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퓨전펑크의 전생자-47화 (47/157)

#47화. 시티 발할라

#47화.

“보인다···!”

레나가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빌어먹을 뷔에탕이 있는 로키 시티의 근방을 루베르겐 집행관의 힘으로 벗어난 이후에는 다행히 캐리어의 비행은 순탄했고, 나흘이라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하여 현재.

정면의 기다란 지평선 너머로, 장대한 산맥 줄기가 서서히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야, 존나게 멋있긴 하네요. 제가 살다살다 발할라 시티를 다 와볼 줄은 몰랐습니다.”

나는 호들갑 떠는 루돌프놈을 가볍게 무시한 채 멀리 있는 지평선을 바라봤다.

어둡고 광활한 대지 위. 천공을 찌를만큼 대단히 드높고, 지평선조차 가려버릴 만큼 거대한 산맥이 두 눈을 사로잡는다.

그것은 ‘세상의 지붕’ 이라 불리우는 발할라 산맥이었다.

그리고 저 산맥의 밑둥에 장벽을 둘러쳐 만들어낸 도시이자 천혜의 요새가 바로 발할라 시티. 산맥이 워낙 거대해 발할라의 면적은 발두르의 열 배는 족히 되며, 저 곳에서 살아가는 인구만 8억 명 이상이었다.

루돌프놈은 도시에 올라온 촌놈처럼 연신 감탄을 머금었다.

“와 형님, 이거 발두르 시티랑은 비교가 안 되는데요? 진짜 말도 안 되게 넓네요.”

그야, 발두르 시티는 발할라에 비하면 촌구석이니까.

내가 십 년간 살았던 인구 1억의 발두르 시티는 연방의 일곱 거대 도시 중 규모가 제일 작은 편이었다. 심지어 강력한 군벌과 세력들이 춘추전국시대처럼 실시간으로 땅따먹기 놀이를 하는 로키 시티보다도 도시 면적이 좁았다.

그에 비한다면 저 발할라는 대해(大海)와도 같다.

저 인구 8억짜리 거대 도시 안에, 발할라 산맥의 드높은 위용에 걸맞은 강자들이 대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나는 물끄러미 발할라 산맥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인구의 대부분이 몰려 살아갈 발할라 산맥의 아랫쪽 평탄면은 온갖 색의 빛깔들이 무지개처럼 뒤섞여 환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그 위로, 해발 만 미터를 훌쩍 넘기는 산봉우리들은 마치 고고한 학처럼 만년설과 빙하의 줄기들로 새하얗게 뒤덮여있었다. 그 새하얀 만년설과 빙하들이 도시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반사하는 탓에, 산맥 전체에서 광이 나는듯한 착시를 불러 일으켰다.

저것은 흡사 어두운 망망대해에 솟아있는 등대 같았다. 드높은 발할라 산맥의 봉우리들은 장벽 안과 바깥의 세계를 가르는 하나의 등대였다.

실로 장관이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상선의 캐리어는 부지런히 움직여 발할라 시티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크긴 크군.”

거리가 좁혀질수록 끝을 모르고 높아지며 시야 전체를 가득 채워가는 산맥의 풍경.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이 내 발밑에 있는데도, 산맥의 봉우리 꼭대기는 이보다 한참 더 위에 있었다. 캐리어 상층 갑판에 있는 내가 고개를 들어 올려다봐야 할 정도였다.

구우우웅—

어느 순간, 캐리어가 공중에 멈춰섰다.

내가 탄 상선 캐리어의 근처에는 발두르뿐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캐리어들이 꽤 많았다. 그들은 모두 발할라 시티 장벽을 보호하는 광역 마법진이 해제되길 기다리는 중으로 보였다.

발할라 시티의 광역 보호 마법진은 하루에 두 번, 한 시간가량 일부분 해제되어 다른 도시에서 온 캐리어들을 시티 안으로 들인다.

그 마법진이 해제될 때까지 화물 운송선과 작은 캐리어들이 속속 도착해 발할라 장벽 근방의 상공을 빽빽하게 메웠다.

약속된 시각이 되자, 장벽의 상공을 기점으로 보호 마법진 일부분이 해제되었다. 발할라 상공에 떠있던 캐리어들은 도착한 순서대로 발할라의 장벽 안으로 진입해 착륙했다.

— 게에에엑!

커다란 캐리어들이 착륙할 때 굉음이 여러 번 울렸는데, 아마도 그 때문인지 발할라 산맥의 어디선가 나타난 좀비들이 장벽 근처로 몰려들었다.

그 수가 못해도 수천 마리는 족히 되어 보였는데 소란이 점점 더 커지자 좀비들의 세력이 순식간에 불어났다. 시티의 장벽 바깥은 금세 좀비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어이구, 오늘은 좀 많이 몰렸네?”

“그러게 말이야.”

하지만 그 흉흉한 광경에도 상선의 승무원들은 흔히 있었던 일이라는듯, 심드렁하게 코를 후비적거렸다. 사실 그리 강력한 좀비는 없었기에 내가 보아도 딱히 문제될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쯤.

발할라의 장벽 안에서 허공을 날아오는 일단의 무리가 보였다.

풍기는 마력으로 볼 때 한명 한명이 7레벨급의 강력한 마법사들로 보였다. 이윽고 그들이 허공을 부유하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발할라의 상공이 마력의 파장으로 일렁였다.

화아아악—!

곧, 거대한 불길이 하늘에서부터 떨어지며 땅바닥을 해일처럼 덮쳤다. 위력을 보아하니 5위계 마법은 되어 보였는데, 축제 인파처럼 몰려들었던 좀비들은 거뭇한 잿더미가 되어 생을 마감했다.

당연하게도, 저레벨급의 좀비들은 감히 7레벨 마법사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여긴 7레벨 마법사들이 문지기를 하는군.’

그렇게 캐리어의 갑판에서 바싹 구워지는 좀비놈들을 구경하던 나는,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저리 허접한 놈들이야 어렵잖게 막는다지만, 이렇게 보호 마법진이 풀렸을 때에 강력한 좀비가 작정하고 처들어온다면 과연 막아낼 수가 있을까 하며.

마침 옆에 장벽 밖에서 백 년 가까운 시간을 방랑한 아힘사가 서 있었기에 내가 물었다.

“아힘사.”

“네.”

“밖에서 돌아다닐 때, 강력한 시체를 본 적도 있나? 예를 들면 저 7레벨 마법사들도 찜쪄먹을 정도로 강력한 놈들 말이야.”

그러자 아힘사는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힘을 가늠할 수 없는 시체를 마주친 적은 많았습니다. 개중 가장 강력한 개체는 7년전 어디선가 마주한 산보다 거대한 크기의 시체였습니다. 그 시체는 짐승의 형상을 한 시체군단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는데, 시체군단이 얼마 가지 않아 자리를 피했습니다. 도망쳤던 시체군단의 지휘관급 개체 몇 마리만 와도 저 마법사들은 상대가 되지 못할 겁니다.”

“그래?”

“네.”

나는 아힘사가 줄줄 늘어놓은 얘기를 듣고는 꽤 놀랐다.

생전 처음 듣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방금 전, 아힘사의 입에서 나온 그놈들은 연방에서도 고위험으로 분류해두었기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네임드 개체들이다.

산보다 거대한 놈이라면 분명 ‘파루무치’ 일테고 강력한 짐승형 시체군단을 이끌고 다니는 놈이라면 아마 ‘악부’ 겠지. 연방 정부에서 최소 9레벨 이상으로 분류해둔 네임드 개체. 그런데 그 둘이 전투를 벌였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만약 전투를 벌인 사실을 알았다면 기자들이 그런 뉴스를 놓칠 리가 없겠지. 그러니 이건 오로지 장벽 밖의 방랑자였던 아힘사만이 알고 있는 내용인 듯했다.

하기야 뭐···내가 그걸 안다고 해서 뭐 크게 달라지는 건 없지만.

아무튼 한 시간 뒤, 차례가 다가온 상선의 캐리어가 마침내 발할라 시티 안쪽로 진입했다. 우리는 무사히 착륙까지 마친 뒤 캐리어에서 하선했다. 도시의 고도가 높아 발두르보다 날씨가 서늘했다.

곧이어 선글라스를 쓴 로브 차림의 사내가 다가와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검역이 있겠습니다. 전부 가진 무기 내려놓고 격리 구역으로 이동하세요.”

그는 가슴에 발할라 시티 관청의 마크를 달고 있는 6레벨급 마법사였다. 함장과 승무원들은 그의 말에 따라 익숙하게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나와 내 일행이 제자리에 멀뚱히 서있자 관청 마법사는 인상을 팍 구기며 위압적으로 다가왔는데, 아쉽게도 그 태도가 오래 가지는 못했다.

“!”

화물 캐리어에서 뒤늦게 내려선 루베르겐 집행관이 그 관청 마법사를 지그시 바라보자, 녀석은 눈에 띄게 당황하더니 금방 다른 선임 마법사를 불러왔다. 아까 전에 좀비들을 바싹 구워버리던 7레벨 마법사중 하나였다.

그 7레벨의 선임 마법사는 유크 루베르겐 집행관의 공무원증을 확인하자, 겸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뒤로 한 발 물러났다.

— 원래는 검역과 더불어 신분 확인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나, 집행관님께서는 일행분들과 함께 곧장 통과해 나가셔도 됩니다.

결국 우리는 발할라 시티 입성의 필수 관문인 검역도 없이 발할라의 선적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연방 집행관이라는 명함의 후광은 실로 대단했다.

그렇게 선적장에서 아무일 없이 빠져나온 우리는, 앞서가는 집행관을 따라 근방의 소도시에 들어섰다.

루베르겐 집행관은 연방 정부 소속이지만 마법사이기도 하여, 그와 접점이 있는 발할라 시티의 마법계 인사에게 레나를 부탁할 계획이라는 말을 했다. 지금 우리는 그 마법계 인사가 있다는 곳으로 향하기 전, 하루 묵을 곳을 찾는 중이었다.

나는 그를 따라 이동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꼴을 보니 여기는 시티의 하류층들이 사는 구역이었다.

장벽 근처, 산맥 밑둥에 사는 발할라의 하층민들은 발두르의 외곽 주민들과 사실 별 다를 바 없었다. 술과 마약에 취해있는 이들은 물론이고 길거리에서 호객하는 섹스토이들도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발두르 시티보다 더욱 많았다.

원래 발할라 시티는 계층의 분간이 발두르보다도 뚜렷하여, 산맥의 아래쪽에 살수록 하층민이고 산맥의 위쪽에 살 수록 지위나 명망이 높은 고위급의 마법사, 혹은 가문이 좋거나 재산이 많은 자였다. 어지간한 업무지구나 중산층 이상의 거주지도 최소 해발고도 3천 미터 이상인 산맥의 중턱 부근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 발할라 시티의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산맥 위로 통하는 도로는 아무나 쓸 수 없다는 거였다.

관청의 허락받은 이들이나 신원이 확실한 기업의 사람들만 발할라의 산맥 위로 통하는 도로를 쓸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은 무인 택시에 오른 손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발할라 시티는 산맥 위에 세워진 탓에 도로를 제외하면 경사가 가파른 산이나 절벽이었다. 그런데 잘 닦인 도로를 쓰지 않으면 저 깎아지른 듯한 경사를 어떻게 기어 올라가겠나.

그렇게 되니 산맥 밑둥에서 사는 주민들은 더더욱 위로 올라갈 일이 없었고, 평범한 이들이나 하류층은 평생토록 산맥의 중턱조차도 구경하지 못한다고 했다.

발두르는 적어도 택시를 타면 어디든 갈 수 있었는데 말이다.

어쩌면 정크타운 슬럼가에 처박혀있는 주민들보다도 더 불쌍한 이들이 발할라의 하층민들일지도 모르겠군.

잠시 뒤.

우리는 그나마 상태가 괜찮아 보이는 객점을 찾아 들어갔다. 거기서 크레딧을 적당히 지불하고 방 두 개를 얻었다. 1층이 음식점이고 2층이 모텔인 형태였는데, 우리는 1층에서 대충 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 설산목 잎 달팽이들이랑 청수 도롱뇽이요.

곧, 내 앞에 꾸덕하고 징그러운 요리와 맥주가 놓였다.

이 객점의 주인은 이 음식물 쓰레기가 발할라의 전통요리라고 소개하며 자랑스레 내놓았다. 발할라 산맥의 달팽이와 도롱뇽은 개체수가 워낙 많아 아무리 많이 잡아먹어도 줄지 않는다던가?

어쨌든 그 맛은 예상했던대로 상당히 별로였다. 이런걸 더 처먹다간 필시 토악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내가 식사를 그만 두었을 때, 루베르겐 집행관은 잠시 다녀와야 할 곳이 있다며 홀연히 사라졌다.

그 뒤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식사를 대충 마친 레나와 루돌프, 아힘사는 2층으로 올라갔고 나는 혼자 1층에 앉아 목구멍에 맥주를 부어 넣으며 주린 배를 채우고 있었다.

딸랑-

그때, 객점의 문이 열리고 찬바람과 함께 루베르겐 집행관이 돌아왔다. 아까전 집행관은 분명 단신으로 나갔으나 돌아온 지금은 단신이 아니었다.

그는 전신을 로브자락으로 꽁꽁 싸맨 여인 둘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 중 백금발의 긴 머리를 한 여인이 대뜸 내 옆으로 와서 앉더니, 뜨겁게 덥힌 맥주를 주문했다.

이윽고 그 백금발의 여인은, 내쪽으로 의자를 돌려 앉으며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미소가 실로 아름다운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시티 방송국의 얼굴마담을 해도 될 정도로, 그리고 어디가서 쉬이 보기 힘들 만큼 아름답고 매력적인 외형의 여인.

“······.”

놀랍게도 그 여인은 내가 아주 잘 아는 얼굴이었다.

유일하게 남은 레나의 혈육, 잉그리드 반 루벤카.

그 흉악하고 악독한 년이, 루베르겐 집행관과 함께 들어와서는 내 앞에서 활짝 웃고 있었던 것이다.

“야, 되게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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