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그럽시다
#27화.
“형님. 찾았습니다.”
무거운 시체를 자르고 옮기느라 땀에 흠뻑 젖은 루돌프는 한참이나 눈을 감고 있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놈은 넷에 접속해 뽑아낸 에센스를 복용해도 되는지 알아보던 중이었다.
“백만방도에 검색해보니까 갓 뽑아낸 에센스를 그냥 마셨다가 재수가 없으면 배탈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답니다. 되도록 여러번 거르고 불로 팔팔 끓여서 먹는게 그나마 안전하대요.”
“그러냐.”
“예. 확실합니다.”
그럼 그냥 먹어도 상관없다는 얘기군.
나는 걱정을 한시름 덜고는 자리에 앉았다.
바라본 술집 안의 풍경은 참으로 기이했다.
한 거지는 죽을둥 살둥 땀을 흘리며 내상을 다스리고 있었고, 두 사내는 천장에 매달린 사체만 뚫어져라 바라봤으며, 한 심약한 여인은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넋이 나가 있었다.
그리고 아까 쓰레기처럼 내팽개쳐져 있던 좀비의 몸뚱이는 귀하게 모셔진 뒤 몸통과 팔, 다리. 총 다섯 조각으로 분리되어 꼬치처럼 꿰이는 신세가 되었다.
우지직-
압축도에 일렬로 꿰어진 좀비의 그것들을 2층의 무너진 바닥 구멍 사이에 놓아 1층으로 피가 빠지도록 만들었는데, 무게가 무게인지라 바닥이 무너질 것처럼 우지끈거렸다.
놈의 근육은 인간과 비교하지 못할 만큼 오밀조밀하고 두꺼웠다. 근질부터가 다르다고 할까. 아무튼 다리 한 짝에 적어도 일백근은 족히 넘을듯 했다.
좀비의 기형적인 신체 부위들이 칼에 꽂힌 채로 천장에 매달려있는 그 경관은 실로 흉물스러웠다. 붉은 조명만 있으면 정육점인줄 알 정도로.
뚝—
박쥐처럼 거꾸로 뒤집힌 사체의 목과 상처에서 새어 나온 피가 방울져 떨어진다. 확실히 빠른 속도로 피가 빠지고 있었는데, 이는 아까 전에 내가 화풀이를 한답시고 몸뚱이에 칼집을 숭숭 내둔게 유효했다.
뚝—
떨어진 핏물 위로 몽글몽글한 에센스가 맺혀 수영장 위의 튜브처럼 둥둥 떠다닌다. 그렇게 되면 루돌프가 동동 떠다니는 에센스를 빈 보드카 병에 조심스레 옮겨 담았다.
확실히 저번의 것과는 비교하기 힘들만큼 더 진한 색감. 최하급품 에센스 따위보다 질이 월등히 좋아 보인다.
나는 시체에서 피가 다 빠지길 기다렸다.
중간에 좀이 쑤셔 축기를 한 번 시도해 보았으나, 혈도와 기맥만 더 고통스러울 뿐 허전한 단전이 채워지진 않았다.
결국 멍하니 앉아 눈만 끔뻑이는 수 밖에.
아무튼 보기만 해도 흡족한 시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거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런데······.
—찌릿.
문득, 어디선가 느껴지는 오싹한 기척이 전신을 찔렀다. 당연히도 미간이 자동으로 찌푸려졌다.
‘좀비가 더 있었나?’
설마 사람 피 냄새가 밖으로 빠져나간 건가.
나는 내력을 돌리고 있을 왕초삼을 원망스레 바라봤다. 물론 놈은 대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새 문 앞까지 당도한 누군가의 기척.
일단, 출입문에서 급히 떨어졌다.
꾸드득!
그와 동시에, 막아 두었던 1층 문에 조그마한 구멍이 나며 커다란 눈알이 그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사슬처럼 엮인 신경에 달려있는 눈알이었는데 그 눈이 괴상하게 움직였다.
- ······.
이윽고, 주먹보다 조금 큰 눈알이 열 개가 넘는 눈알로 갈라졌다. 작은 눈알들이 서로 다른 곳을 향하며 이쪽을 훑어봤다.
놈은 일전의 좀비보다 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꼬치 신세가 된 좀비와의 전투에서 이미 대부분의 힘을 쏟아부은 뒤였다.
여기서 몸을 더 혹사해 힘을 끌어낼 방도가 있다해도, 분명 그 여파가 막심할 것이다. 자칫하면 며칠이 아니라 몇 개월을 내리 고생해야 할 수도 있다.
‘젠장, 저걸 일회용으로 쓰기에는 너무 아까운데······.’
결국 뽑아낸 에센스로 시선이 몰렸으나.
서걱—
이어진 상황에 그 걱정들이 전부 무색해졌다.
갑자기 모든 눈알이 단말마를 빽 지르고는 멈춰버리는 것이 아닌가.
찰나간의 침묵이 흐른 뒤.
얼떨결에 밖을 내다본 나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쩌억-!
놈을 양단하는 하나의 실선.
군더더기 하나 없는 담백한 참격이다.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 정확히 일직선으로 잘린 눈알 좀비의 몸뚱이가 부질없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쿵.
조금 전, 오싹한 기척의 주인은 눈알 좀비가 아니라 용린으로 촘촘히 짠 듯한 철갑옷을 전신에 두르고 있는 저 사내였다.
6레벨 사무라이 륭.
언제부터 밖을 돌아다니고 있었을까.
허리에 감겨있는 쇠밧줄에는 이미 죽은듯 보이는 좀비가 여럿 매달려 있었다.
그때, 륭이 들고있던 도검을 납검하고는 깊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물었다. 좀비가 난동을 부려 생긴 외벽의 흔적을 눈치챈 듯 했다.
“괜찮다면 들어가서 확인해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그 질문에 대답을 고심했다.
눈앞의 사내가 에센스를 보고선 욕심을 낼까 미덥지 못했던 탓이다.
하지만 좀비를 저렇게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걸 보면, 에센스에는 별 관심이 없는듯 했다. 애초에 저 사내를 막을 수단도 없었다.
그리 생각한 내가 흔쾌히 문을 열자 일언반구도 없이 안으로 걸어 들어온 륭은 내부의 기괴한 광경에도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
천장에 매달린 좀비의 사체를 보고도 놀라지 않던 그는, 대뜸 좀비의 피를 손으로 찍어 냄새를 맡았다. 그 다음으로 좀비의 허벅지 뼈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고개를 돌리곤 입을 열었다.
“나중에 사무소에 잠시 들러줄 수 있겠습니까?”
내가 이유를 묻지 않고 그리하겠다고 하자, 륭은 그제서야 발걸음을 돌렸다.
두 갈래로 나뉜 눈알 좀비에 구멍을 뚫어 허리의 쇠밧줄에 건 그가 묵묵히 모래폭풍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그리고.”
“?”
“바깥에 일이 생겼습니다. 나중에 누가 찾아오더라도 놀라지 말고 그들이 시키는대로 하십시오.”
륭은 몇 걸음 가지 않아 뒤를 돌더니, 의문스러운 마지막 말을 남기고 정말로 사라졌다.
—지이익.
사체를 질질 끄는 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
하루가 지났다.
그간 정양하던 왕초삼은 이제 말 정도는 할 수 있을만큼 기운을 차렸다. 개방 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오결개이니, 배워익혔을 심법도 범상치 않은 모양이었다.
깨어난 왕초삼은 어렵지 않게 저주에 걸린 현실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내가 손을 쓰지 않았다면 자신이 죽은 목숨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뭐 제까짓 놈이 억울했더라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지만.
“흐흐, 매질을 당할 각오는 했는데 설마하니 이렇게 당할줄은 몰랐다. 헌데 기왕이면 멋있게 그려줄 것이지, 그림 실력이 형편없군.”
나는 폭풍이 끝날때 까지는 시간이 널널했기에, 깨어난 왕초삼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약 반나절간 왕초삼으로부터 뜻밖의 정보들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내게 좋은 내용도 있었고 좋지 않은 내용도 있었다. 녀석은 허심탄회까지는 아니라도 대부분의 얘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우선 좋지 않은 소식은, 일주일 전쯤 1번가 총포상에서 의뢰를 받은 왕초삼이 나와 레나의 정보를 그쪽에 넘겼다고 고백했다.
이로써 나와 레나가 반 바이오 컴퍼니의 도망자인걸 친씨아 그 여자까지 알게 됐군. 어찌 되었건 개방에 돈까지 내가며 뒷조사를 했던걸 보면, 내게 보였던 관심은 나름 진심이었던듯 싶다.
사실 이것만 해도 큰 수확이었다.
“그래서, 뭐하는 여인인데 날 그리 좋아하나.”
“뭐 하는 여인이냐고?”
내가 묻자 왕초삼이 실실 웃었다. 놈은 그러다가 옆구리를 붙잡고는 심히 고통러운 얼굴로 바닥을 뒹굴었는데 아직 내상이 심해보였다.
끙끙대던 왕초삼은 곧 정신을 차리곤 대답했다.
“친씨아는 상선의 사람이다.”
화물 운송조합 《상선》
발두르 시티에서 가장 오래된 협동조합.
발두르 시티로 오고가는 공중 화물중 무려 30% 가량을 상선의 캐리어들이 책임진다.
세계의 육로는 좀비로 인해 사실상 막혔기에 공중 수송이 전부나 다름없는 상황인걸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규모다.
상선은 현재 약 100여 척의 화물 운송용 대형 캐리어를 운영하며 시티에서 시티로 화물을 운송하고 있다. 압도적인 운행 데이터로 7개 도시를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안전한 항로망까지 보유하고 있으니 다른 운송 기업들을 제치고 좋은 일감을 몰아 받는 것이다. 사실 정치권력자들과 커넥션이 있어서 그런 거지만, 어디까지나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상선은 엄밀히 따지자면 기업은 아니다.
그러나 화물운송업을 통해 얻는 막대한 자금을 뿌려가며 발두르 시티 전반에 큰 영향력을 끼쳐왔다. 오랜 세월 발두르에 뿌리를 내린 덕에 정치권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어 발두르 시티 안에서만큼은 여느 대기업 이상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어쩐지 하는 꼴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근데, 그치들의 관심은 당신의 일신상 전혀 좋을게 없어.”
왕초삼이 말하길.
상선의 친씨아는 그간 화물운송 캐리어로 들여오는 연방군의 무기들을 일부 빼돌려 무기 암거래를 해왔는데, 아무래도 발두르의 정치 권력자들이 그 뒤를 적당히 봐주며 상생하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일이 최근 탄로 나는 바람에, 시티의 정치인 몇의 입을 막아야 할 일이 생겼다.
즉, 정치인을 암살할 만한 수준의 히트맨이 필요해진 것.
총포상의 친씨아라는 여자는 마음껏 쓰고 탈 없이 버릴 수 있는 외부 암살자를 구하려던 거다.
와중에 내가 눈에 들었고 친씨아는 왕초삼을 부려 나와 레나가 당가로부터 쫓기는 중이라는 사실까지 알아냈다.
“흐흐, 그러니까 조만간에 못참고 부를거야. 별 해괴한 조건을 내걸어 살살 꼬드기려 들 텐데 어떻게든 엮이지 마. 어지간해선 반드시 죽을 테지. 당신도 나도.”
친씨아의 얘기를 끝으로 왕초삼은 더 이상 알려줄 것이 없다며 다시 운공에 들어갔다.
뜻밖의 비사를 듣게된 나는 일단, 복잡한 생각을 머리 속에서 지운 뒤에 가부좌를 틀고 바닥에 소담스레 놓인 보드카 병을 집어 들었다.
안에 담겨있는 내용물은 술이 아니었다.
바로 루돌프놈이 뜬 눈으로 밤을 새가며 에센스를 옮겨 담던 병이었는데, 어느새 보드카 한 병이 좀비의 에센스만으로 가득 찬 것이다.
출렁-
그러모아둔 에센스가 미세하게 출렁거렸다.
나는 지체없이 에센스를 목구멍에 들이부었다.
에센스의 맛이 시원한 콜라보다도 더 달게 느껴졌다.
*
그렇게 이틀이 더 지났다.
오늘은 문 바깥이 잠잠했다.
바로 모래폭풍이 끝나는 날이기에 그렇다.
장벽 밖에서 시체들을 몰고 와 슬럼가에 팽개쳐놓은 모래 폭풍은, 이틀이나 더 지나고 나서야 완전히 멎었다.
끼이익-
모래먼지에 파묻혀 삐걱대는 출입문을 밀자, 1년에 몇 번 보기 힘든 햇살이 내리쬔다.
바람이 더러운 대기를 휩쓸고 간 덕일까.
어두운 사방을 뒤덮었던 네온사인과 LED 조명 없이도 정크타운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꽤 신선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것은······.
좆같은 모래폭풍이 드디어 끝났는데도 밖으로 나와보는 주민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겠지.
따라나온 루돌프도 의아한 얼굴이었다.
그러자 사흘 전에 륭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 바깥에 일이 생겼습니다. 나중에 누가 찾아오더라도 놀라지 말고 그들이 시키는대로 하십시오. ]
그말대로 타운에 무언가 이상이 생긴게 분명했다.
그때였다.
철컥-
어디선가 군복을 갖춰 입은 무리가 나타나더니 슬쩍 총을 들이밀었다.
개중에 나이가 지긋한 남자가 앞으로 나와 신분증을 내밀었다. 신분증에 크게 박혀있는 연방군 마크. 그는 친근한 얼굴로 웃으며 동행을 종용했다.
“그럽시다.”
내가 순순히 손을 내밀자 곧바로 차가운 수갑이 채워졌다.
뒤이어 루돌프와 왕초삼, 레나까지 수갑을 채우자, 군복을 입은 이들의 태도가 약간 강압적으로 변했다.
아마 저들의 머릿속에선 이런 대화가 이뤄지고 있지 않을까.
—정크타운 17번가 감염의심자 네 명 발견. 격리 시설로 즉시 이송 조치하겠음.
나는 아직도 몸속에서 다 흡수되지 못한 채 발버둥 치는 에센스의 기운을 갈무리하며 그들을 따라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