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퓨전펑크의 전생자-31화 (31/157)

#31화. 화타와 관우

#31화.

덜컹-

길바닥의 요철을 밟는 소리.

저급 택시는 부지런히 이동하고 있었다.

나는 덜컹대는 승차감을 애써 무시하며 사색에 잠겼다.

격리 시설에 갇혀있던 일주일 가량은, 한바탕 긴 꿈을 꾼 것만 같았다.

당가의 임원으로 보이는 중년인이 하필 그 격리 구역에 수용되질 않나, 거의 7레벨에 가까운 상위 마법사가 감염 사실을 숨기고 있다가 돌변해 난동을 피우질 않나, 나중에는 연방의 장군이라는 거물까지 등장했다.

나에게는 아직 멀고도 먼 존재들.

연방군의 14호 격리 구역에서 벌어진 사태는 지금 백만방도같은 넷 사이트에서 알음알음 퍼져나가고 있었다. 다행인건 그 장군 말고는 뷔에탕의 마력을 알아본 자가 없는지, 뷔에탕의 마력이나 기운에 관한 얘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

다행히도 후환은 없을 듯했다.

그리고 그 좀비 마법사는 쿼롯 가문 출신이라던가? 후에 알아보니 우습게도 가문의 마법칩을 판매하겠다며 반 바이오에 기별을 넣었던 그 쿼롯 그룹이 맞았다.

쿼롯의 마법사가 좀비가 되어 선보인 마법이 대단하여 쿼롯 가문의 마법칩에 프리미엄이 붙어 불티나게 팔린다든가 하는 우스갯소리가 백만방도를 통해 뜬소문으로 나돌았다.

그러나 쿼롯 그룹에서 그 꼴을 두고보지 못하고 위력이라도 행사하는 모양인지, 좀비 마법사 사건은 넷에서 그리 큰 화젯거리가 되지 못했다. 당장 쿼롯에서 낸 기업 홍보영상이 백만방도 포털의 메인을 장식하고 있었다.

【 쿼롯 — 320년 완성차 역사의 정수를 담았다. 올 시즌의 대미를 장식할 3,200마력 호화 스포츠카 출시! 지상 최고 속도 685km/h! 폭발적인 퍼포먼스와 거친 드라이빙을 경험하고 싶은 오너들에게 극상의 파트너가 되어드립니다. 스피드 리미트 해제시 공중 드라이브모드 활성화가 가능한 투 트랙 모델로써, 일반형과 컨버터블 쿠페형 200대 한정······ 】

화젯거리가 되지 못했던 이유.

포털 전면에 광고를 워낙 많이 걸어주는 작자들이다 보니, 고객 관리를 해야하는 개방이 광고주 보호에 들어간 듯싶었다. 왕초삼도 아마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이미 저승으로 가버린 놈의 묘를 파헤쳐 뭐하겠는가. 시체가 되는건 쿼롯의 마법사 한 놈으로 충분했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저 언덕만 넘으면 돼.”

연방 출신의 솜씨좋은 사이버 닥터가 있다는 곳은 정크타운에서 꽤 멀리 떨어진 소도시였다.

발두르 시티 남쪽, 웨스트 정크타운에서 차량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다그’

정크타운같은 외곽 지대에 비하면 환경이 나름 괜찮은, 시궁쥐 튀김이나 칼로리 스틱이 주식인 슬럼가보다는 조금 더 발전한 동네.

노동자의 비율이 높아 하층민 거주 구역쯤은 되는 곳이다.

《 다그 888 스트리트 》

888 스트리트에 이르러, 왕초삼은 황금색 난쟁이 벽화가 그려져 있는 대형 플라자 건물을 찾고 있었다.

곧 택시의 차창 밖으로 커다랗고 우스꽝스러운 황금색 난쟁이 벽화가 눈에 띄었다. 어디에 있던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아주 개똥같은 디자인이다.

끼이익-

반사회적 페인팅 벽화가 즐비한 구획.

택시에서 내리자 길바닥에서 스프레이 락카통을 흔들던 동네 양아치들이 우리를 흘깃 쳐다본다. 왕초삼과 나는 흘깃대는 양아치들을 무심히 지나쳐 플라자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 이거 진짜 신기한 건데 좀 보고 가세요!

- 바카라 좋아해? 블랙잭은 어때?

상가와 판매점들의 호객 행위를 무시한 채 플라자의 가장 지하층으로 직행했다.

《 다그닥 다그닥 》

“바로 여기다. 다그닥 다그닥.”

겉보기엔 락카스프레이를 판매하는 잡소매점.

내가 그 소매점 안쪽으로 발을 들이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페인트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소매점에는 무인 판매기와 휴머노이드 점원이 하나 있었다.

- 어떤 물건을 찾으세요?

“저건 그냥 무시하고 따라와. 읏차!”

무인 판매기의 뒤쪽으로 걸음을 옮긴 왕초삼이 거대한 자판기를 가볍게 들어 올리자, 깊은 지하로 통하는 듯한 좁은 계단이 드러났다.

그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전당포처럼 두꺼운 강철문으로 막혀있는 입구가 눈에 들어온다. 안쪽은 밖에서 볼 수 없게 철저히 막아두었다.

끼이이익-

“흡!”

왕초삼이 통짜 강철문을 밀어 열자, 또 끝없는 계단이었다.

어두운 곳에서 미끄러져 다치지 말라고 곳곳에 친절하게 호롱불까지 친절하게 켜놓은 괴상한 계단.

호롱불은 정말로 많았다.

못해도 수 천개는 되는 듯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가자, 좁고 어둡던 계단의 풍경이 점점 바뀌며 계속 넓어졌다. 십 분쯤 내려갔을까? 넓어지고 넓어진 계단은 어느새 사람 수십이 들어가고도 남을 공간까지 넓어졌다.

그런데도 계단은 끝이 보이질 않았다.

역시, 무언가 이상했다.

‘진법이군.’

그 사이버 닥터라는 자는 평범한 의사가 아닌 모양이다.

제 쪽박 채우기도 벅차다며 나누어주지 않는 거지들의 개방이 빈객으로 모시고 있는 것만 해도 그랬다. 애초에 개방 거지들이 무슨 빈객을 받는단 말인가?

안 그래도 쓰러지기 직전인 내 표정이 한껏 구겨지자, 옆에서 괜히 뜨끔한 왕초삼놈이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게 참, 그 선생이 하도 괴짜라서 나도 어쩔 수가 없구만. 이렇게 가다보면 언젠가 나오지 않겠어?”

“초삼아, 너는 힘이 아주 넘치는구나.”

“하하! 그런데 말이야.”

곧, 집요한 눈빛으로 바뀐 왕초삼놈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당신은 누군가의 인격 메모리칩이라도 우연히 얻은 거야? 나는 그게 참 궁금해.”

인격 메모리칩.

살아가며 얻은 기억과 심득을 메모리칩에 모두 저장해 후인들에게 물려주는 수단.

일신의 심득과 기억을 포함한 전인의 거의 모든 것이 담겨있으며, 그 칩을 받아 얼마나 체득할 수 있는지는 후인의 수준에 달렸다.

과거 강대한 네임드 시체 ‘가륵’ 에게 살해당한 9레벨 연방 집행관 ‘모리 무라타’의 포트에서 뽑은 인격 메모리칩을 누구에게 물려주느냐로 한바탕 정쟁(政爭)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 그가 후인도 정하지 못하고 급작스레 죽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살아온 인생의 모든 것을 물려준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다. 그 기억들이 얼마나 강렬한지, 때에 따라 성격이나 성정마저 그대로 옮겨가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연방의 장군과 집행관, 유력 가문들의 장문인이나 가주들은 그 인격 메모리칩을 자신의 유산삼아 넘겨주기도 한다.

다만 꺼리는 곳도 분명히 있다.

일단 무언가를 담는 매개가 ‘메모리 칩’ 인만큼, 넷 러너들이 해킹 공격을 시도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이 이렇게 발전한 세상에서 아직도 종이로 서류를 작성해 보관하는 이유였다.

아무튼.

전인의 기억과 무공, 마법, 심득등을 인격 메모리칩이라는 형태로 전승받는 연방의 강자들이 현재에도 있다. 어찌보면 영생을 살아가는 좀비들에 대항할 수 있는 연방의 대응 수단인 셈이다.

물론 나는 아니지만.

“초삼아, 그런거 가지고 있으면 나부터 줘라. 바로 대가리 열고 꽂게.”

“하하하! 그런 귀물이 내 손에 있을 리가 있나.”

“흐흐 웃던 놈이 오늘은 하하하 웃는구나.”

“···그야 기분이 좋아 그랬다.”

뭐, 인격 메모리칩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내공이나 마력은 그리 대단하지 않은데 쓸데없을 정도로 많은 걸 알고 있는데다 뷔에탕의 마력을 꺼내어 증폭까지 마음껏 해댔으니.

잠시 말을 쉬던 왕초삼은, 흐뭇하게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반 바이오 컴퍼니같은 중견기업에서 이런 세기의 천재들이 둘이나 나왔구만.”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왕초삼은 계속 말을 이었다.

“반 루벤카는 천재니까 그렇다 치고···아니, 그 여인도 인격칩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 거잖아. 이건 솔직히 총타 보고감이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리고 또······.”

아.

이제 슬슬 머리가 어지러웠다.

장난을 이 이상 받아줄 수는 없었다.

이쯤 했으면 나는 손님으로써의 도리를 충실히 이행했다고본다.

“머리 울리니까 이제 장난은 그만합시다.”

“응?”

“선생님, 제 초삼이를 돌려주세요. 모자라지만 착한 녀석입니다. 아니면 저도 좀 치료해주시든가요.”

“그게 무슨···.”

후욱-

내가 영문을 모르는 얼굴을 하고있는 왕초삼을 주먹으로 치자, 왕초삼이 수증기처럼 흩어짐과 동시에 계단이 거꾸로 뒤집어졌다.

곧이어 방금 전의 계단과는 아예 딴판인 장소가 눈앞에 신기루처럼 생겨났다. 이번엔 호롱불이 켜진 다락방 같은 곳이었는데, 거기에는 향이 좋은 나무 문이 하나 있었다.

이윽고.

하늘에서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 네놈같이 의뭉스러운 놈은 안 받는다. 살고 싶으면 저 문을 열고 나가라. 】

음, 평범한 사이버 닥터가 절대 아닌게 맞군.

나는 더 들을것도 없이 다락방에서 시선을 떼곤 다시 계단을 올라가는 것을 택했다. 동시에 계단을 밝히는 수많은 호롱불에 시선을 가져갔다.

챙그랑!

마침 눈에 드는 호롱불 등잔 하나를 그대로 떼어 바닥에 던지니, 목소리가 별짓을 다 한다는듯 말했다.

【 불을 끄면 그 어둡고 먼 길을 어찌 돌아가게? 조금이라도 힘을 아껴야지. 】

하지만 나는 그 뒤로도 몇 개의 호롱불을 신중히 골라 깨버렸다. 수천 개는 있을 법한 호롱불중에 미세한 기운이 묻어있는 특별한 호롱불이 몇 개씩 숨어있었다.

아마도 이 진법의 축이 되는 물건이리라.

‘내가 전생에 수도승들이랑 빌어먹을 진법가 새끼들 덕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진법의 축을 부수면 진이 알아서 무너진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상단전이 열린 뒤부터는 세계가 나와 한층 더 가까워졌으니, 작정하고 펼친 고도의 진법이 아닌 이상에야 내 기감을 완벽히 속일 수는 없었다.

챙그랑! 챙그랑!

나는 기운이 담긴 호롱불들을 일곱 개나 발견해 집어던졌다.

‘머리아픈 그 페인트 냄새부터 시작이었나?’

이미 계단에 들어오기 전부터 저자의 진법 속이었을 거다. 플라자 락카 소매점의 자판기부터 해서 이유 없이 놓여진 물건은 없었을 테고.

오장육부가 찢어져 곧 승천할 노인마냥 정양을 하던 왕초삼이 그 커다란 자판기를 번쩍 드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었다.

그런데도 내가 저자에게 장단을 맞춰준 것은, 날 눕혀놓고 시술할 의사에게 무작정 시비를 걸어 좋을건 없었기 때문이다. 내 목숨줄을 쥘 인간이니까.

“자, 마지막입니다. 맞죠?”

계단을 계속 오르내리던 내가 드디어 마지막 축이 되는 여덟 번째 호롱불을 찾아 던지려고 할 때였다.

【 다 죽어가는 놈이 고집은 세네. 】

화악—

더 이상의 실랑이 없이 진법이 걷혔다.

계단과 다락방의 광경이 하늘로 말려 올라가며 커튼처럼 걷히자, 차량 정비소와 의약 연구실을 합쳐놓은 듯한 진짜 내부 공간이 펼쳐졌다.

테크 장비가 가득한 사이버 닥터의 수술실.

치과의 수술의자와 비슷한 사이버웨어 조립대가 중간에 자리잡았고, 그 주위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각종 디스플레이들과 해체 장비들이 서늘한 냉기를 뽐낸다.

와삭-

“어디서 어깨너머로 진법좀 배운 모양이구나.”

와삭-

의자에 앉아있는 한 사내가 먹다 남은 부리또를 베어 물며 말했다.

진법의 하늘에서 울렸던 목소리의 주인이었다.

그는 긴 장발을 하고 하얀 가운을 입은 사내였는데, 얼굴에 긴장감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먼저 여기 데려왔을 왕초삼놈은 동물 마취제라도 맞았는지 이미 침상에 누워 깊은 잠에 빠져있는 상태였다.

“이놈이 어찌나 지랄을 하던지. 흐흐! 아이고 안돼요~! 저 인간이 없으면 나도 죽는단 말입니다! 하고. 아주 숨겨둔 연인인 줄 알았다. 그래서 콱 재워버렸어 그냥.”

사내는 긴 머리를 찰랑이며 왕초삼의 말투를 따라 했다. 그의 말투는 가볍고 경박했으나, 느껴지는 법력은 묘할 정도로 심후했다. 굳이 그 사실이 아니더라도 방안에 또 무슨 짓을 해두었을지 모르기에 허투루 보아선 안됐다.

“꼭두각시답게 네 등판에 그림 그린 괴물한테 가서 치료해달라고 하지. 뭐 주워먹겠다고 여기까지 찾아왔어?”

“······.”

사내의 질문에도 나는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입술을 한번 빼쭉 내민 그가 왕초삼이 누워있는 침상을 탕! 치며 말했다.

“이 기묘한 놈아. 내가 보니까 이 초삼이놈 코를 제대로 꿰두었던데? 그런데 이놈 이거 무식해 보여도 풍령개 제자야. 너무 함부로 다뤘어.”

풍령개(風鈴丐).

개방에서 호방하기로 이름난 팔결의 원로다. 놀랍게도 저 왕초삼놈은 용두방주와도 맞먹는다는 그 노고수의 제자인 모양이었다. 어쩐지 비싼 건틀릿을 가지고 있다 했지.

“알아 들었냐?”

탁!

그리 말하며 내 뒤에서 귀신처럼 나타난 그가 손에 들고있던 카트리지를 빼앗아갔다. 잠시 자기 물건을 맡겨둔 사람처럼 너무도 당당했다. 곧바로 가방을 열어본 그는 꽤 흥미로운 얼굴을 했다.

“호, 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놈일세. 몸은 죽어가는데 확실히 믿는 구석은 있었구만?”

텁!

돌연, 내 손목을 잡은 그가 자신의 기를 흘려보냈다.

하지만 무인들의 내기와는 근본이 조금 다른 것이었다. 이를테면 중원 시절 새외에 궁을 짓고 평생을 금욕하며 살던 수도승들의 법력(法力)과 비슷했다.

법력이 심후하고 진법에 대한 이해가 높으며 각종 의술까지 뛰어난 사내라···그럼 연방에서 일했던 사이버 닥터라는 왕초삼의 말은 거짓일 확률이 높을거다.

저들은 어디에 적을 두고 일하는 자들이 아니니까.

“소림의 중들보다 속세에 관심이 없다는 진주언가의 수도자(修道者)가 무슨 대단한 빚을 졌길래 개방의 빈객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아 시끄럽다. 지금 집중하고 있잖아. 인생이 다 그런거지 뭘 묻고 있어.”

그는 ‘진주언가’ 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짜증이 잔뜩 난 얼굴로 말했다. 언가의 수도자들은 가문 밖으로 나오지 않고 심산유곡에 틀어박혀 평생을 수련만 하다 떠나는 유령 같은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궁금함이 일었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일족이기에 심기를 더 건드리기보다는 조용히 입을 닫고 흘러오는 법력에 몸을 맡기는게 나았다.

그때, 법력을 흘리던 그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놈 이거 뭐 이래. 마법사야 아니면 무인이야? 게다가 그리 강해 보이지도 않는데 임독양맥은 또 어찌 뚫었냐? 진짜 별종이로구만.”

이윽고.

진맥을 마친 그는 별 대수롭지 않게 의자에 털썩 앉더니, 내 얼굴을 힐긋 바라보며 말했다.

“최근에 진력을 무리하게 끌어다 사용했지? 그 지랄을 몇 번이나 한 탓인지 ‘그릇’ 하나는 참 넓구나. 본의 아니게 고행(苦行)을 한 게지. 이번 기회에 몸을 회복하면 능히 전화위복할 수 있겠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나는 그제서야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그런데 그런 내 얼굴을 보고선 코웃음을 친 사내는 카트리지 통을 집어 자신의 책상에 소중히 갖다 놓더니, 팔짱을 끼며 조소했다.

“하지만 마음이 동하질 않는구나. 내가 왜 네놈 좋은 일을 해야하지? 네가 보물처럼 들고 있던 저것은 이미 내 수중에 떨어졌는데.”

내가 즉시 답했다.

“풍령개의 제자인 왕초삼을 살려드리지요.”

“푸핫, 웃기는 놈이군. 설마 내가 저 정도 마법도 못 풀 사람으로 보이나? 같잖은 저주 마법좀 안다고 감히 누구 앞에서 유세야 유세가? 건방 떨지마라 이 놈아.”

하찮다는 듯이 마음껏 비웃는 언가의 사내.

그를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던 나는, 누워있는 왕초삼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가서 해봐요. 그럼.”

“그러마. 하라면 못할줄 알았냐?”

그는 곧장 일어나 자신만만하게 누워있는 왕초삼의 머리에 손을 댔다. 역시나 심후한 법력이 사내의 몸에서 흘러나오며 왕초삼의 몸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러길 십 분여.

왕초삼은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채 시신처럼 누워있었다.

“······.”

자존심이 크게 상한듯, 몇번 더 법력을 쏟아부은 그가 마지못해 등을 돌렸다.

“이야, 이거 잘 안되네?”

“그렇죠?”

당연했다.

내가 가진 마력의 경지가 낮은거지, 저주 마법의 수준 자체가 낮은게 아니니까.

저건 제국의 마법사들이 첩자에게 사용하던 저주 마법이다. 꽤 높은 마법적 지식을 요구하며, 아무리 심후한 법력을 가진 사람이래도 파훼식을 모르면 곧장 풀 수가 없다.

뭐, 저 언가의 사내가 며칠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풀어본다면 또 모르겠지만···.

“처음에 타운에서 사흘 버티고, 연방군에 끌려가 일주일을 더 갇혀 있는 동안 마력 보충을 못 해줬습니다. 원래 일주일이 한계였던 저주인데, 이제 저놈이 얼마나 더 버티려나 모르겠습니다.”

“······.”

“풍녕 뭐시기 제자인데, 저놈 저거 죽어도 상관없겠어요? 그럼 저 진짜 갈까요?”

지금 한 말에 거짓은 하나도 없었다.

내가 몸을 회복한 뒤 마력을 보충해주지 못하면 왕초삼은 정말로 죽는다. 어쩌면 벌써 심장이 느려지고 있을 수도 있다.

결국 언가의 사내가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그래, 내가졌다. 그런데 네가 가져온 저걸 몸에 집어 넣으려면 살과 근육을 갈라야 한다. 고통이 극심할 거라 마취를 해야하는데, 네 몸은 죽기 직전의 시한부와도 다름없어서 마취약이 제대로 듣지도 않을 테지.”

“그럼 그냥 바로 합시다.”

“?”

망설임은 없었다.

나는 겉옷을 부욱 찢어 재갈처럼 입에 꽉 물었다.

그런 내 모습을 말없이 보고있던 언가의 사내는, 더없이 황당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네가 무슨 관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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