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퓨전펑크의 전생자-41화 (41/157)

#41화. 사활(死活)

#41화.

늙은이의 잘려나간 머리통이 눈에 들어온다.

잘린 목의 단면에서는 세차게 피가 뿜어져 나왔는데, 그 선혈이 여인의 얼굴에 튀어 꽃처럼 흐드러졌다.

콰아아—!

케아드로 의원의 입에서 또 한번 뿜어진 빛기둥이 늙은 살수의 시신을 불살라버렸다.

잠시 뒤, 진득하게 녹아내린 시신은 바닥에 눌어붙은 살점을 제외하고는 형체조차 못 알아볼 정도가 되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녹차를 마시던 인간이었는데 말이다.

설마하니, 진짜 녹차를 마신답시고 쳐죽였을 리는 없고···.

아마 케아드로 의원은 찻집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기업가로 위장한 노인이 살수임을 눈치챘으리라. 자신의 기운을 감추는 요령이 서투른 자였겠지. 다만,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정신나간 공격을 당할 줄은 꿈에서도 몰랐을 거다.

스윽- 스윽-

케아드로 의원은 더러운 벌레라도 만진 듯, 피묻은 손을 연신 닦았다. 그를 보좌하던 호위 둘은 곧장 밀걸레를 가져와 갓 도축된 살수의 사체를 자연스럽게 청소하기 시작했다.

기괴하다. 기괴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도 나와 아힘사는 저들의 관심 밖이라는 점이다. 의원은 건너편의 여인에게만 온전히 신경을 쏟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닿자, 여인은 풍 맞은 환자처럼 손을 벌벌 떨어대며 간이든 쓸개든 다 꺼내줄 것처럼 굴었다.

“제, 제가 아는거 다 말할게요. 의원님께서 궁금하신 게 있으시면 저한테 물어보세요! 분명 큰 도움이 될 걸요? 몸이든 뭐든 원하시면 얼마든지 바칠게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선, 저 의원 놈은 정체가 뭐길래 입에서 저런 빛기둥을 쏘아낸다는 말인가. 무슨 용(龍)이라도 되는 줄 알았다.

만약 용이 아니라면, 목구멍 어딘가에 강력한 군용 무기라도 박아두었을 것이다. 설마 사람의 입에서 저런 빛줄기가 뿜어지리라곤 보통 예상을 못 할테니, 꼴이 추해지는 단점만 감수한다면 상당히 효율적인 공격이 아닐 수가 없겠지.

지금은 언 선생이 준 귀식법부적으로 기운을 누르고 통제하느라 저 의원의 정확한 힘을 짚어낼 수는 없었으나, 빛기둥만을 미루어 볼 때 6레벨 급과도 비견될 법했다. 청소나 하고 자빠진 저 호위들이 되려 의원의 보호를 받아야 할 지경이었다.

‘하여간 바깥은 조용하고······.’

찻집의 거뭇한 창밖으로는 분명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형체가 희끗희끗 보이는데, 정작 찻집으로 들어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거뭇해진 이유가 못내 마음에 걸렸으나 이 상황에 내가 직접 가서 조치를 취할 수는 없었다.

찻집의 종업원은 평범한 휴머노이드라 이제부터 누가 밖에서 들어오지 않는 한 이 찻집은 밀실과 다름 없었고, 특별한 변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실로 살인에 적합한 환경이다.

“그쪽은 어디 소속이지?”

“소속은 없고 상선의 직급 높은 선을 통해서 직접 청부받았어요. 당신을 죽여주면 영약과 200만 크레딧을 받기로 했죠. 그리고 일이 끝나면 새로운 신분도 구해줄 수 있고, 원하면 다른 시티로까지 안전하게 보내주겠다고 약속 했었거든요.”

의원이 넌지시 묻자 여인의 입에서 상선의 이름이 바로 튀어나왔다. 주둥이가 천근 같이 무거워야 하는 살수의 미덕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여인의 폭로가 하도 황당해 입가가 푸들푸들 떨렸으나 곧 자세를 바로 잡았다.

“청부를 넣은 이가 상선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지?”

“!”

의원이 그리 말하자 여인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곧 여인이 눈을 감고 손을 허공에 휘적휘적 휘저었다. 자신의 데이터칩에서 어떤 정보를 열심히 찾고있는 모양새였다.

“즈, 증명해줄게요. 청부하는 장면을 똑똑히 기록해뒀어요. 걔들이 나한테 별 기대를 안하는지 생각보다 허술하게 굴더라고요.”

하지만 자신만만했던 그 말들과는 달리, 희색이 돌던 여인의 낯빛은 몇 분도 가지 않아 다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어라, 근데 이게 이럴 리가 없는데?”

그리곤 당황한 얼굴로 손을 떨어댄다.

나는 허둥대는 저 여인을 보며 생각했다.

‘영상장치 따위로 담을 수 있을리가 없겠지. 상선이 무슨 등신 집단이야?’

그 대단한 상선의 행사가 허술하다는 것은 믿기 힘든 말이다. 일견 허술해 보일지는 몰라도 정말 허술하게 일처리를 하는 자들이었다면, 그리 비대한 조직을 지금껏 잡음없이 키워올 수 있었겠는가.

친씨아가 플라스틱 쪽문을 몇 개나 열고 들어가야 하는 3층의 깊숙한 방까지 나를 데려가 얘기를 나누었듯, 저 여인이 상선의 누군가에게 청부를 받게 된 과정도 흡사했을 거다.

아마도 그 주변에는 전자기의 작동을 방해하는 방해장치가 설치되어 있으리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술을 기울이며 정치인의 암살 계획에 관한 얘기를 나누어도 될 수준으로 믿을만하고 성능 좋은 장치가.

생각해보면 세련되고 고급스러웠던 옷, 시계, 술, 침대, 소파, 캐리어 프라모델 전부 전자기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워낙 눈이 돌아가는 사치품들로 방을 채워두었으니, 구태여 말해주지 않는 이상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을 듯했다.

게다가 거기서 건네받은 거라곤 사진 한 장과 이름뿐.

잡히면 뒈져버릴 살수들에게 증거라 할만한 걸 남겨 두었을 리가 없다. 나도 마찬가지인 신세였고. 결국 케아드로 의원은 여인에게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자 실망한 기색으로 읊조렸다.

“그러면 그렇지. 오늘도 허탕이군.”

요상한 말투였다. 오늘도 허탕이라······.

이런 일이 몇 번 더 있었다는 뜻인가?

“자, 잠깐만요! 그러면 다른 것들도 있어요! 제발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어차피 죽이실거 조금 더 늦춘다고 달라지지 않잖아요! 살려 줘요!”

여인은 의원이 고개를 젓자 곧바로 양손을 모아 싹싹 빌며 절규했다. 돌아가는 상황을 한 걸음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나는, 그 대목에서 어떠한 기시감을 느꼈다.

슬슬 의원보다 여인쪽에 눈길이 더 갔다.

— 그러니까 제가 청부를 받게 된 이유가요······.

저 여인은 이제 누가 캐묻지도 않았는데 자백제라도 맞은 것마냥 사태에 관한 모든 내용을 술술 실토해댔다. 어느 소도시에서 상선의 의뢰자를 만났고, 며칠간 미행을 했고 어쩌고저쩌고. 여인은 그리 말하며 시간을 길게 끌었다. 조금만 시간을 더 주면 그저께 아침 식사로 뭐를 먹었는지까지 말해줄 기세였다.

하지만, 뭔가 합이 계속 맞지 않는달까.

사실, 의원이 여인의 저런 헛소리를 지금까지 들어주고 있는 것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해서 테이블에 올려놓은 단검과 비수들도 다시보니 그닥 대단치 못해 보이는게 정치인을 암살하기 위해 들고온 무기치고는 살짝 조잡한 편이었다.

내가 끼어들지 않고 일단은 가만히 앉아있는 이유였다.

살수임을 들켜버린 이상, 의원 쪽에서 당연히 살려보낼 마음이 없을 것이 뻔한데 저리 기겁하며 목숨을 구걸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케아드로 의원님. 저는 당신이 누군지 알아요. 섹시하기로 유명한 시 의원이죠. 그러니까 제발 자비를 베풀어줘요.”

필시 다른 노림수가 있을 것이었다.

그러니 저 여인이 숨겨둔 마지막 수까지 다 꺼내보이고 나서 움직여도 늦지 않을 듯했다.

“의원님, 이렇게 해요. 제가 나가서 자수하면 되잖아요. 경찰서가 코 앞에 있다니까요?”

개소리와 헛소리의 향연.

나는 그래도 속으로는 여인을 응원하며 상황을 주시했다. 케이드로 의원이 약간이나마 긴장을 풀 때, 그를 일격에 쳐죽이고 이곳을 신속히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기운을 숨길 수 있는 언 선생의 중계 법부적, 풍령개도 그쯤 던져주면 넉넉하겠다는 눈치였으니 효과는 아주 확실할 터.

이쪽에서 먼저 기운을 흘리지 않는다면, 저들의 눈에는 계속 일반인과 다름없을 것이다. 완벽히 잡은 선공의 기회를 유용하게 살려야했다.

그때.

아힘사가 돌연 테이블 앞으로 손을 뻗더니, 검지와 엄지로 뭔가를 잡아당겼다.

팅!

그것은 머리카락보다도 가늘고 투명한 실이었는데, 유심히 보아야 겨우 눈치챌 수 있는 정도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사방에 그 괴이한 줄이 쳐져있었는데, 아힘사가 우리의 지척에 있는 실들을 잡아당겨 손가락에 감았다. 단분자 와이어의 한 종류인듯 싶었다. 메스보다도 월등히 얇고 날카로워 기운을 주입하지 않아도 사람의 신체 정도는 단숨에 토막낼 힘이 있었다.

“그러니까요. 제 가문이 어디냐면요······저를 살려주시면 어떻게든······.”

나는 고개를 돌려 아직도 떠들고 있는 여인을 바라봤다. 손톱이 유달리 유리처럼 투명했고, 아까부터 손짓은 크고 과했다. 그렇다면 이 실의 투망을 만들기 위해 여지껏 생지랄을 떨었던 건가.

그래. 이 와이어가 의원에게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으니 이렇게나 많이 쳐두었다면 또 모르는 일이지.

나는 이제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으로 저쪽을 힐긋댔다. 과정이야 어떻든 케아드로 의원만 죽으면 다 잘된 일 아니던가?

그렇게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묘령의 여인이 이제 충분히 실을 풀었다 생각했는지 손바닥을 마주쳐가며 싹싹 빌던 태도를 바꿔먹고는 전과는 다른 어투로 입을 열었다.

“결국, 안 살려 줄거야?”

케아드로 의원이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그야—”

그리고 의원의 짧은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연극하듯 양 팔을 넓게 펼친 여인이 단숨에 팔을 안쪽으로 잡아당겼다. 그녀가 펼쳐낸 단분자 와이어의 거미줄이 순식간에 좁혀지며 청소하던 호위 둘을 산산이 토막내버렸다.

서거걱-

다만, 예상했던 대로 의원은 그 공격도 비교적 멀쩡히 버텨냈다. 단분자 와이어의 살상력은 뛰어났지만 호위 둘을 죽이는 것이 여인의 한계였다.

“따끔하군. 이게 전부인가?”

“씨발!”

여인은 자신의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자 욕을 내뱉고는, 테이블을 박차며 바깥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그것이, 여인의 마지막 뒷모습이었다.

콰아아아—!

의원의 입에서 빛기둥이 쏘아지자, 허리 중간이 끊어진 인간의 하반신만이 입구에 우뚝 서있었다.

그 어마어마한 힘에 감탄할 새는 없었다.

이제, 그동안 열심히 기다리던 내 차례였다.

마력이 내 전신으로 쏟아지며 문신의 형태를 띠고 있던 마법 수식들이 한꺼번에 눈부신 빛을 발산했다. 곧이어 온갖 격렬한 마법들이 단박에 터져나와 의원의 몸뚱이를 헤집었다. 그는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사지가 찢겨 해체되었다.

해체.

“?”

그렇게 끝이었다.

간단하게 죽을 사내가 아니라 생각했건만. 너무나도 간단한 끝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웃지 못했다. 짙은 불안감이 저 밑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푸화악-!

“······.”

묵사발 난 의원의 몸 속에서 가죽과 헝겊, 살점, 혈액, 철근같은 것들이 분수처럼 터져나와 난무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시신의 가죽 껍데기가 이리저리 날아다니더니 힘을 잃고 바닥에 널브러졌고, 그 사이로 농구공 크기의 둥근 기계가 떨어졌다.

쿵!

“······.”

인간의 그것이 아니었다.

기별 없이 올라오려는 토악질을 억지로 삼켰다. 나는 의아함과 본능적인 거부감이 공존하는 현장에서 즉시 기감을 펼쳤다. 하지만 굳이 넓게 펼칠 필요는 없었다. 육안으로 보일 만큼 가까이에 있었으니.

“법부적이 악수였군. 가짜를 상대로 생지랄을 떨었네.”

중얼거리는 내 말과 함께, 아까부터 거뭇했던 찻집의 유리창이 화악 걷히며 바깥의 풍경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 바깥에는, 내가 방금 터뜨려 죽였던 케아드로 의원이 멀쩡히 살아있었다. 붉게 물든 얼굴이 당장이라도 터질 듯했다. 그것도 열 명은 되어 보이는 무리를 거느린 채였는데, 한 명 한 명의 기운이 범상치 않았다.

— 잡아와!

패착이다.

중계 귀식법부적을 사용한 덕에 내 기운을 완벽히 숨길 수 있었으나, 도리어 나도 저들의 기운을 감지하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죽여야 할 의원놈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속아 넘어갔다는 생각에 신경질이 난다기 보다는, 그저 가만히 있는 아힘사가 괜스레 원망스러웠다.

4, 5레벨 여럿에 최소 6레벨 둘.

그리고 빌어먹을 7레벨급까지 끼어 있군.

걸음을 여유롭게 옮긴 일단의 무리들이 찻집 안으로 하나 둘 진입하자, 나를 향한 왕초삼의 경고가 다시금 떠올라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상선의 일과는 엮이지 말라던 그 조언.

[ 해괴한 조건을 내걸어 살살 꼬드기려 들 텐데 어떻게든 엮이지 마. 어지간해선 반드시 죽을 테지. 당신도 나도. ]

놈의 말이 실로 맞았지만, 이미 악수를 여러 번 두었다.

돌이킬 방법은 없었고, 감당은 오롯이 내 몫.

악수를 거듭하여 호랑이의 입 속으로 제대로 뛰어든 형국이라 수읽기 따위는 의미가 없어졌고, 목숨을 담보로 사활(死活)이 걸린 문제를 풀어내야 할 시간인 듯했다. 보나마나 어지간한 묘수로는 어림도 없을 테지.

쐐액—

눈 앞으로 날아오는 칼을 보자 어째서인지, 풍령개와의 바둑 대국 중에 했던 언 선생의 다급한 초읽기 소리가 내 귓가를 웅웅 울리는 듯 했다.

【 십초 제한이야! 십···구···팔···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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