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퓨전펑크의 전생자-30화 (30/157)

#30화. 장군

#30화.

중년인의 동행 제안.

가르델 준장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돌렸다.

“······.”

관심 없다는 듯한, 그 무례한 태도에 얼굴을 굳힌 당가의 중년인이 마지못해 포권을 풀고 기다렸다.

지금 가르델 준장은 회색 동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모든 정신과 신경을 쏟고 있었다. 누군가의 제안을 들어줄 만한 형편이 아니었다.

잠시 뒤, 당가의 중년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르신, 제가 돕겠습니다.”

정중하게 말문을 열었던 조금 전보다 높아진 언성.

한참 대답이 없던 가르델 준장이 결국 시선을 돌려 중년인과 마주보고 섰다.

못마땅하게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였다.

“무얼 돕겠다는 말씀이신가?”

가르델이 무뚝뚝히 묻자, 중년인이 명함을 꺼내어 내밀었다.

“저는 사천당가의 공천립이라 합니다.”

겸손하게 내민 중년인의 고급진 명함에는 사천당가 코퍼레이션 발두르 지부의 임원이라는 정보가 넉넉히 기입되어 있었다.

발두르 지부 ‘이사 공천립’ 그 밑으로 깨알 같은 글씨로 쓰인 그의 약력이 죽 늘어져 있다.

공천립이 예의를 차리며 고개를 숙였다.

“시체의 요기와 마력이 저리도 강맹하니, 이런 무림 말학이라도 힘을 보태면 좋지 않겠습니까.”

“흐음.”

명함을 받아든 가르델 준장의 얼굴이 굳었다. 곁눈질로 그 반응을 확인한 공천립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가르델이 나지막이 뱉은 말에, 다시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귓가에 겨우 들릴 듯 말 듯한 읊조림.

- 당가의 명함은 맞지만 당(唐)씨는 아니군.

화르르-

가르델의 손 위에서 불길이 일었다.

곧, 활활 불타오르는 명함.

깊게 숙인 공천립의 얼굴에 짙은 노기가 서렸다가 이내 급히 사라졌다. 한낱 불길로 보이는 저 화염이 삼매진화(三昧眞火)라는 것을 알아챈 뒤였다.

“공천립 이사.”

타오르던 화염은 명함을 완벽히 잿가루로 만들어 버린 뒤 사그라들었다. 가르델 준장이 그제서야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군인도 아닌 자가 왜 공적을 세우려 하나?”

“······.”

“저 안에 있는 시체가 명망 있는 마법계 가문의 마법사이기 때문인가? 자네 명함에 자리할 약력이 한 줄 더 필요한 것은 아닌가?”

가르델의 어투가 명백한 하대로 바뀌었다.

공천립은 차오르는 수치심에 속이 불편 했으나, 감히 감정을 함부로 내보이거나 입 밖으로 불만을 늘어놓지는 못했다. 무력으로는 자신보다 몇 단계나 윗줄에 있는 연방의 장군이었기에.

- 그리한다고 당씨가 되는 것도 아닐진대.

저 말대로 사천당문의 당씨 성을 가진 직계였다면 또 모를까.

‘무리겠군.’

여하튼 장군이 저렇게까지 강경히 나온다면 사천당가 발두르 지부라는 배경을 가진 공천립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상대의 뒤를 받치고 있는 곳이 바로 연방 아닌가.

담담한 가르델의 질책에 공천립이 허리를 굽혔다. 그의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였다.

“제 주제도 모르고 건방졌습니다. 말학의 실수는 부디 잊어주시고 보중하십시오 어르신.”

공천립은 절도있게 포권하곤 몸을 돌렸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부족함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물러나는 듯 보였으나, 사실 그의 속에서는 천불이 나고 있었다.

연방군 병사들이 다가와 땀을 뻘뻘 흘리며 그를 모셔갔다.

그런 공천립의 뒷모습을 보던 가르델 준장이 속으로 조소했다.

연방의 장군이라는 위명에 기대어 명성과 공적을 세울 생각을 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저 당가의 인물이 크게 오해하고 있는게 있다.

방금 그건 시체 따위가 뿜어낸 마력이 아니다.

허나 그런 것까지 세세히 파악할 만한 실력자는, 가르델 본인을 제외하면 이 격리 구역에 아무도 없었다.

퍼져나온 마력의 조각들이 기감과 정신을 마구 흔들어 놓은 탓에, 그리고 저곳이 회색 동이라는 이유로 시체 말고는 특별한 존재가 있으리라 생각조차 못하는 것이다.

자신이 직접 말해주더라도 믿지 못하겠지.

그리 생각한 가르델 준장은 걸음을 옮겨 회색 동에 진입했다.

나선형의 입구를 걸어 들어가니, 커다란 공동이 있고 구역을 나누어 놓은 철창에 주민들이 하나같이 쓰러져 있었다. 철창 밑에는 나이 지긋한 군인이 한 명 죽어있었다.

그도 기억하는 얼굴이었다.

가르델은 부릅뜬 그 시신의 눈을 감겨주었다. 과거 일반 장교였던 자신과 함께 사선을 넘나들었던 병사이자 전장의 벗이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죽어나가는 연방군에서 말단 병사로 시작해 수십 년간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뛰어난 능력을 증명해주는 일이었다.

시신의 링크포트에서 칩을 뽑아 소중히 챙겨넣은 가르델이 누군가의 앞에 뚜벅뚜벅 걸어가 섰다.

유명 가문의 마법사에서, 이제는 시체가 되어버린 쿼롯 페디치. 이 14호 격리 구역을 난장판으로 만든 원흉.

— ······으으.

연방군 병사들을 상대로는 어마어마한 힘을 보이던 페디치는, 마치 뱀 앞의 개구리라도 된 듯 발을 땅에 붙이고 멈춰서 있었다.

그게 가르델의 투기 때문인지, 아니면 터져 나왔던 누군가의 마력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 페디치를 앞에 둔 가르델 준장은 돌연 철창 안쪽으로 눈을 돌리며 말했다.

“나를 기억 못하시겠지요?”

아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가르델은 확신에 차있었다.

어떻게 잊어버리겠는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던 그 신위를.

“오랜만입니다.”

파도처럼 터져나와 시체의 요기를 누르고 근방을 휩쓸었던 그 기운은, 명백히 카스트라 뷔에탕의 마력이었다.

가르델이 아직 장군이 아니던 시절.

그는 대 마피아 토벌전에서 두 눈으로 보았던 9레벨 인형사의 힘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연방과 메가콥의 고수들을 마치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며 농락했던 그 마력이 이곳에 또다시 현현해 있었다.

뷔에탕이 힘을 내보인 이유는 명확해 보였다.

십이제의 지위에서 축출된 뒤에도 로키 시티 위에 군림하고 있는, 그 괴이하고 강대한 여인은 자신의 ‘인형’ 을 망가뜨리는 행동을 극도로 싫어했었으니.

‘저자가 그 인형이로군.’

가르델의 눈에 어렵지 않게 들어온 한 사내.

중간 구역의 철창 안쪽, 한 젊은 사내가 바닥에 엎어진 채 칠공으로 피를 쏟고 있었다.

숨이 거의 넘어가기 직전으로 보였는데, 얼마나 강대한 마력이 그자를 매개로 터져나왔던지 마력의 잔향이 아직도 그 사내의 주변에 고스란히 깔려있었다.

“이 일은 고맙게 되었습니다.”

가르델은 말을 끝마치고 몸을 돌렸다.

이윽고 칼날같은 그의 시선이 연방군 병사의 피로 칠갑을 하고있는 페디치에게 꽂혔다.

*

‘지랄났군. 이래서야 며칠 버틸 수 있으려나?’

앞에 보이는 시야가 피처럼 붉었다.

내 모든 구멍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겨우 목숨만 붙어있다고 보는게 맞으리라.

아마 오늘 일로 수명이 수십 년은 줄었을 것이다. 뷔에탕의 저주를 유지하던 마력을 뽑아내 최대로 증폭시키느라 모든 힘과 진력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하나, 그럼에도 레반은 아직 살아있었다.

오직 마력을 부풀리기위해 에센스의 기운까지 떼어다 쓴 그는, 정신을 잃은 척하며 눈앞에서 얽히는 괴물들의 전투를 조용히 주시하고 있었다.

콰앙-! 콰앙-!

격리 구역을 제집인 양 날아다니며 전투 중인 저 좀비는 7레벨의 경계에 발을 걸친 상태로 보였다. 레반에게 에센스를 퍼주고 세상을 떠났던 그놈보다 월등히 강력한 존재였다.

사실, 감히 비교하기도 미안한 수준.

여유만만한 얼굴로 허공을 자연스레 날아 들어오던 놈을 본 레반은 차마 기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법인 차량에서 내린 그 당가의 중년인보다도 강한 기세를 펄펄 흘렸으니.

이것저것 재가며 어찌해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살아 나가고 싶다면 가진 밑천을 남김없이 쏟아부어야 했다.

놈의 형태를 두 눈으로 확인하자마자 뷔에탕의 마력을 끄집어냈다. 자신이 딱 죽지 않고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최대한.

[ ······아아아. ]

이런 허접한 인간들 사이에서 뜬금없이 터져 나온 강대한 마력에 놈은 극도로 당황하며 혼란스러워했다.

덕분에 약간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 뒤.

놈을 쫓아 들어왔을 연방의 한 군인은 정말 거대한 투기를 보유한 자였는데, 그는 시체보다 레반이 내뿜은 기운에 먼저 관심을 기울였다.

뷔에탕의 마력을 일전에 겪어본 눈치였다.

[ 이 일은 고맙게 되었습니다. ]

그리고 그 우연은, 레반이 뜻하지 않았음에도 사태의 전개를 좋은 방향으로 틀어버렸다.

저 군인이 레반 자신을 뷔에탕의 꼭두각시쯤으로 오해한 것이다. 하기야 뷔에탕은 인형사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는 여인이었으니. 이대로 대충 엎드려 있는다면, 어디론가 끌려가 마력의 정체를 추궁당할 일은 없을 듯했다.

— ······이빨이 부러진 암석을 손에 들어라. 부유한 자들이 네 앞에서 스러져갈 것이다.

웅얼대며 공동을 울리는 좀비 마법사의 주문.

그 마법 주문이 끝나자 원형으로 뭉친 마력들이 삽시간에 펄펄 끓어올랐다.

사아아아—

마력의 구체가 좀비 마법사의 몸을 중심으로 고속 회전했다.

구체에 닿는 모든 것이 분쇄되어 갈려 나갔다. 구역을 나누던 철창마저 마력구체에 닿자, 지우개로 지운 것마냥 사라질 정도였다.

꽤 상위의 마법이었으며 대단한 마력이었다.

최근에 좀비로 변했을 저 마법사는 강했다.

그것은 레반도 장담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저기 군복을 입고있는 괴물에게 위해를 입힐 만큼의 힘은 아니었다.

뒤늦게 견장의 별을 보고서야 알았다.

연방의 장군.

발두르에서 명망 있는 초고수들도 한 수 접어준다는 거물이었다. 연방군 투쟁의 역사를 그 등에 지고 있는 존재들이니까.

후욱-

물샐틈없던 마력구체 사이로 성큼성큼 들어간 연방의 장군이 손을 뻗었다. 화들짝 놀란 좀비 마법사의 신형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와중에 고속으로 회전하는 마력 구체들은 그대로 남겨둔 채였다.

곧, 장군의 사방을 가둔 마력구체들이 단번에 폭발하며 자욱한 마력의 안개를 만들어냈다. 그 폭발 속에선 제 아무리 강대한 장군이라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고생했네.”

— !?

마력의 안개를 섬전처럼 가르고 나온 장군의 손아귀가 허공에 둥둥 떠있던 좀비 마법사의 목을 우악스레 움켜잡았다.

이윽고 그 손에 핏줄이 일어나나 싶더니, 그토록 강력한 마법을 뽐내던 좀비 마법사의 목덜미가 순두부처럼 으깨졌다.

뿌지직- 소리와 함께 피와 살이 비산했다.

시든 풀처럼 힘없이 아래로 꺾여버린 좀비의 목.

마법사 좀비는 그 좋아하는 마법 주문을 더 이상 웅얼대지도 못하고 비명에 가버렸다.

‘······.’

악력으로 저 단단한 피륙과 뼈를 뭉개?

경이로운 그 무력에 레반이 감탄하는 사이, 손을 털어낸 가르델이 크게 호통쳤다.

【 쓰러져 있지 말고 전부 기상해라! 】

가르델의 사자후에 담긴 기운이 내부에 내려앉은 뷔에탕의 마력 잔해들을 씻어내렸다.

뷔에탕의 마력에 당해 신음하던 연방군 병사들이 하나 둘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장군의 견장에 붙어있는 별을 확인한 연방군 병사들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대경실색하여 경외심 가득한 거수경례를 올렸다. 그들에게 장군은 그야말로 하늘 같은 존재였다.

이윽고, 상황이 빠르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지휘관의 사신을 수습하고 죽은 좀비 마법사의 사체를 치웠다. 그리고는 광이 날 때까지 구역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호스에서 뿜어져나온 물대포 세례에 직격당한 주민들이 있었지만, 이미 기절한 상태라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강력한 시체가 기어들어와 난동을 부렸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주변이 금세 깔끔해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렇게, 순식간에 상황을 끝내버린 가르델 준장은 미련없이 떠났고 다시는 14호 격리구역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

회색 동에 침입한 시체 사태로 인해, 하루 남았던 격리 기간이 다시 꽉찬 3일로 늘어났으나 뒤늦게 깨어난 주민들은 아무런 불만을 표하지 못했다. 저번처럼 난동을 부리는 주민들도 전혀 없었다.

억지로 뷔에탕의 마력을 뽑아 부풀리느라 속부터 박살이 난 덕에, 운공조차 쉽사리 못하는 레반에게는 큰 호재였다.

시끄러운 것보단 고요한 게 집중하기 편하니.

다만, 후폭풍이 몰고온 고통의 강도는 주변의 소란과 상관이 없었다.

‘젠장.’

육체의 고통이 어찌나 심각한지 심마의 벽을 똑똑 두들길 정도였다. 마음 같아선 수혈을 짚어 강제로 잠에 빠지고 싶었다.

심지어 아직 마나액의 후유증이 남아있던 상태에서 뷔에탕의 마력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증폭시키는 미친짓을 벌였으니, 며칠간 정양을 했던 노력마저 수포로 돌아가버렸다. 이제 몸에는 일말의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극성의 무선대지신공이 육체를 떠나려는 정신을 힘겹게 붙잡고 있었 뿐이었다.

고통 속에서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그 사이 연방군이 약속했던 3일이 지나자, 그는 드디어 격리 구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연방군의 수송 트럭이 부지런히 주민들을 수송하며 정크타운 입구에 던져놓고 사라졌다. 던져놓고 간 타운 주민들중에는 레반과 그 무리도 있었다.

레반은 타운 입구에 내리자마자 어딘가로 향했다.

타운 입구 주변.

어느 인적 드문곳에 이르러 땅을 깊숙이 파니, 하얀 연기가 새어나오는 무언가의 카트리지가 불쑥 튀어나왔다.

왕초삼과 밴스가 의아해하는 가운데, 눈을 동그랗게 뜬 레나만이 그 정체를 알아챘다.

반 바이오 나노로봇 시리즈의 프로토타입.

“레반? 이, 이거 설마 우리······?”

“그래, 루벤카한테 잘 좀 설명해줘.”

“으, 응?”

레반은 밴스와 레나를 륭의 사무소로 급히 보낸 뒤, 왕초삼의 도움을 받아 택시를 잡았다.

그의 몸은 지금 한계에 봉착해 있었다.

육신이 지금보다 더 망가져 버리기 전에 개방에 빈객으로 있다던 그 의사를 찾아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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