는 네 개의 팔찌가 감겼고, 나를 포함한 나머지는 모두 한 개였다.
“방문자는 한 개. 중요한 방문자는 두 개. 마탑에 소속된 구성원은 세 개. 마탑주의 인정을 받은 구성원은 네 개다.”
끄덕끄덕!
집행관이 대수롭지 않은 어투로 설명하자, 초롱초롱한 눈빛의 레나가 알아들었다는 듯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우우웅—
그때, 손목에 채워진 팔찌에서 격 높은 마력이 일어나나 싶더니 자욱한 안개가 생겨나며 안면의 대부분을 가렸다. 시야에 문제는 없었으나 루벤카나 레나를 바라봐도 누가 누군지 구별하기가 어려워졌다.
이는 아무래도 마탑주의 안배인 듯했는데, 이렇게 되면 마탑의 구성원들끼리도 굳이 신분을 밝히지 않는 이상은 식별이 어려울 듯했다.
“가지.”
성의 내부는 적막했다.
위쪽으로 올라갈 수 있게 설치된 나선형의 계단과 천장을 장식하는 샹들리에만이 전부였다. 바깥에서 보았던 웅장한 외형에 비하면 심히 썰렁할 정도였는데, 예상하기로는 이곳 역시 다른 장소로 이어지는 하나의 통로일 듯했다.
나는 마탑의 복잡한 진입 절차에 혀를 내둘렀다.
‘이러니까 마법사들도 마탑의 위치를 모르지.’
그래도 확실히 안전하기야 하겠군.
발할라 산맥의 드높은 봉우리까지 올라온 뒤 눈보라 속에서 제대로 된 길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은데, 무슨 양파마냥 진입로가 이중 삼중으로 숨겨져 있기까지 하다. 덕분에 암살자와 같은 불청객이 몰래 숨어 들어오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집행관은 나선형의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그리고 잠시 뒤.
“여기가······.”
힘겹게 숨을 몰아쉬던 레나의 탄성이 들렸다.
나선형의 계단을 다 올라오자마자 우주선의 내부처럼 인공적으로 생긴, 높고 거대한 공간이 사방으로 펼쳐진 것이다.
창백한 네온빛의 바다가 두 눈을 어지럽혔다. 봉우리 절벽에 있던 신기루나 성 건축물과는 어딘가 결이 다른 것이, 드디어 제대로된 마탑의 내부가 나온 듯했다.
지이이잉—
아니나 다를까, 어디선가 홀로그램 레이저들이 승리의 팡파레처럼 허공으로 솟구치더니, 자그마한 환영 문구를 고화질로 그려냈다.
《 나의 마탑에 온 여러분을 환영한다 - 일레힌 포이체카 》
백만방도 포털을 통해 알고 있던 이름이다.
성정이 불같기로 유명한 괴짜 마법사, 일레힌 포이체카.
발할라 산맥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봉우리’ 의 마탑주.
본래 여섯 번째 봉우리의 마탑을 관장하던 이전 마탑주가 7년 전 사망하고 새로이 마탑주의 위를 이어받은 이가 9레벨의 마법사 일레힌 포이체카이며, 교체된지 얼마 안 된 탓에 현재 다섯 마탑 중에서 역사가 짧고 세가 제일 약한 마탑이 이곳이다.
9레벨은 그 안에서도 수준이 극명하게 나뉜다.
일레힌 포이체카는 9레벨의 반열에 오른지 아직 십 년도 채 되지 않은 마법사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9레벨이라는 초월의 영역의 들어섰기에 발할라 마탑의 주인이 될 자격은 갖추고 있었다.
다만 그는 4년 전쯤 네임드 시체 ‘우르드’ 토벌전에서 그 대단한 신위를 마지막으로 드러낸 이후, 현재까지도 마탑 밖으로 나오지 않고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때문에 마법계에서는 일레힌 포이체카가 거의 죽기 직전이라는 말이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 들여지는 중이었다.
아무튼 나는 잡생각들을 지우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리가 들어선 공간은 거대하며 탁 트여있었고, 상선의 화물 운송선보다도 훨씬 길었다. 커다란 화물 운송선을 몇 개나 합쳐놓은 듯한 규모였는데, 아무도 없던 바깥과는 다르게 여기는 그래도 사람냄새가 났다.
수준 높은 기운을 풍기는 마법사들이 몇 명씩 무리를 이루어 돌아다녔고, 커피와 쿠키를 판매하는 카페도 있었다. 몇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 마탑은 내가 생각했던 딱딱한 분위기가 아닌, 개성있고 자유분방한 느낌이었다.
마치 네온사인이 가득한 백화점 같다고 해야 할까.
곧, 지나가는 이들의 수군대는 말소리가 들렸다. 손목에 팔찌 세 개를 차고 있는 이들이었다.
— 그러니까 이번 녹빛 언데드 토벌전에 참가하면 연방군에 지원할 자격을 준다고? 그거 참 구미가 하나도 안당기는 제안이네.
— 그러게. 누가 연방군에 자기 발로 들어가겠어.
— 발두르 시티에도 실력자는 많아. 괜히 그런 거 지원하러 갔다가 아까운 목숨 버리지 마.
— 그런데 저들은 누구길래 여기까지 들어온 거지?
— 신경 끄시게. 팔찌 네 개가 인솔 중이니.
그리 수군대던 마법사들은 웬 마법진 위에 모여들어 마력을 풀어냈다. 이윽고 그들의 신형이 감쪽같이 사라졌다가 저 높은 위층 난간에 나타났다.
‘전송진도 있군.’
이런 곳이 발할라 산맥 봉우리 위에 세워져 있는 건축물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언 선생이 펼쳐낸 진법처럼 공간을 왜곡하는 마법이 작동하고 있는 듯 했는데, 이만한 크기의 공간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과연 얼마나 마력을 때려 부어야할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진짜로 마탑이라니.”
옆의 루벤카는 유례없이 긴장한 기색이었다.
그녀는 발할라 시립 아카데미 출신이니, 거기서 학장을 비롯해 강력한 마법사들을 질릴 만큼 보았을 텐데도 마탑은 또 다르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하기야 발할라의 마탑이 어떤 곳인가.
자본의 논리에 크게 얽매이지도 않으며 상업과는 일절 관련이 없어 기업들과의 다툼도 일어날 리 없는. 심지어 물리적으로도 발할라 산맥 꼭대기에 꼭꼭 숨겨져 있는 신역(神域)과도 같은 곳 아니던가.
설령 사천당가가 마탑에서 도망자들을 받아 숨겨준 사실을 알아낸다고 해도 마탑이라면 크게 문제 삼기는 힘들 것이다. 마탑은 마탑주만이 다스리는 고유의 영역인 데다, 9레벨의 반열에 오른 마법사라면 그 자체로도 막대한 전력이다.
게다가 마탑주들이 으레 그렇듯, 일레힌 포이체카도 한 마탑의 주인이 되는 동시에 소속되어 있었던 마법계 기업인 ‘일레힌 그룹’ 에서의 공식적인 직위를 내려놓았기 때문에 일레힌의 가문이나 기업을 통한 압박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루베르겐 집행관이 마탑주로부터 기거를 허락받기만 한다면, 당가로부터 쫓기는 중인 레나와 루벤카가 몸을 의탁할 수 있는 곳들 중에는 마탑이 첫 번째로 안전할 장소가 아닐까 싶었다.
우리는 집행관을 따라 계속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몇 분쯤 마탑의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니, 서서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는데······평범한 마탑의 구성원들과는 조금 다른 이였다.
— 크르륵.
길을 떡하니 가로막고 앉아있는 거대한 괴물.
세세하게 갈라진 근육질에 청록빛을 내는 몸체.
매끈한 계란처럼 생긴 얼굴에 주둥이만 존재했는데, 주둥이가 귀까지 찢어져 상어같은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괴물이었다.
그리고 그 괴물의 다리를 의자삼아 웬 서책을 읽고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서책의 표지를 언뜻 확인하니 웬 심법에 관한 무공서인 듯 했는데, 겉표지만 보고는 무엇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었다.
손목에는 루베르겐 집행관처럼 마탑주의 인정을 받은 구성원임을 뜻하는 팔찌 네 개를 차고 있었으며, 여인인지 사내인지 눈대중으로는 알 수 없는 중성적인 외형이었다.
“아, 키가 큰 걸 보니까 공사다망한 집행관님이 오셨나?”
괴물에 앉아있던 이는 우리를 발견하자 고개를 까딱거리며 입을 열었다.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아 누군지는 몰라도, 느낌상 성격이 좋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윽고, 그자의 비아냥이 들려왔다.
“집행관님께서는 그깟 크레딧이 뭐라고 마탑까지 저런 것들을 끌고 들어 오십니까? 모리 무라타의 심득을 흡수하지 못하겠으면 그냥 다른 집행관한테 넘기고 언데드 사냥이나 다니시지.”
그 ‘저런 것들’ 이라는 말에 가만히 듣고있던 루벤카의 눈섭이 꿈틀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루베르겐 집행관도 가만히 있는데 그녀가 나설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후우—
집행관은 삐딱하게 궐련을 꺼내 물고 태웠다.
둘은 그렇게 한참을 아무 말 없이 대치했다.
하지만 저들의 근처에서 미세한 마력이 일어나는 걸 보면, 우리가 알 수 없게 무슨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흥.”
잠시 뒤, 그 괴물의 다리에 앉아있던 자는 코웃음을 치며 몸을 돌렸다. 석상처럼 이빨만 드러낸 채 굳어있던 괴물도 슬금슬금 움직이더니, 무거운 거체를 일으켜 그자의 뒤를 따라갔다.
그자가 사라지자, 루베르겐 집행관은 궐련을 비벼 끄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집행관과 우리는 이 공간의 가장 끝에 있는 벽면에 당도했다.
거기에는 입을 쩍 벌린 조각상과 자그마한 종이 달려 있었는데, 집행관은 뷔에탕의 꼭두각시를 죽일 때 보였던 대검을 꺼내어 조각상의 입에 찔러넣고는 강하게 돌렸다.
그러자 곧, 자그마한 종소리가 들렸다.
댕. 댕. 댕.
종소리는 작았으나 모두의 귓전에 명확히 울렸다. 종이 세 번 울리자 마탑의 내부를 밝히던 모든 조명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훅 꺼졌다.
다시 불이 들어왔을 때, 우리는 누군가의 서재 안에 들어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그리고 내가 서재를 다 인식하기도 전에 강대한 마력이 전신을 장악해왔다. 그 마력은 거부하거나 벗어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뻑뻑한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오래된 종이의 향이 배어있는 거대한 서재.
삼면으로 커다랗고 높은 책장에 빼곡히 꽂혀있는 책들이 우리를 먼저 반겼고, 하늘에는 아까 성 밖에서 보았던 주먹만 한 빛의 구체가 열 개 이상 떠있었다. 그리고 그 책장들의 중심에, 두 눈을 감은 채 둥둥 떠있는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그는 서재 안으로 들어온 우리를 전혀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압도적인 존재감은, 저 둥둥 떠있는 이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 정도의 마력이라면 저자가 누군지 분명했다.
9레벨 마법사이자 이 마탑의 주인, 일레힌 포이체카.
그런데.
세간의 소문대로, 마탑주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스아아아—
서재 천장에 떠있는 주먹만한 빛의 구체에서 정순한 마력이 조금씩 흘러나와 일레힌 포이체카의 전신을 적시며 스며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몸에 스며든 마력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빠져나왔는데, 나는 그 상태를 보고 곧바로 직감했다.
‘마나 회로가 터져서 겨우 연명만 하고 있군.’
어떤 이유로 마나 회로가 크게 훼손된 것이다.
심장을 중심으로 대회전하는 마나 회로는 마법사들에게 곧 심장과도 다름없다.
마나 회로가 하나 두 개일 때야 조금 망가져도 그 충격이 심대하지 않아 어찌어찌 살아갈 수 있지만, 저 일레힌 포이체카는 9레벨이니 마나 회로가 7개였을 테지.
9레벨쯤 되면 이미 심장과 마나 회로가 일체 수준인지라, 마나 회로가 크게 손상 되었다는 말인 즉 목숨 역시 위태하다는 얘기였다.
전생에 운석에 대가리가 터지기 전 내 몸이 딱 저랬었다.
그리고 저렇게 조치해놓은 것도 그저 임시방편에 불과할 뿐이고, 다른 방법을 구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마탑주께 올릴 청이 있습니다.”
그 시점, 루베르겐 집행관이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 짧은 말이었으나 여태까지 들어본 집행관의 어투중 가장 깍듯했다. 루베르겐 집행관은 고개를 몇 분간이나 숙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몇 분이 지난 뒤, 집행관이 고개를 들어 올리자.
우우우웅—
“!”
루벤카와 레나의 손목에 있던 팔찌가 순식간에 늘어 두 개가 되었다. 마탑주의 허락을 얻어 마탑의 방문자에서 중요한 방문자로 격상한 것이었다.
그쯤에서 나는, 고민에 빠졌다.
내가 발할라에 도착했음에도 꾸역꾸역 레나와 집행관 옆에 붙어있었던 이유는, 상선의 캐리어 위에서 뷔에탕의 마력에 진탕 당한 덕분에 사정이 급격히 나빠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적당히 강한 마법사와 선을 만들어 저주 마법을 풀 방도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당가를 상대로 방패막이가 되어줄 정도라면, 분명히 힘 있는 세력일 것 아니겠나.
‘빌어먹을 년.’
원래는 계속 에센스를 먹여가며 뷔에탕의 저주를 미룰 수 있었다. 뷔에탕은 마력의 시한이 반 년이라고 했으나, 나는 못해도 2년 이상은 버틸 수 있으리라 여겼다. 륭과의 사건으로 그에 필요한 에센스도 넉넉히 얻었다.
그러나 이번에 로키 상공에서의 사건으로 뷔에탕의 저주는, 처음보다도 더욱 강건한 마력의 주박이 되어 정신을 파고들었다. 화물 캐리어의 위에서 정신의 경계를 침범하려던 뷔에탕의 마력이 그대로 몸속에 남아버린 것이다.
집행관의 안쓰러운 시선이 아직도 기억난다.
십이제에도 이름을 올렸었던 9레벨 상위권의 괴물을, 내가 너무 안일히 생각한듯했다.
결국, 처음보다 배는 강해진 뷔에탕의 마력이 내 육신을 실시간으로 갉아먹는 중이었다.
그것이 내가 발할라에 도착하자마자 저주에 통달한 마법사를 찾겠다고 다짐한 이유였다.
나는 비록 맨 손이지만 전생의 대륙에서 얻어온 수백 개의 고유 마법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 경지가 되는 마법사를 만나면 그 지식들을 거래 품목으로 사용해 볼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서재에 들어오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눈 앞에서 저러고 있는 일레힌 포이체카를 보고는 다른 방법이 떠오른 것이다.
나는 생각이 끝나자마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제가 마탑주님의 상태에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 *
‘아니, 이게 무슨 미친···!’
울그락불그락해진 루벤카의 안면.
상상도 못한 일에 욕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루베르겐 집행관이 어떻게 만들어준 기회인데!
‘저, 저 미친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야? 무슨 도움을 드려!’
자신들에게 빈대처럼 붙어 따라온 저 정체 모를 시종이, 기어이 사달을 내고야 말았다.
일레힌 포이체카의 몸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은 마법계에 공공연히 떠도는 말이었다. 자신이 보아도 그는 절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긴 했다.
어떤 일로 마나 회로가 폭주했는지는 몰라도, 외부에서 주입되는 마력조차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고 줄줄 흘리는 상태.
강력한 마법사의 근간이 되는 마나 회로가 터졌다는 말은, 죽음이 머지 않았다는 말과도 같다. 지금의 마탑주는 마탑의 구성원들이 주입해둔 마력으로 연명만 겨우 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볼때 이미 저기까지 가버린 상태라면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꾸준히 마력과 에센스를 퍼부어 생명을 유지시킨 다음, 몸이 정말 기적적으로 회복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는.
그런데 레반 저 개새끼가, 그런 마탑주의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갑자기 튀어나오더니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뱉어버린 것이다. 마탑에서 제발 머무르게 해달라고 설설 기어도 모자랄 판에!
—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마탑주님, 혹시 용이 되어 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드래곤 하트를 지닌 용 말입니다.
레반의 알 수 없는 헛소리가 서재에 울려 퍼졌다.
루벤카는 기절초풍하며 그 즉시 레반의 입을 틀어 막으려 했다. 하지만 레반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마탑주의 감겨있던 두 눈이 번쩍 뜨임과 동시에 서재가 점멸했다.
그녀가 정신을 차려보니, 방금 말을 꺼냈던 레반을 제외한 모두가 서재 바깥으로 이동해있었다. 그 말은 마탑주가 레반의 헛소리에 일말의 기대라도 품고 있다는 뜻.
“······.”
이제 마탑주의 서재 안에는 레반만이 남아있었다.
이윽고.
털썩!
서재에서 튕겨져 나온 루벤카가 헛숨을 내뱉으며 주저앉았다.
당연하게도 저 개자식은 마탑주를 살릴 방법 따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고, 가진 성정이 불같은데다 괴짜로 유명한 일레힌 마탑주가 레반의 헛소리에 분노라도 한다면 자신들에게도 피해가 올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좆됐다······.’
루벤카의 등으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