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퓨전펑크의 전생자-42화 (42/157)

#42화. 활로

#42화.

“죽이지 말고 잡아 와.”

“예!”

롱소드를 쥔 채 찻집으로 진입하는 기사들.

그리고 몇 개의 구체를 공깃돌처럼 가지고 놀며 줄곧 케아드로 의원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던 마법사는, 저 안에서 박살난 분신체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저걸 한 방에 부쉈다고?’

그는 마법계 시가총액 30위권의 대기업 ‘루 막슨’ 출신으로, 조금 전 암살자 둘을 비명에 보낸 ‘가짜 케아드로 의원’ 을 조종하던 7레벨의 마법사였다. 마공학 구체를 핵으로 삼아 만들어낸 제작품들을 마력으로 조종하는 것이 그의 특기였다.

그런데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케아드로 의원의 분신체가, 한낱 암살자 따위의 일격을 버티지 못하고 순식간에 망가져 버렸다. 마공학 분신은 자신의 마력으로 직접 빚어내어 견고한 내구성을 자랑한다. 불시에 기습을 당했다고 해서 저리 손쉽게 망가질 물건이 아니었다.

마법사의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순도 높은 마력을 며칠간 쉼 없이 퍼부어 제작해야 하는 물건이라 다시 만들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의 마공학 분신을 부순 건, 가장 마지막으로 찻집에 들어간 남자였다.

클래식한 명품 수트 위에 긴 코트를 걸친 평범한 인상의 남자였는데, 도심을 거니는 젊은 놈들이 으레 그렇듯 옆구리에 섹스토이를 끼고 있었다.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 평범한 이가 찻집을 찾아온 줄로 알고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저런 마력을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콰앙-!

이윽고, 놈과 기사들의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콰아앙-!

찻집 안에서 연신 굉음이 터져 나오자, 상황을 주시하던 마법사의 입에서 거뭇한 마력이 흘러나와 구름처럼 허공을 떠다니다 찻집의 유리창을 얇게 덮었다. 모든 소음과 빛무리를 차단해주는 마법 장막이었다.

지체 높은 인간들이 모여있는 중심업무지구의 근방인지라, 어쩔 수 없는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최대한 빠르고 조용히 마무리 짓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

암살자를 때려잡겠답시고 무작정 소란을 피웠다간 발두르에 기거하는 거물들의 미움을 사거나 눈총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것은 자그마치 7레벨의 반열에 오른 실력자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시티의 불문율이었다.

그렇게 찻집과 거리를 두고 떨어진 채로 안에서 새어 나오는 소음을 방지하며 가문의 기사들이 놈을 잡아 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자신의 마공학 분신체가 터져나간 광경을 본 케아드로 의원이 슬며시 걱정을 늘어놓았다.

“이봐 루기스, 지금까지 저걸 부순 놈은 없지 않았나? 말짱한 상태로 생포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데.”

“6레벨 둘이 들어갔습니다. 전혀 문제없을 겁니다.”

“그런가? 아무래도 이번에는 수준이 제법인듯 해 물어봤네. 기본도 못 갖춘 쓰레기들만 보내더니 의외로군.”

“······.”

루기스라고 불린 마법사는 무언으로 긍정했다.

지금까지 찾아왔던 허술한 놈들보다야 한층 나았다.

살기를 전부 감추지 못한 노인은 곧바로 죽였지만, 온갖 비밀을 털어놓는 척 몰래 단분자 와이어를 펼쳐놓은 여인은 그간의 암살자들보다 수준이 확실히 높았다. 와이어가 너무 얇아 감지하지 못하는 바람에 호위로 세워놓은 분신체 둘이 죽지 않았나.

하지만, 그뿐이다. 어차피 저런 호위 분신체는 얼마든지 새로 제작해 채워 넣을 수 있다. 그리고 의원의 분신체를 부순 놈도 금방 잡혀올 것이었다.

루 막슨에서 파견한 6레벨의 기사가 두 명이나 들어갔다. 그놈은 보유한 마력을 의원의 마공학 분신체에 죄다 쏟아부었으니, 생포는 시간문제였다.

그런데 케아드로 의원은 그 짧은 새를 못참고 차마 흥분을 주체하지 못 하겠는지, 안 그래도 붉은 얼굴을 더욱 붉혀가며 입맛을 다셨다.

“꼭 사지 멀쩡하게 생포해야해. 날 죽이러 온 놈이 내 배 밑에 꼼짝없이 깔려 울부짖는 꼴을 봐야겠으니까.”

“아, 그렇습니까.”

“수치심으로 물든 얼굴이 절망과 체념으로 바뀌는 그 아름다운 수순을 한 번 보게되면, 너도 분명 그 재미에 빠져들고 말거다.”

“그렇군요.”

이상성욕자인 그의 천박한 말에 루기스는 대충이라도 맞장구를 쳐주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케아드로 시의원은 자신이 소속된 ‘루 막슨’ 을 다스리는 오너 가의 직계인지라 저렇듯 개소리를 짖어댄다고 해도 싫은 기색을 대놓고 내비칠 수는 없었다.

‘암살하러 온 놈을 도리어 따먹으려하다니. 참신한 새끼.’

그는 속으로 의원을 비웃고는, 자켓 안쪽에서 길게 말아둔 정제 대마초를 꺼내어 불을 붙이곤 크게 빨았다. 이상성욕자의 뒤틀린 욕망에 더럽혀진 귀와 기분이 나른하게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곧, 대마에 적당히 취한 루기스가 입을 열었다.

“의원님. 다 좋은데 이제 벌집은 그만 쑤시는 게 낫겠습니다. 우리 회사가 힘을 쓰는 오딘이면 몰라도 여기 발두르 시티에서는 상선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는데, 발두르 정계에서 활동하는 내내 저런 암살자들에 시달리며 살 겁니까?”

오늘과 비슷한 방법으로 최근 한 달간 무려 열 명이 넘는 암살자를 처리했다.

그들은 대다수가 소속이 명확치 않은 5레벨 내외였는데, 시티에서 활동하는 낭인 용병들보다는 월등히 강하고 가문의 기사들보다는 한 단계 모자란 경지였다.

그래도 5레벨이면 자기 앞가림은 하는 이들일텐데, 상선이 그런 희귀한 자들을 대체 어디서 찾아 일회용 암살자로 쓰는지가 심히 궁금했다.

아무튼 상선은 지금 적당한 암살자들을 사용해가며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굽히거나 물러서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케아드로 의원의 목을 따려 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케아드로 의원은 그 조언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마지막에는 코웃음까지 치며 조소했다.

“자네가 발두르 정치판을 정확히 몰라서 그래. 화물 운송이나 하는 놈들이 유력 정치인들 주머니좀 채워준다고 아주 시티 전체가 제 세상인 줄 알아. 감히 암살자까지 보내는 것도 모자라서 이젠 언론까지 주물러 나를 개망신주고, 이걸 어떻게 참고 넘어가겠나.”

고작 두 번째 임기를 보내는 중인 시의원이 뱉기에는 광오한 말이었으나, 마법계 대기업을 뒷배로 둔 정치인이라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연방군 무기를 빼돌려서 팔아먹는 게 작은 일도 아니고, 정식으로 문제 삼으면 그놈들만 똥줄이 타지. 어차피 상선에서 용돈 받는 놈들끼리 돌려먹는 감투 자리가 의회 운영위원장인데 거기 나를 앉혀달라는 요구가 그리 어려운가? 놈들도 결국에는 내 뜻대로 갈 거야.”

“······.”

케아드로 의원은 ‘루 막슨’ 오너 가문의 직계였으나, 루기스 자신처럼 마법사가 되기에는 지닌 자질과 재능이 너무나 부족했다.

그래서 일찍이 마법사의 길을 포기하고 지방 정계로 진출한 것인데, 루 막슨이라는 후광을 업고 있는 탓에 모가지가 뻣뻣해 다른 세력들과 부딪치는 일이 많았다. 매번 수습하느라 골치를 썩였는데 이번에도 저렇게 과한 욕심을 부리다가 상선과 엮인 것이다.

‘그렇게 자리에 욕심있는 놈이 씨발, 그깟 성욕을 못참고 싸구려 호스트바 창놈들이랑 놀아나서 언론에 뜯어먹힐 빌미를 줘? 명색이 가문의 직계란 놈이 한심하게······.’

타고난 성품 자체가 성급하고 탐욕이 많다. 성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만취한 사람처럼 붉은기가 강하게 도는 얼굴이 그 사실을 증명하는 걸지도 모른다.

루기스는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는 와중에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아직 찻집의 문은 열릴 기미없이 잠잠했다.

‘평소 같았으면 진작 끌고 나왔을 텐데.’

나름 의외였다.

아직까지 버티고 있다는 말인데···.

다른 이들은 제외하고서라도 6레벨의 기사만 두 명인데 그놈 혼자 버텨낼 재간이 남아 있었던가.

루기스는 혹시 몰라 몇 분을 더 기다려 보았지만 굳게 닫힌 찻집의 출입문은 끝내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당연히 기사들이 놈을 제압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이쯤 되면 무언가 이상하긴 했다.

케아드로 의원도 시간이 너무 지체되는 듯하자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성질을 냈다.

“대체 왜 이리 안 나오는 거야? 저거 걷어봐. 당장!”

케아드로 의원의 재촉에 눈살을 찌푸린 루기스가 거뭇한 장막을 걷어냈다. 마력으로 만들어낸 연기가 서서히 걷히며 유리창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러나 거뭇한 장막을 걷었음에도 찻집의 유리창은 흰빛으로 뿌옇게 가려져 있는 탓에,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도통 알 길이 없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느낀 루기스가 자그마한 마공학 구체를 하나 꺼냈다. 알사탕 크기의 소형 구체에 마력을 불어넣자 구체에서 칼날 같은 날개가 뻗어 나오더니, 찻집의 유리창을 슬근슬근 썰어 자그마한 구멍을 뚫고 들어갔다.

곧이어 마력을 끌어올린 루기스가 마공학 구체로 빛기둥을 쏘아내자, 극히 짧은 순간 동안 번쩍 거리며 드러나는 안쪽의 풍경.

루기스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찻집의 안에는, 그 남자와 같이 왔던 섹스토이가 나란히 서 있었고 주변에 멀쩡한 이는 그들을 제외하면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6레벨의 기사들마저 쓰러져있었다.

‘보통 섹스토이가 아니었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6레벨 기사 둘이 당할 리는······.’

가문의 기사들이 저리 금세 당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었으나,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

마공학 구체로 뚫어놓은 작은 구멍으로 흡사 용암처럼 꾸득꾸득 흘러나오는 저 기이하고 강대한 마력. 쳐다보기만 해도 정신을 헤집어 잠식하려는 저 마력은 뜬금없이 또 어디서 튀어나왔단 말인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비정상적인 현상들이 저 안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곧, 사태는 더욱 더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상황을 다 파악하지도 못했는데, 찻집의 안쪽에서 웬 회색의 광채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며 천지사방으로 신묘한 빛줄기가 뿜어졌다.

도심의 마천루들보다 높게 치솟은 회색의 빛줄기들은 허공에서 한 점으로 응축되더니 펑! 소리를 내며 넓게 흩어졌다.

꽃가루같은 입자들이 폭죽처럼 사방에 휘날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쪽으로 이목이 쏠렸다. 하지만 루기스는 저것을 단순한 눈속임이라 여기고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마공학 구체들을 전부 꺼내어 마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콩알처럼 작았던 마공학 구체들의 크기가 농구공 이상으로 거대해지더니, 마름모꼴로 전개되어 찻집 안에서 움직이는 형체들을 향해 일시에 빛기둥을 쏘아냈다. 한 발 한 발이 암살자들을 일격에 보냈던 바로 그 공격이었다.

이미 소란은 벌어졌고 앞으로의 일을 예측조차 할 수 없으니, 생포고 뭐고 최대한 빠르게 전투를 끝맺을 심산이었다.

꽈과과광—!

마력의 빛기둥 수십 개가 찻집의 외벽을 뚫고 들어가 마구 처박혔고,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먼지구름이 주변 일대를 휩쓸었다. 폭격이라도 맞은 듯 건물이 휘청이고 가장자리부터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그때, 먼지 구름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시커먼 신형이 섬전처럼 쇄도했다.

“나왔구나.”

그러자 전개 되어있던 수십 개의 마공학 구체들이 벌 떼처럼 들고일어나 그를 중심으로 방진을 형성했다. 구체들은 막대한 힘의 빛기둥을 사방으로 내뿜으며 물샐 틈 없는 방어막을 구현해냈다. 불나방처럼 뛰어들던 신형이 그대로 그물망에 걸려들었다.

그러나 그 신형은 곧 회색의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

놀란 루기스가 재차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런데 그때.

몇 개의 마나 회로가 턱 하고 막히는 느낌과 함께 자신의 의지대로 마력이 움직이질 않았다. 전방을 빛기둥으로 갈아버렸어야 할 마공학 구체들의 촘촘한 대형이 이리저리 물결치며 그 사이로 한 가닥의 틈이 생겨났다.

‘방해역장? 빌어먹을···!’

이윽고, 그 틈을 거세게 벌리고 들어온 하나의 신형.

“반갑다.”

쐐액-!

싯푸른 검기가 피어나는 레반의 검이 현란한 초식을 펼쳐냈다. 당황한 루기스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옆으로 날렸다. 방진을 이루고 있던 그의 마공학 구체들이 그를 따라 우르르 빠지자, 전투를 눈으로 좇지도 못하고 덜덜 떨고있던 케아드로의 무방비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런 개같—”

루기스가 어찌 대응할 새조차 없었다.

천지사방에 흩날리던 회색의 꽃가루가 케아드로의 머리 위 지점에서 여인의 형태로 뭉쳐졌다. 희미한 법력과 함께 나타난 아힘사의 테크블레이드가 자비없는 궤적을 그려내며 케아드로의 머리를 단숨에 잘라냈다.

서걱.

루기스의 분투가 한 순간에 무색해졌다.

케아드로 의원의 머리통은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눈을 부릅뜬 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는 얼굴로 절명했다. 큰 꿈에 비해 한심하고 허무한 죽음이었다.

“······.”

순간, 루기스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건 보통 좆된 게 아니다. 정말로 개좆같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혼란해하던 도중에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듯한 비아냥이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레반의 목소리였다.

“당장 목을 주워서 꿰매주면 살아날지도 모른다. 3초 내로 주워서 꿰매면 돼.”

“······.”

그 말에 가까스로 붙잡고 있던 루기스의 정신줄이 툭 끊어지고, 오로지 살심만이 제정신의 빈 자리를 그득하게 채웠다. 그가 다섯 개의 회로를 혹사해 마력을 최대로 끌어올리자, 밟고 있는 땅으로부터 근방 50m 내에 커다란 마력의 파장이 일며 땅이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개새끼가···어디 감히 벌레만도 못한 새끼가 이깟 잡술 몇 개 믿고 까불어—!”

쿠구구구궁—

잘 포장되어 있던 도로와 건물의 외벽들이 지진 난 듯 벗겨지며 공중으로 떠오르고, 매설되어있던 가스관과 수도관들이 연쇄적으로 터져 폭음이 들리고 사방에 불길이 치솟았다.

벗겨진 콘크리트와 철근 등은 마공학 구체들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수십의 마공학 병사들이 거친 마력과 빛기둥을 사방에 토해내기 시작했다.

한계까지 마력을 끌어올린 그는, 마나 운용을 방해하는 파장마저 완벽히 무시하고 마음껏 마법을 전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공격 준비를 마쳤을 때, 케아드로의 목을 베어 목적을 달성한 둘은 이미 사라질 준비를 마친 뒤였다.

화르륵-

레반의 손에서 푸르스름한 종이가 하나 타오르더니, 그의 마력장 안에서 귀신처럼 벗어나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이렇게 끝이라고?

그는 도무지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말문이 막혔다가, 이내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수라장이 된 근방, 목이 잘려 죽은 케아드로 의원의 사체가 널부러져 있었고 회색의 꽃가루 더미들은 신묘한 기운을 뿜어내며 땅 위에 소복이 덮여있다. 발두르 도심 한복판에서, 그것도 7레벨의 마법사가 지키는 시 의원이 허무하게 살해당했다.

시티 토픽감이군.

얼굴이 잿빛으로 변한 루기스는 케아드로 의원의 굴러다니는 머리통을 보며 한참을 허탈히 서있었다.

잠시 뒤.

BCPD의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뿐만 아니라 강대한 기운의 소유자들이 속속 루기스가 있는 이 장소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는 다가오는 거물들의 기세에 짓눌려 그저 망부석처럼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누군가의 인기척에도, 루기스는 감히 고개를 돌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

그 누군가가 서릿발과도 같은 음성으로 짧은 주문을 외우자, 루기스가 도로와 건물 외벽들의 잔해로 만들었던 마공학 병사들이 순식간에 흩어져버리더니, 얼마 가지 않아 제 자리를 찾아갔다.

서릿발 같은 음성의 주인공은, 오로지 그 일만 마치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강대한 기운이 공간을 접으며 빠르게 멀어졌다.

그리고 그 뒤로, 또 하나의 강대한 기운이 빌딩 꼭대기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무슨 일인가.”

“······.”

루기스가 침을 삼키며 고개를 들자, 연방 집행관 『 유크 루베르겐 』 이라는 이름의 홀로그램 공무원증이 보였다. 입에 두꺼운 궐련을 문 집행관이 못마땅한 말투로 그를 타박했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건가?”

연방 집행관의 기세에 눌려 넋을 놓고있던 루기스가 정신을 겨우 부여잡고는 황망히 답했다. 이미 죽어버린 의원의 목숨은 되돌릴 수 없다지만, 집행관은 이 사태를 수습할 힘이 있었다.

“······제가 모시는 케아드로 시 의원께서 이 괴한들에게 암살당했습니다. 추적 중에 힘을 과하게 썼고, 이건 그 흉수들의 인상착의입니다.”

철컥-

루기스의 마공학 구체 하나가 연꽃처럼 입을 벌리며 흑백의 종이 몇 장을 토해냈다.

거기엔 젊은 사내와 아름다운 여인이 같은 장면에 인화되어 있었는데 집행관 유크 루베르겐은 궐련을 든 손으로 그것을 집어서 잠시 물끄러미 보나 싶더니, 곧 안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그런 일련의 뒷수습이 끝난 뒤에도, 소름끼치는 마력은 찻집에서 꾸역꾸역 흘러나오고 있었다.

좁은 공간에 갇혀있던 그 마력이 근방으로 퍼져나와 바닥에 깔리자, 그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간 집행관이 장갑을 낀 손으로 그것을 한움큼 훑어내어 향을 맡았다. 곧이어 그는, 훑어낸 마력을 간단히 흩어버리고 장갑을 벗어서 불태웠다.

“시신이나 잘 수습하게.”

“······예.”

시종일관 덤덤하고 건조한 집행관의 태도.

그는 도망간 이들을 쫓겠다는 한 마디 말조차 없이, 희미하게 남은 마력의 잔향을 따라 암살자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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