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너 이빨 되게 많다
#25화.
뚝···
입에서 뚝뚝 떨어지는 체액.
거지를 파리잡듯 후려쳐 날려버린 놈은 침을 질질 흘려대며 고개를 까딱거릴 뿐, 내게 덤벼들지 않았다.
육신을 재생할 시간이 필요한 건가.
혹은 또 다른 힘을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는 건가.
나도 당장은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전생에서도 좀비는 수없이 봤지만, 솔직히 숨어다니기 바빴지 칼을 꼬나쥔 채로 이리 마주해본 적은 없었으니까.
‘쯧, 그러게 멀쩡한 난간을 왜 박살내서는.’
층계 난간을 무너뜨린 것이 저 거지놈에게 큰 독으로 돌아갔다. 비좁은 층계에 끼어 운신이 불편했던 놈을 도리어 편히 도약할 수 있도록 도와준 꼴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상반신의 절반이 뜯겨나간 상태에서 저런 움직임을 보이는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분명 건틀릿이 뿜어낸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전방을 통째로 갈아버리는 그 파괴력을 생각하면, 일전의 자신만만한 태도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개방의 왕초삼이라 했던가? 저런 건틀릿을 쓰는걸 보면 절대 급이 낮은 방도는 아닐텐데.’
다만, 그런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내고도 곧바로 움직이리라곤 상상조차 못 했겠지. 인간이라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기행이다.
시체는 가만히 있어도 세상의 기(氣)가 저절로 몸에 쌓여 강해진다 했다. 그렇다면 저 괴물놈은 과연 몇 년이나 살았을까.
30년? 40년?
무슨 오래 묵힐수록 좋은 뱀술도 아니고.
꾸르륵—
살이 뽀얗게 차오르는 저 꼴을 보니 2회차 기억 속의 한 좀비가 떠오른다. 절단한 곳을 불이나 강산으로 지져버리지 않는 이상, 계속 신체를 재생하는 놈이었다.
좀비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많았고 가진 능력은 다양했다. 그것이 좀비라는 존재가 탄생한지 20년밖에 안 되었던 세계였다.
그러니 이 세계의 좀비들은 더욱 독하면 독했지, 절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 그륵.
그렇기에 매사 침착하고 신중하기로 유명한 사내인 나는, 저 괴물놈이 또 어떤 개같은 능력을 가졌는지 근심걱정이 되었다.
선뜻 달려들어 선공을 취하기가 심히 꺼려졌다.
하지만.
왕초삼이 애써 뜯어놓은 상반신을 다 회복할 때까지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
내가 결단을 내리고 움직이려던 그때였다.
사사사삭.
“?”
나는 실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고개를 무섭게 끄덕이던 놈이 돌연 몸을 돌리곤 무너진 층계를 풀쩍 뛰어올라 2층으로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 일련의 행동이 얼마나 조용하고 신속했던지 발소리도 제대로 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노림수는 따로 없었던 모양이다.
2층으로 올라가 거꾸로 머리를 빼놓은 놈은, 동향 파악이라도 하듯 나를 뚫어져라 주시하다가 눈을 숨겼다. 귀신같이 긴 산발의 머리칼이 1층으로 치렁하게 내려와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스르륵-
바닥을 스치며 딸려 올라가는 놈의 머리카락.
이제 놈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으나 흉흉한 기척은 그대로 느껴진다. 다시 창문 밖으로 도망치기 위해 올라간건 아니다. 아직 머리 위에 숨어있다는 얘기인데···
상처를 회복하기 전에 잡으려면 놈이 눈을 부릅뜨고 기다릴 2층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아주 가지가지 하는군.
생김새가 저리 좆같아서 그렇지, 아마 어지간한 어린아이보다 똑똑할 것이다.
놈이 2층으로 도망친 뒤, 술집 내부는 잠시간의 소강상태를 맞이했다.
“형님, 바로 지금입니다!”
그때, 빼액 고함을 지르는 루돌프놈.
“?”
“지, 지금이라도 도망치면 되지 않겠습니까? 저거 또 언제 내려올지 모르잖아요. 딱 봐도 따라 올라갔다간 존나게 위험할 것같고···그러니까 그냥 나가서 다른 곳을 찾아보죠! 뭐든 여기보단 나을겁니다!”
좀비가 줄줄 흘려대는 흉험한 기운을 버티지 못하고 공포에 잠식되어, 그냥 되는대로 뱉는 한심한 소리였다.
저 놈이 그러면 그렇지. 괜히 귀 기울였군.
‘어차피 1층은 저놈이 날뛰기에 비좁았다.’
레나와 루돌프, 심지어 왕초삼까지 있으니 1층에서 전투가 벌어졌다면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을 터.
차라리 잘 되었다고 판단한 내가 안주머니에 손을 가져갔다.
친씨아가 생색을 내며 내어주었던 무기.
연방군에 납품되는 대 시체용 세열수류탄이 품속에서 그 든든한 자태를 드러낸다.
딸칵-
경쾌한 소리와 함께 클립과 핀이 뽑혀 나오고.
휘익!
몇초 뒤, 깔끔한 포물선을 그린 수류탄이 층계 벽에 튕겨 2층으로 올라갔다. 시야에서 자취를 감춘 수류탄이 바닥을 또르르 굴러가는 소리만 들려왔다.
“돌프야.”
“예, 예! 지금 도망치면 되는 겁니까?”
“호 안에 수류탄.”
“······?”
그 말과 거의 동시에.
꽈과광-!
고막을 먹먹하게 때려 울리는 폭음.
툭···툭···
수류탄 폭발에 일부분 무너져내린 천장 사이로 놈의 것으로 추정되는 혈액이 배어 나왔다. 아무래도 수류탄이 제대로 적중한 모양이었다.
탓!
즉시 신형을 쏘아내며 층계를 뛰어올랐다.
고개를 2층 위로 내밀자, 전신에 쇠구슬만한 크기의 구멍이 송송 뚫린 좀비놈이 밀려오는 격통에 목구멍을 한껏 열고 소리죽인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
수많은 쇠구슬 구멍에서는 새파란 불꽃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저 상처들이 다시 재생될 일은 없을것 같았다. 뽀얗게 재생되던 상반신마저 불타오르며 재생을 멈추었다.
역시, 시체 사냥꾼들이 선호하는 화기답군.
피륙 곳곳에서 새파랗게 타오르는 불꽃이 이내 꺼지자, 분노로 눈이 홰까닥 돌아간 좀비의 팔이 순간 두텁게 부풀어 오르는 것이 보였다.
조금 전 왕초삼을 후려쳤던 그 공격.
쐐액-
채찍처럼 휘어지는 긴 팔의 궤적에 허리를 한계까지 젖힌 나는, 휘어졌던 허리의 탄성을 이용해 바닥을 박찼다.
단전에서부터 기맥을 타고 용솟음치는 내력.
‘나머지 오른팔도 마저 잘라낸다.’
스아악.
거미줄 같은 혈관이 울룩불룩 솟아있는 팔이 귓볼을 아슬하게 스쳐 지나가고, 그 옆으로 압축도가 느릿하게 떨어진다. 루돌프가 휘두른대도 이것보단 재빠를 것이었다.
하지만.
서걱!
총탄도 막아냈던 시체의 질긴 팔이 느릿느릿한 압축도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썩둑- 잘려 나간다.
- 끼엑!? 그에엑!
설마 잘릴 줄 몰랐는지 당황한 기색이다.
겉보기에는 거북이처럼 느려 보여도, 모든 공력을 전부 쏟아부어 내려친 참격이었다. 강철이라도 두부처럼 잘라낼 자신이 있었다.
촤아악-
갓잡은 생선처럼 펄떡대며 주변에 피를 흩뿌리는 잘린 팔. 그 징그러운 신체를 대강 걷어찬 내가 울부짖는 놈을 향해 다시금 쇄도했다.
푸욱!
순식간에 비어있는 옆구리쪽으로 파고 들어가 허벅다리에 압축도를 쑤셔 박는다. 팽팽한 근육이 잘려 나가는 느낌이 손에 생생히 느껴졌다.
이제 도를 뽑아 회수하려는데, 칼 끝이 어딘가에 덜컥 걸렸다. 아무리 힘을 줘도 뽑혀 나올 기색이 아니었다.
아마도 놈의 질긴 근육이 도를 붙잡고 있는듯 싶었다.
‘괴물은 괴물이군.’
당장은 회수가 불가능 하다고 판단한 내가 칼을 놓고 놈의 등 뒤에 달라붙어 뱀처럼 목을 휘감았다. 여차하면 힘을 주어 이대로 목뼈를 부러뜨려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
뚜두둑-
놈의 목이 비정상적인 각도로 회전하고.
뒤통수가 있어야 할 곳에 얼굴이 생겨난다.
비웃는듯 실처럼 가늘어진 눈알이 목을 조르려던 나를 노려본다. 놈이 입을 벌리자 진득한 체액이 주욱 늘어지며 날카로운 이빨들이 드러난다. 당장이라도 내 얼굴을 뜯어먹을 기세였다.
“우와, 너 이빨 되게 많다.”
그때, 밑으로 팔을 뻗어 허벅지에 박혀있던 압축도를 회수한 내가 벼락처럼 팔을 뿌렸다.
쿠직.
놈의 어두운 주둥이 속으로 빨려들어간 칼이 뒤통수를 뚫고 나온다.
- 그륵.
“!?”
헌데도 놈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였다.
칼날이 입을 지나 뒤통수를 관통했음에도 멀쩡하다. 죽지않는 시체라는 말이 정확히 들어맞았다.
뿌직-
무언가 거죽을 뚫고 나오는 소리.
옆을 보자, 날아갔던 왼쪽 상반신에서 팔이 새로 돋아나고 있었다. 불로 지져도 재생시킬 수 있었단 말인가?
나는 이제 더 이상 놀라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놈은 방금 갓 재생시킨 팔을 입 속에 넣었다. 박혀있는 도를 뽑아내기 위한 동작이었는데, 이는 내게 천금 같은 기회였다.
스륵.
쥐고 있던 도병을 그냥 놓아버렸다.
목을 조르던 반대편 팔까지 풀곤, 놈의 몸뚱이에서 훌쩍 뛰어내리며 총을 뽑았다.
“그래. 어디 열심히 한번 뽑아봐라.”
쿠직-
테크리볼버의 총구를 도를 뽑아내려 몸부림치는 놈의 상처에 쑤셔박는다. 나는 그 상태에서 방아쇠를 마구 당겨댔다. 수류탄의 파편이 뚫어둔 상처를 다시 한번 비집고 들어가는 총탄. 팔로 압축도를 빼 보려던 놈이 하늘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러댔다.
- 끄에에에엑!
결국 압축도를 빼는 것을 포기한 놈이 고통에 허리를 숙였다. 때를 노린 내 무릎이 압축도에 꿰어져 있는 놈의 얼굴로 솟구쳤다.
으직!
뒤통수를 안테나 처럼 뚫고 올라오는 칼.
이젠 손잡이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 케에에엑! 키헥!
혈액과 체액이 사방으로 비산하고, 좀비의 고개가 뒤쪽으로 홱 젖혀진다. 부러진 이빨 조각들이 반쯤 으스러진 턱 밖으로 마구 뛰쳐나온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래도 쓰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
“······.”
이 끔찍하리만치 징그러운 생명력은, 놀라움을 넘어선 경탄을 자아내게 할 정도였다.
이제 확실하게 목숨을 끊어 놓으려면 나도 위험을 감수해야할 듯 싶었다. 품에 지니고 있던 고농도 마나액 주입기 두 개를 꺼내 허벅지에 박았다.
후우우우-
단숨에 불타는듯 달아오르는 심장부근.
두 개의 마나 회로를 이용해 한계까지 마나입자를 빨아들인다음 고속으로 회전시킨다.
에센스까지 잘 챙겨 복용한 몸.
농도 높은 마나액도 박았으니 한 번쯤은 어찌어찌 버텨주겠지.
이윽고, 한계까지 응축된 마력이 내 두 팔에 터질 듯 스며들었다.
- 케에에엑!
끔찍한 괴성에 이은 육탄 돌진.
좀비놈은 이젠 머리를 관통한 압축도를 뽑아내길 포기했는지, 입에 칼이 쑤셔 박힌채로 나를 향해 짓쳐들었다.
허나.
찰나간 놈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 게겍!
폭발적인 속도로 내 옆을 돌파해 다시 1층으로 내려가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가볍게 손을 뻗었다.
꽈득.
그러자 도망치던 놈의 긴 머리칼이 손바닥에 휘어 잡혀 들어왔다. 내 양 팔에서 일렁거리는 마력이 자석처럼 놈을 끌어 당기고 있었다.
나는 버둥거리며 머리카락을 끊고 도망치려는 놈의 귓가에 속삭였다.
— 필살기를 쓰는데 도망치는 법이 어디있니.
이윽고 직선을 그리는 마나의 궤적.
폭력적인 주먹질이 시체의 뒤통수로 떨어진다. 주먹에 가득 응축된 마나가 폭발하며 질긴 피륙을 녹여버린다.
쾅! 콰득! 콰앙!
강렬한 폭음이 연신 터져 나왔다.
머리칼을 단단히 잡힌 채 목을 거꾸로 돌려가며 발광하던 놈의 머리뼈가 부러지고, 눈알은 터져 멀어버린다.
어느새 얼굴이 걸레짝이 되어버린 놈.
찌걱!
놈이 정신이 없을 때를 노려 출수한 내가 입천장에 박혀있던 압축도를 무 뽑듯 뽑아냈다. 혈액과 무엇인지 모를 진액이 도신을 타고 줄줄 흘러나왔다.
——!!!
귀청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 끔찍한 괴성.
놈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발악하며 어떻게든 1층으로 기어 내려가려고 수를 썼다. 두 허벅지를 풍선처럼 부풀린 놈이 높이 뛰어 올랐다가 바닥을 밟자, 그간 약해질 대로 약해진 2층 바닥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뚜둑!
그 눈물겨운 노력에 감복한 놈의 머리카락마저 끊어진다.
- 궤에엑!
그렇게 원하던 1층으로 떨어지는데 성공한 놈은 입을 찢어져라 벌리더니 토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놈의 목이 파도처럼 꿀렁이고, 입 속에서 무언가 시커먼 액체가 차오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시커먼 액체가 세상 바깥을 구경하는 일은 없었다.
놈이 1층으로 떨어졌을 때는 이미 나의 도가 호선을 그려낸 뒤였으니까.
그 두꺼운 목에 얇은 혈선이 생겨나더니, 머리통이 몸과 분리되며 비스듬히 흘러내렸고.
쿵!
수박통처럼 커다란 좀비의 대가리가 바닥을 데구르르 굴러갔다.
콰직-!
나는 놈의 머리를 밟아 부수며 허탈하게 웃었다.
“하.”
과거 지니에게 주입받은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차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언데드의 개체수는 최소 200억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어. 〕
이런 놈들이 장벽 밖에 200억 마리나 더 있다고?
씨발.
“여긴 대체 150년을 어떻게 버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