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퓨전펑크의 전생자-21화 (21/157)

#21화. 선채로 죽었다

#21화.

“살려서 내 앞에 데려와. 혀를 뽑아버리게.”

——!

총탄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졌다. 상대가 방어 마법을 익힌 마법사라는 것을 알면 주춤할 법도 한데, 무시하고 총탄을 쏟아붓는 걸 보면 이미 마법사와도 여러 번 싸워본 경험이 있으리라.

엄청난 집탄량에 마력이 뭉텅뭉텅 깎여 나간다. 에센스를 흡수한 덕에 마나 회로가 이전보다 강화되긴 했지만, 제자리에서 수백 발의 총탄을 가만히 막고만 서있는건 무리였다.

“등평위!”

“!”

전개한 보호막에 총탄이 튕겨나가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던 삼호문주를 부르자, 컨테이너 뒤에서 엄폐하고 있던 그가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강 건너 불구경할 때가 아님을 직시한 등평위는 재빨리 자리를 잡고 놈들을 조준했다.

그때, 내가 다시 등평위를 불렀다.

“신고부터 해라!”

“시, 신고?”

“그래! 되도록 천천히 오라고 해!”

“······.”

나는 보호막에 마력을 더 쏟아부었다. 고농도 마나액을 전투 전에 미리 주입해뒀지만, 신이 아닌 이상 무한정으로 총탄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일단 거리부터 좁혀야겠군.’

몰타 왕국의 마탑에는 마권사들이 있었다.

일반적인 왕국의 마법사가 준비된 폭격기라면, 마권사의 역할은 적진속에 던져진 폭탄이었다.

그렇기에 몰타 왕국의 마권사들은 대부분, 원거리 궁병의 저격으로부터 자신의 신체를 보호하는 마법과 적과의 거리를 좁히는 마법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리고 제국과 최전선에서 싸웠던 나 역시, 무수히 쏟아내는 궁병들의 화살 세례는 누구보다 익숙하게 돌파해낼 자신이 있었다.

마나 보호막을 앞으로 전개하며 전진한다.

집중력을 요구하는 행위에 회로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저벅대며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놈들의 탄막이 눈에 띄게 요동친다.

어느덧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좁혀진 용병들과의 거리. 순간 마나 보호막을 폭발시키자 깨진 마력의 파편들이 전방으로 쏟아졌다.

“피해!”

견고하던 용병들의 진영이 일순간 무너졌다. 나는 압축도를 뽑아들고 가장 가까이 있던 놈을 향해 몸을 쏘아냈다.

그때.

쐐애액-!

총을 내던지며 달려든 용감한 용병놈 하나가 자신의 팔을 뻗어 압축도의 궤적에 갖다댄다.

제 팔 소중한 줄을 모르는 놈이군.

아마 자기 몸뚱이가 아니라서 그렇겠지.

실제로, 저항감 없이 잘려나갈 줄 알았던 놈의 팔에서 쇠 뭉개지는 느낌이 나더니.

카각-!

시퍼런 불똥이 사방으로 튀어오른다.

사이버웨어 암이 반쯤 갈라지며 잘린 신경다발이 밖으로 드러난다. 파지직 거리며 튀는 전광. 생각보다 강한 손상에 경악하는 놈의 표정이 보였다.

“무, 무슨?”

“그럼 멀쩡한 줄 알았나?”

“죽어 이 빌어먹을 새끼야!”

쐐액-

이제는 외팔이가 된 놈이 남은 반대쪽 팔로 낫처럼 생긴 무기를 휘둘러온다.

경지는 낮아도 실전 경험이 풍부한 놈들답게 팔 하나를 내어주곤 곧바로 목을 노리는 움직임이 꽤나 매끄럽다.

하지만.

서걱.

내공을 주입한 압축도가 떨어지는 낫과 팔목을 통째로 베어버린다. 깔끔하게 절삭된 파츠가 툭. 하고 떨어진다.

허전해진 양 팔을 허탈하게 바라본 놈이 혼잣말을 지껄인다.

“······평범한 마법사라며? 이게 뭐야 씨발.”

서걱-

낭인 용병 하나가 목숨을 잃었다.

한편, 동료의 죽음이 익숙한 놈들은 이 상황을 오히려 기회 삼아 거리를 멀리 벌린다. 하지만 그리 영리한 판단은 아니었다.

촘촘했던 진영이 사방으로 찢어지자.

타앙—

삼호문 쪽에서 큰 총성이 터져 나온다.

거리를 벌리던 한 놈이 털퍽 고꾸라진다. 나는 뒤를 확인할 새도 없이 흩어진 놈들을 향해 짓쳐들었다.

철그렁!

갑작스럽게 날아든 쇠사슬을 발도로 끊어낸다. 그 반동으로 몸을 돌린 나는 압축도를 횡으로 그었다.

스걱!

도의 궤적에 걸린 한 놈의 목이 더 달아나자, 지금껏 크게 당황하지 않던 놈들이 이제야 조급한 티를 냈다.

평정심을 잃고 허둥대는 놈들만큼 상대하기 쉬운 건 없다.

타앙-! 타앙-!

엄폐물 뒤에서 날아온 삼호문의 총탄에 허둥대던 용병들이 하나씩 고꾸라진다. 같이 쏴대자니 내가 달려들까 무섭고, 그렇다고 신경을 끄자니 총탄에 머리통이 터져나간다.

삽시간에 여유를 잃은 낭인 용병들이 제 목숨을 챙기기 위해 각기 움직였다. 총탄이 적아를 가리지 않고 난무한다.

그렇게 아수라장이 된 장내.

나는 아까부터 뒤에서 가만히 서있던 로티스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넌 옷에 때 탈까 봐 안 싸우는 거냐?”

“······.”

*

드드드득!

공장장 로티스를 호위하던 덩어리, 경호용 안드로이드의 목에서 인공 척추가 길게 뽑혀 나온다.

곧바로 가동을 멈추는 안드로이드.

복부를 반쯤 가르고 들어가 박힌 압축도의 도병을 잡아당겨 회수한다.

콰직-

나는 손을 몇 번 툭툭 털고는 공장장 로티스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놈은 얼굴에 비해 무력이 형편없었는데, 자존심은 또 강해서 손만 대면 지랄발광을 하며 머리를 털었다.

“······내가 누구인지는 알고 이러는 거냐?”

“알 바 아니다. 넌 내가 누군지 알아?”

“······.”

대답이 없기에 머리통을 계속 때렸다.

퍼억! 하는 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잘생긴 얼굴이 불쌍하게 변해간다. 미형의 사내가 처맞으며 울상을 짓자 어째서인지 손찌검을 그만둬야 할 것만 같았다. 루돌프같이 생겼다면 그냥 패죽였을 텐데, 사람의 외모가 이렇듯 중요한 요소이다.

“······도, 도와줘.”

“다 죽은 목숨인데 누가 너를 돕겠냐.”

“······이런 젠장할, 정말 안 도와주는거야? 제발! 그때 나랑 약속했잖아! 씨발!”

핏발선 눈의 로티스가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 목숨을 건진 네 명의 낭인 용병들을 째려보며 절규했다. 세 놈은 슬며시 눈을 피하고, 나머지 한 놈이 용기 있게 나서서 말했다.

“우리는 더 싸울생각 없습니다. 목숨만 붙여 보내 주시면 평생을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처음에 나섰던 서부 총잡이 놈이었다. 옆구리에 총을 맞았는지 지혈팩을 둘둘 두른 놈은 비척대며 걸어나와 바짝 엎드렸다.

꽤나 올바른 선택이다.

이미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서 목숨걸고 끝까지 싸우는 용병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다고 해서 크레딧을 더 받아가는것도 아니니 말이다.

“총잡이. 너희 의뢰주 아직 안 죽었다. 포기하는거야?”

“예. 포기하겠습니다. 그리고 맡겨만 주신다면은 지금 제 손으로 죽여 보이겠습니다.”

“정말이냐?”

“저 멍청한 놈을 누구보다 먼저 죽여버리고 싶은 사람이 접니다. 죽일 마법사가 하나 있다고만 전해 들어서 이 사달이 난 거거든요. 이럴줄 알았으면 절대 안 왔을 겁니다.”

“그래, 각자 손가락 세 개씩 자르고 떠나라.”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놈들이 꾸벅 고개를 숙인다. 곧 도마뱀 꼬리 자르듯 자신의 손가락을 망설임 없이 잘라낸 낭인 용병들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땅바닥에는 갓 잘린 따끈한 손가락들만이 남았다.

차르륵.

나는 죽은 낭인 용병들의 머릿속에서 뽑아낸 칩들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 참응조수 》

《 태산괴랑 》

《 양산보법 》

그러면 그렇지.

당연히도 좋은 무공들은 아니었다.

돈만 있으면 구할 수 있는, 허접한 무공들이 담겨있는 무공칩이 여러 개. 조잡한 걸 보자면 저것마저도 복제품이겠지.

내가 칩을 확인하는 사이, 꿇어앉은 공장장 로티스가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날 죽이면 어차피 너희도 전부 죽어. 빈말로 하는게 아니라 진심이야.”

놈의 얼굴 근육이 멋대로 씰룩거렸다. 잔뜩 핏발선 눈은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너도 용병들처럼 살려주면 앞으로 조용히 지낼거니?”

“바, 반드시 그렇게 하지. 내가 약속한다.”

“싫어.”

“······이 씨발 새끼가! 장담하는데 이 일을 두고두고 후회할 거다. 난 분명히 경고했어.”

핏발선 눈으로 뱉는 너무도 상투적인 대사에 나는 그만 깜짝 놀랄 뻔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대협! 여기 찾았습니다!”

창고로 쓰이는 컨테이너를 뒤지던 등평위가 작은 상자를 찾아 들고 온다.

상자의 뚜껑을 열어보자, 그 안에 가득 들어찬 의문의 가루가 보였다. 손으로 살짝 찍어 코로 들이쉬니 공력의 수발이 금세 버거워졌다. 하레니오 갱단에 대금으로 건네줬을 산공독의 모조품이 확실했다.

나는 곧바로 로티스의 머리를 후려쳤다.

“당가가 되게 좋아하겠다.”

“······.”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

놈이 묵비권을 행사하며 이를 부득부득 가는 동안 공장과 컨테이너, 시체들의 주머니를 싹싹 턴 삼호문도들과 루돌프놈이 두 손 가득히 전리품들을 들고 복귀했다. 그 양이 놀랄 정도로 많았다.

“등평위. 신고한지 얼마나 지났나.”

“적어도 30분은 지났을 테지요.”

“좋다. 이놈은 빨리 좋은 곳으로 보내주고 같이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

끄덕인 등평위가 동산처럼 쌓여있는 전리품을 가리키며 물었다.

“대협, 저것들은 어찌 옮기면 되겠습니까?”

“편하게들 가져가라고 오프 로드용 지프를 네 대나 끌고 왔더군.”

“삼호문에 두 대 주십시오. 다친 놈 약값은 두둑이 보태줘야지요.”

“그래라. 총알은 몇 발이나 남았냐.”

“전투가 워낙 치열해 몇 발 안 남았습니다.”

“비싼 건데, 아쉽게 됐군.”

철컥.

나는 곧바로 테크리볼버를 건네받아 로티스의 머리를 조준했다.

——!

이윽고, 한 발의 총성과 끔찍한 비명이 공장을 떠나갈 듯 울렸다. 안면에 구멍이 뚫려 다시는 알아볼 수 없게 망가진 얼굴의 시체가 앞으로 털퍼덕 쓰러졌다.

하레니오와 거래하던 살인공장은 오늘부로 사라졌다. 퍼져있는 소문처럼 대단한 놈들은 아니었다.

소름 끼치도록 음산한 기운이 귓속을 파고들어와 정신을 갉아먹기 전까지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 ······죽어버렸네. 】

어디선가 들려오는 나긋한 음성.

“!?”

실로 기이하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어떠한 존재의 기운이 사위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것은 그저 음성에 불과했음에도, 루돌프와 문도 셋이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로 쓰러져 발작을 일으켰다. 녀석들의 사지가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리며 흙먼지를 만들어낸다.

“커읍···.”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었다.

눈치 빠르게 가부좌를 틀고 운공하며 그 기운에 반항하는 듯했던 등평위마저도, 결국 입에 거품을 물고는 가부좌를 튼 자세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이 모든 일이 눈 몇 번 깜빡일 찰나에 벌어졌다. 근방에 멀쩡히 땅을 밟고 서 있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

침착하게 주위를 둘러보자 파랗게 빛나는 로티스의 뒤통수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로티스의 머리카락을 걷어내고 질긴 수트를 칼로 잘라내자, 온몸을 덮고 있는 타투들이 드러났다. 복잡한 문양들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뒤섞여 있는 형태였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헛웃음을 뱉었다.

‘마나로 새긴 문신. 이런···.’

아까 로티스가 그리 도와달라고 절절맸던게—

“용병 무리에게 했던 말이 아니었군.”

로티스의 마나 문신을 확인한 순간, 그간 부려왔던 짜증과 신경질이 눈 녹은 듯 사라졌다. 왜 이리 불안하고 매사에 신경이 날카로웠는지 대번에 의문이 풀렸다.

잠을 못 자서 그랬다거나 루돌프놈의 등신짓이 원인이 아니라, 길이 열린 상단전이 지금의 설명 못 할 현상을 불안감이라는 형태로 경고해 주던 것이었으리라.

이것은 직감, 육감을 넘어서 초감각이라 이름 붙여도 모자라지 않을 능력이었다.

【 왜 죽였어? 】

“······.”

그런데 애써 그 경고를 무시하고 호랑이 굴에 제 발로 기어들어왔다.

이게 다 루돌프, 그 한심한 놈 때문이다.

어째서 이 정신 나간 기운을 느끼지 못했을까.

둘 중 하나였다. 나의 경지가 한심할 정도로 낮거나, 저 음성 본신의 힘이 경이로울 정도로 강력해서 그 존재를 완벽히 숨길 수 있거나.

아무래도 정답은 후자일 것이다.

【 밤일이 괜찮은 아이였는데. 】

상념에 잠겨있을 시간이 없었다.

나는 정신을 후벼파는 음성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해야할 말을 고르고 또 골랐다. 밤일이 괜찮은 아이. 그 짧은 문장을 곱씹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죽은 저놈보다 더 튼실할거다. 바지라도 까서 보여주면 믿겠나?”

【 재미있는 아이네. 】

그 음성의 반응과 동시에, 죽은 로티스의 온몸에 새겨져 있던 타투가 문어 다리같은 모양으로 징그럽게 꿈틀대더니 곧 사체에서 분리되어 떠올랐다.

고도의 지식이 필요해 하나 새기기도 힘든 마나 문신을 저리 자연스레 다룬다면, 고위 술식도 마음대로 변형해 이용할 줄 아는 경지의 마법사.

음성의 주인은 아무리 못해도 몰타왕국의 마탑주 정도의 수준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 8레벨. 어쩌면 그 제국 대마법사에 근접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부터 좋은 일이 일어나지는 않겠군.

화아악—

입체적으로 일어난 마나 문신은 사람의 형태를 하곤 유령처럼 허공을 걸어 다니다가, 한순간 내 몸을 삼키듯이 달라붙었다.

눈앞이 안갯속을 걷는 듯 흐려졌다.

정신이 몽롱해지고 온 몸이 찢어질 듯 극심한 고통이 뒤를 이어 찾아왔다. 이대로 가다간 쓰러질 것 같았기에 몽롱한 상태에서도 안주머니에 있던 통감 조절기를 허벅지에 박았다. 육체의 고통이 약간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푸흡-

마치 바늘로 뇌를 찌르는 것 같은, 정신까지 침범해 들어오는 불손한 마력을 막아내자 거대한 반발력이 일어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 선혈이 흘러나왔다. 찝찔한 쇠맛을 느끼며 목구멍을 막는 피를 연신 뱉어냈다.

취미가 고약한 작자로군.

죽은 저 로티스놈이 처음으로 불쌍해졌다.

내가 어마어마한 고통을 견디는 동안, 목소리는 나른하고도 농염하게 웃으며 말했다.

【 로키 시티에 와서 나를 찾아. 직접 몸으로 확인해보고 마음에 들면 살려줄게. 】

“이름을 알려줘야 찾아가지 않겠나.”

【 내 이름? 뷔에탕. 】

입에 고인 피를 뱉으며 뜨거워진 머리를 굴렸다. 흔하지는 않지만 어디선가 분명 들어본 이름이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뷔에탕이라는 이름을 기억해냈다.

“······카스트라 뷔에탕?”

로키 시티의 신동경에서 군림하는 거물.

마피아라는 대규모 조직의 보스이자, 20년 전 토벌 사건이후 십이제(十二帝)의 자리에서 강제로 퇴출당한 여자.

9레벨 인형사(人形師), 카스트라 뷔에탕.

음성은 자신이 그 뷔에탕이라 말하고 있었다.

쉬이 믿기 힘든 얘기였으나, 지금까지의 일로 미루어 보았을 때 나는 차마 그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저 멀리 떨어진 로키 시티에 있을 인간이, 발두르에 있는 나를 상대로 저주를 걸어버린 거다. 그것도 마나 문신에 주입해둔 마력을 매개로 사용해서.

거물급 마법사가 아닌 이상에야 감히 이만한 이적(異蹟)을 내보일 수는 없으리라.

【 놀랐어? 】

나른한 음성은 잔뜩 구겨진 내 얼굴을 비웃는 것처럼 희게 웃었다. 뭐라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 문신이 네 정신을 다 파먹기 전에 찾아와. 반년 뒤면 혼이 없는 껍데기만 남을 테니까. 】

그 말을 마지막으로 고통이 잦아들었다. 정신을 틀어쥐고 뜯어먹는 듯했던 음성 또한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

반년 뒤면 뒈질거라는 소리군.

나는 한바탕 거대한 폭풍이 지나간 곳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오 분쯤 지나 기절했던 등평위가 끙끙거리며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다.

번뜩 일어난 등평위는 주위를 둘러보며 허탈하게 웃고는 입을 열었다. 처음으로 한다는 말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대협, 선채로 돌아가신 겁니까?”

*

공단의 노동자들이 출근할 무렵.

BCPD소속 선임 검시관과 시티 경찰들이 웨스트 커너의 공장에 도착했을 때는, 땅에 처참히 널브러진 시쳇더미와 이상한 가루가 들어찬 박스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검시관님. 이것좀 확인해 보셔야겠습니다.”

스윽-

박스 속의 내용물을 찍어 냄새를 맡아본 검시관이 인상을 찌푸리며 황급히 손수건을 꺼냈다. 손수건으로 코를 틀어막은 검시관이 손을 저었다.

“이거 산공독 종류네. 가품일테고.”

“어떻게 처리하면 되겠습니까?”

“이딴걸로 메가콥이랑 괜히 엮이면 일생이 피곤해진다. 그냥 산공독 포함해서 여기 싹 불태워버리고 복귀해. 현장 보고서는···아니다. 그건 내가 직접 작성해서 올리지.”

“예, 알겠습니다.”

“간다.”

선임 검시관이 더이상 보기도 싫다는 듯 미련없이 몸을 돌려 사라진다. 얼마 뒤, 커다란 불길이 일어나 공장 부지를 삽시간에 뒤덮었다.

화르륵!

시뻘건 화마가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경찰차 몇 대가 빠져나오는 것을 마지막으로, 그 공장의 문은 굳게 닫혀 다시는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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