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모래폭풍
#22화.
공단의 살인공장은 화염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떠난 후 뒤늦게 도착했을 시티 경찰은 의외로 깔끔하고 신속하게 일을 처리했다.
관청의 입장에서도 가짜 산공독 따위로 부담스러운 당가와 엮일 바에 차라리 사건 자체를 무마시켜 버리기로 한 것이리라. 메가코퍼레이션의 드높은 명성과 당가의 지랄맞음이 제대로 먹혀들어갔다.
그 뒤로 거래처와 조직원을 잃은 마피아 조직의 ‘벤데타’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마피아 조직 그 자체인 거물과 얽혀버린 탓이었다.
특별한 능력도 없이 외모만 반반했던 로티스가 마피아와 거래하는 공장을 통째로 깔고 앉아 떵떵거릴 수 있었던 이유는, 남색을 밝히는 카스트라 뷔에탕의 눈에 들어 밤을 몇 번 보낸 이후부터라는 건 나중에서야 듣게된 얘기였다.
그리고 그게 벌써 일주일 전 얘기.
나는 정크타운에 입성한 후로 가장 정적인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일상에서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육체와 마나 회로를 매일같이 단련하고 남는 시간에는 운공으로 내력을 쌓아나갔다. 가끔 삼호문에 들러 무공의 성취를 확인하고 돌아오는 정도.
“후우······.”
오늘도 새벽까지 이어진 연공을 마치고 몸을 일으킨다.
곧바로 샤워실에 들어가 거울로 전신을 비춰보자, 등판과 뒤통수에 빽빽하게 새겨진 마나 문신들이 눈에 들어왔다.
기하학적인 무늬로 이루어진 문신 한 개 한 개가 모두 고위 마법 술식이자 육신을 갉아먹는 흉악한 저주들.
9레벨의 인형사가 직접 마력을 불어넣어 창조했을 이 마나 문신들은 인간의 몸에 들러붙어 정신을 공격하고 진기(眞氣)를 빨아먹는다.
뷔에탕의 말대로 시간이 지나면 문신에서 흘러나오는 격 높은 마력에 의해 정신은 오염되고 영혼은 없이 육체의 껍데기만 남고 말것이다.
“음.”
하기야 이전 생에서도 스물이 되기 무섭게 제국의 늙은 대마법사가 찾아와 내 머리통에 운석을 떨어뜨렸었지. 그에 반해 이번에는 죽지 않았으니 놀랄 것도 없나.
전생이라는 굴레에 갇혀 긴 시간을 살아가는 대신, 일찍 뒈지라고 염불을 외는 귀신이라도 영혼에 들러붙었나 보군.
“카스트라 뷔에탕이라······”
살아있는 전설이자 연방의 신화와 역사를 써 내려간, 이견의 여지가 없는 세 명의 최강자 삼존(三尊). 그리고 그런 삼존 다음가는 명성과 힘을 보유한 일곱의 초월자 칠좌(七座).
그 삼존칠좌의 뒤를 잇는 열두 명의 절대강자 십이제(十二帝).
좀비라는 존재의 등장으로 인해 절망적인 앞날만이 남아있는 세상에서,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필요한 연방은 도시의 강자들에게 저렇듯 거창한 명호(名號)를 붙여주었다.
그런데 자그마치 20년 전에도 십이제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여자가 바로 카스트라 뷔에탕이다.
그렇다면 현재는 대체 얼마나 강하다는 말인가?
그 생각을 하니 돌연 웃음이 새어나왔다.
나같은 슬럼가 소시민이 감히 올려다볼 수조차 없는 존재가 친히 격 드높은 마력까지 써가며 저주를 걸어주니······.
“이토록 고마울 수가 없군.”
거울을 바라보며 실실 웃던 나는, 결국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파안대소하고 말았다.
이 저주의 파훼법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기에.
게다가, 그 마력을 오히려 내 쪽에서 이용할 수 있는 수법마저 알고 있다.
전생의 라아기스 대륙에서도 이러한 마나 문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마법사들이 있었다.
흑마법을 익힌 이들이나 제국의 술법사들이 즐겨 사용했는데, 그 악랄함에 이골이 난 왕국 고위 마법사들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연구가 수백 년간 이루어졌고, 종국에는 이 마법의 파훼법과 정신력의 손상을 최소화 하는 방법을 여럿 발견해냈다.
왕국 마법의 대부분을 익히고 이 세상으로 넘어온 내가 기억하지 못할리 없었다.
물론, 뷔에탕과의 수준 차이가 현격한 당장은 문신을 제거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마력의 침투로 인한 정신의 오염을 계속 막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려면 우선 육신의 진기를 대신할 먹잇감을 문신에 던져줘야 하는데······.
“에센스는 계속 확보해 둬야겠군.”
에센스의 기운을 일정 부분 따로 빼두고 주기적으로 문신에 흘려준다면, 진기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뷔에탕과의 강제적인 미팅을 뒤로 미룰 수 있다.
만약 뷔에탕이 눈치채고 날 찾아오는 날에는 끝장이겠지만, 설마 내가 자신의 마법을 파훼할 정도의 지식을 보유하고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하겠지.
다음은 이 문신을 이용하는 방법인데······
그간 몇 번 시도해본 결과, 꽤 성공적이었다.
문신에 내 마력을 강제로 주입하면 잠시동안 카스트라 뷔에탕의 기이한 마력이 들불처럼 일어나 주위를 뒤덮는다.
보통의 저주 문신들은 피시전자의 반발을 눌러 놓기 위해 이렇게 설계되어 있는데, 그럴 때마다 옆에 있던 루돌프는 픽 하고 쓰러져 발작을 일으켰다.
격의 차이로 인해 고작 마력이 잠시 흘러 나오는 것만으로도 일반적인 이들은 그 흉포한 기운의 현현을 버틸 재간이 없다.
바꿔 말하면, 내 의지대로 9레벨이 가진 마력의 파편을 잠시나마 내보일 수 있다는 뜻.
비록 단기적으로는 내 몸에 큰 무리가 가겠지만, 적절한 때에 이용한다면 언젠가 한 번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쏴아아-
나는 상념을 끝내고는 물기를 닦았다.
대충 옷을 걸치고 나오자, 한 시간째 마보자세를 취하고 있는 루돌프놈이 눈에 들어왔다.
허약한 놈이 뭐만 하면 픽픽 쓰러지기에 무공을 가르치기로 했다. 저건 기본적인 육체를 단련하는 과정인데, 적당한 외공을 익히게 해서 엄폐물이나 육탄 방어용 경호원으로 쓸 셈이었다.
놈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훈련에 꽤 열의를 보이고 있었다.
“형님.”
마보를 풀고 잠시 숨을 고르며 다가온 루돌프 녀석이 네트워크 단말기를 내밀어 보였다.
“이번 상납 들어온거 확인했습니다.”
“그래.”
단말기 화면에 표시된 숫자를 확인하자, 17번가의 업장에서 거둬들였다는 상납금이자 보호세의 금액이 보였다.
25,000 크레딧. 생각보다 벌이가 쏠쏠한 편이다.
웨스트 커너 공장단지 노동자의 일급여가 50크레딧 내외. 워낙 못사는 동네다 보니 정크타운 내의 일자리도 상황은 비슷하다.
그런 슬럼가에서 이런 크레딧을 달마다 상납받을 수 있으니, 타운 내의 세력들이 유흥가를 중심으로 업장하나 더 먹겠다며 총격전을 벌일 만도 했다.
슬럼가의 눈먼 크레딧들은 결국 자신들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올 수밖에 없으니까.
나는 얼음을 오독 씹어먹으며 말했다.
“돌프야. 너희도 돈 많이 벌었겠구나. 입장료 뜯어먹으면서.”
“······예?”
문득, 정크타운에 처음 당도했을 때가 생각난 나는 루돌프놈을 거칠게 폭행했다.
뻐억-! 북 터지는 소리가 크게 울린다. 요즘들어 맷집이 좋아져서 그런지 때리는 맛이 훌륭했는데, 내 스승 광마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다.
한참을 두들겨 맞은 녀석의 눈가가 붉어졌다.
“이, 이것도 외공 수련의 일종입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제가 좀···울어도 될까요?”
“그래라.”
배를 부여잡고 끅끅대는 루돌프를 무시하고 2층으로 올라간다.
타닥-! 타다닥-!
오늘도 증권시장을 휘젓는 중인 레나.
“레반! 이거 봐!”
나를 본 레나가 하던 일을 멈추곤 자랑스레 화면을 가리킨다.
[ 예수금 / 56,400C ]
얼마 전만 해도 마이너스 수준이었던 초기 자금이 다시 불어나 있었다. 고개를 빳빳이 치켜드는 레나의 눈빛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이거 보여? 보이냐구!”
“음, 대단하군.”
내가 살인과 고문, 협박, 폭행을 일삼아가며 모은 크레딧보다야 한참 적은 소액이지만, 오랜만에 뿌듯해 보이는 레나의 기분을 망치긴 싫었다.
“그런데 레나.”
“응?”
“루벤카와 연락은 하고 있나?”
“······연락이 안 될때가 더 많아. 그래도 이틀에 한 번은 하고 있는데 얘기를 들어보면 계속 발할라에서 머물 생각인것 같아.”
저쪽도 아직 별다른 움직임은 없군.
발할라는 무림계가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곳이다. 제아무리 당가라도 마법사들의 본진이자 고향인 발할라 시티까지 쫓아가 무력을 행사할 수는 없을 테니까.
시티 스테이션의 검문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다면, 아예 발할라로 가서 터를 잡아도 괜찮겠는데···.
너무 이른 얘기겠지.
반 바이오가 무너진지 얼마 지나지 않은 현재로서는, 스테이션에 레나를 데리고 갔다간 당가에 발각당할 가능성이 높겠지. 아직 세간의 관심이 전부 식지 않았으니.
나는 레나와 이런저런 얘기를 잠시 나눈 뒤 술집 밖으로 나왔다.
17번가의 거리는 유독 시끄러웠다.
- 똑바로 잡으라니까!
- 새끼야! 니가 제대로 쳤어야지! 철조망에 손가락 찡겼잖아!
- 항타기도 칠 줄 모르냐? 등신같으니.
- 네 얼굴은 칠 줄 아는데 보여줄까?
뭔가를 분주하게 준비하는 타운의 주민들.
대부분의 상가가 천막, 철근, 철조망, 파이프등을 이용해 바리케이트를 구축하는 중이었다. 뒤따라 나와 분주한 거리의 광경을 구경하던 루돌프가 입을 열었다.
“형님. 곧 모래바람이 올텐데 저희도 건물 앞에다 뭐라도 쳐야하지 않을까요.”
저들이 저러는 이유는 하나.
폭풍 때문이다.
발두르 시티에는 주기적으로 강력한 모래폭풍이 분다.
사막의 폭풍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사능과 각종 오염물질, 중금속이 가득 섞인 모래를 몰고 오는 폭풍.
물론 평소의 도시 외곽은 두텁고 높은 거대장벽과 광역 마나프로텍트, 진법등으로 보호받고 있다.
프로텍트를 버텨낼 정도의 강력한 좀비가 장벽을 뛰어넘어 오는 경우가 아닌 이상, 좀비들이 몰래 침입할 통로는 마땅치 않다는 얘기다.
그러나 폭풍이 불 때는 다르다.
사람이 휩쓸려 날아갈 정도로 거세게 불어치는 모래폭풍은, 저 장벽 밖에서 어떤 좆같은 존재를 운반해올지 모른다.
예를 들어 좀비라든가, 좀비라든가, 좀비라든가.
반 바이오에 있을 때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중심업무지구는 강력한 기업들이 넘쳐나는 만큼 보안 인프라가 좋았고, 기업에 소속된 상위 레벨의 강자들이 나서서 폭풍에 휩쓸려 넘어오거나 혼란을 틈타 장벽을 넘어왔을 좀비등의 위협에 철저히 대비했다.
하지만.
시티 외곽에 사는 하층민들에게는 폭풍은 곧 생사와도 직결되는 큰 문제다.
저들은 문을 걸어 잠구고 벌벌 떠는 것 말고는 저렇게밖에 대비할 수단이 없다.
그렇다고 터전을 떠나있을 수도 없다.
폭풍이 지속되는 기간동안 시티 중심가의 모텔이라도 들어가려면 며칠간의 살인적인 숙박비를 감당해야 할 테고, 돌아오면 걸레짝이 된 집이 노숙자들의 아지트로 변신해있을 테니 말이다.
“형님. 라네치아 패밀리 놈들한테 돈만 주면 쉴 곳을 빌려줍니다. 대비하기 귀찮으시면 돈 내고 잠깐 거기로 가시죠.”
“갈 테면 혼자 가라. 목만 잘라서 보내주마.”
“······.”
라네치아 패밀리.
정크타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투레 더 타운’ 을 본거지삼아 활동하며, 주택가가 밀집한 구역을 지배하는 놈들이다.
유흥가 주변이 활동반경인 나와는 꽤 멀리 떨어져있다. 살인을 즐기지 않는 나는, 피를 본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아직까지 놈들과 부딪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하레니오만도 못한, 떨거지 같은 놈들이다.
양아치 놈들까지 신경쓸 겨를은 없었다.
*
며칠이 더 지났다.
요근래 폭풍을 대비하느라 한참 요란스러웠던 정크타운의 길거리는, 누래지는 하늘에 비례해 점점 고요해지고 있었다.
- 프로틴바는 다 떨어졌는데? 칼로리 스틱만 남았어.
- 젠장. 그럼 스틱 5개 줘.
- 스틱 5개에 30 크레딧.
- 뭐? 칼로리스틱 달라니까?
- 그니까 칼로리 스틱 하나에 6크레딧에 판다고. 싫으면 사지 말고 굶든가? 다른 놈들은 이미 6크레딧에 사갔어.
- 이런 시발같은.···
싼 크레딧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칼로리 스틱과 프로틴바등을 파는 잡화점, 상점들은 모래폭풍을 대비하느라 재고가 다 빠졌다며 쾌재를 불렀다.
그마저도 늦게온 손님들은, 원가의 두 배 이상을 주고 구해야 했다.
또, 많은 주민들이 정크타운 북쪽의 주거밀집구역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 구역을 지배하는 라네치아 패밀리는 숙소값을 받고 경비를 서준다던데, 그곳이 자신의 집이나 가게보다 안전하다는 계산일 것이다.
도박장, 사창가, 클럽을 포함해 어지간한 곳들은 전부 문을 걸어 잠궜고 친씨아의 총포상도 매장의 문을 두꺼운 철창으로 막아놓았다. 역시 자기 안전 하나는 끔찍하게 여기는 여자다.
“멀었나? 슬슬 바람이 차다.”
나는 와중에 총포상을 찾았다.
살인 공장과의 사태가 끝을 맺은 뒤에도 며칠간 조용하던 친씨아는, 별 탈이 없자 아무일 없던 것처럼 다시금 나를 고객으로 받아주었다. 확실히 재미있는 여인이었다.
“자. 첫날부터 그렇게 원하던 거.”
그때, 친씨아가 철창 사이로 뭔가를 내민다.
“연방군용 수류탄이야. 조심해서 써.”
“고맙게 잘 쓰지.”
“우리 사이에 이런거 가지고 뭘. 단골 고객이 죽으면 누구한테 가서 돈을 받겠어? 이번 폭풍은 꽤 강력할 거라던데 몸 조심하고 끝나면 다시 봐~”
친씨아의 간드러진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철창이 내려와 굳게 닫힌다. 그녀의 모습은 총포상 안으로 사라진뒤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부랑자도, 아이들도 사라진 슬럼가의 길거리는 쥐새끼 한 마리 없이 고요하다.
나는 17번가의 아지트로 돌아왔다.
루돌프와 삼호문을 시켜 창문에 덧대어놓은 철판과 문 앞에 둘러놓은 놓은 철조망. 건물 앞에 박아둔 날카로운 쇠철심과 헝겊으로 덮어 위장해둔 지프.
좋다. 완벽하다.
예전에 문지기의 목을 찔렀을 때 흐른 혈흔이 바닥에 남아있는 것을 제외하곤, 어떤 곳보다 깔끔하고 튼튼해 보이는 외관이었다.
“돌프야.”
“예, 형님.”
“이전 모래폭풍이 3개월 전이었냐.”
“그쯤이었을 겁니다. 뭐······실종된 놈도 있고 죽은 주민도 많았는데, 딱히 큰 일은 없이 넘어갔습니다. 저는 하레니오 새끼들이랑 2층에서 포커 치고 있었죠.”
하기야 갱단이 자기들 아지트로 썼던 만큼 일반적인 상가보단 조금 낫겠지. 저번에도 큰 무리 없이 넘어갔다고 했으니 말이다.
앞으로 최소 며칠.
갱스터고 노숙자고 할 것 없이 건물 안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한다.
철컥.
나는 마지막으로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곤, 잔뜩 쟁여둔 콜라 하나를 따 입에 들이부었다.
그날 저녁.
휘이이잉-!
문밖의 바람 소리가 심해지기 시작했다.
모래알갱이가 섞인 강풍이 철판을 날카롭게 스치고 지나간다.
좀비들의 괴성이 바람결에 실려 올 것만 같은 기분에,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