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퓨전펑크의 전생자-44화 (44/157)

#44화. 좋은 주인

#44화.

나는 앞에 놓인 영약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뜻밖의 대단한 횡재였다. 이런 행운이 또 있을까.

저런 훌륭한 영약이, 그것도 넝쿨째로 굴러 들어오다니.

하지만 어째서인지 도통 저 영약들로 손이 가질 않았다. 속는 셈 치고 팔을 조금 내뻗기만 한다면 저 귀한것들을 모두 수중에 넣을 수 있음에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경계심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상선과 갈등이 있던 케아드로 시 의원을 암살한 공적이 있긴 하지만, 상선의 소속으로 스카웃하는 것도 모자라서 이만한 양의 영약들을 곧바로 내어준다라.

심지어 당가와 척을 진 것을 알면서도 나를 굳이?

상선은 발두르에서 대기업이나 다름없는 집단이다. 이렇게까지 선물 공세를 퍼부어가며 영업해야 할 만큼 인재가 부족할 리는 없었다. 상선에 소속되어 일하고 싶은 실력자들이 시티에 한 트럭일 것이다.

그저 반나절 뒤에 떠나는 화물 운송용 캐리어로 밀항만 시켜준다면, 그대로 깔끔하게 마무리되었을 일이다.

그러니 이것은 단지 통이 큰 걸 넘어서 다른 노림수가 있다고 판단하는게 옳을 듯했다.

또한 성가신 일을 빨리 치워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행동하는 저 사내, 칼스의 기이한 태도가 눈에 계속 밟혔다.

나는 불현듯, 저자가 언제까지 저런 무뚝뚝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그렇기에 한번 미친 척 당차게 물었다. 다만 나름대로 정중한 어투이긴 했다.

“네 개는 너무 적은데. 더 못 줍니까?”

그러자 그는 쥐고있던 펜을 탁, 내려놓고는 안경을 벗었다. 업무가 과중한지 내내 피곤한 표정의 그가 얼굴을 두 손으로 쓸어내리며 냉막하게 말했다.

“얼마나 필요한데? 주면 흡수는 할 수 있고?”

“······.”

설마설마 했는데. 조금 놀랐다. 아니, 많이 놀랐다.

더 달라는 이유조차 묻지 않고 금방 내어줄 기세다.

이미 저 네 개의 목함만 따져봐도 엄청난 가치가 있다. 그런데 저런 영약들을 정말로 더 내어줄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고작 말 몇 마디에?

역시나 이상하다.

그렇기에 나는, 못 받아도 상관없다는 심정으로 통 크게 질렀다.

“한 여덟 개 정도면—”

“갖다줘.”

숨 돌릴 틈도 없는 승낙.

딸칵-

실제로 그의 비서는 즉각 네 개의 목함을 추가로 들고 와선 능숙하게 열어 보였다.

이번에도 호두알 크기의 영약들에서 청량한 향이 사방팔방으로 솟구치며 나의 욕심을 부추겼다. 의도야 어찌 되었건 목구멍에 침이 마르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이제 내 앞에 놓인 목함은 총 여덟 개.

‘미쳤군.’

세 달간 정크타운 밑바닥에서 개처럼 구르며 얻은 에센스를 전부 합쳐봐야 이 영약 두 알을 먹는 것만도 못 할 텐데, 그런 영약이 무려 여덟 알.

그러나.

내게 이 정도로 큰 호의를 베풀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저 칼스라는 자는 못해도 상선의 핵심 임원급은 되어 보이는데, 그가 무슨 이유로 나를 불렀는가 하는 의문은 아직 풀릴 기미가 없었다.

“여덟 개다. 더는 없어.”

저 피곤해보이는 인상으로 보아하니, 더 이상 나와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다 무릅쓰고서라도 입 안에서만 맴돌던 말을 밖으로 꺼냈다.

“제가 이걸 받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당연한 의문이었다.

“안 받겠다라······?”

“예.”

“아무래도, 너는 내 말의 행간을 파악하지 못한 것 같군.”

“······.”

그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팔짱을 끼고 서 있던 친씨아를 조용히 바라봤으나, 그녀는 어색하게 눈을 피할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슬슬 재수없는 일에 휘말릴 것 같은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다.

우두둑-

직장인이라면 고질병 하나쯤은 달고 사는 목과 허리 관절에서 시원한 소리가 울려펴졌다. 그제야 조금 살만하다는 듯, 숨을 깊게 내쉰 칼스의 입이 나지막이 열렸다.

“내가 하라고 하면, 너는 그냥 ‘예’ 하고 따르면 되는 거야.”

“······.”

“발할라로 갈지, 상선에서 일할지 네게 결정을 맡긴다는 뜻이 아니었다는 말이지.”

일말의 여지도 없는 완벽한 협박.

하지만 그의 얼굴은 너무나도 평온했다.

누가 보면 커피라도 한잔 같이 마시러 나가자는 줄 알았을 것이다. 피곤에 찌든 그의 입에서 나지막이 나온 협박과 평온한 낯빛은 서로 어우러지지 않아 상당한 이질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거 가져가서 너 다 먹어. 네가 곧 힘 써줘야 할 일들이 있으니까.”

아.

나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이 여덟 알의 영약들은 독을 가득 뿌린 성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란 얘기로군.

나를 발할라로 밀항시켜주는 선택지는 저들의 머릿속에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아마 나를 어떻게든 상선의 사냥개로써 써먹을 계획을 진작에 세워놓은 듯했다.

이 훌륭한 영약들을 죄다 처먹고 나면 다음번엔 과연 누구를 죽여야 할까. 시의원이 아니라 시장이라도 죽이라고 할 셈인가.

‘씨발놈들. 도대체 적당히를 모르는군.’

부아가 치밀었다. 당장 검을 뽑아 친씨아를 베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이것은 흡사 돈까스를 먹으러 가자고 해놓고선 치과로 데리고 온 격이기에 더욱 부아가 치밀었다.

“듣기로, 네 가지 조건을 걸었다던데.”

그쯤 칼스는 다시금 입을 열더니, 내가 친씨아에게 했던 요구들을 조목조목 짚어나갔다.

“첫째, 발할라로 보내줄 것. 둘째 중급의 영약을 내어줄 것. 셋째 연방군의 무기들을 가져다줄 것. 마지막으로 토사구팽하지 말 것. 여기서 첫째를 빼고는 나머지는 모두 지켜졌다. 그리고 첫째 요구 조건에서 발할라행의 기한을 따로 명시하지 않았으니, 상선이 네게 어긴 것은 아직 단 하나도 없지. 내 말에 틀린 부분이 있나?”

궤변이다.

어지간한 놈이 내 앞에서 저 지랄을 떨었으면 망설임없이 주먹부터 날렸을 것이다. 그러나 힘 있는 자가 펼치는 궤변은, 궤변이라 할지라도 힘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힘 없는 소시민인 내가 궤변이라고 아무리 말해봐야 입만 아플 것이다.

“언제까지 다 망해서 쓰러진 오너 일가의 영애를 케어할 생각인가? 베이비 시터야? 그만한 실력이 있으면 걸맞는 대우를 받아야지. 마침 우리는 대우를 해줄 수 있는 입장이고.”

달리 말하면, 뽑아 먹을 만큼 뽑아먹겠다는 얘기.

사람을 죽이는 재주가 있는 놈이 갈 곳도 없으니 영약을 먹여 소 잡는 칼로 제대로 한 번 써보겠다는 뜻이다.

다시 펜을 집어든 그가 단호히 축객령을 내렸다.

“영약들 가지고 내려가서 안내받아. 앞으로 네가 지낼 곳은 40층이다. 어지간해선 나를 다시 볼 일은 없을 테니, 이만 가 봐.”

칼스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안경을 쓰고 서류정리에 몰두했다. 커다란 사무실에는 종이가 사락사락 넘어가는 소리와 파일철이 테이블에 부딪히는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곧, 그의 비서가 너무도 당연하단듯 다가와 목함 여덟 개를 능숙하게 챙겨들었다. 내가 몸을 돌려 나가는 것을 기다리는 듯 보였다.

“레반.”

이제는 친씨아까지 합세해 어깨에 손을 얹고는 말을 걸어왔다. 그녀는 어색하게 눈웃음을 치더니, 짐짓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냥 일이 이렇게 됐어. 어차피 우리 서로 피차 숨기는 게 많았잖아? 상선에 들어와. 신분도 새로 하나 구해줄 테니까. 당가로부터 지켜주는건 장담 못 해도 네 능력이면 돈은 얼마든 벌 수 있어. 상행에 따라 나서면 비행도 얼마든 하고 다른 시티도 원하는 대로 갈 수 있을걸?”

가관이 따로 없었다.

저게 사실이라고 쳐도, 나중이 되면 또 말을 바꿔먹겠지.

어처구니가 없어서 연신 벌어지는 나의 입매 사이로, 헛웃음이 피식 새어나왔다.

“막말로 레반 정도면 우리 상선에서도 꽤 높은 곳까지 갈 수 있어. 칼스 말대로 언제까지 그 여자를 상전처럼 모시고 다닐 거야? 솔직해지자. 대체 뭐하러 어렵게 가려고······.”

친씨아가 뭐라 주절대며 말을 더 늘어놓았지만, 더 이상 귀담아듣지는 않았다.

나를 끌어들이기 위해 늘어놓는 개소리인 것은 둘째 치고, 지금까지 그럭저럭 잘 참아오던 나의 인내심이 동나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귀를 닫고 우두커니 서서 저 칼스라는 사내와 내 격차를 가늠해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명확히 답이 나왔는데, 저놈을 어찌저찌 때려눕힌다고 해도 이 빌딩에서 말짱히 걸어 나갈 수는 없을 듯했다. 이곳은 상선 소유의 빌딩이었다.

후회가 막심했다. 아힘사를 여기에 데리고 들어왔어야했다. 정 안되면 방패막이로 쓸 루돌프놈이라도 데리고 들어왔어야 했다.

“하—”

이제는 언 선생의 부적도, 아힘사도 없고 뷔에탕의 마력을 더 내보이는 것도 육신에 부담이 가중되어 무리다. 차, 포 다 떼고 얼마나 깽판을 칠 수 있을까.

이런저런 걱정을 하다보니 슬슬 정신이 불안정해질 조짐이 찾아왔다. 한쪽 눈이 제멋대로 마구 껌뻑이며 세상이 까맣게 점멸하고 있었다.

이것은 나의 오랜 경험상 정신병이 단단히 도질 전조 증상이 확실했다. 제정신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아마 여기서 조금 더 지나면 필시 병세가 도질 것이다. 다짜고짜 사람을 마구 썰어버릴 수도 있고, 갑자기 창문을 깨고 뛰어내리는 기행을 벌일지도 모른다. 정신병이 도졌을 때의 나는, 평소처럼 넉넉한 사내가 아니기에.

그래서 나는 정신병자의 등신같은 발악으로 생을 끝내느니, 그나마 정신이 멀쩡할 때 칼을 휘두르기로 했다.

스르릉—

결단을 내리자마자 검을 뽑았다. 공교롭게도 친씨아가 구해다 준 10만 크레딧짜리 검이었는데, 친씨아는 뽑혀 나온 검을 보자마자 무언가 예감을 했는지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레반, 진정해. 이런다고 아무것도 안 달라지는 거 알지?”

저 양복쟁이 칼스놈을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친씨아의 목 정도는 베고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 선천진기라도 다 뽑아쓰면 뭐 어떻게든 굴러가지 않겠나. 단전에서 끌어올린 내공이 기맥과 혈도를 타고 용솟음쳤다.

탓-

단숨에 땅을 박차고 신형을 쏘아냈다. 그리고 눈 한 번 깜빡할 새, 나의 검 끝은 친씨아의 목덜미를 짓누르고 있었다. 선혈이 길게 흘러나왔다.

그렇게, 그년의 목을 베어버리려던 그때였다.

쫘악—쫘악—

저편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칼스가 대뜸 들고있던 서류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더니, 들고있던 펜까지 멀리 집어 던졌다. 그는 뒤이어 장식품인 줄로만 알았던 테이블의 고풍스러운 유선 전화기에 손을 얹었다.

그 유선 전화기는 첫 번째 생의 한국에서도 거의 못 보던 고전적인 물건이었는데, 그는 전화기의 다이얼을 끼릭끼릭 조작하더니, 돌연 누군가와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 공 이사님. 저 칼스입니다. 그간 무탈하셨는지?

— 아닙니다. 대 사천당가를 저같은 놈이 걱정할 리가 있겠습니까. 저도 반 바이오의 일로 본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 그저 일의 진척이 궁금해 큰 결례를 무릅쓰고 연락을 드렸습니다.

사천당가.

친씨아의 피부를 베고 들어가던 검이 그대로 멈추었다.

— 아, 여즉 도망치고 있답니까? 관련해 듣기로는 장부를 조작해서 억 단위 크레딧을 빼돌렸다는 얘기까지 돌던데······화를 자초하는군요. 나중에 어찌 감당을 하려고.

— 예, 아무튼 조만간 모임에서 뵙겠습니다.

철커덕.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사천당가의 누군가와 통화를 끝낸 칼스가 눈짓하자, 그의 비서가 다가와 내려놓았던 목함 절반을 다시 수거해갔다.

청량한 향을 뿜어내고 있던 목함은 여덟 개에서 단숨에 그 절반인 네 개가 되었다.

칼스가 콧잔등 끝까지 내려온 안경을 고쳐 쓰자, 안경의 렌즈가 사무실의 조명을 받아 번쩍거렸다. 그는 또 무뚝뚝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게 줄 때 받으라고 했잖아.”

이윽고, 칼스가 비서를 향해 명령했다.

“밑에 있는 그 꼬맹이, 이리로 올려.”

저 입에서 나온 그 꼬맹이는 밑에서 대기하고 있을 레나를 말함이었다. 뭐 레나를 여기로 데리고 와서 고문이라도 할 셈인가. 아니면 당가의 손에 넘기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헌데 그게 뭐 어떻다고?

“그래. 너 멋대로 하렴. 이제 나도 멋대로 하련다.”

“!”

나는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당장 친씨아를 죽여버릴 생각으로 검을 쥔 손에 힘을 더 실었다. 이제 저자와 대화로 무언가를 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구구궁—

사무실의 거대한 문이 육중한 소음을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

저 문 밖에 있는 자는 칼스의 초대를 받지 않은 손님인지, 그조차도 의아한 얼굴로 문쪽을 바라봤다.

나도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커다란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칠흑같은 정장을 입은 큰 키의 중년이었다.

손목과 손가락에 탑재된 군용 펄스건과 각종 사출무기. 그리고 일곱 개의 별 마크와 홀로그램으로 띄워져있는 공무원증.

그는 놀랍게도 내가 일전에 한 번 보았던 자였다.

연방 집행관, 유크 루베르겐.

반 바이오가 당가의 공세에 무너지던 그날, 레나의 집무실을 찾아와 내게 단전에 내공을 쌓는 취미가 있냐고 물었던 그 거물.

“집행관님? 아니······.”

시종일관 냉막하고 고압적이던 칼스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벌떡 일어나더니, 급히 와이셔츠의 옷매무새와 흘러내린 머리를 가다듬었다.

육중한 문이 천천히 닫히고 나자.

무겁고도 고요한 적막이 찾아왔다.

나와 목이 잘릴 위기의 친씨아, 그리고 칼스는 지금 벌어진 상황을 살피기에 바빴다. 저기 들어온 연방 집행관은 사전에 합의 되지 않은 방문자임에 틀림 없었다.

‘뭐지?’

아무튼 칼스와 집행관의 사이에서 내가 친씨아의 목에 칼을 대고 끼어있는 모양새가 되었는데, 그 상황이 상당히 묘했다.

칼스는 영문을 몰라 쩔쩔매고 있었고, 연방 집행관은 아무런 말 없이 궐련만 뻑뻑 태우고 있었다. 표정이 없는 인간이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레반!”

“······?”

그런데 거기서 더욱 놀라운 것은, 연방 집행관의 커다란 등짝 뒤에서 레나의 얼굴이 쏘옥 튀어나온 것이었다.

내가 당황한 듯 보이자 레나가 종종걸음으로 걸어오더니, 친씨아의 목에 붙어있던 검을 붙잡아 조심히 내렸다. 그리곤 자기 쪽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것이 아닌가.

결국 나는 레나의 손길에 이끌려 연방 집행관의 뒤쪽에 자리하게 되었다.

이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사태 속에서, 제일 먼저 정신줄을 붙잡고 말문을 튼 이는 칼스였다. 나를 상대할 때와는 달리 굽실대는 행동거지가 실로 일품이었다.

“루베르겐 집행관님께서 여기까지 어쩐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그러자 집행관이 궐련의 연기를 후욱 내뿜으며 답했다. 그 조용한 목소리에는 항거할 수 없는 위압이 담겨있었다.

“칼스.”

“···예, 집행관님.”

“불과 몇 달 전에 나를 보지 않았었나.”

“예, 발두르행 ‘오딘 스테이션’ 에서 우연히 뵀었죠. 그때가 아마 반 바이오 컴퍼니에 연방법원 판결문을 통지하러 가시던 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어쩐 일로 이곳에 걸음하셨는지요. 무슨 문제라도······”

그때, 공손한 칼스의 대답은 안중에도 없는 눈치의 집행관이 뒤를 돌아보고 섰다.

그가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곧, 허리를 반쯤 굽힌 집행관의 어두컴컴한 눈동자가 나를 찬찬히 꿰뚫어 보았다.

집행관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무형의 위압감이 육신을 강하게 짓눌렀다. 호흡이 가빠지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이, 마치 송곳 수백 개가 폐부를 찔러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 시종 주제에, 좋은 주인을 두었군. 】

집행관의 전음이 정신을 비집고 들어왔다.

적대적인 기색은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어째서 이런 거물이 내 앞에 있는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나는 그저 집행관의 뒤에 망부석처럼 선 채,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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