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수완좋은 거지
#24화.
개방(丐幫).
모든 넷을 통틀어 가장 점유율이 높은 포털 사이트 《백만방도》의 주인.
하루에도 수억 명의 이용자가 사용하는 넷 포털인 ‘백만방도’ 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기업의 광고를 포털 메인에 노출시킴으로써 크레딧을 쓸어담고 있다.
과거 개방은 검색 엔진이었던 백만방도를 중심으로 동영상 서비스, 시티 방송국 같은 플랫폼 사업에도 진출했고 그들간의 촘촘하고 유기적인 상호 네트워크를 구축해두었다. 결국 콧대 높은 언론과 미디어사의 새로운 소식들도 백만방도 사이트의 뉴스란을 통해 먼저 알려지기에 이르렀다.
개방은 세계적으로 크게 인정받는 정보력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는 포털 이용자들이 저도 모르게 물어오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 덕분이었다. 백만방도에 돌멩이처럼 굴러다니는 데이터들을 수집, 분석, 체계화했고 그것은 곧 거대한 하나의 데이터베이스이자 개방만이 취급할 수 있는 정보 자산이 되었다.
개방이 모르는 정보는 세상에 없다! 라는 소문이 정설처럼 나도는 이유였다.
허나 개방은 지금도 7개 거대 도시의 길바닥마다 방도들을 파견해 현장에서부터 정보를 수집해 올리고 있었다.
먼 과거에서나 쓸 법한 방식이었으나, 이는 전대로부터 내려오던 절대적 불문율이었다.
“거지로 밥 빌어먹고 살려면 발로 뛰어라! 흐흐, 빌어먹을.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꼬질한 부랑자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는 본래 알 헤임달 시티의 한 지역을 맡아 관리하는 당주였으나 어떠한 일로 인해 총타(總舵)원로들의 미움을 샀고, 그 바람에 정크타운으로 좌천되어 온 개방의 오결개(五結丐) 왕초삼이었다.
그는 6개월 전, 이곳에 도착한 뒤부터 동네 꼬마들에게 두들겨 맞으며 시간이나 때우다가, 가끔 사설의뢰나 받아 크레딧을 챙기는 신세였다.
그냥 이렇게 대충 살다가 언젠가는 알 헤임달의 길거리로 돌아가 엘프나 신나게 희롱하는 것이 왕초삼의 유일한 바람이었다.
“쪽박깨질 동네같으니. 폭풍이 또 와?”
그리고 몸 성히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번 모래폭풍을 견딜만한 은신처를 찾아야 했다.
두 번째로 발두르의 모래폭풍을 맞는 왕초삼이 은신처로 택한 장소는, 이번에도 타운 지하에 있는 오래된 지하수로였다. 원래의 역할은 빗물 통로지만,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은 탓에 오물로 버무려진 시궁창이 되었다.
아무리 거지라도 이런 곳에 몸을 숨기는 것은 내키지 않았으나, 길에서 빌어먹던 걸개가 갑자기 다른 이에게 크레딧을 쥐어주며 몸을 의탁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지극히 더럽고 깜깜하며 냄새가 지독한 탓에, 도망친 채무자를 잡으러온 도박장의 업자들도 감히 들어갈 엄두를 못내는 수로.
왕초삼은 짬이 찬 거지답게 그곳에 당당히 자리를 깔고 몰아칠 폭풍이 조용히 지나가길 기다렸다.
모래폭풍이 심히 불던 어느날.
대(大)자로 누워 잠에든 왕초삼은 얼굴을 밟고 지나가는 시궁쥐 무리에 부스스 눈을 떴다.
“아흠.”
침을 질질 흘리며 일어난 그는 배를 북북 긁었다. 몸에 들러붙어 있던 벌레들이 황급히 떨어져 나간다.
그런데.
휘이이잉-
일어나보니, 고요해야 할 수로의 반대편에서 세찬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통로를 타고온 텁텁한 모래 알갱이가 얼굴을 때렸다.
“퉷!”
왕초삼이 입에 들어간 모래를 뱉으며 부스스 일어났다. 모래폭풍이 더 심해지기 전에, 어디선가 열렸을 수로 뚜껑을 닫으러갈 생각이었다.
한데 어디선가 갑자기 철벅! 철벅! 하는 걸음 소리가 수로를 타고 메아리쳐 울리는 것이 아닌가.
‘수로에 사람이 있었나?’
요상한 느낌에 안력을 돋운 왕초삼은 어두운 수로의 건너편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그리고 그런 왕초삼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이곳에 있어선 안 될 존재들이었다.
“······시, 시체? 이런!”
피륙위로 올라온 혈관과 부러진 뼈가 제정상인 인간의 그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형체치고는 너무 뒤틀려있는 것.
본능 깊은 곳에서부터 불쾌함이 치고 올라와 왕초삼의 목젖을 거세게 때렸다.
철벅. 철벅. 철벅.
목이 뒤틀린 시체가 네발로 기어 온다. 놈의 입에선 침과 뒤섞인 혈액이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저 네발 달린 놈이 아니었다.
네발 시체의 뒤쪽에서 개를 산책시키듯 여유로이 걸어오는 또다른 시체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놈이 줄줄 흘리는 흉포한 살기가 길바닥 생활로 단련된 피부를 거세게 난도질했다.
‘이거 뭔가 잘못되었구나.’
어찌 저런 괴물이 여기에 있단 말인가.
섬뜩한 소름이 왕초삼의 등줄기를 내달렸다.
“흐으.”
겨우겨우 바닥에 붙은 발을 뗀 왕초삼. 걸개의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팽개친 그가 수로의 반대편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등 뒤로 뼈 뒤틀리는 소리와 철벅대는 발소리가 빠르게 들려왔다.
철퍽철퍽-!
마음속에서 울컥울컥 차오르는 생존본능.
쾅-!
무쇠로 된 수로 뚜껑을 쳐부수고 길에 올라선 왕초삼은 냅다 경공까지 사용해가며 재빨리 수로와 멀어졌다. 타운 길거리에는 세찬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오랜 길바닥 생활로 다져진 왕초삼도 버티기 힘들 만큼의 세찬 폭풍. 구름다리를 이루던 철근과 목재들이 위협적으로 휘날린다.
이런 좌천지에서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다고 다짐한 왕초삼의 머리가 팽팽 굴러갔다.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8번가의 사무소와 1번가 총포상이었다. 정크타운에서 압도적으로 강한 무력과 세를 보유했으며 자신과도 안면이 있는 이들.
하지만 지금 있는 15번가에서 그곳까지는 거리가 너무도 멀었다.
그렇다면······.
가까운 17번가에 있는 그 사내뿐인가.
“젠장!”
어차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였다.
왕초삼은 생각을 마침과 동시에 전력으로 경공을 펼쳤다.
* * *
“진심으로 미안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같이 살 궁리를 해봅시다.”
목숨을 건 왕초삼의 도박은 적중했다.
그는 누런 이를 보이며 멋쩍게 웃었다.
다만 아주 커다란 문제가 남아있었다.
콰직-
수로에서 마주했던 그 괴물놈이 기어코 여기까지 따라온 것이다.
냄새를 쫓아왔을 시체는, 손가락 하나로 철판을 덧댄 문을 뚫어버린것도 모자라 두꺼운 게임기까지 단박에 뚫어버렸다. 무슨 탄지공을 익힌 것도 아닐진대, 실로 끔찍하리만치 강한 완력이었다.
“살아 보자니까 왜 대답이 없어! 도와주지 않을 거요?”
답답했던 왕초삼이 결국 역정을 냈다.
매일 두들겨 맞는게 일상인 거지라지만, 그래도 오결개에 당주까지 했던 몸. 혼자라면 몰라도 저 시체놈의 시선을 끌어주는 이가 있다면 수를 낼 수 있었다. 혹시 저자가 겁을 먹어 도와주지 않기라도 하는 날에는 다같이 죽은 목숨이었다.
게임기가 꿰뚫리는 광경을 보자마자 술집 안의 모든 가구를 끌어와 출입문을 틀어막은 레반이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쓸데없는 걸 묻는군. 그럼 내가 너랑 같이 뒈지려고 문을 열었겠냐.”
“하하하!”
왕초삼은 그 삐뚜름한 대답이 기꺼워 박장대소했다. 저번부터 보았지만, 어지간해선 보기 힘든 사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도 아니고 목숨을 구걸하는데 성공했으니, 세상천지에 나보다 수완좋은 거지는 이제 없구만.”
그 호탕한 대답에 레반이 피식 웃었다.
원래 같으면 당장 손발톱을 뽑은 뒤 죽여도 모자란 놈이지만, 지금은 참아야했다. 저 밖에 어찌 생겼는지도 모를 괴물이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콰직-!
또 한번 두꺼운 손가락이 문과 가구들을 꿰뚫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뽑혀 나온 레반의 압축도가 그 손가락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서걱-
놈의 손가락 끝 한 치가 잘려나간다.
콰앙-! 콰앙-!
그러자 놈이 격노해 문과 건물 외벽을 마구 때려댔다. 문이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덜컹거렸지만 결코 열리는 일은 없었다.
바깥의 존재는, 몇 분이 지나서야 드디어 발광을 멈추었고.
—쨍그랑. 콰지직.
“!!”
2층 창문을 출입구로 택하는 기염을 토했다.
모두가 1층 출입구에 신경을 쏟는 사이, 외벽을 때려 소동을 부리면서 1층이 아닌 다른 진입로를 찾고있었던 것이다.
“““······.”””
숨 쉬는 소리도 없이 고요해진 술집 내부.
새로운 손님의 출입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휴머노이드 바텐더가 고저 없는 음성으로 술을 권유했다.
- 오늘같이 정열적인 날씨에는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 색 칵테일, 블러디 메리는 어떨까요? 갈아 넣을 토마토즙은 진작에 다 떨어졌지만요.
끼리릭.
바텐더의 몸이 정 반대편으로 돌아가고.
감정없는 기계의 시선이 계단을 향한다.
뒤이어.
철벅-
철벅-
쑤욱!
무언가의 머리가 계단 난간 위로 쑥 튀어나왔다.
눈만 내놓은 채로 밑을 내려보는 이형의 존재. 섬뜩하게 생긴 눈과 커다란 머리통이 모두의 시선을 붙잡았다.
“······.”
- 키힛.
과거에는 인간이었을, 허나 현재는 인간이 아닌 존재.
쑤욱. 쑤욱.
놈은 마치 장난치는 어린애처럼 혹은, 나약한 먹잇감들을 농락이라도 하듯이 난간 위로 커다란 머리를 연신 빼꼼 댔다.
상대를 마치 장난감으로 보는 듯한 행동. 어차피 도망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실로 여유로운 태도였다.
주둥이에 흥건히 고인 체액이 계단 밑으로 뚝뚝 떨어진다. 그륵그륵 가래끓는 소리가 짐승의 울음처럼 울려퍼졌다.
- 끼힉.
섬찟한 살기가 농도짙게 내리깔렸다.
레반은 고개를 들어 놈을 마주했다.
머릿속 깊은 곳에 꼭꼭 처박혀있던, 총탄에 꿰뚫려도 쓰러지지 않던 좀비의 얼굴을 몇 회차의 생이 지나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레반은 놈의 첫인상을 조용히 뇌까렸다.
“정말 못생겼군.”
“어, 어떡합니까 형님?”
밴스는 덜덜 떨면서도 기절하기 직전의 레나를 이끌고 벽에 바짝 붙었다. 위험한 상황임을 인식한 전뇌 컨트롤 칩이 행동을 시작했다는 뜻이다.
- 겍.
옷가지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
피부에 울긋불긋 올라온 혈관.
사람보다 크고 과할 정도로 뒤틀린 상체골격.
절반쯤 거꾸로 돌아간 목과 당장이라도 터질듯이 두꺼운 팔.
우직- 우지직-
머리를 뒤로 굽힌 시체가 그 커다란 몸체로 비좁은 층계를 꾸역꾸역 통과해 내려오자, 온 몸이 딱딱하게 굳은 루돌프가 창백한 얼굴로 소곤댔다.
“혀, 형님. 우리 토마토즙 되는 거 아닙니까?”
“토마토즙이 될지도 모르겠군. 물론 너 혼자만.”
탕-!
레반은 그 말과 함께 테크리볼버를 뽑아 격발했다. 시체가 얼굴을 보호하며 긴 팔을 앞으로 내밀었는데, 피격당한 시체의 팔뚝이 순간 휙 젖혀졌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질긴 팔을 꿰뚫지 못한 탄알들이 이내 바닥으로 팅팅 떨어지고, 하릴없는 먹잇감의 발악을 확인한 시체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 끼힉!
그 광경을 목도한 레반이 인상을 찌푸렸다.
‘총이 안 통해?’
분명 4레벨급 이하의 시체는 일반적인 화기로도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대체 저 놈은······
“이 걸개가 한 방 먹여줄 테니, 시선만 끌어주쇼.”
왕초삼의 입에서 대뜸 나온 말이었다.
“?”
사뭇 자신있는 얼굴의 왕초삼이 바닥을 강하게 밟았다.
철컥-
왕초삼의 팔에서 기계가 맞물리는 소리가 나자, 레반이 왕초삼의 행색을 이제야 자세히 살폈다.
‘오른쪽 어깨부터 사람의 것이 아니다. 사이버웨어치고는 투박하고, 생김새를 보아하니 가스 터빈 건틀릿인가? 평범한 개방도 따위가 쓰기에 과한 물건일텐데.’
레반의 시선에, 지금까지 바보 천치마냥 행동하던 개방도놈의 분위기가 일변해선 자세를 바로잡는 것이 보였다.
마치 발경(発勁)과도 비슷한 기수식.
곧 요상한 파장이 기감을 간지럽힌다. 주변의 공기가 왕초삼의 건틀렛 뒤쪽으로 후욱- 빨려 들어가더니 기관차 엔진실에서나 들릴법한 쇳소리가 났다. 이윽고 고온의 열이 뿜어져나와 얼굴이 불이라도 덴 듯 화끈해졌다.
그는 무언가를 큰 공격을 준비하는 듯했다.
“돌프야. 저 괴물놈 대가리만 쏴라.”
“예!”
레반은 그 사실을 금방 알아채고는 밴스와 함께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둘의 탄창이 거의 다 동나갈 즈음.
“옆으로 비켜서!”
왕초삼이 벽력같이 일갈하며 눈을 부릅떴다.
기이이이잉-
밴스가 레나를 이끌고 휴머노이드 바텐더 뒤쪽으로 피신하기가 무섭게 거대한 파장과 폭발이 건틀렛으로부터 터져 나왔다.
쩌어엉!
실로 무시무시한 파괴력이었다.
전방에 있던 모든 것이 폭탄에 맞은듯 산산조각이 났다. 층계는 반쯤 무너져 내렸고 팔을 앞으로 내밀어 공격을 막으려던 시체의 왼쪽 상반신이 통째로 날아갔다.
시체가 잠시 움직임을 멈추자, 숨을 몰아쉰 왕초삼이 약간의 여유를 되찾고 무언가 말하려고 했다.
그때였다.
“—어.”
부서진 층계에서 전광처럼 도약한 시체의 거대한 오른손이 무방비한 왕초삼을 파리잡듯 후려 갈겼다.
콰아아아앙!
미처 피하지 못한 왕초삼은 포탄처럼 튕겨져 나가며 아케이드 게임기 다섯 기를 연달아 박살 내고서야 멈출 수 있었다.
커헉-
피분수를 내뿜으며 뒤로 넘어가는 왕초삼. 눈대중으로 보았을 때 숨은 겨우 붙어있는 듯 했으나,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이윽고 레반이 시체와 다시 눈을 마주했을 때는, 통째로 날아갔던 놈의 왼쪽 상반신에서 뽀얀 새 살이 차오르는 중이었다.
“······.”
- 그겍. 그게겍.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듯 무서운 속도로 고개를 까딱거리고 있는 이형의 존재.
걸쭉한 체액이 여기저기에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