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잘 지내보자
#26화.
푹! 푹!
확인 사살.
목 잃은 시체의 몸뚱이를 난도질한다.
정신나간 재생 능력을 갖추고 있으니, 터진 대가리는 버리고 몸통 속에서 새로운 머리를 만들어 낼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푸욱! 푸욱!
피륙을 찌르고 베어가자 몸뚱이의 거죽이 금세 너덜너덜해졌다. 약간의 움직임도 없는걸 보면 놈은 확실히 죽은 게 맞았다.
“이렇게 강한 놈들을 상대로 150년이라···.”
방금의 전투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전생에서 보았던 놈들과는 격이 다르다.
2회차의 그 악몽들이 졸지에 우습게 느껴질 정도.
고작 한 마리를 상대하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만약 왕초삼의 발경과 이것저것 쟁여둔 무기들이 없었다면 지금쯤 목이 날아간게 놈이 아닌 나였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괴물이 최소로 잡아 200억 마리.
이것보다 약한 개체도 많겠지만, 연방이 오래 버티진 못할 것이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일곱 거대 도시는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거라더니······
연방을 비롯한 시티의 권력자들이 합심해 좀비에 관한 정보들을 통제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겠군.
과거 지니에게 주입받은 지식을 비롯한, 여태껏 이곳의 좀비에 관해 내가 알고 있던 내용들은 현실과 꽤 동떨어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역시 이론으로 배운 것과 실전은 다르다.
하기야 좀비와 마주할 일이 없는 대부분의 시티 주민은 알 필요도 없는 내용이다. 괜히 절망적인 소리를 해서 혼란을 키울 필요는 없을 테니까.
순간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부모도 없이 태어난 뒤 배양 시설에서 시종으로 키워져 20년을 꾸역꾸역 버티다가 이제 탈출한지 겨우 한 달도 안 되었는데···
그야말로 힘이 쭉 빠지는 일이 아닌가.
푸욱! 푸욱!
나는 화풀이로 시체의 몸뚱이를 더욱 처참하게 도륙냈다. 온 사방에 혈액이 튀었다.
그러자 루돌프가 레나를 어딘가 숨겨둔 채로 어정쩡히 다가와 나를 말렸다.
“혀, 형님?”
“왜.”
“저 괴물새끼 이제 죽은 것 같은데요. 혹시 뭐 아픈 곳은 없으시죠? 하하.”
무언가를 숨기는 티가 역력한 얼굴이다.
숨통이 끊어진 시체에다 대고 계속 칼질을 하고 있으니, 내가 감염이라도 된 건 아닐까? 하는 일말의 의심이겠지.
그 한심한 의심에 어울려 주기로 했다.
“갑자기 사람 피가 마시고 싶구나. 그륵.”
“이, 이런 씨발!”
쿠당탕-
내가 대충 목 긁는 소리를 내자,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황급히 뒷걸음을 치는 루돌프놈.
기겁한 표정이 아주 꼴불견이었다.
사내란 자식이 저리 대가 약해서야.
촤악-
나는 칼에 묻은 피를 털며 말했다.
“돌프야. 넌 어째 날이 갈수록 한심해지는구나.”
녀석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속았다는 걸 눈치챈 듯, 반가운 말투로 되물었다.
“······아, 형님이십니까? 역시 형님 맞죠?”
“그륵그륵.”
“으허억!”
한심한 놈을 놀려주던 그때였다.
—콰앙!
루돌프와 내가 벌이는 소란에 기절에서 깨어난 듯한 왕초삼이 벼락같이 달려들어 좀비의 몸뚱이를 걷어찼다.
머리 잃은 몸뚱이가 주르륵 밀려난다.
아니, 이 거지놈은 또 왜 이래?
쿵···
밀린 몸뚱이가 칼바람에 나부끼던 문을 누르자, 구멍난 문 사이로 들어오던 바람의 위력이 줄어들었다.
짧은 고요가 내려앉았다.
산발의 왕초삼은 이내 다리를 덜덜 떨며 고개를 들었다.
“죽었···?”
바닥에 굴러다니는 좀비의 대가리를 뒤늦게서야 확인한 왕초삼은 그 자리에 황망히 주저앉더니 격한 기침을 했다.
기침할 때마다 검붉은 핏물이 배어나온다.
쿨럭- 쿨럭-
왕초삼의 상황은 몹시 좋지 않아보였다.
추측하건대, 심각한 수준의 내상을 입었으리라.
재수가 없으면 진기가 손상되었을 수도 있었다.
내가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급히 가부좌를 튼 왕초삼은 내상을 다스리기 위한 운공에 들어갔다.
하지만 운공으로 틀어막을 수 없을 테지.
그렇게 다 고칠 수 있으면 의사가 왜 있겠어.
분명히 오장육부가 크게 망가지고 상했을 테니, 수술 솜씨가 좋은 외과의를 찾아가는게 먼저다.
부웩-
아니나 다를까, 왕초삼은 몇 분 지나지 않아 검붉은 피를 한 바가지나 토해냈다. 덩어리진 피에 내장 조각이 군데군데 섞여나오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저대로 내버려 두면 얼마 못 가서 죽겠군.’
왕초삼놈도 그 사실을 아는지,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알만 뒤룩뒤룩 굴리고 있었다.
“괜찮니.”
내가 그리 묻자.
쿨럭-
피 섞인 기침을 연신 하며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낸 왕초삼이 힘겹게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곧, 철패 매듭 하나가 바닥에 툭 떨어진다.
방도들이라면 가지고 있는 개방의 표식.
이윽고 철패 매듭의 가장자리에서 뻗어 나온 홀로그램 불빛이 허공에 다섯 개의 매듭을 꼬아 올렸다.
“오결개였나?”
생각보다 힘이 있는 거지였군.
구결은 개방의 장, 용두방주.
팔결은 방주의 후계자나 원로.
칠결은 개방의 장로급.
그리고 육결과 오결은 원로나 장로의 직전제자나, 한 지역의 당주에게 주어지는 꽤 높은 급의 철패였다.
어째서 이런 슬럼가에 오결개가 있는지 모르겠군.
왕초삼은 의아할 정도로 높은 배분의 거지였다.
또한 배분 높은 거지답게 염치가 없었다.
“그래서, 네가 오결이니까 도와달라?”
“끅.”
“내가 치료 마법이라도 써주길 원하나? 네놈 덕에 다 뒈질 뻔했는데?”
“끅.”
왕초삼놈은 꺽꺽거리며 침음성을 흘렸다.
어찌 대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뜻.
입술 밑으로 검붉은 피가 연신 흘러나왔다.
“초삼아. 나도 싸우느라 많이 지쳤다. 지금 널 치료하려면 모가지를 걸어야해.”
부르르-
그 말을 들은 왕초삼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어떤 지푸라기라도 붙잡고픈 심정일 것이다.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그 건틀릿, 나한테 넘겨라.”
“······.”
그러자 왕초삼은 쥐죽은듯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버텨볼만 한가 보구나.”
“······.”
부르르르-
이제는 거의 자명종처럼 부들대는 왕초삼.
아마 지금 머릿속에서 주마등이 스쳐 지나가고 있지 않을까.
사실 건틀릿에는 욕심이 나지 않았다.
어차피 저걸 빼앗아 봐야 총포상에 헐값으로 팔아치우기밖에 더 하겠나.
대신 욕심이 나는것은 따로 있었다.
나는 결단을 내렸다.
스르릉-
“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살려주마. 이제부터 가만히 있어라.”
“······?”
움직이지 못하는 왕초삼의 가슴팍에 도를 들이댄다.
이윽고 칼끝을 이용해 놈의 살갗을 그어갔다. 칼끝이 피부에 옅은 상처를 내며 만들어 내는 것은 복잡한 문양의 상처였다.
바로 로티스의 등판에 있던 문신과 비슷한.
부르르-
부르르-
왕초삼이 몸을 사시나무 떨듯 계속 떨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벌이려는지 대충은 짐작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놈은 차마 자리를 털고 일어서지 못했다. 그랬다간 무조건 죽을 테니까.
“초삼아. 거의 다 되어가고 있다.”
마나 문신을 매개로 거는 저주 마법은 고도의 지식이 필요하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고위 마법사만 사용할 수 있는건 아니다.
고농도 마나액의 효과가 남아있는 지금의 나라면 제한적인 저주 마법 정도는 시도해볼 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내 마력 수준으로 왕초삼같은 고수의 육신에 저주를 거는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의 놈은 숨이 끊어지기 직전.
때마침, 약한 마력에도 항거할 수 없는 최상의 상태라는 뜻이다.
정의롭고 선한 사내인 나로서는 이런 악독한 마법을 즐겨 사용하지 않았지만, 오늘만큼은 독한 사내가 되어보기로 했다.
사아아-
내 회로를 휘돌던 마력이 왕초삼의 살갗에 그린 상처를 타고 흘러 들어가 심장에 자리 잡았다.
『 느림의 미학 』
제국이 첩자들에게 사용하던 육체 저주.
정해진 기간 안에 마력을 보충해주지 않으면 심장이 조금씩 느리게 뛰고, 결국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멎게된다. 제국의 첩자들은 이 저주 때문에 제국을 배신하지 못했다.
강대한 마법사들은 한 번의 마력을 주입한 것으로 몇 년의 기간을 유예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내 마력으로는 일주일이 한계로군.
말이 저주지, 당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거다.
뷔에탕의 그것처럼 정신까지 갉아먹는 마법은 아니니까.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오는거 어렵지 않지?”
“······.”
“앞으로 잘 지내보자.”
“······.”
왕초삼은 이내 체념한 얼굴이 되었다.
이제 초삼이의 소중한 목숨을 담보로 잡아두었으니, 담보의 가치를 유지해야겠지.
나는 왕초삼의 등 뒤로 가서 앉았다.
툭- 툭-
혈도 몇 개를 짚고 등에 손을 가져갔다.
곧바로 내기를 불어넣어 안쪽의 상황을 확인했다. 놈은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으나 밀고 들어오는 기운에 반항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래도 저래도 죽은 목숨이라면, 나같이 정직한 사내에게 목숨을 맡겨보는 것도 꽤 좋은 경험 아니겠나.
내상은 예상대로 심각했다. 내장이 심히 망가지고 기혈이 죄다 뒤틀렸기에 자력으로 뭔가를 시도하기에는 많이 벅찼겠지.
“초삼아. 버텨라.”
길게 말을 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곧바로 내력을 움직여 왕초삼의 틀어진 기혈을 바로잡기 시작했다.
잠시 뒤.
왕초삼의 호흡이 터져 나오는 걸 느끼며 손을 뗐다. 놈은 아직도 어딘가 버거워 보였다. 그러나 기침은 멈추었고 검붉은 피도 더 이상 토하지 않았다.
폭풍이 끝나는 대로 의사를 찾아가면 살 수 있을것이다.
이제 문제는 내 몸 상태다.
“···후.”
심장 부근이 불덩이처럼 뜨겁고 뇌가 익어버릴 것만 같았다. 고농도 마나액을 두 개나 꽂아가며 과한 마법을 사용한 주제에, 없는 내력까지 짜내어 운용하니 육체가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슬슬 발가락 끝부터 타오르는듯한 열통이 엄습했다.
분수에 맞지 않는 힘을 끌어다 사용했으니, 필히 후폭풍을 견뎌내야 했다.
촤르르륵-
나는 미니바 냉동고에 있는 온더락용 얼음을 전부 긁어모은 나는, 옷 안쪽에다 얼음을 가득 붓고는 나머지 얼음들을 와작와작 씹어 삼켰다.
그리고 가장 도수가 높은 보드카를 바에서 꺼내어 머리에 콸콸 부었다. 등신같아 보이지만 어떻게든 끓어오르는 열을 낮추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곧 얼음의 차가운 냉기가 피부와 호흡을 통해 스며들자 약간 숨 쉬기가 편해졌다.
“······.”
그렇게 물에 젖은 생쥐꼴이 되어 뒹굴고 있는 좀비의 사체를 구경하고 있자니, 오만가지 기억과 상념들이 한데 뒤섞였다.
그리도 두려운 존재였던 놈을 잡아 죽였다.
지난 회차에서 수없이 해왔던 망상처럼.
내가 쌓아온 힘으로.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거나 날 괴롭히던 트라우마가 한순간에 사라졌다거나 하는 느낌은 없었다.
휘이잉-
나는 어느정도 열을 내린 뒤, 좀비의 시체를 번쩍 들고 2층으로 올라왔다. 몸뚱이를 휙 던져놓고, 놈이 부순 창문에 철판을 덧대 닫아걸었다.
격렬한 전투의 여파로 곳곳이 박살난 2층.
레나의 증권거래용 디스플레이 화면들이 일제히 켜지며 피칠갑된 실내를 밝힌다.
나는 그곳에서 조용히 가부좌를 틀었다.
그 뒤.
두 시간이 지나 무거워진 몸으로 겨우 일어섰다.
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했는데도 전신의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 당장이라도 몸이 찢어질듯한 통증이 뇌를 거세게 두드린다.
“······.”
마나 회로는 차가웠고, 단전도 허전했다.
앞으로 며칠간은 힘도 못 쓰고 개고생하겠군.
“형님!”
“레, 레반! 괜찮은 거야?”
1층으로 내려오니 루돌프와 레나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옆을 보니 왕초삼은 아직도 식은땀을 흘리며 내상을 다스리는 중이었고, 술집 내의 풍경은 가부좌를 틀기 전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괜찮다.”
어디에나 핏자국이 낭자했고.
모든 벽면은 처참하게 패어 있었다.
2층 바닥이자 1층의 천장은 곳곳이 폭삭 무너져 내렸고, 아직 위태위태하게 버티고 있는 천장도 언제 내려앉을지 몰랐다. 이미 건물의 축 자체가 틀어졌을 테니, 수리로 고쳐볼 만한 단계는 지났을 것이다.
구멍난 2층 바닥 사이로는 아까 올려놓았던 좀비의 몸뚱이에서 모인 혈액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누군가 피가 떨어지는 곳에 양동이 같은걸 가져다 놓았다. 바에서 얼음을 모아둘 때 쓰는 바스켓이었다.
그런데.
똑···
“?”
별안간 혈액 사이로 미끄러지는 희끄무레한 액체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는 말짱한 눈을 몇 번 끔뻑였다.
혈액의 붉은 색감과는 조금 다른 것.
체액과 섞이지 않고 분리된 액체가 1층 바닥으로 떨어지더니, 커다란 양동이를 절반쯤 채운 혈액 위에 수은처럼 망울져 맺힌다.
똑···똑···똑···
바보가 아닌 이상 알아채야 했다.
불과 얼마 전에 잔뜩 들이켠 바로 그 에센스와 비슷했으니까.
조금 다른걸 꼽자면, 꿀꿀이 죽마냥 혼탁했던 찌꺼기급의 에센스보다 월등히 맑고 깨끗하다는 것.
그리고 양이 꽤 되어 보인다는 것.
“······.”
나는 그 두가지 다른 점을 확인하곤, 소리라도 지르며 한바탕 웃고 싶었다.
하지만 마나액 후유증으로 뇌가 울려 웃지는 못했다.
그저 흡족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