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퓨전펑크의 전생자-29화 (29/157)

#29화. 변절자

#29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래폭풍 속에서 시체에 맞서 싸웠던 마법사가 자신의 감염 사실을 모른채 격리 구역까지 들어와 있을 줄은.

그리고 뒤늦게 감염을 인지하자, 장벽 밖으로 걸어 나가는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상위 마법을 사용해 감염된 사실을 숨겨왔음을.

— 젠장할······.

고급진 로브를 걸쳤으나 안색이 파리한 남자.

쿼롯 가문에 소속된 상위 마법사, 쿼롯 페디치.

6레벨 끝자락의 마법사인 그가 감염 사실을 눈치챈 것은 흑색 격리동에서의 첫날 밤이었다.

첫날 밤 이후부터 혹시라도 감염이 낫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어 이틀간 그 사실을 숨겨왔다.

스스로 장벽 밖으로 걸어가 언데드들에게 뜯어먹혔다는 소문들이 연방군 병사들의 입을 통해 속속 들려왔다.

그럼에도 페디치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은 세상의 선택을 받은 마법사이며 쓸모없는 그들과는 근본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렇듯 기구하고 허무한 죽음을 자신의 미래로 낙점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마지막 날을 넘기지 못했다.

점점 아득해지는 의식속에서 감염 사실을 숨겨오던 그가 마침내 언데드의 본능에 굴복하고 만 것이다.

꽈지직-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핑계를 댄 페디치는 자신을 감시하기 위해 뒤따라온 연방군 병사를 찢어 죽이고 살점에 코를 박았다.

흥건한 피냄새를 맡자 몸이 달았다.

신기하게도 비릿한 그 냄새가 황홀하게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자신을 속박하던, 지금까지 그를 지탱해 왔던 이성이 깨끗이 무너져내렸다.

이 흑색 건물은 사회 고위층을 격리하는 동이었다. 이상이 생기는 즉시 알아챌 강자들이 여럿 있었다. 평소의 이성적인 그라면 당연히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이성이 무뎌지고 언데드의 본능에 침식당해 치밀하지 못했던 페디치의 살인 행위는, 같은 흑색 건물의 격리자들에게 곧바로 발각당했다.

“무슨!”

연방군 병사의 사체와 피칠갑을 한 페디치를 본 이들이 경악한 얼굴로 힘을 끌어 올렸다.

며칠간 고급 호텔의 숙박객같은 대접을 받으며 황제 못지않은 격리 생활을 즐기던 시티의 강자들이었다.

그들은 연방군 병사들보다 먼저 움직여 온갖 다채로운 공격을 쏟아냈는데, 그 사이에는 사천당가의 임원도 끼어있었다.

꽈과광!

극독이 묻어있는 그의 비수들이 까다로웠던 페디치가 포탄처럼 흑색 건물의 입구를 부수고 뛰쳐나왔다.

도망쳤다기보다는, 꾸물거리며 이성을 잠식한 언데드의 본능이 원하는 것이 격렬한 전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무한정히 솟구치는 마력이 요사스러운 기운으로 변해 페디치의 전신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넘치는 마력이 자연스레 몸을 허공에 띄웠다.

피묻은 로브자락이 공중에 휘날렸다.

— ······사막에서 얼어 죽은 선인장을 목도하라. 그 가시가 곧 네 눈알을 파고 들어갈 것이다.

이윽고 공중에 자리잡은 페디치가 입술을 달싹대며 중얼중얼 뭔가를 외니 붉은색, 청색 건물에서 뛰쳐나와 앞을 가로막는 자들과 연방군 병사 수십이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그 말도 안되는 광경을 마주한 이들이 쉽사리 움직이지 못할 때였다.

콰직!

페디치가 섬광과도 같은 속도로 입을 벌렸다가 다물자, 한 뼘 길이의 탄환이 제 자리를 찾은 것처럼 물려있었다.

와직.

탄환을 이빨로 물어부순 다음에야 장벽 중간에 붙어있는 초소에서 벼락같은 총성이 메아리쳐 울려 퍼졌다.

단 한발로 사람의 허리를 두동강 내버릴 수 있는 연방군의 대물 저격총도 그의 몸에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다.

— 하하······?

페디치의 육신이 더욱 달아올랐다.

이 절대적이고 권능과도 같은 힘이라면, 그토록 동경하던 발할라의 대마법사들과도 동수를 이룰 수 있을것만 같았다.

그렇게 신이라도 된듯한 전능감을 만끽하던 페디치가 문득 고개를 내려보니, 가장 나약하고 많은 주민이 격리된 회색 동 앞이었다.

페디치의 입꼬리가 주욱 올라갔다.

- 그만!!

그때, 회색 동에서 한 군인이 튀어나왔다.

연방군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나이든 사내.

페디치는 생각보다 강력했던 그 지휘관에게 발목 한 짝을 내주고선 그자의 목숨을 취할 수 있었다.

그자는 몸이 뻥 뚫려선 나왔던 입구로 다시 내던져졌다. 인간의 몸이었다면 꽤 고전했을 상대였다.

— 이건 정말······너무 좋은데.

회로를 휘돌며 끝없이 솟구치는 이 힘.

한계가 없다.

지휘관이 목숨을 던져가며 잘라낸 발목에도 피가 쏠리나 싶더니 꾸물대며 벌써 새 발목이 솟아나고 있었다.

입이 찢어져라 웃어 보인 페디치는, 두려움에 자신의 앞을 감히 막아서지 못하는 한심한 자들을 내버려 두고 회색 동으로 들어갔다.

* * *

그런 얘기가 있다.

높은 경지의 인간일수록, 언데드가 되면 더욱 강한 힘을 얻는다.

사실이었다.

과거에 연방을 배신하고 언데드의 길을 걸은 인류의 강자들로부터 깨닫게 된 사실. 연방의 누구도 그 사실을 깨닫고 싶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그리되었다.

과거에 아직 인류의 터전이 충분히 남아있던 시절. 현재에 비하면 뭐든 희망차고 풍족했던 시절.

9레벨의 경지였던 한 전설적인 영웅은 자신이 늙어 죽기 전, 언데드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마지막 남은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어했다.

그는 노환으로 어차피 곧 죽을 몸이니, 자신이 이룩한 모든 것을 연방에 선물하고 떠나겠노라 선언하고 장벽 밖으로 떠났다. 수십 년간 연방을 지탱하던 영웅이 사라지자 모두가 슬퍼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좁았던 문을 활짝 여는데 성공했다.

죽기 직전의 몸뚱이는 질기고 단단한 육신이 되었고, 눈에는 정광이 가득했으며 무인들의 환골탈태 같은 육체 재정립마저 필요치 않은 영생의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홀연히 사라졌던 그 영웅은 고작 100일도 지나지 않아 인세에 나타났다.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괴물의 모습을 하고서.

그는 일주일 만에 거대 도시 세 곳을 무너뜨리고 수천만의 인간을 학살했다.

인간의 피와 살점을 쥐어짜내어 드넓은 수영장에 가득 채우고 자신이 인간시절 그토록 좋아했던 수영을 마음껏 즐기던 광경이, 거대 도시인 ‘발리’ 에서 마지막까지 생존했던 이의 각막렌즈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었다.

연방의 권력자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떠나기전 자신의 모든 절학을 물려주고선 “살아 돌아온다면 반드시 연방의 편에 서겠다” 고 굳건히 다짐했던 현명한 노인이었다.

그렇기에 연방은 고명한 그의 약속을 믿었고.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전설적인 존재의 타락은 언제나 훌륭한 언론의 먹거리였지만, 그때는 언론조차도 그 충격적인 내용을 쉽사리 보도하지 못했다.

보도의 파장이 시티 중심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것보다도 더욱 강력할 게 뻔했기에.

고작해야 100일, 본능에 잡아먹혀 흉한 악귀가 되어버린 그를 전설로 기억하고 회자하는 사람들이 세상엔 아직도 한가득이었다.

하지만 그 사건은 결국 대서특필되었다.

【 전설로 남았던 영웅의 변절 】

사람들이 그를 떠나보내고 슬퍼했던 기간보다 욕하고, 절망하고, 원망하는 기간이 수 곱절은 더 길었다.

그 사건의 여파로 끝나지 않을 자신만의 길을 걷기 위해, 언데드가 되어서라도 인류의 편에서 싸우고 싶다던 늙은 영웅들의 장벽 바깥 행이 줄줄이 취소되었다.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려던 그들은 자신들의 우상이자, 벗이자, 전설이 망가진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변절한 그의 모습을 보고 탄성을 내지르는 이도 있었다.

자신의 지식과 기억은 그대로 둔 채로 막대한 힘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이길 포기한다면 저 넓은 바깥 세상에서 영생을 구가하며 신선놀음을 할 수 있다.

욕심을 내는 자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 압도적인 매력에 정신이 팔린 자들은 어떻게든 연방의 감시를 뚫고 장벽 밖으로 나아갔다. 다른 이보다 더 강한 시체를 찾기 위해. 자신에게 격 높은 혈액을 나눠줄 강대한 언데드를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

여정은 성공적이었다. 그들에게만.

5레벨이었던 자는 고작 한 달 뒤 6레벨급의 언데드가 되어 나타났고, 6레벨 초입에 머무르던 자는 단 3년 만에 7레벨의 벽을 깨부수고 강력한 언데드가 되어 나타났다.

힘을 얻었어도 인간 시절의 지능과 기억을 거의 그대로 계승한 채였다.

졸지에 인류를 지키던 강자들의 이탈이 가속화되었다.

시간이 지나자 연방은 고의적인 언데드화, 시체화에 대해 결벽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재깍 반응하기 시작했다.

고의로 변절의 길을 걸었다면 그 조부모와 부모, 자식, 친인척, 친구와 이웃까지 체포해 감옥에 가두었다. 만약 변절자가 어떠한 가문과 기업의 일원이라면 그 가문과 기업 자체에 극심한 페널티를 부여했다. 변절자가 인간이었던 시절에 강하고 명망이 높을수록 그 처벌과 배척의 강도가 심했다.

극단적인 연좌제를 실제로 시행한 것이다.

그것은 이미 변절한 자들에 대한 벌이 아니라, 변절할 생각을 갖고있는 이들에 대한 연방의 강력한 경고였다.

연방은 그 외에도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였고, 변절자들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변절할 마음이 없었더라도 감염되는 순간 변절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신력으로는 신선과도 다름없던 초인들마저 굴복하는데, 그보다 못한 이들이 그 끔찍한 본능을 버텨낼 재간이 있을 리가 없다.

저 6레벨의 마법사인 페디치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몇 명이나 저 회색 동 안에 있는 건가?”

누군가 저 회색 건물 안에 주민이 얼마나 있냐 물으니, 한 연방군 병사가 천 명이 넘는다고 대답했다.

그 말에 누구는 인상을 찌푸렸고 누구는 안도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전부 다 죽겠군.”

“젠장. 시간이나 실컷 끌어줬으면 좋겠네.”

흑색 건물의 강자들을 비롯해, 저 회색 동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조금 전 가슴이 뚫려 죽은 지휘관을 본 연방군 병사들도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그 나이 지긋한 군인이 이곳 14호 격리 구역의 책임자였다.

그래도 믿을 구석이 아직 남아있었다.

“장군이 이리로 오고 있다고?”

“예.”

강대한 무력을 보유한 연방군의 별.

연방군의 전력중 가장 강력한 축인 ‘장군’

때마침 연방의 장군 한 명이 이곳 14호 격리 시설에서 터진 비상사태를 확인하고 이동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언데드가 된 페디치의 불가사의한 힘을 마주한 그들은 이 상황을 종료시킬 유일한 존재가 서둘러 도착하기만을 기대했다.

“미치겠군. 쿼롯 가문의 마법이 저렇게 강했나?”

“죽지 않는 존재가 되었으니, 잠재력까지 마음껏 뽑아쓰고 있을 거다. 방어를 도외시하고 전력으로 마력을 뿌려대는데 그걸 어떻게 막아?”

“방벽진 치는 기업들은 돈을 그렇게 받아 처먹고 대비도 제대로 안하네. 씨발 뭘 하는거야 대체.”

“언데드가 그렇게 많이 떨어질 줄 몰랐겠지. 연방에서 제일 코딱지만한 땅덩이잖아.”

방금 흑색 건물 안에서 페디치와 전투를 벌였던 이들이 한 마디씩 뱉었다. 그들은 모두 6레벨 이상의 강자였는데 다섯 명이나 되었기에 망정이지, 혼자였다면 절대 목숨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다섯 명 중, 마지막으로 입을 꾹 닫고 있던 사천당가 코퍼레이션의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오시는군.”

콰앙-!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대한 기운을 지닌 누군가가 하늘에서 유성처럼 떨어졌다.

모두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존재였다.

장군이라고 불리는 연방군의 수뇌.

반듯한 군복 견장에 자수된 한 개의 별이 기품있고도 은은하게 빛났다.

연방군 준장, 가르델.

도착한 그가 숨 돌릴 틈도 없이 고개를 돌리곤 시체의 요기가 느껴지는 회색 동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던 때였다.

스아아아악——

저 회색동 안에서.

“!”

무언가 기이하고 살기짙은 기운이 점차 커지더니, 시체의 거칠고 사나운 요기를 게걸스레 잡아먹으며 거대한 똬리를 틀었다.

이윽고, 똬리가 무너지며 탄생한 기의 파동이 해일처럼 넘실대며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해일같은 파동이 몰고온 기운의 조각들이 온 사방에 진하게 내리깔리자, 누구도 멀쩡하게 서있지 못했다.

연방의 병사들은 물론이고, 붉은색과 청색 건물에서 튀어나온 이들이 하나둘씩 구역질을 하며 쓰러졌다.

“끄윽!”

“씨이발, 갑자기 뭐야?”

심지어 6레벨이 넘는, 어디서나 걸맞은 대접을 받던 강자들이 그 항거할 수 없는 기운 앞에 자비라도 구하는 양 무릎을 꿇었다. 신체를 스멀스멀 침범해오는 기운에 전신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야말로 규격을 벗어난.

9레벨급의 초월적인 강자가 이곳에 존재를 드러내며 현현했다고 해도 믿을 법한, 상식 밖의 힘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주저앉기 바쁜 사이, 사천당가의 중년인이 천천히 걸어 나와 인상을 무섭게 찌푸리고 있는 가르델의 앞에 섰다.

그는 곧, 정중히 포권하며 입을 열었다.

“저 안의 상황이 심각한 듯한데, 제가 함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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