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참 못났다
#34화.
푹-푹-
혈도를 찔러 들어가는 손가락.
나는 즉시 잘려나간 부분의 혈도를 짚어 쏟아지는 피를 막았다.
딱히 방심하지도 않았건만.
그래도 아주 최악은 아니군.
죽여버릴 작정이었다면 곧바로 목을 쳤겠지.
그러니, 깨달음이라는 실타래가 잡힐만한 곳에 하필 내 오른팔이 있었을 뿐이다. 나는 그렇듯 낙천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이만큼이나 너그럽고 도량이 넓은 사내이다.
“······.”
하지만 륭은 내 오른팔을 단숨에 절삭해낸 뒤, 다시 도검을 들어 올려 조용히 기수식을 취하고 있었다. 뿔을 세워 돌진을 준비하는 들소처럼 보였다. 도검에 흘려넣은 기운이 펄펄 흘러나와 멀리서도 또렷하게 보일 지경이니.
이제 나도 살고 륭도 살고, 잘린 팔도 얼른 주워 붙이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저자의 무아지경을 신속히 끝내주는 것.
내가 여러 능력을 사용한다 해도 아직 륭과의 격차는 크다. 절정(絕頂)은 못 되어도 바로 그 밑의 초일류. 그것도 다른 이들보다 내공이 수상하리만치 많은 초일류 사무라이. 어디서든 알아주는 실력자의 반열이다.
다만, 륭은 시체 사냥꾼이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싸워온 상대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좀비 놈들이었다는 얘기. 칼에 조금만 찔려도 움직임이 극히 제한되는 인간과의 전투 경험은 적어 보였다.
그래서인지 륭의 검은 지극히 실전적이었고, 티끌만치도 자비가 없었다. 더해서 모든 동작마다 상대방의 육신을 단박에 두 동강 낼 것처럼 힘이 과하게 들어가 있었다.
후우웅-
상체를 숙여 공기를 찢어발기는 륭의 검을 피하고 다리를 걸었다. 허공에서 빙글 돌아 땅으로 내려온 그가 다시 검을 들었다.
“······.”
시체 사냥꾼더러 갑자기 사람을 때려잡으라고 하니, 검로와 보법이 평소와 다르게 투박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곧이어 다시 짓쳐 들어오는 륭. 하지만 이번에는 언제든 반응할 수 있도록 힘을 적당히 준 상태였다.
그래도 그간의 공부가 나쁘지 않은지, 그는 무아지경 속에서 가파르게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후우욱!
열 합이 더 지나자 투박하고 어딘가 부족했던 움직임은 금세 날카롭게 다듬어져 내 목줄기를 노려왔다. 흉흉한 검기와의 정면 대결을 피해 가면서도 한쪽 팔로만 공격을 흘려내는 게 보통 고된 작업이 아니었다.
유불리를 떠나 무조건 내 쪽이 밀리는 형세.
이후에도 두 사내의 합은 순식간에 쌓여갔다.
한 팔로 륭을 상대하는건 도통 무리였으나 그래도 어찌어찌 시간은 흘러갔다. 륭의 도검에서 끝없이 일렁이던 검기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다.
잡힐 듯 말듯, 줄다리기처럼 이어지던 륭과의 전투는 어느새 종막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무아에서 빠져나온 때는, 단전에 내공이 한 줌도 남지 않아 대략 정신이 멍해질 즈음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일백 합은 넉넉히 넘겼을 것이다.
“아아···.”
돌연 도검을 손에서 떨어뜨린 륭이 눈물이라도 흘릴 듯 감격스러워했다.
그는 뛸듯이 기쁜 기색을 잠시간 내비치고는 얻은 깨달음과 심득을 놓칠세라 길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공에 들어갔다. 무아에서 얻은 잠깐의 배움을 정리해 확실하게 체화하는 단계에 돌입한 것이다.
‘후우, 저 시발놈.’
그 와중에 나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길가에 멀뚱히 서있었는데, 먼 곳에서 몇몇 주민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중간의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륭이 처음 원하는 대로 패해주었으니, 이제 라네치아를 죽인 살인자놈은 전투에 패해 쓰러져 퇴장할 차례였다.
“크헉!”
내가 잘려서 나동그라져 있는 팔을 부여잡고 목석처럼 쓰러지자, 쏜살같이 달려온 루돌프놈이 나를 그대로 업어서는 지프 뒷자리에 올려 태웠다. 한껏 격앙된 루돌프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형님! 아무리 실감나게 한다 해도 아예 팔을 잘라버리는데요? 이거 두분이 협의가 된 겁니까?”
“생각을 좀 해라. 이게 협의가 된 거겠니.”
“아···역시 그건 아니죠?”
“입 닫아라.”
“예.”
심한 욕설이 턱끝까지 올라왔지만 당장은 접어두고 회복에 집중할 때였다.
나는 잘린 오른팔을 물로 깨끗이 씻은 뒤, 떡하니 환부에 붙이고 기다렸다. 루돌프가 그런 나를 안쓰러운 눈으로 보았지만, 이 잘린 팔은 반드시 붙고 말 것이다.
무슨 재주인지는 몰라도 이전에 다 죽어가던 나조차도 살려 놓을 정도로 성능이 좋으니, 반 바이오의 역작이자 6세대 의료용 나노로봇은 이번에도 분명히 해낸다. 혼잣말로 ‘너는 할 수 있다’ 라고 몇 번을 간절히 읊조렸는지 모른다.
어떻게 구한 건데, 반드시 붙어야지 않겠는가.
그리고 정확히 두 시간 뒤.
녀석은 분에 넘칠 만큼 기대에 부응했다.
놀랍게도 이미 푸르스름해졌던 오른팔이 언제 그랬냐는 듯 떡하니 붙어 혈색을 되찾았고, 손가락과 피부로 느껴지는 감각까지 말짱했다.
탄탄히 붙은 팔을 몇 번 더 구부렸다 펴본 나는 흡족하게 입을 열었다.
“기계 팔로 바꿔야 하나 걱정했는데, 다행이군.”
*
다음날.
8번가 륭 사무소.
칠 척의 덩치에 시커먼 구릿빛 피부의 거한.
하룻밤을 꼬박 길바닥에서 새고 돌아온 륭은, 이가 다 보이도록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본래의 어둡던 분위기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 팔을 치료하셨다니···진심으로 다행입니다.”
또 원래의 기묘한 느낌도 중화되어 없어졌는데, 륭은 어제 길바닥에서 기어이 절정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했다.
가로막던 벽을 부수고 7레벨을 달성한 것이다.
“팔이야 원래 뭐 붙는 거고. 아무튼 축하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지금도 믿기지 않습니다.”
그는 오성과 자질이 괜찮은 사내였다.
아마 내 도움이 아니더라도 끝내 이르렀겠지.
륭은 아직 나이가 많지도 않으니 더 성장할 여지가 남아있고 쓸만한 스승을 만나거나 기연을 얻어 30, 40년쯤 더 정진한다면 7레벨의 극위나 운이 좋으면 초절정, 그러니까 8레벨의 초입까지도 가능할 것이다.
쓸만한 재능을 가진 이들이 온갖 기연을 만나 한평생을 갈고닦는다면, 열 명중 한 명정도는 연이 닿아 도달할 수 있는 최상승의 경지였다.
그러나.
“오랫동안 나를 기다려주고 있는 동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가봐야 합니다.”
“이리 급하게요? 어디로 가는 겁니까?”
“하하하! 글쎄요.”
륭은 7레벨이 되기 무섭게 타운을 떠난다고 했다.
뜬금 없었으나 그는 내가 들어온 뒤에도 연신 밝은 표정으로 짐을 싸고 있었고, 클로에는 옆에서 아무런 말 없이 묵묵하게 그를 도와가며 사무소를 정리했다.
내가 뭐라 참견할 것은 아니었다.
그때, 뭔가를 찾은 륭이 내앞에 쿵 내려놓았다.
“이거 받아주십시오.”
웬 커다란 보관함을 통째로 내어주었는데, 그 양이 묵직한게 보통이 아니었다.
안쪽을 언뜻 살펴보니 농도가 다른 에센스들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한가득 있었다. 가격으로 따져도 4, 5백만 크레딧은 우습게 넘어갈 듯했다.
발두르 시티의 아파트 몇 채를 받은 것이다.
베테랑 시체 사냥꾼이 알음알음 모아둔 에센스와 이번 사태로 얻은 에센스까지 합친 양인가?
이건 많아도 너무 많군.
“의뢰값에 더해 잘린 팔 값, 그리고 목숨걸고 제 성취를 도와주신 값입니다.”
“그렇습니까?”
“사실 이것으로도 갈음하기 모자랍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꽤 급해 보입니다. 어디로 갑니까? 두 번째 묻습니다.”
호기심을 떨쳐내지 못한 내가 다시 한번 물었다.
하지만 륭에게서는 괴상한 동문서답만이 돌아왔다.
“이제 짐도 거의다 정리했으니, 끝나고 절 받으시죠.”
“······.”
그는 다시 몸을 돌려 짐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내가 보기에 륭은 내내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 보였다. 그리고 조금 전에 말했던 대로 짐 정리가 얼추 끝나자, 자기 멋대로 구배지례를 했다. 본신보다 월등히 강한 7레벨의 제자를 둔 사내는 이 세상에 내가 처음일 것이다.
“감사했습니다. 진심입니다.”
륭은 자신만의 구배지례를 마친 뒤, 그길로 클로에와 함께 정크타운을 바람처럼 떠나버렸다.
검을 나눈 사이건만 헤어짐은 극히 짧았다.
세상 누구도 그의 속사정은 알 수가 없는 것이라 나는 떠나가는 굳이 그를 배웅하지 않았다.
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는 듯 정크타운을 빠져나가던 륭의 얼굴은 어떠한 후련함으로 가득 물들어 있으니까.
사무실에는 그가 두고간 담배들만 가득했다.
아무튼 그렇게 륭은 떠났고.
며칠이 지났다.
한참 에센스의 기운을 다스리고 있던 때였나.
륭이 죽었다는 소식이 귀에 들려왔다.
시티 장벽 밖에서 수많은 시체들을 베어 넘기다가 결국 장렬히 산화했다던가?
아.
이토록 헤아리기 힘든 것이 사람 마음이다.
나는 가부좌를 튼 채, 내 앞에 찾아온 한 여인을 보며 말했다.
“사냥꾼으로 살다 사냥꾼으로 죽었으니 명복을 빌어야겠습니다.”
“명복은 무슨, 크레딧만 잔뜩 남겨두고선 자기 여자를 팽개치고 가버린 사람인걸요?”
같이 타운을 떠났던 륭의 보조, 클로에였다.
클로에의 얼굴은 뭐라 형언할 수 없었다.
나는 또 낙천적인 사내가 되어 말했다.
“세상은 돈이 전부입니다. 한 밑천 단단히 잡았으니 그 돈으로 잘먹고 잘살면 되겠군요.”
죽음은 안타깝지만, 그가 원하는대로 갔으니 마음속 응어리는 모두 풀고 가지 않겠는가.
“진짜 너무 하시네요. 되게 잔인한 말인거 알아요?”
“나조차도 그 거금이 탐나던 참입니다. 되도록 내가 모르는 곳까지 멀리 가서 살아요.”
“칫, 필요하시면 좀 나눠드릴까요?”
내 빈말에 주머니를 뒤적이는 시늉을 하는 클로에.
그녀는 그러다 쓴웃음을 짓곤 고개를 떨궜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돈 없는 과부보다 돈이라도 많은 과부가 처량함이 덜할테지요.”
“그럼 레반씨도 과부 만들지 않게 조심하셔야겠어요. 혹시 PTSD나 정신병 같은건 없죠?”
“누가 과부가 됩니까?”
“레나요. 사무소에서 같이 지내는 동안 정이 꽤 들었었거든요. 청소도 매일 도와줬는데···.”
다그 언 선생의 거처에서 며칠 머무는 동안, 결이 맞는 여인끼리 무슨 대화들을 그렇게 나눠댔는지 둘은 거의 절친한 사이가 되어있었다.
그녀가 레나의 앞길에 생각보다 걱정 근심이 많아보이기에 몇 마디를 보탰다.
“어릴 때부터 내가 업어키운 시간만 십 년입니다. 안전하게 발할라로 갈 수 있을 겁니다.”
“다행이네요.”
클로에는 내 말에 활짝 웃어보이고는 곧 길을 떠났다. 그녀는 길을 떠날 때 기회가 되면 또 보자고 했으나 어디로 가는지조차 묻지 않았으니, 다시 볼 날이 올지는 모를 일이다.
나는 그렇게 클로에를 떠나보내고, 발치에 놓인 물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녀가 가져와선 여기에 놓고 떠난 적색 검집.
어찌 찾아왔는지는 몰라도 륭이 쓰던 그것이 확실했다.
검집의 장식에는 군번줄처럼 무언가가 늘어져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는데, 그것은 륭의 삶과 기억, 성취 등이 담겨있을 인격 메모리 칩이었다.
나는 그 귀물을 보고도 웃지 못했다.
“쯧.”
깨달음의 단초를 얻지 못했다면 정크타운에 자리잡고 해결사 노릇이나 하며, 또 소도시의 숨겨진 은둔고수 노릇이나 하며 클로에와 평생을 해로했을 사내였다.
그런 그가 나와의 비무를 통해 염원하던 7레벨의 경지에 이르더니, 단 며칠 만에 장벽 밖에 나가 마지막 응어리를 다 불사르고 죽은 것이다.
동료를 다 잃고 그리워하는 시체 사냥꾼.
무아에 빠진놈을 건져놓은 줄 알았는데, 그의 삶은 이전부터 무아지경이었다. 정신이 한곳에 온통 쏠려 스스로를 잊고 있는 경지. 눈이 멀어 자신의 인생마저 잊어버렸으니 어찌 무아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는 분명 원하는 삶을 살다 갔으나 마음이 괜히 착잡한 것은 어찌 설명할 도리 없는 일이었다.
좆같은 세상이라도 말짱히 살아가는 군상들이 있길래 괜찮은 줄로만 알았는데, 이번 륭 사건으로 인해 확실히 망해가는 세계라는 사실이 깊숙이 와닿았다.
그 일이 있었던 직후.
우리는 40번가의 투레 더 타운 빌딩으로 거처를 옮겼다. 타운 최상층에서 정크타운의 전경을 바라보던 레나는 더할 나위 없이 마음에 들어 했다.
내가 루돌프를 밀치며 레나 옆에 섰다.
“비켜라. 지금은 너같이 못난 놈을 눈에 담고픈 심경이 아니구나.”
“아, 예.”
오늘은 아침부터 유난히 세상이 밝았다.
일 년에 몇 번 보기도 힘든 해가 지상에 내리쬐고 있었는데, 이는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타운을 밝히던 네온사인 불빛들이 오늘만큼은 햇빛에 밀려 그 힘을 잃었다.
나는 그 뒤로도 꽤 오랜 시간 정크타운의 전경을 내려보다 입을 열었다.
“동네 참 못났다.”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도 어딘가 좆같은 동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