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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펑크의 전생자-28화 (28/157)

#28화. 불쾌지수

#28화.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우리는 닭장을 얹어 놓은 것처럼 생긴 수송 트럭의 짐칸에 올라타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당신들은 서쪽 장벽에 있는 14호 격리 시설로 이송될 거다.”

그 말에 루돌프가 손을 번쩍 들고는 물었다.

“거기에 며칠이나 있어야 합니까?”

“3일 안에 증상이 없으면 내보낸다. 그러니 허튼짓 하지마라.”

“아 3일이요···.”

부우웅-

트럭의 속도에 맞춰 날아다니며 호위 중인 드론 몇 기. 포탑이 달린 공격용 드론이거나 자폭 드론이었는데 그 비행음이 사뭇 위협적이었다.

트럭 위의 연방군 병사들은 서로 잡담하며 담배를 태우는 등 일견 여유로워 보이기도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허술하게 행동하지는 않았다.

나는 참지 못하고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지난 이틀간 얼개를 잡아두었던 내 계획이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어그러졌기 때문이다.

본래 계획은 묻어둔 나노로봇 카트리지를 꺼내와서 왕초삼이 안다는 의사를 같이 찾아갈 예정이었다. 과거 연방에서 일하던 사이버 닥터라고 했는데, 지금은 개방의 지부를 돌며 빈객 생활을 한다고 했다.

그 사이버 닥터가 나노로봇 시술 경험이 있는 의사라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지금 가지고 있는 나노로봇을 시술받으면 현재의 마나액 후유증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긴 시간 정양해야 할 내상이나 육체 단련으로 인한 피로도 그 기간을 확연히 단축시킬 수 있을 테니까.

지금처럼 나약한 몸이 아닌 진정한 무인의 육체가 완성되면 에센스의 기운을 흡수하지 못해 사방팔방으로 날뛸 일도 없었다.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에센스가 깃들 예정만 남아있었다.

그런데 가축처럼 잡혀가는 꼴이라니.

나는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내였지만, 살벌한 기세를 풍기는 병사들이 면전에 소총을 들고 있었다. 인권이니 존엄성이니 하는 이야기를 꺼낼 분위기가 아니다.

그때그때 분위기를 잘 파악해가며 할 말을 하는게 바로 나라는 사내의 장점이었기에 눈에 띄지 않게 입을 꾹 닫았다.

뭐, 이들이 당가인이 아닌게 어디인가.

더해서 연방군의 눈 밖에 나서 좋을건 하나도 없었다. 좀비와 접촉한 주민들을 격리시키는 것은 본래 정상적인 절차니까.

그리고.

수송 트럭에 올라타 얻은게 없지는 않았다.

“형님, 여긴 아주 개박살이 났네요. 저희가 운이 좋았나 봅니다.”

륭의 마지막 조언과 17번가에 어째서 사람들이 없는지에 대한 의문은 수송 트럭을 타고 가며 말끔히 해소되었다.

“진작 죽었거나 격리구역 어딘가에 끌려갔겠군.”

17번가 유흥지대에서 멀지 않은 거리의 18, 19번가는 물론이고 30번가 근처 주택과 상가들까지 폭탄이라도 터진 듯 죄다 반파되어 있었다.

방비가 허술한 건물에서 한 두 명쯤 죽어 나가자 진동하는 피냄새를 맡은 좀비들이 흥분해 이곳으로 몰려 들었을거다.

사람을 물어 뜯거나 감염시키려는 좀비의 행위는 인간의 식욕, 성욕과 비슷한 맥락이다. 웬만해서는 거스를 수 없는 생물의 본능.

피냄새만 났다하면 득달같이 몰려드는게 좀비니까.

하기야 사람이 죽어나가든 말든 신경조차 안쓰던 곳이 정크타운인데, 경찰도 아닌 연방군이 움직였을 정도면 시티 정부에서도 사안을 심각하게 판단했다는 거겠지.

이번 폭풍이 유달리 강했던 탓에 장벽을 보호하는 진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을테고, 평소보다 좀비가 많이 딸려온 것이 분명했다.

‘쯧.’

그 광경을 뒤로하고 정크타운을 벗어난 수송 트럭은 어느 작은 동네에 멈추어 사람을 몇 명 더 태웠다. 그들은 하나같이 심한 몰골에 정신이 불안정해 보였다.

“이제 근방의 소도시는 전부 돈 건가?”

“그렇습니다!”

나이 지긋한 군인의 목소리에 병사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아까 보인 신분증의 계급이 낮지 않았고 느껴지는 기도가 꽤 훌륭한걸 보면, 아마 이 병사들의 지휘관이리라.

“집결지로 출발하지.”

지휘관의 말에 수송 트럭이 속도를 높였다.

*

끼익.

수송 트럭이 드디어 멈춰섰다.

병사 하나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 내려요. 꾸물대지 말고 빨리.”

닭장 같은 트럭에서 내리자 거대하고 칙칙한 시티의 장벽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중심업무지구 근방에서만 살았으니, 이리 가까이서 본 적은 없었는데 마치 웅장하고 높은 댐을 밑에서 바라보는 보는듯했다.

지옥같은 외부로부터 발두르 시티를 격리시키는 거대 장벽.

저 너머는 이곳과 다른 세상이겠지.

번쩍-

날이 밝음에도 적색 불빛을 내는 항공장애등은 일정 간격으로 시티 장벽을 수놓고 있었다. 장벽 중간에는 작달막한 관제 초소가 동그랗게 나와 있었는데 멀리서도 잘 보일 만큼 거대한 대물 저격총을 배치해 두었다.

분위기가 실로 흉흉했다.

이곳까지 오는 사람은 보통 두 부류.

시체 사냥꾼이거나.

시체가 될 놈이거나.

나는 둘중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길 바랐다.

“알아서 조심해요. 대열 벗어나면 총 맞으니까.”

차가운 목소리의 병사가 끌려온 주민들을 괜히 겁주며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분위기상 나도 겁 먹은척을 해야 할 것 같아 잔뜩 어깨를 움츠렸다.

시티 장벽 앞에 길게 펼쳐진 허허벌판.

거기에는 체육관같이 옆으로 커다랗고 널찍한 건물 다섯 동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흑색과 붉은색, 청색, 황색 그리고 회색으로 칠해둔 건물은 모두 격리 시설로 보였다.

“당신들은 저 끝에 있는 회색 동이다. 따라와.”

와중에 우리는 가장 바깥쪽에 있는 회색 건물로 배정받았다. 그렇게 내가 흑색 건물 앞을 지나가던 때였다.

‘?’

심상찮은 느낌에 기감을 한번 넓게 펼쳐보자 검은색 건물의 안쪽에서 륭 이상 가는 강대한 기운이 여럿 느껴졌다.

‘륭과 비슷하거나 더 강한 자가 다섯 이상.’

아마 저 안에 있는 이들은 시체들과의 전투 후에 자체적으로 격리를 선택한 기업이나 관청의 인사들일 것이다.

바로 옆의 붉은색과 청색 건물 역시도 만만치 않은 기운의 소유자들이 몇 명이나 있었다.

—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때마침, 수송 트럭 대신 고급스러운 의전 차량에서 내린 중년인이 병사들의 공손한 안내를 받으며 흑색 건물로 들어가는게 보였다.

의전 차량은 법인 차량인듯 번호판이 눈에 띄는 형광색이었는데, 그 앞판에 사천(四川)이라는 글자까지만 확인한 내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나는 차량과 중년인에 신경을 꺼버리고는 종전보다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금세 회색 건물에 당도했다.

“들어가.”

이곳은 다섯 건물중 가장 면적이 넓었으나 외관이 낡고 추레했다.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도 대체로 형편없었다. 그래도 병사들에 의해 나름 체계적으로 통제되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 앞서 걸어가는 주민들을 따라 안쪽으로 깊이 들어갔다. 입구는 나선형의 터널같은 구조였다.

건물의 안쪽에 이르자, 크게 펼쳐진 공동과 함께 열악한 환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시티 외곽의 주민들만을 모아놓은 곳인듯 싶었다.

우스운 것은, 그 안에서도 철창을 경계선 삼아 구역이 나뉘어져 있었다.

구역은 총 세 군데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좌측 구역은 비교적 행색이 멀끔한 인간들이 모여있는 곳이었고 중앙 구역은 왼쪽보다 못했지만 그나마 평이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우측 구역은 최악이었다.

척 봐도 상태가 이상한 인간들만 모여있었다. 저긴 아비규환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마약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인간은 양반이었고 몇 명은 이미 사팔뜨기가 된 눈으로 돌아다니며 걸쭉한 침을 질질 흘려대는데 당장이라도 좀비로 돌변해 옆 사람을 물어뜯더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할 수준이었다.

- 이런 새끼들이랑 어떻게 같이 있으라고!

- 제발 내보내 줘!

덕분에 우측 구역으로 배정받은 주민들은, 입구를 지키는 병사에게 크레딧을 줄테니 다른 구역으로 자리를 바꿔달라 간청했다. 하지만 그들이 다른 구역으로 가는 일은 없었다.

곧, 우리를 인솔하던 병사도 입을 열었다.

“웨스트 정크타운 밀접 접촉자 넷. 우측으로.”

병사의 어투는 단호했다.

나를 포함한 넷은 우측에 격리당할 신세가 되었다. 하기야 시티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슬럼가에서 잡혀 왔으니 이렇게 무시당해도 싸다.

그런데 앞에 가던 왕초삼이 그 소리를 듣자마자 갑자기 허리춤을 경박하게 털었다. 거기엔 개방의 철패 매듭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흔들리는 철패 매듭을 뚝 떼어 그 병사에게 보여주었다. 저번처럼 오결을 상징하는 홀로그램이 화려하게 솟구쳐 올랐다.

“?”

병사는 매듭을 받고선 유심히 확인하나 싶더니, 태도가 급변했다. 불만스러운 얼굴의 왕초삼을 향해서 고개를 짧게 숙여 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가까이 가기만 해도 거지 특유의 구릿한 냄새가 나는 왕초삼의 앞에서도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말했다.

“지금 보니까 특별한 외상은 없어 보이네요. 그냥 중앙 구역으로 들어가시죠. 위에서 뭐라고 하면 내가 적당히 설명해 놓겠습니다.”

녀석은 옅은 미소를 띈 채 왕초삼을 중간 구역으로 안내했다. 말단 병사의 입장으로 괜히 오결의 개방도를 막대해서 좋을게 없다고 생각하는 듯싶었다.

내가 혼자 떠나려는 왕초삼을 발로 툭툭 찌르자, 놈이 곧바로 눈치를 채고는 앞서가는 병사를 불러세웠다.

“병사 양반, 이 셋도 나랑 같이 중앙에 넣어주쇼. 다 멀쩡한 사람들이야.”

“그렇습니까? 그러면 그리하십시오.”

병사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허락했다.

연방군의 시설에서도 기업의 아성은 잘만 통했다.

왕초삼의 철패 매듭이 아니었다면 나는 필시 저 오른쪽 구역에 수감되었을 것이다.

중앙 구역에는 백 명 정도의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 시장통 속에 앉아 내면을 관조했다.

뷔에탕의 마력에 먹이로 던져줄 에센스를 빼놓고도 거대한 기운이 남았다. 영약이지 만병통치약은 아닌지라 지금보다 몸 상태가 괜찮아지면 천천히 단전과 심장에 흡수될 녀석들이었다.

에센스의 기운이 안정화되면 이제 슬슬 회로를 하나 더 늘려봐도 좋을것 같았다.

회로가 한 개 늘어날수록 구현해낼 수 있는 마법의 범위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전생에 얻은 노하우로 범용성 좋은 마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고작 2위계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조금 시간이 흘렀다.

“거기. 잠깐 이리와요.”

마스크와 고글에 방호 슈트까지 갖춰 입은 연방군 병사들은 주민들에게 뭔갈 캐묻고 있었다.

귀를 기울여보니 전신에 녹빛이 도는 언데드를 보았거나 들었냐는 질문들이 주를 이루었다.

연방군의 목표는 피해대책 수립이 아니라, 폭풍을 기회삼아 시티 안으로 기어들어온 어떤 좀비의 절멸인듯 했다.

얘기를 엿듣던 내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지금 밖이랑 연락 돼?”

“아예 안 됩니다. 먹통이에요.”

루돌프가 고개를 저었다.

보호 마법진이 덕지덕지 걸려있는 시티 장벽이 가까워서 그런건지, 혹은 군에서 통신 방해 장치를 설치해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레반, 우리 여기 언제까지 있어야 할까?”

레나는 최근의 벌어진 일들이 모두 생소한것들 투성이라 종일 어안이 벙벙해 보였다. 시티 중심가 부잣집에서 태어난 아가씨가 이런 수모를 당할줄 어디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나도 격리구역은 처음이라.”

“아 그랬지···.”

그때였다.

—야 이 개새끼들아!!!

옆 오른쪽 구역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못배운 외곽지대의 주민들을 한 장소에 강제로 끌고 와서 모아놓으니, 개중에 도를 넘어 지랄하는 인간들이 속속 등장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씨발! 이거 풀어달라고! 나 누군지 몰라?

짜증이 섞여 있는 사내의 고함.

저놈은 아까부터 역정을 내며 난동을 피우고 있었다. 허리춤의 칼을 보니 칼밥좀 먹은 무인이다. 동네에서 나름 한가락 하는 놈이겠지.

풍기는 기운을 보면 등평위와 비슷하거나 약간 못해 보였다.

놈이 쉴 새 없이 날뛰어대자, 결국 순진한 얼굴의 젊은 병사 하나가 철창을 두드리며 말했다.

“조용히 합시다.”

“지랄하네 씨발! 내가 뭘 잘못했는데 수갑을 채우냐니까.”

“나중에 문제없으면 풀어주니까 입 닫으시라고.”

“아, 일단 풀어줘봐. 이거 풀어주는게 어려워? 나는 두 손이 자유롭지 못하면 정신병이 도진다고!”

그야말로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였지만, 병사는 순순히 철창 안으로 들어가 수갑의 중간고리를 풀어주었다. 심퉁난 얼굴로 손목을 툭툭 턴 사내의 다음 행동은 뻔했다.

속박이 풀리자마자 전광석화처럼 달려든 그는 눈앞의 젊은 병사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홰액!

헌데 3레벨쯤 될 법한 무인의 주먹을 가볍게 흘려낸 병사가, 그 팔을 붙잡아 그대로 메쳐버렸다.

뒤통수로 돌바닥을 때린 사내가 비명을 질렀다.

“커억!”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연방군의 무서운 점은 균일성이다.

아무리 말단이라도 연방군의 마크를 다는 순간 계급장과 함께 군용 칩을 하사받는데, 그 칩은 초기 연방의 권력자들이 온갖 절학(絶學)을 모아놓고서 평범한 이들도 쉽게 익힐 수 있는 전투능력과 토납법만을 뽑아 집대성해놓은 종합무술이다.

제대로 익혔다면, 저렇게 맨몸으로 덤벼드는 3레벨 무인쯤은 어렵지 않게 저지할 수 있다.

스르릉-

“이, 이 개새끼가. 너 어디 한 번 해보자 그래.”

“!”

하지만 저렇듯 검을 들고 내력까지 써가며 달려드는 놈을 쉬이 저지할 수준은 아니다.

연방군 병사들이 하사받는 군용 칩의 특징은, 일정한 경지까지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강해진다는 것. 하지만 그게 전부이기도 하다.

보급형 군용 칩에 탑재된 무공과 토납법은 전부 실전적인 배움과 빠른 성장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에, 그것들을 대성해봐야 4레벨 이상의 경지에 이르기는 힘들었다.

“죽어 새끼야!”

그렇게, 무인은 검을 들고 달려들었고.

퍼엉—

“컥!”

돌연, 무인의 손목이 폭발과 함께 터져나갔다.

그 광경에 주변의 모두가 찔끔하며 자신의 손목에 채워진 수갑을 내려다보았다. 폭발한 저 수갑과 별다를바 없는 생김새였다.

“끄, 끄아아아악!”

황천에서부터 끌어올린 듯한 비명.

사내가 잘린 손목을 붙잡고 버둥댔다.

이윽고, 피가 뿜어져 나오는 사내의 손목을 토치같은 휴대용 화기로 지져버린 병사가 소리지르는 그 얼굴을 짓밟았다. 순해 보이던 얼굴은 어느새 군인의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너···.”

병사가 뭐라 입을 열며 발을 들어 올렸을때, 뒤쪽에서 지휘관의 커다란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만-!”

“!”

그 호통이 떨어지자마자, 병사는 다시 순진한 얼굴로 돌아가 쩔쩔맸다. 그에게 지휘관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삽시간에 사색이 된 것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병사가 연신 쩔쩔매는 동안 손목이 잘린 사내는 찍소리도 못하고 조용히 구석에 가 처박혔다. 손목 하나가 잘렸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다. 신경은 살아있을 테니, 크레딧을 모아 사이버웨어를 이식하면 될 일이다.

손목 하나가 날아가서 수갑을 채울 필요도 없었다. 사내는 처음에 원하던 대로 수갑을 벗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 사내뿐 아니라, 이런저런 군상들을 구경하며 중앙 격리 구역에서만 48시간을 꼬박 보냈다.

그간 감염이 확실시 되어 질질 끌려나간 주민들을 여럿 보았고, 그들은 다시 격리 구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여기저기 들러붙어 떠드는 것을 좋아하는 주민에게 듣기로, 시체가 되기 전에 장벽 밖으로 걸어 나가게 한다고 들었다. 그게 더 인도적이라나? 사실 그냥 총탄을 아끼려고 그러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사이에 격리된 주민은 더 늘어 모든 구역이 주민들로 빽빽하게 채워지는 지경이 되었는데, 그 덕에 불쾌지수가 잔뜩 올라간건 두말할 필요 없었다. 마치 난민 대피소 같았다.

“그래도 하루만 더 지나면 나갈 수 있겠지?”

레나가 그런 말을 하던 즈음이었다.

이 14호 격리 구역에 무언가 이상이 생긴 때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격리 구역을 지키는 최소한의 인원을 제외한 연방군 병사들이 썰물처럼 이곳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다급해 보였다.

심지어 나를 이곳으로 수송해왔던 나이 지긋한 지휘관도 황급히 개인무장을 챙기더니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여유롭게 즐기던 비스킷과 커피도 내려둔 채였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벌어진 듯 하자, 주민들이 저들끼리 모여 웅성댔다. 주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입김처럼 피어오른 불안감이 장내에 있는 모두에게 전염되고 있었다.

—! ——!

밖에서 들려오는 기파의 충돌과 큰 총성.

격리 구역 밖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붉은 건물보다는 조금 더 먼 곳으로 느껴졌다.

흑색 건물 쪽이다.

저기서 무슨 일이 터진 건가?

호기심이 동한 내가 조금 더 세밀히 기감을 펼치던 시점이었다.

콰앙—

방금 다급하게 나갔던 지휘관이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로 날아와 철창에 처박혔다.

주르륵, 철창을 따라 미끄러지는 사체.

연방군 병사쯤은 애 다루듯 하던 지휘관의 허망한 죽음이었다.

“······.”

지난 이틀간 시장통보다 시끄럽던 격리 구역이 한순간에 도서관처럼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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