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퓨전펑크의 전생자-46화 (46/157)

#46화. 좋은 주인, 나쁜 주인

#46화.

발할라 시티행 화물 운송선.

그곳에서 우리가 각자 배정받은 2평 크기의 내실에는 침대, 탁자 하나와 접이식 의자, 작은 조명과 넷 단말기 충전용 콘센트뿐이었고 흔한 창문도 하나 없었다. 천장이 낮아 다 일어서면 고개를 펼 수도 없었다.

화물을 최대한 많이 싣기 위해 방의 크기를 줄인 설계.

심히 답답하고 운신이 불편했으며, 육중한 기체가 시도 때도 없이 덜컹대는 바람에 대가리가 천장과 혼연일체가 되어버리는 등, 오프로드용 지프보다도 탑승감이 별로였다.

레나는 그 엿같은 탑승감 덕에 불면증이 더욱 심해져 고생했지만, 유일하게 남아있는 가족인 루벤카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비행 첫날부터 지금까지 꽤 들떠있는 상태였다.

오늘은 이 화물 운송선이 발두르 시티에서 이륙한지 사흘째였는데, 평소처럼 내 방으로 찾아와 침대 위에 걸터앉은 레나가 괜히 걱정하는 얼굴로 말했다.

“레반, 혹시나 발할라에 도착했을 때······.”

“루벤카가 진짜 팻말이라도 들고 나와 있을까봐 그러나?”

“만약 그렇더라도 걱정하지 마! 내가 나서서 잘 설득해볼게. 레반이 예전보다 많이 바뀌긴 했어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잖아. 그렇지?”

사흘간 가까이서 지켜보니, 레나는 지금도 내게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그 유대감의 정도는 내 예상보다도 훨씬 더 끈끈했다.

사실 그때 상선의 건물에서 그길로 나를 버리고 루베르겐 집행관과 먼 길을 떠났다 해도, 나는 어렵지 않게 현실을 받아 들였을텐데.

레나에게 레반이라는 존재는 열 살이라는 나이에 처음으로 얻은 시종이자 일종의 친구였다. 그렇기에 저러는 것인가. 아니면 그리 믿고 싶은 것인가.

나는 칼과 마법을 곁에 두고 산 덕에 여인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사내가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 레나가 나에 대해 무슨 생각과 감정을 갖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레반, 대답 안 해줄 거야?”

“그래. 뭐든 네 말이 맞다.”

아무튼 그 유치한 물음에 짧게 대답해주자, 레나는 그제서야 헤헤거리며 모자란 사람처럼 웃고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곧, 찌뿌둥한 몸을 풀며 복도로 나왔다. 복도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꽤 넓은 장소가 있었는데, 푹신한 의자에 앉아 투명한 창밖으로 외부를 구경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루베르겐 집행관이 미리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이 여유로이 앉아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허파부터 기가 찼다.

지금까지 저 인간은 방에만 처박혀있던 내 기감을 하루 종일 찔러대며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나는 심히 불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 같은 시종놈을 왜 자꾸 부르십니까.”

“얼굴 한 번 보기 힘들군.”

이렇게나 거대한 화물 운송선을, 그것도 백 대 이상을 운용하는 상선의 임원을 말 몇 마디로 짓눌러버린 저 거물은, 수상한점 투성이인 나를 순순히 내버려 둘 마음이 없어 보였다.

이륙한 뒤 이틀 정도는 전투 후의 내상을 수습해야 한다는 핑계로 어찌저찌 버텼지만, 언제까지고 그 변명이 통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여기는 피할 곳도 도망칠 곳도 없었다. 수천 미터 상공에 떠있는 화물 운송 캐리어 아니던가.

그렇기에 나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말했다.

“뭐가 그리 궁금하십니까?”

곧.

루베르겐 집행관은 허접한 내공만 겨우 가지고 있던 내가 단시간에 이만한 힘을 어떻게 얻었는지를 차근차근 물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뷔에탕의 마력과 언 선생의 법부적에 관련한 물음도 있었다. 비록 그 물음에 악의는 없어보였으나, 쉬이 대답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골치가 아팠다.

그런데 나를 그 질문의 늪에서 구해준 것은, 륭의 인격 메모리칩이었다.

머릿속으로 온갖 변명을 떠올리던 나는 말없이 주머니속에 있던 륭의 인격 메모리칩을 꺼내어 내밀었다. 다행히도 그것이 통했는지, 루베르겐 집행관은 이 메모리칩을 보자마자 흥미를 잃은 얼굴로 눈을 돌리더니 관심을 뚝 끊고는 더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너무도 기꺼웠다.

덜컥.

그때, 누군가 저편에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콧수염을 턱 밑까지 기르고 팔에 털이 숭숭 난 덩치의 사내였다.

“불편한 점은 따로 없으십니까?”

저 덩치는 이 화물 운송 캐리어의 책임자로, 다른 승무원들은 그를 함장이라고 불렀다. 가진 무력도 출중해서 적어도 완숙한 6레벨급은 되었다. 규격 외의 존재인 연방 집행관을 제외하면 이 운송 캐리어에서 가장 힘있는 자였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제게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 바로 대령하겠습니다.”

함장은 수시로 루베르겐 집행관을 찾아와 불편함이 없는지를 직접 살폈다.

애초에 사람을 운송하는 게 아닌, 화물 운송용 캐리어인지라 내실의 상태가 열악했고 그것이 못내 신경쓰이는 모양이었다. 집행관급의 거물이라면 늘 호화스러운 공무용 캐리어를 타고 다녔을 테니까.

함장은 집행관의 답이 없자, 잠시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오늘 비행 일정 말씀드리겠습니다.”

집행관을 찾아온 함장은 외형에 어울리지 않는, 기상캐스터 수준의 정확한 발음으로 오늘의 비행 일정을 줄줄 읊었다.

“오늘 예정되어 있던 항로에 갑자기 돌풍이 들어서는 바람에 안전하게 로키 시티의 장벽 근방으로 우회해서 기동할 계획입니다. 로키 시티의 근방을 경유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최단 항로니 집행관님의 발할라 일정에 큰 차질은 없을 겁니다.”

그러자 의자에 기대어있던 집행관은 고개만 가볍게 끄덕거렸다. 함장은 곧바로 머리를 꾸벅 숙여보이곤 이내 함실의 바깥으로 조용히 빠져나갔다.

나도 그를 따라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내가 향한 곳은, 캐리어의 상층 갑판이었다.

상층 갑판으로 나오면 어두운 하늘과 발밑으로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광활한 대지를 볼 수 있었는데, 저 광활한 대지는 인간이 표류하다 죽기 딱 좋은 땅이었다.

내가 갑판의 가장자리에 서서 밑을 내려다보자, 개미보다도 작은 점들이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점들은 죄다 좀비로 보였는데 이만한 높이에서 저렇게 보일 정도라면, 실제 크기가 인간보다 배는 클 것이었다.

눈에 마력을 집중하자, 시야에 들어온 놈들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큰 놈의 형체를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황소보다 다섯 배는 큰 몸집에 가느다란 팔 여섯 개로 몸을 지탱하며 땅을 짚어가며 기어다니는 좀비였다.

그 꼴이 징그러워 곧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캐리어의 갑판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괴상하게 생긴 날개가 달려있는 비행형의 좀비가 이따금씩 나타나는 것을 구경할 수 있었다.

놈들은 캐리어가 비행하는 고도까지는 올라오지 못했지만, 그래도 꽤나 높이 날았다. 조금이라도 위협이 될 만큼 올라왔다 싶으면, 그 순간 캐리어의 옆면에 달린 기관포가 불을 뿜었다.

콰앙-!

대부분은 그 굉음을 듣고 멀리 도망쳤고, 재수없이 기관포에 적중당한 놈들은 폭죽 터지듯 산산조각나며 땅으로 추락했다.

캐리어는 그렇게 허공을 고고히 미끄러져 갔다.

이제 발할라 시티에 도착하기까지 나흘만을 남겨두었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별문제는 생기지 않을 듯했다. 어디까지나 무난한 비행이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로키 시티의 거대한 장벽이 저 멀리, 아주 어렴풋이 보이던 때.

우리가 타고 있는, 허공을 고고히 미끄러지며 비행하던 이 화물 캐리어에 무엇인가 커다란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구우우웅—

항로를 따라 멀쩡히 비행하던 캐리어의 고도가 갑자기 낮아지며 옆으로 크게 기울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캐리어 내에 선적해둔 화물 컨테이너들이 한쪽으로 우르르 쏠리며 상황이 순식간에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캐리어에 탑승한 모든 이들은 상층 갑판으로 나와 있었는데, 함장은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승무원들에게 마구 윽박을 질러대며 지금의 사태를 파악하려 동분서주하는 중이었다.

— 고도 계속 낮아지잖아! 땅바닥에 처박아서 다 끝장나기 전에 출력 최대로 올려!

— 추, 출력은 이미 최대치입니다. 몇 분 전부터 계속 최대였습니다.

— 뭐? 근데 왜 이래?

— 모, 모르겠습니다. 여기는 바람이 강하지도 않은데 대체······.

— 야이 씨발, 모르면 인생 끝나? 정신 똑바로 안 차려!

이후로 캐리어의 승무원들도 분주하게 갑판 위를 뛰어다녔지만 해결할 방법은 물론이고 원인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다들 하나같이 당황스러운 낯빛을 하고 있었는데, 상행 경험이 많은 그들도 처음 겪어보는 돌발사태가 분명했다.

와중에 비행 고도는 갈수록 더 낮아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점처럼 보였던 좀비들의 이목구비가 어느덧 뚜렷하게 보일 정도까지 낮아졌다. 이 기세라면 못해도 3분쯤 뒤에는 지상으로 고꾸라져 수많은 좀비들의 밥으로 전락할 것이 자명했다.

와중에, 나는 그런 광경의 한 발 뒤에서—

【 어 디 가? 】

【 나 보 러 오 는 거 아 니 었 어? 】

정신의 경계를 침범해 넘어오려는 뷔에탕의 진득한 마력을, 식은 땀을 뻘뻘 흘려가며 막아내는 중이었다. 등판에 새겨진 문신들이 인두로 지진듯 뜨거운 열기를 내며 타올랐다.

레나처럼 좋은 주인이 있으면, 이 년처럼 나쁜 주인도 있는 법.

“······.”

저 승무원들이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운송용 캐리어 자체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니까.

이 캐리어는 지금 ‘끌려내려’ 가는 중이라고 얘기하는게 정확하리라. 어떤 외력이 작용해 항공모함만큼 거대한 이 화물 운송용 캐리어를 지상쪽으로 끌어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 외력의 주인은 바로, 카스트라 뷔에탕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로키 시티의 장벽이 보일 때부터였나.

가슴이 막힌듯 심히 답답하고 뷔에탕의 문신이 있던 뒤통수와 등이 돌연 미친 듯이 간지러웠다. 나중에는 등과 뒤통수의 문신에서 뷔에탕의 마력이 들불처럼 들고 일어나더니, 내 정신을 어지러이 흔들어 놓을 정도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쯤 되면 눈치를 못 채기가 더 힘들었다.

마피아의 근거지인 로키 시티, 카스트라 뷔에탕, 그리고 뷔에탕의 저주 마법에 걸려있는 나.

그러니까.

로키 시티의 장벽 안, 어딘가에 있을 뷔에탕이 장난을 치고 있는 거다.

그런데 설마하니, 5km도 족히 넘어가는 장거리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외력의 행사가 가능할 줄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 내 시야에는 저 멀리 로키 시티의 장벽 위에서 움직이는 하나의 형체가 보였다.

그 형체는 팔다리를 흐느적 거리며 춤과도 비슷한 동작을 선보이는 중이었는데, 그 몸동작에서 시작된 기묘한 마력의 파장이 여기까지 전해져 왔다. 이 운송용 캐리어의 고도가 낮아지는 이유는, 아무래도 저 괴이한 형체와 연관이 있는듯 싶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여기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

아무것도 없었던 상층 갑판의 허공에서 루베르겐 집행관이 새하얀 연기를 후욱- 내뿜으며 유령처럼 나타났다.

철컥.

곧이어 루베르겐 집행관의 오른팔이 아힘사의 그것처럼 변환되더니, 손바닥 중간에서 그의 멀대같은 키보다도 기다란 포신이 곧게 솟아올랐다.

동시에 집행관은 피우던 궐련을 손에 쥐었다. 그러자 집행관의 전신에서 일어난 정순한 청록빛의 마력이 궐련으로 스며들었고, 청록빛을 내는 궐련이 돌연 포신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이윽고 잘게 진동하는 주변의 대기.

사아아아—

막대한 양의 기운이 포신의 한 점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다 한순간, 포신의 극단에서 번갯불과도 같이 밝은 전광이 솟구치며 청록색의 빛무리가 사출되었는데, 그로 인해 발생한 화염과 충격파가 캐리어의 단단한 중장갑을 찌그러뜨릴 정도였다.

청록색의 화염 꼬리를 단, 조금 전만 해도 ‘궐련이었던’ 발사체가 대기를 정직하게 찢어발기며 가느다랗고 긴 일직선의 잔상을 남겼다.

그 발사체는 눈 한 번 깜빡할 사이에 장벽 위에서 흐느적대며 춤추던 놈을 세상에서 지워버렸다. 기이한 마력을 뿜어내던 놈은, 5km가 넘는 거리를 우습게 구겨버린 청록빛 궐련과 함께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럼에도 끝이 아니었다.

루베르겐 집행관의 기다란 포신이 재차 꾸득거리며 변환되더니, 주변의 기운을 한꺼번에 잡아먹으며 거대하고 길다란 대검의 형상을 갖추었다.

그때.

팟-

찰나간, 집행관이 자리에서 증발하듯 사라졌다.

다음으로 그의 신형이 나타난 곳은 운송선의 후미였다.

눈이 멀어버릴 정도의 빛을 내는 집행관의 대검은 이미 누군가의 심장을 관통하고 있었는데, 얼굴을 뒤덮은 마나 문신만 아니었다면 필시 훤칠하게 생겼을 사내였다. 놈은 심장이 대검에 꿰뚫린 상태에서도 히죽 웃더니, 갈라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흐. 음. 】

서걱.

놈은 무슨 말을 하려 했으나, 집행관의 대검은 기다림이 없었다. 그는 괴상한 음성을 뱉는 놈을 가차없이 반으로 갈라버리곤 갑판 아래로 집어던져버렸다. 반쪽으로 잘려 떨어지는 놈의 아래로 피냄새를 맡은 좀비들이 개떼처럼 몰려들었다.

동시에 뷔에탕의 마력을 버텨내고 있던 내 몸에 힘이 쭈욱 빠지며 뒤로 넘어갔다.

쿵-

“······.”

잠시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 집행관은 뷔에탕의 마력에 진탕 당해 쓰러진 나를 잠시 안쓰럽게 쳐다보나 싶다가, 별 말없이 갑판을 내려갔다.

상황 종료였다.

캐리어는 그 놈들이 뒈져버린 뒤로 무난하게 떠오르며 원래의 고도를 찾았다. 육안으로도 보이던 로키 시티의 장벽도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조금 뒤 정신을 부여잡고 일어난 나는, 저 밑에서 갈기갈기 찢겨 뜯어먹히는 그 놈을 보며 육포를 씹었다. 하지만 더럽게 짜기만 하지 맛은 하나도 없었다.

결국, 씹던 육포를 그냥 내던지고 몸을 돌렸다.

아무래도 발할라 시티에 도착하면, 저주 마법에 통달한 마법사부터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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